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좋은

함께

여러분들이

2012년 2월 27일 01시 01분 등록

저자에 대하여

 

저자로서의 구본형에 대해 글을 쓰기 위해 ‘깊은 인생’을 읽고 정리해 둔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를 다시 한 번 찬찬히 음미했다. 그리고 읽으면서 내 마음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들을 정리해 본다.

 

구본형.

 

그는 작가.

그는 변화경영사상가.

그는 스승이자 친구.

그는 마음을 흔들어 변혁을 이끄는 선동가.

그는 매일 꿈을 꾸는 몽상가.

그는 매의 눈으로 틈새를 찾아내는 전략가.

그는 자신의 사상을 온 몸으로 살아내는 혁명가.

 

나는 이 여러 이미지들 중에서도 ‘자신의 사상을 온 몸으로 살아내는 혁명가’로서의 구본형을 가장 높이 평가한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그를 존경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실천으로 보이는 모범’이야 말로 스승이 가져야 하는 제일 덕목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내게 그는 진정한 모범으로 다가왔다. 나에게는 개인적인 계기가 있었으니, 그것은 2006년도의 일이다.

 

2006년, 그 때 나는 어머님을 갑작스럽게 잃고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정신을 차릴 수도 그러고 싶은 의지도 없었다. 그냥 시간이 흐르기 때문에 삶이 지속되는 의미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던 시기에 교보문고에서 우연히 ‘낯선 곳에서의 아침’을 보게 되었고, 운명처럼 그렇게 그를 만나게 되었다. 아마 추석 즈음이었을 것이다. ‘낯선 곳에서의 아침’을 다 읽고 내가 포도 단식으로 새롭게 태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 나는 그 때 용감하게도 추석 연휴를 끼고 열흘간의 휴가를 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정말이지 죽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떠난 지리산에서의 열흘 그리고 그 이후로 계속된 한 달 간의 포도 단식은 나에게 다시 살아야겠다는 삶에의 의지를 다시 찾아주었고 그렇게 나는 다시 일상의 삶으로 돌아갔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그를 따라 지리산으로 떠난 것은 그가 몸소 보여준 ‘변화의 증거’ 때문이었다. 포도 단식이라는 상징적 ‘죽음’의식을 통해 과거의 나라는 허물을 벗고 새로운 나로 태어난 그의 예를 통해 ‘나도 어두움과 상처로 만신창이가 된 과거의 나를 벗어 던지고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던 것이다. 이렇게 강렬한 첫 만남으로 시작된 그와의 만남이지만, 만일 그의 이후 행보가 일관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이글을 쓰고 있지 않을 것이다. 변화의 준비가 되어있던 그는 지리산에서 자신의 내면에서 울려오는 소리를 들었고, 외롭고 고독한 견딤의 시간을 지나 현재 자신의 분야인 ‘변화경영’ 에서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견딤의 시간은 다음 소망을 위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의 다음 소망은 ‘변화경영 시인’이다. 그는 ‘깊은 인생’에서 다음과 같이 그의 소망을 표현하고 있다.

 

시처럼 살고 싶다. 나도 깊은 인생을 살고 싶다. 무겁고 진지한 삶이 아니라 바람처럼 자유롭고,

그 바람결 위의 새처럼 가벼운 기쁨으로 가득한 삶을 살고 싶다. 내면으로부터 울려 퍼지는 깊은 기쁨,

것으로 충만한 자의 발걸음은 얼마나 가벼울지.

 

 

그에게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

느닷없는 전환의 아름다움을 이룬 그는 내게 이미 시인이라고.

 

 

내가 저자라면-『깊은 인생』 구본형 

1. 목차과 뼈대에 대한 평가  

‘깊은 인생’의 주제는 ‘평범한 사람의 위대한 도약’이다. 저자는 일곱 개의 이야기를 통해 주제에 도달하고 있는데, 그는 이 일곱 가지의 이야기를 이입의 방, 현실의 방, 저자와의 대화의 방, “내게도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자문의 방 이렇게 네 가지의 방으로 구성하고 있다. 독자들은 이 방들을 거치며 사색에 잠긴다. 그리고 자신에 대해 곱씹게 되는 것이다.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에 빠지게 하는 이러한 구성이 나는 참 마음에 들었다. 개인적으로 이거해라 저러해라 라고 강요하는 자기계발서를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깊은 인생’이 여타의 자기계발서로 다가오지 않은 까닭은 이런 여지에 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깨달아 변화하게 만드는 힘. 이것이 구본형의 저서가 갖는 힘이다. 그리고 그를 다른 저자들과 차별하게 하는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또한 일곱 가지의 이야기를 ‘깨우침, 견딤 그리고 넘어섬’이라는 세 장으로 구성하고 있는데 일곱 가지의 이야기는 세 장의 주제를 통해 다시 한 번 그 진가를 발휘하게 된다. 각각의 이야기들이 주제 별로 조화롭게 이어져 독자의 마음을 똑.똑.똑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를 통해 스스로 깨달아 마음의 문을 열게 하는 은근한 접근. 참으로 그다운 구성이며 독자의 입장에서 그를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저자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사용법이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내 꽃도 한번 찬란하게 필 것이다. 내 안의 잠재력이 때를 만나 하나의 꽃으로 피어나려면, 세 개의 문을 통과해야 한다. 나는 이것을 ‘깊은 인생으로 들어서는 문’이라고 부른다. 첫 번째 문은 ‘깨우침의 문’이다. 소명에 대한 각성과 고유한 잠재력이 발견되는 대각성의 순간이다. 두 번째 ‘견딤의 문’을 들어서면 오래 참아내야 한다. 침묵의 10년을 고독하게 지내며, 선택한 삶에 끈질기게 달라붙어 있어야 한다. 마지막 문은 ‘넘어섬의 문’이다. 선생을 넘어서야 하고 나 자신도 넘어서야 비로소 우주의 위대함에 닿을 수 있다.

 

‘깊은 인생’을 읽고 다시 이 프롤로그를 읽으며 어떻게 이렇게 멋지게 자신의 책을 요약해 냈을까... 경이로웠다.

그리고 마음을 울리는 에필로그의 마지막 구절.

 

당신의 신화는 무엇인가? 당신은 인생이라는 모험에 어떤 모습으로 깊이 참여하고 있는가? 단명한 삶의 슬픔에 기쁜 마음으로 참여하자. 그 단명함이야말로 영생하는 신들은 결코 느낄 수 없는 참으로 슬픈 아름다움이기에. 그리하여 그대, 이제 가면 한 장 두께의 얕은 복제 인생을 걷어버리고, 모든 잠재력이 스스로의 강물로 흐르는 깊고 푸른 인생을 살자.

 

나는 이 마지막 구절이야말로 이 책의 백미가 아닌가한다. 끝까지 독자를 긴장하게 하는 이런 구성, 내가 작가가 된다면 바로 이런 구성으로 글을 써 보고 싶다.

 

2. 감동적인 장절 

 

『성공은 재능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태어났느냐에 달려 있지 않다. 그것은 카드 게임과 같다. 패는 주어지는 것이다. 좋은 패도 있고 나쁜 패도 있다. 주는 대로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카드 게임에 참가한 플레이어로 주어진 패를 가지고 이기기 위해서, 혹은 즐기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재능은 주어진 대로 받을 수밖에 없다. 그것은 신의 영역이다. 그러나 받은 재능을 다 쓰고 가야하는 것은 인간의 책임이다. 그리고 위대함이란 받은 탤런트의 크기가 얼마가 되었든 받은 만큼 다 쓰고 갈 때 찾아온다.』

 

 

『나비 혁명이 가능하려면 내 안에 이미 가지고 있는 내면의 힘을 응시해야 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탐사하지 않는다. 그 대신 세상이 요구하는 함성에 귀 기울인다. 세상이 돈 돈 돈 하면 돈을 따르고, 모두 명품을 찾으면 명품이 자신을 대신하는 정체성이 되고 만다. 결국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함께 원하여 가지게 되더라도 그것이 ‘나의 나비’가 되는 법은 결코 없다.』

 

 

『 언젠가 많은 것을 가르쳐야 할 이는

많은 것을 가슴속에 말없이 쌓아둔다.

언젠가 번개에 불을 켜야 할 사람은

오랫동안 구름으로 살아야 한다. _ 니체』

 

『나를 혁명하자. 어떤 나이든 그 나이는 혁명하기 더 없이 좋은 나이다.』

 

『절망한 사람에게 희망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아픈 이들에게 관심과 시간을 나누어 줄 수 있다면 이미 나눔에 나선 것이다.』

 

‘감정기복’이라는 기질적 단점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깊은 인생’은 위의 구절들을 통하여 그것조차도 내게 주어진 패이며 재능이라고 속삭이고 있다. 그리고 내면의 힘으로 ‘감정기복’을 극복하라 한다. 그렇게 나만의 ‘나비 혁명’을 이루고, 그것을 통해 비슷한 이유로 절망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이야기를 들려주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것이 내가 ‘깊은 인생’에서 얻게 된 교훈이다.

 

3.보완점

‘깊은 인생’의 목차와 구성은 ‘평범한 사람의 위대한 도약’이라는 주제를 효과적으로 구현하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보완점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독자로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시각적인 자극이었다. 각 이야기마다 그 내용을 품을 수 있는 그림을 함께 할 수 있었다면 더욱 행복한 글읽기가 되지 않았을까.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깊은 인생』 구본형 

 

프롤로그- 시(時)처럼 산다

 

P.11

시처럼 살고 싶다. 나도 깊은 인생을 살고 싶다. 무겁고 진지한 삶이 아니라 바람처럼 자유롭고, 그 바람결 위의 새처럼 가벼운 기쁨으로 가득한 삶을 살고 싶다. 내면으로부터 울려 퍼지는 깊은 기쁨, 그것으로 충만한 자의 발걸음은 얼마나 가벼울지.

느닷없는 전환은 아름답다. 그것이 삶을 시처럼 사는 것이다. ~ 이책은 바로 그 도약의 순간 혹은 질주의 전 과정을 포착한 기록이다.

P.12

평범한 사람이라도 비범한 분야 하나쯤 푸른 하늘처럼 가슴에 품고 있다.

P.13

춤을 출 때 나는 어떤 힘이, 그래, 영적인 어떤 힘이 내 안으로 깃드는 것을 느낀다. 그 순간 내 영혼은 더할 나위 없이 고양된다. 나는 우주와 하나가 된다. 별이 되고 달도 된다. 사랑하는 존재가 되는가 하면 사랑받는 존재가 된다. 승리자가 되는가 하면 무언가에 정복당한 존재가 된다. 노래하는 존재이자 그가 부르는 노래 자체가 된다. 이해하는 사람이면서 이해받는 자가 되곤 하는 것이다. - 마이클잭슨

P.14

마리츠버그 역의 우연은 간디 한 사람만이 아니라 우주가 준비된 사람에게 그들의 운명을 알려주는 신비한 고지의 방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바로 때가 무르익어 감이 떨어지듯’ 필연이 되는 것이다.

P.15

내 꽃도 한번 찬란하게 필 것이다. 내 안의 잠재력이 때를 만나 하나의 꽃으로 피어나려면,세 개의 문을 통과해야 한다. 나는 이것을 ‘깊은 인생으로 들어서는 문’이라고 부른다. 첫 번째 문은 ‘깨우침의 문’이다. 소명에 대한 각성과 고유한 잠재력이 발견되는 대각성의 순간이다. 두 번째 ‘견딤의 문’을 들어서면 오래 참아내야 한다. 침묵의 10년을 고독하게 지내며, 선택한 삶에 끈질기게 달라붙어 있어야 한다. 마지막 문은 ‘넘어섬의 문’이다. 선생을 넘어서야 하고 나 자신도 넘어서야 비로소 우주의 위대함에 닿을 수 있다.

 

깨우침: 깊은 인생으로 들어서는 첫 번째 문

깨우침 하나_ 우연은 운명을 이끌고

우연의 상황을 인생의 도약으로 삼으려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마리츠버그 역, 기적의 정차- 간디

 

P.24

나는 늘 나와의 대화가 필요했다.

‘난 변호사야. 내 권리도 보호할 수 없다면 누구의 권리도 보호할 수 없어. 그러면 권리를 위해 싸워야 할까, 아니면 이대로 되돌아가야 할까? 그래, 굴욕을 당해도 견디자. 프리토리아에 도착해서 재판을 마치고 인도로 돌아가자. 중도에 돌아가는 것은 사내가 할 행동이 아니야. 이 고난은 표면적인 거야. 깊게 뿌리내린 인종 편견이라는 업병(業病)의 징후일 뿐이야. 내게는 힘이 있어. 이 뿌리 깊은 병을 제거할 힘 말이야. 나는 이 힘을 써야 해. 이 힘을 쓸 때의 고난은 스스로 견뎌내야. 고난에 항거해야 해.’

P.27

나는 인도인 전체가 당하는 부당한 대우에 맞서고 있다는 신성한 사명감에 점점 빠져드는 듯했다.

P.28

나는 프록코트에 넥타이를 매고 정장을 한 다음 역장을 만나러 갔다. 그리고 역장 앞에 금화를 꺼내놓고 일등실 표를 요구했다. 내 생각에, 정장은 말보다 훨씬 강한 설득력을 가지고, 돈은 모든 것의 대변자이며, 좋은 옷과 금화는 힘이 셌다.

P.29

프리토리아에 도착한 나는 동족들을 모았다. 그리고 부당한 대우에 대처하기 위해 그들을 규합했다. 그 규합은 성공적이었다. 일련의 활동들을 통해 인도인도 ‘옷차림이 적절하다면’ 일등실이나 이등실에서 여행할 수 있게 되었다. 이날의 회합이 바로 일개 변호사였던 내가 정치적 지도자로 전환한 첫 순간이었다. 그 후 나는 내가 걷게 된 정치운동의 사명이 바로 마리츠버그의 기차역에서 시작되었다고 술회하고 했다.

그때 나는 자신의 미래에만 민감한 한 젊고 어설픈 변호사에서 인도인의 권리를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다.

P.31

"어찌하여 제가 이 길을 걷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그저 우연의 모습으로 나타난 필연에 의해 제게 주어진 역할을 알게 되었고 그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아니더라도 당신은 누군가에게 이 역할을 맡기셨을 것입니다. 누군가 그 일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왜 저였는지는 아직도 모릅니다. 아마 제가 당신을 향해 주저하면서도 한 걸음 다가섰기 때문에 당신이 기뻐하며 제게 열 걸음 다가와 당신의 은총을 보이신 것이겠지요. 그리고 그 잔을 제게 내미신 것입니다. 그 잔이 제게 왔을 때 무섭고 두려웠지만 그 잔을 들게 하고, 그 우주적 떨림에 의지하여 제 길을 더듬어 갈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일단 이 길로 들어서니 열리지 않았던 문들이 열리고, 모든 것이 착착 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진행됩니다. 그리하여 이 길이 제 인생이 되고 말았음에 저는 철철 눈물을 흘리며 감사합니다.”

 

삶의 문턱에서 홀연 각성하라

P.33

간디는 마리츠버그 사건 앞에서 홀연 각성한다. 그 우연한 사건은 영혼의 각성을 촉구하는 ‘전령관’이었다. 운명의 갈림길에서 그는 모험에의 소명을 깨닫게 된다. 마리츠버그의 우연은 그에게 역사적 사명의 수행을 촉구하고 있었고, 간디는 정신적 통과의례를 거쳐 가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삶의 지평은 너무 좁아 더는 그의 영혼의 크기에 적합하지 않게’ 되었다. 그는 바야흐로 또 하나의 삶의 문턱을 넘어야 할 때에 이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알게 된다. 어떤 우연한 사건이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는 그 사건과 그 사람의 정신세계는 이미 어쩔 수 없이 얽혀 있다는 점을 말이다.

그는 그 사건 이전에 이미 그럴 수밖에 없는 사람으로 자라고 있었다. 이미 그 존재의 깊은 심연 속에 ‘중재력을 가진 도덕적 정치가’ 간디가 도사리고 있었고, 영혼 속에 ‘그것이 그의 운명’이라는 각인이 깊이 찍혀 있었던 것이다. 마리츠버그의 사건은 다만 미래를 암시하는 전령관이고 도화선이었다.

P. 36

우연한 사건이 갈무리된 그의 재능과 특별함을 건드렸고, 그는 대각성에 이르렀다.

P.37

간디 역시 위대한 지도자로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도덕적 자기 검열이라는 특성을 어려서부터 계발해왔던 것이다.

제자가 준비되면 위대한 스승이 나타나듯, 사람이 준비되면 위대한 사건이 일어난다.

사람의 운명이 바뀌기 때문에 그 만남이 위대해지는 것이다.

그 이후 그들은 평범함으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이미 하나의 세계를 지나 더 높은 차원의 정신적 각성을 거쳤기 때문이다. 한 번 고양된 정신은 낮아지지 않는다. 그것이 현실 속에서 구현되지 않을 때 맞서 싸우지 못하는 자신을 스스로 결코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세상이 만들어주는 대로 사는 평범함을 넘어서기 시작한다. 그들은 세상이 만들어주는 대로 사는 평범함을 넘어서기 시작한다. 그들은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한다. 위대함이 평범함 속에서 발아한 것이다. 소명이 그때부터 그들을 이끌기 시작한다. 그들은 크든 작든 하나의 영웅이 되어가다. 그리하여 자신만의 아름다운 별이 된다.

p.39

약한 사람에 대한 공감, 탐욕이라는 열차에서 뛰어내릴 수 있는 용기를 가진 그 역시 그 우연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역시 운명적 사건 이후 과거의 그로 되돌아가지 않았다.

p.40

우연은 누구에게나 일어난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적 만남이 된다. 성감대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그 우연에 민감하게 반응할 태세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 우연은 그저 우연으로 지나가고 말 것이다. 오직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사람들만이 자신에게 다가온 우연을 인생의 변곡점으로 잡아둘 힘을 가지게 된다.

P.41

우리의 다르마(운명)는 무엇일까? 그것을 알아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에게 주어진 어떤 우연한 순간을 결정적인 전환점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우리가 막연히 알고 있던 지식이 자신에게 구체적으로 적용되는 순간 우리는 체험을 하게 되고, 느끼게 되고, 깨닫게 된다. 말하자면 막연한 지식이 자신 안에서 구체적 체험으로 전환될 때, 우리는 각성하게 된다.

P.42

큰 길은 하늘이 정하고, 작은 길은 인간이 계획한다. 우리가 준비되면 우주는 모험을 떠날 수 있도록 사건을 만들어준다.

P.45

며칠 동안 경험한 ‘그늘 체험’을 통해 내 가슴에 ‘변화경영전문가’라는 비전이 자리 잡게 되었고, 단명한 직장을 넘어 평생의 직업을 바라보게 되었다.

P.46

새로운 ‘업’의 정의에 따라 목표가 분명해지자 현업에 대한 자율성의 강도도 그만큼 더 강해졌고, 애정도 깊어졌다. 당시 나는 자신의 일에 가장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직원이었을 것이다. 모든 것이 그 초라한 ‘그늘 경험’에서 얻은 깨달음 때문이었다.

'훈련을 실전처럼, 실전을 훈련처럼’

나는 그동안 ‘어제보다 아름다워지려는 사람을 돕습니다.’라는 비전을 가지고 일해 왔다.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들 속에서 잠재력을 발견하고 그것이 커나가 그 사람만의 꽃으로 피어나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되었다. 그것이 내게 주어진 우주적 소명임을 깨달았다.

나는 간디나 체 게바라처럼 크고 빛나는 별은 아니다. 나는 작은 별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빛나야 할 운명을 가진 별’이다. 사람은 모두 별이다. 자신의 내면에 커다란 빛을 품고 있으면서도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아 장막으로 빛이 가려진 별들, 이 평범한 별들을 찾아 자신의 이야기를 창조해냄으로써 빛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움별, 그 별이 바로 나임에 틀림없다.

 

깨우침 둘

야생의 재능이 나를 부를 때

 

문득 어떤 일이 나를 건드릴 때, 한순간 폭포수처럼 내면의 에너지들이 분출될 때, 그리하여 신이 내 속에 감춰둔 재능이 그 일에 감응할 때는 망설이지 마라. 그 길을 따라 나서라. 재능이 공명하는 곳, 한 번도 계발되지 않은 야생의 재능이 밖으로 나오려고 외칠 때, 그 소리를 들어주어야 한다.

 

춤추는 여신과의 마주침-마사 그레이엄

 

진실한 삶을 사는 사람은 신의 이름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을 흙 속에 묻어주지 않는다. _ 니콜라이 고골

P.52

더욱이 춤추는 여인의 표정이, 풍부한 눈은 다소 침울하지만, 몽환적인 나의 기질에 사정없이 불길을 당겼다. 나의 모든 세포가 일어서고, 나의 모든 기질이 도발하고, 나의 모든 재능이 솟구쳐 당장 벌떡 일어서서 여신처럼 춤추기를 원했다.

P.53

이 확연한 깨달음, 너무도 분명한 내적 공명, 열일곱의 내가 맛본 그 판타지는 내 영혼에 찍힌 각인이었다. 너무도 뜨겁고 너무도 강렬하고 황홀하여 모든 것을 잊게 하는 감격이었던 것이다.

 

피할 수 없는 나의 길을 걸어라

P.58

꿈은 현재라는 점이 하나의 선으로 일렁이며 미래로 나아가게 한다. 그리고 인생이라는 화폭을 모험이라는 위대한 긴장의 울림으로 가득하게 만든다.

P.60

"나의 인생은 조각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조각은 특정한 다른 사람과 공유되어 있어 그 특별한 관계들이 모여 온전한 나를 느끼도록 한다.”

P.61

'타고난 재능이 적절한 사회 문화적 조건 속에서 연습되고 다듬어진 훈련된 능력’이다.

리더로서의 성공은 명성과 돈 또는 권력을 얻는 것이 아니라, 타고난 재능을 비범하게 발전시켜 세상에 자신을 드려내는 것이다.

“당신의 독특한 점을 이로운 축복이 되도록 만들어라. 많은 경험을 쌓아라. 그리고 그것을 가장 긍정적인 방법으로 계발하라.”고 조언한다. (가드너) 인생의 목표는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다. 주어진 능력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그것을 최대한 활용하여 빛나게 하는 것이다.

P.63

성공은 재능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태어났느냐에 달려 있지 않다. 그것은 카드 게임과 같다. 패는 주어지는 것이다. 좋은 패도 있고 나쁜 패도 있다. 주는 대로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카드 게임에 참가한 플레이어로 주어진 패를 가지고 이기기 위해서, 혹은 즐기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재능은 주어진 대로 받을 수밖에 없다. 그것은 신의 영역이다. 그러나 받은 재능을 다 쓰고 가야하는 것은 인간의 책임이다. 그리고 위대함이란 받은 탤런트의 크기가 얼마가 되었든 받은 만큼 다 쓰고 갈 때 찾아온다.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루스벨트는 이것은 아주 멋지게 표현했다.

“성공한 보통 사람은 천재가 아니다. 평범한 자질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 평범함을 비범하게 발전시킨 사람이다.”

평범함이란 없다. 그것은 아직 속에 있는 것이 개화하지 않았다는 것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것이 터져 나올 때 누구나 비범함으로 도약할 수 있다.

P.66

언어는 인간의 감정이다.

인생의 갈림길에서 나는 늘 차선책을 선택했다. 밥이라는 절체절명 앞에서 나는 늘 현실을 선택했던 것 같다. 한 달의 단식, 그것은 밥에 매이지 않고 세상을 한번 마음먹은 대로 살아보고 싶어 시작한 나의 성전(聖戰)이었다. 포도만 먹는 단식이 일주일째로 접어들었다. 그날 새벽 4시에 나는 눈을 떴다. 왜 그때 눈이 떠졌을까? 아마 배가 고파서였을 것이다. 잠은 다시 오지 않았다. 여름 새벽을 아무 생각 없이 뒤척였다. 여름 태양이 떠오르고 내가 누운 방 안으로 햇살이 기어들었다. 점점 방 안으로 들어와 내가 누운 곳을 비추고 이윽고 나를 넘어 지나갔다. 그때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이 빛나는 날 내게는 오늘을 마음대로 할 자유가 주어졌으나 나는 오늘을 보낼 아무런 계획도 없었다. 나의 하루가 속절없이 흘러가겠구나. 그렇게 내 인생도 가뭇없이 사라지련만 나는 인생의 절반 지점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구나. 이렇게 환한 낮이 밝아오는데 시체처럼 방 안에 누워만 있구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그때 마음속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일어나 글을 써라. 너는 글을 써보고 싶지 않았느냐?’ 내 속에서 무언가가 소리쳤다. 그 소리가 너무 커서 일어나 앉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대가 마흔세 살이었다. 그전까지 글을 써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언젠가 변화에 대한 글을 꼭 한 권 쓰고 싶다는 바람이 여러 해 동안 있었으나 실천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후 6개월이 지나서 나는 한 권의 책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그 책이 바로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다. 그 책은 운이 좋았다. 그 책 덕에 나는 1990년대 가장 사랑받는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그렇게 두 번째 인생이 시작되었다.

그날 그 아침이 내 인생의 분기점이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날이 바로 내게는 마사 그레이엄이 루스 세인트 데니스의 포스트를 본 날이고, 그녀의 춤을 격정 속에서 관람한 날이기도 하다. 그때 내 마음속에 깊이 감추어져 한 번도 훈련받지 못한 야생의 재능이 온 힘의 대해 외치고 있었고, 다행히 나의 의식이 그 외침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바로 나의 그날이 단테에게는 그가 《신곡》의 첫 문장을 시작한 날이었을 것이다. 본인에게는 너무도 확실하고 너무도 분명한 인생의 분기점에서, 나는 재능이 내게 보낸 메시지를 정확히 수신했다. 그 여름의 그 햇빛, 그 눈물, 그 기쁨을 나는 생생히 기억하고 느끼고 들을 수 있다. 내게는 너무도 선명한 기억이므로. 감춰져 있고, 한 번도 제대로 쓰인 적이 없는 그 평범한 재능이 세상에 외친 그날 새벽,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P.70

나는 내 비즈니스의 영역을 규정했다. 나는 ‘이야기를 파는 사람’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불가능한 이야기들을 사람들이 믿게 만들수록 내 비즈니스는 번창하게 된다. 이것이 내 정체성이다. 그러나 나는 순수 이야기꾼은 아니다. 왜냐하면 내가 늘어놓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이미 내가 직접 경험해본 일들에서 추출된 것이기 때문이다. 직접 재배한 텃밭에서 따온 소채로 만든 음식인 셈이니 재료가 제법 양질이다. 나는 상상한다. 실천한다. 그리고 다른 사라들도 실천할 수 있도록 범용적인 성장 모델을 만들어낸다. ‘이야기를 통해 의미를 전달하는 것’, 이것이 나의 직업이다. 나는 이 일을 잘할 수 있다. 이 일이 나를 구해줄 것이다.

 

견딤

깊은 인생으로 들어서는 두 번째 문

 

견딤 하나_끈질기게 삶에 달라붙다

 

세 번째 이야기는 스스로 그려낸 삶에 대한 뱃심으로 결코 물러서지 않는 이야기다. 깨달음은 우리에게 통찰을 준다. 그러나 일상의 삶은 여전히 과거의 법칙을 따르게 마련이다. 깨달음이 제시하는 미래와 일상이 구제하는 현실 사이의 괴리는 우리를 주저앉게 한다. 그리하여 종종 정신은 이상을 향하나 우리의 육체는 현실을 따르려고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미래에 대한 나의 통찰을 믿어주고 응원하는 뱃심이다.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용기다.

 

 

사라진 영웅, 다시 살아나다-윈스턴 처칠

P.77

나는 세상을 감동시키고 싶었다. 그것이 삶의 단 한 가지 목표였다. ‘나라는 사람, 나의 메시지, 그리고 그 메시지를 표현하는 나’는 삼위일체처럼 서로 떨어질 수 없다. 나는 서사시처럼 살았고, 그래서 나의 업적만큼이나 나의 실수와 약점도 그만큼 크다. 그들을 쩨쩨하고 이기적인 내 모습도 놓치지 않는다. 그렇다. 전쟁으로 얼룩진 나의 삶, 나는 어떤 경우에도 삶에서 물러선 적이 없다. 삶에 대한 뱃심 때문에 사람들은 나를 사자나 불도그로 묘사했다. 내가 나타나면 사람들은 패배하리라는 생각을 버렸다.

P.79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에서 모든 사람이 반대하는 것에 대해 내가 신념을 가지고 그들을 설득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 굴복하지 않는 힘, 도대체 그 힘을 어디서 나온 것일까? 나는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진실을 알고 있었다. 철저하게 현실을 조사하고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략 알고 있는 것을 나는 자세히 알고 있었으므로 정보의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P.80

아침마다 ‘위험은 평화 시에 상존한다.’는 사실을 내게 주입시켰다.

‘모든 사물의 모양, 위치, 상호작용’ 등에 대한 정보를 알아냈다. 마침내 나는 원하는 모든 것을, 원하는 때에, 원하는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어떤 주장을 펼쳐갈 때 근거와 정보가 부족한 경우는 없었다. 나는 이 부분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정력적이었다. 나의 예지력은 바로 현장을 철저히 관찰하는 부지런함과 연역적 추론에서 나왔다. 성실함과 부지런함이 현재 상황을 분명히 이해하고 무엇이 결정적인 요소인지 알게 했기 때문에 나는 다수의 의견에 굴복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다수의 의견이 아니라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내 예지력과 통찰의 비밀이었다.

예지력이 제대로 된 힘으로 작동하려면 마음이 미리 본 것을 지켜갈 수 있는 불굴의 용기와 인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포기하는 순간 예지력은 무력해진다.

냉소는 결코 업적을 남길 수 없다

P.85

처칠은 폭풍을 잘 견디는 사람이었다. 영국인들은 거친 기후를 잘 견디는 사과 품종에 윈스턴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모두 그를 불굴의 인간으로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쟁이 없었다면 인류는 처칠을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히틀러 역시 자신과 전쟁이 없었다면 처칠을 유명해질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처칠은 상황이 어려울 수록 잘 견디고, 나이가 들수록 더 강해졌다. 그는 끈질긴 사람이었다. 스스로 자신의 끈질김을 “문 닫을 때까지 술집에 머무는 것이 나의 신조다.”라고 표현했다. 그는 인생을 참으로 소란스럽게 산 사람이다. 포기를 모르는 인간이다. 그렇게 끈질기게 삶에 붙어 있던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처칠은 사망하는 그 순간 바로 역사로 편입되었다. 아니, 그는 이미 살아서 역사가 되어 있었다.

P.87

"나는 하키 공이 있는 곳이 아니라 공이 움직일 곳으로 미끄러져 간다.”

_ 전설적인 하키 선수 웨인 그레츠키

P.88

아이러니하게도 미래를 잘 볼 수 있는 자는 과거를 잘 아는 자다. 선견지명에 이르는 그 신비의 원천은 신의 선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근면과 노력이라는 주장이 훨씬 설득력이 있다. 예지력이 뛰어난 인물들은 현재를 이해하기 전에 과거를 연구했고, 역사적으로 결정적인 사건들의 본질을 파악했다. 그들은 현재를 바꿀 방법을 강구하기 전에 그들이 처한 현재의 상황과 여기까지 이른 경로를 면밀히 탐구하여 알고 있었다. 미래를 꿰뜷어 본다면 그것을 천재적 통찰이라고 부르고 싶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천재의 징표가 아니다. 그러기에는 좀 더 보편적이다. 쉽게 보이지 않는 패턴과 동기, 그럴 수밖에 없는 필요성, 기회와 전조가 되는 사건과 행동들을 파악하기 위한 힘겨운 탐구의 결과가 바로 예지력의 정체인 것이다.

예지력은 현재에 대한 관찰과 부지런한 탐구의 결과다.

P.89

불굴의 용기가 무엇인지를 역사가 아널드 토인비를 이렇게 감동적으로 표현한다.

필요가 발명의 어머니라면 발명의 아버지는 고집이다. 적당히 단념하고 손쉽게 살 수 있는 곳으로 옮겨가는 것보다 불리한 역경 속에서 살아가겠다는 결심이 진보의 역설적 진리다. 혹독한 추위와 이변 속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문명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 울창한 숲이 말라죽은 상태가 되었을 때 ‘달아난 원시인들’은 자연의 지배를 가장 심하게 받았을 뿐 아니라 자연을 정복하려 하지 않았다. 난관을 뚫고 인간이 된 것은 이미 그 밑에 앉을 나무조차 없어진 그 자리에 버티고 있던 무리들이며, 나무 열매가 익지 않자 짐승을 잡아 고기를 먹은 무리들이며, 햇볕을 쫓아 이동하는 대신 불과 의복을 만든 무리들이며, 거처의 방비 벽을 구축하고 아이들을 훈련시켜 세계의 비합리성에 합리성을 입증한 무리들이었다.

미래는 잠재적 운무 속에 깊이 둘러싸여 잘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고, 모호하고 혼란스럽다. 예지력은 이런 무질서를 꿰뚫고 새로운 방향으로 인도하는 신호를 찾아내는 것이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알게 되면 그 상황을 만들어낸 요소들의 작용에 의해 어떤 변화가 생기게 된다는 것도 알게 된다. 어떤 변화는 반가운 것이고, 어떤 변화는 위협적이다. 참여하여 유리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기꺼이 참여해야 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는 그 변화에 저항한다는 것이 힘들 수도 있다. 그때는 새로운 변화의 앞을 선점하는 것이 결정적인 도약의 기회가 된다. 이때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미래에 대응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미래를 창조해내는 것이다.”

위대한 업적은 구체적으로 사람들의 눈에 드러나기 전에 한 사람의 정신 속에 하나의 생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정신은 언제나 먼저 본다. 업적은 정신이 먼저 본 것을 불굴의 의지로 실천할 때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정신이 본 것을 비웃는 냉소는 결코 업적을 남기지 못한다. 언제가 헨리 키신저는 처칠이 죽은 다음 그를 추모하는 연설에서 “냉소적인 사람은 결코 대성당을 짓지 못합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렇다. 냉소적인 사람들은 결코 위대한 건물을 짓지 못하는 법이다. 우리는 미래는 우리를 이곳까지 끌고 온 위대한 생각과 자세를 불굴의 투지로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

나는 죽을 때까지 책을 쓰고 강연을 할 것이다. 내게 퇴직은 없다. 죽음이 곧 퇴직이다. 나 또한 위대한 사람들이 그랬듯이 삶에서 일을 놓지 않을 것이다. 그 일은 이미 내 인생이 되었고, 놀이가 되었으며, 의미가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죽을 때까지 일과 더불어 즐길 수 있는 이유는 1인 기업가이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는 스스로 고용하기 때문이다.

P.92

1인 기업이란 ‘I, the Company', 즉, ‘내가 곧 회사’라는 개념이다. 나는 ‘나라는 회사’이며, 다른 사람에게 고용되지 않고 스스로를 고용한다. 하는 일도 하는 방법도 모두 내가 선택한다. 온전히 나의 경험과 잠재력에 의존하여 일을 한다. 수익 모델도 간단하다. 매출에서 세금을 제하고 나면 수익이 된다. 사무실도 내 집이다. 그러나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있는 곳, 그곳이 강연장이든 카페든 내가 잠시 머무는 그곳이 바로 사무실이다. 왜냐하면 그곳이 바로 부가가치가 창조되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P.93

하고 싶은 일을 나의 방식으로 펼쳐가면서 일이 취미이며 놀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일은 내 인생의 구세주가 되었다. 일에 몰입하게 되었고, 보람을 찾게 되었다. 결국 일은 내 삶의 다른 부분에도 빛과 기쁨을 선사하는 에너지가 되었다. 소명을 발견했고, 죽을 때까지 기쁘게 이 일에 헌신할 것임을 알게 되었다.

내 마음에 1인 기업가라는 개념이 꽂혔을 때, 나는 이것이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직업이 되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P.95

나는 내가 회사를 그만두는 날을 상상했다.

이날부터 진정한 인생이 시작되리라. 이때 나는 다른 사람이 시키는 일이나 하는 것을 그만두리라. 내 일을 하리라. 그 일에 대한 소명감으로 나의 마음은 가득 차리라. 매일 새벽에 일어나 나만의 일이 몰입하리라. 몰입은 창의성으로 연결되고, 나는 매일 아침 일어나 불가능한 일을 믿는 법을 수련하리라. 매일 꾸는 꿈은 결국 이루어지리라. 내게 더 많은 시간을 쓰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많은 웃음을 나누게 되리라. 나는 스스로 창의적인 전문가가 되고, 차별성으로 유일해지리라. 그리하여 일을 통해 인류에 공헌하리라. 나는 기업이 나를 고용하지 않아도 스스로 고용할 것이니, 나는 이제 의존하지 않으리라. 나는 끝내 자유가 되리라.

P.96

나는 현재와 미래 사이의 관계에 대한 주요한 통찰 하나를 얻게 되었다.

그것은 어떻게 미래를 설계하느냐에 따라 현업에 대한 열정이 좌우된다는 점이다. 직장인들이 현업에 몰입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현업에서 비전을 찾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업에서 미래의 비전으로 닿을 수 있는 다리를 하나 놓게 된다면 사람들은 훨씬 더 현업에 몰입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의 일에 열정을 쏟아 넣으면 미래의 비전에 자연스럽게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미래의 비전은 현업의 갈 길을 비추는 등대가 된다. 미래를 설계하면서 현업이 더 무의미해지고 당장 떠나야 할 것으로 느껴지는 경우는 현업과 미래의 비전 사이에 깊은 심연이 있어 서로 닿을 수 있는 길이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P.98

그렇게 10년이 지났다. 10년 동안 스스로를 불러왔던 ‘변화경영전문가’라는 타이틀을 거두고, 2010년 이후 나는 스스로 ‘변화경영사상가’라고 불렀다.

이제 내가 공부하여 알게 된 것과 체득한 깨달음을 마음대로 실험해보고 싶었다. 그것은 생각을 다루고, 의식을 다루고, 태도를 다루고, 가치를 다루는 것이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전문가에서 사상가로 전화했다. 그렇게 한동안 살 것이다. 그리고 나는 ‘변화경영의 시인’으로 죽을 것이다. ‘시처럼 산다.’ 이것이 내 인생 후반기 진화의 여정이다. 바라건대 삶에서 결코 물러선 적이 없기를 자신에게 당부한다.

 

견딤 둘: 침묵의 10년을 걷다

한길에서 두각을 나타내려면 적어도 1만 시간은 묵묵히 매일 연습해야 한다. 스스로 충실한 훈련규율을 정하고, 매일 거르지 말고 그 일을 해야 한다.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엄격한 규칙을 따르는 것을 밝음 경영이라 한다. 즉 내면의 빛나는 강점에 기대어 매일 나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우드스턱의 작은 우두막집-조지프 캠벨

P.102

대학에서는 내가 다른 영역으로 옮겨가 공부를 계속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내 인생이니 내 마음대로 할 뿐 대학이 시키는 일을 하지는 않으리라 다짐하며 그까짓 논문은 개에게나 줘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학위는 내 열등감을 상쇄하기 위해 갖춰 입는 옷에 지나지 않고, 그 열등감은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므로 굳이 학위가 필요하지는 않다고 위로 했다. 그 대신 나는 숲으로 들어가 5년 동안 보고 싶은 책들을 보며 시간을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그 덕에 나는 박사학위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이 살아가는 법을 배웠고, 책임질 아무 일이 없어 하늘의 새처럼 자유로웠다. 그야말로 경이로운 삶이었다. 그 기간은 1929년에서 1934년까지 5년 동안 이었다.

나는 뉴욕 주에 있는 우드스턱의 작은 오두막집을 빌렸다. 거기서 나는 그저 책만 들이팠다. 그저 읽고, 읽고, 도 읽었다. 그리고 읽으면서 노트 필기를 했다. 그 당시 사회는 대공황 상태였다. 나는 돈이 한 푼도 없었다. 그래도 뉴욕에 있는 스테처트 해프너라는 큰 서점에 책을 주문했다. 책값을 바로 지불할 수 없었다. 다행히 서점에서는 내가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 기다려주었고, 일자리를 구한 다음에 책값을 지불할 수 있었다. 나는 클럽 같은 데서 연주를 해 푼돈을 벌곤 했다. 가난한 시대였으나 그야말로 멋진 거래였다.

→ 이 사람, 용기가 부럽다. 아름답다.

P.104

방황을 할 때는 당장 그날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하되, 내일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묻지 말아야 한다. 미리 생각해둔 것에 매달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특히 다음 세 가지는 결코 생각해서는 안 된다. 먼저 하나는 굶는 것을 걱정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불안해하는 것이며, 마지막 하나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를 염려하는 것이다. 그래도 정 걱정이 떠나지 않을 대가 있으면 좀 유치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주술을 걸어보았다. 서랍의 맨 위 칸에 1달러짜리를 넣어두고는 “여기 1달러가 있는 동안은 나는 빈털터리가 아니야.”라고 말했다. 그러면 위로가 많이 되었다. 나는 그 때 알게 되었다. 현재 처한 상황을 희극적으로 바라보면, 우리는 영적인 거리를 얻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웃음과 유머 감각이 우리를 생활고에서 구해준다. 고생은 앞으로 언젠가의 영광을 더 빛내주는 어두운 배경이고, 빈곤은 내가 물질에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마음이 커져가도록 만들었다.

삶에는 고정적인 것이 아무것도 없으며, 그 무엇도 당연하지 않은 것은 없었다. 모든 것은 우연히 내 눈에 띄었다. 놀라운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P.105

방랑과 침묵의 시간은 긍정적인 시간이다. 새로운 것도 생각하지 말고, 성취도 생각하지 말고, 하여간 이와 비슷한 어떤 것도 생각하지 말고, 그저 “내가 지금 무엇을 하면 행복할까?”라고만 말해야 한다. 이것이 유일한 관심사여야 한다. 진짜다. 얼마나 간단한 일인가? 그저 나의 자리라고 생각하는 곳에 머무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야말로 ‘그들의 생각’에 지나지 않으니까 말이다.

→ 나의 방랑과 침묵의 시간이 어둡고 괴로웠던 것은 ‘그들의 생각’으로 방향을 설정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계를 바꾸려고 하기 전에 자신의 삶을 바로 잡는 임무를 실행해야 한다. 그러니 스스로 계획해두었던 삶을 기꺼이 내팽개칠 수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를 기다리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변화를 원하는 마음의 근저에는 편함이 있어야 한다.

우리 삶에 진정한 목표가 있다면, 그것은 삶을 체험하는 것, 고통과 기쁨을 모두 경험하는 것이다. 의미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부여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삶의 체험, 그 떨림만이 살아 있음의 증거다. 그러니 이 세상, 삶이 이루어지는 이곳이야말로 내가 있을 곳이다. 단명한 삶의 비극에 기쁜 마음으로 참여하는 것, 그것이 이 세상을 사는 자세인 것이다. 이 세상이야말로 우리의 짝이며, 우리 역시 이 세상의 짝이다.

P.107

방랑을 하는 동안 나는 신비할 만큼 유기적인 우연을 즐기게 되었다. 그것은 마치 나무가 자라는 것과 같았다. 나뭇가지 하나가 어느 날 한 쪽에서 삐죽이 나오고, 다음에는 다른 쪽에서 나와 자라게 된다. 제멋대로 내버려두어도 나무는 훌륭하고 아름답게 자란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대로 살다 보면 오히려 일을 망치게 된다. 자신의 에너지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빠져들어 지낼 일이다.

춤추는 사람은 사라지고 춤만 남는 경지에 이르라

P.109

경제적으로 빈한하기 이를 데 없는 시절이었으나, 캠벨은 미래에 대한 모든 걱정을 잠재우고 고독한 지적 모방과 배움으로 자신을 가득 채웠다.

P.111

우리는 천재성과 통찰력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천재들의 활동으로 알려진 위대한 성과의 비밀은 타고난 천재성의 결과라기보다는 오히려 침묵의 10년이라는 땀의 계곡을 행진해온 결과인 것이다.

P.112

우연처럼 보이는 영감과 통찰은 대체로 모두 이런 전문적 지식과 몰입의 산물들인 것이다. 탁월한 창조자들은 자신이 선택한 분야에 대한 오랜 헌신과 그 분야의 방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혁신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우리가 가진 재능을 위대한 성과에 이르는 지름길로 활용하려면, 먼저 정교한 훈련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그리고 ‘침묵의 10년’이라는 땀의 계곡을 행진해야 한다. 누구보다 더 깊이 한 분야에 몰입하고 헌신하여 전문성을 쌓아 두어야 한다. 그러면 그 분야에 대한 방대하고 심원한 지식의 바탕 위에 자연스럽게 창의성과 통찰력 넘치는 걸작들이 만들어지게 된다. 이 때 평범한 우리는 한 분야의 차별적인 창조자가 될 수 있다. 우연이 그저 운명이 되지는 않는다. 오직 땀으로 준비한 사람에게만 재능을 공명하여 위대한 창조적 작품을 선사하는 것이다.

P.114

평범함에서 위대함으로의 도약에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실천적 비법을 꼽으라면 그것은 매일하는 훈련이다. 김연아는 한 인터뷰에서 “동작 하나를 익히기 위해 1만 번을 연습한다.”하고 말한다. 그것이 김연아만의 대답이겠는가? 매일 할 때 기술이 늘어 기예가 되고, 어느덧 그 사람과 떨어질 수 없는 한 몸, 한 영혼이 된다. 이 때 ‘춤추는 사람은 사라지고 춤만 남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화가는 사라지고 그림만 남고, 글 쓰는 작가는 어느덧 사라지고 글만 남는 경지를 매일의 훈련이 주는 기막힌 선물이다.

그러므로 훈련의 첫째 요소는 반복이다. 반복, 반복, 오직 반복, 대가가 되는 유일한 실천의 비법이다. 매일 훈련한다는 것은 결정적인 과정이지만, 그 훈련이 억지로 강압적으로 노예처럼 하는 것은 아니다. 깊어질수록 스스로 즐거움이 된다. 재능과 잘 일치된 훈련은 다른 것으로는 충족될 수 없는 몰입과 황홀함을 동반하게 되어 있다. 훈련은 땀이므로 노력이 수반되지만, 매일 하는 습관이므로 고통이 아니라 일상이다.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들만이 느끼는 천복을 좇는 숙명의 기쁨이 있다. 그것은 처음에는 강제된 훈련이었지만 점차 육화되어 기예가 되고, 이윽고 행위자는 사라지고 그 행위만 남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이때 그것은 곧 그 사람의 삶의 정체성을 이루게 된다.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은 피아니스트다. 피카소는 화가다. 버나드 쇼는 극작가다. 이것보다 그들을 더 잘 설명할 수 있겠는가?

P.115

훈련의 두 번째 요소는 창조성이다. 반복하되 단순히 반복하지 않는다. 훈련 역시 창의적 진화를 하게 마련이다. 그 과정에서 불현듯 무엇을 어떻게 반복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한다.

P.117

세월을 견디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고통에 기쁘게 다가서려는 마음만이 이 길을 걷게 한다.

고독한 고요, 인류의 유산에 흠뻑 젖다

P.121

과거와 싸우지 마라, 먼저 과거의 유산을 상속받으라. 부끄러움 없이 훔쳐 모방하고 반복하여 먼저 과거의 정점에 서도록 해라. 미래의 풍경을 그 산 너머에 있다. 그러니 매일 걸어라. 매일의 힘만이 꿈으로 인도하는 단 하나의 믿음직한 주술이다. 명심하라. 평범한 자가 비범한 자를 능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한 분야를 정하고 들이파는 것이다. 그러면 누구도 그 분야에 대해서는 너를 당할 자가 없을 것이니. 침묵의 10년을 보내라. 고독한 10년 궁핍한 10년을 보내라. 누구든 우드스턱의 시대를 거쳐야 한다.

 

 

견딤셋

여명처럼 고독을 지키다

 

스스로 깨달은 진실과 통찰을 오랫동안 지키고 매일 수련하다 보면 세상과의 괴리 때문에 고독해지게 마련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을 매일하는 것, 그것이 곧 고독이다. 고독에 지면 세상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꿈은 사라지고, 평범한 곳으로 다시 되돌아온다. 고독을 견디는 자만이 위대해진다.

 

버려진 자의 평온-바뤼흐 스피노자

고독하다는 것은 사회보다 앞서 간다는 뜻이다 - R.W 에머슨

P.128

이 고독과 불행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철학과 믿음 때문이었다.

나는 미움을 미움으로 갚는 대신 사랑으로 갚는 것이 미움을 더 쉽게 극복하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자신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적을 미워하지 않는다. 미움이라는 것은 결국 자신의 단점과 두려움을 자백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미움을 사랑으로 쫓아버리려고 애썼다. 그러자 기쁨과 확신이 찾아왔다. 정신은 무기에 의해 정복된다. 나는 언덕 위의 빛 속에 서 있는 듯했다.

P.129

미래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변경되지 않도록 이미 고정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희망과 공포는 둘 다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생각에 의거한 것이기 때문에 지혜의 결핍에 의해 생겨난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희망에 속지 말고 미래의 불확실성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자유로운 인간은 죽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며, 죽음이 아니라 삶에 대한 명상을 통해 지혜를 얻어야 한다. 나는 나의 학설을 믿었다. 그리고 실천했다. 이후 나는 흥분하지 않았다. 분노에 휘둘리지도 않았다. 상대를 비난하지도 않았다. 만물이 다 필연적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나면 감정에 휘둘릴 이유가 없었다.

P.130

한번은 이성보다 신의 계시를 믿는 것이 어떠냐는 질문에 나는 이렇게 말했다.

"비록 내가 자연적 오성으로 수집한 결과가 진실이 아님을 알게 된다 하더라도 나는 그것을 불만으로 여기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게는 그 자체가 유쾌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나날은 탄식과 슬픔 속에서가 아니라 평화와 밝음과 환희 속에서 지나가고 있다.”

나는 변하기 쉬운 대상을 지나치게 사랑하여 집착하지 않으려고 했다.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고결하게 사는 법을 익히는 것이 바로 나의 관심사였다. 우주적 차원에서 보면 내게 닥친 불행이란 궁극의 조화를 이루기 위한 일시적 부조화일 뿐이기 때문에 화를 낼 이유도 거부할 이유도 없다. 결국 만물은 모두 신의 일부이니 만물을 신의 한 부분으로 사랑하는 과정이다.

 

견뎌라, 아직은 나의 때가 아니다

P.131

바뤼흐 스파노자는 위대한 철학자들 중에서도 고결한 품성을 갖춘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버트런드 러셀은 그를 ‘지적인 면에서야 그를 능가할 철학자들이 몇 명은 되겠지만, 윤리적인 면에서는 아무도 그를 따르지 못할 만큼 최고 수준에 이른 철학자’자로 평했다.

'자연은 극히 적은 것으로 만족하고 있으니‘, 스피노자도 자연을 본받아 그렇게 살려고 했다.

P.134

이제부터 나는 자신의 삶을 자신의 생각에 모두 바친 또 한 사람의 이야기를 더하려고 한다. 그 사람은 바로 니체다. 그는 “누구든 그 사람에 얽힌 일화 세 가지만 들으면 그 사람의 특성을 알 수 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주장에 따라 세 가지 일화를 통해 그가 어떤 위대한의 궤적을 따라갔는지 추적해보다.

첫 번째 일화는 그 인생의 시작점인 소년이었을 때의 일이다. 그는 어려서 ‘꼬마 목사’라고 불렸다. 자존심이 강하고 불굴의 인내력을 가지고 있었다. 어려서 겪은 가장 특이한 일은 학교 친구들이 무티우스 스케볼라의 전설을 믿으려 하지 않자 한 묶음의 성냥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다 탈 때까지 손을 움직이지 않은 사건이다. 그는 ‘소녀의 혼이 무사의 갑옷을 입고 있는 듯’했다. 틀림없이 그는 철학계의 잔 다르크 같은 영웅이었다. ‘초인’에 대한 동경은 여기서부터 가닥을 잡아 간 듯했다.

두 번째 니체의 삶의 변화는 장년의 절정기에서 병으로 죽을 뻔한 기간을 벗어나 유럽을 떠돌다 로마에서 스물한 살의 러시아 여인 루 살로메를 만났을 절정에 달한다. 죽음을 가까이 둔 생활은 죽음과의 투쟁에서 얻은 의지뿐 아니라 태양과 생명, 웃음과 같은 삶의 긍정성도 되돌려주었다. 그는 부드러워지고 여성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그러나 마음에 둔 살로메는 그의 사랑에 응하지 않았고, 니체는 고독과 침묵 속으로 도망갔다. 섬세하고 다혈질이며 ‘정신적 풍요에 도취된 인물’이었던 그는 쓸쓸한 고원에서 그의 최고작을 쓰기 시작한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는 이때 쓰이고, 이렇게 시작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서른 살이 되었을 때, 고향과 소향 호수를 떠나 산으로 들어갔다. 10년 동안 산에서 지내는 동안 그는 자신의 정신 세계와 고독을 즐기느라 지루함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마음에 변화가 왔다. 붉게 물든 동녘 하늘을 보며 일어난 어느 날 아침, 그는 태양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위대한 태양이여, ․․․․․․․․ 내일 아침 당신을 기다렸고, 당신에게서 넘쳐나는 것을 받았고, 감사와 축복을 보냈다. 나는 나의 넘치는 지혜에 싫증이 났다. 너무 많은 꿀을 모은 꿀벌처럼. 이젠 도움을 달라는 손길이 필요하다. 나의 모든 지혜를 나누고 싶다.․․․․․․․․그리하여 나는 저 아래로 내려가야만 한다.”

이 책은 그의 최고의 걸작이다. 이때 그의 믿음은 최고조에 달했다. 이 책은 니체의 복음서이며, 그 후에 쓰인 다른 책들은 모두 이 책의 주석에 지나지 않는다. 신은 죽었고 초인이 살기를 원한다. 지금이야말로 인간이 스스로 표적을 세우고, 인간이 그 지고한 희망을 심을 대라고 외친다. 이것은 인생을 긍정하는 가장 용감한 형식의 선언이다. 니체의 철학은 차라리 하나의 아름다운 시다. 그래서 철학자 윌리엄 듀랜트는 ‘그것은 철학이 아니라 시일 것’이라고 말한다. 정말 그렇다. 그의 시는 차라리 잠언에 가깝다.

언젠가 많은 것을 가르쳐야 할 이는

많은 것을 가슴속에 말없이 쌓아둔다.

언젠가 번개에 불을 켜야 할 사람은

오랫동안 구름으로 살아야 한다.

이 시는 〈언젠가 많은 것을․․․․․․․․〉이라는 니체의 시다. 그는 멋진 시인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을 ‘인간이 아니라 다이너마이트’라고 표현했다. 그 다이너마이트는 아마 하늘을 빛내는 초인표 폭죽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위대한 책은 40부 밖에 팔리지 않았다. 그나마 일곱 부는 기증본이었다. 시대는 그를 이해하지 않았고, 그처럼 고독한 사람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시대를 구름으로 살았다.

나는 그의 위대함에 대한 세 번째 장면을 그의 죽음 근처 쓸쓸한 초상에서 찾아본다. 니체는 1900년에 정신병원에서 죽었다. 어머니가 돌봐주었지만, 어머니가 죽을 후 3년 동안은 누이동생이 보살펴주었다. 죽기 전 어느 날 정신이 맑아졌을 때, 그는 기쁨에 찬 어조로 “아, 나도 좋은 책을 몇 권인가 썼지,”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책처럼 살다 갔다. ‘늘 자신을 넘어서 있는 자신을 창조해가려 했고, 그런 후에 장렬하게 단명한 목숨을 끝내고 몰락해가는 자를 사랑하듯’ 그는 그렇게 살았다. 막판의 삶은 그에게 지독한 고통이었던 모양이다. 언젠가 그는 “나는 인간이 왜 웃는지 알고 있다. 웃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심각하게 괴롭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웃음조차 웃을 수 없는 신경쇠약에 걸리고 말았다. 그러나 막판의 니체가 불행했던 것만은 아니다. 그가 미친 것은 ‘자연의 자애로운 배려였고, 젊어서 그렇게 완강했던 저항 대신 쇠잔한 평화와 안정’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나 자신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 내가 미리 통찰한 몇 가지 일들은 죽은 뒤에 나타날 것이다.”라고 써두었다. 그는 자신의 천재성에 혹독한 대가를 치른 고독한 사내였다. 그는 철학자이기 이전에 제 길을 가기 위해 발버둥친, 숭고한 불만과 고독으로 가득한, ‘인간을 넘어서려는 불가능한 꿈을 품은 인간’이었다.

P.140

하워드 가드너는 ‘위대한 비약을 이루기 직전의 정신 상태를 회고할 때 감정상의 절정과 추락이라는 심리적 현상을 거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말한다.

P.142

외로움과 절망의 과정으로 단련되지 않은 사람이 이룰 수 있는 위대함은 없는지 모른다. 고독은 마치 영혼의 고통을 담은 용광로 같아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제련 과정이다.

세상의 생각 대신 자신의 생각을 가진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것은 고독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외로움이란 바로 자신의 생각에 빠져들고 세상에 이미 알려진 상식적 삶에 질문을 퍼붓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각은 고독을 만들고, 고독은 철학을 가짐으로써 위대한 생각으로 나아간다.

P.143

나는 다시 알게 된다. 철학에서 멀어지면 삶은 먹고 과시하는 저잣거리의 인생으로 전락한다는 것을 말이다. 결국 철학이 없으면 우리는 삶이라는 위대함에서 멀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P.144

철학이 없는 뛰어난 인물은 없다. 왜냐하면 철학은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의심하지 않고 질문하지 않는 사람이 도대체 어느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이 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카를 야스퍼스의 말은 옳다. ‘철학이란 도중에 있는 것이며, 질문은 대답보다 중요하며, 모든 대답은 새로운 질문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생활 속에 있다. 그러므로 제대로 살고 있다는 것은 철학을 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내적인 대화이기 때문에 플라톤과 헤겔의 책을 뒤적이지 않아도 좋다. 세상은 질문을 좋아하지 않은지 모른다. 그러나 삶은 질문 없이는 살 수 없다. 철학은 바로 삶에 대한 질문이다. 철학이 삶에 수많은 질문을 던지는 동안, 우리는 오랫동안 세속적으로 성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당연히 가야 할 길 앞에서 멈추어 서게 하거나, 편하고 검증된 길을 마다하고 길 없는 벌판을 헤매게 하기도 한다. 초인은 안전제일을 미워하며, 먼 여행을 하는 사람을 좋아하고, 위험 없는 인생을 사는 것을 싫어하며, 평범한 군중의 일부가 되는 것을 거부한다. 한 세기에서 2년이 모자라는 생애를 산 버트런드 러셀은 자신의 자서전에 “거짓과 더불어 제정신으로 사느니, 진실과 더불어 미치는 쪽을 선택하고 싶다.”고 썼다.

P.144

위대함의 결정적 증거는 ‘새로운 생각의 힘’이다. 그것은 세상을 바꾸었다. 그것은 단순한 아이디어를 넘어 하나의 믿음의 체계인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철학이라 부른다.

생각이 우리를 불행하게 한다. 그러나 생각이 우리를 위대하게 한다. 이 세상에 성공한 사람은 많다. 그러나 철학이 없으면 결코 위대해질 수 없다. 성공했으나 천박한 자는 철학이 없기 때문이다. 평범함을 넘어선 모든 사람은 자신의 생가을 따른 사람들이다.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볼 수 있는 제 세상 하나를 가진 자, 그들이 바로 평범함을 넘어 자신을 창조한 인물이다.

새벽의 축조물, 홀로 살아야하는 불안을 견딘 나의 책

P.146

나는 변화경영사상가다. 글을 쓰니 작가고, 강연을 하니 강연가지만, 이것에 굳이 직업적 의미를 두면 혁명가에 가깝다 살 수 있다. 왜냐하면 잠재력의 운무 속에 잔뜩 가려진 위대한 자신을 발견하라고 선동하기 때문이다. 살고 싶은 대로 살아보라고 외쳐대기 때문이다. 인생의 가장 큰 죄는 인생을 낭비한 죄라고 압박하기 때문이다. 혁명가는 본질적으로 선동가일 수밖에 없다.

혁명가는 가슴에 불가능한 것을 품고 있는 사람이다. 나 역시 매일 꿈꾸는 법을 훈련한다. 불가능한 꿈을 꿀수록, 매일 그 불가능을 믿는 훈련을 통해 정신 근육은 단련된다. 불가능한 일을 믿을 수 없다고? 그것은 소용없는 일이라고?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위대한 일 중 어느 하나도 한때 불가능하지 않았던 적은 없다. 누군가 꿈을 꾸고 목표를 정하는 순간 그것은 현실의 세계로 이끌려왔다. ‘가슴에 불가능한 꿈을 품자. 매일 꿈꾸는 연습을 하자. 아침밥을 먹기 전 불가능한 일 하나씩을 믿어보자.’ 이것이 내가 매일 새벽에 하는 일이다. 이것은 곧바로 내가 글을 쓰는 행위로 이어진다.

나는 새벽에 꾼 꿈들을 가지고 하루를 시작한다. 그러니까 아마 70퍼센트 정도는 미쳐있는 상태에서 하루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하루의 태양이 떠오르는 동안 잠재력이라는 자욱한 안개 속에서 새벽 강을 따라 흐르며 꿈꾸었던 것들은 정체를 드러낸다. 현실의 빛 앞에서 무력하게 무너지는 환영들을 본다. 그러나 모든 것이 다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그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서 있는 거대한 성채 하나가 여전히 있다. 나는 안도한다. ‘저것이 나의 제국이다.’ 매일 같은 꿈을 꾸고 또 새로운 꿈을 더해갔기에 이 반복된 축조의 노력에 의해 햇빛 속에서도 내 상상의 산물은 여전히 굳건하다. 매일 조금씩 명료한 실루엣을 가지기 시작한다.

새벽에 축조물인 나의 책들은 현실로 탄생하지만, 그 속의 내용들은 꿈들이다. 현실에 굴복하지 않는 꿈들. 나는 그것이 또 하나의 현실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제는 알게 되었다. 믿음의 체계가 곧 현실인 것이다. 가슴속 깊은 곳의 믿음을 바꾸는 순간 나의 인생도 바뀌었다. 인생은 믿음이 자신을 구현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완성이 삶의 목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삶, 그 자체가 삶의 목표다 그러므로 멈추어 서는 순간 더는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늘 살아있음, 이것이 삶을 시처럼 사는 것이다. 시는 황홀로 쓰이는 것이니, 이때 마음속에서 신을 만나게 된다.

나는 늘 나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다. ‘나는 나를 혁명한다’.라는 선동이 오랫동안 내 안에서 조금씩 자라 나의 나무가 되었다. 이 나무는 점점 더 자라 울창해졌고, 그 안에 아름다운 것들을 품게 되었다. 풍성한 잎사귀들 틈으로 꽃을 피우고, 향기를 품어내고, 붉은 열매를 맺고, 황홀한 단풍으로 물들기도 한다. 내 안에 키운 내 나무, 나는 이것을 사랑한다.

‘나를 혁명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름답게 묘사한 글이 있다. 헬가 쾨니히스도르프라는 이상한 이름을 가진 작가의 동화 속에 〈어린 왕자와 나무 빛깔 눈을 가진 소녀〉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 속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는데, 나는 이 아름다운 장면을 내 심상의 하나로 간직하고 있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늘 반복하여 보여주고 싶은 장면이다. 눈을 감고 이 영상을 느껴보라.

어린 왕자는 사람이 기쁘지 않으면 장미까지도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풀밭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그때 그는 거미줄에 둘러싸인 나뭇잎 속에 매달려 있는 번데기를 보았다. 무언가 그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번데기에 금이 가고 조그만 다리 하나가 나왔다. 그리고 검은 머리가 보였다. 비틀거리며 나비 한 마리가 바깥으로 몸을 내밀었다. 아직은 형편없이 구겨진 모습이었다.

“안녕.” 어린왕자가 말했다.

“잠깐만.” 자신의 흉한 모습이 드러나자 고통스러워하며 나비가 대답했다.

나비는 태양을 향해 버둥대며 앞발로 날개를 쓰다들었다. 그리고 날개를 천천히 펼쳤다. 그 날개는 붉은 띠 하나와 하얀 반점들이 군데군데 찍혀있는 검은 벨벳 같았다. 나비는 여유롭게 몸을 닦고 윤을 냈다. 그리고 날개를 수평으로 내리기도 하고 태양을 향해 세우기도 했다.

“안녕.” 마침내 정신을 차린 나비가 말했다.

“정말 놀라운 일이구나.” 어린 왕자가 소리쳤다. “그 우중충한 껍질 속에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이 들어 있다니.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

“누구나 자신을 계발해야 해.” 나비는 이렇게 속삭이며 기울고 있는 석양빛 속으로 나풀거리며 날아들어 갔다.

이것이 내가 이루려는 혁명이다. 나는 이 장면을 마음속에 품어두었다. 나의 내면에도 방기되고 마비된 많은 것들이 쌓여 있을 것이다. 흉하고 초라한 것 속에 구겨져 있는 나비, 때가되어 껍데기를 벗으리라. 나의 혁명에 성공하리라. 그리고 파란 하늘을 날게 되리라. 이것은 얼마나 멋진 푸른 혁명이냐!

사람은 자신이 꿈꿔내지 못한 것을 이루어낼 수 없다. 나비 혁명이 가능하려면 내 안에 이미 가지고 있는 내면의 힘을 응시해야 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탐사하지 않는다. 그 대신 세상이 요구하는 함성에 귀 기울인다. 세상이 돈 돈 돈 하면 돈을 따르고, 모두 명품을 찾으면 명품이 자신을 대신하는 정체성이 되고 만다. 결국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함께 원하여 가지게 되더라도 그것이 ‘나의 나비’가 되는 법은 결코 없다.

나는 작가라는 한 번도 시도하지 않은 불가능을 가슴에 품었다. 그리고 작가가 되었다. 그러나 ‘불가능한 것을 믿는 것’만으로는 혁명을 이룰 수 없다. 혁명을 이루게 하는 것은 실천이기 때문이다. 실천은 곧 시간이 누적적으로 쌓인 것이다. 나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쓴다. 나처럼 평범함 사람이 매년 한 권의 책을 낼 수 있는 힘은 여기에 있다. 매일이 모여 1년 만에 책 한권이 되며, 매년이 모여 인생이 되고, 나는 수십 권의 책을 쓴 작가가 되어 있을 것이다. 하루의 경영에 실패하면, 화가가 손을 뗀 그리다 만 그림처럼 꿈은 초라해진다. 한 줄기 무상의 바람이 불고 이내 꿈은 추억이 된다. 꿈은 흔적만 남아 미련이 되고 몸은 하루의 밥벌이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우리는 불행하다. 그리고 그 불행은 페스트처럼 직장을 휩쓴다.

나를 혁명하자. 어떤 나이든 그 나이는 혁명하기 더 없이 좋은 나이다. 그러나 혁명가들은 외롭다. 자신의 꿈을 세상에 외치기 때문이다. 나는 경영인도 아니고 경영학자도 아니다. 나는 그들의 무리에 끼지 않는다. 나는 문인도 아니고 시인도 아니다. 그렇다고 철학자도 아니다. 나는 어디에도 분류되어 끼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내가 존재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성공한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나의 골목길을 발견했다. 누구도 가보지 않은 곳, 그 길이 아무리 좁아도 내 길이라는 것, 고독이 가장 효과적인 무기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나는 경쟁하지 않는다. 싸움이 내 장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경쟁은 없지만 수요는 많은 곳을 나의 촉수는 감지한다. 나는 늘 푸른 바다를 찾아 나섰고, 그래서 나의 항해는 늘 혼자였다. 지금은 많이 부드러워졌지만, 그래도 내가 약간 지나치게 진지해 보이거나 비장해 보이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작가도, 일인 기업가도 태생적으로 외로운 존재 방식이다. 1인 기업가이며 작가가 되어 살기 시작할 때 나는 이 고독을 견딜 수 있도록 세 가지 행동철학을 세워두었다. 10년째 나는 이 철학에 의지해 내 길을 걸어왔다. 첫째는 이제 더는 다른 사람이 시키는 일을 하며 살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오직 나의 명령에 따라 산다. 나는 작더라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나의 제국을 원한다. 두 번째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의 양을 늘리는 것이다.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을 늘림으로써 자유의 양을 늘리는 것이다. 자유의 양이 많아질 때만 진정한 진보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세 번째는 본업을 통해 세상의 밝음에 기여하는 것이다. 나는 다른 이들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어제보다 아름다워지려는 사람을 응원하는 일을 한다. 이것이 나의 기쁨이 되었다.

결국 나의 철학은 자유를 옹호한다. 내 인생이니 내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영역을 넓혀야겠다는 것이다. 세상 속에서 비위를 맞추고 사느니 차라리 내 마음대로 사는 고독을 택해도 좋다고 생각한 지 오래다. 나 스스로 가족이 먹을 것을 벌고, 스스로 선택한 천직으로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좋게 만드는 일에 기쁘게 참여하는 것, 이것이 나의 믿음이다.

넘어섬: 깊은 인생으로 들어서는 세 번째 문

넘어섬 하나_천둥 같은 스승을 얻다

나의 고독을 만들어주고 동시에 이해해주는 사람, 단 한 사람이라도 좋다. 화두를 던져주고 깨달음의 경지를 나눌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어른, 적어도 한 사람의 스승은 있어야 한다. 힘들 때마다 ‘스승이라면 어떻게 했을까?’하고 내심 물어볼 그분을 얻어야 한다.

그대는 아이에게 걸음마를 가르치지만, 아이는 이미 스스로 뛰는 것을 배우고 있다

-R.W 에머슨

P.165

조주의 선풍을 그의 말을 빌려 한마디로 말한다면, ‘안으로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고, 밖으로 구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P.166

그는 자신의 경지와 가장 비슷한 것이 거지라는 상징성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그 빈 마음이었다. 그러므로 집착하지 않으며, 그러므로 자유였던 것이다.

P.167

스승은 제자의 정신적 골수와 심장으로 보존된다. 그리고 제자들은 스승의 가르침으로 도약하고 진화한다. 오직 좋은 제자만이 눈부신 성장으로 그 스승을 빛나게 한다.

P.170

예술가에게는 고독의 쓰라림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누군가와 그 고독을 나누어 세계의 일원이 되는 친밀한 격려와 이해의 시간도 꼭 필요하다. 고독의 자유와 함께하는 소통은 틀림없이 대립되는 갈등이다.

P.171

사람은 사람을 통해 성숙한다. 그 관계가 스승과 제자든, 선배와 후배든, 예술가와 후원자든, 아니면 서로를 이해하는 동료든 사람은 사람을 통해 영향을 받게 된다. 때때로 누군가의 인생에 한 사람의 영향력은 절대적이고 압도적일 때가 있다. 이때 그 사람은 진정한 스승의 역할을 해주게 된다. 중국 명나라 시대의 이탁오라는 학자가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있다.

“친구가 될 수 없으면 진정한 스승이 아니고, 스승이 될 수 없으면 진정한 친구가 아니다.”

그렇다. 사람은 이렇게 서로 연루되고 결합되면서 자신의 삶의 도약에 결정적인 영향을 받게 될 수밖에 없다. 만일 이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해줄 그 누군가를 얻지 못한다면, 비록 재능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고독은 그저 극도의 고독으로 끝나거나, 내부와 외부가 갈등하는 파괴적 불화나 구제 불능의 미숙으로 그치고 말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사람을 얻어 진정한 관계 속에 놓이게 될 때, 결정적 지지와 도움으로 새로운 세계로 건너뛸 수 있게 된다.

P.177

선생님은 바둑 한 판으로 우리를 잠재우셨고, 잔소리 한 마디 없이 연구실을 연구하기 참으로 좋은, 여름 토요일 오전 침묵으로 가득한 깊은 공간으로 만드셨다. 우리는 늘 이런 선생님의 능력에 놀라곤 했다.

선생님은 강의 도중 지그시 눈을 감고 좋은 단어를 찾아내기 위해 애쓰셨다. 이윽고 가장 적합한 표현이 폭포처럼 쏟아지고, 역사 속의 한 인물, 한 장면은 갑자기 두꺼운 먼지 속에서 벌떡 일어나 앉곤 했다. 그 사람들, 그 장면들이 시간의 먼지를 털고 일어나는 장면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이론이 그 자체로 모두 옳은 것 같아 진위를 구별하기 어려우면 직접 겪어 체험해보아야 한다.’ 이것은 플라톤의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인 두 개의 대화편, 《파이드로스》와 《크리톤》에서 가르친 것을 연상시켰다. “논리의 시험을 거치지 않은 경험은 웅변이 되지 못하는 잡담이며, 경험의 시험을 거치지 않은 논리는 논리가 아니라 부조리다.”라는 가르침과 섞여 천둥같이 내 가슴을 울렸다.

P.178

'인생에는 여러 가지 길이 있다. 스스로 모색해라. 헌신하고 모든 것을 걸어라. 그러나 그 길이 아니라 하더라도 실망하지 마라. 앞에 다른 길이 나오면 슬퍼하지 말고 새 길로 가거라. 어느 길로 가든 훌륭함으로 가는 길은 있는 것이다.’

P.179

마음으로 존경할 수 있는 분을 만났던 젊은 시절이란 얼마나 행운이었던가!

P.184

내게 영향을 미친 사람들의 이야기야말로 너무도 결정적인 내 삶의 증거들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보통의 선생은 그저 말을 하고, 좋은 선생은 설명을 해주고, 훌륭한 선생은 스스로 모범을 보이고, 위대한 스승은 영감을 준다.”는 말이 있다. 나는 선생님에게서 학자의 모범을 보았고, 어두운 길 위에 뿌려진 달빛 같은 영감을 받았다. 내가 선생님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이제 나이가 들었으니 나도 선생님처럼 누군가의 좋은 스승이 되고 싶다. 한없이 모자라는 사람이지만 선생님은 내게 이 열망을 품게 해주셨다. 나이가 들어 연구원들을 모으고 그들과 함께 책을 읽고 책을 쓰는 일을 하고 있는 일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나는 너무도 분명히 훌륭한 선생의 구체적인 모습을 보고 만질 수 있는 행운을 가졌던 것이다.

 

넘어섬 둘_ 나를 넘어 세계에 접속하다

나를 넘어서지 못하면 위대해질 수 없다. 모든 위대함은 나로 시작해서 나를 넘어선 우주에 다가가는 것에 있다. 그것은 나와 우주의 화해이며 통합니다. 위대하다는 것은 세속의 성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를 넘어서는 더 커다란 것에 대한 그리움과 지향성을 갖지 못하면 우리의 정신은 고양될 수 없다. 평범함은 아직 개화하지 않고 숨어 있는 위대함에 대한 다른 말이다. 평범함이 깨져야 위대함이 발아한다.

 

녹색 창고의 거대한 별-아니타 로딕

네가 누군가에게 준 것은 여전히 너의 것이지만,

네가 꽉 움켜쥐고 있는 것은 이미 잃은 것이다.

-동양의 역설적 금언

P.190

어머니는 전통적인 것을 거부하셨으며, 우리에게 늘 “특별해져라. 평범함을 거부해라.”라고 말씀하셨다.

P.191

에너지와 열정은 사람을 질리게 한다. 다행히 나는 UN을 매혹시키는 데 성공했다.

P.192

실수를 했을 때는 즉시 그 실수를 인정하고 빨리 바꾸라는 것이다.

P.193

그것은 비즈니스라기보다는 내가 나 자신의 시간과 공간의 주인이 되고, 성공을 자유로서 정의해가는 작업이었다.

따지고 보면 모든 성공의 요인은 사실 내게 돈이 없었다는 점이다. 돈이 없고 배가 고프면 창의력이 생긴다. 노력하지 않아도 가질 수 있으면 생각하지도 않고 추진력도 생기지 않는다. 다른 성공한 기업가들처럼 궁핍이 나를 생각하게 했다. 나는 아웃사이더였다. 이민자의 노동 윤리를 가진 아웃사이더였기에 일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일을 두려워하지 않았기에 일을 할 때 화가나 작가와 같은 열정이 나를 휩싸고 지나갔다. 나는 궁핍으로 인해 떠오른 아이디어들을 믿었으며, 그것을 실현하고 그것으로 먹고 살고 그것으로 이익을 내기를 바랐다. 보디숍은 내 손으로 만든 내 자식이었다. 그것은 또 다른 내가 되었다.

P.194

세상을 살며 가치 있는 것들을 새롭게 알게 된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내게 삶은 늘 고마운 것이었다.

기업가들은 대체로 광기의 후광에 싸인 사람들이다. 꿈을 꾸고 비전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광기인 것이다. 미치광이와 기업가는 백지 한 장의 차이일 뿐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들은 자신이 본 비전에 눈멀고, 수없이 질문하여 얻은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마치 요정처럼 반짝이는 창의적 아이디어들을 쏟아낸다.

P.195

창의력이 없이는 기업가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아주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니 때때로 광인일 수 밖에 없다. 생각만 그런 것이 아니다. 실제로 그것을 해낼 수 있다는 집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 잘 띈다. 그 어리석어 보이는 일을 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병적일 만큼 낙천적이다.

위대한 기업가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또 하나는 그들 모두 하나같이 사회를 바꾸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사회를 바꾸어보려는 개혁가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본질적으로 기존 사회의 중앙에서 생겨나지 않는다. 기존 사회와는 다른 북소리에 발을 맞추어 행진하는 사람들이므로 이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아웃사이더일 수밖에 없다. 이것이 그저 전통적인 경영자와 기업가를 구별하는 가장 분명한 구분점이다. 아, 그리고 또 하나가 있다. 그들은 그들의 꿈과 아이디어, 사회를 변혁시키겠다는 생각을 이야기로 만들어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일반인들의 공감을 얻어낸다. 그들은 모두 위대한 이야기꾼들이다.

P.196

나는 지도도 설명서도 없는 곳에서 오직 열정의 안내를 받으며 내 길을 걸어왔다.

P.197

비즈니스란 돈을 버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기업이 할 일은 돈에 관한 것이 아니라 책임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개인의 욕심에 관한 것이 아니라 공익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이익을 내지 못하면 기업을 망할 것이다. 그러나 오직 이익을 더 내기 위해 비즈니스를 한다면 그 역시 망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더는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 말을 좋아한다. 진정한 글로벌 비전을 가진 기업이라면 지리적 확장과 점령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과 마음의 확장에 더 기여해야 한다. 나는 기업이 제품을 생산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업이란 직원이 자신의 잠재력과 인간 정신을 훈련하고 계발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기업은 그 자신과 구성원, 그리고 인류를 위해 완전함에 기여해야 한다. 인생에 영적 차원이 있듯이 비즈니스도 영적인 차원을 가져야 한다. 나는 세계를 다니면서 깨달았다. 그것을 가장 근본적이 통찰이었다. 모든 생명은 연결되어 있다. 나의 존재는 전일성(oneness)으로 우주와 연결되어 있다는 경외심이 나를 가득 채웠다.

바꾸려 하지만 세상은 잘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변할 때가 있다. 바로 우리 자신이 근본적으로 변할 때다. 중요한 것은 세상이 아니라 개인이다. 바로 우리 자신인 것이다.

P.198

심장과 영혼으로부터 비즈니스의 목표가 만들어 질 때 기업은 인류의 행복에 공헌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과 타자를 위해서

나를 다 쓰지 못해 안달하라

P.200

그녀의 인생은 도전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녀의 피는 그 도전에 흥분하고 기뻐했다. 반전운동가, 환경운동가, 인권운동가로 활약하는 거침없는 기업인이 되어갔다. 말년에는 그 기업인으로서의 삶도 다 던져버렸다. 자신의 보디숍 지분을 모두 처분하여 마련한 1조 1000억원을 모두 인권운동에 투여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나이가 들면서 더욱 급진적’이 되었다. 사업을 하면서는 전념할 수 없었으므로 사업을 접고 자신이 가장 헌신하고 싶은 인권과 환경 운동가의 삶을 선택했다. 아마도 자신의 짧은 삶을 예감했기 때문인 것 같다. 우물쭈물하지 않는 그녀의 성격이 더 분명한 헌신을 요구했을 것이다.

그녀는 예순네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너무도 거침없이 압축적으로 세상을 살았던 때문일까? 그녀는 겨우 중년의 나이에 떠났다. 그녀는 부자로 죽는 것을 싫어했다. 싫어했다기보다는 혐오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좋아했다. 그녀가 선한 목적에 자신을 썼기 때문이다. 또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미워하고 싫어했다. 그녀가 세상의 탐욕에 저항하고 어두운 세상에 도전했기 때문이다.

P.202

가장 초보적 단계의 기업은 순수한 자본주의적 원칙이 지배하는 곳이다.

그 다음 단계는 ‘운명 공동체’라는 인식을 나누는 기업이다.

세 번째 단계는 한 사회와 기업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게 되는 시기다.

마지막 도약의 단계는 인류에 대해 책임을 지는 수준에 이르는 것이다.

P.204

사람이 정말 훌륭해지기 시작하는 분기점은 가진 것을 나누어 주기 시작할 때부터다. 나눈다는 것은 자기를 넘어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좁은 자아에서 벗어나 정신적이고 영적인 확장을 할 수 있게 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나와 다른 사람이 분리될 수 없는 존재이며, 나와 우주가 하나라는 깨달음을 얻은 다음에야 나올 수 있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 우리는 위대한의 한 자락을 얻게 된다.

P.205

아인슈타인은 인간의 삶의 목적을 생각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모두 여리에 짧은 여행을 하러 온 것이다. 이유도 모른 채 말이다. 어쩌면 신의 섭리가 우리를 여기에 있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삶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나는 여기 온 이유 중 한 가지는 분명히 알고 있다. 그것은 내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이곳에 왔다는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나는 내면적으로나 외면적으로 모두, 이미 죽었거나 아직 살아 있는 다른 사람들 덕에 살아가고 있음을 절감한다. 그리하여 이제는 내가 받은 만큼 되돌려주려고 그들을 위해 나를 쓰지 못해 안달을 하게 되었다.”

절망한 사람에게 희망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아픈 이들에게 관심과 시간을 나누어 줄 수 있다면 이미 나눔에 나선 것이다.

줄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들, 그들이 바로 리더들이다. 진정한 영향력은 줄 수 있는 힘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자신보다 큰 것에 헌신하지 못한다면 기껏해야 뜻을 이룬 필부에 지나지 않는다. 평생을 자신을 위해 살고, 자신을 위해 벌고, 자신을 위해 쓴다면, 돈은 얻을지 모르나 존경은 얻을 수 없다.

 

재능을 기부하고 사람을 얻다.

P.206

내가 원한 것은 자유였다. 인생을 내 마음대로 살고 싶은 자유, 나의 세계를 하나 갖는 것, 그것이 직업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이었다.

P.207

나눔과 공헌이 없이는 의미의 문제를 채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 바로 이때였다.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면 재미없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세상에 빚지지 않는 것이 없다. 좋은 것은 물론 나쁜 것까지도 나는 세상에서 배웠고, 사람들에게서 배웠다.

P.208

'마크툽‘(미래는 이미 쓰여있다!)이라는 재미있는 단어를 기억하는 가? 나 역시 미래를 이미 일어난 과거로 써보면서 그 일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며, 결국 내 인생에서 일어난 멋진 일이 될 것이라는 강한 주술을 걸어보게 되었던 것이다.

P.212

연구원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전 과정에 대한 수업료는 무료다. 엄밀하게 말하면 무료가 아니다. 나는 ‘지식의 물물교환’이라는 방식을 시도해보았다. 돈을 거래의 단위로 쓰지 않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을 거래의 단위로 사용했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 그들을 지도했고, 그들은 그들의 배움과 숙제를 내 홈페이지에 올려 다른 사람들도 그들의 학업을 참고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그들의 책으로 세상에 기여하게 했다. 따라서 연구원 수강을 하고도 좋은 책을 써내지 못한다면 그들은 지식의 교환에서 실패한 것이다. 받기만 하고 주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개념을 좋아한다. 돈이 모든 것인 사회에서 옛날 방식의 따뜻한 대안을 찾고자 했다. 훈장이 가르치고, 아이들은 형편에 맞게 쌀 한 말, 팥 두 되, 콩 반 말을 수업료로 내는 것이 농경사회에서의 보상방식이었다면, 지식 사회에서의 거래 방식은 재능과 지식의 물물교환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가치의 차이는 내가 훨씬 덜 받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훨씬 더 많이 받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만일 이 사람들 속에서 훌륭한 변화경영전문가나 작가들이 나타난다면 나는 훌륭한 제자들로부터 충분히 보상받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결국 사람으로 빛나게 마련이다. 아버지는 그 자식으로 빛나게 마련이고, 스승은 그 제자로 빛나게 마련이고, 국가는 키워낸 인재로 빛나게 마련이며, 인류는 위대한 인물들로 빛나게 마련인 것이다. 이것이 내 의도였다.

P.214

나는 꿈꾼다. 한때 직장인으로 시키는 일이나 하며 살던 지극히 평범했던 사람들이 스스로 역량을 닦은 전문가들이 되고 스스로의 길을 가게 될 것이다. 나는 이들을 동지로 얻게 될 것이다. 이것이 나의 기여의 방식이며 내게 주어진 소명을 다사는 것이다.

P.224

당신의 신화는 무엇인가? 당신은 인생이라는 모험에 어떤 모습으로 깊이 참여하고 있는가? 단명한 삶의 슬픔에 기쁜 마음으로 참여하자. 그 단명함이야말로 영생하는 신들은 결코 느낄 수 없는 참으로 슬픈 아름다움이기에. 그리하여 그대, 이제 가면 한 장 두께의 얕은 복제 인생을 걷어버리고, 모든 잠재력이 스스로의 강물로 흐르는 깊고 푸른 인생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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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01 11:44:26 *.154.223.199

아,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굿모닝팝스를 틀어주고 도마소리를 내시던 영어선생님 엄마가 여기서의 '어머님'이신거지요?

한달 간의 포도단식의 경험은 그 책으로 인해 왔고 몸으로 겪은 커다란 인연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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