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좋은

함께

여러분들이

  • 김용빈
  • 조회 수 4345
  • 댓글 수 1
  • 추천 수 0
2010년 2월 22일 11시 39분 등록

서양철학사

버트런드 러셀, 상복, 2009, 을유문화사

 

v       저자에 대하여

  

가.   저자에 대한 기록

   그의 사망 년도(1970)만 보면 러셀이 비교적 최근의 인물이라고 생각되지만, 그의 출생 년도(1872)를 보면 꽤 오래된 인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얼마 전까지 평균수명이던 70세를 적용한다면 1942년쯤 고인이 되었을 수 있는 사람이니, 정열적으로 사랑을 하고, 꽤 높은 수준의 연구와 글쓰기를 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실천적인 참여 등 과도한 에너지를 사용한다고 해서 사람의 수명이 단축되는 것이 아닌 점은 분명한 것 같다. 오히려 - 그도 그렇게 생각했겠지만 - 이러한 정력적인 삶이 그의 무병장수를 가능케 했던 것 같다. 물론, 이는 러셀에 한에서 그렇다는 얘기다. 이런 단서를 굳이 다는 것은, 불확실한 지식의 과다한 적용을 혐오했던 러셀의 비판을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의 자서전 서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단순하지만 누릴 길 없이 강렬한 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해왔으니,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열정들이 마치 거센 바람과도 같이 나를 이리저리 제멋대로 몰고 다니며 깊은 고뇌의 대양 위로, 절망의 벼랑 끝으로 떠돌게 했다.

 

   정식 결혼 만 세 번을 했고, 수학에 대한 사랑 때문에 자살을 단념했다거나, 거짓과 더불어 제정신으로 살기보다는 진실과 더불어 미치는 쪽을 택하겠다던 옥중 메모나, 귀족 출신으로 반전 반핵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사실 등을 보면 老지성인의 육성은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여기에다 문학가도 아니면서 노벨 문학상까지 수상하였으니, 굵고 짧게가늘고 길게 중 하나를 선택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범인으로서는 길고 굵게 산 러셀 경에 대해 경외심 마저 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리라. 물론, 이런 경외심은 길고 굵은 인생에 대해서만은 아니고, 그가 삶에서 보여준 정직함과 지적인 철저함, 평화로운 세계를 추구하는 정신과 행동 등이 와 닿아서 일 것이며, 이런 가치가 보다 더 결정적인 근거가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나.   개인적 평가

   러셀은 한마디로 20세기의 지성 이라고 불리는데, 어느 누구도 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런 까닭은 그가 모교인 케임브리지대학 강사시절 반전운동 때문에 6개월의 감옥생활을 시작으로, 아인슈타인과 함께 핵무기의 위험성을 경고하는데 앞장섰다는 것뿐만 아니라, 화이트헤드와의 공동저작인 『수학원리』를 출간 당시에 이해할 수 있었던 사람이 20명도 안되었다는 것처럼 지적인 수준도 월등했다는 점이다. , 수학과 철학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성을 획득하고 인간과 사회에 대한 광범위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보여왔던 것이다.

   내가 보기에, 러셀의 미덕이면서 존경할만한 점은 한마디로, 끝없는 지식 추구의 정신이라 하고 싶다. , 상식을 옹호하며 합리성과 객관성을 갖춘 지식을 끊임없이 추구하면서 이에 반하는 잘못된 사고와 사회현실을 과감히 비판한 지행합일의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러셀식정신에서 다음과 같은 그의 스타일이 나온 것이다.

   객관적 진리의 추구, 어떤 권위의 영향도 배제하는 회의주의와 비판주의와 무신론, 이성을 중시하는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참여, 과학의 가치를 믿는 진보주의, 그리고 이런 사상을 재치 있게 전달할 수 있는 유머와 위트 등이다.

 

다.   저자의 주요 저서

   그를 수학과 철학의 권위자로 자리매김시킨《수학원리(19101913),《정신의 분석(1921),《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1927), 《결혼과 도덕(1929), 현대인의 행복에 관한 스테디 셀러인《행복의 정복(1930) , 그에게 경제적으로 많은 도움도 준《서양철학사(1945) , 철학적 자서전이라 할《나는 이렇게 철학을 하였다(1959), 사망 1년 전에 출간한《자서전(1969)》 등이 있다.

 

 

v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17 내가 말하려는 철학은 신학과 과학의 중간에 위치한다. 철학은 신학과 마찬가지로 명확한 지식으로 규정하거나 확정하기 힘든 문제와 씨름하는 사변적인 측면을 포함한다. 그러나 철학은 과학과 마찬가지로 전통을 따르든 계시를 따르든 권위보다는 인간의 이성에 호소한다. 명확한 지식은 무엇이든 과학에 속하는 반면, 명확한 지식을 초월한 교리는 모두 신학에 속한다. 신학과 과학 사이에 자리 잡고 양측의 공격에 노출된 채,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는 영역이 존재한다. 이 무인지대가 바로 철학의 세계이다.

   사변적인 정신의 소유자가 대체로 흥미를 느낄 만한 문제에 대해 과학은 거의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며, 신학자의 확신에 찬 대답도 이전 세기와는 달리 확신을 주지 못하는 듯하다.

 

45 호메로스의 시들은 늦어도 기원전 6세기 어느 시점에 오늘날의 형태로 고정되었다. 그리스의 과학과 철학, 수학도 바로 이 무렵 형성되었다. 기원전 6세기 문화의 근원이 된 중요한 사건들이 세게 곳곳에서 줄줄이 발생했다. 만약 존재했다면, 공자와 붓다, 조로아스터도 이 시대에 속한 인물들일 것이다.

 

50 철학자들에게 영향을 준 디오니소스 숭배는 원래 형태가 아니라, 오르페우스의 영향으로 길러진 정신적으로 변모한 형태였다. 정신적인 디오니소스 숭배는 금욕적인 성향을 띠며 육체 도취를 정신적 도취로 대체하는 특징이 있다.

 

57 그리스 신화에서 보면 원형신화는 올림포스의 제우스가 아니라 불을 천상에서 훔쳐내 인간에게 전해준 대가로 영원한 고통을 받은 프로메테우스이다.

   사실 그리스 문화를 지배한 두 가지 경향이 있었다. 하나는 열정을 중시하고 종교에 몰입하며 신비를 표방하고 내세를 믿는 경향이다. 다른 하나는 명랑하고 경험을 중시하며 합리주의를 내세우고 다양한 사실에 대해 지식을 획득하려는 경향이다.

 

68 증명하는 연역 논증이란 뜻의 수학은 피타고라스와 더불어 시작되며, 색다른 형태의 신비주의 사상 역시 그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수학이 철학에 미친 영향의 일부는 피타고라스에서 기인하며, 이후 심오하지만 유감스러운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74~75 수학적 지식은 관찰할 필요도 없이 단지 사고를 통해 획득되었다. 따라서 수학적 지식이 일상의 경험적 지식에 결여된 이상적 지식을 제공한다는 사고가 출현했다. 또한 수학에 근거하여 사유가 감각보다 우월하고 직관이 관찰보다 우월하다고 가정했다. 만약 감각세계가 수학에 적합하지 않으면, 감각 세계는 그만큼 더 나쁜 세계가 된다. 갖가지 방식으로 수학자의 이상에 더 가까워지려는 방법을 찾으려 했으며, 그 결과 생겨난 제안들은 형이상학과 인식론 분야에서 빚어진 오류의 근원이었다. 이러한 부류의 철학은 피타고라스와 더불어 시작된다.

 

89 철학적인 성향이 두드러진, 시간 속에서는 무엇이나 덧없음을 부인할 수 없었던 신비주의자는 끝없는 시간을 거친 영속이 아니라 시간의 전체 과정 밖에 있는 영원성의 개념을 발명했다. 몇몇 신학자, 예컨대 잉(William Ralph Inge, 1860~1954)에 따르면 영원한 생명은 미래의 매순간 줄곧 존재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시간과 전적으로 독립해서 존재하며, 이전도 없고 이후도 없으므로 변화의 가능성이 논리적으로 배제된다.

 

117 고대에는 원자론자들이 모든 것을 우연으로 돌렸다고 해서 비난을 받는 일이 흔했지만,이와 반대로 원자론자들은 엄격한 결정론자로서 모든 일은 자연법칙에 따라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원자론자들은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달리 목적이나 목적인과 같은 개념을 끌어들이지 않고 세계를 설명하려 했다.

 

124 데모크리토스는 철저한 유물론자였다. 이미 보았듯이 그에게서는 영혼도 원자들로 구성되며, 사유도 신체에서 일어나는 과정이다. 우주에 목적이란 없으며, 기계적인 법칙에 지배 받는 원자들만이 존재한다.

   데모크리토스는 적어도 내 생각으로는 그리스 철학자들 가운데 고대 후기와 중세 사상을 타락시킨 특이한 결점을 보이지 않는 마지막 철학자이다.

 

125 데모크리토스 이후 가장 우수한 철학에서 조차 우주보다 인간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우선 소피스트들과 더불어 회의주의가 등장하는데, 이들은 새로운 지식을 얻으려고 하기 보다는 우리가 어떻게 알게 되는지에 대한 연구로 관심을 돌린다. 다음에는 소크라테스가 나타나 윤리를 강조하고, 플라톤은 스스로 창조된 순수한 사유의 세계를 지지하기 위해 감각 세계를 거부한다. 또 아리스토텔레스는 목적이 과학에 필요한 기본개념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천재성을 갖추고 있었지만, 그들의 사상체계는 후대에 큰 해악을 끼친 결점을 드러냈다. 그들의 시대 이후 철학의 활력은 사라지고, 점차 미신이 대중의 인기를 얻는 상황이 재연되었다. 가톨릭 전통신앙이 승리를 거두면서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새로운 사고방식이 출현했으나, 철학은 르네상스에 이를 때까지는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특징이던 활력과 독립성을 회복하지 못했다.

 

131~132 전심전력을 다해 진리를 추구하다 보면 도덕적인 고려를 무시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니까 우리는 특정한 진리가 주어진 사회에서 덕성을 높이고 교화하는 역할을 하게 되리라는 점을 미리 알 수 없다는 말이다. 소피스트들은 논증이 그들을 어디로 이끌든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들은 논증을 따라가다가 종종 회의주의에 빠지기도 했다.

 

132 플라톤은 늘 자신이 생각한 덕을 사람들에게 함양해 줄 견해를 지지하는 데 관심을 가졌다. 그가 지적인 면에서 좀처럼 정직하지 않은 까닭은 학설을 사회적 귀결과 연관시켜 판단하기 때문이다.

 

132 (플라톤은) 논증을 전개하면서 순수한 이론적 표준에 따라 판단하는 척하지만, 사실은 덕성을 함양하는 고결한 결론에 이르도록 논의를 왜곡한다. 이렇게 그가 철학에 끌어들인 악습은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나타났다. 그의 대화편 여기저기서 나타나는 악습은 아마 소피스트들에 대한 과장된 적대감에서 비롯되었을 공산이 크다. 플라톤 이후 모든 철학자들이 지니게 된 결함 가운데 하나는 윤리적 탐구를 하는 경우에 이미 도달해야 할 결론을 안다고 가정한다는 점이다.

 

152 변증법, 혹은 일반인이 더 잘 이해하기 쉽도록 표현하자면 자유로운 토론 습관은 논리적 일관성을 증진하기 때문에 유용하다. 그러나 새로운 사실의 발견이 목적이라면 소용없는 방법이다. 어쩌면 철학은 플라톤의 방법으로 추구하는 탐구활동의 총합으로 정의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만약 이 정의가 적절하다면, 그것은 플라톤이 후대 철학자들에게 미친 영향 탓이다.

 

153 스파르타의 신화가 추구한 이상은 후대에 루소와 니체의 학설을 비롯해 국가사회주의의 형성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

 

196 플라톤의 형이상학과 파르메니데스의 형이상학에서 다른 점 한 가지는 분명하다. 파르메니데스에게는 일자가 존재할 뿐이지만 플라톤에게는 여러 이상(ideas)이 존재한다.

 

199 천문학이 발전해나가는 특정 단계에서는 선 자체를 믿는 태도가 세계를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열쇠로서 유용했지만, 이후에는 매 단계에서 해로운 영향을 주었을 따름이다. 윤리와 심미적인 측면에서 플라톤이 드러낸 편견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편견은 더욱 더 그리스 과학의 기세를 꺾는 데 큰 몫을 했다.

 

212 (소크라테스)는 논증을 펼칠 때, 사심 없이 공정한 태도로 지식을 추구하지 않고 자신이 동의하는 결론을 증명하기 위해 지성을 사용하고, 사적인 사고를 전개할 때는 정직하지 않고 억지로 둘러대기도 한다.

 

212 소크라테스는 이전의 몇몇 철학자들과 달리 사고가 과학적이지 않고 우주가 자신의 윤리적 기준과 일치한다고 증명하기로 굳게 결심했다. 이것은 진리를 배반하는 태도이며, 철학자가 저지르는 가장 큰 죄이다.

 

233 아리스토텔레스의 선대철학자들 가운데 어느 누가(아마 테모크리토스를 제외하면) 동등한 권위를 얻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재앙의 수준이 그 정도는 되었을 것이다.

 

285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이 2000년 동안 군림하게 되면서 아리스토텔레스를 권좌에서 몰아내는 일은 대단히 어려워졌다. 사실 근대 전반에 걸쳐 과학, 논리학, 철학 분야는 모두 아리스토텔레스 제자들의 반대에 맞서는 과정을 거쳐서 진보했다.

 

302 아르키메데스와 아폴로니우스 이후에도 알렉산드리아에서는 훌륭한 연구가 이루어졌지만 위대한 시대는 막을 내렸다. 로마 군대의 지배 아래서 그리스인들은 정치적 자유를 누리는 데 필요한 자신감을 잃게 되었고, 마비된 듯 무력하게 이전학자들을 존경할 뿐이었다. 아르키메데스를 살해한 로마 병사는 로마가 그리스 세계 전체에 초래한, 독창적인 사상의 죽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인물이 되었다.

 

329 회의주의는 서기 3세기 무렵까지는 교양을 갖춘 몇몇 사람들의 마음을 계속 끌었지만, 점점 더 독단적인 종교와 구원의 교리로 기울어지던 시대의 추세와 반대되는 경향이었다. 회의주의는 교육받은 사람들이 국가 종교에 불만을 느끼게 할 만한 힘은 지녔으나, 순수하게 지적인 영역에서도 국가 종교를 대신할 만한 적극적인 요소는 하나도 제공하지 못했다. 르네상스 시대 이후 회의주의를 지지한 대변자들은 과학을 열렬히 믿음으로써 신학적 회의주의를 보완했으나, 고대 세계에서는 이러한 보완이 없었다.

 

345 교육을 받지 못한 무지한 서민들은 동방의 온갖 미신에 현혹되었다가 그리스도교로 기우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초기 그리스도교는 선이란 모두 무덤 저편의 삶에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에피쿠로스와 정반대 복음을 사람들에게 전파했다. 그렇지만 18세기 말 프랑스의 계몽철학자들은 에피쿠로스와 유사한 학설을 부활시켰고, 벤담과 그의 추종자들이 영국에도 도입했다.

 

384 철학 분야에서 아랍인들은 독창적인 사상가라기 보다는 훌륭한 주석가였다. 우리가 그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동로마 제국에서만 명맥을 유지하던 그리스 전통의 일부분이나마 직접 계승한 자들이 그리스도교가 아니라 아랍인들이었기 때문이다.

 

495 6세기 이후 수세기에 걸친 끝없는 전쟁으로 문명이 전반적으로 쇠퇴하던 시기, 무엇보다도 교회는 살아남은 고대 로마 문화를 보존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당시 가장 위대한 성직자들조차 광신과 미신에 물들어 세속 학문을 사악한 것으로 치부했던 탓에, 교회는 로마문화를 불완전하게 보존했다. 그렇지만 교회제도는 후대의 학문과 세련된 예술의 부흥을 가능하게 만든, 튼튼한 기초를 닦아 놓았다.

 

550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저 단순한 변론가로 생각되었던 반면, 플라톤은 종교철학자이자 이상 이론의 창시자로 여겨졌다. 중세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이런 편협한 생각,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 체계에 대한 편견은 차츰 바로 잡혔다. 그러나 플라톤에 대한 생각은 르네상스 시대까지 변하지 않았다.

 

604 아퀴나스의 철학 체계 안에 진정한 철학 정신을 드러내는 부분은 거의 없다. 그는 플라톤 대화편 속의 소크라테스와 달리 논증이 이끄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든 따라가려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그는 결과를 미리 알 수 없는 탐구에는 발을 들여놓지 않는다. 그는 철학을 시작하기 전에 벌써 진리를 알고 있다. 진리는 가톨릭 신앙 안에서 선언된다.

 

639 과학의 권위는 가톨릭 교리 체계와 달리 인간의 도덕과 희망을 비롯해 우주 역사의 과거와 미래를 포괄하는 완결한 체계를 제안하지 않는다. 단지 특정한 시기에 과학적으로 확인된 면만 드러내 선포하는데, 확인된 사항은 무지와 불가지론으로 가득한 망망대해 어딘가에 위치한 작은 섬과 같다. 그 밖에도 차이점이 하나 더 있다. 교회의 권위는 절대적으로 확실하며 영원히 변하지 않는 반면, 과학의 선언은 개연성이나 확률에 근거한 잠정적인 주장이어서 수정되기도 한다.

 

641 과학 기술은 정연한 구조로 짜여 있어 무정부주의, 심지어 개인주의와도 대립한다. 과학 기술은 종교와 달리 윤리적으로 중립을 유지한다. 과학기술은 사람들이 놀라운 일을 수행하게 하지만 수행해야 하는 놀라운 일이 무엇인지 말해주지 않는다.

 

642 과학기술의 발전에서 영감을 받은 철학이 바로 힘을 강조하는 철학이다. 여기서 인간이 아닌 모든 존재를 단지 가공되지 않은 재료로 생각하는 경향도 나타난다. 이제 목적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숙련과정에만 가치를 부여할 따름이다. 이러한 경향은 일종의 광기요 바보짓이다. 이는 우리 시대에 가장 위험한 철학이다. 건전한 철학은 이에 대항할 해독제를 내놓지 않으면 안 된다.

 

649 르네상스 운동은 지성을 옥죄는 덮개가 되어버린 엄격한 스콜라 철학의 체계를 무너뜨렸다. 다음으로 르네상스 운동은 플라톤 연구를 부흥시킴으로써 적어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사이에서 선택할 경우에 필요한 수준만큼 독자적인 사유를 가능하게 했다.

 

653 르네상스기의 정세는 개인의 발전을 지지했으나 불안정한 상태였다. 불안정한 정세와 개인주의는 고대 그리스의 경우처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안정된 사회 체계는 필요하지만, 여태까지 고안된 모든 안정된 체계는 비범한 예술가와 지성인의 장점을 살리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되곤 했다.

 

683 코페르니쿠스의 연구 작업은 지구가 기하학상 차지한 우월한 지위를 박탈한 점에서 중요하다. 결국 이러한 사실은 가톨릭교 신학에서 인간에게 부여한 우주적 차원의 중요한 의미를 빼앗은 셈이다.

 

685 우주에 관한 상상이 미친 혁명적 효과와는 별개로, 새로운 천문학이 지닌 뛰어난 장점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로 고대 이후의 믿음들이 거짓일지도 모른다고 인정했으며, 둘째로 인내심을 가지고 사실들을 수집하고, 사실들을 함께 묶는 법칙들을 대담하게 추측함으로써 과학의 진리를 시험한 것이다.

 

691 사람들은 항상 다섯 행성과 태양, 달을 합해 천제 일곱 개가 있다고 믿어 왔으니, 일곱은 신성한 수이다. 그런데 목성 주변을 도는 네 개의 위성들이 추가되면 천체의 수는 11개 인데, 이 수는 신비한 속성을 하나도 갖고 있지 않다. 이를 빌미로 전통적인 가톨릭교도들은 망원경의 사용을 공공연히 비난하면서 한사코 망원경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으며, 망원경이 실재와 다른 망상을 보여줄 따름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752 신학자들의 신은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칼뱅에 이르기까지 지성에 호소한 신이다. 그러니까 신의 존재는 우주에 대한 이해를 표현하는 논증 과정에서 생긴 특정한 난점을 해결하는 역할을 담당한다는 말이다. 추리과정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신은 기하학 명제 하나를 증명하는 절차와 유사하게 도출되는데, 루소는 이러한 신 개념에 만족하지 않고 복음서의 신에 더 가까운 신 개념으로 되돌아 갔다.

 

759 라이프니츠는 논리학 분야에서 논리의 중요성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논리가 형이상학의 기초라고 확신했다. 그는 일생 동안 자신이 보편언어 라 부른 일종의 보편 수학을 발견하리라는 희망을 간직했는데, 보편 수학이 확립되면 사고를 일종의 계산으로 대체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우리가 보편 수학을 갖게 되면, 기하학이나 해석학과 동일한 방식으로 형이상학이나 도덕 분야에서도 추리를 하게 될 터이다. …”

 

766 나는 양 극단 사이에 진실이 놓여 있다고 믿는다. 여느 경우처럼 사상과 실생활은 대등한 수준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어느 쪽이 원인이고 어느 쪽이 결과냐는 질문은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는 질문만큼이나 어리석고 쓸데없는 질문이다.

 

770~771 정치 경제적으로 진보한 나라에서 발전한 어떤 철학이 발생지에서는 기존의 우세한 여론을 분명하고 체계적으로 표현하는 역할 이상을 하지 못하는 반면, 그 나라 밖에서는 혁명을 향한 열정과 궁극적으로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혁명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진보한 나라에서 정책을 규제하는 격률은 주로 덜 진보한 나라의 이론가를 통해 알려졌다. 진보한 나라에서는 실제가 이론에 영감을 불어넣지만, 덜 진보한 나라에서는 이론이 실제에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차이가 바로 이식된 사상이 본토에서 거둔 만큼 성공을 거두기 어려운 이유들 가운데 하나이다.

 

780 (로크는) 전통을 단지 반복하기만 하지 않고 새로운 사상을 표현할 때는 언제나 대략적이고 추상적인 언어가 아닌 구체적이고 상세한 언어로 표현했다. 그의 철학은 과학의 연구처럼 하나씩 쌓아가는 단편적인 작업으로서, 17세기 유럽대륙의 철학체계와 달리 거대한 통일성을 추구하지 않는다.

 

781 지식이 지각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선언은 새롭고 혁명적인 학설이었다. 플라톤은 『테아이테토스』에서 지식과 지각의 동일성 논제를 논박하는 일에 착수했는데, 플라톤 이후 데카르트와 라이프니츠를 포함한 거의 모든 철학자들은 가장 가치 있는 지식은 대부분 경험에서 유래하지 않는다고 가르쳤다. 그러므로 로크의 철두철미한 경험론은 대담하고 혁신적인 견해였다.

 

819 로크와 흄의 철학에서는 여러 사실들을 광범위하게 조사하고 살펴본 다음에 비교적 온건한 결론이 도출된다. 반면에 라이프니츠의 철학에서는 정확한 논리적 원리를 거점으로 거꾸로 선 피라미드형의 거대 건축물을 쌓아 올리듯 연역체계를 세운다.

 

868 낭만주의는 한편으로 귀족주의를 옹호하고 또 한편으로 이해타산보다 정열을 선호했기때문에, 상업주의와 재정 문제를 몹시 경멸하고 멸시했다. 따라서 낭만주의는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을 선언했으나 프롤레타리아의 이익을 대변한 사회주의자들이 자본주의에 반대한 입장과는 매우 달랐다. 왜냐하면 자본주의에 대한 낭만주의적 반대는 경제적 선점과 열중에 대한 혐오에 근거하며, 자본가의 세계를 유대인들이 지배하고 있다는 암시로 인해 더욱 격화되었기 때문이다.

 

869 낭만주의 운동은 무법적인 새로운 자아를 자극하고 고무함으로써 사회적 협조를 불가능하게 만들었으며, 그 후예들은 무정부주의나 전제정치 가운데 하나를 대안으로 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 본위 의식은 우선 사람들로 하여금 타인들에게 부모의 부드러운 애정을 기대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타인들 역시 자신의 자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자 분개했으며, 부드러운 애정에 대한 좌절된 욕망은 증오와 폭력으로 변해버렸다. 인간은 고립된 고독한 동물이 아니며, 사회생활을 통해 살아가는 한에서 자아실현이 윤리학의 최고 원리일 수는 없다.

 

885 루소의 지대한 영향을 받은 헤겔은 루소가 오용한 자유란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자유를 경찰에 복종할 권리, 또는 이와 별반 다르지 않게 정의 내렸다.

 

895 칸트의 가장 중요한 저작은 『순수이성비판』이다. 이 책의 목적은 우리의 지식이 경험을 초월할 수 없지만 일부는 선험적이어서 경험에서 도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909 ‘사물 자체는 칸트 철학에 포함된 어색하고 다루기 어려운 요소였는데, 그의 사상을 바로 이어받은 계승자들은 이를 포기함에 따라 유아론과 흡사한 체계로 빠져들었다. 칸트의 비일관성은 불가피하게 그의 영향을 받은 철학자들로 하여금 경험주의 방향이나 절대주의 방향으로 급속한 철학적 발전을 이룩하도록 만들었다. 사실상 독일 철학은 헤겔의 죽음 이후까지 후자의 방향으로 움직였다.

 

921~922 한편에는 기업가들이 있고 다른 편에는 노동자 계급이 있다. 민주 국가의 일반 시민들은 민주주의의 체제 내부에서 생겨난 이러한 분열을 미쳐 깨닫지 못한 상태이다. 그러나 민주사회의 분열은 헤겔 이후 철학자들이 대부분 열중할 수 밖에 없는 문제였으며, 다수의 이익과 소수의 이익 사이에 나타난 첨예한 대립은 실제로 파시즘으로 표출되었다. 철학자들 가운데 니체는 서슴지 않고 소수의 편에 섰고, 마르크스는 전심전력을 다해 다수의 편을 들었다. 아마 벤담은 상반된 이익 관계에서 비롯된 갈등을 조정하려 한, 유일하게 중요한 인물이었으리라. 그래서 그는 양측의 반감을 샀다.

 

942 헤겔은 만약 어떤 사물에 대해 다른 모든 사물과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지식을 갖게 되면, 그 사물의 모든 속성을 논리에 의해 추론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명백한 오류인데, 이러한 오류에서 헤겔의 당당해 보이는 전체 구조가 형성된다.  이것은 중요한 의미를 함축한 진실, 즉 논리가 형편없을수록 거기서 생겨난 귀결은 더욱 흥미롭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951 루소는 연미의 정을 불러일으키는 감상적인 인물인 반면, 바이런은 격렬한 감정의 소유자였다. 루소의 비겁한 성격은 명백하게 드러나지만, 바이런의 비겁한 성격은 숨어 있다. 루소는 단순한 덕을 찬양한 반면, 바이런은 삶을 이루는 요소라면 죄도 찬양한다.

 

960 염세주의 사상은 모든 악이 설명되어 사라질 수 있다고 자신을 설득하지 않고도 인간이 철학에 몰두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이것은 염세주의가 해독제로서 유용하다는 뜻이다. 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낙관주의와 염세주의는 들 다 반론의 여지가 충분한 입장이다. 낙관주의는 우주란 우리를 기쁘고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고 가정하고 입증하려고 하지만, 염세주의 관점에서 보면 우주는 우리를 불쾌하고 불행하게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 과학에 관점에서 보면 낙관주의든 염세주의든 우리와 관련된다는 증거는 아무 데도 없다. 염세주의자가 되느냐, 낙관주의자가 되느냐는 기질의 문제이지 이성의 문제가 아니다.

 

960 의지가 우월하다는 학설은 염세주의보다 더욱 중요하다. 의지의 규모가 커지는 정도에 비례하여 지식의 지위는 낮아졌다. 나는 이것이 우리 시대의 철학적 기질에 나타난 가장 특출한 변화라고 생각한다.

 

967 그리스도교든 다른 어떤 종교든 형이상학적 진리에는 관심이 없으므로 사실상 종교는 모두 거짓이라 확신한 니체는 모든 종교를 전적으로 사회에 미치는 효과에 의해 판단한다.

 

979 벤담에게 심리학 분야의 결정론이 중요한 까닭은, 그가 민법을 제정하고 더 일반적인 차원에서 사회제도를 구축함으로써 사람들이 저절로 덕을 갖추게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서 이 무엇인지 정의하기 위해 벤담의 둘째 원리인 최대 행복의 원리가 필요하다.

 

989 인간이 사고를 통해 객관적 진리를 파악하느냐 파악하지 못하느냐는 이론의 문제가 아닌 실천의 문제이다 라고 그는 말한다. 사유의 진리, 다시 말하면 사유의 현실성과 힘은 실천을 통해서 증명되어야 한다. 사유의 현실성과 비현실성을 둘러싼, 실천과 유리된 논쟁은 단순히 현학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철학자들은 단지 여러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해왔을 뿐이다. 그러나 진정한 과제는 세계를 변혁하는 일이다.

 

989 마르크스는 실천의 관점에서 진리 개념을 비판한 첫 철학자이다.

 

990 마르크스의 역사철학은 헤겔과 영국 고전경제학이 뒤섞여 형성된다.

 

1016 우리는 삶에 유용하나 결과가 흘러나오는 가설이라면 무엇이든 거부해서는 안 된다. 신이 존재한다는 가설은 신이라는 말이 가장 넓은 의미에서 만족스러운 효과를 낸다면, 참된 가설이다.

 

1020 듀이의 연구가 지닌 주된 가치는 전통적인 진리 라는 개념을 비판한 데 있으며, 자신이 도구주의라 부른 이론 속에서 구체적으로 표현했다.

 

1027 듀이와 나의 주된 차이는, 듀이가 믿음을 결과에 의해 판단하는 반면 나는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 관련된 원인에 의해 믿음을 판단한다는 점이다.

 

1033 기술이론에 따르면 존재는 기술 어구를 통해서만 주장될 수 있다. 우리는 『웨이벌리』의 그 저자는 존재한다고 말해도 좋지만, “스콧이 존재한다는 진술은 틀린 어법, 아니 틀린 구문이다. 이로써 플라톤의 『테아이테토스』에서 시작된, ‘실존(existence)’을 둘러싸고 2000년 동안 지속된 지리멸렬한 수수께끼가 풀린다.

 

1038 광신행위들이 뒤죽박죽 뒤엉켜 갈등을 빚는 혼란한 상태에서 통일을 이루어내는 소수의 힘들 가운데 하나가 과학적 진실성으로서, 이는 우리의 믿음을 가능한 한 지역적 편견이나 기질적 편견에서 벗어난 객관적인 관찰과 추론에 바탕을 두게 하는 습관을 의미한다.

 

1038 객관적인 방법을 적용하는 어느 곳에서나 광신 행위는 감소하고 공감능력과 서로 이해하는 능력은 증가하게 될 것이다. 철학이 독단적인 일부 주장을 포기한다고 해서, 삶의 방식을 제안하고 삶에 영감을 불어넣는 일까지 멈추지는 않는다.

 

 

v       내가 저자라면

 

가.   전체적인 뼈대

   이 책은 러셀이 본인의 모교인 케임브리지대학 강사시절 반전운동으로 해임된 후, 미국에 건너가 여러 대학에서 강의하던 중, 한 대학에 교수로 초빙되려다 본인의 성향에 대한  여러 비판으로 성사되지 못한 후에 쓴 것으로 1945년 출간되었다. 상대적인 시간적 여유와 일종의 반발심에서 나오는 에너지 그리고, 2차 대전이 한창이었던 시대환경이 함께 어우러진 결과물이라 하겠다. 그의 말대로 이 책은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는데, 기존의 철학사와는 두 가지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첫째는, 그냥 철학사가 아니고 서양이라는 수식어를 명시했다는 점이고, 둘째는 이 점이 더욱 중요한데 철학의 흐름을 소개하는 철학사 치고는 처음부터 끝까지 러셀 본인의 주관적 의견이나 비평이 매우 강하게 언급되어 있다는 점이다. 재미있는 것은, 러셀 자신도 언급했듯이, 이러한 저자의 과도한 의견 제시가 뉴스 인물에 대한 비판적 독자들의 호기심과 불편함을 함께 자극한 결과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도 타 철학사와 마찬가지로 연대순으로 기술되어,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을 시작으로 고대, 중세, 근대 그리고 현대철학에서는 러셀 자신이 속한 논리분석철학에 대한 언급으로 끝마치고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2500년 이상 이어온 다양한 서양의 철학사상을 명확한 관점 수학과 과학적 이성을 중시하는 논리분석철학을 추구하는 러셀의 관점 에서 비평했다는 점이다. 이토록 명료하고 일관된 관점에서 철학사를 서술한 책은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것 같다. 여기에서 오는 미덕은 과거의 어떤 철학사상이 이전과 이후의 철학사상과 어떤 관계가 있으며, 그 관계 중에서도 현재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앞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제시한다는 점이다. 특히, 현재의 세계와 별 관계도 없을 것 같은 과거의 철학이 현재 어떤 해악을 주고 있는지를 다루고 있는 많은 부분들은 다른 철학사에서는 얻기 힘든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줌과 동시에 기존 철학사가 제공하지 않는 흥미까지 주고 있다. 예를 들어, 피타고라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연유한 고질적인 해약이나 루소, 바이런, 니체 등에서 보이는 낭만주의와 비합리주의의 부작용 등에 대한 언급이 그것이다.

   또 한가지 좀 더 부분적인 특색은, 일반적인 철학사에서는 다루지 않거나 미미하게 다루어지는 사상가들에 대해서도 비중 있게 다룬 점인데, 마키아벨리나 루소 그리고 바이런 등이 그 예이다. 이러한 특색은 러셀이 철학과 사회환경(또는, 정치환경)을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관계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들로, 러셀은 자신의 관점 경험주의와 합리주의로 편향되긴 하였으나, 결과적으로는 큰 해악을 끼치지 않는 관점 에서 서양의 거대한 철학의 흐름을 나름대로 비평하여 모든 독자는 아니더라도 적지 않은 독자를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나.   감동적인 부분

   나는 철학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보다는 차라리 철학자들 가운데 나를 가장 호되게 비판하는 철학자가 내 사상을 전달해주기를 바란다. (p.139)

   러셀의 정확성과 엄격한 진리의 추구라는 불굴의 정신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정말 그의 얼굴처럼 (좋은 의미에서) 찔러서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강단 있는 자유인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는 것 같다.

 

   우리 시대에 수학의 원리들에서 피타고라스주의를 제거하고, 인간 지식의 연역적인 부분에 대한 관심과 경험주의를 결합시키는 일에 착수한 철학 학파가 등장했다. 이 학파가 설정한 목표들은 과거 철학자들이 대부분 추구한 목표들보다 거창하지는 않았지만, 성취한 몇몇 목표는 과학자들이 이룩한 업적만큼 확실하고 믿을 만하다. (p.1030)

   길고 긴 철학의 역사를 수학파와 경험주의파로 크게 분류하고, 이 양자의 발전적 통합을 목표로 하는, 러셀이 선구 역할을 하는, 논리분석철학을 명쾌하게 소개하는 데서 철학의 전체흐름을 관통하는 그만의 혜안을 느낄 수 있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칸트에 대한 논평에 따르면, ‘그는 결혼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젊은 시절의 학문적인 연구 습관을 노년기까지 유지하며 살았다.’ 이 글의 저자가 총각이었는지 기혼자였는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이다.” (p.895)

   금욕과 체념의 덕을 깊이 확신했던 사람(쇼펜하우어)이 스스로 확신한 덕을 실천에 옮기려고 전혀 애쓰지 않았다는 사실이 정말 믿기지 않는다.” (p.959)

   이 외에도 러셀의 전매특허라고 할 재치 있는 위트들이 곳곳에 숨어 있어 생기를 더해준다.

 

다.   보완했으면 하는 것

   장점에 대해 역발상으로 접근해본다면, 거기에서 단점도 또한 발견될 수 있는 법.

   비판적 관점에서 이 책을 본다면, 철학사의 기본 형식이 각각의 철학자에 대해서 그 철학에 대한 소개와 해당 철학에 대한 비평으로 구성된다고 볼 때, 후자가 너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 본말이 전도된 면이 없지 않아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독자 입장을 생각해본다면, 다양한 철학의 개요를 개관했다기 보다는 러셀이 본 철학사를 읽었다고 생각할듯하다. 몰론, 독자가 개론적인 선지식이 있다고 할 때는 오히려 신선한 면이 있다고 할 수 있겠으나, 철학이나 철학사에 대해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는 그리 적절한 책은 아닐 것 같다. 그래서 러셀의 서양철학사가 생애 첫 번째 철학책으로서는 그리 적절한 선택은 아니지 않겠는가 생각해본다. Ω

IP *.152.228.116

프로필 이미지
깨어있는마음
2010.02.22 12:00:45 *.53.82.120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칸트에 대한 논평에 따르면, ‘그는 결혼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젊은 시절의 학문적인 연구 습관을 노년기까지 유지하며 살았다.’ 이 글의 저자가 총각이었는지 기혼자였는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이다.” (p.895)

저도 이부분 읽음서 큭큭거렸답니다.
러셀이 하고 싶은 말은 뭐였을까 함서 말이죠..

2주차를 마치자 함께 달리는 분들에 대한 동지애가
밀물처럼 밀려옵니다.
우리 모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emoticon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북리뷰 안보이시는 분들 일단 파일첨부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4] 관리자 2009.03.09 84985
518 2. 서양 철학사(노미선) 별빛 2010.02.20 4380
517 외식업에 대한 단상. [1] 맑은 김인건 2010.02.20 4382
516 서양철학사(저자에 대하여,저자라면) 박미옥 file [2] 깨어있는마음 2010.02.20 4541
515 리뷰2주차 -서양철학사 [3] 이은주 2010.02.21 4270
514 북리뷰 2. <서양철학사> - 저자에 대하여 & 내가 저자라... [2] 이선형 2010.02.21 4285
513 북리뷰 2. <서양철학사> - 내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1] 이선형 2010.02.21 4323
512 2주. 서양 철학사 [2] 미나 2010.02.21 4380
511 서양철학사 야콘 2010.02.21 4315
510 북리뷰 2. [러셀의 서양철학사] [1] [1] 박상현 2010.02.22 4543
509 2. 서양 철학사_저자와 구성 [5] 맑은 김인건 2010.02.22 4379
508 두번째 북리뷰_서양철학사 [1] 김혜영 2010.02.22 4475
507 <서양철학사>를 읽고 - 김영숙 [1] [1] 김영숙 2010.02.22 4623
506 [6기후보리뷰2] 수리논리로 일이관지하다.러셀의 서양철학사 [1] 심장호 2010.02.22 4730
505 책을 잘못 읽었나봐요... 램프레히트'서양철학사' [3] 야콘 2010.02.22 6898
504 <서양철학사> [1] narara 2010.02.22 4295
503 러셀의 서양철학사 Review [1] 최우성 2010.02.22 4360
502 서양철학사 러셀 [1] 윤인희 2010.02.22 4529
501 서양철학사 Review [3] 박현주 2010.02.22 4330
» 서양철학사 (버트런드 러셀) [1] 김용빈 2010.02.22 4345
499 2 러셀의 서양철학사 [3] [1] 신진철 2010.02.22 42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