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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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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22일 00시 28분 등록

▶ 저자에 대하여

o 버트란트 러셀(1872~1970)

러셀은 철학자이기에 앞서 수학자였다. 그의 최초의 저작은 수학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를 증명한 『수학의 원리』이다. ‘서양철학사와 마찬가지로 천 페이지가 넘는 노작이다. 그는 수학의 정밀함을 신뢰했고, 세상의 모든 원리를 단순한 몇 개의 공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 그를 철학의 세계로 이끈 것 또한 공교롭게도 수학이었다. ‘러셀의 역설이라 알려진 문제를 풀면서 그는 수학이 풀어낼 수 없는 논리의 벽에 부딪힌다.

 

어떤 이발사가 다음과 같은 팻말을 걸었다. “저는 스스로 면도할 수 없는 사람만 면도합니다.” 만약 이발사가 스스로 면도할 수 있다면, 그는 자기 자신을 면도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스스로 면도할 수 없는사람만을 면도하므로. 반대로 이발사가 면도를 할 수 없다면, 면도할 대상은 될 지언정 면도할 능력이 없으므로 자기 자신을 면도할 수 없다. 어떠한 수학 공식도 가장 근본적인 부분은 스스로 증명해 낼 수 없다는 불확정성의 원리에 막혀 철학으로 연구의 방향을 전환한 그는 10년 만에 서양철학사에 관한 한 독보적인 가치를 인정받는 책을 출간하게 된다.

 

러셀은 수학 및 논리학에 대한 탁월한 역량을 철학분야에 접목하여 20세기 영미 분석철학의 새 장을 열었고, 논리학, 인식론, 존재론, 윤리학, 사회철학을 비롯한 철학 전반에 걸쳐 괄목할만한 족적을 남겼다. 1950년에는 권위와 개인이라는 저서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서양철학사에서 고대 그리스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철학을 종교, 수학, 과학은 물론 사회ㆍ정치 상황과 연결해 입체적으로 고찰하는데 다방면에 걸쳐 천재적 재능을 보여준 그가 아니었다면 애시 당초 이런 방대한 작업은 기획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가 대중으로부터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이유는 행동하는 철학자로서 보여준 인간적 매력 때문이다. 러셀은 백작 출신의 기득권층임에도 불구하고 학문의 세계에 머물지 않고 진리에 대한 신념을 바탕으로 약자의 편에서 정치활동과 대중 계몽, 교육에 힘썼다. 반전운동, 핵무장 반대운동에서부터 쿠바 위기와 중국-인도 국경분쟁에도 적극 개입하였다. 여성의 참정권을 두고 강력한 여성해방운동을 전개하다가 탄압을 받기도 한 그에게 철학이란 진리 추구의 열정을 품고 기존의 모든 지식을 비판하고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활동그 자체였다.

 

러셀은 1872년 영국 웨일스에서 영국 수상을 두 차례나 역임한 존 러셀 경의 손자로 태어났다. 남부럽지 않은 집안에서 탄생했지만, 어린 시절에 양친을 잃은 경험은 그를 일찍이 자아찾기에 나서게 한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어린 시절을 통틀어 내게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시간은 정원 보내는 시간이었으며 따라서 내 존재의 가장 강렬한 부분은 항상 고독했다고 그는 회고한다. 그는 고독했지만 그 덕분에 극장의 우상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신의 목소리를 발견하게 된다. 평생 세 번의 결혼과 또 다른 여인들과의 사랑 또한 어떤 상황에서든 솔직하고자 한 그의 인생철학의 결과는 아니었을까. 학문에 있어서는 근대정신을 대표하는 합리주의와 과학적 사고의 전형으로, 개인의 삶에서는 푸근한 이웃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공동선의 실천에 앞장선 그의 인생역정을 통하여 현대 철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다는 건 참 행운이다.

 

o 주요저서 :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자서전, 회의주의자로의 에세이, 서양의 지혜, 교육론,

자유와 조직, 권력 등


 

▶ 내가 저자라면

한 사람의 일관된 시각으로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철학사를 꿰뚫어볼 기회를 갖는다는 건 좀처럼 쉽지 않다. 철학의 바탕이 되는 사회와 역사, 종교의 맥락은 물론 수학, 과학, 논리학 등에 대해 탁월한 식견을 가진 팔방미인으로부터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유려한 문장으로 안내를 받기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나와 동시대를 살다 간 러셀 덕분에 최소한 서양의 철학사는 파편으로 부유하지 않고 우리 시대에 살아있는 텍스트로 기능하게 되었다. 천 페이지가 넘는 책을 일주일 만에 읽고 정리하느라 욕지기가 날 지경이었지만 그가 고마울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수학자이자 분석철학가가 쓴 글답게 문장은 간결하고 논점은 명확하다.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나하나의 철학사조를 깊이 있게 서술해 나가는데 건조하지 않고 이해하기 쉽다. 그것은 아마도 삶에 대한 열정과 관심을 자신의 내면이 아니라 바깥 세상으로 돌리기만 한다면 당신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그의 말처럼 평생을 지행합일에 힘썼던 그에 대한 신뢰 때문이기도 하리라.

 

철학에 대한 그의 시각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철학자로서의 사명감과 학자로서의 양식이다.

 

철학은 애초부터 학파들, 곧 소수 지식인들 사이에 일어난 논쟁의 문제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철학은 공동체의 삶을 통합하는 역할을 했으며, 나는 바로 이 부분을 고찰하려 애썼다. 이러한 관점이 바로 이 책의 장점이다.” 그에게 철학은 사회라는 공동체를 통합하는 성스러운 작업이다.

 

그는 또한 근대 합리주의정신의 모태가 된 과학발전의 기여에 주목하면서도 과학기술의 발전에서 영감을 받은 철학이 바로 힘을 강조하는 철학이며, 인간이 아닌 모든 존재를 단지 가공되지 않은 재료로 생각하는 경향도 나타난다.”며 과학문명이 지닌 야만성을 간과하지 않는 성숙함을 보여준다. 합리적 회의주의와 분석적 방법론을 통해 명료하고 확실한 지식을 얻고, 획득된 지식을 공동체와 후대의 번영을 위해 활용했던 그의 태도는 때로는 신권에, 때로는 왕권에 빌붙어 스스로 철학을 권력의 시녀로 전락시켰던 숱한 선배 철학자들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O 목차 및 내용 구성

3 7 93장으로 구성된 목차는 내용과 적절한 호응관계를 이끌어내 내용을 이해하는데 편했다. 방대한 내용을 의식해서인지 옮긴이 서문과 지은이 서문이 본문에 앞서 소개되는데 저자의 세계관을 소개하고 전체 내용을 미리 일목요연하게 개관한 것이 철학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각 장을 서술하는 방식도 통일성이 있어 좋았다. 철학자에 대한 간단한 소개 후 주요 논점들을 열거하고 다음 장과의 연결관계나 앞서 기술한 내용을 다시 한번 요약해주니 자연스럽게 내용이 연결되는 느낌이 들었다. 굳이 아쉬운 점을 밝힌다면 각 장마다 관심을 가지고 봐야 할 주요 관전포인트를 간략히 소개해 주었다면 몰입도가 더욱 높아졌을 것 같다. 그리고 고대철학부분에서는 생소한 지명이 많아 애를 먹었다. 사회ㆍ정치적 관계를 유추해 보고 싶어도 어딘지 파악이 안 되어 인터넷에서 고대 지도를 찾아보곤 했는데 지도를 부록으로 첨부했다면 그런 수고를 덜었을 것이다.      

 

O 책 편집

천 페이지가 넘는 책을 매일 가방에 넣고 다니기가 불편했다. 고대, 중세, 근현대를 각각 낱권으로 분리하고 세 권을 하드박스에 넣어 출간했다면 휴대하기가 쉬웠을 것 같다. 본의 아니게 지식에 대한 탐구심을 남들에게 드러내기에 좋은 책이다.


▶ 내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옮긴이 서문>

이 책이 철학사를 다룬 다른 서적들보다 뛰어난 점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저자의 고유한 철학적 관점을 드러내면서 수많은 철학자의 사상을 일관되게 해석하고 비판한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철학과 사회ㆍ정치 환경이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했는지 보여준다는 점이다.

 

러셀은 각 시대의 철학을 종교,수학, 과학 같은 다른 분야의 발전이나 사회ㆍ정치 상황과 연결하여 서술한다. 5p

 

러셀의 해석에 따르면 철학은 그리스 문명 속에서 처음 과학과 분리되지 않은 형태로 탄생했는데, 하나는 열정을 중시하고 종교에 몰입하며 신비를 표방하고 내세를 믿는 경향이고, 다른 하나는 경험을 중시하고 합리주의를 내세우며 다양한 사실에 대한 지식을 획득하려는 경향이다. 전자의 경향은 오르페우스교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피타고라스와 플라톤과 플로티노스를 거쳐 헤브라이즘과 함께 그리스도교의 한 축으로 편입된다. 후자에는 헤로도토스와 초기 이오니아 자연 철학자들을 비롯해 어느 정도까지는 아리스토텔레스도 포함된다. 경험을 중시하고 합리주의를 내세우는 경향은 중세 시대에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가 르네상스를 거쳐 근대 철학 속에서 되살아난다.  그리스 문명은 철학을 처음 탄생시켰고 중세 시대 그리스도교 문명의 출현에도 일조했으며, 중세 말 르네상스 운동의 원동력이 되었을 뿐 아니라 근대 철학의 사상적 원류이다. 6p

 

그에게 철학이란 진리 추구의 열정을 품고 기존의 모든 지식을 비판하는 활동이었으며 분석적 방법을 통해 명료하고 확실한 지식을 얻고자 노력하는 여정이었다. 6p

 

다른 한편 러셀은 철학이 소수 지식인들 사이에 일어난 논쟁을 문제 삼는 데 그치지 않고 공동체의 삶을 통합하거나 해체하는 역할을 했다는 입장에서 철학사를 서술해 나간다. 이런 점에서 보면 철학은 철학자가 몸담고 있는 사회ㆍ정치 상황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발전한다.

 

근대 철학은 종교의 권위를 거부하고 과학의 권위를 받아들이면서 시작되었다. 교회의 권위에서 해방되면서 개인주의가 성장했을 뿐만 아니라 무정부주의까지 출현했다. 르네상스 시대의 인간은 스콜라 철학을 지적으로든 도덕적 또는 정치적으로든 구속으로 느꼈다. 7p

 

17세기에 이르러 데카르트를 시작으로 개인주의와 주관주의 경향이 뚜렷한 근대 철학이 등장했다.

 

과학기술은 실용성을 추구하는 근대인의 마음속에 새로운 사고방식과 시야를 심어 놓는다. 기술 발전은 힘에 대한 감각을 일깨웠는데, 인간이 자기 환경의 처분에 맡겨져 있지 않고 오히려 환경을 적극적으로 바꾸어 나갈 수 있다는 믿음을 형성했다. 과학 기술의 발전에서 영감을 받은 철학이 바로 힘을 강조하는 철학이며, 인간이 아닌 모든 존재를 단지 가공되지 않은 재료로 생각하는 경향도 나타난다.

 

러셀이 제시한 해독제는 합리적 회의주의자의 태도로 사태를 직시하고,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사회를 다듬고 재편해 나가자는 것이다. 8p

<지은이 서문>

역사의 변화 과정에 통일성이 있으며, 먼저 일어난 일과 나중에 일어난 일이 밀접하게 연관된다고 하자. 이 점을 밝혀내려면 앞선 시기와 나중 시기를 한 사람의 정신 속에서 종합해야 한다.

 

철학자들은 어떤 일의 결과이자 원인이다. 그들은 각자 처한 사회 상황과 각 시대의 정치와 제도의 결과물이자, (만약 그들이 운이 좋다면) 후대 정치와 제도의 근간이 되는 신념 체계의 형성에 기여하는 원인 제공자이다. 9~10p

 

이와 반대로 나는 진실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철학자를 자신이 몸담았던 사회ㆍ문화적 환경의 산물로서,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공유되지만 모호하거나 산만하게 흩어진 사상과 감정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려 애쓰며 집중하는 한 인간으로 조명했다.

 

역사를 소개한 장에서도 당대나 후대의 철학과 거의 관련이 없거나 무관해 보이는 것은 가차 없이 배제했다.

 

철학은 애초부터 학파들, 곧 소수 지식인들 사이에 일어난 논쟁의 문제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철학은 공동체의 삶을 통합하는 역할을 했으며, 나는 바로 이 부분을 고찰하려 애썼다. 이러한 관점이 바로 이 책의 장점이다. 10p

 

<서론>

인생과 세계를 표현하는 철학적인사상 체계는 두가지 요소에서 생겨난다. 하나는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종교 체계와 윤리 사상이고, 다른 하나는 가장 넓은 의미에서 과학적 탐구이다.

 

내가 말하려는 철학은 신학과 과학의 중간에 위치한다. 철학은 신학과 마찬가지로 명확한 지식으로 규정하거나 확정하기 힘든 문제와 씨름하는 사변적인 측면을 포함한다. 그러한 철학은 과학과 마찬가지로 전통을 따르든 계시를 따르든 권위보다는 인간의 이성에 호소한다. 명확한 지식은 무엇이든 과학에 속하는 반면, 명확한 지식을 초월한 교리는 모두 신학에 속한다.

 

이 무인지대 No Man’s Land가 바로 철학의 세계이다. 17p

 

신학 분야에서는 이 모든 질문에 명확한 답변을 주겠다고 공언했으나, 바로 이 명확성이야말로 근대 정신으로 무장한 이들이 의혹을 품게 된 원인이었다.

 

그리고 철학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어느 정도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인간과 환경의 상호 인과관계가 성립한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환경이 철학을 거의 결정하며, 거꾸로 사람들이 형성한 철학이 환경을 거의 결정한다. 18p

 

생생한 희망과 두려움 속에서 불확실한 문제에 직면할 때는 누구나 고통을 느끼지만, 만약 마음이 편해지도록 위로나 주는 동화에 의지해 살고 싶지 않다면 그런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확실한 진리는 없다고 주저하며 무기력한 상태에 빠지지 않고 의연히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는 일이야말로, 우리 시대 철학 연구자를 위해 철학이 지금도 해야 할 중요한 일이다.

 

신학과 구별되는 철학은 기원전 6세기에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다. 1기 철학은 고대에 철학의 길로 들어선 후, 그리스도교가 발흥하고 로마가 몰락했을 때 신학의 영향으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11세기부터 14세기에 걸친 제2기 철학의 위대한 시기는 황제 프리드리히 2세를 비롯한 몇몇 위대한 반항아를 제외하면 가톨릭 교회의 지배를 받았다. 17세기부터 현대에 이르는 제3기 철학은 선대 철학자들이 활동한 이전 어느 시기보다 과학의 지배를 더 많이 받는 형국이다. 전통적인 종교적 믿음은 계속 중요한 가치로 수용되지만, 정당화가 필요하다고 느껴지거나 과학이 정당화를 요구하는 듯이 보이면 수정되거나 변경되어 왔다.

 

종교와 과학이 그렇듯이 사회 결속과 개인의 자유는 전 시기에 걸쳐 갈등을 빚거나 불안정한 타협 상태를 유지한다. 19p

 

스토아 학파 철학자들은 유덕한 삶을 시민과 도시국가의 관계가 아니라 영혼과 신의 관계로 생각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부터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이른 6세기 반 동안, 사회 결속은 철학이나 고대 그리스의 충성심이 아니라 무력에 의해, 처음에는 군사력의 의해 다음에는 조직화된 행정 권력에 의해 보장되었다.

 

여기서 로마 철학에 돌릴 만한 공로가 전혀 없는 까닭은 사실상 로마 시대에 철학이 어무 역할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는 의미심장한 견해 하나를 대중에게 전파했다. 그것은 이미 스토아 학파의 가르침 속에는 들어 있었던 반면, 그리스인들이 일반적으로 수용한 정신 측면에서 보면 낯선 사상에 속했다. 즉 신에 대한 인간의 의무가 국가에 대한 의무보다 더 중대한 명령이라는 생각이다. 20p

 

6세기 동안 이어진 야만족의 침입은 서유럽 문명의 종말을 초래했다. 21p

 

교회와 국가간의 갈등은 성직자와 속인 간의 갈등이었을 뿐만 아니라 지중해 연안 국가와 북부 야만인 국가 간 갈등의 재현이기도 했다. 교회의 통일은 로마 제국의 통일을 그대로 흉내냈다. 교회의 전례 언어는 라틴어였으며, 교회의 지도층 인사는 대부분 이탈리아, 스페인, 혹은 남부 프랑스 출신이었다.

 

교회는 과거의 전통을 계승한 곳이자 당대의 가장 뛰어난 문명을 대표하는 조직이 되었다.

 

모든 군대가 왕들 편에 섰는데도 교회는 마침내 승리했다. 교회가 승리한 이유는 일부는 교회 성직자들이 교육을 거의 독점했기 때문이고, 일부는 왕들이 끊임없이 서로 전쟁을 벌였기 때문이다.그러나 주된 이유는 극소수를 제외하면 지배자와 민중이 다 같이 교회가 바로 천국의 문을 여는 힘을 가졌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23p

 

중세의 공인된 철학은 시대를 비축는 적확한 거울이 아니라, 한쪽의 생각만 비추었을 뿐이다.

 

교회의 대분열, 공의회 운동, 르네상스기의 교황제도는 종교개혁 운동을 초래했고, 이는 전 그리스도교의 통일과 교황 중심의 스콜라식 통치이론을 훼손했다, 르네상스기에 발견된, 고대와 지구 표면에 대한 새로운 지식의 영향으로 사람들은 중세의 다양한 체계에 싫증이 난 나머지 중세의 체계를 정신의 감옥처럼 느꼈다. 23p

 

르네상스기 예술은 여전히 질서와 규칙을 추구했지만, 사상은 오히려 무질서와 혼란을 추구함으로써 상대적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었다.

 

중세는 현실의 삶에서는 소용돌이에 휘말리듯 동요했어도, 사상의 측면에서는 율법 준수의 열정과 명확한 정치권력 이론이 지배한 시대였다. 모든 권력은 궁극적으로 신에게서 유래한다고 믿었다.  신이 바로 교황에게는 성스러운 일을 처리할 권한을 황제에게는 세속의 문제를 처리할 권한을 위임했다는 말이다.

 

대개 화약의 힘에서 유래한 민족국가는 사람들의 사상과 감정에 전에 없는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문명의 통일을 믿는 로마인의 유산은 점차 파괴되어 사라졌다.

 

사람을 지도할 원칙이 없어지면 정치는 적나라한 권력 투쟁으로 변모한다.

 

결국 그들은 그리스인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들보다 문명은 뒤처지지만 사회 결속력이 강한 국가의 지배를 받기에 이르렀다. 24p

 

종교개혁은 주로 다시 살아난 로마의 지배에 반대한 북부 유럽 민족의 반항이기도 했다. 종교는 북방 세계를 복종시킨 힘이었지만, 정작 이탈리아에서는 종교가 붕괴되었다.

 

군주들은 영토 내 교회가 민족적인 색채를 띠게 되면 교회를 지배하기 쉬워져, 교황과 지배권을 나눠 가질 때보다 자기 영토 내에서 힘이 훨씬 강력해진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가톨릭 교회는 세 가지 근원에서 유래한다. 성스러운 역사는 유대교에서, 신학은 그리스 사상에서, 지배 방식과 교회법은 최소한 간접적으로라도 로마 법제에서 유래한다. 25p

 

진리는 더는 권위자에게 물어서 확인하지 않고, 내적 성찰을 통해 확인했다. 더불어 정치계에서는 무정부주의로, 종교계에서는 신비주의로 빠르게 발전하는 경향이 생겨나지만, 이런 경향은 언제나 가톨릭의 정통 체계 속에 편입되기 어려운 점이 많았다.

 

근대 철학의 문은 연 데카르트는 자기 자신과 자신의 사유가 존재한다는 근본적 확신에 입각하여 외부 세계를 추론했다. 26p

 

도덕 측면에서 개신교가 강조한 개인의 양심은 본질적으로 무정부주의와 일맥상통한다.

 

어떤 행동은 결과가 좋거나 도덕규범과 일치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행동을 하도록 고취한 감정으로 인해 찬미되거나 칭찬의 대상이 된다.(……) 예술, 문학, 정치에 나타난 낭만주의 운동은 인간을 공동체의 일원이 아니라 심미적 기쁨을 주는 응시의 대상으로 판단하는 주관적인 방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현대적인 형태의 자유주의는 로크와 더불어 시작되었으며, 로크는 절대적인 권위와 전통에 대한 맹목적 복종을 배격했을 뿐만 아니라, ‘광신즉 재침례교의 개인주의도 거부한 인물이다. 27p

 

기원적 600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기나긴 발전을 거듭하면서, 철학자들은 사회 결속을 강화하려는 자와 풀려는 자로 나뉘었다.

 

자유주의자들은 극단적인 무정부주의자를 제외하면 과학적, 공리주의적, 합리적 성향을 나타냈으며 격렬한 정열에 냉담하고 더 심오한 종교라면 전부 반대했다.

 

사회 결속은 분명히 필요하지만, 인류는 합리적 논증만으로는 결코 결속을 강화하지 못했다. 28p

 

자유주의의 핵심은 비합리적인 교의에 기반을 두지 않으면서 사회질서를 보장하는 동시에, 사회 보존에 필요한 이상으로 개인을 구속하지 않고서 사회 안정을 확보하려는 시도이다. 29p

 

< 1 : 고대 철학>

1 부 소크라테스 이전

1 장 그리스 문명의 발흥

 

그들은 순수한 지성의 영역에서 훨씬 비범하고 이례적인 업적을 성취함으로써, 수학과 과학, 그리고 철학을 청음 만들어냈고, 단순한 연대기가 아닌 역사를 최초로 기록했다.

 

철학은 탈레스와 더불어 시작되었다. (……) 철학과 과학은 원래 분리되지 않은 상태로 기원적 6세기초에 동시에 탄생했다.

 

문자기술은 기원전 4000년경 이집트에서 발명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메소포타미아에서도 등장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대모신을 동정녀 마리아로 변형시켰으며, 성모 마리아에 대해 신의 어머니라는 호칭을 써도 좋다고 허락한 곳도 에페소스 공의회였다.

 

신이 입법자에게 법전을 부여했기 때문에 법 위반은 불경으로 간주되었다.

 

미케네 문명은 대부분 호메로스가 묘사해 전해주었다.

 

참주정치tyranny’는 반드시 나쁜 정치를 의미하지 않고, 다만 권력의 세습이 허용되지 않는 지도자 한 사람의 지배를 의미했을 따름이다. ‘민주정치democracy’는 모든 시민에 의한 정치를 의미했지만 노예와 여성은 시민에서 제외되었다.

 

처음에 거의 구별되지 않던 교역과 해적 행위가 그리스인들에게 초래한 가장 중대한 결과는 문자 기술의 획득이었다.

 

호메로스의 시는 중세 후기의 궁정 소설과 마찬가지로 교양을 갖춘 귀족 계급의 관점을 대표하며, 민중 사이에 널리 펴져 있던 온갖 미신을 서민적이고 비속하다고 해서 무시한다.

 

호메로스는 원시성과 거리가 먼 검열관의 위치에서 고대신화들을 정리한 18세기식 합리주의 해석자이며, 상류층에 어울리는 도시풍의 세련된 계몽적 이상을 간직했다.

 

원시종교는 어느 곳에서나 개인보다 종족이나 부족을 위해 생겨났다. 일정한 종교의식은 공감에 의한 마술적 힘을 불러일으켜 부족의 이익을 증진하려는 의도로 거행되었다.(……)그 안에서 개인은 분리된 개체 의식을 상실하고 스스로 전체 부족과 하나라는 일체감을 느꼈다.

 

호메로스 작품에서 찾아야 할 진정한 종교심은 올림포스의 신들보다는 오히려 숙명이나 필연, 혹은 운명과 같은 더욱 어둡고 실체가 없는 존재와 관련이 깊은데, 제우스조차 이에 복종해야 한다. 숙명은 그리스 사상 전반에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했을 뿐만 아니라 과학이 자연법칙에 대한 믿음을 도출하게 된 원천 가운데 하나였다.

 

문명인과 야만인을 구분하는 기준은 주로 사려prudence, 좀 더 의미가 넓은 용어를 쓰자면 예상forethought이다.

 

인간이 성취한 가장 위대한 업적에는 도취의 요소, 즉 사려를 단번에 날려버리는 열정의 요소가 어느 정도 들어 있다.

 

과학은 지식에 한계를 그을 수는 있지만, 상상력에 한계를 그어서는 안 된다.

 

죽은 자의 영혼이 마시면 안 되는 샘물은 망각을 일으키는 레테의 강물이다. 다른 샘물은 므네모시네, 즉 기억의 강물이다.

황홀경 체험은 그리스인에게 영혼이란 자아의 연약한 닮은꼴 이상이며 오직 육신의 밖에 있을때만 본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줄 수 있음을 암시했다.

 

2 장 밀레토스 학파

탈레스의 과학과 철학은 모두 투박하고 불완전하지만, 그 자체로 사상의 형성과 관찰을 자극하는 역할을 했다.

 

밀레토스 학파는 성취한 업적이 아니라 철학적 시도로 인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이 학파는 그리스 정신이 바빌로니아와 이집트의 문화를 만나 빚어낸 성과였다.

 

3 장 피타고라스

수학이 철학에 미친 영향의 일부는 피타고라스에서 기인하며, 이후 심오하지만 유감스러운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우선 영혼은 불멸하며 다른 생물로 탈바꿈한다.”

 

경험만을 믿는 철학자는 자신이 수집한 자료에 매달리는 노예로 전락하기도 하지만, 순수한 수학자는 음악가처럼 질서정연한 미의 세계를 창조하는 자유로운 존재에 가깝다.

 

나는 수학이 초감각적인 지성계에 대한 믿음뿐만 아니라 영원하고 정확한 진리에 대한 믿음을 발생시킨 주요 원천이라고 생각한다.

 

4 장 헤라클레이토스

기하학은 그리스인의 독창적인 발명품인데, 기하학이 없었다면 근대 과학은 성립될 수 없었을 것이다.

 

연역적 방법의 사용으로 거둔 놀라운 성과는 고대 세계를 잘못된 길로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근대 세계를 주도한 사상을 대부분 잘못된 길로 빠뜨렸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윤리는 일종의 거만한 금욕주의로서 니체의 윤리와 매우 흡사하다.

 

흔히 변화의 보편성에 관한 헤라클레이토스의 신념은 만물은 유전한다는 구절로 표현되었다고 생각한다.

 

철학자들이 전력을 다해 이루려는 야망 가운데 하나는 과학이 소멸시킨 듯이 보였던 희망을 부활시키는 것이었다.

 

5 장 파라메니데스

그는 감각이란 우리를 속이고, 많은 감각 가능한 존재는 단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유일하게 참된 존재는 일자The One’로서 무한하며 분할할 수 없다.

 

6 장 엠페도클레스

, 공기, , 물을 4원소(그가 원소란 말을 쓰지는 않았지만)로 확립한 사람이 바로 엠페도클레스이다.

 

세계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목적의 지배를 받지 않고 단지 우연의 힘과 필연의 힘으로 변할 따름이다.

 

엠페도클레스는 물질세계가 구형이라고 주장했는데, 황금시대에는 다툼이 구형의 바깥에 존재하고 사랑은 구형의 안에 존재했다.

 

7 장 아테네의 문화

아테네는 단지 위대학 두 철학자,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이름을 남김으로써 철학에 이바지했다.

 

노동할 필요가 없었던 젊은이들은 여유 시간의 대부분을 과학, 수학, 철학 연구에 썼다.

 

8 장 아낙사고라스

그는 아테테인드에게 처음 철학을 소개한 인물이자 물리적 변화의 제일 원인이 정신이라고 제아한 첫 인물이기도 했다.

 

아낙사고라스에 따르면 정신은 모든 운동의 근원이다.

 

9 장 원자론자들

충돌이 일어나면서 원자들의 무리가 소용돌이를 형성했다. 나머지는 아낙사고라스의 견해와 동일하게 진행되지만, 소용돌이를 정신의 활동보다는 오히려 기계적으로 설명하려 한 점은 진일보했다고 할 수 있다.

 

데모크리토스는 철저한 유물론자였다. 이미 보았듯이 그에게는 영혼도 원자들로 구성되며, 사유도 신체에서 일어나는 과정이다.

 

10 장 프로타고라스

아테네가 현대 미국사회보다 덜 편협해 보이는 한 가지 점은, 불경하다거나 젊은이를 타락시켰다는 이유로 기소된 자에게도 자신을 변호하고 항변할 기회를 주었다는 것이다.

 

플라톤 이후 모든 철학자들이 지니게 된 결함 가운데 하나는 윤리적 탐구를 하는 경우에 이미 도달해야 할 결론을 안다고 가정한다는 점이다.

 

2 부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11 장 소크라테스

이들은 소크라테스가 국가에서 받드는 신들을 숭배하지 않고 다른 신을 새로 들여와 젊은이들에게 가르쳤기 때문에 유죄라고 주장했다.

 

소크라테스가 과학 문제보다 윤리 문제에 더 몰두했다는 사실은 거의 확실히다.

 

그는 아무도 고의로 죄를 짓지는 않으므로, 지식만 있다면 모든 사람이 다 덕을 갖추게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12 장 스파르타의 영향

스파르타의 신화가 추구한 이상은 후대에 루소와 니체의 학설을 비롯해 국가사회주의의 형성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

 

스파르타의 전성기에 생존한 헤로도토스는 뇌물에 저항할 수 있는 스파르타인은 아무도 없었다는 놀라운 말을 전한다.

 

여자가 아닌 남자들 간의 동성애는 스파르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풍습이었을 뿐만 아니라 사춘기 소년들의 교육 과정에 포함될 정도로 공인된 부분이었다.

 

14 장 플라톤의 이상향

이상 국가론에서 도출된 한 가지 결론은 통치자가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플라톤은 두 세대가 지나면 신화에 대한 신앙이 형성될 수 있다고 생각한 점에서 옳았다.

 

이상과 일상적인 욕망의 대상을 구분하는 차이는 이상이 개인과 관계가 없는 객관적 대상이라는 점이다.

 

15 장 이상 이론

철학자는 탐구심이 강한 사람이 지식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지식을 사랑하는 사람은 아니다. (……) 철학자는 진리를 통찰함을사랑하는 사람이다.

 

두 종류 지성 가운데 이성이 더 뛰어난 능력으로 순수 이상에 관계하며 변증법을 사용한다. 오성은 수학에 쓰이는 지성 능력으로서 진위가 가려지지 않는 가설들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이성보다 열등하다.

 

플라톤은 학문과 진리는 유사하지만, 선이 더 높은 지위를 차지한다고 말한다.

 

18 장 플라톤의 지각과 인식

철학자는 탐구심이 강한 사, 유일하게 진정한 지식은 개념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전혀 다른 학설이 존재한다.

 

유사성과 비유사성을 지각하는 감각 기관이 없다는 플라톤의 논증은 대뇌피질을 무시하고 모든 감각 기관이 육체의 표층에 있음이 틀림없다고 가정하는 셈이다.

 

계속되는 변화는 정량 장치quantitiative apparatus가 필요한데 플라톤은 그 가능성은 무시한다.

 

19 장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대략 말하자면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은 상식으로 희석된 플라톤 사상이라고 묘사해도 괜찮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보편자 이론은 플라톤의 이상 이론에서 한 단계 진보한 이론이라 확신하며, 철학의 진정한 문제를 다룬 매우 중요한 이론이라는 점도 확실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론』에서 영혼과 정신을 구별하는데, 정신이 영혼보다 등급이 더 높아서 육체와 맺는 관계가 덜 밀접하다.

 

20 장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

어느 덕이나 양극단의 중용이며, 양극단은 각각 악덕에 속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한 가장 훌륭한 개인은 그리스도교의 성인과는 아주 다른 사람이다. 가장 훌륭한 개인은 적당한 긍지를 지녀야 하며 자신의 공적을 낮추어 평가해서도 안 된다. 또 경멸받을 만한 사람은 누구든지 경멸해야 한다. 긍지에 찬proud, 또는 대범한magnanimous 사람에 대한 서술은 이교도 윤리와 그리스도교 윤리의 차이, 니체가 그리스도교를 노예 도덕으로 평가한 의미의 정당성을 확보해주기 때문에 매우 흥미롭다.

 

최고 덕이 소수를 위해 존재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는 윤리학을 정치학에 논리적으로 종속시키는 문제와 관련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에는 자비나 박애라 부를 만한 요소가 아예 없다고 보아야 한다.

 

21 장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은 흥미로우면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데, 당시 교육받은 그리스인들의 공통된 편견을 보여주기 때문에 흥미롭고, 중세 말기까지 영향을 미친 여러 원리의 근원이 되기 때문에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22 장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

아리스토텔레스가 논리학에서 이룩한 가장 중요한 업적은 삼단논법 학설이다.

 

실체는 한마디로 주어와 술어로 구성된 문장 구조를 세계 구조로 옮겨놓은데서 기인한 형이상학과 관련된 실수의 산물이다.

 

23 장 아리스토텔레스 자연학

운동의 궁극 기원은 의지이다. 지상에서는 인간과 동물들이 변덕스러운 의지가 운동의 기원이고, 천상에서는 변화를 겪지 않는 최고 조물주가 운동의 기원이다.

 

24 장 초기 그리스 수학과 천문학

그리스 기하학자들을 사로잡은 굉장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정육면체를 두 배로 만드는 문제로, 어떤 신전의 사제들이 받은 신탁에서 유래하는데, 신탁에 따르면 신이 이전에 만든 것보다 두 배가 되는 신상을 원했다.

 

지구에 더하여, 중심의 불에서 동일한 거리에 또 다른 천체, 쌍둥이 지구가 존재한다고도 생각했다.

 

3 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고대 철학

25 장 헬레니즘 세계

역사 속에 실존했던 영웅 가운데 어느 누구도 알렉산드로스만큼 신화 형성에 적합한 능력을 완벽하게 갖춘 사람은 없었다.

 

26 장 키니코스 학파와 회의주의 학파

디오게네스는 개처럼 살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를 의미하는 견유cynic’로 불리기도 했다.

 

특히 프로타고라스와 고르기아스는 감각 지각의 모호성과 겉으로 나타난 모순된 점들 때문에 흄과 흡사한 주관주의로 나아갔다.

 

27 장 에피쿠로스 학파

인간이 크나큰 고통 속에서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주장을 최초한 한 사람은 스토아 학파가 아니라 바로 에피쿠로스였다.

 

에피쿠로스는 실제로 현자의 목표는 쾌락을 주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없애는 일이라 생각한다.

 

영혼원자는 육체에 두려 펴져 있다. 감각은 육체가 발산하는 얇은 막들이 이동하여 영혼 원자들과 부딪칠 때 발생한다.

 

에피쿠로스가 살던 시대에는 고난의 시대였기 때문에 소멸이 정신의 고뇌에서 벗어난 즐거운 휴식처럼 보였을 것이다.

 

28 장 스토아 철학

스토아 학파의 윤리가 에픽테토스나 마르쿠스 아울렐리우스 시대에나 적합한 까닭은 스토아학파의 복음이 희망보다는 인내의 윤리이기 때문이다.

 

16,17,18세기에 걸쳐 나타난 자연권 학설은 스토아 학파의 학설을 부활시킨 결과였으나 중요한 수정을 거쳤다. 바로 스토아 철학자들이 자연법과 만민법을 구분했다. 자연법은 일반적인 모든 지식의 기초를 이루는 제일 원리들에서 도출되었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자연에 따라 만인이 등등하다고 주장했다.

 

<2 : 가톨릭 철학>

서론

당시 지성계에 공헌한 사람들은 모두 성직자들이었다.

 

고대 세계와 대조를 이루는 중세 세계의 특징은 가지각색의 이원성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1 부 교부 철학

1 장 유대교의 발전

유대인들은 고유한 종교 의식을 통해 한 민족으로서 단결하였으나, 율법을 강조함으로써 점차 독창성을 잃고 지나치게 보수적인 관습에 함몰되었다.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교이 겸손을 실천하려 노력했으나 유대인은 대개 겸손을 덕으로 여기지 않았다.

 

2 장 초기 그리스도교

정신이 타락하면 영혼이 되고, 영혼이 덕을 갖추면 정신이 된다. 궁극적으로 모든 영혼은 그리스도에게 완전히 복종하게 되면 육체가 없는 존재가 된다. 최후에는 악마조차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초기 역사에서 중요한 부분이 전설이라는 사실은 현대 역사학자에게는 명백하지만, 고대인들은 전설로 생각하지 않았다.

 

4 장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철학과 신학

과거는 기억과 동일시하고, ‘미래는 기대와 동일시할 수 밖에 없으며, 기억과 기대는 둘 다 틀림없이 현재에 속할 사실들이다.(……)’’“과거에 일어난 일들의 현재는 기억이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의 현재는 눈앞에 펼쳐지는 일이며, 미래에 일어날 일들의 현재는 기대이다.”

 

야훼=변증법적 유물론

구세주=마르크스

선민=프롤레타리아

교회=공산당

그리스도의 재림=혁명

지옥=자본가의 처벌

천년왕국=공산사회

 

5 5세기와 6세기

불완전함은 결핍으로서 완전한 원형의 존재를 함축한다고 말한다. 결국 그는 악의 결핍 이론을 채택했다.

 

6 장 성 베네딕투스와 그레고리우스 대교황

청결은 혐오의 대상이었다. 이는 신의 진주로 불렀으며 성스러움의 징표로 받아들였다.

 

2 부 스콜라 철학

7 장 암흑기의 교황 체제

신성 로마 제국의 건국은 이론상으로는 중세기의 획기적인 사건이었으나 실제로는 그다지 획기적인 사건이 아니었다.

 

나는 현재 세계를 휩쓸고 있는 전쟁이 종식된 후 세계가 아시아를 동등한 문화권으로 인정하게 되리라 기대한다.

 

10 장 이슬람교 문화와 철학

동로마 제국을 공격한 주요 세력은 이슬람교도로서 정복 이후에도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지 않고 가치있는 고유한 문명을 발전시켰다.

 

그는 유類, 즉 보편자가 동시에 사물 앞에도, 사물 안에도, 사물 다음에도 존재한다고 말한다.

 

11 12세기

스콜라 철학 방법의 결점은 변증법을 강조한데서 비롯된 피할 수 없는 결과였다.

 

12 13세기

인노켄티우스 3세는 신성의 기미가 없는 최초의 대교황이었다.

프리드리히는 문화 측면에서 계몽된 사람이었으나, 정치 측면에서는 퇴행적인 특징을 나타냈다.

 

<3 : 근현대 철학>

1 부 르네상스에서 흄까지

1장 일반적 특징

근대 철학자들이 대부분 인정한 과학의 권위는 교회의 권위와 전혀 다른 지적인 권위이며 정치적권위가 아니었다.

 

2장 이탈리아 르네상스 운동

인문주의를 장려하는 정책은 신앙심이 유달리 깊고 진지한 북부 유럽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지만, 우리의 관점에서 보면 일종의 덕행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우선 르네상스 운동은 지성을 옥죄는 덮개가 되어버린 엄격한 스콜라 철학의 체계를 무너뜨렸다.

 

안정된 사회 체계는 필요하지만, 여태까지 고안된 모든 안정된 체계는 비범한 예술가와 지성인의 장점을 살리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되곤 했다.

 

4장 에라스무스와 토머스 모어

핵심을 찔러 말하자면 북부 유럽의 감상주의를 내세워 그리스의 지성주의를 거부한  셈이다.

 

16세기는 루터의 등장 이후 철학적인 면에서는 불모의 시대였으나, 17세기에는 위대한 인물들이 나타났으며 그리스 시대 이후 가장 괄목할만한 진보를 이루었다.

 

5장 과학의 발흥

과학의 발전이 초래한 다른 결과는 인간이 우주 안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사고방식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일이다.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이 인간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는데도 사실상 정반대 결과를 낳은 까닭은 과학의 승리가 오히려 자존심과 긍지를 부활시켰기 때문이다.

 

9장 데카르트

데카르트의 철학에는 당대 과학에서 배운 내용과 라 플레슈에서 배운 스콜라 철학 사이의 이원적 대립이 존재한다.

 

11장 라이프니츠

그는 세계 안의 모든 개별 사물은 우연적인존재라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실존하지 않는 일이 논리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13장 로크의 인식론

로크가 살았던 당시 정신은 모든 종류의 사물을 선험적으로 알 수 있는 능력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지식이 지각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선언은 새롭고 혁명적인 학설이었다.

 

14장 로크의 정치철학

그때 미국의 토지는 인디언들이 토지를 경작하지 않은 탓에 아무 가치도 없다는 말이다. 그는 토지의 가치란 사람들이 실제로 토지를 경작하기 전에도 일할 의사를 갖기만 하면 획득된다는 점을 미처 깨닫지 못한 듯하다.

 

19장 루소

현대에 와서 히틀러는 루소의 후예로, 루스벨트와 처칠은 로크의 후예로 평가한다.

 

그는 그녀와의 사이에 다섯 아이를 두었으나 모두 고아 양육원으로 보냈다.

 

그는 과학과 문학, 그리고 예술은 도덕의 가장 큰 적이며 탐욕을 조장하는 노예근성의 원천이라고 주장했다.

 

20장 칸트

칸트의 말에 따르면 공간과 시간은 개념이 아니라 직관형식이다.

 

너는 오직 네 의지의 격률이 동시에 일반 법칙이 될 수 있도록 행동하라. 혹은 네 행위의 격률이 네 의지를 통해 마치 일반적인 자연 법칙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행동하라.

 

25장 니체

그는 여기저기서 평범한 인간을 섣부른 자the bungled and botched’라고 말하며, 위대한 인간의 탄생에 필요하다면 평범한 인간이 고통을 당해도 반대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는 국가 숭배자는 아니며, 국가 숭배와는 아무 관계도 없다. 그는 열정적인 개인주의자요, 영웅 신봉자이다.

 

27장 카를 마르크스

철학자들은 단지 여러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해왔을 뿐이다. 그러나 진정한 과제는 세계를 변혁시하는 일이다.”

 

31장 논리 분석철학

물리학이 물질을 덜 물질적인 대상으로 만드는 사이에 심리학은 정신을 덜 정신적인 대상으로 만들었다.

 

지성의 측면에서 보면, 철학은 잘못된 도덕의 고찰의 결과로는 비범한 정도까지 진보하지 못했다.

 

철학이 독단적인 일부 주장을 포기한다고 해서, 삶의 방식을 제안하고 삶에 영감을 불어넣는 일까지 멈추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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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있는마음
2010.02.22 12:35:07 *.53.82.120
본의 아니게 지식에 대한 탐구심을 남들에게 드러내기에 좋은 책이다.

참 그렇긴 하더라구요.
감춘다고 감춰감서 봤는데두
통 감출 수 없는 볼륨이었으니까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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