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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26일 09시 52분 등록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1. 저자에 대하여-캠벨의 저서와 영향을 준 사람들

조셉 캠벨 (Joseph Campbell, 1904 3. 26 미국 뉴욕 ~1987. 10. 31 호놀룰루)은 미국의 신화종교학자이자 비교신화학자로서 20세기 최고의 신화 해설자로 불렸고, 그의 일생을 '신화에 대한 연구'로 보낸 다양한 학문적 배경을 지녔으며, 경계가 높은 학문 사이를 거리낌 없이 넘나든 융합학자였다는 것은 지난번 신화와 인생과 신화의 힘 리뷰 때 밝혔다.


이번에는 그의 저서와 그에게 영향을 준 사람들에 대해 조사하였다.  


캠벨은 『신화의 힘』에서 마음에 드는 작가를 하나 붙잡고 그 작가 하나만 물고 늘어지라고 말했다. 자신의 마음에 든 작가의 작품은 모조리 읽고 그 작가가 읽은 것까지 모두 읽는다면 일정한 관점을 획득하게 되고, 그 획득하게 된 관점에 따라 또 다른 세상이 열리게 될 것이라고 충고하고 있다. 나도 그와 그를 인도한 학자, 작가들의 관점을 배우기 위해 그들을 간략히 조사했다.


 지금까지 신화와 인생, 신화의 힘,.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이렇게 3권을 읽은 캠벨의 저서에서 캠벨은 제임스 조이스, 토마스 만을 많이 언급하고 있었다. 캠벨은 이 두 사람과, 칼 융 등에 대해 깊이 연구하고 그들의 관점을 이해한 후 자신이 가진 독특한 사상을 얻게 된 것 같다.  칼 융은 다시 리뷰 할 기회가 있을 것 같아 여기서는 생략하고 여기서는 제임스 조이스와 토마스 만에 대해 조사하고 그들이 쓴 저서를 정리해 두고자 한다. 시간이 날 때 그들의 저서도 차례로 읽어 보기 위함이다. 


(1) 제임스 조이스(James Augustine Aloysius Joyce, 1882년 2월 2일~ 1941년 1월 13일)는 아일랜드 출신의 소설가, 시인, 극작가로 알려져 있다.

제임스 조이스는 1882년 더블린의 중심에서 남쪽으로 약 4Km 떨어진 라스가(Rathgar)의 브라이턴 서부 스퀘어 41번지에서 아버지 존 스태니스라우스 조이스(John Stanislaus Joyce)와 어머니 매리 제인 머래이(Mary Jane Murray)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정치에 관심이 높았으나 직업적으로 거의 사회 밑바닥을 전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리고 그의 어머니 매리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제임스를 포함하여 10명의 자녀들을 낳아 카톨릭 신앙에 따라 키우고자 노력하였다고 전한다.

그의 소설 《율리시즈》(1922)는 상당히 알려져 있고  논쟁적인 후속작 《피네간의 경야》(1939)과 단편인 《더블린 사람들》(1914), 반자전적 소설 《젊은 예술가의 초상》(1916) 등의 작품이 유명하다.  태어나 자란 후 아일랜드를 더나 대부분의 삶을 아일랜드 밖에서 보냈지만, 그의 정신적 가상적 세계는 그의 고향인 더블린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어 그의 소설의 주제와 설정의 많은 부분을 제공해 주었다고 전해진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수법으로 쓴 심리묘사가 작품 전체를 흐르고 있어서 캠벨에게 영향을 준 듯하다,  


        대표저서 

실내악 (Chamber Music, 1907년): 시

더블린 사람들 (Dubliners, 1914년): 소설

망명자 (Exile, 1915년): 극

젊은 예술가의 초상 (A Portrait of the Artist as a Young Man, 1916년): 소설

율리시즈 (Ulysses, 1922년): 소설

피네간의 경야 (Finnegans Wake, 1939년): 소설


 한국어로 번역된 주요 저서

김종건 역, [더블린 사람들] 범우사, 1988.

김종건 역, [젊은 예술가의 초상] 범우사, 1988.

김종건 역, [율리시즈] 범우사, 1988.

이상옥 역, [젊은 예술가의 초상] 민음사, 2004.

변재길, [차이와 모호성의 정치학: 율리시즈와 탈 식민문화담론] 세종출판사, 1999.


(2) 토마스 만(Thomas Mann, 1875년 6월 6일, 독일 뤼베크 -1955년 8월 12일 스위스) 은 독일의 평론가이자 소설가이다. 1929년 노벨상을 받았다.

토마스 만의 형은 급직적인 작가 Heinrich Mann 이다. 그리고 6명의 자식 중 3명인 Erika Mann, Klaus Mann, Golo Mann들도 또한 독일의 중요한 작가로 성장했다.

히틀러가 1933년 집권했을 당시, 반파시즘이었던 토마스만은 스위스로 건너갔다. 세계 2차대전이 1939년 발발 했을 때, 그는 미국으로 건너갔다.

        대표저서

꼬마 프리데만 씨 (Der kleine Herr Friedmann) (1898년)

부덴브로크가(家)》(Buddenbrooks) (1901년): 토마스 만과 그의 형인 소설가 하인리히 만(Heinrich Mann)의 출생지인 북독일 뤼벡의 한 상인 가문의 가족사이다.

토니오 크뢰거 (Tonio Kröger) (1903년)

대공전하 (Königliche Hoheit) (1909년)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Der Tod in Venedig) (1912년)

마의 산 (Der Zauberberg) (1924년)

요셉과 그의 형제들 (Joseph und seine Brüder) (1933년-43년)

Das Problem der Freiheit (1937년)

바이마르의 로테 (Lotte in Weimar) (1939년)

Die vertauschten Köpfe - Eine indische Legende (1940년)

파우스투스 박사 (Doktor Faustus) (1947년)

거룩한 죄인 (Der Erwählte) (1951년)

사기꾼 펠릭스 크룰의 고백 (Bekenntnisse des Hochstaplers Felix Krull. Der Memoiren erster Teil) (1922년/1954년)

그 외 캠벨과 교류한 학자 중 캠벨에게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는 사람 중 콜롬비아 대학의 인도학 교수였던 하인리히 침머가 있는데 그와의 만남은 캠벨의 신화연구가 세상과 본격적으로 만나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캠벨은 1924년 융 학파가 주도하는 볼링겐 시리즈의 편집자가 되어, 인도 예술과 신화에 관한 침머의 연구들을 편집하였다. 그가 융의 이론과 무관한 저서를 출판했다면 볼링겐 시리즈의 편집자가 되지 못했을 것이고, 이 책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도 다른 출판사에서 출판했을 텐데, 다행히 1944년부터 집필하기 시작한 대표작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은 1949년, 볼링켄 시리즈의 하나로 출판되어 국립예술문자협회에서 주는 상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그는 『에러노스 연감 회보』의 편집자로서 스위스에서 칼 융, 미르치아 엘리아데, D.T 스즈키 등을 만나게 된후 그들과 교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 중 대표작으로 인정받는 책은 『신의 가면』『신화의 힘』『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등이다. 총 4부로 9년에 걸쳐 저술한 『신화의 가면』은 모든 문화권 신화를 두루 연결하는 신화의 원형을 찾아내고자 노력했던 캠벨의 주작이고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은 바로 주저의 서곡이라고 한다.

그의 저서를 살펴보면

『신의 가면』(4부작(1959-1968) 『신화와 함께 살기』 『신화의 세계』 『세계의 영웅 신화』 『야생 수거위의 비행 Flight of the Wild Gander』(1969),  『신화적 이미지 The Mythic Image』(1974)  『네가 바로 그것이다』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신화의 힘』 『동물적인 힘의 양상 The Way of the Animal Powers 』『신화·꿈·종교 Myths, Dreams, and Religion』 『신화와 함께 하는 삶』(1972)  『현대인을 위한 신화』  『신화와 인생 』 등이 있는데 차례로 한번 정도 읽어볼만할 것 같다.


시간이 될 때 그의 저서 전체와 그를 이끌고 간 다른 작가, 학자들의 저서를 차례로 읽고 그의 사상의 변천 과정을 이해한다면 우리 역시 하나의 관점으로 세상을 비평할 수 있을 자신만의 무기가 생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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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머리말


[P. 5]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이렇게 쓰고 있다. 

<종교 교의에 녹아들어 있는 진리는 대개가 변형된 데다 체계적으로 위장되어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진리로 알아보지 못한다.......................>

[P. 6] 이책의 목적은 종교와 신화의  형태로 가려져 있는 진리를 밝히되, 비근한  실례를 잇대어 비교함으로써 옛 뜻이 스스로 드러나게 하는 데 있다. 옛 현자들은 말을 하되 언외(言外)의 뜻을 거기에다 실는 데 소홀함이 없었다.  

[P. 6]다음, 단계는, 세계 각처에서 채집된 신화와 민간 전설을 한곳에 모아놓고 상징으로 하여금 스스로 입을 열게 하는 일일 듯하다. 이렇게 모아놓고 보면 그 유사성이 한눈에 두드러져 보이고,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이 이 땅에 살면서 오랜 세월 삶의 길잡이로 삼아온, 방대하면서도 놀라우리만치 일정한 상태로 보존된, 바탕 되는 진리와 만나게 된다.
[P. 6] 많은 신화나 인류의 종교가 서로 다르다는 것은 두말항 필요도 없다. 그러나 이책이 다루는 것은 상사성이지 상이성은 아니다. 일단 이런 상사성을 이해하면 상이성은 일반적으로(그리고 정치적으로) 믿어지는 정도만큼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리라 믿는다.

[P. 6] 이러한 저자의 비교 해석이 이 세계의 통합을 결실시키려는 작품의 경향에 대해, 종교적 혹은 정치적 제국의 이름으로서가 아닌, 인류의 상호 이해라는 측면에서 그리 초라하지 않은 하나의 기폭제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P. 6-7] 베다 경은, <진리는 하나 되, 현자는 여러 이름으로 이를 드러낸다.>고 했다.


프롤로그

원질신화 The Monomyth
[P. 13] 즉 변화 무쌍한 듯하지만 실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만나는 이야기의 일정한 패턴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런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도전적이리만치 끈질긴 암시를 던진다. 말하자면, 아무리 읽고 들어도 이런 이야기는 결코 끝나는 법이 없다는 암시다.
[P. 14] 어느 시대, 어떤 상황을 막론하고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디에서든 인간의 신화에는 끊임없이 살이 붙어왔고, 이러한 신화는 인간의 육체와 정신의 활동에서 나타날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해 살아있는 영감을 불어넣었다. 신화는, 다함없는 우주 에너지가 인류의 문화로 발로하는 은밀한 통로라고 말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P. 14] 신화의 상징은 영혼의 부단한 생산물인데, 이 하나하나의 상징 속에는 그 바탕의 근원적 힘이 고스란히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P. 16] 인간은 너무 빨리 모태를 떠난다. 미완성인 상태, 세상과 맞설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태어나는 것이다. 당연히 위함으로부터 이들을 지켜주는 방벽은 어머니이고, 이 어머니의 보호아래 자궁 내 체제기간 intra-uterine period은 연장된다.

[P. 17] 따라서 유아가 최초로 적의를 갖는 대상은 최초로 애정을 투사하는 대상과 일치하고, 유아가 최초로 갖는 이상은(이때부터 유아는 축복, 진리, 아름다움, 완전함이라는 이미지를 무의식 기저에다 간직한다)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Madonna and Bambino라는 이원일체 상황이다.
[P. 22] 참으로 놀라운 것은, 상당수의 제의적 사련과 이미지가, 정신분석을 의뢰한 환자가 유아기 고착상태를 떨치고 미래를 향해 발돋움을 시작하는 순간 꿈에 나타나는 이미지와 일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P. 23] 신화와 제의의 주요 기능은, 과거에다 묶어두려는 경향이 있는 인간의 끊임없는 환상에 대응하여 인간의 정신을 향상시키는 데 필요한 상징을 공급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 내부에 있는 타락의 길을 버리고 영험적인 정신의 도움을 따르게 하는 우리 내부의 고착적인 신경증인지도 모르겠다.
[P. 24] C. G. 융은 후반부의 위기를 강조했다, 즉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이빛나는 태양이 마침내 그 고도를 떨어뜨리고 무덤이라고 하는 밤의 자궁 속으로 사라지기 위해 꺾어야 하는 시기를 말한다.

[P. 24-25] 우리의 욕망과 공포의 정상적인 상징이 인생의 오후에 해당하는 이 시기에는 반대되는 것으로 전화(轉化)한다. 왜 그런가 하면 이 시기에 도전해 오는 것은 삶이 아니라 죽음이기 때문이다,
[P. 27] 전통적인 통과 제의가 개인에게 과거를 향해서는 죽고 미래를 향해서는 거듭 날 것을 가르쳤듯이, 저 왕위 서임 의식(敍任儀式)은 그의 개인적인 성격을 벗기고 신명(神命)이라는 망토를 입혀주었다. 이것은 장인(匠人)에게나 왕에게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제의를 거부하는 신성 모독 행위로 개인은 사회라고 하는 거대한 조직으로부터 하나의 단위로 떨어져 나오게 되었다.
[P.29] 영웅이란, 스스로의 힘으로 복종(자기 극복)의 기술을 완성한 인간이다. 그렇다면 무엇에 대한 복종인가? 이것은 바로 오늘날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하는 수수께끼이며, 영웅의 바탕되는 미덕과 역사적 행위가 풀었어야 하는 문제다.
[P.29]  오직 탄생(낡은 것의 새로운 태어남이 아닌, 새로운 것은 탄생)만이 죽음을 정복할 수 있다. 죽음의 끈질긴 재현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영혼의 내부에, 사회적인 무리의 내부에 끊임없는 <탄생의 재현 palingenesia>(우리가 이 땅에서 오래 잔존하게 되어 있다면)이 있어야 한다.
[P.29] 파멸은 우리 미덕의 껍질부터  깰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평화는 올가미다. 전쟁은 올가미다. 변화도 올가미이며, 항구 불변성이라는 것도 올가미다. 죽음이 승리하는 날이 오면 죽음이 다가 온다. 그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십자가에 달렸다가 부활하는 길뿐, 갈가리 해체되었다가 재생하는 길뿐이다.

 [P. 30] 우리는 더 높이 솟아야 한다. 우리 자신은 물론, 우리 세대, 나아가서는 우리의 문명 시대가 잊어버리고 있던 것들을 얼마간이라도 건져올릴 수 있다면 우리는 저 위대한 천품(天品)의 시혜자(施惠者), 시대의 문화 영웅(한 나라뿐만이 아닌 세계 역사상의 귀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영웅이 첫 단계에서 하는 일은, 하찮은 세상이라는 무대로부터 진장한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는, 심성의 인과(因果)가 시작되는 곳으로 물러앉는 일이다. 그리고 영웅은 난관을 헤쳐나가되 자기 식으로 그 난관의 뿌리를 뽑고(즉 자기가 속한 문화권의 유아기 악마에게 싸움을 걸고) 한달음에 쳐들어가 C.G. 융의 소위 원형심상(原型心象, Archeypal imanges)과의 동화작용을 시도한다.

[P. 32]힌두와 불교 철학에서는 이 과정을 <비베카, viveka>, 즉 분리discrimination의 과정이라고 한다. 
[P. 32] 우리가 찾고, 동화(同化)해 나아가야 할 원형은, 인류 문화의 연대기를 통해 제의, 신화, 그리고 상상력의 기본적인 이미지를 촉발해 온 기폭제다.
[P. 33] 꿈은 인격화한 신화고 신화는 보편화된 꿈이며, 꿈과 신화는 상징적이되, 정신 역학의 동일한 일반적 시각에서 보아 그렇다. 그러나 신화에서는 문제와 해결책이 모든 인류에게 직접 뚜렷이 제시되는 데 견주어, 꿈속에서는 꿈꾸는 사람이 안고 있는 문제에 따라 내용이 달라진다.
[P. 33] 따라서 영웅은 과거 개인적, 지방의 역사적 제약과 싸워 이것을 보편적으로 타당하고 정상의 인간적인 형태로 환원시킬 수 있었던 남자나 여자를 일컫는다, 그런 사람의 상상력과 이상과 영감은 태고적부터 인간의 생병과 사상의 원천에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영웅은, 현재의 붕괴되어 가는 사회나 정신에 대해서가 아니라 사회 재생의 심원한 원리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한다. 영웅은  현대인으로 죽었지만 영원한 인간(완전하게 되되, 특이하지 않은 우주적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따라서 두 번째 엄숙한 과업과 행위는(토인비기 주장하고, 인류의 모든 신화가 보여 주듯이)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재생의 삶에 대해 그가 배운 바를 가르쳐주는 것이다.
[P. 34] 우리는 어둡고 궂은 길을 가야 마침내 평화의 강, 혹은 우리 영혼의 목적지로 통하는 탄탄대로를 발견하게 되는 모양이지요.
[P. 35-36] 이 책에서 우리는 수백 가지로 굴절된 모티프와 만나게 된다. 처음에는 입구가 보이는 하수도, 그다음에는 풀 위로 흐르는 맑은 강의 횡단, 결정적인 순간의 조력자 출연, 강줄기 건너편에 있는, 높고 탄탄한 땅(요단 강 건너편에 있는 지상의 낙원) ..........., 이 모든 것은 영혼의 고귀한 모험을 다룬 경탄할 말한 노래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주제다. 은밀한 부름에  귀를 기울이거, 그 길을 따르려 했던 사람들은 모두 위험하고 외로운 황단여행 즉,  건너기 어려운 날카로운 칼날 시인은 오래했거니, 이것이 험로라고

[P. 36] 꿈꾸는 사람은 조그만 상자의 도움을 받아 강을 건넌다. 이 꿈에서 이 상자는 전마선이나 다리 이상의 역할을 해낸다.

[P. 36]꿈꾸는 사람이 더 이상언급하고 있지 않아서 그 상자의 내용물이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판도라 상자의 일종잉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을 듯 하다.    

[P. 36-37] 이 안에는  존재의 고통과 축복의 씨앗뿐만 아니라 미덕과 희망까지도 들어있다. 이 상자의 도움으로 꿈꾸는 사람은 강을 건너 반대편 강 언덕에 이른다. 가ㅓ기서 기적 같은 일을 통하여, 극히 어렵고 위험한 작업인 자아 발견과 자아 발전을 꾀하는 모든 사람들은 생명의 바다 건너편에 정박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P. 37] 아무리 맹세하고 서원해도 절망적일 수 밖에 없는 사람이란, 내부의 소명도 외부의 교리도 모르는 사람이다.

[P.39]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비슷하다. 불행한 가정은 각기 그 나름의 이유로 불행하다.>
[P.40] <연민이란, 인간의 고통 중 엄숙하고 부단한 것에 마음을 빼앗기게 하고, 이를 고통받는 사람과 하나가 되게 하는 감정이다. 공포는 인간의 고통 중 엄숙하고 부단한 것에 마음을 빼앗기게 하고, 이를 보이지 않는 원인과 하나가 되게 하는 감정이다.>
[P.41] 현대 문학은 우리들 앞에, 우리들 주위에, 우리들 내부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참담하게 부서진 형체를 직시할 용기와 눈길을 부여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P. 42] 이 모든 것에 비추어보면 우리가 우리가 성취한 보잘것 없는 이야기는 얼마나 초라하고 눈물겨운가. 우리는 실패와, 상실과, 환멸과, 낸소적 무위의 쓰라림이 이세상의 선망받는 자들의 피를 말린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P.42] 동화, 신화, 그리고 영혼의 신곡에 나오는 해피엔딩은 모순이 아닌 인간의 보편적 비극의 초절성(超絶性)으로 읽히어야 한다. 객관적 세계는 과거의 형태 그대로이나 주관이 강조되면서부터는 변형된 것으로 보인다.
[P. 43] 모든 것은 변하고 있으나, 아무것도 죽지는 않는다. 영혼의 여기저기를 방황하다 마음에 다는 뼈대를 취한다........ 따라서 한번 존재한 것은 다시 존재하지 않고,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존재하게 되니, 모든 운행의 주기는 반복한다.
[P. 43-44] 따라서 중요한 것은 이 땅 위에서 이러저러한 일이 있을 수 있었다는 것이 아니고, 이 땅에 이러저러한 일이 있기 전에 보다 중요하고 보다 본질적인 것이, 우리가 알고 있고 더러 꿈속에서 찾아가기도 하는 미궁 안에서 일어났어야 했다는 것이다. 신화적 영웅의 길은, 부수적으로는 지상적(地上的)일지 모르나, 근원적으로는 내적인 길이다. 즉 보이지 않는 저지선이 뚫리고, 오래 전에 잊혀졌던 힘이 다시 솟아 세계의 변용에 기여하게 되는 그런 심연으로 뚫린 길인 것이다. 이러한 영웅의 행위가 완성되면, 삶은 더 이상 도처에 도사린 재앙의 가혹한 단죄와 시간에 의한 마손(磨損)이나 막막한 공간의 두려움 앞에서 무방비 상태로 고통받는 일이 없게 된다.  
[P. 44-45] 즉, 영웅은 일상적인 삶의 세계에서 초자연적인 경이의 세계로 떠나고 여기에서 엄청난 세력과 만나고, 결국은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고 영웅은 이 신비스러운 모험에서, 동료들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힘을 얻어 현실 세계로 돌아오는 것이다.
[P. 50] 영웅의 모험은 위에서 말한 핵 단위의 패턴, 다시 말하면, 세계로부터의 분리, 힘의 원천에 대한 통찰, 그리고 황홀한 귀향의 패턴으로 이루어진다.
[P.50] 장소가 어디 건, 그들의 관심(종교적, 정치적, 혹은 개인적)이 어디에 있건 진정한 창조 행위는 죽어가는 것으로부터 세상으로 무엇인가를 가져오는 행위로 표현되며, 영웅의 부재중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가 거듭난 자, 위대한 자, 창조력을 얻어 돌아오는 자로 만들기 위해서는 인류 역시 한 목소리가 된다.  따라서 이러한 이야기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다시 한번 확인하기 위해서는 보편적인 모험의 고전적인 단계를 두루 꿰는. 수많은 영웅작인 인물을 따라가 보아야 할 듯이다. 이러한 작업은 당대(當代)의 삶과 관련된 이미지의 의미뿐만 아니라 야망, 권력, 영고 성쇠, 그리고 지혜로서의 인류 정신의 단일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리라 믿는다. 

[P. 52] 그가 지닌 힘의 불균형이 부작용을 일으켜, 프로메테우스가 자기의 불경스러운 무의식이라는 바위에 갇혔듯이, 내-외적인 시련을 당하게 된다. 

[P. 53] 보잘것없는 영웅이든, 탁월한 영웅이든, 그리스 영웅이든, 야만족의 영웅이든, 이방인의 영웅이든, 유태족의 영웅이든, 영웅의 행장(行狀)은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P. 54] 영웅이 애써 찾아다니고 위기를 넘기면서 얻어낸 신적(神的)인 권능은 처음부터 영웅의 내부에 있었던 것으로 드러난다.
[P. 54] 이런 시각에서 보면 영웅은, 우리 모두가 내장하고 있되 오직 우리가 이 존재를 발견하고 육화(肉化)시킬 때를 기다리는 신의 창조적, 구원적 이미지의 상징이다.
[P. 55] 나는 너고, 너는 나다. 네가 어디로 가건 나는 거기에 있다. 나는 없는 곳이 없으니, 원하면 언제든지 나를 찾으라. 나를 찾는 것은 곧 너를 찾음이다.

[P. 61] 게다가 도처에는 독특한 성역이 있다. 영웅이 태어났고, 역사했고, 무(無)로 돌아간 곳이면 어디든 표자가 서 있고 성역화되어 있다.
[P. 62] 헤라클레이토스는 이르기를, <신에게는 모든 것이 공정하고 선하고, 정당하지만 인간은 어떤 것을 그르다고 하고, 어떤 것을 옳다고 한다>고 했다. 세계이 사원에서 섬김을 받는 대상은 늘 아름다운 것도, 늘 자비로운 것도 아니며, 덕이 높을 필요도 없다.
[P. 62] 닮지 않은 것이 상합하고, 서로 다른 것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화가 이루어지며, 모든 것은 다툼에 의해 생겨난다.


제1부 영웅의 모험

1. 출발 Departure

1. 영웅에의 소명
[P. 71] 부지중에 저지른 실수는 극히 드문 것이긴 하지만 뜻밖의 세계를 드러내고, 당사자는 이해하기 어려운 세력과의 관계 속으로 끌려들어간다. 프로이트가 밝혔듯이 이러한 실수는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욕망과 갈등이 억압된 결과 나타난 것이다. 그것은 부지중에 표출된, 삶의 표면에 잡힌 주름이다. 그리고 이 주름의 골은 매우 깊다. 영혼 그 자체만큼이나 깊다. 실수는, 운명의 시작에 해당되는 수도 있다.

2. 소명의 거부
[P. 81] 타성이나, 힘에 겨운 일, 혹은 <문화>의 장벽 때문에, 모험의 주체는 의미 심장한 긍정적 행동력을 잃고,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되어 바리는 것이다. 모험의 주체가 누리던 화려한 세계는 메마른 돌멩이가 구를 뿐인 황무지가 되고, 그의 삶은 무의미해진다.
[P. 82] 신성(神性)이 그 자신의 적이 된 것이다, 개인이 자기 자신의 신이기를 고집하면 신의 의지, 즉 자신의 자기 중심적 체계를 파괴할 수 있는 힘인 신 자신은 괴물로 변하는 것이다.
나는 그에게서 도망쳤다. 밤과 낮으로

나는 도망 쳤다, 세월의 녹문(綠門)으로

나는 내 마음을 피신시켰다. 미궁의 미로 속으로

눈물 속에서, 웃음을 참으며 나는 그로부터 몸을 숨겼다.

  [P.87] 주저한다고 다 길을 잃는 것은 아니다. 마음은 많은 비밀을 여축으로 간직하고 있다. 이라한 비밀은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막혀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소명의 거부에 따르는 부정적인 상태가 뜻밖의 해방의 원리에 대한 행운의 계시일 수도 있다.
[P.87] 실제로 고의적인 내향성은 창조적인 정신의 고전적인 방편 중의 하나이고, 이를 효율적인 장치로 응용할 수도 있다. 이 방편은 심적 에너지를 심층으로 몰아 무의식적 유아기의 이미지 및 원형적 심상이라는 잃어버린 대륙을 활성화시킨다. 그 결과 의식의 분열이 다소간 일어날 수 있음도 물론이다(신경증, 정신병, 겁을 집어먹은 다프네의 혼비백산이 그것이다), 그러나 인격이 이 새로운 힘을 흡수하고 통합할 수 있으면 당사자는 자기 의식의 초인간적인 단계 및 완전한 통제의 경지에 이를 수 있게 된다.
[P. 92] 부정적인 길을 따르는 영웅이나 여걸, 그리고 아시아 대륙의 이두 예화에서 운명지워진 이 한쌍의 결합을 완성시키는데 기적이 필요하다. 얼마를 기다려야 삶을 부정하는 마법을 깨울 힘이 생겨 두 아버지의 분노를 삭힐 수 있게 될까?

3. 초자연적인 조력

[P. 93] 소명을 거부하지 않은 모험 당사자는 영웅적인 편력도중 첫 번쩨 보호자를 만난다,

이 보호자는 모험 당사자가 곧 만나게 되는 용과 맞설 호부(護符)를 준다.  

[P. 96-97] 모험을 나선 당사자가 그것을 알고 그 존재를 믿기만 하면 시공을 초월한 안내자는 언제나 나타난다. 소명에 응답했고 용기 있게 미지의 사건에 대한 체험을 경험에 왔기 때문에 영웅은 모든 무의식의 힘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인다. 대자연 Mother Nature은 항상 위대한 임무를 지원한다. 영웅의 행동이 그 사회가 예비하고 있는 것과 일치될 때, 그는 흡사 역사적 변화의 리듬을 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P. 98-101]  그런 조력자를 맞는 영웅은, 소명에 응답한 영웅을 경우가 보통이다. 실제로 소명은, 통과 제의의 사제가 접근하고 있음을 알리는 첫 번째 통고다. 그러나 <구원할 수 있는 분은 알라신뿐>이라는 말에서 보았듯이, 영혼을 닫은 자들에게도 초자연적인 안내자가 오는 예가 있다.

4. 첫 관문의 통과

[P. 105] 자신을 안내하고 자신을 도와줄 운명을 인격화 함으로써 영웅은 모험의  영역으로 한걸음 더 들어가 이윽고 한 단계 어려운 영역의 입구에서 <관문의 수호자>를 만나기에 이른다. 이러한 수호자는, 영웅의 현재 상황, 혹은 삶의 지평의 한계를 상징하면서 사방에서(위 아래까지) 세계의 경계를 나타내고 있다. 이 수호자 뒤로는 어둠이며, 미지의 세계이며, 위험이다.    
[P. 110-111] 모험 당사자는 특정 구역의 수호자에게 도전하지 않는 게 좋다. 그러나 살아서든 죽어서든 새로운 경험역(經驗蝷)을 지나려면 같은 세력의 파괴적 측면을 극복하고 이 특정 구역을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된다.
[P. 111-112] 이들이 가진 초자연적인 능력은 정글에서나 꿈속에서 정령을 만나거나 죽음과 재생의 체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모험이란 기지의 세계에서 미지의 세계로 가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어느 나라에서든, 어느 시대든 마찬가지다. 이 기지의 세계와 미지의 세계를 가르는 경계선의 수호자는 극히 위험한 존재다. 그들과 만난다는 것은 그만큼의 위험 부담을 안아야 가능하다. 그러나 능력과 용기를 갖춘 사람 앞에서는 위험은 그 꼬리를 감추고 만다.  
[P. 119] 뿐만 아니다. 현상계의 마력이 무너지자 그는 자기를 부정하게 된다. 자기를 부정함으로써 그는 신(보시를 받을 자격이 있는 신적인 정령)이 된다. 종국적인 이름과 형태가 아닌, 마음속의 이름과 형태를 초월한 단순한 이름과 형태를 알게 될 때 세상이 그렇게 되듯이 그 역시 신적인 존재가 된 것이다.


5. 고래의 배

[P. 120-121] 마법의 문턱을 넘는다는 것이, 곧 재생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이라는 관념은,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고래의 배라는 자궁이미지가 상징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영웅은, 그 관문을 지키는 세력을 정복하거나, 그 세력과 화해하는 대신, 그 미지의 힘에 빨려들어, 겉보기엔 죽은 것으로 나타나고는 한다.  
[P. 124] 아난다 쿠마라스와미박사는 <존재를 그만두지 않고는 어떤 생명체든 보다 높은 차원의 존재를 획득할 수 없다.>고 썼다.

[P. 124] 자아에의 집착을 끊은 영웅은 왕이 자기 궁궐에서 방방을 드나들 듯이, 삶의 지평을 넘나들거나 용의 뱃속을 드나들 수 있다.

2. 입문 Initiation

[P. 128] 일단 관문을 통과한 영웅은 기묘할 정도로 유동적이고, 모호한 형태로 이루어진 꿈의 세계로 들어간다. 영웅은 이곳에서 거듭되는 시련을 극복하고 살아남지 않으면 안된다.

[P. 128-129] 어쩌면 모험 당사자가 자신의 초인간적인 여행 도정의 도처에 자비로운 권능이 있어서 자기를 도와준다는 사실을 깨닫는 시기가 바로 이 시기인지도 모른다.
[P. 134] 나는 캄캄한 동굴 앞에서 그 안으로 들어가려 한다. 그러나 나는 되짚어 나오는 길을 찾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전율했다.

[P. 135] 나는 엄청나게 센 힘에 끌려 바다속으로 들어갔다. 거기엔 무시무시한 심연이 있고, 여기저기엔 그 심연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바위가 있었다.

[P. 138] 꿈꾸는 사람은 철저하게 유리되어 깊은 지하 감방에 홀로 방치되어 있다. 그 방의 벽과 벽 사이가 점점 좁아지다가 d,윽고 꿈꾸는 사람은 꼼짝도 하지 못하게 된다.
[P. 143] 고대의 상징 체계에 따르면 빛과 어둠을 표상하는 자매, 즉 이난나와 메레쉬키갈은 두 얼굴의 한 여신이다. 그리고 그들의 반목은 어려운 시련의 길을 의미한다. 신이든 여신이든, 남자든 여자이든, 신화의 등장인물이든 꿈을 꾸는 사람이든, 영웅은 적대자를 발견하고 삼키거나 그에게 삼켜짐으로써 이 적대자(뜻밖에도 그 자신의 자아)를 동화시킨다. 하나씩 히나씩 장에는 차례로 사라진다. 영웅은 자신의 자존심, 미덕, 아름다움, 삶을 팽개치고 도저히 용남할 수 없는 이 적대자에게 절을 하거나 복종한다. 이윽고 영웅은 자신과 적대자가 사실은 둘이 아닌 하나임을 깨닫게 된다.

[P. 143] 원래 시련의 나라를 향한 출발은 초보적인 정복과 예언의 힘을 얻기 위한 기로 험한 여로만을 표상했다. 이제 영웅은 용을 죽여야 하고 몇 번이고 위험한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2. 여신과의 만남

[P. 144] 모든 장애물이 극복되고 도깨비가 퇴치되었을 때 영웅이 치르는 마지막 모험은, 승리한 영웅과 세계의 여왕인 여신과의 신비스러운 혼례로 표상된다. 이로써 영웅은 천저, 천정 혹은 땅끝, 우주의 중심점, 신전의 성소, 혹은 마음속의 가장 어두운 방속에서 위기를 맞는다.

[P. 152] 여신은 또 때가 되면 죽는 모든 거의 죽음이기도 하다.
[P. 153] 고도의 이해력을 갖춘 천재만이 이 숭고한 여신의 계시를 읽을 수 있다. 이해의 정도가 낮은 사람을 위해 여신은 그 신통력의 정도를 낮추어, 그들의 지진한 능력에 알맞은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정신적으로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이 여신의 모습을 본다는 것은 엄청난 재앙일 수 있다.
[P. 154] 그러나 여신은 자기 존재를 알아보는 자에 의해 해방된다. 지나치게 흥분한 상태에서가 아닌, 여신이 바라는 친절하고 침착한 상태에서 그 여신의 정체를 알아볼 수 있는 영웅은, 여신이 창조한 세계의 왕, 즉 인간으로 확신한 신일 수 있는 것이다.
[P. 157] 여신(모든 여성에게 현현되는)과의 만남은 사람은 사랑의 은혜(자비, 즉 운명에의 사랑)을 얻기 위해 영웅이 맞는 마지막 재능의 시험 단계다. 이 사랑의 은혜는 바로 우리 삶이 누리는 영원성의 그릇과 같은 것이다.

3. 유혹자로서의 여성


[P. 159] 세계의 여왕인 여신과의 신비적인 결혼은 영웅의 삶 전체가 완정되었음을 상징한다. 즉 여성이 곧 삶인데, 영웅은 이 삶을 알게 되었고, 이를 완성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영웅의 궁극적인 체험과 행위의 예비 시험이라고 할 수 있는 영웅의 시련은, 자각의 위기를 상징한다. 이 자각의 위기를 통해 영웅의 의식은 증폭되고, 어머니 상의 파괴자, 즉 천생연분의 신부를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P. 160] 참으로 까다롭고 재미있는 것은, 이상적인 삶에 대한 의식적 견해가 실제의 현실적 삶과 잘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본질을 이루는 것, 우리 친구들에게 내재해 있는 것, 우리가 추구하는 것, 자기 방어적이고, 악취가 나고, 탐욕적이고 음탕한 흥분상태, 즉 우리조직 세포의 본질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P. 166] 우리는, 마귀의 무대이며 마귀의 목표이기도 한 이 땅, 시온을 향하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마귀가 도둑 무리와 은거하고 있는 이 땅의 초라한 나그네다.

4. 아버지와의 화해


[P. 166] 하느님의 분노의 활이 굽혀지고 시위에 화살이 걸렸습니다. 정의가 여러분 가슴에 살촉을 겨누고 시위를 당깁니다. 한순간 화살이 여러분의 피를 마시게 하는 것은, 약속도 아니고 은혜도 아닌 하느님의 노한 하느님의  의지일 뿐 입니다.

[P. 170] <화해 atonment>, 즉 <하나되기 at-one-ment>란 스스로 만들어낸 두 마리의 괴물(신(초자아)으로 보이는 용과 죄악(억압된 이드))으로 보이는 용을 포기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자면 자아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하는데 이게 예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당사자는 아버지가 자비로우며, 이 자비를 믿을 수 있다는 신념을 자져야 한다. 이렇게 되면 믿음의 중심은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신의 족쇄 바깥으로 이동하고, 믿음의 중심이 이동하면 무섭고 잔인한 측면은 사라진다.
[P. 176] 아들아, 네 힘을 의지하기보다는 행운이 네 길을 인도하게 하여라. 자 이제고삐를 잡아라.

[P. 177] 자식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한 이 부모의 이야기는, 입문이 잘못되었을 때 입문자의 삶에는 환란이 올 수 있다는 옛사람들의 생각을 확인시켜 준다. 한 아이가 자라, 어머니 품속의 목적인 자장가를 떠나 어른의 세계에 눈을 돌리게 될 때, 이 아기는 정신적으로 아버지의 세계를 엿보게 된다.
[P. 190] 코란은 <어디로 돌아서든 거기엔 알라 신이 계시도다>라는 말로 이를 암시하고 있다.
[P. 190-191] 만물 속에 숨어 있어서 그 영혼이 빛을 발하지 않으나, 뛰어난 지력을 가진 명민한 자의 눈에는 보인다. 그노시스 파의 격언에 따르면 <지팡이를 쪼개어도 예수님이 거기 계신다> 따라서 바라코챠는 이런 식으로 자기가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음을 천명하면서 지고한 만유의 신들이 동참한다.  
[P. 192]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영웅은 영혼의 문을 열어 공포를 극복하고, 이 광대무변하고 무자비한 우주의 걷잡을 수 없는 비극을 존재의 존엄성 속에서 완전하게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영웅은 자기 몸에 박힌 가시(약점)를 통해 삶을 초월하여, 한순간이나마 그 근원을 투시한다. 그는 여기에서 아버지를 만나고, 아버지와 자기가 화해에 이르렀다는 것을 깨 닫는다.
[P. 197] 세상에는 도처에 보살(존재와 본질이 대각에 이른 자)이 있고, 보살의 광명을 받고 있지만, 세상이 보살을 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보살이 세상, 즉 연화를 들고 있다. 고통과 쾌락은 그를 구속하지 못한다. 그가 고통과 쾌락을 깊은 휴먼 상태로, 구속하고있다. 우리 모두가 그와 같은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라고 하는 존재, 그의 형상, 혹은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 자체가 우리에겐 희망이다.

[P. 198] 관음이 세운 맹세에는, 세상을 구제하고 세상을 버티는 심오한 직관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P. 205] 세계는 서로 싸우는 무리들로 가득차 있다. 이 모두가 토템, 국기, 그리고 집단의 숭배자들이다

[P. 206] 잘 들어라.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잘해주고 너희을 저주하는 사람들을 축복해 주어라, 그리고 너희를 학대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어라

[P. 207) 우리가 일단 세계의 원형들에 대한 편협스런 교회적, 종족적, 국가적인 해석의 선입견을 홀가분하게 벗어던지게 되면, 우리가 전수받아야 할 최상의 도리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서슴없이 이웃을 공격하는, 누구에게만 자애스런 아버지의 도리가 아님을 이해하는 게 가능해진다.
[P. 208] <남을 판단하지 말아라. 그러면 너희도 판단받지 않을 것>

[P. 209] 오호라, 좋고 싫음의 무상함이여. 만상이 본래 비었음을 알면, 그대 마음에 대자 대비가 일어나리라. 그대와 남이 다르지 않음을 알면, 남을 섬길수 있으리라. 남을 능히 섬겨내면 나를 만날 수 있으리라. 나를 만나면 불성에 이르리라. 

[P. 211] 우리는 모두 보살이미지의 그림자다. 우리 내부의 고통은 바로 저 신적인 존재다.

[P. 215] 불교의 팔정도는, 이치를 올바르게 보는 정견, 정견으로 본 이치를 올바르게 생각하는 정사유, 진실한 지혜로 구업을 닦는 정어, 잘못된 행동이 없 게하는 정업, 정당한 법으로 살아가는 정명 꾸준히 매진하는 정경진, 진실한 지혜로 정도를 생각하는 정념, 진실한 지혜로 선정에 드는 정정이다.  마지막 <미망과 욕망과 적의의 적멸(즉 열반)과 더불어 마음은, 생각이 실체가 아님을 깨닫는다. 생각은 사라지는 것이다. 이런 참된 경지에 들어간 마음은 안식을 얻는다. 상태는 육체가 사윌 때까지 계속된다.
[P. 216] <형상(色)은 빈 것(空)이며, 빈 것은 즉 형상이다. 빈 것은 형상과 다르지 않고 형상은 빈 것과 다르지 않다. 형상이라고 하는 것 그것은 빈 것이며, 빈 것이라고 하는 것 그것은 형상이다. 관념, 이름, 개념 그리고 지식 역시 마찬가지다.>
[P. 223] 신적인 차원의 언어로 일컬을 때 시간의 세계란 곧 위대한 어머니의 자궁이다,


6. 홍익(弘益)
[P. 226] 보통 영웅 같으면 모진 시련을 겪을 터인데도 선택된 자는 별 방해도 받지 않고, 또 실수도 저지르지 않는다.

[P. 232] 내가 지나는 물은 일찍이 아무도 건넌바 없다. 미네르바가 나에게 염감을 주고, 아폴로는 내길을 인도하며, 아홉 뮤즈는 내게 북두칠성을 일러준다.

[P. 236] 우상으로서의 신들의 존재는 존재 그 자체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들이 연출하는 유쾌한 신화는 그들 수준의 마음과 정신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지나 그 배후의 무(無)에 이르게 한다.

[P. 237] 이 기적적인 에너지 본질만이 불멸적인 존재이며, 도처에서 이 에너지를 현현시키고 나누어주고 표상하는 신들의 이름과 형상은 가변적인 것이다.
[P. 248] 영원을 알면 이해력이 넓어지고, 이해력이 넓어지면 포용력이 넓어진다. 시야가 넓어지면 귀함을 얻는다. 귀함이란 천상적인 것과 다름 아니다. <천상적인 것이 도(道)다. 도는 영원이다. 여기에 이르면 육체가 썩는 것도 두려워할 바 아니다.>
[P. 248] 일본에는 <인간이 재물을 내려달라고 기도하면 신들이 웃는다>

[P. 249] 개인적인 한계를 넘는 고통은 곧 전신의 성숙에 따른 고통이다. 예술, 문학, 신화, 그리고 밀교, 철학과 수련은, 모두 인간이 자기 한계의 지평을 넘고 드넓은 자각의 영역으로 건너게 해주는 가교인 것이다. 차례로 용을 쓰러뜨리고, 관문과 관문을 차례로 지남에 따라, 영웅이 고도로 갈망하는 신의 모습은 점점 커져, 이윽고 우주 전체에 가득 차게 된다.. 영웅의 마음은 마침내 우주의 벽을 깨뜨리고 모든 형상(모든 상징, 노든 신성)의 경험을 초월하는 자각에 이르게 된다. 이것이 바로 불변의 공(空) 에 대한 자각이다. 
[P. 250] <눈이, 말이, 마음이 하릴없다, 우리는 이를 알지 못한다. 이를 남에게 가르칠 방도도 알지 못한다, 이는 이미 알려진 바와도 같지 않고, 알려지지 않는 것까지 초월해 있다.  >


3. 귀환 Return


1. 귀환의 거부
[P. 253] 영웅의 임무가 수행되었다고 하더라도 모험 당사자인 영웅은 아직 생을 역전시키는 전리품을 가지고 귀환하는 모험을 치러야 한다.


2, 불가사의한 탈출

[P. 257] 승리한 영웅이 여신이나 신의 축복을 획득하고, 그가 속한 사회를 구원한 붏사약을 가지고 원상 복귀할 대목이 되면, 영웅 모험의 이 최종 단계에서 초자연적인 후원자에 의한 지원이 따르는 법이다.

[P. 261] 영웅의 도망에서 흔히 사용되는 것은 뒤에 남은 다른 사물들이 영웅 대신 대답하여 추격을 지연시키는 수법이다.

 [P. 263] 심연의 권능에는, 섣불리 도전하면 안 된다. 동양에서는, 엄격한 지도와 감독 없이 심리적으로 해이해진 상태에서의 요가 수련은 몹시 위험하다고 가르친다. 수련자의 명상은 그 발전 단계에 따라 통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
[P. 269] 두 세계의 상호 관계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은 언제나 사소한 실수, 즉 인간의 약점이라는, 사소하나 치명적인 증세이다. 그래서 인간은, 사소한 일만 피하면, 모든 것이 잘 풀려나갈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P. 269] 도망에 실패하는 신화는 우리에게 있어서 비극이지만, 성공하는 신화는 신용하기가 어렵다.

3. 외부로부터의 구조

[P. 269-270] <세상을 버린자가 이 땅에 다시 돌아오려 하겠는가? ‘거기’에 남아 있으려 하지 않겠는냐> 는 것이다.

그러나 어디에 있든지, 그가 살아있는 한, 생명은 그를 부른다.

[P. 280]  <불가사의한 도망>에서 그랬던 것처럼, 영웅은 자아를 지키는 대신 자아를 잃어버린다. 그러나 조력자의 은혜로 영웅은 자아를 되찾는다.

4. 귀환 관문의 통과

[P. 281] 이승과 저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하나의 세계다. 신화나 상징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는 바로 이것이다. 신들의 세계는 우리가 아는 세계의 잊혀진 부분이다. 기꺼이 이 일을 맡든, 어쩔 수 없어서 맡게 되든, 우리가 영웅의 행위를 이해하자면 이 잊혀진 부분의 탐험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일상 생활에서 중요하게 보이던 두 세계의 가치나 차이는, 지금까지 전혀 다른 것으로 인식하던 <타자>와 <자아>를 동화시키는 동시에 사라져 버린다.
[P. 294] 덧없는 만남과 헤어짐, 이것이야말로 전형적인 사랑의 고통이 아닌가. 한 영혼이 제 운명을 저주하고, 운명의 장난에 저항할 때 그의 고통은 더욱 고통스러워 진다. 위험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여기에 대응하는 것은 감정이 아닌 힘이다.

5. 두 세계의 스승

[P. 300] 나의 모습은 수십만 가지니, 그 종류와 형상이 가지 각색이니라. 볼지어다. 모든 신들과 천사들을. 일찍이 인간이 보지 못했던 수많은 경이로움을 볼지어다,

[P. 305) 상징이란 의미 소통의 <수레>에 불과하다. 상징은, 그 언급하는 바의 궁극적인 의미, 즉 <진로>로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

[P. 305]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렇게 쓰고 있다. <하느님이, 인간의 생각이 미칠수 없는 높은 곳에 계신다는 믿음만 가지고 있다면, 우리도 하느님을 진정으로 알고 있는 셈이다.> 케냐 우파니샤드에도 같은 말이 나온다, <아는 것은 알지 못하는 것이요, 알지 못하는 것은 아는 것이다. >

[P. 306] 이것은 모든 종교적 관행이 좇고 있는 바다. 심리적 훈련을 통하여 개인적인 한계, 독특한 습관, 희망, 공포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진리를 깨닫고 거듭나는 데 필수적인 자기 적멸에 대한 저항을 버리면, 개인은 위대한 <하나됨 at-one-ment>, 즉 <자기 화해 self-atonment>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야망을 무화시킨 개인은 살려고 바둥거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일이 닥치건 거기에 몸을 맡겨버린다. 말하자면 익명의 인간, 존재하지 않는 존자가 되는 것이다.

6. 삶의 자유

[P. 307] 영웅이 불가사의한 여행을 끝내고 귀환한 결과는, 과연 무엇인가?

영웅이 지난 전장은, 모든 피조물이 다른 피조물의 희생으로 삶을 영위하는 삶의 현장을 상징한다.

[P. 307] 그러나 우리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이 세상의 예외적인 존재로서 자기 입장을 합리화하고 허위적인 자기 이미지를 드러내는 사람도 있다. 말하자면, 자기는 선한 자를 대표하고 있다고 간주하고, 죄악을 불가피한 것으로 합리화함으로써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부류도 있는 것이다. 
[P. 307-308] 신화의 목적은 개인이 의식과 우주적 의지를 화해시킴으로써 생명에 대한 그 같은 무지를 추방하는 데 있다. 이 목적은 덧없는 시간적 현상과, 삶과 죽음이 혼재하는 불멸의 삶과 진정한 관계를 자각해야 달성이 가능하다.
[P. 308] <그러므로 애착을 떠나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행하라........ 너의 모든 일을 나에게 맡기고, 네 생각을 가장 눞은 자아에 모으고, 원망(願望)과 이기심에서 벗어나되, 흐트러지지 말고 나가 싸우라.


4. 열쇠 The keys

[P. 316] 원래 살던 오두막이나 성에서 떠난 신화 속 영웅은 꾐에 빠지거나, 납치당하거나 자진해서 모험의 문턱에 이른다. 여기에서 영웅은 길을 안내할 그림자 같은 부정적인 존재를 만난다.  

[P. 322] 정말 잘들어 두어라. 누구든지 새로 나지 아니하면 아무도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제2부. 우주 발생적 순환

1. 유출 Emanations


[P. 325] 오늘날의 지식인들에게, 신화의 상징체계가 지닌 심리학적 의미를 감지해 내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특히 정신 분석학자들의 연구가 있은 이후, 신화가 꿈의 내용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꿈이란 정신 역동의 증후라는 사실에는 별 의혹의 여지가 남지 않았다.

[P. 327] 따라서 우리에게 전승된 신화학적 표상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우리는 이러한 표상들이 무의식의 징후(사실은 모든 인간의 생각과 행동)일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정신적 원리의 통제되고 의도된 진술임을 이해해야 한다.

[P. 332] 영웅의 모험은, 그의 삶에서 깨달음을 얻는 순간을 나타낸다. 이 순간은 그가 살아있을 동안에 우리의 살아있는 죽음의 어두운 벽 너머의 빛의 길을 발견하고 이길을 열었다는 의미에서 참으로 중요한 순간이다.

[P. 332] 신의 왕국은 내재적인 것이면서도 동시에 외재적인 것이기도 하다.

2. 우주의 순환


[P. 333] 개인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이, 의식의 어둠으로부터 깨어 있는 시간대로 흘러나오는 생명력의 질서 정연한 흐름에 달려 있듯이, 신화에서도 우주 질서의 연속성은 근원으로부터의 통제된 힘의 흐름이 있어야 가능하다.
[P. 339] 보이지 않고, 말할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고, 추정할 수도 없고, 상상할 수도 없고, 그릴 수도 없다. 의식 상태에 있는 만물이 공유하는, 자기 인시그이 본질, 현상계는 이안에서 소멸한다. 이는 평화요, 행복이요 <둘이 아닌 것이다>이다.

[P. 339-340]신화는 이순환속에 머문다, 그러나 신화는 이 순환을 침묵에 둘러싸인 형태, 순환과 침묵이 서로 삼투하는 형태로 드러낸다, 신화는, 존재하는 원자 안팎에 충만해 있는 침묵의 계시록이다. 신화는, 고도록 세련된 형상화 작업을 통하여 마음과 가슴을, 모든 존재를 채우고 둘러싸고 있는 궁극적 신비로 향하게 하는 풍향계다. 우스꽝스럽고,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로 보여도 신화 체계는 마음을, 가시(可視)의 세계 너머에 존재하는 비현현의 세계로 향하게 한다.


3. 허공에서 -공간

[P. 342]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렇게 선언하고 있다.  <우주의 끝을 헤아리고, 그 끝이 곧 시작임을 아는 자라야 현자라고 불릴 만하다.>
모든 신화 체계의 기본 원리는, 끝과 시작이 함께 한다는 바로 이 원리다.

[P. 342] 신화 속에서 마음은 정상적인 가치 체계에 안주하지 못하고 뜻밖의 각성 체험을 통하여 끊임없이 모욕당하거나 충격을 받는다.

마음이 정상 상태에 머물러 있어서 마음이 좋아하는 이미지나 전통적인 이미지에 안주하려 할때 신화체계는 아무 의미도 갖지 못한다, 이미지가 메시지 자체라고 옹호하면 안 된다,
4. 공간의 내부에서-생명

[P. 352] 우주적 알의 이미지는 많은 나라의 신화 체계에 등장한다. 이 우주란은 그리스의 밀교, 이집트, 필란드, 불교 문화권, 그리고 일본의 신화 체계에도 등장한다.  
[P. 353] 우주란의 껍질은 공간에 떠 있는 세계의 뼈대요, 그 안에 있는 풍요한 생식력은, 식을 줄 모르는 자연계 생명력의 역동성을 나타낸다.
<공간은 넓게 펼쳐진 것이 아닌, 오목한 형상으로 끝이 없다.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 무한 위로 떠 있는 껍질이다. >

[P. 354-355) 한 처음의 우주는 인간의 형상을 한 자아Self였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으로 <내가 바로 그다(I am he)>하고 소리쳤다. 여기에서 <나>라는 이름이 생겼다. 오늘날에도 누가 말을 건네오면 <응, 나>라는 말로 서두를 삼은 연후에야 자기가 만난 다른 사람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는 두려웠다, 사람이 혼자 있으면 두려워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생각했다. 내가 대체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나 이외엔 아무것도 없는데? 그러자 두려움이 사라졌다.

[P. 355] 드디어 그는 깨달음을 얻고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만물을 지었으니, 내가 곧 창조로다)

5. 하나에서 여럿으로

[P. 358] 저절로 깨어지는 우주적 알껍질의 부분 부분은 외부의 도ㄴ움이 없이도 제자리를 찾는다.
[P. 365] 여기에 신화의 근본적인 모순, 즉 이중 초점의 모순이 있다. 우주 발생적 순환의 초기에 <신은 관여하지 않았으나>, <신은 창조자이자 수호자이며 파괴자인> 라고 말할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가 여럿으로 나뉘는 이 결정적인 위기의 순간에 운명은 <우연히> 그러나 <성취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2. 처녀 잉태 The virgin birth


[P. 379] 바이나뫼이넨(타고난 영웅) 이 체 해변에 오르기도 전에, 이미 또 하나의 어머니 자궁이라는 시련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즉 절대한 우주적 바다의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무방비 상태에서 그는 근본적으로 비인간적인 힘을 행사하는 자연의 입문의식을 치러야 하는 것이었다.


2, 운명적 모태

[P. 380] 우주적 여신은, 여러 가지 가면을 쓴 모습으로 인간에게 나타난다. 왜냐하면 창조의 결과란 다양하고 복잡한데다 창조된 세계의 관점에서 경험할 때면 상호 모순적이기 때문이다. 생명의 어머니는 동시에 죽음의 어머니다.


3. 영웅의 변모 Transformations of the Hero

1. 최초의 영웅과 인간

[P. 396]이제 우리는 두 단계를 거쳐왔다. 즉 첫째는, 비실재적 실재의 직접적인 유출에서 신화적 시대의 유동적이나 시간을 초월한 존재에 이르는 단계, 둘째는 이 실재적 실재에서 인류  역사의 영역에 이르는 단계다. 유출은 이제 그 극점에 이르렀고 의식의 장은 이제 좁아질 대로 좁아졌다, 

2. 인간적인 영웅의 어린시절

[P. 400] 전설을 만든 사람들에겐 탄생의 순간, 심지어는 잉태의 순간에 영웅에게 초자연적인 능력을 부여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영웅의 생애는 그의 모험을 절정으로 하는 엄청난 장관으로 그려진다. 

[P. 400] 신적인 존재란, 우리 모두의 내부에 있는, 전능한 자아의 계시다. 삶에 대한 묵상은, 따라서 정확한 모방에 이르는 전주곡으로서가 아니라 자기의 내재적인 신성(神性)에 대한 명상의 형태여야 한다. 말하자면 <이러저러하게 행동해서 선함을 얻는>것이 아니고 <이를 앎으로써 신이 되는 것>이다.

[P. 402] 영웅의 첫 번째 과업은, 우주 발생적 순환의 그 전 단계를 의식적으로 체험하는 것이다. 유출emamation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 가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과업은, 심연에서 일상의 삶으로 귀환하여 조물주적 잠재력을 가진 인간적인 변환 자재자(變還 自在者)가 되는 것이다,

[P. 410] 신화는, 그러한 체험을 견디고, 거기에서 살아나오는 데는 범상하지 않은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이런 이야기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대개가 힘이세고 영리하고 또 지혜롭다,


3. 전사로서의 영웅

[P. 419] 영웅이 탄생하는 곳, 혹은 영웅이 도피 또는 추방당했다가 보통 인간들 사이에서 성인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떠나오는, 머나먼 땅은 세계의 중심, 혹은 세계의 배꼽이다.

[P. 421] 바로, 이 배꼽에서, 영웅은 자기 운명을 자각하러 떠난다.

[P. 422] 신화적인 영웅은 <이루어진> 사상의 옹호자가 아니라 <이루어지는> 사상의 옹호자다.


4. 애인으로서의 영웅  
[P. 428] 영웅이 자기 운명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엉뚱한 사상에 현혹될 때, 영웅은 아무리 노력해도 장애물을 극복할 수 없다.


5. 황제로서, 폭군으로서의 영웅

[P. 434] 영웅 모험의 목표가 미지의 아버지를 찾는  것일때, 여기에 등장하는 기본적인 상징체계는, 시험 및 정체 고백의 상징 체계다,

[P. 434] 아버지의 축복을 받은 영웅은 돌아와서 사람들에게 아버지를 증거한다.


6, 구세주로서의 영웅

[P. 437] 첫 번째 단계에서 아들은 사자가 되어 귀환하지만, 두 번째 단계Dp서는 <나와 아버지는 결국하나>라는 통찰과 함께 귀환한다. 이 두 번째의 보다 높은 자각에 이른 영웅은 구세주, 한차원 높은 의미에서의 이른바 지고한 존재의 화신이다, 그들의 신화는 우주적인 조화를 지향한다. 그들의 언어는 권위의 홀장과 율법서의 영웅이 뱉어낸 어떤 말 이상의 권위를 갖는다,   

[P. 440] 모두들 슬퍼하지 말아요. 죽지 않고 영생하는 인간은 있을 수가 없어요. 자기가 무엇을 소유하고 있다는 생각부터가 틀린 것입니다. 아버지, 어먼, 아들은 존재하지 않아요. 존재하는 것은, 오직 생과 사의 끝없는 순환일 뿐입니다.


4. 소멸 Dissolutions

[P. 459] 나는, 외로웠던 나는 아툼Atum이다. 나는, 처음으로 현신했던  레 Re다.

나는 스스로 신들중의 신이라고 했고, 어느 신도 범접하지 못하는 스스로 존재하는 위대한 신이다. 나는 과거였고, 미래를 안다. 내 일언지하에 신들의 전쟁이 벌어졌다.  나는 그 전쟁터에 있는 위대한 신을 안다. 그분의 이름은 <레의 찬양>, 나는 헬리오폴리스에 있는 저 위대한 불사조다.

2. 대우주의 끝

[P. 468] 개인이라는 창조된 형상이 결국은 소멸되고 말듯이 우주 역시 소멸된다,

[P. 473] 이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나고야 말 것이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과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이 아신다, ...............


에필로그

[P. 478] 신화 체계는 현대의 석학들에 의해 여러 가지로 정의되었다. 프레이저는 자연계를 설명하려는 원초적인 서툰 노력이라고 했고, 뮐러는 후세에 오인되고 있는, 선사 시대로부터의 시적 환상의 산물이라고 했으며, 뒤르켐Durkheim 은 개인을 집단에 귀속시키기 위한 비유적인 가르침의 보고라고 했고, 융은 인간의 심성 깊은 곳에 내재한 원형적 충동의 징후인 집단의 꿈이라고 했으며, 쿠마라스와미는 인간의 심오한 형이상학적 통찰을 담은 전통적인 그릇이라고 했고, 교회에서는 하느님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계시라고 정의했다. 갖가지 판단은 판단자의 견해에 따라 결정된다
 

2. 신화, 제의(祭儀), 명상의 기능
[P. 479] 개인의 정체성은, 개별적인 구성인자로서가 아닌 사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누릴 수 있다. 개인은 한 구성요소일 수 있을 뿐이다. 개인은 이 집단으로부터 삶의 기술, 사유의 바탕인 언어, 삶의 자양인 이상을 빚졌다. 그의 육체를 이루는 유전자도 그 사회의 과거로부터 전해 내려온 것이다. 개인이 실제든, 상상이나 느낌을 통해서든, 그 사회로부터 자신을 단절시킨다는 것은 존재의 근원과의 절연을 의미할 뿐이다. 
[P. 480] 맡는 역할이 비록 하찮다고 하더라도 개인은 이 인간의, 아름다운 축제의 이미지(잠재적이긴 하나 필연적으로 그의 내부에 깃들여 있는 이미지)에서 자기 역할이 바로 자기의 본질이었음을 깨닫는다.
[P. 480] 겨울이 오는 것을 막겠다는 부족적 의식이 전해진 적이 있던가? 오히려 모든 의식은, 자연의 휴식과 더불어 오는 이 혹한의 계절을 견디어 낼 수 있도록 사화의 구성원들에게 준비를 촉구한다,  
[P. 481] 이러한 계속성의 상징 체계는, 신화 체계적인 전승을 통해 지식을 전달하는 사회면 어느 곳에서든, 얼마든지 발견된다.

[P. 481] 그러나 다른 길도 있다. 즉 사회적인 의무와 대중적 제의와는 정반대로 향하는 다른 길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길은 자기 내부에서 탐색되고 또 발견되어야 한다.

[P. 483] 신은 이렇게 말했다. 오 모하메드여, 네가 없었다면, 내 저 하늘도 만들지 않았으리라.


3. 오늘날의 영웅

[P. 484] 오늘날 집단 속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세계도 그렇다. 모든 것은 개인에 귀착된다. 그러나 여기서 의미란 완전히 무의식적이다. 인간은,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인간의 심성의, 의식적인 부분과 무의식적인 부분의 교류 통로는 단절되고, 우리는 둘러 찢기고 말았다.    
[P. 486] 인간이 되려면, 놀라우리만치 다양한 인간의 얼굴로 바뀌어 있는 신의 얼굴을 알아보아야 한다.

[P. 488] 감히 소명에 응하여, 우리의 운명을 화해시켜야 하는 존재의 거처를 찾아내는 현대적 인간의 영웅은 자기가 속한 사회가 자만심과 공포와 자기 합리화된 탐욕과, 신성의 이름으로 용서되는 오해의 허물을 스스로 벗어던지기를 기다릴 수도 없고, 기다려서도 안된다. 니체는 <그날이 도래한 듯이 살라>고 하고 있다.  창조적 영웅을 이끌고 구원하여야 하는것은 사회가 아니다 그리하여 우리 각자는 그 영웅의 족속이 대승을 거두는 그 빛나는 순간이 아니라, 그가 개인적으로 절망을 느끼고 침묵을 짙]킬 때 그가 겪은 모진 시련(구세주가 십자가를 지는 일)을 나누어 부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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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내가 저자라면


(1) 책의 개요 및 장점

캠벨의 20여 저서 중 대표작이 『신의 가면』『신화의 힘』『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이라고 한다.  “모든 문화권의 신화를 두루 꿰는 신화의 원형을 찾아내고자 노력했던 캠벨 연구의 대표작이 4부작으로 구성된 ‘신의 가면’이고 이 책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은 바로 주저 ‘신화의 가면’의 서곡(序曲)이라고 한다.  1944년 이 책의 집필을 시작한 그는 5년후 1949년, 두 곳의 출판사에서 이 책의 출판을 의뢰했다가 거절 받았고, 후에 볼링겐 시리즈에서 출간하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 책으로 캠벨은 국립예술문자협회에서 주는 상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에서 캠벨은 융의 집단무의식을 신화의 상징과 연결시키고, 많은 영웅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정신을 규명하고 문명의 재생원리를 밝히려는 시도를 한 캠벨의 명저라고 역자 이윤기는 말한다.  캠벨은 신화, 동화, 민간전승, 역사적인 기록, 학술조사서, 옛날이야기 등 영웅의 의미를 나타내는 것은 전부 등장시켜 인간의 집단 무의식이 만들어낸 영웅의 이미지는 동일한 형태를 따르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 같다.


이 책의 구성은 제 1부 영웅의 모험, 제 2부 우주 발생적 순환인 총 2부로 되어 있는데, 제1부는 출발, 입문, 귀환이라고 하는 장들로 구성된 영웅의 모험을 다루는 부분이고, 우주 발생적 순환이라는 제목의 제2부는 유출, 처녀의 잉태, 영웅의 변모, 소멸을 다루고 있다.

먼저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책의 개요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부분은 책의 전체 내용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게 하였다. 제1부 영웅의 모험에서는 전 세계에 산재한 ‘영웅 이야기’를 예를 들면서 인류의 집단 무의식 속에 상징되는 하나의 원형을 정리하고 있다.  제2부에서 나오는 유출, 처녀잉태, 소멸은  신화의 의미와 신화의 순환적 구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신화와 사회라는 부제가 붙은 에필로그는 신화의 기능과 사회적 기능의 연관성을 설명하면서 본질의 일치성을 주장하고 있다.

 이 책의 곳곳에서 융의 집단무의식, 원형이라는 용어와 프로이트의 이드 자아 초자아라는 말이 많이 등장하고 꿈과 원형을 결부시키려고 노력한 점 등이 조셉 캠벨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과 융의 집단 무의식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 학자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그의 방식 중, 신화를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문제와 연관시킨다거나, 세계 여러나라의 예화를 소개하여 독자로 하여금 시적 상상력으로 이를 그 나름대로 해석하게 유도한 점은 이 책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고, 목차에서 본문의 내용을 요약한 방식이 우리의 이해를 돕게 만드는 장점이라고 볼 수 있다. 


(2) 내 생각을 조금 추가하면
이 책 역시 쉽지 않았다. 역자는 이 책이 일반인이 알아듣는데 모자람이 없이 쉽게 기술되었다고 했는데 나는 일반인보다 못한가? 라는 생각을 해야 할 만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었다.  특히 은유로 사용되는 사례가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그의 은유를 다 이해하려면 그의 저서를 다 찾아서 읽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책을 어렵게 만든 이유 중 용어와 문장의 난해함이 있었는데 저자가 그렇게 썼는지 역자가 번역 과정에서 어려운 용어를 선택했는지 모르겠지만 전반적으로 난해한 점이 있었다.

그리고 주석이 중간 중간 많이 나왔는데 보기 불편했다, 주석은 모아서 마지막으로 보내는 것이 더 보기 편했을 것 같았다.  특히 인용문 등을 주석 처리했는데 이런 경우는 주석처리 보다 문장 바로 아래에 출처를 밝히는 것이 독자의 이해를 더 돕게 했을 듯하다.  

역자는 이 책을 <명저>라고 했고 <명저의 해독>은 명저에 대한 극단적 찬양이 될 것이라 했다. 일부분은 동의한다. 명저와 명저를 쓴 선각자는 선망과 감사의 대상이 되고 책의 난해함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캠벨은 이 책에서 또 한번 나로 하여금 부러움과 놀람과 감사를 표현하게 했다.  


캠벨의 강의를 듣던 한 학생이, 캠벨의 숙제 부과량이 많은데 불만을 품고 그의 수업을 듣기 위해 매주 읽어야 하는 독서 분량이 너무 많다고 항의했을 때 그는 그것들은 일주일 동안 읽으라고 내 준 것이 아니라 평생 읽으라고 준 것이라고 말했다는 일화를 읽은 적이 있다. 이것은 지금 그가 우리에게 하는 말인 것 같다. 그의 저서 한권 한권마다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우리는 일주일의 시간동안 그의 저서를 읽고 성급하게 리뷰해야 해서 그를 제대로 이해하지도 평가하지도 못한 것 같다. 그를 이해하려면 그가 9년간 투자해서 썼다는  4부짜리『신의 가면』정도는 최소한 읽은 후에 그를 비평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그 이후 나머지 그의 저서들을 출판 년도 별로 차례로 읽고 그에게 정신적 영향을 준 제임스 조이스, 토마스 만, 레오 프로베니우스와 칼 융의 저서를 차례로 읽어야만 캠벨의 사상을 조금 이해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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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10.04.27 03:18:40 *.129.207.200
알기 쉽게 설명해주셔서, 도움이 되었습니다. 신의 가면은 저도 이해 못합니다. 저도 일반인이 아닐지도 모르지요. 

제임스 조이스와 토마스만도 소개해주셨네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도 넘긴 넘어야할 산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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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강 경수기
2010.04.27 09:54:18 *.145.204.123
허걱~~4부자리를 다보셨나요?
근데 '신화의 가면'이 아닌 '신의 가면' 이었군요
여기 저기 뒤지다 보니 '신화의 가면'과 '신의 가면'이 혼용되어 있어서 헷갈렸습니다
당근 '신화'일줄알았는데 
다시 검색해보니 신의 가면이 원제이군요
수정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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