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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21일 08시 15분 등록

저자에 대하여

 

살아가면서 내게 주어졌던 크고 작은 일들을 생활 철학으로 삼으며 삶을 살았던 나는, 철학 그 자체는 잘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로만 생각해 철학책을 가까이 하지 않았었다. 이번 레이스 기회를 통해 처음 접한 서양 철학사를 읽으며 한 권을  읽어내기도 벅찬 어려운 책들을 40권 이상 출간한 버트런트 러셀은 나에게는 괴물처럼 느껴졌다. 그는 철학, 수학, 과학, 윤리학, 정치학, 논쟁술 등 다양한 영역에 이르는 수 많은 책들을 쉬지 않고 써 낼 정도로 왕성한 지식욕을 가진 인물이기도 했다.

 

버트런드 러셀은 1872년 영국 웨인스에서 태어났다. 보수적 귀족 집안의 출신으로 태어났지만, 2세때에 질병으로 엄마를 잃고 그후 18개월 후 아버지를 잃은 불운한 작가였다. 그는 부모를 일찍 잃은 후 개인적인 양심과 정확한 원칙을 가진 할머니 밑에서 친구 하나 사귈 기회가 없이 혼자 교육을 받아왔다. 이런 고독하고 외로운 환경이 그를 또래 아이들 보다 성숙하게 만들었는데, 그는 독서나 사색으로 시간을 많이 보내게 되었다. 길게보면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은 불운이 전화위복이 되어 옳곧은 할머니 밑에서 바른 심성과 성찰을 통해 그의 명예와 업적을 세계에 널리 알리게 된 좋은 바탕을 얻게 되었다고도 생각된다. 11세 부터 종교를 인정하지 않았고  삶에 대한 고찰로 인해 그는 철학에 일찍 입문하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토록 외로움의 세월 끝에 나는 인생과 사랑이 어떤 것인지 아노라  그의 이 시 한구절이 그의 삶이 얼마나 외로웠는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1차 세계대전 동안 평화운동가로 활동한 일로 인해1916년에는 100파운드 벌금형을 받았고, 1918년에는 전쟁을 반대했다는 글을 썼다는 이유로 6개월의 구금형에 처해졌다. 그러나 그는 감옥에 있는 동안수리학 철학을 썼고, 정신분석을 쓰기위한 공부를 시작하였다. 정신적 사색을 많이 하던 그에게 감옥의 커다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단지 사색의 공간이 조금 더 불편한 곳으로 이동되었을 뿐임을 의미했다. 그의 3세대에 걸친 활기찬 저술 활동은 그곳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주제에 의견을 형성하고 싶을 때 공부했고, 반대편 논증에 신경을 썼으며, 균형잡힌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한 그의 노력은 1950년 노벨 문학상으로 이어졌다. ‘서양철학사’, ‘인간지식’, ‘결혼과 도덕등의 작품으로 수상을 했다. 그의 문학적 수필에서는행복의 정복이 알려져 있고, 특히 철학과 종교관을 잘 표현한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가 유명하다. 현실 사회에 대한 진솔한 관점과 스스로가 자연스러운 무정부주의, 좌파, 회의적 무신론적 기질이라고 불렸던 그의 성향들이 잘 나타나 있는 책들이기도 했다.

 

철학가하면  건조하고 딱딱하다는 편견이 나에게는 있었는데 그것을 깨버린 것은 러셀의 세 번의 결혼과 이혼이었다. 철학적 영향력과 대중적 인기는 그의 결혼과 이혼에서 기인하는가 하는 추측도 있었다. 그런 것들이 왜 대중적 인기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전처에게 바칠 위자료를 벌러다니기에 눈 코 들새 없이 바빴다고 하는 이야기가 그가 위대한 철학자라기 보다는 그냥 속 썩이는 동네 아저씨 같은 인간적인 모습이였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의 결혼을 통해 아이를 얼마나 낳았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아이를 기르는 일만큼 행복한 일은 없었노라 라고 말한 그를 보면  행복한 삶의 그의 철학은 명예나 업적이 아닌 사랑과 아이들이었나 싶었다.

 

이제 잠들게 된다면 아무 미련없이 자련다. 이제 늙어 종말에 가까워서야 비로서 그대를 알게 되었노라. 그대를 알게 되면서 나는 희열과 평온을 모두 찾았고 안식도 알게 되었다.그토록 오랜 외로움의 세월 끝에 나는 인생과 사람이 어떤 것이지 아노라. 이제 잠들게 된다면 아무 미련없이 자련다.” 97세의 나이로 자신이 태어난 웨일스에서 영원히 잠들었고 이 시는 그의  묘비명 처럼 읽힌다.  러셀의 시에 나온 그대란 누구일까? 갑자기 그가 먼저 알고 떠난 인생과 사람에 대해 궁금해진다. 그의 다른 주요 저서를 읽으면 해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의 주요 저서들로는행복의 정복’, ‘레셀의 자서전’, ‘회의주의자의 에세이’, ‘서양의 지혜’, ‘자유와 조건등이 있다.(이 중에서 혹시 앞의 질문의 해답이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 밖의 다른 주요 저서로는철학의 문제’, ‘교육론’, ‘권력’,’보세비즘의 이론과 실천’ ,‘수학 원리’, ‘철학의 탐구등이 있다.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옮긴이 서문.

러셀의 해석에 따르면 철학은 그리스 문명 속에서 처음 과학과 분리되지 않은 형태로 탄생했는데, 두 가지 경향이 그리스 문화를 지배했다. 하나는 열정을 중시하고 종교에 몰입하며 신비를 표방하고 내세를 믿는 경향이고, 다른 하나는 경험을 중시하고 합리주의를 내세우며 다양한 사실에 대한 지식을  획득하려는경향이다.[17]

서론

인생과 세계를 표현하는철학적인사상 체계는 두 가지 요소에서 생겨난다. 하나는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종교 체계와 윤리사상이고, 다른 하나는 가장 넓은 의미에서과학적탐구이다. 두 요소가 각기 다른 철학자의 체계 속으로 들어가는 정도에는 큰 차이가 있으나, 철학은 두 요소를 다 어느 정도 포함한다.[6]

철학은 신학과 마찬가지로 명확한 지식으로 규정하거나 확정하기 힘든 문제와 씨름하는 사변적인 측면을 포함한다. 그러나 철학은 과학과 마찬가지로 전통을 따르든 계시를 따르든 권위보다는 인간의 이성에 호소한다. 명확한 지식은 무엇이든 과학에 속하는 반면, 명확한 지식을 초월한 교리는 모두 신학에 속한다. 신학과 과학 사이에 자리 잡고 양측의 공격에 노출된 채,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는 영역이 존재한다. [17]

한 시대와 한 민족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각각에 속한 철학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철학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어는 정도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인간과 환경의 상호 인간관계가 성립한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환경이 철학을 거의 결정하며, 거꾸로 사람들이 형성한 철학이 환경을 거의 결정한다.[18]

신학과 구별되는 철학은 기원전 6세기에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다. 1기 철학은 고대에 철학의 길로 들어선 후, 그리스도가 발흥하고 로마가 몰락했을 때 신학의 영향으로 수면 아래로 가라 앉았다.[19]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는 시기까지 그리스사상은 도시국가에 대한, 거의 종교에 가까운 애국적 헌신의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그리스 사상의 특징을 이룬 윤리 체계는 시민 생활에 알맞았으며, 대부분 정치 활동과 관계가 있었다.[20]

프리드리히 2시가 최고 통치권자였던 나폴리에서 태어난 토마스 아퀴나스는 오는날까지도 가톨릭 철학을 해설한 고전적인 대표 학자로 알려져 있다. 50년 후 단테는 두 극단의 문화를 종합하여 완벽한 의미에서 중세 사상계를 포괄한, 유일하게 균형 잡힌 해설을 내놓았다.[23]

 

가톨릭 교회는 세 가지 근원에서 유래한다. 성스러운 역사는 유대교에서, 신학은 그리스 사상에서, 지배 방식과 교회법은 최소한 간접적으로라도 로마 법제에서 유래한다. 종교개혁은 로마적인 요소를 거부하고 그리스도적 요소를 완화했으며 유대교적 요소를 강화했다. 따라서 종교개혁은, 처음에는 로마 제국이, 그다음에는 로마교회가 만들어낸 사회 결속을 원상태로 돌려버린 민족국가 세력과 협력했다.[25]

예술, 문학, 정치에 나타난 낭만주의 운동은 인간을 공동체의 일원이 아니라 심미적 기쁨을 주는 응시의 대상으로 판단하는 주관적인 방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호랑이는 양보다 더 아름답지만, 우리는 오히려 창살 안의 호랑이를 좋아한다. 전형적인 낭만주의자는 창살을 제거하고 호랑이가 양을 사냥할 때 보여주는 비할 데 없이 멋진 도약을 즐기며 기뻐할 터이다. 그래서 인간 자신이 스스로 호랑이라고 상상하도록 권하지만, 그럴 경우 나타날 결과가 전적으로 유쾌하지는 않다.[27]

 

1권 고대 철학

1부 소크라테스 이전

1장 그리이스 문명의 발흥

그리스인들이 예술과 문학에서 이룩한 업적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순수한 지성의 영역에서 훨씬 비범하고 이례적인 업적을 성취함으로써, 수학과 과학 그리고 철학을 처음 만들어냈고, 단순한 연대기가 아닌 역사를 최초로 기록했다. 또 그들은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전통에 구속되거나 얽매이지 않고 세계의 본성과 인생의 목적에 대한 사유를 자유롭게 펼쳐나갔다.[34]

철학과 과학은 원래 분리되지 않은 상태로 기원전 6세기초에 동시에 탄생했다.[35]

바빌로니아의 종교는 이집트와 달리 내세의 행복보다 현세의 번영에 관심이 더 많았다. 마술, 점술, 점성술은 바빌로니아에서만 고유하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지만 다른 어느 것보다 바빌론에서 더 발전했기 때문에, 바빌론을 거쳐 고대후기를 지배하게 되었다.[37]

참주정치는 만드시 나쁜 정치를 의미하지 않고, 다만 권력의 세습이 허용되지 않는 지도자 한 사람의 지배를 의미했을 따름이다.’민주정치는 모든 시민에 의한 정치를 의미했지만 노예와 여성은 시민에게 제외되었다. 초기의 참주들은 메디치 가문과 마찬가지로 가장 부유하다는 이유로 권력을 획득했다. [41]

처음에 거의 구별되지 않던 교역과 해적 행위가 그리스인들에게 초래한 가장 중대한 결과는 문자 기술의 획득이었다. 수천 년간 이집트와 바빌로니아에 존재했으며, 미노아 문명을 건설한 크레타인도 지금 그리스어로 알려진 문자를 사용했는데, 그리스인들이 알파벳 문자를 언제 획득하게 되었는지는 확실치 않다.[41]

그리스인들은 페니키아인들의알파벳 문자를 빌려서 그들의 언어에 맞도록 변경했는데, 자음을 사용할 뿐만 아니라 모음을 추가하는 중요한 언어상 혁신을 이루었다.이렇게 편리한 문자 쓰기 방법을 습득함으로써 그리스 문명의 발흥을 더욱 앞당길 수 있었다는 사실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42]

문명이 급속히 발전한 여느 사회와 마찬가지로 그리스인들, 적어도 특정 부류 그리스인은 원시성을 갈망하고, 당대의 도덕이 허용하는 수준 이상으로 본능에 충실한 더욱 정열적인 삶의 방식을 동경했다. 강압에 의해 감정보다 행동이 훨씬 개화된 남녀에게, 합리성은 지루하기 짝이 없고 덕이란 부담스러운 예속으로 느껴질 따름이다. 그래서 사상, 감정, 행동 모든 면에서 반동이 일어나게 된다.[48]

문명사회는 자기 관리에 의한 견제 수단인 사려나 예상뿐만 아니라 법, 관습, 종교를 통해 충동을 억제한다. 이로써 문명사회는 야만 상태에서 물려받은 충동을 억제하고 본능이 점점 덜 드러나게 하면서 처벌할 수 없는 다른 행동은 사악한 행위로 분류해 처벌하고, 법에 의해 처벌할 수 없는 다른 행동은 사악한 행위로 분류해 사회의 승인을 받을 수 없도록 처리한다. 사유재산 제도는 여성을 예속시키며, 노예 계급을 만들어낸다. 한편으로 사회의 공동 목적이 개인에게 강요되고, 다른 한편으로 자신의 인생을 전체 사회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습관을 몸에 익힌 개인이 점점 자신의 미래를 위해 자기 현재를 희생하는 현상이 나타난다.[49]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면 사상의 영역에서 문명이란 대체로 과학과 동의어이다, 그러나 순수 과학만으로 문명을 충분하게 설명할 수 없는데, 인간에게는 열정을 비롯해 예술과 종교도 필요하기 때문이다.[50]

죽은 자의 영혼이 마시면 안 되는 샘물은 망각을 일으키는 레테의 강물이다. 다른 샘물은 므네모시네 즉 기억의 강물이다. 영혼이 다음 세상에서 구원을 받으려면, 망각해서는 안 되며 반대로 자연의 한계를 넘어선 기억력을 유지해야 한다.[54]

그리스인들은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 정열적이고 불행했으며, 지성이 인도한 길과 열정이 인도한 길에 내몰려 자신과 싸우고, 천국을 생각하는 상상력과 지옥을 만들어내는 고집 센 자기주장으로 갈등과 분열을 겪었다. 그들에게는어떤 일도 너무 지나치지 않게 하라는 격언이 있었다. 그러나 실제 삶에서 그들은 순수 사유의 측면에서나, 시나 종교나 도덕적인 죄 같은 모든 면에서 지나치게 행동했다. 위대한 업적을 남긴 경우에 한해, 그들은 바로 지성과 열정을 결합함으로써 위대해졌다.[57]

과학과 종교의 갈등은 기원전 6세기에 헬라스 전역에 휘몰아친 종교부흥에서 비롯되었는데, 학문의 무대가 이오니아에서 서방으로 이동하면서 일어났다.[59]

2  밀레토스 학파

탈레스의 과학과 철학은 모두 투박하고 불완전하지만
, 그 자체로 사상의 형상과관찰을 자극하는 역활을 했다.[64]

이 세계의 불, ,  물은 당연히 일정한 비율로 존재할 테지만, 신적인 것으로 생각되는 각 요소는 제각기 지배권을 확장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그런데 각 요소가 영원히 균형을 유지하도록 작용하는 일종의 필연성 또는 자연법칙이 있다. 예컨대 불이 있었던 곳에는 재가 남는데, 이것이 바로 흙이다. 영원히 고정된 한계를 넘지 못한다는 정의의 개념은 가장 심오한 그리스인이의 신념 가운데 하나였다. 신들도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정의에 복종해야 하지만, 정의에 부여된 최고 권능은 인격적인 것도 최고신도 아니였다. [65]

공기는 차고 물은 습하고 물은 뜨겁다. “그러므로 만약 그 가운데 어느 하나가 무한했다면, 나머지 요소들은 지금쯤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제일 실체는 우주 차원의 투쟁 속에서 중립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 [65]

아낙시만드로스는 과학적 호기심이 왕성한 안물로서 최초의 지도 제작자로 알려졌다. [65]

아낙시메네스는 밀레토스 학파의 3대 철학자 가운데 마지막 철학자로서 아낙시만드로만큼 흥미로운 인물은 아니었으나 어떤 면에서 중대한 진보를 이룩한다. [66]

밀레토스 학파는 성취한 업적이 아니라 철학적 시도로 인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이 학파는 그리스 정신이 바빌로니아와 이집트의 문화를 만나 빚어낸 성과였다.[66]

3  피타고라스

피타고라스는 지성사의 측면에서 보자면 현자인든 아니든, 지금까지 생존했던 아주 중요한 인물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증명하는 연역 논증이란 뜻의 수학은 피타고라스와 더불어 시작되며, 색다른 형태의 신비주의 사상 역시 그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수학이 철학에 미친 영향의 일부는 피타고라스에서 기인하며, 이후 심오하지만 유감스러운 방향으로 전개되었다.[68]

피타고라스학파는 과학적 경향과는 현겻하게 차이나는 신비적 전통의 주요 흐름을 대표한다.”[71]

우리는 이 세상에 다리러 온 손님이고 육체는 영혼의 무덤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현세의 무덤에서 탈출하려 자살을 시도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목자인 신의 종복들로서 신의 명령이 없다면 무덤을 떠날 권리도 없기 때문이다.[73]

모든 정화 활동 가운데 최고의 단계는 세속에 물들지 않은 공평한 학문이 제공하며, 그런 학문에 헌신하는 자는 가장 효율적으로 자기 자신을탄생의 수레바퀴에서 해방시키는 철학자이다.[73]

누구나 알듯이 피타고라스는만물의 수이다라고 말했다. 이 진술은 현대적 관점에서 해석하면 논리적으로 무의미하지만, 그가 말한 바를 정확히 알아보면 무의미하지 않다. 그는 음악에서 수가 차지하는 중요한 역활을 발견했으며, 음악과 수학 사에에 확립된 관계는 수학의 전문 용어인조화평균이나조화수열로 살아남아 사용된다. [75]

스콜라 철학의 형식의 해당하는 신학도 에우클레이데스 방법에서 표현방식을 빌려온다. 개인적 성향의 종교는 무아지경에서 도출되고, 신학은 수학에서 도출된다. 그리고 무아지경과 수학은 둘 다 피타고라스에서 근원을 찾아야 한다.[77]

나는 수학이 초감각적인 지성계에 대한 믿음뿐만 아니라 영원하고 정확한 진리에 대한 믿음을 발생시킨 주요 원천이라 생각한다.[77]

시간을 영원과 연결한 신비주의 학설도 순순 수학으로 강화되는데, 수 같은 수학의 대상들이 실재한다고 해도 영원한 존재로서 시간 속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영원한 대상들은 신이 생각해낸 것들이라고 말하기도 한다.[77]

지성에는 드러나지만 감각에 드러나지 않는, 순수하고 영원한 세계의 착상은 피타고라스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피타고라스가 없었다면 그리스도교가 그리스도 말씀으로 여기지는 못했을 것이며, 신학자들 역시 신과 영혼의 불멸을 논리적으로 증명하려 하지 못했을 것이다.[78]

4장 헤라클레이토스

어떤 철학가를 연구할 때 가져야 할 올바른 태도는 그를 숭상하지도 경멸하지도 말고 이론 가운데서 믿을 만한 점을 알아낼 때까지 우선 일조의 가설로서 공감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비판적 태도를 회복할 수 있는데, 이러한 태도는 가능한 한 이제까지 주장하던 의견을 포기할 수도 있는 정신상태를 닮아야 한다. 경멸은 가설로서 공감을 표현하는 데 방해가 되며, 숭상은 비판적 태도의 회복에 방해가 된다.[81]

인류를 경멸한 헤라클레이토스는 오로지 강제력을 동원해야만 사람들이 자신들의 선을 위해 행동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가축들은 매로 쳐서 목초지로 몰아가야 한다.” 당나귀는 금보다는 짚이나 먹는 것을 좋아 하리라.[83]

헤라클레이토스의 형이상학은 가장 정력적으로 활동한 근대인들까지도 만족할 정도로 충분히 역동적이다.” 이 세계는 만물에 대해 똑같으며, 신이든 인간이든 어는 누구도 창조하지 않았다. 하지만 세계는 일찍이 불이었으며 지금도 불이고 앞으로도 언제나 살아 움직이는 불로서, 법칙에 따라 타고 꺼지기를 반복한다.[86]

불이 변형되어 최초로 나타난 존재가 바다이며, 바다의 절반은 땅이고 절반은 회오리 바람이다.”[86]

만물이 끊임없는 흐름 속에 있다는 학설보다 훨씬 더 중시한 학설이 하나 더 있는었는데, 대립물의 혼합 학설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이렇게 말한다. “ 사람들은 다양하게 변하는 존재가 어떻게 자신과 일치하여 조화를 이루는지 알지 못 한다. 조화는 활과 리라 처럼 대립하는 힘의 긴장을 조율하는 것이다.” [86]

쌍을 이르는 사물은 온전하면서 온전하지 않고, 함께 모이면서 떨어지며, 조화로우면서 조화되지 않는다.”[86]

선과 악은 하나이다” “ 신에게는 모든 일이 공평하고 선하고 옳지만, 인간이 어떤 일을 그르고 어떤 일은 옳다고 주장한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은 또같은 길이다.”  신은 낮이자 밤이며, 겨울이자 여름이며, 전쟁이자 평화이며, 배부름이자, 긂주림이다. 그런데 신은, 불이 향료와 섞일 때 제각기 내는 향기에 따라 여러 이름으로 불리듯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런데도 결합되어야 할 대립물이 없다면 통일도 없을 것이다. “대립물은 우리에게 좋은 것이다.”[87]

당신이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는 까닭은 늘 새로운 강물이 당신에게 흘러들기 때문이다.[88]

태양은 날마다 새로워진다.” 흔히 변화의 보편성에 관한 헤라클레이토스의 신념은만물은 유전한다.” 는 구절로 표현되었다고 생각한다. [88]

인간은 재앙을 겪고 나면 쉽게 예전의 초지상적인 희망으로 되돌아가려 한다. 지상의 삶에 절망하게 되면, 평화를 구할 곳은 천국뿐인 셈이다.[89]

시인들은 사랑하는 것들을 모조리 휩쓸어가는 시간의힘을 한탄했다. 시인은 젊음을 부추기는 화려한 몸짓을 못 박아 고정하고, 미인의 이마를 주름지게 하며, 진귀한 자연의 진실을 먹고 사니, 시간의 낫이 베어버릴 것 외에는 아무것도 서 있지 않다. 그런데도 시간 속에서 나의 시는 희망을 품고 서 있다. 시간의 잔인한 손아귀에서도 너의 가치를 찬미하며.[89]

영원한 생명이란 시간과 전적으로 독립해서 존재하며, 이전도 없고 이후도 없으므로 변화의 가능성이 논리적으로 배제된다. [90]

철학자들은 시간의 제국에 종속되지 않는 영원한 존재를 찾으려는, 위대하고도 끈덕진 탐구를 감행했다. 이러한 탐구는 바로 파르메니데스와 더불어 시작된다.[91]

5  파르메니데스

그리스인들은 이론에서든 실천에서든 온전한 입장이나 중용을 취하지 않았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이 변한다고 주장했고, 파르메니데스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고 맞받아쳤다.[92]

파르메니데스는 자신의 가르침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진리를 따르는 길의견을 따르는 길이라 한다. 우리는 후자에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그가 진리를 따르는 길에 관해 말한, 후세까지 살아남은 핵심 논점에 해당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는 불가능하며, 그대가 무를 알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는 까닭은 사유와 존재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93]

철학이 꽤 현대에 이른 시기까지도 파르메니데스에게서 수용한 사상은 역설의 극단을 보여준 모든 변화의 불가능성이 아니라 실체의 불멸성이었다.’ 실쳬라는 말은 바로 뒤를 이은 후계자들에게서 분명하게 사용되지는 않았으나, 그 개념은 이미 그들의 사변속에 드러나 있다.[98]

6장 엠페도클레스

, 공기, , 물을 4원소가 (‘원소란 말을 쓰지는 않았지만) 로 확립한 사람이 바로 엠페도클레스이다. 이 각 원소는 영원히 지곳하지만 각기 다른 비율로 혼합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가 세계에서 발견하는, 변화를 겪는 복합 실체들이 생겨날 수 있었다. 복합 실체들은 사랑의 힘으로 결합하고 다툼의 힘으로 분리되었다. 엠페도클레스에게 사랑과 다툼은 흙, 공기, , 물과 같은 수준에  속한 근원적 실체였다. 사랑이 상승하는 시기가 있는 반면에 다툼이 더 강성해지는 시기가 있으며, 사랑이 완전한 승리를 거둔 때가 바로 황금시대였다.[102]

세계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목적의 지배를 받지 않고 단지 우연의 힘과 필연의 힘으로 변할 따름이다. 거기에 주기가 있어서 원소들이 사랑으로 완전히 결합하면 다툼이 원소들을 다 분리하면 사랑이 원소들을 재결합시킨다. 이리하여 복합 실체는 제각기 일시적으로 존속하며, 원소들만이 사랑과 다툼과 더불어 영원히 지속한다. [102]

엠페도클레스가 과학 분야 밖에서 보여준 독창성은 4원소설을 내놓고 사랑과 다툼이라는 두 가지 원리를 이용하여 변화를 설명한 데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일원론을 거부했으며, 자연의 변화 과정은 목적이 아니라 우연과 필연의 지배를 받는다고 생각했다. 이 점에서 보면 그의 철학은 파르메니데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보다 더 과학적인 성향을 띤다. 다른 점에서 보면 그는 당시 유행하던 미신을 묵인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점에서 그가 더 최근에 속한 여러 과학자보다 더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105]

7장 아테네의 문화

아테네인들은 철학에 대한 관심이 컸기 대문에 다른 도시국가 출신 교사들의 말도 열심히 경청할 줄 알았다. 논쟁술을 배우고 싶은 젊은이들은 소피스트들을 열심히 찾아다녔다. 플라톤의 대화편[프로타고라스]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외부 출신의 유명한 교사의 말에 열렬히 매달리는 학생들을 재미나게  풍자적으로 묘사한다.[108]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다룬 내용은 대부분 페리클레스 시대에 소크라테스가 일으킨 논쟁들로 추정되며, 부호들의 생활에 기꺼이 동의하며 유쾌하게 묘사한다. 플라톤은 아테네의 귀족 가문 출신인 데다 전쟁과 민주정치가 상류층의 부와 안전을 깨뜨리기 이전 시대의 전통 속에서 성장했다. 노동할 필요가 없었던  젊은이들은 여유 시간 대부분을 과학, 수학, 철학 연구에 썼다.[108]

정치 체제가 붕괴했는데도 아테네의 특권은 유지되어, 거의 천 년간 아테네는 철학의 중심지로 역활을 다했다. 알렉산드리아가 수학과 과학 분야에서 아테네를 눙가했지만, 아테네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활약으로 철학 분야에서는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도시가 되었다.[109]

8장 아낙사고라스

아낙고라스는 피타고라스, 헤라클레이토스, 파르메니데스에 필적하지는 못 하지만 상당히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 철학자이다. 이오니아인으로서 이오니아 과학과 철학 전통을 이어받았다. 그는 아테네인들에게 처음 철학을 소개한 인물이자 물리적 변화의 제일 원인이 정신이라고 제안한 첫 인물이기도 하다.[110]

아낙사고라스는 만물은 무한히 나뉠 수 있으며, 물질의 가장 작은 부분이라도 네 원소의 일부를 포함한다고 주장한다. 사물은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원소의 모양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예켠대 만물은 얼마간의 불을 포함하지만, 불 원소의 양이 더 많은 경우에만 불이라 부른다. 그는 엠페도클레스처럼 진공의 존재를 부정하며, 클렙세드라나 부풀어 오른 가죽부대 속에 아무것도 없는 듯이 보이지만 공기가 들어 있다고 말한다. 그는 선대 철학자들과는 달리 정신이 생물의 일부로 들어가 죽은 물질과 구별시켜주는 실체라고 생각한다.[111]

정신은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지배하는 힘으로 무한하고 자기조절 능력이 있으며, 어떤 것과도 혼합되지 않는다.[112]

아낙사고라스에 따르면 정신은 모든 운동의 근원이다. 정신이 회전 운동을 일으켜 점차 세계 이곳저곳으로 퍼져나가다가 가장 가벼운 것들은 경계선 주위로 흩뜨리고, 가장 무거운 것들은 중심에서 모은다. 정신은 한결같아서 인간에게나 동물에게나 똑같이 완전한 것이다. 겉으로는 인간이 동물보다 우월해 보이지만, 이것도 인간이 손을 사용할 수 있기에 생긴 결과이다. 겉으로 드러난 지능의 차이는 모두 실제로는 신체의 차이에서 기인한다.[112]

아낙사고라스는 일급 철학자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처음으로 아테네에 철학을 전파하고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준 철학자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113]

9장 원자론자들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의 철학에 공통된 근본 사상은 레우키포스에게서 비롯되었으나, 이 사실을 밝혀내려 해도 두 사람을 도저히 떼어놓을 수 없으며, 철학사를 서술할 경우 그러한 시도가 중요하지도 않다. 데모크리토스가 아니라면 레우키포스가 파프메니데스와 엠페도클레스로 가가 대표되던 일원론과 다원론을 중재하기 위해 원자론을 앞장서서 이끌었다. 그들의 관점은 놀라우리만치 근대 과학의 관점과 흡사했으며, 그리스 사상이 범하던 대부분의 과오를 피할 수 있었다.[116]

원자론자들은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테레스와 달리 목적이나 목적인과 같은 개념을 끌어들이지 않고 세계를 설명하려 했다. 어떤 일의목적인은 그 일을 발생시키는, 미래에 일어난 사건이다.[117]

원자론들의 견해를 논리적으로 발전시킨 결과가 뉴턴의 절대 공간이론이고, 이 이론은 실재를 비존재로 돌리는 난점에 부딪히게 되는 듯 하다. 절대 공간 이론에 맞선 논리적 반론은 없지만, 주된 반론은 절대 공간을 알 길이 없으므로 경험 과학에 필수적인 가설이 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123]

 

원자들이 유일하게 하는 일은 운동하다가 서로 부딪히는 일이며, 때로는 우연히 맞 물릴 수 있는 모양이 되어 결합하기도 한다. 원자들의 모양은 여러 가지인데, 불은 구형의 작은 원자들로 이루어지며 영혼도 그렇다. 원자들은 충돌하면서 소용돌이 운동을 하고, 여기에서 물체들이 생겨나고 최후에는 세계가 형성된다. 여러 세계가 존재하는데, 어떤 세계는 성장하고 어떤 세계는 파괴되어간다.[123]

10장 프로타고라스

그는 [신들에 관하여] 라는 저술의 서두에서 이렇게 말한다.”나는 신들이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혹은 모습이 어떤지에 대해 자신 있게 말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신들에 대해 확실한 지식을 얻지 못하는 , 주제가 모호하다든지 인생이 짧다는 여러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130]

그는 주로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 즉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존재한다는 척도이고 존재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척도이다.” 라는 학설로 주목받는다. 이것은 사람이 제각기 만물의 척도이며, 사람들의 의견이 다를 때 한 사람이 옳고 다른 사람은 그르게 되는 객관적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프로타고라스의 학설은 본질상 회의적이고, 감각의속기 쉬운 성질에 근거한다.[130]

실용주의를 창시한 세 사람 가운데 실러는 자신을 프로타고라스의 제자라 부르는 버릇이 있었다. 내 생각에 이것은 플라톤이 [테아이테토스] 에서 어떤 의견이 다른 의견보다 더 참될 수는 없지만 더 나을 수 있다고 해석한 탓이다.[130]

2부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1장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적의를 품게 된 더 해묵은 동기를 밝히면서, 자신은 과학자가 아니라고 지적하며 이렇게 말한다.”나는 물질에 대한 사색에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또 자신은 교사가 아니기 때문에 가르친 대가로 돈을 받지 않는다고 말한다.[143]

 

오히려 신만이 지혜롭지요. 신은 신탁을 통해 인간의 지혜란 가치가 없다는 점을 보여주려 합니다. 소크라테스에 대해 말한 것이 아니라 단지 나의 이름을 사례로 써서 이렇게 말하려 했던 것뿐입니다. , 인간들이여, 소크라테스처럼 자신의 지혜가 사실은 가치 없다는 것을 아는 자가 바로 가장 현명한 자라고 말이지요.” 소크라테스는 지혜를 사칭하는 자들의 거짓을 폭로하는 일에 일생을 바쳤기 때문에 절대 빈곤 속에서 살았지만, 신탁을 입증하며 살아야 한다는 의무감을 더 중시했다.[143-144]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지혜롭지 않은 까닭은 죽음이 삶보다 더 좋은 일이 아닌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145]

그는 자기 확신에 찬 고매한 품성을 갖추었고, 세속적인 성고에는 무관심하며, 신의 음성에 인도받는다고 맏고, 명료한 사고야말로 올바른 삶에 필요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설득하는 사람이다. 마지막에 말한 것만 제외하면 그는 그리스도교의 순교자나 청교도와 흡사하다.[147]

하늘에 속한 영혼과 따에 속한 신체가 분리된 이완적 세계에서, 그는 영혼의 힘으로 신체를 완벽하게 제어했다. 그는 마지막 순간 죽음에 무관심하고 냉정한 태도를 보이며, 영혼의 제어 능력을 최후로 입증한 사례이다.[149]

변증법을 약간 더 넓은 부류에 적용하면 유익한 결과를 얻기도 한다. 논쟁의 대상이 사실이 아닌 논리와 관련된 경우라면 언제든 토론이 바로 진리를 이끌어내는 좋은 방법이다.[152]

변증법, 혹은 일반인이 더 잘 이해하기 쉽도록 표현하자면 자유로운 토론 습관은 논리적 일관성을 증진하기 때문에 유용하다.’철학은 플라톤의 방법으로 추구하는 탐구 활동의 총합으로 정의될지도 모른다.[152]

12장 스파르타의 영향

스피르타는 그리스 사상에 이중으로 영향을 끼쳤는데, 현실과 신화가 제각기 중요한 역활을 담당했다. 현실적 측면에서 스파르타는 아테네와 전쟁을 벌여 승리했으며, 스파르타의 신화는 플라톤의 정치 이론과 후대에 등장한 수많은 저술가의 정치 이론에 영향을 미쳤다. 충분히 발전한 신화는 플루타르코스의[라쿠르고스의 생애]에 등장하는데, 스파르타의 신화가 추구한 이상은 후대에 루소와 니체의 학설을 비롯해 국가사회주의의 형성에 큰 역화을 담당했다. 스파르타의 신화가 역사적인 측면에서 스파르타의 현실보다 훨씬 중요한 가치와 의미를 갖지만, 현실부터 다루려는 까닭은 바로 현실이 신화의 근원이었기 대문이다.[153]

다른 지역의 그리스인들이 스파르타에 대해 경탄을 금치 못한 이유 한 가지는 스파르타의 안정성 때문이었다. 그리스의 다른 도시들은 전부 혁명을 겼었으나, 스파르타의 정치 체제는 수세기 동안 변하지 않고 유지되면서 감독관들의 권력이 점차 증가했을 뿐인데, 그것도 폭력이 아닌 합법적인 수단을 통해 일어났다.[158]

스파르타식 교육을 통해 주입한 내용 가운데 하나가 부를 경멸하고 소박한 삶을 추구하라는 것이었는데도 이런 일이 일어났다.[159]

세계사를 연구하는 역사가에게 중요한 주제는 그리스 도시들 간에 벌어진 소규모 전쟁들이나 지배권을 획득하려는 야비한 당파 싸움들이 아니라, 짧은 기간동안 지속된  역사적 사건이 종결되었을 때 인류에게 남은 기억들, 이를테면 눈보라 치는 고된 하루를 견뎌야 했던 산악인에게 떠오르는 알프스 산맥의 눈부신 해돋이 광경의 회상 같은 것들이다.[161]

13장 플라톤 사상과 근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고대나 중세, 근대에 속한 모든 철학자에게 영향을 가장 크게 끼쳤다. 두 철학작 가운데 후세에 영향을 더 많이 준 인물은 플라톤이다. 이렇게 말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한 가지 이유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이 플라톤의 영향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이고, 다른 한 가지는 그리스도교 신학과 철학이 적어도 13세기까지는 아리스토텔레스보다 플라톤 사상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166]

플라톤 철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야 하는 문제는 다섯가지이다. 첫째는 이상향으로서, 기나긴 역사 속에 등장한 최초의 형태에 속한다. 둘째는 이상 이론으로서,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보편적 문제를 다룬 선구적 시도로 평가된다. 셋째는 영혼 불멸을 지지하는 논증이고, 넷째는 우주론이며, 다섯째는 지각이 아닌 상기로 간주되는 지식 개념이다.[166]

플라톤은 파르메니데스에게서 실재는 영원하고 시간을 초월하며, 논리적 근거에 입각해 모든 변화는 환상에 불과하다는 믿음을 이끌어냈다.[167]

플라톤과 현대 사상을 비교해보면 두 가지 일반적인 질문이 제기 된다. 첫째, ‘지혜와 같은 덕이 존재하는가? 들째, 지혜가 존재한다면 정치 권렬이 지혜를 실현할 정치 체제를 고안할 수 있는가?

플라톤이 가정한지헤의 의미는 구두장이나 의사나 군사 전략가가 소유하는 특수한 기술이 아닐 것이다. 지혜가 특수한 기술이 아니라 더욱 일반적인 기숭이어야 하는 까닭은 지혜를 소유함으로써 현명하게 통치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169]

14장 플라톤의 이상향

국가의 명목상 목적은정의’(正義)라는 말을정의’(定義) 내리는 것이다. 그런제 첫 단계부터 모든 일은 소규모보다 대규모로 살펴보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개인을 정의롭게 만드는 조건보다 국가를 정의롭게 만들기 위한 조건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방법이 더 낫다고 결정한다. [170]

누구나 넉넉하게 먹고, 누구나 서로 친절하게 대하기를 바랄 수도 있는데, 만약 내가 이렇게 바란다면 남들도 그렇게 바라기를 원하기 마련이다.이렇게개인과 무관한 윤리로 보이는 견해를 형성할 수 있지만, 이렇게 보이는 견해도 사실은 나 자신의욕구라는 개인적 근거에 의존한다. 왜냐햐면 욕구의 대상이 나 자신과 무관할 때조차도 욕구는 나의 욕구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 사람은 누구나 과학을 이해하기를 바라고, 다른 사람은 누구나 다 예술의 가치를 인정하기를 바랄 수도 있다. 말하자면 이러한 욕구의 차이는 두 사람 사이의 개인차로 생긴다.[179]

플라톤은 이상 국가가 선하다는 사실에 대한 입증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윤리가 객관성을 지닌다고 믿는 민주주의자는 이상 국가가 약하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181]

 15장 이상 이론

철학자를 철학자이게 만드는 요소는 무엇이며철학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밝혀내야 한다. 이어 진행된 논의는국가에서 유명한 부분으로, 어쩌면 후애에 미친 영향이 제일 컸을지도 모른다. 군데군데 문학 작품과 같은 아름답고 멋진 특징이 드러나, 독자들도 나처럼국가에서 주장한 내용에 동의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감동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184]

철학자들만 플라톤에게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다. 청교도들이 왜 가톨릭 교회의 호화로운 전례, 교회, 음악, 교회 미수레레 반대했겠는가? ‘국가 10권에서 해답을 찾게 될 것이다. 아이들은 왜 학교에서 수학을 꼭 배워야 하는가? 철학자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우선 어원에 따라 철학자는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한다. 그런데 철학자는 탐구심이 강한 사람이 지식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지식을 사랑하는 사람은 아니다. 통속적인 호기심만으로 철학자가 되지 못하는 법이다. 그러므로 철학자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고친다. 철학자는진리를 통찰함을 사랑하는 사람이다.그런데 진리 통찰이란 무엇인가?[185]

지식과 의견은 어떻게 다른가? 지식을 얻는 사람은 무엇, 말하자면 존재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존재하는 무엇에 대해 지식을 얻게 마련이다. 지식이 틀릴 수 없는 까닭은 논리적으로 오류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견은 오류가 되기도 한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존재하지 않는 무엇에 대한 의견은 불가능하기 대문에 생길 수 없다. 존재하는 무엇에 대한 의견은 지식이 될 테니까 더는 의견이 아니게 된다. 그러므로 의견은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는 무엇에 대한 것일 수 밖에 없다. [186]

플라톤의 학설에는 선대 철학자들에게 돌릴 수 없는 아주 중요한 무엇, 바로이상, 혹은형상이론이 있다. 이상 이론의 일부는 논리 부문이고, 일부는 형이상학 부문이다.[186]

플라톤에게 철학은 일종의 통찰, 진리’ ‘통찰이다. 철학은 수수 지서의 활동만이 아니다. 철학은 지혜일 뿐만 아니라 지혜에 대한 사랑이기도 하며, 이러한 사유와 감정의 친밀한 합일은 스피노자가 말한신에 대한 지적 사랑과 거의 같다. 어떤 종류이든 창작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정도가 크든 작든 오래 애쓴 끝에 진리나 아름다운 형체가 한순간 눈부시게 환히 나타나거나 나타나는 듯이 보이는 체험을 한다. 그저 사소한 일에서 시작해 체험하는 수도 있고, 우주를 바라보며 체험하기도 한다.[189]

플라톤은 명료한 지성의 통찰과 혼란스러운 감각 지각상의 차이를 시가의 비유를 통해 설명하려 한다. 그는 시가이 눈과 물체 뿐만 아니라 빛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 밖의 감각들과 다르다고 말한다. 우리는 태양이 비치면 물체를 더 또렷하게 본다. 어두을 무렵에는 물체를 보긴 하지만 혼동하고, 캄캄해지면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이상계는 물체들이 햇빛에 드러날 때 보게 되는 세상인 반면, 일시적인 사물 세계는 어둑어둑해서 물체를 혼동하게 되는 세상이다. 눈은 영혼에 비유되고, 태양은 빛의 근원으로서 진리나 선에 비유된다.[191]

플라톤 철학에서 선이 누리는 지위는 독특하다. 플라톤은 학문과 진리는 선과 유사하지만, 선이 더 높은 지위를 차지한다고 말한다.”선은 본질이 아니지만, 위계와 권능의 측면에서 본질을 훨씬 능가한다.”[192]

플라톤이 만들어낸 또 한 가지 이상야릇한 견해는 지식의 대상과 의견의 대상이 다르다는 것이다.[196]

16장 플라톤의 영혼 불멸설

소크라테스가 죽음을 아두고도 비탄에 빠지지 않는 까닭은 다음과 같이 확신하기 때문이다.”우선 나는, 지혜롭고 선한 다른 신들에게로 간다고 확신합니다. 나는 죽은 자들을 위한 무엇, 악한 자들보다는 선한 자들을 위해 훨씬 더 나은 것이 존재하리라는 선한 희망을 품고 있지요.”[202]

철학자는 먹고 마시는 일을 걱정해서는 안 되지만, 물론 필요한 만큼 먹어야 한다. 그래서 단식을 권하지도 않는다. 철학자는 사라의 쾌락이나 값비싼 의복이나 신발, 사람을 치장하는 장신구에 대해 걱정해서도 안 된다. 철학자는 육체에 관심을 갖지 말고 한결같이 영혼만을 돌보아야 한다.’철학자는 가능한 한 육체에서 멀어지고 영혼으로 돌아가고 싶어할 것이다.”[203]

경험주의자에게 육체는 우리가 외부의 실재계와 접촉하게 되는 통로이지만, 플라톤에게 육체는 이중으로 악한, 망원경을 통하듯 희미하게 보이도록 사물을 왜곡하는 매체인 동시에 지식 추구와 진리 통찰에 집중하지 못 하게 만드는 정욕의 근원이다.[205]

플라톤은 인간이 욕구를 최소로 줄이면 아주 적은 돈으로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확실히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는 철학자가 육체노동을 면제받아야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창출한 부에 의존해서 살아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207]

절대 미는 언제나 동일서을 유지하지만 아름다운 사물들은 계속 변화한다. 따라서  눈에 보이는 사물은 잠시 존재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사물은 영원히 존재한다. 육체는 눈에 보이지만 영혼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영원한 사물 가운데 하나로 분류해야 한다.[210]

시간이 존재하기 전에는 낮도 없고 밤도 없었다. 우리는 그 영원한 본질에 대해 존재했다거나 존재할 것이다라고 말해서는 안 되며, 존재한다고만 말해야 맞는다. 이것은움직이는 영원한 영상에 대해서는 존재했다거나 존재할 것이라는 말도 맞음을 함축한다.[215]

시간과 하늘은 동시에 존재하게 되었다. 조물주가 태양을 만들어서 새물들이 셈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고, 누구나 생각하듯 낮과 밤의 연속이 없었더라면 수를 생각해내지 못햇으리라. 낮과 밤, 달과 해를 보면서 수에 대한 지식을 창안했으며, 우리에게 시간 개념이 생겨났고, 여기에서 철학이 유래했다. 철학은 우리 시력의 덕택으로 얻은 크나큰 혜택이다.[215]

죽지 않은 영혼은 머릿속에 있고, 죽는 영혼은 가슴속에 있다.[219]

18장 플라톤의 지식과 지각

근대인들은 대부분 경험적 지식이 지각에 의존하거나 지각에서 유래한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플라톤이나 다른 특정 학파에 속항 철학자들 사이에는지식이라 부를 만한 지식은 감각에서 유래하지 않으며, 유일하게 진정한 지식은 개념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전혀 다른 학설이 존재한다.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2+2=4” 는 진정한 지식이지만, “눈은 하얗다는 진술은 너무 모호하고 불확실해서 철학자의 진리 체계 안에서 어떤 자리도 차지하지 못한다.[221]

지각 문제로 돌아가면 지각은 대상과 감각 기관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의 결과로서, 헤리클레이토스의 학설에 따르면 지각 대상과 감각 기관은 늘 변하를 겪으면서 지각 표상 역시 변하게 한다. 소크라테스는 건강할 때는 포도주 맛이 달콤하지만 병이 났을 때는 시큼하다고 말한다. 여기서는 지각하는 사람에게 일어난 변화가 지각 표상에 변화를 일으킨 원인이다.[223-223]

사람이 제각기 만물의 척도라면 어느 누구든 다른 사람만큼 지혜롭다는 논증에 대해서, 소크라테스는 프로타로라스를 대신해 아주 흥미로운 답변, 말하자면 어떤 판단이 다른 판단보다 더 참될 리는 없지만 더 나은 결과를 낸다는 의미에서 더 나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이 점이 바로 실용주의를 암시한다.[223]

우리는 지식과 지각을 동일하게 보는 견해에 맞선, 프라톤의 마지막 논중에 이르렀다. 그는 우리가 눈이나 귀로 지각하지 않고 눈과 귀를 통해서 지각한다고 지적하며, 이어서 우리가 획득한 어떤 지식은 감각 기관과 아무 관련도 없다고 주장한다.[225

플라톤이 논의한 서로 연관된 세 가지 논제는 다음과 같다.

1)     지식은 지각이다.

2)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

3)     만물은 흐름의 상태에 있다.

19장 아르스토텔레스 형이상학

중요한 철학자의 저술을 일고 이해할 때, 무엇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을 읽고 이해할 때는 두 가지 방법으로, 곧 이전 철학자들과 관련짓거나 이후 철학자들과 관련지어 연구할 필요가 있다. 전자의 측면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장점이 아주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후자의 측면에서는 단점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단점에 대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보다 후대 철학자들의 책임이 더 크다.[233]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자로서 여러 가지 점에서 선대 철학자들 중 그 누구와도 달랐다. 그는 오늘날의 교수처럼 글을 쓴 첫 인물이다. 그가 쓴 논문은 체계를 갖추어 토론 내용이 항목별로 분류되어 있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영감을 받은 예전자가 아니라 전문 교사이다. 그의 저작은 비판하는 내용이 많으며, 주도면밀하고 산문체로 쓰여 있어 바쿠스풍 열광의 흔적이 나타나지 않는다. 플라톤에게 스며들었던 오르페우스교의 요소가 아리스토텔레스에서는 희석되어 상식이라는 강렬한 요소가 혼합되었다.[236]

 

그는 상세한 서술이나 비판의 측면에서는 최고 수준을 자랑하지만, 기초의 명확성이나 티탄의 광휘가 부족하기 때문에 거대한 체계를 구축하는 데 실패한다.[236]

아리스토텔레스와 그를 추종한 스콜라 철학자들에게 중요한 용어가 하나 더 있는데, 바로본질이라는 용어이다. ‘본질은 결코보편자와 동의어가 아니다. 당신의 본질은당신이 바로 당신의 본성에 따라 존재하게 하는 무엇이다.[239]

20장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

신은 행복이며 행복은 영혼의 활동이라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이 영혼을 두 부분, 곧 이성적인 부분과 비이성적인 부분으로 나눈점에서 옳았다고 말한다.[249]

덕에는 두 가지 종류, 곧 영혼의 두 부분에 상응하는 지적인 덕과 도덕적인 덕이 있다. 지적인 덕은 가르쳐서 얻고, 도덕적인 덕은 습관을 키워서 얻는다.[249]

우리는 적어도 윤리 이론 속에서는 인간 존재가 모두 동등한 권리를 가지며, 정의가 평들을 포함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란 평등이 아니라 가끔씩만 평등을 수반하는 정확한 비례를 뜻한다고 생각한다.[250]

불평등한 관계에서는 누구든지 각자의 가치에 비례하여 사랑받아야 하기 때문에, 열등한 사람은 우월한 사람이 열등한 사람을 사랑하는 정도보다 우월한 사람을 더 많이 사랑해야 옳다.[251]

21장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에 따르면, 어떤 사람들은 혁명이란 모름지기 재산을 규제하는 쪽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라는 근거로 시민의 정치적 평등을 바람직한 일로 생각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논중을 거부하면서 가장 큰 죄악은 결핍이 아니라 과잉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어느 누구도 추위를 피하려 폭군이 되지는 않는다.[268]

좋은 정치 쳬제에 속하는 세 종류는 군주정치, 귀족정치, 입헌정치이다. 나쁜 정치 체제에 속하는 세 종류는 참주정치, 과두정치, 민주정치이다.[269]

아리스토텔레스는 과두정치와 민주정치의 차이가 집권당의 경제적 지위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한다. 부유층이 빈곤층을 고려하지 않고 통치하면 과두정치가 되고, 권력이 궁핍한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면 부유층의 이익을 무시하면 민주정치가 된다.[269]

아리스토텔레스는비례에 따른 평등의 난점을 결코 깨닫지 못했던 듯하다. 만약 비례에 따른 평등이 진정한 정의라면 그 비례가 바로 덕에 속할 수밖에 없다.[270]

그의 정치학에서 제시한 근본 가정들은 어떤 현대 저술가와 비교해도 차이가 뚜렷하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국가의 목적은 교양을 갖춘 신사, 말하자면 귀족다운 심성과 아울러 지식과 예술에 대한 사랑도 지닌 인간을 길러 내는 것이다.[274]

22장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

아리스토텔레스는 여러 학문 분야에서 영향을 크게 미쳤지만 논리학 분야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형이상학 분야에서 플라톤이 여전히 최고 권위를 누리던 고대말기,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리학 분야의 권위자로 인정을 받았으며 중세 내내 그 지위를 유지했다.[276]

그가 논리학에서 이룩한 가장 중요한 업적은 삼단논법 학설이다. 상단논법은 대전제, 소전제, 결론 세 부분으로 구성된 논증이다. 삼단논법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각각에 스콜라 철학자들이 붙인 이름이 있다. 가장 친숙한 삼단논법은바르바라라고 부르는 형식이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대전제)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소전제)

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결론) [277]

 

이러한 삼단논법 체계는 형식 논리학의 시작이었고, 그 자체로 중요한 의의를 가지며 경탄할 만한 업적이었다. 그러나 형식 논리학의 시작이 아니라 목적을 고려한다면, 세 가지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278]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저술은 대단한 기량을 보여주며, 지성인의 독창적인 연구가 여전히 활발하던 시기에 세상에 나왔더라면 인류에게 유익했으리라. 안타깝게도 그의 저술들은 그리스 사상의 창조적인 시기가 끝날 무렵에 세상에 나왔기 대문에 권위 있는 학설로 수용되고 말았다. 논리학 분야에서 독창적인 연구가 부활될 때까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이 2000년 동안 군림하게 되면서 아리스토텔레스를 권좌에서 몰아내는 일은 대단히 어려워졌다.[285]

23장 아리스토테레스 자연학

운동의 궁극적 기원은 의지이다. 지상에서는 인간과 동물들의 변덕스러운 의지가 운동의 기원이고, 천상에서는 변화를 겪지 않는 최고 조물주가 운동의 기원이다.[288]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은 갈릴레오가 최초로 선언한 뉴턴의1 운동의 법칙과 양립할 수 없다. 1 운동 법칙에 따르면 모든 물체는 그대로 둘 경우에 이미 운동을 하고 있다면 일정한 속도로 직선운동을 계속하게 된다. 따라서 외부 원인은 운동이 아니라 운동의 속도나 방향 변화를 설명하기 필요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천체들의 자연스러운 운동으로 생각했던 원운동은 운동 방향의 연속 변화와 관련되기 때문에 뉴턴의 중력법칙처럼 원의 중심으로 향하는 힘이 필요하다.[291]

24장 그리스 수학과 천문학

에우클레이데스 [기하학 원론] 은 지금까지 저술된 위대한 저술 가운데 하나로서 그리스인의 지성이 보여준 기념적인 업적이다.[296]

기하학만큼이나 그리스인들의 업적이 두드러진 천문학을 살펴보자. 이전에 바빌로니아인들과 이집트인들은 수세기에 걸친 관측을 통해 천문학의 토대를 마련했다. 겉보기 운동을 기록했지만, 샛별과 개밥바라기가 같은 금성을 가르킨다는 사실은 알려지지 않았다.[297]

3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고대 철학

25장 헬레니즘

고대 그리스어 문화권에 속한 세계의 역사는 세 시기로 나누기도 한다. 첫 시기는 자유도시국가 시대이다.  이 시기는 필리포스 왕과 알렉사느로스 대왕의 등장으로 멸망했다. 들째 시기는 마케도니아 통치 세대이다. 이 시기의 마지막 잔재는 클레오파트라가 죽은 다음 로마가 입트를 합병하면서 소멸했다. 마지막 시기는 로마 제국 시대이다. 첫 시기의 특징은 자유와 무질서이고, 둘째 시기의 특징은 복종과 무질서이며, 마지막 시기의 특징은 복종과 질서이다.[304]

알렉산드로가 침입한 곳이라면 어디나, 아프가니스탄의 산 속이든 작사르테스 강의 기슭이든 인더스 강의 지류이든 그리스 도시가 들어섰으며, 자치정부의 법령과 더불어 그리스 제도를 재현하려 했다.[305]

알렉산드로는 이슬람교애서도 전설적인 영웅으로 남았으며, 오는날까지도 히말라야 산지의 족장들은 자신들이 알렉산드로의 후예라 주장한다. 역사 속에 실존했던 영웅 가운데 어느 누구도 알렉산드로만큼 신화 형성에 적합한 능력을 갖춘 사람은 없었다[308]

마음이 머물 곳은 마음뿐, 마음먹기에 따라 지옥이 천국이 되기도 하고 천국이 지옥이 되기도 하는 법이다.[312]

그리스인의 지성은 새로운 정치 문제에 직면하자 무능력한 모습을 여실히 드러냈다. 로마인들이 그리스인들보다 둔하고 난폭하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도 없지만 로마인들은 적어도 질서는 확립했다[312]

당신이 저축해둔 돈이 내일 전부 없어질지도 모른다면 검약이란 소용이 없어진다. 당신이 정직하게 대한 사람이 당신을 속인 게 확실하다면 정직이란 어떤 이득도 주지 않는다. 대의가 전혀 중요하지 않거나 안정된 상황에서 승리할 기회를 잡지 못한다면, 단호하게 대의를 고집하는 일도 이익이 되지 않는다.[315
]

 26장 키니코스 학파와 회의주의 학파

철학의 네 학파는 알렉산드로스 시대 즈음에 창설되었다. 가장 유명한 두 학파 스토아 학파와 에피쿠로스 학파는 다음에 이어지는 두 장의 주제가 될 것이다. [319]

괴테는 현실에 만족한 편이고, 밴담은 개혁자이며, 셸리는 혁명가이고, 레오파르디는 염세주의자이다.[317]

디오게네스는 오늘날 말하는 냉소주의를 결코 가르치지 않았으며, 정반대 학설을 설파했다. 그는을 성취하려는 열정으로 불탔으며, 덕에 비하면 현세의 좋다는 것들을 가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욕망에서 해방됨으로써 덕과 도덕적 자유를 얻으려 했다. 행운이 따라야 얻게 되는 좋은 것들에 냉담해져라. 그러면 두려움을 떨치고 해방되리라.[321]

세상은 악하니 세상에 의존하지 않는 법을 배우라고 가르친다. 외부의 좋은 것들은 위태로운 행운의 선물로서 우리 자신이 노력한 끝에 얻은 보상은 아니다. 주관의 노력으로 성취한 좋은 것들, 즉 덕이나 체면하여 얻은 만족은 잃어버릴 염려가 없기 때문에 , 현명한 사람은 자신이 노력해서 얻은 것들의 가치만 인정할 것이다.[321]

회의주의는 자연스럽게 철학 정신과 거리가 먼 많은 사람들의 호감을 얻었다.사람들은 다양한 학파들 사에에 벌어진 신랄한 논쟁들을 지켜보며, 모두 비슷하게 사실은 도달할 수 없는 지식을 가진 양 가장한다고 결정해버렸다. 회의주의가 게으른 사람에게 위안을 준 까닭은, 무지한 사람도 평판이 좋은 지식인 못지않게 현명하다는 점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323]

27장 에피쿠로스 학파

에페쿠로스는 한 평생 건강이 좋지 않아 시달렸지만 불굴의 정신력으로 이겨내는 법을 터득했다. 인간이 크나큰 고통 속에서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주장을 최초로 한 사람은 스토아 학파가 아니아 바로 에피쿠로스였다.[334]

 에피쿠로스는 능도적인 쾌락과 수동적인 쾌락, 동적인 쾌락과 정적인 쾌락을 구분하는 점에서 인전의 몇몇 쾌락주의자들과 의견이 다르다. 동적인 쾌락은 바라는 목적을 달성하고, 고통이 동반되던 이전의 욕망을 충족할 때 존재한다. 정작인 쾌락은 만약 없으면 바라게 되는 사태가 존재하기 때문에 생기는 평형 상태에 존재한다. 배고품 츙족이 진행 즁이라면 동적인 쾌락이지만 , 배고품이 완전히 충족되어 도달한 활동 없는 상태는 정적인 쾌락이라 말할 수도 있겠다. 에피쿠로스가 두 가지 쾌락 가운데 정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주장하는 까닭은, 정적인 쾌락이란 순수하여 욕망을 자극하는 고통과 얽혀 있지 않기 떄문이다. 육체가 평형 상태에 있으면 고통도 없으므로, 우리는 격렬한 기쁨보다 평형상태와 온화한 쾌락을 추구해야 마땅하다.[336]

부와 명예 같은 욕망이 무익하고 헛된 까닭은 만족할 수 있는 때에도 인간을 불안하게 만들어 쉬지 못 하게 하기 때문이다. “모든 일에서 최고선은 사려이며, 사려는 심지어 철학보다 더욱 값진 것이다.” 철학은 그가 이해한 대로 행복한 삶을 보장하기 위해 계획된 실천 체계였다.[337]

에피쿠로스의 의견에 따르면 사회활동을 통해 얻는 쾌락 가운데 제일 안전한 것은 우정이다.[337]

28장 스토아 철학

소크라테스는 스토아 학파의 역사가 이어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으뜸가는 성인이었다. 재판을 받을 때 보여준 당당한 태도, 탈출 권고를 거절한 일,  죽음과 마주하여 보여준 침착한 태도, 불의를 행하는 자가 불의를 당하게 된다는 주장은 모두 스토아 학파의 가르침과 완벽하게 일치했다. 더위와 추위에 무관심한 태도, 간소한 음식과 검소한 옷차림, 육체의 안락에 현혹되지 않는 자립정신도 스토아의 가르침과 조화를 이루었다. [347]

개인의 삶은 자연과 조화를 이룰 때 선한 삶이 된다. 어떤 점에서는 어느 삶이나 다 자연의 법칙에 따라 자연과 조화를 이룬다. 그러나 또 다른점에서 인간의 삶은 개인의 의지가 자연의 목적으로 향하는 경우에만 자연과 조화를 이룬다. 덕은 자연과 일치하는 의지 속에 존재한다.[349]

 개인의 삶속에서 유일한 선은 덕이다. 건강, 행복, 재산 같은 것들은 결코 선하지 않다. 덕은 의지 속에 존재하므로,어떤 사람의 삶 속에서 실제로 선하거나 악 한이름 무엇이든 그 사람 자신에게 달려 있을 따름이다.[349]

인간은 저마다 세속적인 욕망에서 해방되면 완벽하게 자유로와 진다. 세속적인 욕망이 압도하게 되는 현상은 단지 거짓 판단을 하기 때문에 나타난다. 판단을 참되게 하는 현자가 스스로 가치가 잇다고 판단하는 모든 경우에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는 까닭은 어떤 외부의 힘도 그에게서 덕을 빼앗지 못 하기 때문이다.[350]

스토아 철학자는 행하기 위해 덕을 얻으려 하지 않소, 덕을 얻기 위해 선을 행한다. 그에게 이웃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 사랑이 피상적인 의미가 아니라면 스토아 학파의 덕 개념에는 결여 되어 있다.[351]

스토아 철학자들은 윤리에 중요한 가치를 부여했는데, 그들의 가르침이 다른 분야에서 열매를 맺게 된 경우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인식론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법과 자연권 학설이다.[367]

16,17,18 세기이 걸쳐 나타난 자연권 학설은 스토아 학파의 학설을 보활시킨 결과였으나 중요한 수정을 거쳤다.바로 스토아 철학자들이 자연법과 만민법을 구분했다.자연법은 일반적인 자연에 따라 만민이 동등하다고 주장했다.[368]

  29장 로마 제국의 문화

로마 제국은 다방면에 걸쳐 각각 다른 방식의 문화사에 영향을 미쳤다.

첫째는 로마가 헬레니즘 사상에 미친 직접적인 영향이다. 이 영향은 별로 중요하지 않고 깊숙이 파고들지도 못한다. 둘째는 그리스와 동방 세계가 로마 제국의 절반을 차지한 서방 지역에 미친 영향이다. 이 영향은 그리스도교를 포함했기 때문에 깊고도 지속적인 것이었다. 셋째는 문화를 널리 보급하고 사람들이 단일 정치와 결합된 단일 문명이란 생각에 익숙해지도록 기여한 로마의 오랜 평화기가 갖는 중요한 가치이다. 넷쩨는 헬레니즘 문명을 이슬람교도들에게 전하고, 마침내 서유럽에 전달한 역활이다.[369]

문명이 미치는 영역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로마는 참으로 중요한 역활을 했다. 북부 이탈리아, 스페인 , 프랑스, 또 서부 독일의 일부 지역은 로마 군단이 강압적 수단을 동원하여 정복함으로써 문명화되었다.[383]

30장 플로티노스

플로티노스는 신플라톤 철학의 창시자로서 최후의 위대한 고대 철학자였다.[385]

역사척 측면에서 프라티노스는 중세기와 가톨릭 신학의 그리스도교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친 중요한 인물이다.[386]

플라티노스는 시간과 공간 속에 나타난 겉모습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생존시에 일어난 사건들에 대해 말하기를 꺼렸다.[389]

플라티노스의 형이상학은 일자, 정신, 영혼,의 성 삼위일체에서 시작한다. 이 세가지는 그리스도교 삼위일체의 위격들과 달리 동등하지 않다. 일자가 최고의 자리에 존재하고 정신이 다음에 오고, 영혼은 마지막 자리에 존재한다. {390}

영혼이 신의 지성에서 생겨난 지식이며, 두 가지 면이 있다. 한 면은 정시에 열중한 내적인 영혼이고, 다른 면은 외부로 향해 있는 영혼이다. 외부로 향한 영혼은 하향운동과 결합되며, 하향운동 속에서 영혼은 자신의 모상을 만들어내는데, 이렇게 생겨난 것이 바로 자연이자 감각의 세계이다.[394]

기억은 시간 속에서 이어지는 우리의 삶과 관련이 있는 반면, 지고지선의 참된 삶은 영원 속에 존재한다. 그러므로 영혼이 영원한 삶을 향해 성장해 갈수록 영혼이 기억할 것은 점점 줄어든다. 친구들, 자식들, 아내에 대한 기억은 점점 망각 속으로 사라진다.[396]

2권 카톨릭 철학

  1 부 교부 철학

사도행전은 바울로의 관점에서 두 파벌 사이에 벌어진 논쟁을 기록하고 있다. 성 바울로가 여러 곳에 세운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일부는 물론 유대인들 가운데 개종한 사람들로 구성되고, 일부는 신흥 종교를 추구하는 이방인들로 구성되었다.[430]

유대인이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선민사상은 여전히 그리스인이 자존심을 건드리는 불쾌한 요소였다.[431]

정신과 영혼은 플로티노스처럼 어느 정도 구분한다. 정신이 타락하면 영혼이 되고, 영혼이 덕을 갖추면 정신이 된다. 궁극적으로 모든 영혼은 그리스도에게 완전히 복종하게 되면 육체가 없는 존재가 된다. 최후에는 악마조차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434]

서방 교회의 박사로 부리는 네 사람은 성 암브로시우스, 성 히에로니무스, 성 아우그스티누스, 그레고리우스이다. [443]

거의 천 년이란 시간이 흐를 때까지 그리스도 세계는 학문과 문화의 측면에서 그들에 필적하는 인물을 다시 배출하지 못했다. 암흑기와 중세기 내내 세 박사의 권위는 존중되었다. 그들은 교회 형성의 기틀을 세우는 데 다른 어느 누구보다 더 크게 기여했다.[443-444]

학습할 때는 자유로운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 겁을 주어 강제하는 방법보다 분명히 효과가 더욱 큽니다. 그러나 강제해야만 주님의 율법, 오 나의 하느님, 곧 스승의 회초리부터 순교자의 고난에 이르는 주님의 율법으로써, 자유에서 새겨나는 마음의 흔들림을 자제할 수 있습니다. [459]

성 아우그스티누스가 마니의 교리를 거부한 첫째 이유가 과학에 근거하고 잇다는 점은 아주 흥미롭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고백론에서 말했듯이 자신이 최고 턴문학자들의 저술들을 읽고 어떻게 천문학을 배우게 되었는지 기억하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천문학자들의 저술들과 마니가 정신 나간 바보짓으로 천문학적 주제에 관해 썼던 막대한 분량의 진술들을 비교해보았지요. 마니가 하지와 동지, 춘분과 추분, 일식과 월식에 대해 추리한 내용뿐만 아니라 세속 철학을 통해 천문학에 대해 알게 된 것도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461]

아우그스티누스는 길고도 열정적인 내적 투쟁 끝에 개종했다.그는 교수직, 애인, 신부를 차례로 포기하고 짧은 기간 은거하며 명상을 한 후 성 암브로시우스에게 세례를 받았다. 어머니가 누구보다 기뻐했으나 아들이 세례를 받은지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388년에 그는 아프리카로 돌아가 남은 생을 주교 직무 수행과 여러 이단, 즉 도나투스파, 마니교, 펠라기우스주의에 맞서 논쟁하는 글쓰기에 전념했다.[464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방대한 분량의 책을 쓴 저술가이며 주로 신학적인 주제에 대해 글을 썼다. [465]

세계는 왜 더 빨리 창조되지 않았을까? 그 까닭은더 빠른시간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가 창조되는 순간에 시간도 창조되었다. 신은 시간을 초월한 존재라는 의미에서 영원하다. 신 안에서는 이전과 이후가 없기 때문에 현재만 영원히 존재할 따름이다. 신의 영원성은 시간관계에 구애받지 않는다. 신에게 모든 시간은 동시에 존재한다. 신이 지신의 시간 창조에 앞서 존재하지 못하는 가닭은 시간 창조에 앞서 존재할 경우 신이 시간 속에 조재한다는 뜻일 텐데, 사실 신은 시간 흐름 밖에서 영원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이 성 아우그스티누스를 정말 감탄이 나올 만큼 상대적인 시간 이론으로 이끌었다.[467]

아우구스티누스는그러면 시간이란 무엇인가?” 라고 묻는다. 오로지 현재를 제외하고는 과거도 미래도 실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현재는 순간에 지나지 않으며, 시간은 오로지 지나가는 동안 측정될 따름이다. 그런데도 과거 시간과 미래 시간은 실재한다. ‘과거는 기억과 동일시하고,’미래는 기대와 동일시할 수박에 없으며, 기억과 기대는 둘 다 틀림없이 현재에 속한 사실들이다.[467]

시간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활동의 한 국면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론은, 이미 살펴보았듯이 프로타고라스와 소크라테스 시대 이후 고대 세계에서 점차 증가했던,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주관주의이다.[468]

선한 천사와 악한 천사가 존재하지만, 악한 천사도 신과 반대되는 본질을 지나지 못한다. 신의 적대자들은 본성이 아니라 의지에 따라 신을 적대하게 된다. 악한 의지는 결과를 낳은 원인이 아니라 결핍을 일으키는 원인일 뿐이다. 다시 말해 악한 의지는 결과를 산출하는 힘이 아니라 결핍에 지나지 않는다.[474]

신국은 하늘에 계신 신과 신국의 영원한 복락을 보여주는 아우구스티누스 성인 자신의 환영을 묘사하며 끝을 맺는다.[478]

유덕한 사람은 언제나 강하지만 악인은 늘 약하다. 왜냐하면 유덕한 사람과 악인은 둘 다 선을 바라지만, 유덕한 사람만 선을 얻기 때문이다. 악인은 벌을 받아 고통을 당하는 경우보다  형벌을 피할 경우에 더욱 불행해진다. “지혜로운 사람들에게 마음이 생겨날 여지는 없다.” [488]

서방 지역 수도원 생활의 발전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이름은 성 베네덱투스로 베네덱투스 수도회의 창시자이다.성 베네덱투스는 48년경 스폴레토 근처의 움브리아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20세가 되던 해 로마의 사치와 쾌락을 피해 독거할 동굴을 찾아 3년 동안 살았다.[498]

제2부 스콜라 철학

그레고리우스는 재난의 원천이 된 모든 사건에 맞서 정력적이고 기민하게 대처해 나갔다.그가 교황의 지위에 오르기 전, 로마의 주교직은 위계상 최고 지위에 해당되었으나 주교 관구 밖에서는 지배권을 전혀 인정받지 못했다.[503]

그레고리우스의 편지는 유별나게 흥미를 끄는데, 그의 성격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시대상을 드러내주기 때문이다.[504]

죄의 근원은 자유에 있다. 죄란 인간이 신에게 향하지 않고 자신에게 관심을 돌리기 때문에 발생했다. 악의 근거가 신 안에 있지 않은 까닭은 신 안에 악의 이상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악은 비존재이고 근거가 없는데, 그 가닭은 만약 악에 근거가 있다면 악도 필연적인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악은 선의 결핍일 뿐이다.[533]

안셀무스는 이성이 신앙에 종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나는 이해하기 위해 믿는다라고 말한다. 또 아우구스티누스를 추종하여 신앙이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신은 의로운 존재가 아니라 의로움 자체라고 말한다.[549]

토마스 아퀴나스, 1225또는 1226-1274 는 스콜라 철학자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 생각된다. 철학을 가르치는 모든 가톨릭 교육 기관에서는 단 하나뿐인 옳은 체계로서 토마스 아퀴나스 체계를 가르쳐야 한다.[591]

신에게는 의지가 있다. 신의 의지는 곧 자신의 본질이므로 , 신의 의지가 향하는 중요한 대상은 신의 본질이다.  신은 자신이기를 원할 때 다른 사물도 원하게 되는데, 신이 만물의 목족인 까닭이다. 신은 심지어 아직 존재하지 않는 사물도 원하고 자신의 선을 원하지만, 다른 것들은 원하기는 해도 필연적으로 원하지 않는다. 신의 의지는 자유롭다. 그래서 신의 의욕에 대해 이유를 드는 법이지 원인을 들지 않는다.[598]

13세기에 접어들면서 철학, 신학, 정치, 사회, 모든 측면을 아우른 위대한 종합에 이르렀는데 여러 요소들이 결합하는 과정을 거쳐 천천히 이루어졌다. 첫째 요소는 철학 사상들이었다. 다음 요소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 결과로 대량 유입된 동양의 종교들이었다.[620]

3권 근현대 철학

1부 르네상스에서 흄까지

1장 일반적 특징

보통근대라고 부르는 역사적 정신적 전망은 여러가지 점에서 중세에 속한 사고방식과 달랐다. 가장 중요한 두 가지 특징은 교회의 권위가 약화되고 과학의 권위가 향상되었다는 점이다.[638]

미국 독립전쟁과 프랑스 혁명 이후, 현대적인 의미에 민주주의가 중요한 정치적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사유재산제에 근거한 민주주의와 대립하는 사회주의는 1917년 에 이르러 최오로 정권을 획득한다.[639]

응용과학은 세계를 변화시키려는 시도부터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고, 비중이 계속 중가하여 인간의 사고에서 이른과학을 거의 몰아내는 수준까지 이르렀다.[640]

근대 철학은 대부분 개인주의와 주관주의적 경향을 그대로 간직했다. 이러한 특징이 두드러진 데카르트의 철학릉 보면 그는 자기 존재의 확실성에 근거해 모든 지식을 확립하고 명석성돠 판명성을 진리의 규준으로 수용한다.[641]

과학기술의 발전에서 영감을 받은 철학이 바로 힘을 강조하는 철학이다. 여기서 인간이 아닌 존재를 단지 가공되지 않은 재료로 생각하는 경향도 나타난다. 이제 목족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숙련과정에만 가치를 부여할 따름이다. 이러한 경향도 일종의 광기요 바보짓이다. 이는 우리 시대에 가장 위험한 철학이다. 건전한 철학은 이에 대항할 해독제를 내놓지 않으면 안 된다.[642]

2장 이탈리아  르네상스 운동

 중세적 사고방식 대립하는 근대적 사고방식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운동과 더불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인들은 문화를 대단히 진지하게 다루고 소중히 여기지만, 도덕과 종교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647]

르네상스기 인문주의를 지지한 최초의 교황, 니콜라우스5세는 학식이 풍부한 학자들에게 다른 대가는 일절 바라지 않고 교황청 내에 연구실까지 내주었다.[647]

인문주의를 장려하는 정책은 신앙심이 유달리 깊고 진지한 북부 유럽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지만, 우리의 관점에서 보면 일종의 덕행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647

르네상스기는 철학에서 위대한 성취를 이룬 시기는 아니지만, 17세기 위대한 철학의 도래에 꼭 필요한 예비 단계였다. 우선 르네상스 운동은 지성을 옥죄는덮게가 되어버린 엄격한 스콜라 철학의 체제를 무너뜨렸다.[649]

르네상스 운동은 신플리톤주의자와 아랍의 주석가가 억지로 갖다 붙인 허황된 해석에 얽매이지 않고, 원저을 통해 직접 얻은 진정한 지식을 증가 시켰다. 지적 활동은 예정된 정통 신앙의 보존에 두며서 수도원에 틀에박힌채 빠져드는 명상이 아니라, 기쁨에 찬 사회적 모험이라고 생각하는 습관을 장려한 점을 더욱 중요했다.[650]

르네상스는 대중의 지지를 얻은 운동은 아니었다. 소수 학자와 예술가들이 참여한 운동으로서 자유사상을 지지한 후원자들, 특히 메디치 사문과 인문주의에 경도된 교황이 장려한 지적 흐름에 속했다. 그러나 어쩌면 이 후원자들 때문에 르네상스 운동이 크게 성공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650]

도덕의 영역 바깥에서 보면 르네상스 운동은 여러 면에서 탁월한 장점이 있다. 건축, 회화, 시 분야에서 르네상승 운동은 명성을 유지했는데, 레오나르도와 미켈란젤로, 마키아벨리 같은 위대한 인물을 배출했다. 르네상스 운동은 교육받은 지식인을 중세문화의 편협상에서 해방시켰으며, 여전히 고대 숭배의 노예 상황에 놓안 학자들로 하여금 거의 모든 주제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제시될 뿐만 아니라 권위가 논박되기도 한다는 점을 의식하게 했다. 그리스 세계에 대한 지식의 부흥을 이끈 르네상스 운동은 고대 그리스의 업적과 성취에 맞거 다시 경쟁하는 정신적 분위기를 형성했다.[653]

3장 마키아벨리

르네상스기에 중요한 이론 철학자는 한 사람도 나오지 않았지만 정치철학 분야에서 최고의 명성을 누린 니콜로 마키아 벨리가 출현한다. [654]

그의 정치 철학은 과학적이고 경험적인 학설로 사태를 직시하며 스스로 경험한 것에서 나온 결과물인데, 목족의 선악 여부와 상관없이 정해진 목족에 맞는 수단을 찾아내는 데 관심을 두었다.[654]

그의 유명한 저술인군주론 1513년애 잡팔하여 로렌츠 2세에게 바쳤는데, 메디치 가문의 호의를 얻으려는 희망을 품었기 때문이다.[655]

마키아벨리의 주장에 따르면, 종교가 국가 안에서 두드러진 자리를 차지행야 하는 까닭은 종교가 곧 진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 결속과 유대감 형성에 필요하기 때문이다.[657]

군주론은 통치자의 행동과 관련된 기존의 도덕을 명백히 거부한다. 통치자가 늘 선하게 행동한다면 비명횡사하고 말 것이다. 그래서 군주는 여우처럼 교활하고 사자처럼 맹위를 떨쳐야 한다. 군주는 자기에게 이득이 되면 신앙을 지키고 그렇지 않으면 신앙을 지켜서는 안 된다. 때때로 군주는 신앙을 버리기까지 해야 한다.[659]

권력은 자유로운 경쟁 속에서 권력을 잡을 만한 기술에 능통한 자를 위해 존재한다. 마키아벨리는 대중의 인기를 얻는 정부를 선호하는데, 이는권리의 개념에서 비롯되지 않고 대중의 인기를 얻은 정부가 전제 정부보다 잔인성, 비도덕성, 변덕의 정도가 덜하다는 현시적인 관찰에서 나온 결론이다.[661]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면 어떤 종류든 권력이 필요하다.이런 쳥범하고 분명한 사실은정의가 이긴다다시 말하면악은 승리해도 오래가지 못한다.”는 표어에 묻혀버린다. 당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쪽이 이긴다해도 그것의 힘이 우세하기 때문이다.[662]

4   에라스무스와 토머스 모어

에라스무스도 모어도 엄리한 의미에서는 철학자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바로 혁명 시대 이전의 기질을 보여주는 적절한 사례이기 때문에 언급할 가치가 있다. 혁명 시대 이전에는 온건한 개혁을 요구하는 태도가 널리 퍼졌는데, 극단두의자들의 반동에 소심한 개혁가들이 겁을 먹지 않아도 된던 시대였다. 그들은 또한 신학이나 철학에서 스콜라 철학을 배경으로 일어난 보수적 반동사상의 특징인 체계성이라면 전부 혐오했다. [665]

모어의 유토피아에서 사는 삶이 대부부의 다른 유토피아에서 사는 것 못지않게 지루해 견디기 어렵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다양성과 변화는 행복한 삶에 필수적인 요소인데, 유토피아에서는 다양성과 변화를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이러한 점은 바로 게획에 의해 조직된 모든 사회가 지닌 결점인데, 상상 곳에서든 현실 속에서든 마찬가지이다.[676]

5장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은 둘 다 문명의 발전이 더딘 나라들이 지적인 문명의 발전이 앞선 이탈리아  지배에 맞서 일으킨 반란이었다. 종교개혁은 정치적인 반항이자 신학적 반항이기도 했다. 반 종교개혁은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지적이고 도덕적인 자유에 맞선 반항일 따름이다. 종교개혁은 독일 중심에서 일어났고, 반종교개혁은 스페인을 중심으로 일어났다.[677]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을 이끌었던 세 위인이 바로 루터, 칼맹, 로욜라이다 .세 사람 모두 지적인 면에서 보면 철학 안에서는 중세에 속하는데, 그들 직전에 활동한 이탈리아인들이나 에라스무스와 모어 같은 사람과는 대조를 이룬다.[678]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의 결과는 처음에는 지성계 전반에 나쁜 영향을 미쳤으나 종국에는 유익한 편이었다. 30년 전쟁으로, 개신교나 가톨릭교도 가운데 어느 한쪽이 완벽하게 승리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게 되었다.[680]

6장 과학의 발흥

위대한 과학자 네 사람,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갈릴레오, 뉴턴은 과학을 강조한 뒤어난 인물들이다. 이들 가운데 코페르니쿠스는 16세기에 살았으나 당대에 미친 영향은 전무했다. [682]

갈릴레오는 근대 과학을 정초한 과학자들 가운데 뉴턴을 제외하고 가장 위대한 인물이었다. 그는 미켈란젤로가 세상을 떠난 날에 출생하였고 뉴턴이 태어나던 해에 죽음을 맞았다. 나는 이런 흥미로운 사실을 아직도 윤회 사상을 믿는 사람들에게 기꺼이 말해주고 싶다. 그는 천문학자로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인물이지만, 역학의 창시자로서 더 중요한 인물이다.[688]

현대 물리학의 답변은 완벽한 수준이라 말하기는 어려워도 충분히 만족스럽기 때문에, 거의 모든 물리학자가 운동과 시간이 완전히 상대적이라는 견해를 수용하게 되었다. 공간과 시간을 시공간으로 통합한 상대성 개념은 갈릴레오나 뉴턴의 연구 결과로 탄생한 근대적 우주관을 송두리째 바꾸어버렸다.[698]

7장 프렌시스 베이컨

베이컨의 철학에 불충분한 면이 많다고 해도, 베이컨은 귀납법의 창시자요, 과학적 탐구 절차를 논리적으로 체계화하려 노력한 선구자로서 영원히 기억할 만하다.[699]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격언은 베이컨이 처음 한 말이라고들 하는데, 이전 세대에 살았던 사람이 말했을 가능성이 높다. 어쨋든 베이컨은 그 격언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700]

8장 홉스의 리바이어던

 우리는 어떤 대상이 욕구의 대상이 욕구의 대상일 때는좋다고 하고, 혐오의 대상일 때는나쁘다고 한다.(이러한 정의는좋다나쁘다에 객관적 실재성을 부여하지 않기 때문에, 만약 사람들 간에 욕구의 차이가 있어도 조종할 방법을 발견하는 일은 이론적으로 불가능하다. [709]

9장 데카르트

르네 데카르트는 흔히 근대 철학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는데 , 내 생각도 옳은 평가이다. 그는 고도의 철학적 능력을 갖춘 최초의 인물로서, 그의 철학관은 새로 등장한 물리학과 천문학에서 깊은 영향을 받는다.[719]

인간은 동물과 달리 송과선에 영혼이 깃들여 있다 . 영혼이 송과선에서 생명혼과 접촉함으로써 영혼과 육체 간에 상호 작용이 일어난다. 우주 안에서 운동의 총량은 일정불변하므로 영혼도 운동량에 영향을 주지 못하지만, 영혼은 생명혼의 운동 방향을 바꾸어, 간접적으로 육체의 다른 부분을 이리저리 움직이기도 한다 .[723]

내가 모든 것이 거짓이라 생각하고 싶어 하는 동안에도, 그렇게 생각한 무엇으로서 나는 반드시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726]

우리가 아주 명석하고 판명하게 생각한 내용은 모두 진리이다.” 하지만 이러한 명석하고  판명한 생각들이 진리라는 사실을 인식하기가 때때로 어려워지기도 한다. 데카르트는생각을 아주 넓은 의미로 사용한다. 생각하는 활동은 , 의심하고 이해하고 개념을 샤용해 생각하며 긍정하거나 부정하고 의지하고 상상하고 느끼는 정신 활동을 가리킨다.[728]

데카르트는 말한다. 관념은 세 종류로 나뉘는데, 1) 정신능력이 본래 가진 관념. 2) 외부 자극에서 생긴 외래 관념, 3)내가 꾸며서 만들어낸 관념이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둘째 관념이 의식 밖의 대상들과 비슷하다고 가정한다. 이렇게 가정하게 된 까닭의 일부는 자연이 우리에게 그렇게 생각하도록 가르치기 때문이고, 일부는 그런 관념이 의지와 상관없이 생기기 때문이다.[729]

10  스피노자

스피노자는 위대한 철학자들 가운데서 고결한 품성을 갖춘 매력 넘치는 인물이다. 지적인 면에서 그를 능가한  철학자가 몇 사람 있지만, 윤리적인 면에서는 아무도 따르지 못할 최고 수준에 이른 철학자이다.[733]

스피노자의윤리학은 세 가지 다른 문제를 나누어 논의한다. 형이상학에서 시작하여 정념과 의지의 심리학으로 넘어가고, 마지막으로 앞서 논의한 형이상학과 심리학에 근거한 윤리학을 내놓는다. 형이상학은 데카르트의 생각을 변형한 사상이고, 심리학은 홉스를 떠올리게 하지만, 윤리학은 독창성이 드러나 가치를 인정받는 부분이다.[735]

인간의 유한성을 인정한 현자는 신의 관점인 영원의 상하에서, 즉 영원성의 측면에서 보려 노력한다.[738]

명석하고 판명하게 자신과 자신의 감정을 이해한 사람은 신을 사랑하며, 자신과 자신의 감정을 더 많이 이해할수록 신을 더 많이 사랑하게 마련이다.” 이 명제는신에 대한 지적 사랑으로 이끄는데, 신에 대한 지적 사랑 속에세 지혜를 얻는다. [740]

윤리학은 다음과 같은 말로 끝난다. “현자는 현명하나 사람 자체로 생각되는한, 정신이 흐트러지는 일이 절대로 없으며, 자신과 신과 사물을 결코 멸하지 않는 영원하고 필영적인 존재로 의식하며, 언제나 자기 정신의 영원성을 진심으로 인정한다.[743]

당신의 운명이 인류의 범상한 운명보다 더 비참한 역경을 참고 견디어낼 수 박에 없는 처지라면, 우주 전체를 생각하거나 아니면 당신의 슬픔보다 더 큰 문제를 생각하라는 스피노자의  원리는 유익한 교훈이다. 온갖 악과 고통으로 가득한 인생을 우주적 차원의 생명에 속한 그히 작은 일부로 생각하면, 위안이 되기도 한다. 이런 종류의 사색은 하나의 종교를 구성하기에는 불충분할지 몰라도, 고달픈 세상에서 제정신 차리고 사는데 힘을 보태며, 아득한 절망의 늪에 빠져 무기력해진 경우에는 무력감을 치유할 해독제가 되기도 한다.[746]

11장 라이프니츠

진공과 같은 존재가 없는 까닭은 가능한 각각의 관점이 현실로 존재하는 하나의 단자로, 오직 하나의 단자로만 채워지기 때문이다. 두 단자가 정확하게 서로 같은 경우는 성립하지 않는데, 이것이 바로 라이프니츠가 말한구별불가능자의 동일성원리이다.[751]

라이프니츠는 여전히 위대한 인물이며, 그의 위대성은 이전 시대보다 오늘날에 와서 더욱 두드러진다. 수학자나 미적분학의 발명자로서 누리는 명성과는 별개로, 그는 수리 논리학의 개척자로 아무도 알아채지 못헀던 중요한 의미를 통찰했다.[764]

13장 로크의 인식론

우리의 지성은 종종 실수를 저지르기 때문에 이성을 믿고 따를 수 밖에 없으며, 타인의 의지와 지시에 맹목적으로 복종해서는 안 된다.[779]

로크는 이렇게 말했다.자유는 참된 행복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필연성과 정념통제에 좌우된다.[786]

우리는 오로지 쾌락을 욕구한다. 하지만 사실상 많은 사람은 쾌락 자체가 아니라 가까운 쾌락을 욕구한다. 이것은  많은 사람이 쾌락 자체를 욕구하기 때문에 악하다는 학설과 모순을 일으킨다.” 철학자들은 대부분 각각의 윤리 체게 안에서 먼저 거짓인 학설을 단언하고, 그 학설이 거짓임을 보여주는 행동은 악하지만 문제의 학설이 참이었다면 악한 행동은 불가능했으리라고 주장한다. 로크는 이러한 유형에 속한 대표적인 철학자이다.[788]

14장 로크의 정치철학

사람들이 이성의 명령에 따라 더불어 살며 그들 상에 재판을 담당할 권위를 가진 공동의 우월한 자가 없는 상태가 바로 자연 상태이다.”[798]

아메리카의 깊은 숲에서 살던 오만방자하고 해로운 행동을 일삼던 자가 왕좌에 올랐다고 해서 도덕적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되지는 않으리라. 그는 아마 국민들에게 행활 모든 일을 정당화하려 지식이나 종교를 동원하고, 이윽고 검을 써서 감히 이의를 제기한 모든 국민의 입을 다물게 할 것이다. [805]

15장 로크의 영향

쾌락은 곧 선은 아니지만 유덕하고 고결한 사람들이 고통을 당한다면 정의롭지 못한 일이다. 이 세상에서 유덕한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는 일이 흔하기 때문에 이들이 죽고 난 후에 덕을 상응하는 보상을 받는 다른 세계가 존재해야 한다.[821]

인간의 행복을 증진하기 위해 전력을 다한 사람들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듯이 행복을 소중히 생각했던 사람들이었다.[821]

16장 버클리

필라누스는실존한다는 것과 지가된다는 것은 별개이다는 힐라스의 의견에 반대하여감각 사물들은 지각될 때 실재한다.” [826]

17장 흄

흄은 직접 슨 사망 기사. 다시 말하면장례식사에서 자신을 이렇게 묘사했다.” 나는 온순한 사람으로, 기분을 조절할 줄 알 뿐만 아니라 솔직하고 사교적이며 쾌할한 유머도 구사하고  누구나 친근감을 느낄 만큼 정감이 풍부하다. 다만 적대감을 견디기 힘들어하기는 하나,모든 정념을 기막히게 조절할 줄 아는 온건한 성품을 갖추었다. 심지어 나를 지배하던 정념인 문학적인 명성을 향한 갈망조차, 실망하는 일이 잦았는데도 온화한 기질을 까다로운 성격으로 바꾸지는 못 했다. [840]

인상관념 을 구분하면서 시작한다. 인상은 관념은 지가의 두 가지 종류인데, 그 가운데 인상은 강하고 격렬한 지각이다. “관념은 사고활동과 추론 활동 속에 나타난 인상에 대한 희미한 심상이다.[840]

나로선 내가 가장 친밀하게 나 자신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들어갈 대, 항상 이러저러한 개별적인 지각들, 즉 뜨거움이나 차가움, 밝음이나 어두움, 사랑이나 미움, 아픔이나 기쁨과 마주친다. 나는 어는 때든 지각하지 않고서는 나 자신을 결코 붙잡을 수 없으며, 지각들 이외의 어떤 것도 결코 관찰할 수 없다.” [842]

19장 루소

루소는 단순하고 소박한 삶의 방식을 택하고 앞으로는 시간을 알 필요가 없을 것이라며 시계를 팔아 버렸다.[874]

그는 인간은 본성적으로 선하며, 제도로 인해 악해질 뿐이다.” 라고 주장했다.[874]

나는 다른 어떤 진리를 믿는 것만큼 강하게 신을 믿는데, 믿느냐 안 믿느냐는 세상에 마지막 남은 나에게 달려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879]

20장 칸트

칸트는 매우 규칙적인 생활을 했는데, 동내 사람들은 그가 산책하면서 문 앞을 지나갈 때 시간을 맞출 정도였다. 그런데 언젠가 7일 동안 그가 시간표를 지키지 않은 적이 있었는데 바로 루소의에밀을 읽고 있던 때 였다.[894]

칸트의 말에 따르면 공간과 시간은 개념이 아니라직관형식이다.[897]

21 19세기 사상의 흐름

인간이 지닌 힘의 한계를 보여준 믿음을 대표하는 몇몇 개념이 있는데, 이들 가운데 중요한 개념 두 가지가 바로 신과 진리이다.[921]

인간관계를 다루면서도 모든 면에서 민족스러운, 현대에 어루리는 윤리 체계를 세우려면, 인간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인간의 제배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동시에, 사람들 상호산의 권력 행사에 바람직한 한계를 긋는 일도 필요불가결하다. [922]

22장 헤겔

이념이성은 진리이며 영원한 존재이고, 절대적 힘을 가진 본질이다.[930]

지성과 의식적인 의욕에 세계는 우연에 맡겨지지 않고 자기인식의 관념에 비추어 자기 자신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930]

윤리 문제에 대한 진술은 한 가지 중요한 점, 즉 목적와 수단의 구분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결함이 있다. 눈은 살아 있는 신체의 일부일 때 유용하다. 말하자면 눈은 수단으로서 가치가 있다. 그러나 눈은 신체에서 떼어내면 고유한 본래적 가치를 갖지 못한다.[939]

논리가 형편없을수록 거기서 생겨난 귀절은 더욱 흥미롭다는 사실이다.[942]

23장 바이런

바이런의 시.

그는 그대들처럼 살거나 그대들처럼 죽으려 하지. 죽어서 자신의 재를 그대들의 것과 섞이게 할 것이네.[945]

바이런 의 시.

슬픔은 지식에서 비롯되지. 가장 많이 아는 자 치명적인 진리를 넘어 가장 깊은 슬픔으로 비통해하네. {948}

바이런의 시

고요하게 세속적인 마음을 현혹하고 이끌어 공포에 떨게 하는 지휘의 기교로써 그들의 영혼을 뒤 흔든다.[948]

바이런의 시

정열 위로 황홀함의 옷을 걸친자. 비통함 속에서 대중을 압도하는 웅변을 토해내는 자…… 그런데도 그는 알았네. 광기를 미화할 방법을. 부정한 행돋과 부정한 생각 위에 천국의 색상을 입히는 방밥을.[951]

24장 쇼펜하우어

고통은 모든 생명에 도사린 본질적 요소이며 지식이 더 해질 때마다 고통의 양도 증가한다. 의지에는 성취되면 흡족과 만족을 주게 될 고정된 목적이 없다.[956]

고통은 의지가 강렬하고 격렬한 탓에 생긴다. 그러니까 의지를 덜 발휘할수록 우리는 고통을 덜 받게 된다는 말이다.[956]

선한 인간은 완전한 자비, 자발적인 가난, 금식과 자기고행을 실천하려 한다.[957]

낙관주의는 우주란 우리를 기쁘고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고 가정하고 입증하려 하지만, 염세주의 관점에서 보면 우주는 우리를 불쾌하고 불행하게 만들기 위해 존재 한다. 과학적 관점에서 보면 낙관주의이든 염세주의이든 우리와 관련된다는 증거는 아무데도 없다.[960]

26장 공리주의자들

사람은 제각기 자기 자신의 행복을 바란다는 진술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되는데, 하나는 자명한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거짓 주장이다. 내가 무엇을 자라든지 소원을 성취하고 나면 쾌락을 얻게 마련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내가 욕구하는 대상이 무엇이든 하나의 쾌락이며, 좀 느슨하게 보면 내개 욕구하는 바를 쾌락들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983]

윤리학은 인간의 다양한 욕구가 서로 충돌하기 때문에 필요하다. 갈등의 첫째 원인은 인간의 이기적 성향이다.[984]

윤리학은 두 가지 목적을 가지는데, 첫째는 선한 욕구와 악한 욕구를 구분하는 규준을 찾는 일이고, 둘째는 칭찬과 비난을 통해 선한 욕구를 증진하고 악한 욕구를 단념하도록 이끄는 일이다.[984]

28장 베르그송

직관은 사심 없이 자기를 의식하고 대상을 반성하면서, 무한히 확장할 수 있는 본능을 의미한다.”[1000]

지성의 특징은 자연 그대로의 생명을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다.” [1000]

무엇보다 기억 속에 지속이 드러나는 까닭은 기억 속에서는 과거가 현재로 살아나기 때문이다.[1002]

기억은 원리상 물질과 완전히 독립된 힘이라고 해야 한다. 그때 정신이 실재라면, 우리가 정신과 경험적으로 접촉할 가능성이 있는 지점도 여기 기억 현상이다.’’[1003]

29장 위리엄 제임스

그는 사람들이 행복해지기를 바라고, 만약 신에 대한 믿음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한다면 신을 믿게 놓아둔다. 신에 대한 믿음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한다면, 그 믿음은이라고 말하는 경우에는 철학이 된다.[1017]

30  존듀이

여전히 지배당할 수박에 없는 한계보다는 자연의 힘을 통제하는 인간의 지배력에 더 깊은 인상을 받은 사람들에게, 도구주의 철학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든 요인도 바로 사회적 힘이다.[1028]

인간의 조종을 받지 않는 사실들에 의존하는진리개념은 여태까지 철학에 필요한 요소인 겸손을 가르쳤던 방식들 가운데 하나이다. 이러한 자긍심에 대한 견제가 사라지면, 다음 단계는 일종의 광기에 도취되는 길로 접어들고 만다. 이러한 광기는 피헤타와 더불러 철학 속으로 침투한 후로 철학자이든 아니든 현대인들이 쉽게 빠져드는 힘의 도취이다. 나는 이러한 도취가 우리시대에 가장 커다란 위험요소이며,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힘의 도취에 일조하는 철학은 모두 끔찍한 사회 재앙의 위험을 증가시킨다고 확신한다.[1029]

31장 논리 분석철학

과학만으로는 잔혹 행위를 즐기는 일이 나쁘다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 한다.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과학에 의해 알려질 수 있지만, 감정의 문제들로 합당하게 다루어야 하는 일들은 과학의 영역 밖에 놓여있다.[1037-1038]

객관적인 철학 방법을 실천에 옮기면서 획득한, 주의 깊게 진실을 말하는 습관은 인간 활동의 전 영역으로 확장할 수 있으며, 객관적인 방법을 적용하는 어느 곳에서나 광신 행위는 감소하고 공감 능력과 서로 이해하는 능력은 증가하게 될 것이다. 철학이 독단적인 일부 주장을 포기한다고 해서, 삶의 방식을 제안하고 삶에 영감을 불어넣는 일까지 멈추지는 않는다.[1038]

내가 저자라면

 책의 주제와 구성

  1권 고대  철학 , 2  카톨릭  철학, 3권 근현대 철학으로  크게 나뉘어져 있다.   고대 철학은 소크라테스 이전과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 이후로 묶여 있다.  1권의 1부와 2부는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 보았을만한  철학에 비중을 많이 차지하는 철학자들의 이야기여서 가장 흥미롭게 관심을 가지고 읽은  부분이었다. 2부 카돌릭 철학은 교부철학과 스콜라 철학으로 나누어져  있고  그 안에15장에 걸쳐 역사는 유대교에서 신학은 그리스 사상에서, 지배 방식과 교회법을 로마법제에서 유래함을 서술해 놓았다.  3부 근현대 철학은 종교의 권위를 거부하고 과학의 권위를 받아들이면서 시작된   자유주의 학설을 가진 철학자들의 주장과 이론으로  역어졌다.   1권 고대철학과 제3권 근현대 철학은 어려워도 내 마음을 무찌르는 글귀에 줄도 많이 쳐지고 나름 재미있게 보았는데  2권 카톨릭 철학에서 무언가 넘기다 목에 걸리듯 답답하고 마음에 와닿는 부분도 많이 없었다.   문제는 왜인지를 찾아내어 설명하고 재 구성을 해 본다던가  해야 하는데 그것조차 감이 잡히지 않아 그냥 느낌만 적어 보았다.

책이 나에게 미친 영향

 철학에 대한 사상과 시대별 학파들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태의 나로서는 이 책을 읽는 것은 정말 어렵고 힘 들었다. 아니 솔직히 재미없었다.  읽는 동안 학창시절에 배웠던 익숙한 학자들이나 학파들이 나오면 흥미롭고 상세한 내용들로 내 지적향상에 도움이 되겠구나 하며 읽혀 지다가도 생소한 철학자들의 사상이나 이론 부분이 나오면 책장이 넘어가질 않아  쉬었다 다시 읽기를 반복 해야했다.  소화하지 못한 음식들이  탈이나듯  내 것으로 완전히 소화하지 못한 이 책 내용을 놓고내가 저자라면을 쓰려고 하니  고양이가 무언지도 모르고 베고 누워 이빨을 쑤시고 있는 새앙 쥐 같은 기분이 든다. 즉 너무 내가 작고 초라한 내가  감히 간이 배 밖으로 안나오고서야 이런 철학의 거장 중 한 사람의 글에 내 생각을 붙여 넣는 것이  말이 되나 싶었다.

 책을 읽으면서 비록 전체는 아니여도 고대에서 근현대 철학까지 버틀란트 러셀이  바라본 철학자들과 학파 그리고 그들의 사상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시대별 중요한 가치가 있는 철학자들만 다루면서, 근본적인 면에서 중요하지 않더라도 실례나 생동감을 전하는 설명으로서 가치가 있는 내용은 상세하게 언급해 주고 있어 그나마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여러 학자와 학파들의 주장과 이론 중에 가장 나와 비숫한 견해를 가진 학파는 고대철학의 스토아 학파였다.  개인의 삶은 자연과 조화를 이룰 때 선한 삶이 된다. 어떤 점에서는 어느 삶이나 자연의 법칙에 따라 자연과 조화를 이룬다. 그러나 또 다른 점에서 인간의 삶은 개인의 의지가 자연의 목적으로 향하는 경우에만 자연과 조화를 이룬다. 덕은 자연과 일치하는 의지 속에 존재한다.” [349]

 인간은 저마다 세속적인 욕망에서 해방되면 완벽하게 자유로워진다. 세속적인 욕망이 압도하게 되는 현상은 단지 거짓 판단을 하기 때문에 나타난다.. 판단을 참되게 하는 현자가 스스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는 모든 경우에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는 까닭은 어떤 외부의 힘도 그에게서 덕을 빼앗지 못 하기 때문이다.[350]

 스토아 철학자는 선을 행하기 위해 덕을 얻으려 하지 않고, 덕을 얻기 위해 선을 행한다. [351]


철학 속에서 내가 정말로 중요하게 바라보고 추구해야 할 가치에 대해서 나의 관점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새로이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내가 책 제본을 다시 한다면

 이 책은 가지고 다니면서 읽기에도 민망스럽고 부담스러운 책이었다. 개정판 이전의 성경책 만한 이 두꺼운 책의 구성은 고대 철학, 카톨릭 철학, 근현대 철학으로 나누어져 세 권이 합본된 형태였다.  이 세 파트를 각각 책으로 엮어 한 케이스에  세 권을 넣어 케이스에 표지에 서양 철학사라 표기하고 각각에는 고대 철학, 카톨릭 철학, 근현대 철학 으로 나누어 책을 엮는다면, 읽기에도 부담스럽지 않고 가지고 다니기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과제나 철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끝까지 읽어 내기 어려운 책인 것 같다. 거기다 두께까지 부담스러워 자칫 독자들에게 외면 당하기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서양 철학사란 타이틀과 버트란트 러셀 이라는 저자 이름으로 다른 것들이 다 묻혀 버리기는 하지만 말이다. 책을 읽는 동안 해 보았던 생각을 옮겨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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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1 09:01:06 *.106.7.10
언니, 먼 곳까지 이 무거운 책을 들고 가서 읽느라고 진짜 수고 많으셨어요 ㅎㅎ
 남은 기간도 화이팅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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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2010.02.21 09:03:38 *.83.68.7
ㅎㅎ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어. 거의 책상에서  살았기에 ....
무감각해졌어.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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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철
2010.02.22 16:04:31 *.154.57.140
들고 다니기 진짜 힘들었습니다. ㅎㅎ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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