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스 베네딕트에 대하여

‘국화(菊花)와 칼’은 미국의 여류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가 1946년에 6월에 지은 일본 연구서의 하나다.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기습으로 태평양전쟁에 돌입하게 된 미국은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일본에 대해 잘 몰랐다. 일본인은‘미국이 여태껏 싸운 적(敵) 중에서 가장 낯선 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미국은 일본을 이기려면 베네딕트와 같은 인류학자가 ‘일본의 참모습’을 밝혀줘야 한다고 보았다. 베네딕트는 전쟁 때문에 일본에 가볼 수가 없어서 책 논문 영화 신문과 같은 2차 자료만으로 일본을 연구했다. 미국 국무부가 베네딕트에게 일본인의 의식 구조를 연구해달라고 부탁하자 그는 ‘일본인 의 행동패턴’이라는 두툼한 보고서를 제출했다.

종전 후 이 보고서를 토대로 2년간 여기에 인류학적, 문학적 윤색을 더 해 출간한 책이 바로 ‘국화와 칼’이다.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베스트 셀러가 돼 지금까지 230만부가 팔려나갔다. 도대체 일본 은 어떤 나라이며 일본인은 누구인가를 알고 싶어하는 시대적 욕구를 이 책이 충족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저자 자신은 일본을 방문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주요저서로 《문화의 유형 Patterns of Culture》(1934) 《민족-과학과 정치성 Race:Science and Politics》(1940) 《국화와 칼 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1946) 등이 있다.

문화의 패턴/ 루스 베네딕트/ 김열규 역/ 까치글방(까치)/ 1980.10.10
일본인의 행동패턴/ 루스 베네딕트/ 서정완 역/ 소화/ 2000.12.30
국화와 칼(일본문화의 틀)/ 루스 베네딕트/ 김윤식 역/ 을유문화사/ 2002.01.30


■ 내 마음에 들어온 글 귀

[12] 1944년 6월, 나는 일본에 대한 연구를 위촉받았다. 일본인이 어떤 국민인가를 규명하기 위해서, 나는 문화인류학자로서 내가 이용할 수 있는 모든 연구 방법을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를 받았다.

[19] 어떤 기이한 행동이라도 결국은 이해하는 데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

[23] 우리는 그들의 습관이나 가치가 어떤 것인가를 발견할 기회를 가지려고 하지 않는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어떤 행동 방침은 그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르기 때문에 반드시 나쁘다고 할 수 만은 없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33] 우리는 계층 제도라는 것으로 일본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또 그 제도에 어떠한 장점이 있다고 여기고 있는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41] 미국인은 생활 양식을 끊임없이 도전해 오는 세계에 맞게 조정한다. 그리고는 그 도전을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반면 일본인은 오히려 미리 계획되고 진로가 정해진 생활 양식에서만 안심을 얻을 수 있으며, 예견하지 못한 일에는 심각한 위협을 느낀다.

<제3장 각자 알맞은 위치 갖기>

[55] 일본인의 국내 문제를 계층제도의 견지에서 바라보아 왔지만, 국제관계 역시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보아왔다.

[61] 그것은 머리를 수그리는 사람이, 사실은 자기 뜻대로 처리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일에 있어서 상대방이 자기 뜻대로 행동할 권리를 승인하는 것이며, 절을 받은 사람은 그 사람대로 그 지위에 당연히 돌아가는 어떤 책임을 승인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성별과 세대의 구별과 장자 상속권에 입각한 계층 제도가 가정 생활의 근간인 것이다.

[64] 가정, 이렇게 좁고 직접 얼굴을 대하는 집단 내부에 있어서, ‘알맞은 위치’를 규정하는 규칙은 참으로 엄밀하다.

[64] 알맞은 위치라는 것은 단지 세대 차이만이 아니라 연령의 차이에도 적용된다. 일본인은 극단적 무질서 혼란 상태를 표현할 때, 이런 일이 “난형난제(難兄難弟)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표현은 우리들의 “물고기도 아니고 새도 아니다.”라는 표현과 비슷하다.

[68] 일본의 가장은 오히려 물질적 및 정신적 재산의 관리자에 가깝다. 완력에 의한 강제 명령이 아니라.

[70] 중국에서는 빈번히 왕조가 교체되었지만 일본에서는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다. 천황은 불가침이며 천황의 몸은 신성한 것이었다.

[73] 상인 계급은 천민 계급의 바로 위에 놓였다. 이 사실은, 미국인에겐 참으로 기이한 느낌을 주는 것이나, 봉건 사회에 있어서는 매우 실정에 맞는 일이었다. 상인 계급은 늘 봉건제도의 파괴자였다. 실업가가 존경받고 번영하게 되면 봉건 제도가 쇠퇴한다.

[74] 일본학자들은 사무라이 계급 전체의 평균 봉록은 농민의 소득과 거의 같다는 추산을 했는데, 이는 겨우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정도에 불과했다. 사무라이 집안에 있어 이 봉록ㄹ을 몇 사람의 상속인에게 분할하는 것은 매우 불리하였다. 그래서 사무라이들은 그들 가족수를 제한했다. 또 그들에게 있어 부와 허식에 얽힌 권세만큼 저주스러운 것은 달이 없었다. 여기서 그들은 절약과 검소라는 높은 덕목에 비상한 역점을 두었다.

[79] 이중 통치는 일본에서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12세기 이래 대원수(쇼군)가, 실권을 박탈당한 천황의 이름을 가지고 이 나라를 통치했던 것이다.

<제 4장 메이지 유신>

[87] 일본의 근대화 초기의 절규는 손노조이(尊王攘夷), 즉 ‘천황을 복벽하고 이적을 추방하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일본을 외국에게 짓밟히지 않게 하는 것과 함께, 또 천황과 쇼군의 ‘이중 통치’속에 있었던 10세기의 황금시대로 복귀하려는 슬로건이었다.

[90] 문제의 중요성은 이 정치가들이 어느 계급 출신인가에 있지 않고, 어떻게 그들이 그토록 유능하면서도 현실주의적일 수가 있었는가에 있다.

[90] 그들은 그들의 임무를 결코 이데올로기적인 혁명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것을 하나의 사업으로 취급했다.

[98] ‘모든 것을 그 알맞은 장소에 둔다.’ 이것이 일본의 좌우명이다.

[107] 일본인은 그들 스스로에게 요구한 일을 다른 나라에도 요구할 수는 없었다.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 자체가 잘못이었다. 그들은 그들로 하여금 ‘각자 알맞은 지위를 받아들이는’ 일본의 도덕 체계는 다른 어느 곳에도 기대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다른 나라들에는 그러한 도덕률이 없었다. 그것은 틀림없는 일본만의 산물인 것이다.

[108] 일본의 저술가들은 이 윤리 체계를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기술하지 않는다. 따라서 일본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에 앞서 먼저 그 도적 체계를 이해해야 한다.

<제5장 과거와 세상에 빚을 진 사람>

[109] 더구나 동양인이 부채를 지고 있는 것은 과거에 대해서만은 아니다. 다른 사람과의 나날의 접촉 모두가 현재에 있어서의 그의 채무를 증대시킨다. 그의 일상적인 의사 결정과 행동은 틀림없이 이 부채로부터 발생된다. 그것은 기본적인 기점(起點)이다. 왜냐하면 그들 자신이 이렇게 소중히 양육되고 교육을 받아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것, 혹은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된 단순한 사실 자체까지도 모두 세상 덕이기 때문이다.

[110] 동양과 서양의 극단적인 차이를 말로 표현하는 것은 간단하지만, 실제 생활에서 어떠한 차이를 나타내는가를 인식한다는 것은 쉽지가 않다. 더구나 이러한 점을 일본에서 이해하려 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전쟁중 우리가 알게 된 그들의 극단적인 자기 희생이나, 유리들로서는 화를 낼 필요가 없을 듯한 경우에도 일본인들이 곧잘 화를 내는 이유를 알 수 없을 것이다.

[112] 온은 첫째이며 최대의 채무, 즉 ‘천황의 온’에 대해서 사용하는 경우에는 항상 무한한 헌신이란 의미로 사용되도 있다. 그것은 천황에 대한 채무로서 사람들은 황은을 무한한 감사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된다.

[112] 전쟁중 전선의 군인들에게 천황의 이름으로 나누어 준 한 갭의 담배는 병사들 하나하나에게 천황에 대한 온을 강조하였으며, 출격에 앞서 병사들에게 분배된 한 모금의 사케는 다시금 황은을 깊게 아로새겼다.

[115] 감정을 상하지 않고 온을 입는 것은 행복한 경우이다. 일본인은 우연히 다른 사람으로부터 온을 받음으로써 보답의 빚을 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항상 사람에게 온을 베푼다라는 말을 한다. 그것은 타인에게 무엇을 강제한다는 것이 가까운 역어가 된다.

[116] 도움을 베풀면 상대가 크게 은혜를 입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상, 어떻게 해서든 이 좋은 기회를 이용할 법도 한데, 반대로 원조를 베풀지 않으려 애써 조심한다. 더욱이 형식을 차릴 필요가 없는 경우 일본인은 온에 휩쓸리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125] 일본인이 잘 쓰는 속담이 있다. “온을 받은 데에는 더할 수 없을 만큼의 타고난 너그러움이 필요하다.”

<제6장 만분의 일의 은혜갚음>

[127] 온은 부채이기 때문에 갚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보은은, 온과 아주 별개의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128] 사람의 채무는 덕행이 아니다. 변제가 덕행이다.

[134] 효는 모든 일들이 자식이 당연히 지불해야 되는, 부모로부터 받은 채무에 대한 갚음이다.

[143] 일본인의 입장에는 법률에 복종하는 것은 그들의 최고 의무, 즉 고온(皇恩)을 갚는 일이다.

[143] 일본인은 우리 미국인을 준법 정신이 결여된 국민이라고 판단한다. 우리들은 또 우리의 관점에서 일본인은 민주주의의 관념이 결여된 굴종적인 국민이라고 판단한다. 양국 국민의 자존심은 각각 다른 태도와 결부되어 있다는 말하는 편이 더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144] 천황이 입을 열자 전쟁은 끝났다.
일본인은 비록 그것이 항복의 명령이긴 했지만, 그 명령을 내린 것은 천황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한 것이다. 패전에 있어서도 최고의 법은 여전히 주(忠)이었다.

[144] 외국인 기자 한 사람이 서술한 바와 같이, 아침에는 소총을 겨누면서 착륙했지만, 점심때는 총을 치워 버렸고, 저녁때는 이미 장신구를 사러 외출할 정도였다. 일본인은 이제 평화의 길을 따름으로써 ‘천황의 마음을 편안케’ 했던 것이다. 1주일 전까지는, 천황의 마음을 편안케 해드리기 위해서 죽창으로라도 이적을 격퇴키 위해 몸을 바치겠다고 했었다.

[145] 일본은 일본 고유의 강점, 즉 아직 전투력이 분쇄되지 않았는데도 무조건 항복을 수락한다는 막대한 대가를 주(忠)로서 스스로에게 요구하는 능력을 사용하였다. 일본인의 편에서 보면, 이것은 분명히 막대한 지불임에는 틀림없었으나, 그 대신 일본인은 비록 그것이 항복의 명령이긴 했지만, 그 명령을 내린 것은 천황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한 것이었다. 패전에 있어서도 최고의 법은 여전히 주였다.

<제7장 기리처럼 쓰라린 것은 없다>

[147] 일본인이 잘 쓰는 말에 “기리(義理)처럼 쓰라니 것은 없다”는 말이 있다. 사람이란 기무(義務)를 갚지 않으면 안 되는 것과 같이 기리를 갚지 않으면 안 된다.

[148] 기리(義理)는 올바른 도리, 사람이 좇아야만 될 길, 세상에 대한 변명 때문에 본의 아니게 하는 일로 되어 있다.

[155] 일본인은 가끔 “나는 기리 때문에 기(義 :정의)를 지킬 수 없었다”라고 말한다. 또는 기리의 규칙은 이웃 사람을 자신처럼 사랑한다는 것과도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일본인은 사람들이 진심에서 자발적으로 관대한 행위를 하는 것을 요구치 않는다. 그들은, 사람이 기리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까닭을 “만일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로부터 ‘기리를 모르는 인간’이라 불리고, 세상 사람들 앞에서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기리를 따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세상의 소문이 무섭기 때문이다.

<제8장 오명(汚名)을 씻는다.>

[159] 이름에 대한 기리란 자기 자신의 명성에 오점에 없도록 하는 의무이다.

[160] 훌륭한 사람은 세상을 다시 균형 상태로 되돌려 놓으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보복은 인간의 덕행이지, 인간의 본질적인 약점에 기초한 피할 수 없는 악덕이 아니다.

[163] “어린 새는 먹이를 찾아 울지만, 사무라이는 이쑤시개를 물고 있다.”

[166] 기리의 모든 용법에서는, 공통적으로 한 인간과 그가 하는 일이 극단적인 동일시되고 있다. 그리하여 어떤 사람의 행위 또는 능력에 대한 비판은 자동적으로 그 인간 자체에 대한 비판이 된다.

[166] 전문가로서의 이름에 대한 기리는 일본에선 대단히 엄격하나, 고도의 전문적 능력으로서 이해하고 있는 것에 의해 유지될 필요는 없다.

[171] 일본에서는 어떠한 계획이건 성공이 확실해지기까지는 될 수 있는 한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하는 예절을 요구한다.

[172] 일본인은 분명히 예의바른 국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인은 비방에 대한 그들의 민감성을 경시해서는 안 된다. 미국인은 매우 가벼운 마음으로 서로 욕을 하곤 한다. 그것은 일종의 유희 같은 것이다. 우리들로서는 일본인이 왜 아무것도 아닌 말을 그처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175] 복수는 누구에게서 모욕이나 패배를 당했을 경우에는 ‘좋은 일’로서, 일본의 전통 속에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176] ‘아침목욕’은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던진 흙탕을 씻어 내는 것으로서, 조금이라도 흙탕이 묻어 있는 동안에는 당신은 훌륭한 인간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본인은, 사람이란 스스로 모욕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는 한 모욕받을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사람을 모욕하는 것은 ‘당자로부터 나오는 것’뿐이요,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을 향하거나 말하거나 행하거나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치는 윤리를 지니고 있지는 않다.

[178] 일본인은 실패나 비방, 배척 때문에 상처받기 쉽다. 따라서 너무도 쉽게, 타인을 괴롭히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일이 많다.

[179] 일본인 특유의 권태는 과도하게 상처받기 쉬운 국민 공통의 병이다. 그들은 배척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그들 내부로 돌려 스스로를 괴롭힌다. 일본 소설에서 묘사되는 권태는, 현실 세계와 이상 세계 사이의 큰 차이가 주인공이 경험하는 여러 가지 권태의 기초가 되고 있는 러시아 소설에서의, 우리에게 친근한 권태와는 다른 심적상태이다.

[180] 어떤 경우에는 자살은 이름에 대한 기리에서 당연히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가장 훌륭한 행동 방식이 된다.

[181] 미국인이 범죄 사건을 크게 떠들어 대는 것처럼 자살 사건을 크게 떠들어 대고, 미국인이 범죄에서 느끼는 대리 경험의 즐거움을 자살에서 느낀다. 그들은 다른 사람을 살해하는 사건보다 자신을 죽이는 사건을 화제에 올리기 좋아한다.

[185] 일본인의 영원 불변의 목표는 명예이다.

<제9장 욕망의 세계>

[191] 일본인은 자기 욕망의 만족을 죄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청교도적이지 않다. 그들은 육체적 쾌락을 좋은 것, 함양할 만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191] 미국인은 쾌락을 일부러 배워야 하는 것으로 생각지 않는다. 그들에게 있어 사람이 관능적 쾌락에 빠지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별로 배울 필요가 없는 이미 알고 있는 유혹을 극복하는 일일 뿐이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쾌락을 의무와 마찬가지로 배운다.

[192] 그들은 쾌락을 좋은 것, 함양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쾌락은 인생의 중대한 사항의 영역을 침입해서는 안 된다.

[199] 그들은 아내에게 속하는 영역과, 성적 향락에 속하는 영역 사이에 울타리를 쳐서 그 둘을 명확하게 구분한다.

[201] 일본인은 일본인 나름대로 해도 좋은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 사이에 경계선을 긋고 자중하는데, 그 경계선은 우리들의 경계선과는 다르다.

[201] 일본인은 일본인 나름대로, 해도 좋은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 사이에 경계선을 긋고 자중하는 데 그 경계선은 우리들의 경계선과는 다르다.

[203] 일본인의 철학에서 肉은 악이 아니다.

[203] 일본인의 철학에서 육(肉)은 악이 아니다. 가능한 육의 쾌락을 즐기는 것은 죄가 아니다. 정신과 육체는 우주의 대립하는 2대 세력이 아니다. 그리고 일본인은 이 신조를 논리적으로 밀고 나가, 세계는 선과 악의 싸움터가 아니라고 하는 결론으로까지 가져간다.

[203] 그들은 인간에게 두 가지의 영혼이 있다고 믿는데, 그것은 서로 싸우는 선의 충동과 악의 충동이 아니다. 그것은 ‘온화한’ 영혼과 ‘거칠은’ 영혼으로, 그들은 모든 인간의 생애에는 ‘온화’해야 할 경우와 ‘거칠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고 믿는다. 한쪽의 영혼이 지옥으로, 다른 한쪽이 천국으로 간다고 정해져 있지 않다. 이 두개의 영혼은 모두, 저마다 다른 경우에 필요하며 선이 된다.

[205] 일본에서는 인간의 성질은 태어날 때부터 선하며, 신뢰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자기의 나쁜 반절과 싸울 필요가 없다. 그것이 필요로 하는 것은 다만 마음의 창문을 깨끗하게 하고, 경우에 따라 알맞은 행위를 하는 것뿐이다. 만일 그것이 ‘더럽혀졌다’하더라도, 더러움은 용이하게 제거되며, 인간의 본질인 선이 다시 빛나기 시작한다.

<제10장 덕의 딜레마>

[209] 그들은 ‘인간의 의무 전체’가 마치 지도 위의 여러 지역처럼 명확하게 구별된 몇 개의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209] 지상의 명령으로 황금률에 호소하지 않는다.

[210] 우리들은 충실한지 불충실한지, 협력적인지 고집이 센지 등으로, 양과 염소를 구별한다.

[211] 서구인에게 특히 중요한 것은, 일본인이 생활을 구분하고 있는 '세계' 속에는 '악의 세계'가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것은 일본인이 나쁜 행동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만 인생을 선의 힘과 악의 힘이 싸우는 무대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212] 인생을 선의 힘과 악의 힘이 싸우는 무대로는 보지 않는다. 그들은 생활을 어느 한 체계와 다른 세계 어느 하나의 행동 방침과 다른 행동 방침, 이 양자의 요구를 주의 깊게 비교 고찰하는 것을 필요로 하는 한 편의 연극으로 보고 있다.

[222] 강자란 개인적 행복을 도외시하고 의무를 완수하는 인간이다. 성격의 강함은 반항함으로써가 아니라 복종함으로써 증명된다.

[223] 일본인의 가르침의 큰 부분은 주를 최고 시장의 덕으로 삼는 데 두어졌다. 메이지 천황의 칙유와 칙어만이 참다운 성전이다.

[227] 기리는 오늘날에도 매우 큰 권위를 가지는 덕으로 "저 남자는 기리를 알지 못한다"는 말은, 일본에서 가장 심한 비난의 하나이다.

[236] 자중에 자중을 거듭한다. 무한히 조심한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 이상의 노력도 이하의 노력도 소비하지 않도록 여러 가지 방법과 수단을 강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237] 일본인은 죄의 중대성보다도 수치의 중대성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이다.

[240] 그들이 보는 바로는, 바로 일본인 특유의 문제는, 그들은 일정한 법도를 지키며 행동하기만 하면, 반드시 타인이 자기의 행동의 미묘한 뉘앙스를 인정해 줄 것이 틀림없다는 안심감에 의지하여 생활하도록 길들여져 왔다는 것이다.

[242] 한번 직접 대지에 옮겨 심어진 분재 소나무는, 절대로 다시 원상으로 되돌려 질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은 이미 도저히 저일본 정원의 장식이 될 수는 없다고 느낀다. 그들은 두 번 다시 옛날의 요구에 응할 수는 없다. 이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첨단적인 형태로 일본인의 덕의 딜레마를 경험한 사람들이다.

<제11장 자기 수양>

[243] 어떤 문화의 자기 훈련은 항상 다른 나라에서 온 관찰자에게는 무의미한 것으로 생각되지 쉽다.

[249] 수양은 자기 몸에서 나온 녹을 갈아 떨구어 내는 것이다. 수양은 사람을 잘 갈아서 예리한 칼로 만든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물론 그가 그렇게 되고 싶어하는 것이다.

[253] 일본인은 예로부터 항상 사후 생활의 공상에는 흥미를 갖지 않았다. 그들의 신화는, 신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으나 사자(死者)의 생활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고 있지 않다.

[253] 일본에서 볼 수 없는 것은, 육체와 정신이 대립되는 교의(敎義)이다.

[257] 12세기 및 13세기 동란 시대에, 경전 속에서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에 직접 체험 속에서 진리를 발견해 내려는 이 명상적이고 신비적인 가르침이, 승원이라는 피난처 속에서 세상의 폭풍을 피해 출가한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있었던 일어겠지만, 설마 그것이 무사 계급이 애호하는 생활 원리로서 받아들여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사실 그렇게 된 것이다.

[258] 선의 가르침은 매우 구체적이었다. "선은 사람이 자기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광명만을 추구한다. 선은 이 추구의 방해가 되는 것은 어떤 것도 용서하지 않는다. 당신 앞에 장애를 모조리 제거하라. (중략) 만일 도중에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만일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 성자를 만나면 성자를 모조리 죽여라. 그것이야말로 구원에 도달하는 유일한 길이다."

[260] 정신적 훈련 또한 이와 마찬가지로 자득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교사를 모시는 일은 있어도, 교사는 서구적인 의미로 '가르치는' 일은 없다. 왜냐하면, 제가가 자기 이외의 원천으로 부터 배우는 것은 아무런 가치도 없기 때문이다. 교사는 제자와 토론하는 일은 있을지 모르지만, 상냥하고 친절히 제자를 지도하여 새로운 지식의 영역으로 유도해 줄 수는 없다.

[262] 만일 심안이 열리기만 하면, 목전에 있는 손쉬운 수단으로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 어떤 일이라도 가능하다. 그것도 자기 이외의 누구의 도움도 빌리지 않고 말이다.

<제12장 어린아이는 배운다>

[270] 그들은 속박이 가장 좋은 정신적 훈련이요, 자유에 의해서는 달성될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 낸다고 굳게 믿는다.

[271] 여자도 아이를 원하지만, 그것은 정서적 만족을 얻기 위해서 뿐 아니라, 여자는 어머니가 됨으로써 비로소 지위를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274] 어머니는 자신이 누구에게 인사를 할 때마다 갓난아이의 머리와 어깨를 앞으로 숙이게 하여 갓난아이에게도 인사를 시킨다. 갓난아이는 항상 한 사람으로 계산되는 것이다.

[281] 아이는 보통 새로운 갓난 아이가 태어나면 진정으로 흥분하며 기뻐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그 흥분가 기쁨은 식어 버린다.

[283]이것들은 모두 보호를 베풀어 집안의 안전을 비켜준다. 마을에서는 그 동네 절이 마찬가지로 안전한 장소이다. 그곳은 자비심 많은 신들이 앉아서 수호하기 때문이다. 어머니들은 아이들은 안전한 절에서 놀게 하기를 좋아한다. 어린아이의 경험 속에는 신을 두려워한다거나 혹은 공정한 감시자로서의 신들을 만족시키려고 자기 행위를 규제하는 일은 없다. 어린이들은 신의 은총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신들은 권위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286] "아이들은 부끄러움(하지)을 모르기 때문이죠"라고 말한다. 그리고 나서 "때문에 저처럼 행복한 것입니다"라는 말을 잇는다.
이것은 어린아이와 어른 간의 근본적인 차이이다. 왜냐하면 어른에게 "저 녀석은 부끄럼을 모른다"라고 하면 , 그 사람은 완전히 파렴치한이라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290] 자기 집단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확신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다른 집단으로부터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동안에 한정됨으로, 만일 외부 사람이 찬성하지 않거나 비난하였다면, 당사자가 다른 집단에게 그 비난을 철회시킬 수 있을 때까지, 그가 속한 집단은 그에게 등을 돌려 징벌을 가한다. 이러한 사정으로 해서 ‘외부 세계’의 인정은 다른 어떤 사회에서도 그 예를 볼 수 없을 정도로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291] 계집아이의 유년기는 사내아이의 생활에서 배척됨으로써 끝난다.

[295] 일본인은 혼자서 자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따라서 밤이 되어 아이의 이불은 마음에 맞는 연장자의 이불에 잇대어 펴는 수가 있다. '누구누구와 내가 사이가 좋다'라는 증거로 두 사람의 잠자리를 붙이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

[297] 어른들은 때가 되면 아이는 올바른 습관으로 ‘스스로 익힐 것이다’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297] 할머니는 조용히 차분하게, 모든 사람이 할머니의 생각대로 행동하는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나무라거나 반박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지만, 할머니의 솜털같이 부드러우면서도 아주 강인한 기대가 항상 그녀의 소가족을 그녀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로 인도하고 있었다.

[304] 사람들은 거울 속에서 혼의 문인 자기 자신의 눈을 본다. 그리고 이것이 '부끄러움 없는 자아'로서 살아가는 데 도움을 준다.

[309] 스스로를 존중하는(자중하는) 인간은 '선'이냐 '악'이냐가 아니라, '기대에 부응하는 인간'이 되느냐 '기대에 어긋나는 인간'이 되느냐는 것을 목표 삼아 그 진로는 정하며, 세상 사람 일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의 개인적 요구를 버린다. 이러한 사람이 부끄러움을 알고 한없이 신중하고도 훌륭한 인간이다. 이러한 사람이야 말로 자기 가정에, 자기 마을에, 또한 자기 나라에 명예를 가져오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하여 빚어지는 긴장은 대단히 큰 것으로서, 일본을 동양의 지도자로 만들며, 세계의 일대 강국으로 만드는, 그러한 고상한 대망으로 나타난다.

[313] 일본인은 마음 속의 칼을 녹슬지 않게 하는 일에 마음을 쓰는 강점을 지니고 있다. 칼은 보다 자유롭고 보다 평화로운 세계에 있어서도 그들이 보존할 수 있는 상징인 것이다.

<제13장 패전 후의 일본인>

[318] 아이가 아직 어릴 때 아버지와 접한 경험으로 배운 이러한 태도가 일본 사호의 모든 면에 통하는 하나의 틀이 된다. 그 계층적 지위 때문에 최고의 경의를 받는 사람조차도, 그가 하고 싶은 대로 권력을 행사하지 않으며, 계층제의 수뇌를 점하는 관리가 실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것이 일본의 특이성이다.

[331] 어느 외국인도 자기와 같은 습관이나 가정을 가지지 않는 국민에게 자기와 같은 생각이나 생활 방식을 따르라고 명령할 수는 없다. 법률의 힘으로 일본인에게 선거에 의해 뽑힌 사람들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들의 계층 제도에서 이미 정해져 있는 ‘알맞은 위치’를 무시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332] 일본인은 침략 전쟁을 하나의 오류 및 실패한 주장으로 간주함으로써 사회적 변혁을 향한 최초의 큰 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다시 평화로운 나라들 사이에서 존경받는 지위를 회복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  내가 저자라면

『국화와 칼』은 저자가 일본 연구를 시작한 지 2년 만에 쓴 책이다. 출간된 지 60년이 지난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책의 내용이 지금도 유효한지 궁금했다.

저자는 신중하고 사려 깊은 태도로 일본에게 접근한듯 하다. 그녀는 자신이 어디를 향해 가고 있고, 어떻게 가야 하는지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 것 같다. 그녀는 책에 이런 말을 썼다.

“나는 이러한 문헌들을 다윈이 종의 기원에 관한 이론을 세울 때에 읽은 방식처럼 이해하는 수단이 없는 것에 주의하면서 읽었다. 그들의 의회에서 행해진 연설 속에 있는 관념의 나열을 이해하기 위해서 나는 어떤 것을 알아야 하는가? 그들은 용서할 수 있을 만한 어떤 행위를 맹렬히 비난하면서도 오히려 위법으로 보이는 행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용인해 버리는데, 그러한 태도의 배후엔 대체 무엇이 숨어 있는가? ‘이 그림은 어디가 이상한가?’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알 필요가 있는가? 나는 이러한 질문을 되풀이하면서 읽었다.”

이제 연구원의 졸업 작품, 책을 써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나는 물론 청강생으로서 연습삼아 준비해 갈 것이다. 나는 변화를 시도하려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괜찮은 방법론을 제시할 수 있는 책을 쓰고 싶다.

나는 ‘변화’에 대하여 조금 더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다. 변화에 따르는 저항, 변화를 일으키는 동인에 관하여 이해하고 변화를 지속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해야 할 것이다. 또한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얘기를 하기 위하여 어떠한 것들을 알아야 할 것이다. 또한 책상에서 이론으로 삼기 좋은 얘기들이 아니라, 현장에서 지속적으로 검증된 쓸 만한 방법들, 그리고 나 자신을 변화에 성공시킨 방법들을 정리하고 다시 한 번 검증해 보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