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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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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26일 11시 34분 등록

[북리뷰 8]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The Hero With Thousand Faces

 

1. 저자에 대하여

 

벌써 몇 번째 그에 대해서 쓰는지 모르겠다.

그는 어떤 영웅의 얼굴을 하고 있을까. 그의 신화는 무엇일까. 세상의 온갖가지 신화들을 찾아다니면서, 정작 자신의 신화는 어떻게 썼을까?

프로메테우스? 아마도... 제일 먼저 프로메테우스가 떠오른다. 착실한 로마카톨릭 집안에서 자란 그가, 16살부터 들기 시작한 신에 대한 회의가 들기 시작하면서부터 말 못할 고민이 생겼을 테다. 부모님과 주변 가까운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 무엇보다 지금껏 의심해보지 않았던 자신의 믿음에 대한 이 불안한 욕망이 죄악이 아닐까.

그를 이런 죄의식으로부터 벗어나게 했던, 그 순간을 장면을 떠올려 본다. 어땠을까? 아마도 몸 밖으로 튀쳐 나오려는 심장 때문에 밤새 잠을 설쳤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어떤 소명을 받을 것일까. 아니 어떻게 소명을 받을 것일까?

그도 고민을 했겠지. 박사학위를 계속하는 게 그래도 낫지 않을까? 그래야 남들이 내 말 귀담아 들어주지 않을까? 때려 치겠다는 것이 잘하는 짓일까? 누구에게 물어봐야지? 신화처럼 누군가 그 앞에 나타났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유학에서 돌아온 길, 버젓한 직장 하나 구하기조차 어려운데...

그녀, 춤을 춘다는 그녀는 그에게 여신일까. 공주일까.

그가 무찌른 용들, 맞서 싸운 괴물들. 숲에서 보낸 5년의 칩거를 끝낸 후 그도 귀환한 것일까?

신화의 공식에 그의 삶도 그럴듯하게 맞춰지는 것 같다.

 

 

2. 가슴을 무찔러드는 글귀

머리말

옛 현자들은 말을 하되 언외(言外)의 뜻을 거기에다 실는 데 소홀함이 없었다. p6

 

우선 상징의 문법을 터득해야 할 터인데, 저자가 알기로는 이 문을 여는 열쇠로 정신분석학만한 현대적 길잡이는 따로 없을 듯하다. p6

 

이렇게 모아놓고 보면 그 유사성이 한눈에 두드러져 보이고,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이 이 땅에 살면서 오랜 세월 삶의 길잡이로 삼아 온, 방대하면서도 놀라우리만치 일정한 상태로 보존된, 바탕되는 진리와 만나게 된다. p6

 

<진리는 하나되, 현자는 여러 이름으로 이를 드러낸다>고 했다. p7

 

프롤로그 원질신화

1 신화와 꿈

 

이 전문가가 시험과 비전(秘典)을 관장하는 원시림 성소(聖所)의 주의(呪醫, medicine man), 즉 고대 비법 전수자 ancient mystagogue나 영혼의 안내자로서의 역할과 성격을 떠맡게 된다. 의사는 신화 영역에 관한 현대의 명인(名人)이며, 그 비방(秘方)과 영험이 있는 주문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의사의 역할은, 신화나 동화에서 주문으로 무서운 모험의 시련과 위기에 몰린 영웅을 도와주는 노현자 wise old man의 역할과 같다. p21

 

영웅이란, 스스로의 힘으로 복종(자기 극복)의 기술을 완성한 인간이다. 그렇다면 무엇에 대한 복종인가? 이것은 바로 오늘날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하는 수수께끼이며, 영웅의 바탕되는 미덕과 역사적 행위가 풀었어야 하는 문제다. ... 오직 탄생(낡은 것의 새로운 태어남이 아닌, 새로운 것의 탄생)만이 죽음을 정복할 수 있다. 죽음의 끈질길 재현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영혼의 내부에, 사회적인 무리의 내부에 끊임없는 <탄생의 재현 palingenesia>(우리가 이 땅에서 오래 잔존하게 되어 있다면)이 있어야 한다. ... 죽음이 승리하는 날이 오면 죽음이 다가 온다. 그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십자가에 달렸다가 부활하는 길뿐, 갈가리 해체되었다가 재생하는 길뿐이다. p29

 

첫 단계, 즉 해탈 혹은 물러섬 withdrawal 과정은, 외적인 세계에서 내적인 세계로, 대우주에서 소우주로 그 중심을 옮김으로써, 황무지의 절망에서 내부에 존재하는 영원히 평화로운 영역으로 물러섬으로써 이루어진다. ... 유아기의 무의식이다. 우리가 잠잘 때 들어가는 곳이 바로 이 영역인 것이다. 우리는 이 영역을 평생토록 우리 내부에 간직한다. p30

 

영웅이 첫 단계에서 하는 일은, 하찮은 세상이라는 무대로부터 진정한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는, 심성의 인과가 시작되는 곳으로 물러 앉는 일이다. 그리고 영웅은 난관을 헤쳐 나가되 자기 식으로 그 난관의 뿌리를 뽑고(즉 자기가 속한 문화권의 유아기 악마에게 싸움을 걸고) 한달음에 쳐들어가 C.G. 융의 소위 <원형 심상(原形心象, Archetypal images)>과 동화 작용을 시도한다. 힌두와 불교 철학에서는 이 과정을 <비베카, viveka>, 즉 분리 discrimination의 과정이라고 한다. p30-32

 

우리가 찾고, 동화(同化)해 나아가야 할 원형은, 인류 문화의 연대기를 통해 제의, 신화, 그리고 상상력의 기본적인 이미지를 촉발해 온 기폭제다. p32

 

꿈은 인격화한 신화고 신화는 보편화된 꿈이며, 꿈과 신화는 상징적이되, 정신 역학의 동일한 일반적 시각에서 보아 그렇다. p33

 

따라서 영웅은 과거 개인적, 지방의 역사적 제약과 싸워 이것을 보편적으로 타당하고 정상의 인간적인 형태로 환원시킬 수 있었던 남자나 여자를 일컫는다. ... 따라서 두 번째 엄숙한 과업과 행위는(토인비가 주장하고, 인류의 모든 신화가 보여 주듯이)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재생의 삶에 대해 그가 배운 바를 가르쳐주는 것이다. p33

 

그러나 토인비 교수에 대해서는 한 가지 지적해 두어야겠다. 그는 기독교를, 이 두 번째 과업을 가르치는 유일한 종교라고 선전함으로써 신화의 내용을 그릇 해석하고 있다. ... 여기에서 발단된 그의 실수는, 오늘날 같은 세계 상황에서의 구원은, 로마 카톨릭에 귀의해야 가능할 것이라는 가정으로 비화한다. p33

 

귀가 안팎으로 열린 사람에게만 들리는 희미한 소명(召命)의 모험 길로도 들어설 뜻을 세운 사람답게, 예사롭지 않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초라하고 질척한 거리>를 홀로 가야 했다. p35

 

나를 지나면 슬픔의 도시로 가는 길,

나를 지나면 영원한 슬픔에 이르는 길,

나를 지나면 길 잃은 무리 속으로 들어가는 길. p35

Per me si va nella citt dolente,

Per me si va nell eterno dolore,

Per me si va tra la Perduta Gente, 단테, 『신곡』<지옥편> Ⅲ, 1-3

 

아무리 맹세하고 서원해도 절망적일 수밖에 없는 사람이란, 내부의 소명도 외부의 교리도 모르는 사람이다. p37

 

이 장인이, 미궁의 공포를 연출한 장본인인 동시에 자유라는 이름의 목적을 달성케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p38

 

그는 단순하고, 용기에 차 있으며,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영웅이다. ... 그런데도 우리는 혼자서는 이 모험 길에 들어서지 못하고 있다. 모든 시대의 영웅들은 우리에 앞서 미궁으로 들어갔고, 미궁의 정체는 모두 벗겨졌으며, ... 추악한 것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우리는 신을 발견할 것이고, 남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던 곳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죽일 것이며, 밖으로 나간다고 생각하던 곳을 통해 우리는 우리 존재의 중심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고, 외로우리라고 생각하던 곳에서 우리는 세계와 함께하게 될 것이다. p39

 

2 비극과 희극

 

해피 엔딩은 허위 진술로 경멸을 당하는데, 이는 우리가 알고 보아 온 한, 이 세계에는 하나의 종말, 즉 죽음, 붕괴, 의절,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던 형태가 사위어감에 따라 일어나는 우리 마음의 십자가가 있을 따름이기 때문이다. p39

 

<연민이란, 인간의 고통 중 엄숙하고 부단한 것에 마음을 빼앗기게 하고, 이를 고통 받는 사람과 하나가 되게 하는 감정이다. 공포는 인간의 고통 중 엄숙하고 부단한 것에 마음을 빼앗기게 하고, 이를 보이지 않는 원인과 하나가 되게 하는 감정이다.> p40

 

비극과 희극은, 삶을 계시하는 전체성을 본질로 공유하며 죄악(신의 의지에 대한 거역)과 죽음(필멸의 형태에의 동화)의 오염으로부터 정화(Katharsis, purgatorio) 되고자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사랑해야 하는 하강과 상승 kathodos and anodos인 것이다. ... 이 몸뚱이는 죽어 없어지지만 이 몸속에 와 계시는 실재 self는 영원하며, 불멸이며, 무한이니라. p43

 

신화적 영웅의 길은, 부수적으로는 지상적일지 모르나, 근원적으로는 내적인 길이다. ... 이러한 영웅의 행위가 완성되면, 삶은 더 이상 도처에 도사린 재앙의 가혹한 단죄와 시간에 의한 마손이나 막막한 공간의 두려움 앞에서 무방비 상태로 고통 받는 일이 없게 된다. ... 다시 생기를 얻는다. ... 생명의 심연에서 보이지 않게 타오르던 불길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빛이 되어 비치기 시작한다. 저 무서운 단죄의 손길은, 그제서야 우리들 마음속의 불멸하는 우주의 그림자로 비친다. 시간은 영광의 승리자 앞에 무릎을 꿇고, 세계는 더할나위없이 천사적인, 더할 나위없이 단조롭고 요정의 노래처럼 매혹적인 하늘의 노래를 부른다. 행복한 가정이 다 그렇듯이, 소생한 신화와 세계는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p44

 

3 영웅과 신

이것은 서양의, 십자가에 못 박히는 상태에 대응하는, 동양 신화의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정각수(보리수) 아래의 부처와 십자가 나무(Holy Rood, 구원의 나무) 위의 그리스도는 유사한 것으로, 원형적인 세계의 구원자와 태고의 유물인 세계수(世界樹, world tree)의 모티프를 통합한다. p47

 

곧 알게 되겠지만, 대양을 방불케 하는 동양의 광대한 이미지로 표현되든, 그리스의 웅장한 서사시로 표현되든, 아니면 장엄한 성서의 이야기로 표현되든, 영웅의 모험은 위에서 말한 핵 단위의 패턴, 다시 말하면, 세계로부터의 분리, 힘의 원천에 대한 통찰, 그리고 황홀한 귀향의 패턴으로 이루어진다. ... 장소가 어디건, 그들의 관심(종교적, 정치적, 혹은 개인적)이 어디에 있건 진정한 창조 행위는 죽어가는 것으로부터 세상으로 무엇인가를 가져오는 행위로 표현되며, 영웅의 부재중에 무슨 일이 있어나든, 그가 거듭난 자, 위대한 자, 창조력을 얻어 돌아오는 자로 만들기 위해서는 인류 역시 한 목소리가 된다. p50

 

프로메테우스처럼 단도직입적으로 목표를 향해 돌진하고, 그가 의도하던 세상을 위한 홍익을 손에 넣어버린다면 그가 지닌 힘의 불균형이 부작용을 일으켜, 프로메테우스가 자기의 불경스러운 무의식이라는 바위에 갇혔듯이, 내-외적인 시련을 당하게 된다. 또 한편, 영웅이 자신의 뜻으로 안전하게 사회로 귀환하면 그가 도우려던 사람으로부터 오해받고 무시당하게 되어 결국 그의 행적은 무위로 돌아가고 만다. p52

 

황제, 모세, 혹은 아즈텍의 테까틀리 포카 같은 종족적, 혹은 국지적 영웅은 한 종족에게만 그 선물의 은혜를 베풀지만 모하멧, 예수, 부처 같은 우주적 영웅은 전 세계에 넉넉히 한 소식을 전해 준다. p53

 

영웅이 애써 찾아다니고 위기를 넘기면서 얻어낸 신적(神的)인 권능은 처음부터 영웅의 내부에 있었던 것으로 드러난다. ... 영웅은, 우리 모두가 내장하고 있되 오직 우리가 이 존재를 발견하고 육화시킬 때를 기다리는 신의 창조적, 구원적 이미지의 상징이다. p54

 

이 책은 발생론 연구서가 아닌 비교 연구서로 신화와, 신화를 대신하는 현자들의 해석이나 응용에 나타난 유사한 형태를 보여주는 데 목적이 있다. p54

 

나는 너고, 너는 나다. 네가 어디로 가건 나는 거기에 있다. 나는 없는 곳이 없으니, 원하면 언제든지 나를 찾으라. 나를 찾는 것은 곧 너를 찾음이다. ... 이 둘(영웅과 그의 궁극적인 신, 찾는 자와 찾아지는 자)은 결국, 이 세계의 신화에 다름 아닌 단일한 유형적 신비의 표리로 받아들여진다. 위대한 영웅은 위대한 행적을 통해, 이 다양한 얼굴이 사실은 하나임을 알고, 또 남들에게 알리게 된다. p55

 

4 세계의 배꼽

영웅의 성공적인 모험의 의미는, 생명의 흐름을 풀어 다시 한번 세계의 몸속으로 흘러들게 하는 데 있다. 이 흐름의 기적은 물리적으로 음식물의 순환, 역학적으로는 에너지의 흐름, 영적으로는 은총의 현현을 나타내는 듯하다. p55

 

전 세계의 회교도 사회에서 하루에 세 차례씩 행해지는 기도도 세계라는 바퀴의 살처럼 일제히 카아바를 향한다. 카아바는, 개인 및 전부를 알라의 의지로 <굴복islam>시키는, 살아 있는 거대한 상징이다. p61

 

일찍이 헤라클레이토스는 이렇게 주장했다.

닮지 않은 것이 상합하고, 서로 다른 것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화가 이루어지며, 모든 것은 다툼에 의해 생겨난다. p62

 

둘이 싸울 수 밖에 없었지. 내가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남들을 싸우게 하는 것이니라. p64

 

제1부 영웅의 모험

제1장 출발

1 영웅에의 소명

 

그래, 내 공만 찾아준다면, 네가 원하는 건 뭐든지 약속하지 p71

 

모험이 어떻게 시작되는가 ... 부지중에 저지른 실수는 극히 드문 것이긴 하지만 뜻밖의 세계를 드러내고, 당사자는 이해하기 어려운 세력과의 관계 속으로 끌려들어간다. ... 이러한 실수는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욕망과 갈등이 억압된 결과 나타난 것이다. ... 이 동화에서는 황금 공이 사라진 사건은, 공주에게 닥칠 어떤 운명의 첫 번째 조짐이고, 개구리는 두 번째, 무심결에 한 약속은 세 번째 조짐이다. p71

 

이러한 소명을 받는 장소로 전형적인 곳은 깊은 숲속, 큰 나무 아래, 샘가...... 운명의 힘을 전하는 전령관은 혐오감을 주는, 참으로 하찮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배꼽에 대한 상징으로 인식한다. 작은 용(龍)인 개구리는, ... 태양을 물고 솟아오르는 동양의 중국 용, 혹은 장생불로의 복숭아 바구니를 든 젊은 불사의 신성한 샹 ... p72

 

이 징그러운 뱀이나 개구리, 즉 징그러운 동물은 무의식 심층(<하도 깊어서 그 바닥이 보이지 않는)>을 상징한다. p73

 

주인공이 이전에 자신이 의미를 부여하던 사물이 이제 무가치하게 되어버리는 상황을 경험한다. 막내 공주의 세계에서처럼, 황금 공이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그 뒤, 주인공은 잠깐이나마 일상으 생활로 되돌아오나, 생의 의미는 느끼지 못한다. 이 때, 어떤 힘에 대한 일련의 조짐이 나타난다. ...이러한 소명은 마침내 부정하지 못할 국면에 이른다. p77

 

영웅은 자신의 의지력을 모험을 완성할 수 있는데, 테세우스가 아버지의 도시 아테네에 도착하여, 미노타우로스의 놀라운 역사를 듣게 되는 상황이 이에 해당한다. 영웅은, ... 오딧세우스의 경우처럼, 호의적, 혹은 악의적인 세력에 의해 방랑해야 하는 수도 있다. 동화에 나오는 공주가 그랬듯이, 모험은 우연한 실수로 시작될 수도 있다. p80

 

2 소명의 거부

소명에의 거부는, 모험을 부정적이게 한다. 타성이나, 힘에 겨운 일, 혹은 <문화>의 장벽 때문에, 모험의 주체는 의미심장한 긍정적 행동력을 잃고,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되어 버리는 것이다. ...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내면서 파멸을 기다리는 것뿐이다. p81

 

예수의 길을 두렵게 여겨라, 그는 돌아오지 않을 것임이다.

Time Jesum transeuntem et non revertentem. p82

 

참으로 답답하고 한심한 결말이 아닐 수 없다. 태양이며, 시간과 성숙의 신인 아폴로는 더 이상 이 겁에 질린 사랑의 상대를 다그치는 대신 이 나무를 월계수로 명명하고 그 잎으로 관을 만들어 승리자의 이마에 걸어주게 했다. 처녀는 부모의 상(像)으로 후퇴하여 거기에서 보호를 받았다.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꿈 덕분에 아내와의 생활을 청산하게 된 어느 불운한 가장의 경우와 같다. p84

 

당사자는 유아기의 벽에 갇혀 있다. ... 이 경우 아버지나 어머니는 문턱을 지키는 사람으로 버티고 있어서, 그들의 징벌을 두려워하는 소심한 영혼은 문을 열고 외부 세계로 나오는, 재생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이다. p85 -프로이트의 거세 콤플렉스 castration complex

 

따라서 소명의 거부에 따르는 부정적인 상태가 뜻밖의 해방의 원리에 대한 행운의 계시일 수도 있다. p87

 

여자를 일러 물으니 대답하겠노라.

내 일찍이 여자의 글에서 명문을 대한 바 없고,

사내의 머리가 희어지고, 주머니가 빌 때면,

사내에겐 나누어줄 사랑의 몫도 없다더라. p89

 

여자에 등을 돌려야 알라 신을 돈독히 섬길 수 있고,

여자에게 고삐를 잡히는 사내는 물거품이 된 희망으로 벌금을 문다.

여자는 요상한 새 노리개를 찾을 때면 사내를 구박하게 마련이니,

사내는 하릴없는 학문에 천 년 세월을 허송 세월하는구나 ...... p89

 

...... 부왕이시여, 저는 부부 생활만은 결단코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차라리 죽음을 마시겠습니다. p89

 

부정적인 길을 따르는 영웅이나 여걸, 그리고 아시아 대륙의 이 두 예화에서 운명지워진 이 한 쌍의 결합을 오나성시키는데 깆거이 필요하다. 얼마를 기다려야 삶을 부정하는 마법을 깨울 힘이 생겨두 아버지의 분노를 삭일 수 있게 될까? p92

 

3 초자연적인 조력

소명을 거부하지 않은 모험 당사자는 영웅적인 편력 도중 첫번째 보호자를 만난다. 노파나 노인의 모습으로 자주 등장하는 이 보호자는 모험 당사자가 되는 용과 맞설 호부를 준다. p93

 

어디라고 특별히 가는 곳은 없고요, 그래서 이리로 온 것입니다. p94

 

영웅을 도와주는 노파나 요정 노파는 유럽의 민담에 자주 등장한다. 기독교의 성인전에서는 성모 마리아가 이 역할을 맡는다. p95

 

모험을 나선 당사자가 그것을 알고 그 존재를 믿기만 하면 시공을 초월한 안내자는 언제나 나타난다. 소명에 응답했고, 용기 있게 미지의 사건에 대한 체험을 경험해 왔기 때문에 영웅은 모든 무의식의 힘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인다. p96

 

나는, 미지의 종국으로 떠밀리는 느낌을 받고 있다. 내가 그곳에 이르는 순간, 내가 불필요하게 되는 순간, 나를 갈가리 찢는 데는 한 입자의 원자면 충분하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인류가 힘을 모두 합치더라도 나를 해칠 수 없을 것이다. p97

 

드물지 않게 초자연적인 외부 조력자는 형태상 남성으로 나타난다. 동화에서, 영웅에게 나타나 영웅에게 필요한 호부(액막이)를 주거나 충고를 해주는 것은 숲속의 난장이, 마법사, 은자, 목동, 혹은 대장장이인 것이 보통이다. 고급 신화에서는 이 역할을 맡는 조력자는 스승, 나룻배 사공, 영혼을 내세로 안내하는 안내자로 발전한다. 그리스 로마신화..헤르메스와 메르쿠리우스, 이집트의 토트신, 기독교 문화에서 성령. p97

 

4 첫 관문의 통과

자신을 안내하고 자신을 도와줄 운명을 인격화함으로써 영웅은 모험의 영역으로 한 걸음 들어가 이윽고 한 단계 어려운 영역의 입구에서 <관문의 수호자>르 만나기에 이른다. 이러한 수호자는, 영웅의 현재 상황, 혹은 삶의 지평의 한계를 상징하면서 사방에서 세계의 경계를 나타내고 있다. p105

 

뒤쪽에서 보면 보이지 않는, 위험한 외다리, 외팔, 반인 반수 괴물은 세계 여러 곳에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만약 사람에게 지면, 이 괴물은 「나를 죽이지마십시오. 의술을 가르쳐드리겠습니다」하고 애원한다. 이렇게 되면 이 괴물과 싸워 이긴 사람은 용한 의사가 된다. 그러나 이 반인 반수의 괴물이 이기면, 진 사람은 죽음을 당한다. p106

 

미지의 땅은 무의식의 내용물이 자유롭게 투사되는 무대다. 근친 상간 리비도와 부친 살해의 데스트루도는, 거기에서 폭력의 위협과 가공의 위험한 환희를 암시하는 형태로, 도깨비는 물론, 신비스러운 정도로 매혹적이고 향수를 유발할 정도로 아름다운 세이레네스(사이렌)으로 개인과 사회에 다시 투사된다. p107

 

그러나, 초자연적인 신부가 다 그렇듯이 남편이 혹 부부간에 마땅히 지켜야 하는 예절을 무시하고 변덕을 부리면 종적을 감추어버린다. p108

 

<오코주무 okojumu <꿈꾸는 자, 꿈을 통해서 말하는 자>라는 단어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동류들과는 달리 대단한 존경과 경외의 대상이 되고 있는 자를 일컫는다. 이들이 가진 초자연적인 능력은 정글에서나 꿈속에서 정령을 만나거나 죽음과 재생의 체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p111

 

오무기 태자는 다섯 차례의 공겨에 실패, 다섯 군데가 붙은 채 도깨비의 몸에 매달리게 되었다. 그런데도 태자는 놀라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한편, 도깨비는 도깨비대로 이런 생각을 했다. ... 젊은이여, 왜 두려워하지 않는가? 죽음이 목전에 이르렀는데 어찌해서 겁을 먹지 않는 것인가? ... 도깨비여, 왜 내가 두려워하겠는가? 태어나며 어차피 한번은 죽게 되어 있는데 두려워할 까닭이 없지 않은가? 더구나 내 뱃속에는 벼락이라는 무기가 하나 더 있다. 그대가 나를 먹는다고 하더라도 벼락은 삭이지 못할 것이다. p117

 

그가 자기 뱃속에 있다고 한 무기는 다름아닌 <지혜>라는 무기였다.

- 벼락 vajra은, 속세의 허망한 현실을 분쇄하는 부처의 영적인 힘(불멸의 깨달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불화에 자주 등장하는 중요한 상징의 하나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수메르와 아카드, 바빌로니아와 앗시리아)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신상도, 금강고와 같은 형태의 벼락을 쥔 모습을 보인다. 이것은 후일 제우스에게도 그대로 계승되었다. 우리가 알기로는, 원시적인 종족의 전사들도 종종 자기 무기를 벼락이라고 일컫는다. ... 자신의 기예를 완성한 대가에겐 물리적인 무기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즉 마법의 언어면 되는 경지가 있는 것이다. P118

 

우리가 오감으로 집착하고 있는 세계의 상징, 그리고 육체적인 어느 기관에 으해서는 벗어날 수 없는 세계의 상징인 그 도깨비는 미래의 부처가 덧없는 이름과 물리적인 성격의 다섯 가지 무기로 더 이상 자신을 지키지 못하고 최후의 수단으로 이름할 수 없고, 보이지도 않는 여섯 번째의 무기로 바꾸어 대항하자 조복한 것이다. 이 여섯 번째 무기가, 명(名)과 형(型)이라는 현상계 너머에 존재하는 초월적인 원리의 지혜라는 천상적 벼락인 것이다. 여기에서 상황은 일전한다. 태자에게 도깨비는 붙잡히는 것이 아니라 그 손에서 풀려난다. 이제 그는 영원히 자유로워진 것이다. 뿐만 아니다. 현상계의 마력이 무너지자 그는 자기를 부정하게 된다. 자기를 부정함으로써 그는 신이 된다. P119

 

태양 문을 통하여 번제의 연기가 피어오르듯이, 영웅은 자아에서 해방되어 세계의 벽을 통과하는 것이다. 자아는 끈끈이 터럭에 다 붙여두고 영웅은 제 갈길을 가는 것이다. P120

 

5 고래의 배

마법의 문턱을 넘는다는 것이, 곧 재생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거이라는 관념은,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고래의 배라는 자궁 이미자가 상징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P120

 

그리스의 모든 신들은 제우스의 아버지인 크로노스에게 삼켜지고 만다. ... 헤라클레스는 괴물의 목구멍으로 뛰어들어 닥치는 대로 배 안을 난자하여 마침내 괴물을 죽이고 말았다. 세계 도처에서 채집되는 이러한 모티프는, 관문의 통과가 자기적멸(自己寂滅)의 형태를 취한다는 교훈을 강조하고 있다. ... 여기서는 영웅이 외부로의 관문, 즉 가시적 세계의 한계를 넘는 대신, 다시 태어나기 위해 안으로 들어간다. 이 들어감은 신도가 신전 안으로 들어가는 것과 일치한다. 신도는 이 신전 안에서, 자신은 불멸의 존재가 아니라 티끌에 불과하다는 자기 정체를 깨닫게 된다. 신전 안, 고래의 배, 세계라는 한정된 공간 건너 위, 아래로 보이는 천상적 공간은 결국 하나다. ... 이러한 괴수들은, 한 차원 심화된 내적 침묵과 만날 준비가 되지 않는 자들을 지켜주는 관문의 수호자들이다. P123

 

그는 뱀이 허물로 싸여 있듯이 이 신전을 허물로 삼는다. 신전 안에서 신도는, 시간적으로는 이미 죽어 세계의 자궁, 세계의 배꼽, 지상의 낙원으로 돌아갔다는 암시를 받는 수도 있다. P123

 

세계 전역에서, 용을 죽임으로써 삶을 비옥하게 하는, 신비스러운 역할을 수행했던 사람들은 오시리스처럼 그 몸을 난자당하는 등, 세계를 개혁하는 위대한 상징적 행위까지 그 몸으로 짊어졌다. P124

 

희생제다. 프레이저가 지적했듯이 의식으로서의 국왕 가해는 고대 사회의 일반적인 관례였다. P125

 

제2장 입문

1 시련의 길

일단 관문을 통과한 영웅은 기묘할 정도로 유동적이고, 모호한 형태로 이루어진 꿈의 세계로 들어간다. p128

 

영웅은 거듭나는 데 필요한 충고와 호부(액막이), 그리고이 영역에 이르기전에 만났던 초자연적인 조력자의 밀사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p128

 

<어려운 임무>라는 모티프의 실례 가운데서도 가장 널리 알려져 있고 또 가장 매력적인 것은 잃어버린 애인 쿠피도(에로스)를 찾는 프쉬케의 경우일 것이다. p129

 

먼저 샤먼은 보호령들을 불러낸다. ... 그러다 별안간 샤먼은 난폭한 몸짓과 함께 부르짖기 시작한다. 「사슴을 준비하고, 배를 데어라!」p131

 

샤먼의 영혼은 육체를 떠나 신들이 사는 성산을 둘러보고 있다. 둘러앉아 있던 여자들은 서로 속삭인다. 샤면이 명계의 어디쯤에 가 있는지 알아맞히려고 하는 것이다. - 여자들은, 샤먼이 명계의 어디쯤에 있는지 알아맞히지 못하는 수도 있다. 이 경우에는 샤먼의 영혼은 육체로 되돌아오지 못한다. 혹 떠돌아다니는 샤먼의 적의 영혼이 싸움을 걸거나, 헛길로 안내하는 수도 있다. 실제로 샤먼의 영혼이 제 육체를 찾아오지 못한 경우도 많다고 한다. p131

 

샤먼은 어두운 숲과 험한 산악 지대를 방황한다. 이 숲과 산에는, 여기에서 죽은 다른 샤먼이나 동물의 뼈가 흩어져 있다. 샤먼은 한동안 방황하다 벌판으로 나선다. ... 사자의 왕국을 지키는 자들을 달래고, 수많은 위험이 도사린 곳을 지난 샤먼은 이윽고 명계의 왕인 에를릭을 만난다. ... 샤먼이 에를릭과 대화를 나누는 순간은 이 의식의 절정이면서도 가장 위험한 순간이기도 하다. 샤먼은 이 순간을 고비로 몽환에 빠져든다. p132

 

인간의 무리는 집단의 이상에 따라 행동하는 법인데, 이 집단의 이상이라는 것은 항상 유아기 상태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p132

 

이 유아기 상태란 성장의 과정이 진행됨에 따라 수정되고 역전되다가 현실에 적용될 필요가 있을 때 재수정된다. p133

 

주술사는, 그 사회 성인들의 심성에 내재하고 있는 상징적 환상 체계를 출몰시키는 역할을 는데 지나지 않는다. <주술사란, 이러한 유아적 놀이를 주도하고, 공통의 근심거리를 밝혀내는 지도자인 것이다. 그들은, 사회의 구성원들이 사방에서 성공하고 현실적인 어려움과 싸워 이길 수 있도록 잡귀와 대리전쟁을 치르는 것이다. p133

 

그 방의 벽과 벽 사이가 점점 좁아지다가 이윽고 꿈꾸는 사람은 꼼짝도 하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이미지는, 어머니의 자궁, 감옥 긜고 무덤의 이미지에 관련되어 있다. p138

 

이것이, 모든 신들과 악마들의 존재를 이성의 이름으로 부정한 <개화된> 현대인인 우리가 알고 있는 문제다.

- 융 박사는 이렇게 쓰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전(前) 세대 사람들이 모두 이런저런 형태의 신을 믿고 있었으니만큼 새삼스러운 문제가 아니다. 우리에게 심적 인자, 즉 무의식의 원형으로서의 신을 재발견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상징 체계의 철저한 붕괴뿐이다. .. 하늘은 우리를 위해 무리학자의 우주 공간이 되어주었고, 신이 사는 천상계는 과거지사르 돌이켜보는 추억의 장이 되어 주었다. 그러나 <마음은 자라고> 은밀한 불안은 우리 존재의 뿌리를 갉아먹고 있다> ... 문제는,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다. <그런데 앞서간 자들이 당한 시련도 겪지 않고 너희는 지복의 낙원에 들어가려 하느냐> p139

 

변형의 문을 지나는 통과의 주제를 다룬 신화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여신 이난나이 황천행을 다룬 수메르 신화일 것이다. ... 발가벗긴 채 이난나는 왕좌 앞으로 인도되었다. 이난나는 공손하게 절을 했다. 황천의 일곱 판관, 즉 아눈나키는 에레쉬키갈이 왕좌 앞에 앉아 죽음의 눈길로 이난나를 노려보았다.

그들의 말, 영혼을 고문하는 그들의 말에

병든 여인은 시체가 되었고

시체는 형틀에 달렸다.

 

수메르의 신화는 서구 세계에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수메르의 신화는 바빌로니아, 앗시리아, 페니키아 전통 및 성서 전통(회교와 기독교를 잉태시킨)의 근원인 동시에 켈트인, 그리스인, 로마인, 슬라브인, 독일인의 이교적 종교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p143

 

고대의 상징 체계에 따르면 빛과 어둠을 표상하는 자매, 즉 이난나와 에레쉬키갈은 두 얼굴의 한 여신이다. ... 영웅은 적대자를 발견하고 삼키거나 그에게 삼켜짐으로서 이 적대자(뜻박에도 그 자신의 자아)를 동화시킨다. 하나씩 하나씩 장애는 차례로 사라진다. 영웅은 자신의 자존심, 미덕, 아름다움, 삶을 팽개치고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이 적대자에게 절을 하거나 복종한다. 이윽고 영웅은 자신과 적대자가 사실은 둘이 아닌 하나임을 깨닫게 된다. p143

 

이제 영웅은 용을 죽여야 하고 몇 번이고 위험한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그 동안 영웅은 몇 차례의 예비적인 승리를 거두고, 일시적이긴 하나 무아의 경지를 체험하며, 이상향을 엿보게 된다. p143

 

2 여신과의 만남

아르테미스(디아나)가 젊은 사냥꾼 악타이온을 철저하게 파멸시킨 예는 정신과 육체의 차단된 욕망의 상징 안에 얼마나 엄청난 공포가 도사리고 있는지 확연히 보여준다. p148

 

이 신전에 모신 형상은, 무섭고도 자비로운 이 여신의 양면성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었다. 여신의 네 팔은 우주적 권능을 상징했다. 즉 위 왼손에는 피 묻은 칼을 들고 있었고 그 아래의 손은 참혹하게 잘린 인두(人頭)의 머리터럭을 거머쥐고 있었으며, 위의 오른손으로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손짓하고 있었고, 그 아래 손으로는 은혜를 나누어주고 있었다. 그 목에 걸린 목걸이는 인간의 머리를 꿴 것이었고, 치마는 인간의 팔을 짜맞춘 것이었다. 긴 혀는 피를 찾아 낼름거렸다. 이 여신은 다름안ㄴ, 절대 절멸의 공포와 비인격적이지만 모성적인 평화를 하나로 조화시키는 우주적인 권능, 우주의 전체성, 대립물의 조화였따. 시간의 강이 사람의 흐름으로 바뀌면 여신은 순식간에 창조하고, 보존하고, 파괴한다. 이 여신의 이름은 <검은 존재 the Black One>, 즉 칼리 Kali다. 별명은 <존재의 바다를 건네주는 나룻배>다. p152

 

악타이온은 성자가 아니었다. 정상적인 욕망이나, 놀라움이나, 공포에 반응하는 인간으로서 엿보아서는 안 될 계시에 대해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일개 사냥꾼에 지나지 않았다. p153

 

처음에는 그대 역시 이 몸을 추악하고, 야비하고, 욕지기가 나는 노파로 보았다가, 이윽고 아름다움을 보셨습니다. 왕도 또한 이와 같습니다. 왕도란 싸움 없이, 치열한 전쟁을 치르지 않고는 손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왕의 그릇은, 무슨 일이 있든지 이를 이기고 왕도를 가는 것입니다. p156

 

천상의 남편은 그녀에게 하강하여,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녀를 자기와 동침하게 한다. 만일 여자가 이 배우자를 싫어하면, 초자연적인 일이 일어나 근의 편견은 바로 잡히게 되고, 그녀가 바라던 존재라고 생각되는 경우 그녀의 욕망은 평화를 성취한다. p158

 

그리스 정교회와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는 성모 몽소 승천(聖母夢召昇天, Ths Assumption) 대축일에 이와 같은 비의(秘儀)를 치른다. 「성모 마리아는, 왕 중 왕이 번쩍이는 보좌에 앉아 있는 천상의 신방(新房)으로 올라간다」p159

 

3 유혹자로서의 여성

현대의 정신분석가 진료실에서는, 영웅 모험의 각 단계가 환자의 꿈과 환각을 통해 재조명되고 있다. 정신분석가는 조력자, 즉 입문식의 사제가 되어 환자의 무의식의 바닥의 깊이를 잰다. 그리고 최초의 단계가 끝나면 환자의 모험은 항상 어둡고, 무섭고, 욕지기나고, 마술 환등 속에서 보는 듯한 공포의 여행으로 진행되게 마련이다. p160

 

왕비를 차지했을 때 오이디프스가 맛보았던 순진한 기쁨이, 그 왕비의 정체를 알고부터는 심한 정신적 고뇌로 바뀐다. 햄릿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아버지의 도덕적 이미지로부터 공격을 받는다. p161

 

4 아버지와의 화해

「하느님의 분노의 활이 굽혀지고 시위에 화살이 걸렸습니다. 정의가 여러분 가슴에 살촉을 겨누고 시위를 당깁니다. 한순간 화살이 여러분의 피를 마시게 하는 것은, 약속도 아니고 은혜도 아닌 하느님의, 노한 하느님의 의지일 뿐입니다」P166

 

여러분은, 사악한 역신이 왕자에게 역모를 꾀한 것 이상으로 그분의 뜻을 거역했습니다. 이제 그분의 손이, 여러분을 저 불길로부터 지켜주실 아무런 이유도 없습니다..... 죄인들이여! 여러분은 하느님 분노의 불길이 이글거리는 곳에 걸린 한 가닥 가느다란 실에 달려 있습니다. 이 실은 언제 타버릴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명상에 뜻이 없습니다. P167

 

하느님 성령의 능력에 영혼을 의지하여 심정에 위대한 변화가 일어나게 하지 않는 여러분, 거듭나고 새 사람이 되어, 죄악의 구렁텅이로부터 새로운 상태로 일어서지 않는 여러분, 빛과 생명을 체험하지 않은 여러분은(허나 여러분은 많은 부분에서 삶을 개선하고, 종교적 열의를 가지고 있으며, 가족과 친척에게 종교의 형식을 권면하고 있고, 하느님 안에 거하고, 그 안에서 엄격하게 살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바로 이 하느님의 노하신 손 안에 있습니다. 이 순간 여러분을 저 영원한 파멸로부터 지키고 계시는 것은 바로 그분의 의지입니다. P168

 

대부분의 신화에서 자비와 은혜의 이미지는 정의와 분노로 표현된다. 이렇게 해서 이 정의와 분노 사이에 균형이 생기고, 인간은 파멸을 겪는 대신 어려움을 근근히 이겨나간다. 시바는, 신도 앞에서 우주적 파멸의 춤을 추면서도 손으로는 <두려워 말라>는 시늉을 한다. P168

 

「두려워 말라, 모두가 신 안에 거하리니 오고 가는 형상(그리고 육신 역시)은 춤추는 내 팔다리의 한순간 휘저음이다. 나를 아는데 무엇이 두려우랴?」P170

 

<화해 atonment>, 즉 <하나되기 at-one-ment>란 스스로 만들어낸 두 마리의 괴물(신-초자아)으로 보이는 용과 죄악으로 보이는 용을 포기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p170

 

영웅이, 조력자인 여성에게서 희망과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시련을 통해서다. 여성의 마법 덕분에 영웅은, 자아가 송두리째 흔들리게 하는 아버지의 무서운 입문 의식 경험으로부터 보호를 받는다. p171

 

「그래, 얘들은 내 아들이다」

쌍둥이가 나오자 태양이 말했다. 그러나 이 말 역시 책략이었다. p173

 

포이보스의 마차를 타고 가던 파에톤 여기 잠들다.

비록 실패했으되, 그 용기는 아주 가상하지 않은가.

자식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한 이 부모의 이야기는, 입문이 잘못 되었을 때 입문자의 삶에는 혼란이 올 수 있다는 옛사람들의 생각을 확인시켜 준다. ... 아버지는 아들에게 있어서 미래 세계의 상징이요, 딸에게 있어서는 미래 남편의 상징이다. p177

 

기독교 교회(타락과 구원, 십자가형과 부활, 세례를 통한 <거듭남>, 뺨을 치는 안수례의 입문의식,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상징적인 행위의 신화)를 통하여 우리는 엄숙하게, 때로는 효과적으로 입문의 권능을 비추는 이들 불사의 이미지에 합류한다. p186

 

<부정한 사람들에게 염소나 황소의 피와 암송아지의 재를 뿌려도 그 육체를 깨끗하게 하여 그들을 거룩하게 할 수 있다면, 하물며 성령을 통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흠없는 제물로 바치신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하는 데나, 죽음의 행실을 버리게 하고 살아 계신 하느님을 섬기게 하는 데 얼마나 큰 힘이 되겠습니까?> p186

 

비라코차는 만유의 신이며 만물의 창조자다. 그런데도 지구에 내린 그의 모습을 전하는 전설에는 그가 누더기 차림에 손가락질이나 받는 거지로 등장한다. 이 이야기는 베들레헴 여관 문전을 기웃거리는 마리아와 요셉, 그리고 바우키스와 필레몬의 문전에서 걸식하던 제우스와 헤르메스 이야기를 상기시킨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아프리카의 장난꾸러기 신 에드슈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것은 신화에서 우리가 자주 만나는 주제다. 「코란」은 <어디로 돌아서든, 거기엔 알라 신이 계시도다>라는 말로 이를 암시하고 있다. 힌두교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만물 속에 숨어 있어서 그 영혼이 빛을 발하지 않으나, 뛰어난 지력을 가진 명민한 자의 눈에는 보인다」

그노시스 파의 격언에 따르면 「지팡이를 쪼개어도 예수님이 거기 계신다」

따라서 비라코챠는 이런 식으로 자기가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음을 천명하면서 지고한 만유의 신들에 동참한다. p191

 

이 멋지게 각색이 된 페루 판(版) 만유의 신인 비라코차의 특징 가운데서도 가장 독특하고 감동적인 대목은, 비라코차 고유의 것인 저 눈물이다. 생수(生水)는 신의 눈물이다. 여기에서 <모든 생명은 슬프다>는 비관적인 어느 수도승의 통찰은, <과연 생명>이라고 찬탄하는 아버지의 낙관적인 확신 속으로 수렴된다. 자기 손이 창조한 생명의 고뇌를 익히 자각하고 혹심한 고통, 머리를 터뜨리는 듯한 미망의 불길, 자기가 창조한 자기 참해적이고, 쾌락적이고, 분노에 떨고 있는 우주를 생생하게 의식하는 이 신은 삶이 삶을 점화시키는 행위를 승인한다. 정액의 사출을 보류하는 것은 멸종을 초래할 뿐이다. 그러나 이를 사출하는 것은 우리가 아는 세계를 창조하기 위함이다. 시간의 본질은 유동하며, 한순간 존재하던 것의 흐름이다. 그리고 생명의 본질은 시간이다. 신의 자비, 시간이라는 양식에 대한 그의 애정을 통해, 이 데미우르고스(조물주)적 인간 중의 저 고해로 몸을 내맡긴다. 그러나 자기의 행위를 완전히 자각하고 있는 경우, 그가 사출하는 정액은 곧 그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다. p192

 

성서의 「욥기」에서, 하느님은, <완전하고, 진실하며,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악한 일을 거들떠보지 않는> 신실한 종의 사람됨을 굽어 보긴 커녕 오히려 그를 괴롭혔다. ... 욥에게 무슨 허물이 있길래 벌이 내린 게 아니겠느냐고 했다. 그러나 정직하고 용기가 있었으나 더할 나위없는 불행을 당한 욥은 자기에게 허물이 없다고 했다. 그러자 친구 엘리후는, 욥이 스스로를 하느님보다 더 공명정대하다는 것은 독신(瀆神)이라고 공격했다.

야훼는, 폭풍 속에서 욥에게 대답하면서도 자신이 한 일을 윤리적으로 변호할 생각은 없고, 욥에게 하늘에서 하는 식으로 땅에서도 해야 한다면서 자기 존재를 과장해서 말하기만 한다. p193

 

대장부답게 허리를 묶고 나서라. ...

네가 나의 판결을 뒤엎을 셈이냐?

너의 무죄함을 내세워 나를 죄인으로 몰 작정이냐? ...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내가 알아주리라

네가 자신의 힘으로 헤어날 수 있으리라고. p193

 

욥은, 끔직한 불가마 안에서 견디는 용기와 전지전능한 신의 성격에 대한 일반적 개념 앞에서 결코 파괴난 굴복당하지 않음으로써, 친구들을 만족시키는 것 이상의 위대한 계시에도 맞설 수 있음을 증명한 영웅이었다. p194

 

아들이 아버지를 알 나이가 되면 시련의 고뇌가 이미 그의 내부에 태동해 있다. 세상은 더 이상 눈물의 골짜기가 아닌, 행복이 기다리는 현존의 완전한 현현이다. p194

 

5 신격화

대승 불교에서 가장 영험이 있는 분으로 믿어지고 또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보살은 연꽃을 들고 다니는 관세음보살이다. 이분은 존재의 구렁텅이에 빠져 고통받고 있는 모든 지각 있는 중생을 가엾게 여긴다고 해서 관세음보살, 즉 <대자대비로 굽어보시는 주(主)>라고 불린다. p195

 

그는 팔이 둘인 인간의 모습을 비롯, 팔이 넷, 여섯, 열둘, 혹은 천 개인 초인간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왼손에는 늘 이 세상이라는 연화를 들고 있다. 부처 자신처럼, 이 신과 같은 존재는 인간적인 영웅이 마지막 무지의 공포를 초월하고 획득하는 신적인 상태의 한 본보기다. <의식의 외피가 벗겨져 나가, 모든 공포에서 자유로워지고 변화의 경계를 넘어서게 된> 상태다. p197

 

관음은, 범인과 현자에게 두루 신성한 존재다. 왜냐하면 관음이 세운 맹세에는, 세상을 구제하고 세상을 버티는 심오한 직관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간(결코 끝나지 않는)이 끝나는 순간까지 앞서서 잔잔한 영원의 강으로 뛰어들겠다는 각오로 열반의 문턱에서 걸음을 멈추었다는 것은, 겁(劫)과 찰나의 구별에 대한 자각을 표상한다. 합리적인 마음에 의해 자각된 이 구별은, 한 쌍의 대립물을 초월한 마음에 대한 완전한 지식 안에서 용해되어 버린다. ... 즉 영원의 보석이 탄생과 죽음의 연화 속에 들어 있다는, <옴 마니 밧메 훔>인 것이다. ... 신이 남성과 여성의 성격을 두루 갖추는 예는, 신화의 세계에서는 그리 생소하지 않다. ... 만상의 창조자이며 그릇인 주니 족의 최고신 아오나윌로나는 남성으로 지칭되는 때도 있긴 하나 사실은 양성적인 신이다. p198

 

2세기의 그노시스파 기독교인들의 기록이나, 중세 유태인 신비주의자들은 육(肉)으로 된 말씀 Word Made Flesh을 양성구유적으로 나타내고 있는데 여성적 측면의 이브가 형태를 얻기 전, 갓 창조된 아담의 상태가 바로 이와 같다는 것이다. p199

 

하느님은 <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셨다. 하느님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시되 남자와 여자도 지어> 내시었다. .. 즉 <찬양할지라, 거룩하신 이께서 첫 사람을 지어내실 때, 그를 양성으로 만드셨다> p199

 

낙원은 <대립적인 것이 공존 coincidence of opposite>하는 곳이었는데, 이제 인간은 이 낙원의 울타리에 의해 하느님에 대한 환상과 하느님의 형상에 대한 회상으로 단절되었다. 이것은 많은 나라에서 발견되는 신화에 대한 성서적 각색이다. 이 신화는 창조의 신비를 상징하는 기본적인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p200

 

눈먼 선견자 테이레시아스는 남성이자 여성이었다. ...

시바는 배우자인 샤크니와 한몸으로 결합된 채<반녀(半女)의 주(主)>라는 뜻인 아르다나리사로 현현한다. p200

 

종종 및 인종적 토템과, 공격적인 집단 행위를 겨냥한 제의는 사랑으로 증오를 정복하는 심리적 문제의 부분적인 해결책만을 나타낸다. 여기에서는 부분적으로밖에는 해결되지 않는다. 에고는 이러한 토템과 제식으로 소멸되지 않는다. 오히려 강화된다. 무리의 구성원들은 자기 자신의 문제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사회 전체에 헌신할 길을 모색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는 사이에 세계의 나머지 부분(그러니까 인류가 사는 세계의 대부분)은, 그 구성원들의 동정과 보호와는 상관없는 세계로 밀려난다. 왜냐하면 나머지 세계는 그들이 믿는 신의 보호권 밖으로 밀려난다. 왜냐하면 나머지 세계는 그들이 믿는 신의 보호권 밖으로 밀려나기 때문이다. 이어서 사랑과 증오의 두 원리가 서로 헤어지는 극적인 상황이 발생한다. p205

 

잘 들어라.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잘해 주고, 너희를 저주하는 사람들을 축복해 주어라, 그리고 너희를 학대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어라. 누가 빰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대 주고 누가 겉옷을 빼앗거든 속옷마저 내어주어라. 달라는 사람에게는 주고, 빼앗는 사람에게는 되받으려고 하지 마라.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 너희가 만일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한다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한다. 너희가 만일 자기한테 잘해 주는 사람에게만 잘해 준다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겠느냐? 죄인들도 그만큼은 한다. 너희가 만일 되받을 가망이 있는 사람에게만 꾸어준다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겠느냐? 죄인들도 고스란히 되받을 것을 알면서 꾸어준다. 그러나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남에게 좋은 일을 해주어라. 그리고 되받을 생각을 말고 꾸어주어라. 그러면 너희가 받을 상이 클 것이며, 너희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될 것이다. 그분은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인자하시다. 그러니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p206 「누가복음」6:27-36

존경하여 마지 않는 존 히긴슨 씨께

<웰커>호라는 배가 출항했습니다. 여기엔, 괴수인 불량배 두목 W. 편이라는 자를 위시해서 100명 이상의 <퀘이커 교도>를 자칭하는 이교적인 불평분자들이 타고 있습니다. 주 의회는 범선 <돌고래>호의 말라키 허스코트 선장에게 밀명을 내려 케이프 코드 부근에 잠복해 있다가 앞에서 말한 펜이라는 자와 이단적인 승무원들을 체포하여 주님께 영광 hffl고 이 신천지의 흙을 이단자들의 예배로 웃음거리가 되지 않게 하도록 조처했습니다. 개전의 정을 보이지 않는 악질을, 노예 값이 좋은 바르바도스로 데려가 럼주와 설탕으로 바꾸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이로서 우리는 사악한 자들을 벌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동시에 주님의 종과 주님의 백성까지 기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서기 1682년 주 안에서

코튼 마더

(Robert Phillips 교수에 의한 번각, American Government and Its Problems, Houghton Mifflin Company, 1941, and Dr. Karl Menninger, Love Against Hate, Harcourt, Brace and Company, 1942, p. 211)

 

여기서나 저기에서나 우리가 참으로 싸워야 할 전장은 지리적인 전장이 아니라 심리적인 전장임을 아는 사람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호멧교와 기독교 교리의 통속적, 정통적 표현은 하도 잔인해서 웬만큼 읽어가지고는 두 종교가 사랑의 실현을 겨냥하고 있음을 알아내기가 어렵다. p209

 

이것은 이슬람 밀교에도 알려져 있다. <30년간 위대한 신은 나의 거울이었는데 지금은 내가 내 거울이다. 말하자면 예전의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고 위대한 신은 그 자신의 거울이다. 요컨대 나는 나 자신의 거울이다. 신이 내 입으로 말하고 나는 사라졌기 때문이다.> p211

 

보살에 대한 첫 번째 경이로움은 바로 이것, 즉 보살이라는 존재의 양성구유적 성격이다. 이 보살과 만남으로써 분명히 신화의 대립적인 모험이 서로 만난다. 신화의 대립적인 모험이란 여신과의 만남, 그리고 아버지와의 화해다. 여신과의 만남의 과정에서, 입문자는 남성과 여성은 둘이 아니라 <쪼개진 완두의 두 쪽>임을 깨닫고, 아버지와의 화해과정에서는, 아버지는 성(性)을 선행하며, <그>라는 대명사는 말의 방편이고, 지도적 원리로 확립된 부자 관계의 신화는 말살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 두 번째 경이로움은, 보살이 삶과 삶으로부터 해탈의 차이를 없애고 있다는 사실이다. ... 열반이란 말은, <탐욕과 성내는 것과 어리석음이라는 세 겹의 불을 끈다>는 뜻이다. p213

 

nirvana라는 동사는 <분다>는 뜻이다. 그러나 불어서 이동시킨다는 뜻이 아니고, 불같은 것을 불어서 꺼버린다는 뜻이다. 기름을 따라 삶의 불길이 잠잠해지듯이, 마음이 제어되면 그 마음의 주인은 <열반의 평화>,<신 안에서의 자포자기>에 이른다. 평화에 도달하는 것은, 불길에다 기름을 끎음으로써 인데, 이를 달리는 <이해를 초월한다>고도 일컫는다. p213

 

독자들은 이미 혼의 역학에 대한 이 고대 신화적 이론이 현대 프로이트 학파의 주장과 흡사한 데 놀랐을 것이다. 프로이트 학파의 용어에 따르면, 삶의 욕망(불교의 <카마> 즉 <욕망>과 일치하는 <에로스> 혹은 <리비도>)과 죽음의 욕망(불교의 <마라>, 즉 <적의의 죽음>과 일치하는 <타나토스 Thanatos> 혹은 <데스트루도 Destrudo>는, 내부에서 인간을 움직일 뿐만 아니라, 주위 세계에 생기를 불어넣는 두 개의 추진력이다. p214

 

그렇다면, 환자를 소생시키는 치료의 현대적인 목적은 고대의 종교적 수련을 통해서도 달성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p216

 

삶에서 자유로워진 사람 Jivan mukta, 욕심이 없고 대자 대비하고 현명한 사람이 요가로 자아를 통일하고 만사 평등하게 보면 일체 만유 속에서 자아를 보고 자아 속에서 일체 만유를 본다. ..... 절대의 마음으로 만유 안에 있는 나를 우러러 섬기는 사람, 그런 사람은 세속의 삶이 어떠하든 신 안에서 사는 사람이다. p217

 

달마에게 청했다.

「좋아, 그러마, 너의 마음을 이리 가져오너라」

「그게 문젭니다, 찾을 수가 없습니다」

「너의 소원은 이루어졌다」p217

 

손님은 뜰길을 따라 들어와, 허리를 구부리고 문을 들어서야 한다. 이어서 그림이나 꽂꽂이, 소리를 내며 물이 끓고 있는 주전자에 예를 표하고 바닥에 정좌한다. 통제된 단순성에 의해 지배되는 극히 단순한 분위기는 신비스러운 아름다움 안에서 무한한 존재의 비밀을 안은 침묵으로 일관된다. p219

 

임제선의 비조 임제가 어릴 적에, 밖에 나가기가 무서워 법당 안에서 방뇨하자 스승이 몹시 꾸짖었다. 어째서 거룩한 부처님 계신 곳에서 방뇨하느냐는 꾸중을 듣자 임제가 되물었다. 「그럼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 곳을 일러주십시오. 거기에 가서 누겠습니다」 p222

 

벼락은 질서이자 영원성이며, 방울은 <교화된 마음>이다. 방울소리는 피조물 가운데서도 가장 순수한 정신을 가진 자들이 듣는 영원의 아름다운 소리다. 따라서 이 소리는 내면의 소리다. 실제로 이와 똑같은 방울은 기독교 미사에서 성별 선언의 능력을 통해 하느님이 빵과 포도주에 강림할 때 사용된다. 기독교도들이 읽는 의미도 동일하다. 즉 <말씀은 곧 육신이다>는 <보석이 연화 속에 있다, Om mani padme hum>인 것이다. p224

 

6 홍익(弘益)

개인적인 한계를 넘는 고통은 곧 전신의 성숙에 따른 고통이다. 예술, 문학, 신화, 그리고 밀교, 철학과 수련은 모두 인간이 자기 한계의 지평을 넘고 드넓은 자각의 영역으로 건너게 해주는 가교인 것이다. p249

 

제3장 귀환

1 귀환의 거부

근원을 투사함으로써, 혹은 남성이나 여성, 인간이나 동물로 화신한 자의 은혜를 입음으로써 영웅의 임무가 수행되었다고 하더라도 모험 당사자인 영웅은 아직 생을 역전시키는 전리품을 가지고 귀환하는 모험을 치러야 한다. 원질신화의 규준인 완전한 순환 체계는 영웅에게 지혜의 시문, 황금 양털, 혹은 잠자는 미녀를 인간의 왕국으로 데려오는 또 한 번의 수고를 시작할 것을 요구한다. 그래야 이 은혜가 사회, 국가, 그 천체, 아니면 일만 세계를 재생시키는 데 환원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웅이 이 책임을 회피한 예는 너무나 많다. p253

 

2 불가사의한 탈출

승리한 영웅이 여신이나 신의 축복을 획득하고, 그가 속한 사회를 구원할 불사약을 가지고원상 복귀할 대목이 되면, 영웅 모험의 이 최종단계에서 초자연적인 후원자에 의한 지원이 따르는 법이다. 그러나 만일 전리품이 그 수호자의 의지에 반한 상태에서 영웅의 손에 들어갔거나, 영웅의 귀환 의사가 신이나 악마의 찬성을 얻지 못할 경우에는 이 신화 주기의 마지막 단계에서는 격렬한, 때로는 익살스러운 추격전이 벌어진다. p257

 

교리의 상징의 유용한 기능은, 개인이 무턱대고 나서지 않는 한 신의 직접적인 체험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해 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집과 가족을 떠나 너무 오랫동안 혼자 방황하고, 심연의 거울을 너무 깊이 들여다보면, 이 무서운 만남 자체가 그에게 재앙일 수 있다. 그러나 수세기 동안 꽃피어 왔던 전통적인 상징 체계는 이때 영약으로 작용하여, 살아 있는 신의 치명적인 공격 무대를 교회라는 신성한 공간으로 바꿔놓을 수도 있다. p264

 

이자나기 신은 창조의 세계를 넘어 사멸의 세계로 한 발을 들여 놓았기 때문에, 이자나미는 오라버니이자 배우자인 그를 구해 주려 했던 것이었다. 이자나기는, 보아서는 안 될 것을 보는 순간 죽음의 실상을 알게 되고 말았다. 그러나 생의 의지로 충만해 있던 그는 바위를 들어 그 창조의 세계와 사멸의 세계를 막았다. 그때부터 이 바위는 우리의 눈과 무덤 사이에 존재하고 있다. p269

 

3 외부로부터의 구조

영웅은 외부의 지원을 빌려 초자연적 모험에서 귀환하는 수가 있다.... <세상을 버린 자가 이 땅에 다시 돌아오려 하겠는가? ‘거기’에 남아 있으려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어디에 있든지, 그가 살아 있는 한, 생명을 그를 부른다. 그가 속해 있던 모듬살이는 그 모듬살이를 떠나 있는 자를 질투하여, 영웅이 안주하고 있는 집 문을 두드리기 마련이다. p270

 

4 귀환 관문의 통과

두 세계, 곧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는, 삶과 죽음, 밤과 낮처럼 서로 다르다는 말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영웅은 우리가 아는 세계에서 암흑의 세계로 들어간다. ... 영웅의 귀환은, 그 저승에서의 귀환을 말한다. 이승과 저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하나의 세계다. 신화나 상징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는 바로 이것이다. 신들의 세계는 우리가 아는 세계의 잊혀진 부분이다. p281

 

그러나 정상 상태로 깨어 있는 의식의 관점에서 보면, 심층에서 솟아난 지혜와, 속세에서 유용한 분별 사이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모순이 존재한다. p281

 

수 많은 실패의 사례가, 이 삶을 확정하는 관문의 통과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실증하고 있다. 귀환하는 영웅이 당면하는 첫 번째 문제는, 성취의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체험을 겪은 이후에 덧없는 기쁨과 슬픔, 삶의 범용과 소란한 외설스러움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문제다. 왜 그런 세상으로 되돌아와야 할까? p282

 

힌두교도들은, 깊은 잠 속에서 자아는 통일되고 따라서 지복을 누린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깊은 잠을, 주관과 객관의 구별이 없는 <순지상태>라고 하는 것이다. p284

 

「나와의 결혼이 그 저주를 풀 수 있는 게 사실이라면, 내 어찌 그대 머리를 더 이상 돼지 머리로 둘 수 있으리오」p286

 

천국에서의 1년이 지상에서의 백 년에 해당한다는 등식은, 신화에 자주 등장하는 모티프다. 백 년이라는 주기는 전체성을 의미한다. 360도라는 원의 중심각도 전체성을 뜻한다. p288

 

그리고 라이든 병의 전기가 양도체와 접촉하는 경우에 방전하는 것처럼, 신성한 인물 속에 충만한 이 신성성, 주술력도, 훌륭한 양도체와 다름없는 대지와의 접촉으로 방전, 고갈되어 버린다고 믿는 것이다. 따라서 신성한 인물이나 터부가 되어 있는 인물은 이 신성성, 주술력이 방전, 고갈되지 않도록 땅과 접촉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p290

 

자기 모험을 완성하기 위해서, 귀환한 영웅은 세계의 충격을 견디어야 한다. p291

 

이런 이야기를 한 곳에 모아보면 일치하는 하나의 필연적인 공통분모가 엿보인다. 기억 속에서 자기 영혼의 다른 부분과 만났음을 상기시키는 신비스러운 반지는 영웅이 그곳에 간 적이 있음을 시사한다. p294

 

5 두 세계의 스승

우리는 립 반 윙클, 카마르 알 자만, 혹은 예수 그리스도가 실제로 존재했는지 여부에 대해 관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주의를 끄는 것은 그들의 <이야기>다. 더구나 이런 이야기는 세계 도처(수많은 영웅들과 함께)에 깔려 있기 때문에, 보편적 테마인 이러저러한 이야기가 역사적으로 실재했는지 여부는 부수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에서 역사성을 강조하면 혼란이 생길 뿐이다. 즉 암시적 메시지를 어지럽게 할 뿐인 것이다. p299

 

내재적이면서도 초월적인 우주를 상징하는 인물의 혈통 및 능력은, 의미론적이라기 보다는 다분히 역사적인 요소에 따라 결정된다. p304

 

상징이란 의미 소통의 <수레>에 부과하다. 상징은, 그 언급하는 바의 궁극적인 의미, 즉 <진로>로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매력적이고 또 인상적이라고 하더라도 상징이란 이해를 돕기 위한 편의적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p305

 

<때로는 바보로, 때로는 현자로, 때로는 왕관에 미친 자로, 때로는 방랑자로, 때로는 예언자처럼 부동하는 존재로, 때로는 자비로운 얼굴로, 때로는 귀인으로, 때로는 폐덕자로, 때로는 무명인으로.... 깨달은 자는 이런 상태에서도 지복의 극락을 산다. 무대 의상을 입고 있든, 벗고 있든 배우는 배우 이전의 그 자신이듯이, 불멸의 지혜를 깨친 자는 늘 그 불멸의 경지 안에 거한다. p307

 

6 삶의 자유

영웅이 불가사의한 여행을 끝내고 귀환한 결과는, 과연 무엇인가? 영웅이 지난 전장은, 모든 피조물이 다른 피조물의 희생으로 삶을 영위하는 삶의 현장을 상징한다. p307

 

신화의 목적은 개인의 의식과 우주적 의지를 화해시킴으로써 생명에 대한 그 같은 무지를 추방하는 데 있다. 이 목적은 덧없는 시간적 현상과, 삶과 죽음이 혼재하는 불멸의 삶과의 진정한 관계를 자각해야 달성이 가능하다. p308

 

<그러므로 애착을 떠나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행하라...... 너의 모든 일을 나에게 맡기고, 네 생각을 가장 높은 자아에 모으고, 원망과 이기심에서 벗어나되, 흐트러지지 말고 나가 싸우라.> 이러한 자각을 반듯이 세우고, 행동거지가 조용하고 자유로우며 그 손을 통해 비라코챠의 은혜가 흘러내리는 경지에 이르면 영웅은, 그 하는 짓이 백정이건, 방랑 시인이건, 왕이건 간에, 저 장엄한 법륜 의식할 수 있다. p308

 

제4장 열쇠

영웅의 모험은 ... 원래 살던 오두막이나 성에서 떠난 신화 속 영웅은 꾐에 빠지거나, 납치당하거나 자진해서 모험의 문턱에 이른다. 여기에서 영웅은 길을 안내할 그림자 같은 부정적인 존재를 만난다. 영웅은 이를 퇴치하거나 이 권능을 지닌 존재와 화해하여 산 채로 암흑의 왕국으로 들어가거나(골육상잔, 용과의 싸움: 제물헌납, 혹은 호부에 의지하여), 적대자의 손에 죽음을 당한다.(의절, 고난). 이 문턱을 넘어선 영웅은, 낯설면서도 이상하게 친숙한 힘에 이끌려 이 세계를 여행하는데, 경우에 따라 위협을 받기도 하고(시련), 초자연적인 도움을 받기도 한다(조력자) 신화적인 영역의 바닥에 다다르면, 영웅은 절대한 시험을 당하고, 그 시험을 이긴 보상을 받는다. 이 승리는 섹의 어머니인 여신과의 성적 결합(신성한 결혼),창조자인 아버지에 의한 인정(아버지와의 화해), 그 자신의 신격화, 혹은 적대적인 능력이 그의 힘에 벅찰 경우에는 전리품의 가로채기(신부 훔치기, 불 훔치기)로 나타난다. 원래 이 승리는 자기 의식의 확장이며, 존재와의 합일이다. (깨달음, 변모, 자유) 마지막 단계는, 귀환이다. 영웅이 그 권능의 축복을 받은 경우 전리품은 영웅을 보호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영웅은 도망치고, 부정적인 세력의 추격을 받는다.(모습을 바꾸며 도주하기, 장애물을 피하며 도주하기). 귀환의 관문에서 초월적인 권능의 소유자는 뒤에 남아야 한다. 영웅은 혼자서 그 무서운 왕국에서 귀환한다.(귀환, 부활) 그가 가져온 전리품(홍익)은 세상을 구원한다.(불사약) p317

 

오랜 세월에 걸쳐 마모와 손상의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신화나 옛 이야기의 윤곽은 원래 애매한 법이다. 고대의 흔적은 배제되거나 무시되는 게 보통이다. 유입되는 신화는, 이를 유입하는 지방의 풍경과 관습고 신앙에 따라 윤색되고 그 과정에서 이야기의 틀거리가 빗나가게 되기도 한다. p317

 

한 문화가 자기네 신화를 이런 식으로 번역할 때 그들의 삶은 고갈되고 그들의 사원은 박물관이 되며, 과거와 미래의 끈은 끊어지고 만다. 이러한 오류는 성경이나, 많은 기독교 의식에 대해서도 자행되어 왔다. 이러한 신화의 이미지를 생생하게 되살리려면, 이를 현대의 문제에 적용시키려 할 것이 아니라, 영감으로 살아 숨쉬던 과거의 형태로부터 함시를 읽어 내어야 한다. p320

 

예수의 말에는 ...의미가 분명히 나타나 있다.

「정말 잘 들어두어라. 누구든지 새로 나지 아니하면 아무도 하느님 나라를 볼 수 없다」

... 세례에 대한 일반의 해석은 <원죄를 씻는 의식>으로 되어 있다. 즉 재생이라는 측면보다는 정화의 의미가 강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부차적인 해석이다. 또 설혹 전통적인 탄생의 이미지가 기억되고 있다 해도 이에 선행하는 결혼은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신화적 상징은 그 함축적인 의미 그대로 계승되어야 한다. 즉 수천년에 거친 영혼의 모험을 유추에 의해 표상해 온 만큼 그 대응 관계의 전 체계를 섣불리 펼쳐보이기 이전에 그것이 지닌 모든 함축적 의미들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p322

 

제2부 우주 발생적 순환

제1장 유출

 

1 심리학에서 형이상학으로

다른 말로 하자면, 신화 체계란, 전기나 역사, 그리고 우주론으로 오독되어 온 심리학이다. p326

 

그러나... 먼저 신화가 꿈고 정확하게 대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신화와 꿈은 같은 근원(즉 환상이라는 무의식의 샘)에서 유래하고 그 문법도 동일하다. 그러나 이 신화가 수면의 산물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이 양자는 동일하지 않다. 오히려 신화의 패턴은 의식적으로 통제된다. 그리고 신화는 전통적인 지혜를 전달하기 위한 강력한 회화적 언어로 기능한다. 특히, 이른바 원시적인 민간 신화 체계의 기능이 바로 이것이다. p326

 

정신분석학자들은, 천국, 지옥, 신화적 시대, 올림포스 산 및 그 밖의 신들의 거처는 모두 무의식의 상징으로 해석한다. 따라서 현대의 심리학적 해석 체계의 열쇠는 바로 <형이상학적 영역=무의식>이라는 등식이다. 이 문을 여는 또 하나의 열쇠가 있다면 전후항을 바꾼, 즉 <무의식=형이상학적 영역>이라는 등식이다. <보아라, 하느님 나라는 바로 너희 가운데 있다>고 예수는 말했다. p331

 

우리가 우주적 능력의 근원은 보지 못하고 그 능력에서 투사된 현상계의 형태만 볼 수 있는 것은 의식이 응축되었기 때문인데, 이 의식의 응축 현상은 초의식을 무의식으로 바꾸어 놓는다. 그리고 동시에 같은 징표로서 세상을 창조한다. 구원은 초의식으로의 귀환과, 이에 따른 세상의 소멸에 있다. p331

 

영웅은, 살아 있을 동안에, 창조 과정 중에는 지각되지 않는 초의식의 요구를 알고 이를 대리하는 자다. p331

2 우주의 순환

개인의 의식이 잠이 들어 밤의 바다로 하강하고, 다시 거기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신화의 메타포에서도 우주는 시간을 초월한 배후에서 떠오르고, 원기를 회복하다 다시 소멸된다. p333

 

우주 발생적 순환은, 비현현의 숙면 영역에서 비롯, 꿈을 통하여 깨어나 있는 대낮, 긜고 다시 꿈을 통하여 시간을 초월한 어둠에 이르는 보편적 의식으리 통로로 이해되어야 한다. 살아 있는 존재의 일상적 실제 체험이나 살아 있는 우주의 광대한 양상은 같은 것이다. p339

 

중세의 히브리 신비주의 경전에서 우리는 이런 대목을 만난다.

오래된 이 중에서도 가장 오래되었고, 미지의 존재 중에서도 가장 미지의 존재인 그에겐 형상이 있되 형상이 없다. 그분은 우주를 보존하므로 형상이 있으나, 감지될 수 없다는 뜻에서 형상이 없다. p340

 

4 공간의 내부에서 - 생명

이 신비주의 경전은 창세기에서 아담이 이브를 만드는 대목을 주석하고 있다. 비슷한 사고방식은 플라톤의 ‘향연’에도 등장한다. 남녀간의 사랑의 신비에 따르면, 애정의 궁극적인 경험은 곧 이원성이라는 환상의 배후에 <둘은 곧 하나>라는 등식의 깨달음이 있다. 이 자각은, 우주의 만상은 하나라는 자각으로 확대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애정의 체험은 우주적 체험으로 확산되고, 이 자각에 이르게 한 애인은 창조의 거울로 확대된다. p357

 

5 하나에서 여럿으로

신화 속에서는 부동하는 원동력, 즉 살아 있는 전능자가 관심의 중심으로 떠오를 때마다 우주의 조형에 대한 초자연적인 자발성이 뒤따른다. p358

 

따라서 신화는 두 가지 양식으로 나뉜다. 하나의 양식에 따르면 조물주의 능력은 스스로 기능해 나간다. 다른 한 양식에 따르면, 조물주는 주도권을 포기하고 우주 순환의 다음 단계에서 등을 돌려 버린다. p358

 

이제 타네-마후타는 머리를 어머니 대지에다 파묻고, 발을 아버지 하늘에 버틴 태 있는 힘을 다해 등과 사지를 펴고 있다. ... 헤시오도스가 노래한 가이아(어머니 대지)로부터의 우라노스(아버지 하늘)의 분리는 이 신화의 그리스적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 변형판에 따르면, 거인 크로노스는 낫으로 아버지를 거세하고 밀어내어 버린 것으로 되어 있다. p360

 

이미르의 살에서 대지가 빚어졌고,

그의 땀은 바다가 되었다.

그의 뼈는 바위 산, 머리카락은 나무,

그 머리는 하늘이 되었다.

이어 그 뼈로 유쾌한 신들은,

인간의 자손을 위해 이승을 만들었고,

그 뇌수에서는 불길한 구름이 창조되었다. p362

여기에 신화의 근본적인 모순, 즉 이중 초점의 모순이 있다 우주 발생적 순환이 초기에 <신은 관여하지 않으나>, <신은 창조자이자 수호자이며 파괴자인>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가 여럿으로 나뉘는 이 결정적인 위기의 순간에 운명은 <우연히> 그러나 <성취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p365

 

6 창조의 민화

이 어리석음 뒤로는 단일한 원인(제 자신의 살을 찢는 둔한 자)이 세계의 이원적 결과(선과 악)의 틀에 그 자리를 양보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이야기란, 외양만큼은 순진하지 않다. 더구나 상어라는 플라톤적 원형의 형이상학적 선행 존재는 마지막 대화의 기묘한 논리에 함축되어 있다. 이것은 모든 신화에서 계승되어 내려오는 사고 방식이다. 우주 역시 악의 대리자인 반항자를, 광대의 역할로 조형해 낸다. p372

 

민간 신화들은 초자연적 발산물이 공간적 형식을 취해 돌입해 들어오는 순간에만 창조 설화를 흡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간신화들은 인간의 상황을 평가한다는 본질적인 점에 있어서 위대한 신화들과 차이가 없다. p373

 

제2장 처녀의 잉태

1 어머니 우주

힌두 신화에서 이 세계의 어머니는, 여성적인 형상으로 등장하는데 자아가 모든 피조물을 생성시키는 것은 이 여성적 형상을 통해서다. ... 그녀는 자가번식하는 절대자를 움직여 창조의 행위를 유발하는 유혹자인 것이다. 창조자의 부성적 측면보다는 모성적 측면을 강조하는 신화 체계에서 이 원초적 여성은 태초의 세계를 지배하면서, 남성에게 맡겨졌을 법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리고 이 원초적 여성은, 배우자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지의 존재이기 때문에 처녀다. p375

 

2 운명적 모태

우주적 여신은, 여러 가지 가면을 쓴 모습으로 인간에게 나타난다. 왜냐하면 창조의 결과란 다양하고 복잡한 데다, 창조된 세계의 관점에서 경험하 때면 상호 모순적이기 때문이다. 생명의 어머니는 동시에 죽음의 어머니다. 이 어머니는 기근과 질병이라는 추악한 마귀의 가면을 쓴다. p380

 

3 구세주를 낳는 자궁

이런 이야기는 도처에서 발견된다. 그 주제나 흐름이 어찌나 똑같았던지 초기의 기독교 선교사들은, 악마가 이 기독교 성경 이야기를 위작하여 도처에다 뿌려둔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생각까지 했다. p390

 

제3장 영웅의 변모

1 최초의 영웅과 인간

2 인간적인 영웅의 어린 시절

초기 우두사신의 문화 영웅은 자연계의 창조 능력을 타고 났다. 그의 형상이 초자연적인 것은 바로 그의 이런 능력 때문이었다. 그러나 인간적인 영웅은 후세 인간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기 위해 <하강>해야 한다. 그러나 전설을 만든 사람들은, 세계적으로 위대한 영웅들을 단순한 인간에 국한시키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 전설을 만든 사람들에겐 탄생의 순간, 심지어는 잉태의 순간에 영웅에게 초자연적인 능력을 부여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영웅의 생애는, 그의 모험을 절정으로 하는 엄청난 장관으로 그려진다. 이러한 관점은 영웅이란 성취되는 것이 아니고 운명지워진다는 관점과 일치한다. ... 가령, 예수는 엄격한 고행과 명상으로 지혜를 터득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가 하면, 인간의 모습을 취한 하강한 신이라고 믿어질 수도 있다. p400

 

신적인 존재란, 우리 모두의 내부에 있는, 전능한 자아의 계시다. 삶에 대한 묵상은, 따라서 정확한 모방에 이르는 전주곡으로서가 아니라 자기의 내재적인 신성에 대한 명상의 형태여야 한다. 말하자면 <이러저러하게 행동해서 선함을 얻는> 것이 아니고 <이를 앎으로써 신이 되는 것>이다. p400

 

영웅의 첫 번째 과업은 우주 발생적 순환의 그 전단계를 의식적으로 체험하는 것이다. 두 번째 과업은 심연에서 이상의 삶으로 귀환하여 조물주적 잠재력을 가진 인간적인 변환 자재자가 되는 것이다. p402

 

민담에는 추방을 당했거나, 신체가 온전하지 못한 자, 즉 버림받은 아들딸, 고아, 양자, 미운오리새끼, 혹은 미천한 종의 주제와 더불어 도망의 주제가 자주 등장한다. p408

 

신화는 그러한 체험을 견디고, 거기에서 살아나오는 데는 범상하지 않은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이런 이야기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대개가 힘이 세고, 영리하고, 또 지혜롭다. p410

 

유아기 이야기는 영웅의 귀환 혹은 그의 정체가 드러남으로 그 결론에 이른다. 즉 오랫동안 묻혀 지내던 영웅의 암흑기가 끝나고 그의 진정한 성격이 노출되는 것이다. 여기에도 상당한 위기가 따른다. 영웅의 권능이, 인간사회에서 소외, 축출을 야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 재난이 몰려온다. 그러나 재난이 지나가면 새로운 권능의 창조적 진가가 드러나고 세계는 다시 영광의 새 형상을 얻는다. p413

 

3 전사로서의 영웅

영웅이 탄생하는 곳, 혹은 영웅이 도피 또는 추방당했다가 보통 인간들 사이에서 성인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떠나오는, 머나먼 땅은 세계의 중심, 혹은 세계의 배꼽이다. 물결이 물밑의 바닥에서 번져나오듯, 우주의 형상도 이 근원에서 둥글게 퍼져나간다. p419

 

바로 이 배꼽에서, 영웅은 자기 운명을 자각하러 떠난다. 그의 장년기 행적은 세계에다 창조적인 힘을 쏟아 붓는다. p421

 

4 애인으로서의 영웅

적과 싸워서 장악하는 주도권, 괴물과 싸워서 획득하는 자유, 폭군의 족쇄에서 풀려난 에너지는 여성으로 상징된다. 이 여성은, 수 많은 용을 죽인 영웅의 애인이며, 질투심이 강한 아버지로부터 유괴되어 온 신부이며, 부정한 애인으로부터 구출된 처녀다. ... 처녀는, 영웅이 감옥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하는 영웅 자신의 운명의 이미지다. 그러나 영웅이 자기 운명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엉뚱한 사상에 현혹될 때, 영웅은 아무리 노력해도 장애물을 극복할 수 없다. p428

 

이 다채로운 쿠훌린의 모험에서, 가장 웅변적이고 가장 극적인 것은, 바퀴와 사과가 구르면서 영웅에게 내어주는 보이지 않는 특이한 길이다. 이것은 운명적인 기적의 상징이며 교훈으로 해독되어야 한다. ... <스스로 구르는 바퀴>인 사람 앞으로는 어려움이 비켜나고 뜻밖의 탄탄대로가 나타나는 법이다. p431

 

5 황제로서, 폭군으로서의 영웅

행동하는 영웅은 우주 순환의 주체이며 처음으로 이 세계를 움직였던 추진력을 생산한 사건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 그러나 다른 시각에서 보면, 영웅은 마땅히 지나야 할 관문을 지난 데 불과하다. p432

 

최고의 영웅이란 우주 발생적 순환의 원동력을 추진시키는 영웅이 아니라, 눈을 다시 뜨고서 오고 가며 기쁨과 고뇌가 교차되는 세계의 파노라마를 통해 하나의 실재가 다시 드러나게 된다는 것을 깨치는 영웅이다. ... 첫 번째 영웅의 특징적인 모험이 신부를 얻는 것이라면, 두 번째 영웅의 특징적 모험은 아버지를 찾으로 떠나는 것이다. 이 아버지는 곧 보이지 않는, 미지의 존재이다. p432

 

6 구세주로서의 영웅

아버지의 집에서는... 첫 번째단계에서 아들은 사자가 되어 귀환하지만, 두 번째 단계에서는 <나와 아버지는 결국 하나>라는 통찰과 함께 귀환한다. 이 두 번째의 보다 높은 자각에 이른 영웅은 구세주, 한 차원 높은 의미에서의 이른바 지고한 존재의 화신이다. 그들의 신화는 우주적인 조화를 지향하다. 그들의 언어는 권위의 홀장과 율법서의 영웅이 뱉어낸 어떤 말 이상의 권위를 갖는다.

 

영웅의 임무는, 아버지(용, 시험자, 무섭고 잔인한 왕)의 부정적인 측면을 살해하고, 우주의 자양이 될 생명의 에너지를 그 굴레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다. ... 실제로 용의 살해자와 용, 제관과 제물은, 뒤집어 보면 결국 하나다. 이 하나인 세계에서는, 대립물의 양극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신과 거인이 끊임없이 싸우는 세계는 이쪽 세계인 것이다. 어쨌든 용(아버지)은 어디에는 있다. p441

 

<죽음은 하나인가, 여럿인가>라는 질문에... 「그가 거기에 있는 한 그는 하나지만, 여기 자식들 안에 있을 때는 여럿이다」p441

 

골육상잔의 끔찍한 광경을 완화시키기 위해 전설은 아버지를 잔인한 숙부, 혹은 포악한 니므롯으로 출현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일 것은 보이고 만다. 결국 보이게 되면 한바탕 회오리바람이 인다. 아들은 아버지를 시해하지만, 결국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다. 수수께끼 같은 인물들은 원초적인 혼돈 속으로 해소된다. 이것이 바로 세계 종말 그리고 재개의 비밀이다.

 

7 성자로서의 영웅

토마스 아퀴나스는 잉크와 펜을 선반에 얹어버리고 『신학대전』의 마지막 장이 다른 손에 의해 완성되게 한다. 그는 이렇게 썼다. 「내가 쓰던 시대는 끝났다. 나는 나에게 계시된 것을 써왔고, 가르쳐왔지만, 내가 보기엔 참으로 하잘것없다. 이제 바라건데, 내가 가르치는 시대가 끝났듯이 내 삶 또한 그러하기를......」p443

 

제4장 소멸

1 소우주의 끝

나는 모든 피조물의 가슴 안에 있는 실재다. 나는 모든 존재의 시작이며, 중간이며, 끝이다.

이것은 바로 개인이 소멸되는 순간, 사자의 머리맡에서 들려주는 기도다. 즉 개인은 생전에 자기 가슴에 반영되어 있던, 세계를 창조하는 신에 대한 근원적인 깨달음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p458

 

2 대우주의 끝

개인이라는 창조된 형상이 결국은 소멸되고 말 듯이 우주 역시 소멸된다. p468

 

에필로그

1 변신 자재자

신화 체계는, <진실만 말하는 고대의 해신 프로테우스와 같다. ... 프로테우스로부터 배우기를 바라는 삶의 항해자는, 「그에게 바싹 달라붙어 그를 조여야 한다. 그러면 그는 온전한 형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 교활한 신은 아무리 재주 있는 질문자에게라도 그 질문자에게 자신의 지혜의 전부를 드러내는 법이 없다」p478

 

신화 체계는 현대의 석학들에 의해, 여러 가지로 정의되었다. 프레이저는 자연계를 설명하려는 원초적인 서툰 노력이라고 했고, 뮐러는 후세에 오인되고 있는, 선사 시대로부터의 시적 환상의 산물이라고 했으며, 뒤르켐은 개인을 집단에 귀속시키기 위한 비유적인 가르침의 보고라고 했고, 융은 인간의 심성 깊은 곳에 내재한 원형적 충동의 징후인 집단의 꿈이라고 했으며, 쿠마라스와미는 인간의 심오한 형이상학적 통찰을 담은 전통적인 그릇이라고 했고, 교회에서는 하느님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계시라고 정의했다. p478

 

신화가 무엇이냐는 관점이 아니라, 신화가 어떻게 기능하고 과거에 어떻게 인간에게 봉사해 왔으며, 오늘날 어떤 의미를 갖느냐는 관점에서 검토해 보면, 신화는, 삶 자체가 개인, 종족, 시대의 강박관념과 요구에 대해 부응하듯이, 신화 자체도 그에 부응할 것으로 비친다. p478

 

2 신화, 제의, 명상의 기능

개인은 한 구성요소일 수 있을 뿐이다. 개인은 이 집단으로부터 삶의 기술, 사유의 바탕인 언어, 삶의 자양인 이상을 빚졌다. p479

 

계절적인 축제가 통상, 자연을 통제하기 위한 주민들의 노력의 일환으로 해석되어 왔다. 이것은 어림없는 해석이다. 인간의 갖가지 행동, 특히 비구름을 부르고, 병을 낫게 하고, 홍수를 막는 주술적 의식에 통제의 의지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종교적인 제의의 가장 중요한 동기는 피할 길 없는 운명에 순종한다는 것이었다. p480

 

3. 내가 저자라면

 

힘들게 읽었다. 사실 책의 제목이나, 이전의 캠벨의 저작을 통해 많은 기대를 가진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솔직히 기대하고는 책의 구성이나 방향이 많이 달랐다. 이 책의 구성은 1부의 경우, 하나의 영웅이 소명을 받고, 입문하는 과정과 모험을 겪고 난 후에 귀환하는 일련의 과정-즉, 영웅이 탄생되는 과정을 기본 얼개로 구성하고자 하는 시도가 있었다. 차라리 좀 더 풍부한 신화의 이야기들을 소개하고, 구성하여 문학적인 차원의 해석으로 접근했더라면 하는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신화에 대한 관심이 늘어가고 있고, 웬만한 신화들의 이야기에 대한 대중들의 상식이 넓혀지고 있는 추세를 감안한다면, 그리고 더 나아가 작가가 신화 이야기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범인류적인 신화와 그에 복무하는 영웅의 탄생을 기대하는 목적에 맞게 좀 더 흥미진진한 구성도 가능했을 것이다.

 

특히, 2부 우주발생적 순환의 앞부분은 그 내용 자체도 매우 추상적이어서, 이해하기가 난해했다. 방송대담을 정리했던 ‘신화의 힘’이나 ‘신화와 인생’과 같은 다른 저작들과 비교해 볼 때 일반인들의 눈높이를 고려하지 못한 점이 매우 아쉽다.

그러나, 2부의 구성이 창조신화, 처녀수태 그리고 전형화된 영웅의 탄생과 성장과정에 대한 공통된 주제로 설정하여 접근한 것은 매우 흥미로운 시도였다. 다만, 지난 2천년을 지배해 온 기독교적 성서에 대한 좀 더 적극적인 분석들이 있었으면 싶었다. 특히,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대가 유일신에 기초한 배타주의로 인한 많은 문제가 비롯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수메르의 신화를 비롯하여 타 지역의 신화가 가지는 공통성과 기독교 신화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독자들로 하여금 매우 이성적인 사고와 판단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기회가 닿는다면, 신화에 대한 특히 기독교 신화에 대한 자유로운 해석을 해보고 싶다.

 

오타, 글의 흐름을 끊어 놓는 치명적인 오류다. 작가나 번역자의 인간적인 한계를 이해하는 것도 한 두 번이다. 벌써 세 번이 넘어가기 시작하면서, 특히 목차 등에서 보이는 실수는 책을 지어내기 위한 성의마저 의심하게 만든다.

 

주석의 배치와 구성 : 보통 주석은 인용문구의 출처를 밝히거나, 본문의 내용에 대한 좀 더 세부적인 보충설명을 하기 위해 붙여진다. 특히,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처럼 방대한 자료와 책에 대한 연구조사를 통해 정리되는 경우, 주석의 배치는 불가피한 장치로 보인다. 그런데, 이 책의 경우 주석의 구성이 너무 과다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면서, 큰 줄기기의 흐름을 샛길로 분산시키는 역기능을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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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10.04.27 03:12:04 *.129.207.200
진철형의 신화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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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ves saint laurent
2011.05.31 18:39:01 *.111.182.3
Wear your high heels in a sitting position and around the gianmarco lorenzi shoes home first. After a period of gianmarco lorenzi pumps time they will become comfortable and you gianmarco lorenzi boots will probably forget you are even wearing them.If you are giuseppe zanotti shoes planning to wear heels outdoors or at a club on the weekend, wear giuseppe zanotti boots them around the house for a few hours first until they feel natu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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