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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20일 18시 24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버트란트 러셀은 명문가의 훌륭한 교육환경에서 자라난 천재적인 학자이자 문필가이다. 주양육자였던 할머니는 3개국어에 정통한 재원으로 세익스피어를 비롯한 문학에 정통한 인텔리였다. 그녀가 손자인 러셀의 교육을 위해 최고의 가정교사를 선택했음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총명한 러셀은 그녀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은 훌륭한 청년으로 자라주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러나 한편으로는 말할 수 없이 불행한 유년을 보냈다. 그는 2살때 누이와 어머니, 4살때 아버지, 6살에 할아버지를 연이어 잃었고, 홀로 남은 할머니의 엄격한 청교도적 가르침을 받으며 자랐다. 학교를 가지 않고 가정교사와 홀로 공부했기에 마음을 나눌 친구도 없었다. 그는 외로웠고, 수차례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 시절 그를 죽음으로 부터 보호해 준 것은 수학에 대한 호기심과 문학으로 얻은 위안이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란 그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사회적으로는 더할 나위없이 위대했다. 100세 가까이 장수했고, 논리학자·철학자·수학자·사회학자·논리학자로 활동하면서 20세기 최고의 지성으로 칭송받았으니 말이다. 그의 사회적 성취의 기반이 명문가의 자손으로서 누렸던 양질의 교육환경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영국의 대표적인 명문가를 이뤄냈던 그의 조상들은 물론 러셀의 딸과 아들도 당대의 지성으로 활약했던 것을 보면 유전적으로도 탁훨하게 우수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게 다였을까? 그는 자서전에서 삶을 '고통과 절망의 깊은 바다'·'차갑고 불가해한 생명력없는 심연'으로, 외로움을 이러한 삶의 실체와 마주하게 하는 소름끼치는 감각으로 묘사하면서, 지식추구를 위한 자신의 열정은 이런 끔찍한 외로움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고 고백했다.


혹자는 그를 500년에 나올까 말까한 천재라고 평하기도 한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우리의 삶이 많은 부분이 그의 업적의 혜택을 받았다는 의미일게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그의 모습과 소리의 완성을 위해 자신의 눈을 멀게 한 아비에 대한 원망을 넘어 서편제 소리꾼으로 살아가는 송화가 오버랩되어 떠오르며 가슴이 저려왔다.

사본 -송화2.jpg

세상을 알아가면서 분명해지는 생각이 있다. "사람에겐 날 때부터 그에게 맡겨진 역할이 있고, 우리가 행복감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 '살아 있음'의 느낌은 그 사명을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시작된다"는 것이 그중 하나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러셀은 분명 행복한 사람이었을 게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 심지어는 '불행'마저도 행복의 연료로 사용할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데 주어진 사명을 철처히 받아들여 궁극의 행복을 누릴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나는 왜 그토록 탁월하게 행복했던 그를 맘편히 부러워하지 못하는 걸까? 



2. ‘내가 저자라면’


 "내가 저자라면" 이라는 타이틀이 부담스럽다. 그저 감탄할 뿐이다. 한 시대 한 사람의 철학자를 이해하는 것도 엄두가 안나는 내가 어찌 감히 저자로서 이 책을 비평하겠는가? 초인적 지력의 소유자인 버틀란트 러셀의 대표작을 말이다.


나는 그저 한 사람의 모자란 독자의 입장에서 아쉬움을 전하고자 한다. 러셀의 '서양철학사'는 옮긴이의 평처럼 배경지식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내가 읽기에도 훌륭하게 명료한 책임이 분명하다. 게다가 옮긴이도 그 명료함을 그대로 지켜내기에 충분한 역량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명료하다고까지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구조부터 살펴 보기로 한다.


옮긴이 서문

지은이 서문

서론(전체를 개괄)

 제1권 고대 철학

  제1부 소크라테스 이전

    제1장 그리스 문명의 발흥

  제2부 소크라테스...

    제11장 소크라테스

  제3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제25장 헬레니즘 세계

 ※ 개괄적 서술 없음

 제2권 가톨릭 철학

 서론(2권 개괄)

  제1부 교부철학

   제1장 유대교의 발전

  제2부 스콜라 철학

   제7장 암흑기의 교황체계

 제3권 근현대 철학

  제1부 르네상스에서 흄까지

   제1장 일반적 특징(1부가
   아니라
 3권 전체 개괄)

  제2부 루소에서 현대까지

   제18장 낭만주의 운동

찾아보기



1권으로 들어가기 전 서론은 전권을 개괄하고 있다. 1권은 별도의 서론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2권은 1부 시작전에 서론에서 2권 전체를 개괄하고 있다. 3권에서는 1부 1장의 일반적 특징이 3권 전체의 서론 역할을 하고 있다.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일관성이 떨어지는 구성임에 틀림없다. 2권의 서론과 3권 1부 1장의 일반적 특징으로 각 권을 이해하는데 분명한 도움을 받은 내 입장에선 1권에도 같은 비중의 서론이 있었으면 훨씬 고마웠을 것 같다. 물론 3.1.1 일반적 특징 부분을 3권 바로 밑으로 옮기는 것이 자연스러움은 말할 것도 없겠다.


다음은 편집에 관한 부분이다. 러셀보다는 현대의 편집자가 들어두는 편이 좋을 이야기라는 말이다. 이 역시 본인의 이해력 부족에서 나온 투정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이야 말로 꼭 전하고 싶다.


러셀의 문체가 감칠맛나고, 역사적 사실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제시된 스토리가 흥미로운데다, 곳곳에서 보여준 그의 매력적인 독설을 기다리는 재미에 쉽게 책속에 빠져들 수 있었지만 책을 덮으면 머리가 하얗게 되었다. 그래서 다시 책을 시작할 땐 꼭 예열작업이 필요했다. 이 전 페이지를 후루룩 넘겨보는 식으로 예열을 하곤 했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몰입도가 심하게 떨어진 걸 보면 그다지 효율적인 방식은 아니었던 것이 분명하다. 1권 1부를 제일 재미있게 읽었는데, 나는 아직도 의심스럽다. 정말 1권 1부가 특별히 재미있었던 건지, 아니면 그저 처음이라 그렇게 느껴졌는지..


문득 고등학교때 보던 참고서가 그리워졌다. 각장마다 처음에 학습목표가, 마지막에 요점정리가 나와 있는 친절한 참고서 말이다. 물론 시험보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까지 할 것 있겠냐는 반문도 있으리라 짐작한다. 하지만 꼭 테스트용이 아니라도 중간중간 체크포인트를 만들어 놓으면 좀 더 안심하고 여행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요즘엔 꼭 수험서가 아니더라도 그런 시도를 담은 책이 많이 나오는 것 같다. 러셀의 말대로 이런류의 책이야말로 한사람이 집필할 수 밖에 없어, 그로 인한 제약에서 오는 아쉬움이 불가피한 것이라는 것을 120% 인정하기에 러셀에게는 한마디도 투덜거리고 싶지 않다. 그러나 그도 누군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해석과 요점정리를 더하는 것 정도는 허락하지 않을까? 혹 저작권법때문에 어렵다고 한다면 배경지식이 충분한 누군가가 '서양철학사' 해설을 출판해준다면 책값 아깝단 생각은 안할 것 같다.     


2차 레이스 책자 목록에서 '서양철학사'를 발견하고, 이 기회에 서양철학사를 머리에 쫙 정리해야지하며 야심차게 책장을 열었다. 그런데 책을 덮을 즈음엔 조각조각 기억나는 몇 에피소드를 얻은 것 말고는 오히려 머리가 더 멍해져 버린 것 같아 많이 속상했다. 아니 굳이 의의를 더 찾자면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한없이 겸손해져가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것 정도. 자상한 캠벨 할아버지의 격려에 한껏 오만방자해졌던 것을 떠올려 보면 꼭 필요한 처방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줄기 희망을 가져본다. 연구원 수련이 끝날 때쯤 다시 읽으면 좀 더 쫄깃하게 즐길 수 있으려나? 

IP *.236.7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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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
2010.02.23 00:54:32 *.34.156.43
다 좋은데 그대를  밝혀주시와요.
감점입니다.
누구든 익명으로는 잘 놀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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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있는마음박미옥
2010.02.23 07:24:31 *.236.70.202
예!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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