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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12일 06시 25분 등록

깨어 있는 자들의 나라

알제리가 낳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지성, 자크 아탈리의 소설.

12세기 기독교, 회교 그리고 유대교가 평화를 공존하며 함께 성장하는 지구 상의 유일한 지역 스페인 남쪽 안달루시아 지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계승했던 현존했던 두 철학가의 이야기. 종교가 우세했던 중세 암흑의 시대, 이슬람 문화의 황금기에서 어떻게 어둠에 가려져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서구 세계에 전수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숨막히는 쫒고 쫒기는 이야기...

자크 아탈리라는 이름만으로도 반가울텐데 그가 철학과 역사를 배경으로 소설을 썼다.

아탈리의 지성을 흠모하는 독자라면 무조건 반갑지 않을 수 없는 책이다. 나 역시 보자마자 주문을 했고, 책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괜시리 마음까지 설레이며 기다렸다.. 아마 한 사람이 또 다른 한 사람의 사상 속에 흠뻑 빠진다는 것이 이런 것 같다.

그리고 책이 도착하자마자 다른 읽던 책을 잠시 밀쳐두고 단숨에 읽어내렸갔는데..

 

아탈리가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한 줄로 요약하면 무엇이 될까..

다름아닌 종교가 인간을 통치하기 위한 또 하나의 통치지배수단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대중들이 철학적 사유를 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얼마나 중요한 포인트인지, 호킨스가 말하는 의식수준의 단계별 구분없음까지 한순간에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이 책의 시대와 공간 배경은 12세기 중세 유럽,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에서 시작된다.

이 시기를 서구 세계의 관점에서 보자면 중세 암흑 시기이지만, 이슬람 관점에서 보자면 이슬람 문화의 황금시기라 할 수 있다. 이슬람 세력들이 남부 유럽과 북아프리 깊숙이 들어와 다스리고 있는 시대이니 말이다.

그들이 번영을 구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은 토착 종교인 기독교와 오랜 전통의 유대교를 배척하지 않고 수용했다는 점에 있다. 그리하여, 그들의 경제적 번영을 기반으로 세력을 더욱 확장시켜 나갔는데, 어느날 회교 근본주의 세력들이 세력을 잡으면서 이제까지와는 다른 종교 정책을 펼치기 시작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탈리는 이야기를 하는 내내 우리에게 묻고 있다. 어째서 인류는 언제나 "종교 전쟁"을 일으켜야 하는지를. 진실로 어느 한 종교에 깊이 귀의한다면, 이 땅위에 종교의 이름으로 전쟁은 있어서는 안되는거 아닌지. 결국 인류가 종교전쟁을 일으킨다는 것은, 사람들이 종교의 근본을 깊이 사유하지 않고 통치 수단으로 전락시킨 결과가 아닌건지.

그러므로 아탈리는 인류의 정신세계와 역사가 더 깊이 발전하고 풍요로워지기 위해서는 종교에 몸담는 사람들일수록 더더욱 각 종교가 가르키는 근본교리를 철학적으로 잘 헤아려, 결국 모든 종교의 원 뿌리가 하나에 닿아 있음을 인식하고 종교를 위한 종교가 아닌, 진리를 찾아가는 그 길을 걸어야 함이 올바른 길이라 이야기한다.

자칫 어려울수 있는 인류 근본의 문제와 관점을 미스테리 소설 형식을 빌어 너무나도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끌어가는 아탈리의 글솜씨 앞에, 그의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지성 앞에 이미 너무도 놀라있던 나로서는 소설적 글재주 앞에 또 한번 놀라게 되었다. 특히,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암흑 시대의 역사적 배경을 서구와 이슬람 거기다 유대교도들의 상황까지를 어느 한쪽의 치우친 관점이 아닌 객관적 관점을 유지하면서 풀어가는 흐름은 아탈리 그 자신이 이미 종교와 인종을 뛰어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책의 역사적 배경인 12세기와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

9백년이란 시간의 흐름이 있었지만, 사실 종교와 인종 그리고 문화간의 세력 다툼은 그리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어쩌면 아탈리가 역사를 뒤져, 세계 3대 종교가 평화를 유지했던 그 시대를 배경으로 삼았을지도 모르겠다.

데이비드 호킨스의 "호모 스피리투스"를 읽다가, 각 단계별 의식수준은 서로 우열하지 않고, 상대적이지 않으며, 그 나름 전부 의미를 갖고 있다는 표현 앞에서 잠시 책장을 넘기지 못했었다. 어째서일까..? 당연히 의식이 높은 것이 더 좋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막혀서 잠시 머리도 식힐겸 때맞춰 도착한 아탈리의 소설을 정신없이 읽게 되었는데, 호킨스에서 막힌 질문을 마치 아탈리의 소설 속에서 찾은 느낌이다.

호킨스에 따르면 인류의 영적 의식 수준에서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것이 500인데, 바로 직전 수준인 499까지가 이성에 의한 지배이다. 즉, 이성의 힘 (과학이나 철학)만으로는 더 이상 통찰의 길로 들어설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한 가지 경계해야 할 사항은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은 결코 깨달은 자가 될 수 없다는 호킨스를 포함한 수많은 현자들의 반복적 가르침인 것 같다. 예수님도 그러하고 부처님도 그러하셨듯이, 성인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의 가르침을 종교화하지 말 것을 당부하셨다. 그저 가르침에 따라, 끝없이 행하고 수행하라는 말씀뿐. 그러나 그 분들의 가르침을 종교화한 것은 후대 인류로서, 이 과정에서 종교가 점점 더 시스템화하면서 통치의 수단까지 접목되는 경우가 역사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호킨스가 말한 의식수준 500의 경계를 넘기 위해서는, 그 길에 이르는 여러 다양한 길들인 종교를 맹목적으로 따르기에 앞서 철학적으로 그 근본 교리를 잘 더듬어 살펴봐야 함 또한 필요한 일임을 아탈리의 소설을 통해 불현듯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동양의 전통 사상과 비교하여 서구사회가 근, 현대를 거치며 만들어오고 있는 거대한 물결이다. 서구 사회는 맹목적으로 종교에 헌신하던 어둠의 중세 시대를 거쳐 르네상스를 지나면서 다시금 인류 역사에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철학과 과학을 데려다가 근, 현대 눈부신 발전을 이어오게 된다.

근대 산업혁명 시대를 거치면서는 철학과 과학이 마치 종교보다 우월한 것과 같은 시기를 거치기도 하지만, 현대 철학과 과학은 그 단계마저 뛰어넘고 서서히 동양의 신비사상을 철학적으로 그리고 과학적으로 증명해가는 시기를 거치고 있다.

즉, 우리 동양인들이 동양사상을 보다 신비주의 사상으로 계승, 발전시켜오는 동안, 서구인들은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철학적, 과학적 사유의 방식으로) 통찰에 이르는 진리의 길을 밟아오고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어느 쪽이 우월할지를 논하는 건 캠벨의 표현을 빌자면 의미없는 일이 될 것 같다. 인간의 원형은 다 같지만, 시대와 문화적 배경에 따라 표현하는 방식, 행하는 방식의 차이일 뿐이라는 그의 말처럼 말이다.

다만 오늘날 한국 사회를 바라보면서, 나부터 어느 특정 종교에 귀의하여 종교인으로 살아가려면 무엇보다 먼저 나의 종교만이 우월하다는 편협된 관점에서 벗어나 보다 근본적인 진리의 길을 걷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오랜 시간 철학자들이 쌓아 온 지혜의 바다에 조금이라도 젖어들여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중세 철학자들 (특히, 종교와 인종을 초월한 유대, 이슬람 철학자들)이 목숨까지 내걸고 전달해준 귀하디 귀한 지혜이다. 지금의 난 단 몇 권의 책으로 고대의 철학자들과 그것의 이해를 더욱 쉽게 도와주는 아탈리같은 안내자까지 만날 수 있다니.. 현대를 살아가는 행운을 꼭 눈부시게 발전한 기술문명과 물질문명에서만 찾을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준 아탈리의 소설을 만날 수 있음에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이 든다.

"깨어있는 자들의 나라.." 참으로 적절한 제목이란 생각을 하며 책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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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앨리사의 북살롱
갠지스 강처럼 물과 같은 여성의 의미를 다룬 인도영화 "아쉬람" 리뷰: http://blog.daum.net/alysa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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