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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22일 11시 46분 등록

러셀 서양철학사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

 

1. 저자에 대하여

 

“단순하지만 누를 길 없이 강렬한 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해왔으니,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열정들이 나를 이리저리 제멋대로 몰고 다니며 깊은 고뇌의 대양 위로, 절망의 벼랑 끝으로 떠돌게 했다.” - 버틀런드 러셀 자서전 중에서

 

서양철학사를 통해 만난 버틀런드 러셀(1872-1970)에 대한 느낌은 철학의 영역을 스스로 신학과 과학 사이의 무인지대에서 적절한 자리를 벗어나지 않으려고 애쓴 모습이었다. 수 천년의 시간을 거슬러 내려가면서 시종일관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서 그의 호흡이 얼마나 깊은 지를 짐작케 한다. 하지만 선대의 철학자들을 평가할 때 그가 선택하는 단어들은 거침이 없다. 인간으로서 소크라테스에 대한 연민과는 별개로 철학자로서 그를 연옥행이 마땅하다는 판결이나 선민의식과 민족주의적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유대교에 대한 비판 등은 윤리 책에서는 접해볼 수 없는 통쾌함이 묻어났고 어려운 철학사이면서도 끝까지 책을 놓지 않게 해주었다.

 

그는 영국 수상을 두 차례나 역임한 할아버지를 둔 영국의 보수적인 귀족 출신이다. 어느 시대를 살던 주류의 흐름을 택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과 의지를 따르는 사람들의 현실에서의 삶이 어떠했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종교가 이성과 더불어 발전해간다고 믿었던 매우 보수적인 시절에 스스로 기독교인이 아님을 선언하고, 버젓이 강의를 하고 다녔다. 여성의 성해방운동과 평화주의자로 전쟁에 반대하다가 감옥에 가기도 했다.

 

진실과 자유를 선택한 사람들의 운명은 닮은 데가 있나 보다. 부인과 함께 찍은 표지사진이 실린 ‘행복의 정복’에서 그의 모습은 주변의 탄압과 시련마저도 껴안고 춤출 수 있을 것 같은 내공 깊은 영유와 웃음이 엿보인다.

철학, 과학, 사회학, 교육, 정치, 예술과 종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 구애 없이 평생 40여권의 저작을 남긴 그의 왕성한 열정도 빠뜨릴 수 없는 대목이다. 멋지다. 닮고 싶다.

 

그의 자서전 맨 앞장에 묘비명처럼 새겨진 글귀가 있다.

 

이제 늙어 종말에 가까워서야

비로소 그대를 알게 되었노라

그대를 알게 되면서

나는 희열과 평온을 모두 찾았고

안식도 알게 되었노라

그토록 오랜 외로움의 세월 끝에

나는 인생과 사랑이 어떤 것인지 아노라

이제, 잠들게 된다면

아무 미련 없이 편히 자련다.

 

2. 가슴에 무찔러 드는 글귀

 

철학적인 사상 체계는 두 가지 요소

하나는 조상에게서 받은 종교 체계와 윤리사상이고, 다른 하나는 가장 넓은 의미에서 과학적 탐구이다. ... 내가 말하려는 철학은 신학과 과학의 중간에 위치한다. 철학은 신학과 마찬가지로 명확한 지식으로 규정하거나 확정하기 힘든 문제와 씨름하는 사변적인 측면을 포함한다. 그러나 철학은 과학과 마찬가지로 전통을 따르든 계시를 따르든 권위보다는 인간의 이성에 호소한다. 명확한 지식은 무엇이든 과학에 속하는 반면, 명확한 지식을 초월한 교리른 모두 신학에 속한다. 신학과 과학 사이에 자리잡고 양측의 공격에 노출된 채,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는 영역이 존재한다. 이 무인지대 No Man's Land가 바로 철학의 세계이다. p17

 

기원전 600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기나긴 발전을 거듭하면서, 철학자들은 사회 결속을 강화하려는 자와 풀려는 자로 나뉘었다. ... 규율주의와 자유주의의 갈등은 모습을 달리하며 오늘날까지 이어졌고, 수세대에 걸쳐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p28

 

사회 결속은 분명히 필요하지만, 인류는 합리적 논증만으로는 결코 결속을 강화하지 못했다. 공동체를 이룬 사회라면 대립하는 두 가지 위험요소에 노출되기 마련이다. 한쪽에는 너무 강력한 규율과 전통에 대한 지나친 존경 때문에 경직될 우려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개인주의 성향과 개인의 독립심 때문에 협동과 협력의 토대를 상실하고 결국 분열되거나 외부 세력에게 정복당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대체로 문명은 고정된 엄격한 미신 체계와 더불어 시작되어 그 체계를 점차 완화해가다가, 어느 단계에 이르면 뛰어난 천재들의 시기를 맞이한다. 이 시기에는 과거 전통의 선한 면은 남아서, 전통 해체에 내재한 악한 면이 아직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악한 면이 수면 위로 떠올라서 무정부 상태에 이르고, 곧이어 새로운 전제 정권이 나타나 새로운 이론 체계에 의해 보장된 새로운 종합을 이루어낸다. 자유주의의 학설은 지금까지 말한 끝없이 반복되어온 동요 상태에서 탈출하려는 시도로서 등장한다. 자유주의의 핵심은 비합리적인 교의에 기반을 두지 않으면서 사회 질서를 보장하는 동시에 사회 보존에 필요한 이상으로 개인을 구속하지 않고서 사회 안정을 확보하려는 시도이다. 이런 시도가 성공할지는 오직 장래에 일어날 일이 결정할 터이다. p28-29

 

그리스의 정치 체제는 ... ‘참주정치’는 반드시 나쁜 정치를 의미하지 않고, 다만 권력의 세습이 허용되지 않는 지도자 한 사람의 지배를 의미했을 따름이다. ‘민주정치’는 모든 시민에 의한 정치를 의미했지만 노예와 여성은 시민에서 제외되었다. p41

 

호메로스의 작품에서 찾아야 할 진정한 종교심은 올림포스의 신들보다 오히려 숙명이나 필연, 혹은 운명과 같은 더욱 어둡고 실체가 없는 존재와 관련이 깊은데, 제우스조차 이에 복종해야 한다. 숙명은 그리스 사상 전반에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했을 뿐만 아니라 과학이 자연법칙에 대한 믿음을 도출하게 된 원천 가운데 하나였다. p44

 

우리는 대부분 디오니소스를 다소 불명예스러운 주신이자 만취의 신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주신 숭배로부터 후대여러 철학자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심오한 신비주의神秘主義, mysticism가 발생하고, 그리스도교 신학의 형성에도 한몫을 하게 되는 도정은 충분히 주목할 만하다. p47

 

문명인과 야만인을 구분하는 기준은 주로 사려prudence, 좀 더 의미가 넓은 용어를 쓰자면 예상forethought이다. 문명인은 장래의 쾌락을 위해, 설령 장래의 쾌락이 꽤 먼 미래에 주어질지라도 현재의 고통을 기꺼이 참아낸다. 이러한 인내습관은 농업의 발생과 더불어 중요한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p48

 

문명사회는 자기 간리에 의한 견제 수단인 사려나 예상뿐만 아니라 법, 관습, 종교를 통해 충동을 억제한다. 이로써 문명사회는 야만 상태에서 물려받은 충동을 억제하고 본능이 점점 덜 드러나게 하면서 더욱 체계적으로 관리한다. ... 사유재산 제도는 여성을 예속시키며, 노예 계급을 만들어 낸다. 한편으로 사회의 공동 목적이 개인에게 강요되고, 다른 한편으로 자신의 인생을 전체 사회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습관을 몸에 익힌 개인이 점점 자신의 미래를 위해 자기 현재를 희생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p49

 

디오시소스 숭배자는 사려에 맞선 반동 세력으로 등장한다. 그는 육체적, 정신적 도취 상태에 들어가 사려 탓으로 훼손된 강렬한 감정을 회복한다. 그가 기쁨과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세계를 알아보자마자, 상상력은 일상적인 걱정이나 근심이라는 감옥에서 갑자기 해방되면서 자유로워진다. 바쿠스 종교의식은 ‘종교적 열정enthusiasm'을 불러일으키는데, 어원을 따져보면 신이 그를 숭배하는 사람 속으로 들어온다는 의미이다. 이를 통해서 신의 숭배자는 자신이 신과 하나가 되었다고 믿게 된다. p49

 

이러한 종교적 성향은 특히 플라톤에게도 적용되는데, 플라톤을 거치면서 이후 바쿠스를 숭배하는 종교 발전할 뿐만 아니라 최종적으로 그리스도교 신학 속에서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p50

 

티탄들은 땅에서 태어났으나, 신의 육신을 먹고 나서 신성의 기미를 갖게 되었다. 그래서 인간은 땅에 속하기도 하고 신에 속하기도 한 존재이다. 바쿠스 전례는 인간을 더욱 완벽하게 만들어 신성에 가까워지게 했다. p51

 

오르페우스교의 특징은 피타고라스를 거쳐 플라톤의 철학에 유입되었고, 플라톤을 통해 어느 정도 종교적 색채를 띤 이후 대부분의 철학 속으로 스며들었다.

바쿠스를 숭배하는 종교 의식의 특징적인 몇 가지 요소는... 그중 하나가 여정주의 색채인데, 여성주의는 피타고라스의 사상 속에 더욱 짙게 나타나며, 플라톤의 철학 속에서는 여성들이 정치적 측면에서 남성과 완벽하게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는 수준까지 나아간다. 피타고라스는 “성sex의 측면에서 여자들은 본래 경건함과 더욱 가깝게 타고 났다.”고 말한다. 바쿠스교의 특징에 해당하는 다른 요소는 격정을 존중하는 태도이며, 그리스 비극은 디오니소스교의 의식에서 생겨났다. 에우리피데스는 특별히 오르페우스교의 중요한 두 신, 즉 디오니소스와 에로스를 공경하며 두 신에게 모든 영광을 돌렸다. p54

 

바쿠스 무녀들이 추는 춤은 격렬한 감정을 발산하기 위한 몸짓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문명 생활의 부담과 보호에서 벗어나 인간 이외의 아름다운 것들이 넘실대는 세계로, 바람과 별의 자유로움 속으로 탈출하려는 춤이었다. p56

 

그리스 문화를 지배한 두 가지 경향이 있었다. 하나는 열정을 중시하고 종교에 몰입하며 신비를 표방하고 내세를 믿는 경향이다. 다른 하나는 명랑하고 경험을 중시하며 합리주의를 내세우고 다양한 사실에 대해 지식을 획득하려는 경향이다. p57

 

오르페우스 교도들은 올림포스 전례를 거행하는 사제들과 달리 우리가 ‘교회’라 불러도 좋은, 즉 누구든 인종과 성의 차별 없이 입회할 수 있는 종교 공동체를 설립했고, 그들의 영향을 받아 철학 사상 체계가 생활방식으로 떠올랐다. p60

 

밀레토스 학파의 아낙시만드로스는 탈레스보다 훨씬 더 흥미로운 인물로 ... 만물이 제일 실체에서 비롯되지만, 그것은 탈레스가 주장한 물이 아니며 우리가 아는 다른 어떤 실체로서 “여러 세계를 에워싸고 있다”고 말한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란 여러 세계 가운데 한 세계일 뿐이라 생각했다. p64

 

피타고라스는 크로톤에서 제자들과 공동체를 설립해서, 한동안 도시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 그가 창시한 종교의 주요 교리는 영혼이 윤회한다는 가르침과 콩을 먹는 것은 죄라는 가르침이었다. 그의 종교는 교단으로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며, 곳곳에서 국가를 통제할 정도의 세력을 획득하고 성인이 되는 데 필요한 규칙을 만들어 지켰다. p71

 

우선 영혼은 불멸하며 다른 생물로 탈바꿈한다. 더 나아가 존재하는 무엇이든 일정 주기로 순환하는 변화 속에서 다시 태어나므로 새로운 것은 있을 수 없는 법이다. 순환 주기의 변화 속에서 생명을 타고난 존재들은 모두 혈연관계로 맺어진다. 피타고라스도 프란체스코 성인처럼 동물과 교감하며 대화를 나누었다고 전해진다. p72

 

그러므로 모든 정화 활동 가운데 최고 단계는 세속에 물들지 않은 공평한 학문이 제공하며, 그런 학문에 헌신하는 자는 가장 효율적으로 자기 자신을 ‘탄생의 수레바퀴’에서 해방시키는 철학자이다. p73

 

지성에는 드러나지만 감각에 드러나지 않는, 순수하고 영원한 세계의 착상은 피타고라스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피타고라스가 없었다면 그리스도교가 그리스도를 말씀으로 여기지는 못했을 것이며, 신학자들 역시 신과 영혼의 불멸을 논리적으로 증명하려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요소들은 피타고라스 사상 속에 암시되어 있다. 영원한 세계가 어떻게 분명한 자리를 차지하는지는 앞으로 이어질 장에서 드러날 터이다. p78

 

고대 그리스인에게 접근하는 두 가지 상반된 태도가 일반화되었다. 하나는 르네상스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실제로 취하던 보편적인 태도로서, 그리스인들이 최초로 가장 우수한 사상과 예술을 전부 창조했고, 현대인은 감히 꿈조차 꾸지 못할 초인적인 천재성을 지녔다면서 그들을 미신숭배에 가까울 정도로 추앙한다. 다른 하나는 과학의 승리와 낙관적인 진보 사상에서 영감을 받은 태도로서, 고대인의 권위를 악몽으로 여기면서 이제 고대인이 이룬 공적들을 대부분 잊는 것이 최선이라 주장한다. p79

 

헤라클레이토스는 아주 독특한 신비주의자였다. 그는 불을 근본 실체로 생각했다. 만물은 불 속의 불꽃처럼 다른 존재가 죽음으로써 탄생한다고 한다. “죽어야 할 자는 불멸자이고, 불멸자는 죽어야 할 자이다. 한 존재는 다른 존재가 죽음으로써 살고 다른 존재를 살림으로써 죽으리라.” 세계에는 통일성이 있으나, 대립물의 결합으로 형성되는 통일이다. p82

 

만물이 끊임없는 흐름 속에 있다는 학설보다 훨씬 더 중시한 학설이 하나 더 있었는데, 대립물의 혼합 학설이다. “사람들은 다양하게 변하는 존재가 어떻게 자신과 일치하여 조화를 이루는지 알지 못한다. ... 대립물이 투쟁 속에서 조화를 이루기 위해 운동하는 가운데 결합하기 때문이다. 세계는 통일되지만, 통일은 바로 이질성에서 비롯된다. p86

 

인간을 철학으로 이끄는 깊은 본능 가운데 하나가 영원한 존재를 추구하는 본능이다. 이러한 본능은 당연히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나 위험을 피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우리는 불운이 겹치는 격변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서 영원한 존재를 추구하는 본능이 더욱 열정적을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p88

 

파르메니데스의 학설은 「자연론」이라는 시에서 설명되었다. 그는 감각이란 우리를 속이고, 많은 감각 가능한 존재는 단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유일하게 참된 존재는 ‘일자 the One'로서 무한하며 분할할 수 없다. 일자가 헤라클레이토스에서처럼 대립물의 통일로 이루어지지 않는 까닭은 일자 안에는 어떤 대립물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p93

 

파르메니데스는 말이란 불변하는 일정한 의미를 가진다고 가정하는데, 이것이 실제로 파르메니데스가 펼치는 논증의 기반이며 이에 대해 어떤 이의도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전이나 백과사전에 어떤 말에 대해 공식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승인된 의미가 실려 있기는 해도, 같은 말을 쓰는 두 사람이 마음 속에 똑같은 생각을 품고 있지는 않다. p95

 

아낙사고라스는 만물은 무한히 나뉠 수 있으며, 물질의 가장 작은 부분이라도 네 원소의 일부를 포함한다고 주장한다. ... 그는 선대 철학자들과 달리 정신이 생물의 일부로 들어가 죽은 물질과 구별시켜주는 실체라 생각했다. 모든 것에는 정신을 제외한 모든 원소의 일부가 들어 있으며 어떤 것에는 정신도 들어 있다고 말한다. 정신은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지배하는 힘으로서 무한하고 자기조절 능력이 있으며, 어떤 것과도 혼합되지 않는다. 정신에 대해서는 예외지만, 만물은 아무리 작더라도 뜨거우면서 차가운 것, 하야면서 검은 것처럼 대립하는 모든 것의 일부를 포함한다. 그는 눈은 하얗지만 눈의 일부는 검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p112

 

데모크리토스는 적어도 내 생각으로는 그리스 철학자들 가운데 고대 후기와 중세 사상을 타락시킨 특이한 결점을 보이지 않은 마지막 철학자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다룬 철학자들은 모두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사심없이 노력했다. 그들은 세계를 이해하는 일을 실제보다 더 쉽게 생각했지만, 이러한 낙관주의가 없었던들 그들은 감히 시작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주로 당대의 편견을 그저 답습하지 않았을 때는 언제나 진정으로 과학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런데 그들은 단지 과학적인 태도만을 지닌 것이 아니라, 상상력이 넘치고 원기왕성했으며 지적 모험에서 얻음 기쁨으로 충만했다. 그들은 일식과 월식, 물고기, 회오리바람, 종교, 도덕 등 모든 것에 흥미를 느꼈으며, 날카로운 지성과 아울러 아이들 같은 호기심도 지녔다. p125

 

소크라테스가 나타나 윤리를 강조하고, 플라톤은 스스로 창조된 순수한 사유의 세계를 지지하기 위해 감각 세계를 거부한다. 또 아리스토텔레스는 목적이 과학에 필요한 기본 개념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천재성을 갖추고 있었지만, 그들의 사상 체계는 후대에 큰 해악을 끼친 결점을 드러냈다. 그들의 시대 이후 철학의 활력은 사라지고, 점차 미신이 대중의 인기를 얻는 상황이 재연되었다. 가톨릭 정통신앙이 승리를 거두면서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새로운 사고방식이 출현했으나, 철학은 르네상스에 이를 때까지는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특징이던 활력과 독립성을 회복하지 못했다. p125

 

프로타고라스 ... 주로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 즉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존재한다는 척도이고 존재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척도이다”라는 학설로 주목받는다. 이것은 사람이 제각기 만물의 척도이며, 사람들의 의견이 다를 때 한 사람이 옳고 다른 사람은 그르게 되는 객관적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프로타고라스의 학설은 본질상 회의적이고, 감각의 ‘속기 쉬운 성질’에 근거한다. p130

 

소피스트들들 가운데서는... 그들이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 지식은 종교나 덕과는 관련이 없었다. 그들은 논쟁술이나 논쟁술에 도움이 되는 지식을 가르쳤다. ... 그들은 오늘날의 변호사처럼 어떤 의견에 대해서든 찬성하거나 반대하며 논증하는 방법을 보여줄 채비는 갖추었으나, 자신들이 이끌어낸 결론을 실제로 지지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았다. 철학을 삶의 방식으로서 종교와 밀접하게 연관시킨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충격을 안겨주었을 터이다. 그들에게 소피스트들은 경박하고 부도덕한 자들로 보였다. p131

 

오로지 신만이 지혜롭지요. 신은 신탁을 통해 인간의 지혜란 가치 없다는 점을 보여주려 합니다. 소크라테스에 대해 말한 것이 아니라 단지 나의 이름을 사례로 써서 이렇게 말하려 했던 것 뿐입니다. 오, 인간들이여, 소크라테스처럼 자신의 지혜가 사실은 가치 없다는 것을 아는 자가 바로 가장 현명한 자라고 말이지요. p143

 

플라톤은 ... 자신의 철학에 스며든 오르페우스교의 요소를 피타고라스에게서 이끌어냈는데, 종교적 경향, 영혼 불멸에 대한 믿음, 내세관, 사제와 같은 어조, 동굴의 비유에 포함된 모든 가르침뿐만 아니라 수학을 중시하는 성향이나 지성과 신비주의가 밀접하게 혼합된 특징이 피타고라스에게서 유래했다. 플라톤은 파르메니데스에게서 실재는 영원하고 시간을 초월하며, 논리적 근거에 입각해 모든 변화는 환상에 불과하다는 믿음을 이끌어냈다. 또 헤라클레이토스에게서는 감각적인 세계에 영원한 것이란 하나도 없다는 부정적인 학설을 이끌어냈다. p167

 

우리는 당연히 다양한 이해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정치가는 유효한 최선의 타협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한 계급에 속한 구성원이나 한 나라의 국민은 공통 이익을 추구할 수도 있지만, 흔히 다른 계급이나 다른 나라의 이익과 갈등을 빚기 마련이다. 인류 전체를 위한 몇 가지 이해관계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정치적 행동을 유발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아마 인류를 위한 이해관계의 조정은 미래 어느 날엔가 실현될 수도 있겠지만, 여러 주권국ㄱ가 존재하는 한 확실히 실현될 수 없다. 또 그날이 오더라도 일반 이익을 추구할 때 가장 어려운 문제는 상호 적대적인 특수한 이해관계들 간에 타협점을 찾는 일이다. p169

 

그 까닭은 남자와 여자의 본성이 같기 때문이다. ...

정기적인 연회에서 신부와 신랑은, 인구수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수만큼 추첨으로 맺어지며 그렇게 믿도록 가르친다. 그러나 사실은 국가의 통치자들이 우생학적 원리에 준하여 추첨을 조작하기 마련이다. 통치자들은 혈통이 가장 우수한 아비가 가장 많은 자식을 낳도록 조정할 수 있다. p174

 

공산주의가 추구하는 이점은 사적인 소유 감정이 아주 약해지게 함으로써, 사유 재산제 폐지의 묵인이나 공공 정신에 따른 지배에 방해가 되는 요소를 제거한다는 데 있다. 성직자 계급을 독신 생활로 이끈 동기도 대체로 이와 유사했다. p175

 

철학자가 왕이 되거나 현세의 왕이나 군주가 철학 정신과 능력을 갖추어 탁월한 정치력과 지혜가 하나가 될 때까지, 서로 배제하려는 세속적인 철학자나 왕들이 억지로라도 물러나지 않고서는, 도시국가들은 이런 악에 젖어 결코 편안해지지 않고 내 생각에는 인류도 편안치 않을 텐데, 철학자가 왕이 되거나 왕이 철학 정신을 갖출 때 비로소 우리 국가는 살아나 햇빛을 볼 수 있다네. p184

 

플라톤의 이상 이론을 요약한다. 우리의 문제는 이것이다. 철학자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철학자는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한다. 그런데 철학자는 탐구심이 강한 사람이 지식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지식을 사랑하는 사람은 아니다. 통속적인 호기심만으로 철학자가 되지 못하는 법이다. 그러므로 철학자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고친다. 철학자는 ‘진리를 통찰함’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진리 통찰이란 무엇인가? ...

철학자는 사실 아름다움 자체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저 아름다운 사물만 사랑하는 사람은 꿈에 빠져 있는 데 반하여 절대의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사람은 완전히 깨어 있다. 앞 사람은 의견opinion을 지닐 뿐이지만, 뒷사람은 지식knowledge을 얻는다. p185

 

지식과 의견은 어떻게 다른가? 지식을 얻는 사람은 무엇, 말하자면 존재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존재하는 무엇에 대해 지식을 얻게 마련이다. 지식이 틀릴 수 없는 까닭은 논리적으로 오류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견은 오류가 되기도 한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존재하지 않는 무엇에 대한 의견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생길 수 없다. 조내하는 무엇에 대한 의견은 지식이 될 테니까 더는 의견이 아니게 된다. 그러므로 의견은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는 무엇에 대한 것일 수밖에 없다. p186

 

그러나 절대, 영원, 불변의 존재를 보는 사람은 의견만 갖게 되지 않고 인식한다. ...

감각에 나타난 세계에 대해서는 의견을 갖게 될 뿐이지만, 초감각적인 영원한 세계에 대해서는 지식을 얻는다는 결론에 이른다. 예컨대 의견은 아름다운 개별 사물과 관계하지만, 지식은 아름다움 자체와 관계한다. p186

 

어떤 종류이든 창작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정도가 크든 작든 오래 애쓴 끝에 진리나 아름다운 형체가 한순간 눈부시게 훤히 나타나거나 나타나는 듯이 보이는 체험을 한다. 그저 사소한 일에서 시작해 체험하는 수도 있고, 우주를 바라보며 체험하기도 한다. 순간의 체험은 너무 확실해서 나중에 의혹이 생기더라도 그 순간의 확실한 느낌은 그대로 남는다. 나는 예술, 과학, 문학, 철학 분야에서 뛰어난 창작물들이 대부분 이런 순간의 체험이 빚어낸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p189

 

“석유 냄새가 사방에 가득하다” p189

 

여기서 차츰 유명한 동굴의 비유로 넘어가는데, 이에 따르면 철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앞만 보도록 사슬에 묶인 채, 뒤쪽에서 모닥불이 비쳐 앞에 가로놓인 벽에 그림자가 생기는 동굴 속에 갇힌 죄수들에 비유된다. 죄수들과 벽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들이 보는 사물은 전부 뒤에 놓인 물체들이 모닥불의 불빛을 받아 벽에 비친 그림자들이다. 죄수들은 어쩔 수 없이 그림자들을 실재인양 생각하기 때문에 그림자를 드리우게 만든 물체들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다. 마침내 몇 사람이 드디어 동굴에서 벗어나 햇빛 속으로 나가게 된다. 동굴에서 벗어난 사람은 난생 처음 실재하는 사물을 보고는 이제까지 그림자에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사람이 수호자에 적합한 부류의 철학자라면, 이전에 함께 지낸 동료 죄수들을 만나러 동굴로 되돌아가서 진실을 깨우치고 동굴 밖으로 나오도록 알려주어야 한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깨달은 사람이 죄수들을 설득할 때 어려운 상황에 놓이는데, 햇빛으로 나오면서 죄수들보다 그림자를 능숙하게 알아보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에 전보다 더욱 바보처럼 보이는 탓이다. p191

 

이러한 과학사는 다음과 같은 일반적인 행동 규칙에 따른 실례를 보여준다. 불합리한 점이 있기는 하지만, 어떤 가설이라도 사물을 새로운 방식으로 이해할 능력을 발견자에게 부여한다면 과학에서 사용해도 좋다. 그러나 운이 좋아 가설이 이러한 목적에 기여하는 경우에도 그 이상의 진보에는 오히려 장애가 될 가능성이 높다. 천문학이 발전해나가는 특정 단계에서는 선 자체를 믿는 태도가 세계를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열쇠로서 유용했지만, 이후에는 매 단계에서 해로운 영향을 주었을 따름이다. 윤리와 심미적인 측면에서 플라톤이 드러낸 편견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편견은 더욱더 그리스 과학의 기세를 꺾는 데 큰 몫을 했다. p199

 

소크라테스, 이제 그대를 키운 우리 아테네 법률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생명과 자식들을 먼저 생각한 다음에 정의를 생각하지 말고, 우선 정의를 생각해야 저승의 제왕 앞에서 떳떳할 수 있겠지. 만약 그대가 크라톤의 계획에 따른다면, 그대도, 그대에게 속한 어느 누구도 이승의 삶을 더 행복하게 더 성스럽게 더 정의롭게 살지 못할 것이고, 저승에서도 행복하지 못할 텐데. 죄를 짓지 말고 악행을 저지른 자가 아닌 순교자로서 떠나게나. 그러나 만약 그대가 악을 악으로 갚고 해를 해로 갚고 우리와 맺은 계약과 합의를 깨서, 무엇보다 그대가 잘못해서는 안되는 사람들, 곧 그대 자신, 그대의 벗들, 그대의 조국과 우리에게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면, 우리는 그대가 살아가는 동안 화를 낼 테고 우리 형제인 저승의 법률이 그대를 적으로 삼게 되겠지. 저승의 법률은 그대가 우리 아테네 법률을 기어코 어겼다는 사실을 알 테니까.

소크라테스는 이 목소리에 대해 “신비주의자의 귓전에 울리는 피리 소리처럼 내 귓전을 울리는 듯하네”라고 말한다. 그는 목소리의 충고에 따라 아테네에 남아 사형 선고를 받기로 결심한다. p201-202

 

소크라테스는 죽음이란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현상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플라톤의 이원론, 말하자면 실재와 현상, 이상과 감각 대상, 이성과 감각 지각, 영혼과 육체를 구분하는 철학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된다. 이렇게 쌍을 이루는 개념들은 제각기 먼저 놓인 개념이 다음 놓인 개념보다 실재하는 정도와 선한 정도에서 우월하다. 이러한 이원론에서 금욕주의 도덕이 자연스럽게 파생한다. 그리스도교는 금욕주이 도덕을 일부만 받아들이고 전체를 다 수용하지는 않았다. p202

 

철학자는 가능한 한 육체에서 멀어지고 영혼으로 돌아가고 싶어할 것이다. ...

이러한 학설이 대중에게 퍼지면서 금욕주의 경향이 나타나게 되었음이 분명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본래 의도는 금욕이 아니었다. 철학자는 감각에 따른 쾌락을 애써 피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다른 일에 관심을 기울이게 마련이다. 나는 끼니를 잊었다가 결국은 책을 읽으며 밥을 먹는 철학자들을 많이 보았다. p203

 

밀턴의 실낙원에 등장한 악마는 육체의 고통을 초월해서 온전히 정신에 속한 쾌락을 얻기 위해 파괴 행동을 일삼는다. 유명한 여러 성직자는 감각에 속한 쾌락은 포기하지만 다른 쾌락을 경계하지 않아서 권력욕에 사로잡혔고, 결국 종교를 위한다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끔찍하고 잔혹한 행위와 종교 박해를 저질렀다. 오늘날에는 히틀러가 바로 그러한 유형에 속하는 인물인데, 누구 말을 들어봐도 그는 감각에 속한 쾌락을 아주 하찮게 여겼다. 육체의 폭정에서 해방되면 위대한 무엇을 성취하는 데 기여하게 되지만, 덕이 커지는 바로 그만큼 죄가 커지기도 한다. p204

 

소크라테스의 말에 따르면, 정신이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여 소리나 시각, 고통이나 쾌락으로 방해받지 않고 육체에서 더나 참 존재를 열망할 때 사유는 최고 상태에 이르게 된다. .. 이러한 것들은 모두 오로지 지성의 통찰을 통해서만 파악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육체에 갇혀 영혼이 육체이 악행에 물든 동안에는 진니로 향하는 갈망은 만족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p205

 

플라톤이 권장하는 방법에 따라 수행 가능한 두 가지 정신 활동은 수학 활동과 신비적 통찰이다. p205

 

우리가 무엇이든 참된 지식을 얻으려면 육체를 떠나야 하고, 그래야만 영혼이 자신 안에서 사물 자체를 바라보게 된다네. 그러면 우리가 바라고 사랑하는 지혜에 이르게 되겠지. 살아 있는 동안이 아니라 죽은 다음에나 지혜에 이른다는 말일세. 그러니까 육체와 얽혀 있는 동안에는 영혼이 순수한 지식을 얻지 못하다 해도, 적어도 죽은 다음에는 지식을 얻게 된다는 말이지. 요컨대 육체의 아둔함을 제거하면 우리는 순수해지고 순수한 존재와도 맞닿게 되기에 어디에서나 저절로 진리의 빛과 다름없는 밝은 빛을 알아보게 된다네. ... 정화란 영혼이 육체에서 분리되는 현상 이외에 무엇이겠는가. ...... 이렇게 영혼이 육체에서 분리되어 풀려나는 현상을 바로 죽음이라 한다네. ...... 참 철학자들, 그들만이 늘 영혼을 육체에서 풀어놓으려 하지. 만물을 다 바꿀 수 있는 진짜 화폐는 바로 지혜라네. p206

 

영혼이 육체를 지각의 도구로 사용할 때, 말하자면 시각이나 청각을 비롯한 감각 기관을 사용할 때, 육체를 통한 지각은 감각기관을 통한 지각을 의미하기 때문에 ...... 그때 영혼은 육체에 이끌려 변화를 겪는 세계로 들어가 방황하며 혼란에 빠지고 만다네. 세계가 영혼 주위를 빙빙 돌기 때문에 영혼이 변화를 겪을 때면 술주정뱅이 꼴이 되는 셈이지. ...... 하지만 영혼이 자신에게로 돌아가 반성하게 되면, 그때 영혼은 내세로, 영혼과 유사한 순수, 영원, 불멸, 불변의 세계로 넘어가서 홀로 있을 때면 줄곧 그것들과 더불어 살기 때문에 영혼은 아무 훼방도 받지 않는다네. 그러면 영혼이 더는 길을 잃지 않게 되어 불변하는 존재와 소통함으로써 불변하는 존재가 되는 법이라네. 영혼이 이렇게 불변하는 상태를 지혜라고 부른다네. p210

 

크리톤, 아스클레피오스 신에게 닭 한 마리를 빚졌으니, 갚아주겠나? p211

 

소크라테스는 이전의 몇몇 철학자들과 달리 사고가 과학적이지 않고 우주가 자신의 윤리적기준과 일치한다고 증명하기로 굳게 결심했다. 이것은 진리를 배반하는 태도이며, 철학자가 저지르는 가장 큰 죄이다. 우리는 소크라테스가 한 인간으로서 성인들의 성찬에 참석하도록 허락받았다고 믿을 수도 있지만, 소크라테스는 철학자로서 학자들이 가는 연옥에 오래 머물러야 마땅하다. p212

 

이제 우리는 지식과 지각을 동일하게 보는 견해에 맞선, 플라톤의 마지막 논증에 이르렀다. 그는 우리가 눈이나 귀로 지각하지 않고 눈과 귀를 통해서 지각한다고 지적하며, 이어서 우리가 획득한 어떤 지식은 감각 기관과 아무 관련도 없다고 주장한다. ... 정신은 그 자신을 도구로 삼아서 어떤 일을 관조하고, 육체가 갖춘 능력을 통해서는 다른 일을 관조한다. ... 정신만이 존재를 파악하게 되며, 존재를 파악하지 못하면 우리는 진리에 도달하지도 못한다. 여기에서 우리가 감각만으로 사물을 인식하지 못하는 까닭은 감각만으로는 사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그러므로 지식은 인상이 아니라 반성 속에 존재하며, 지각이 지식은 아닌 까닭은 ‘지각이 존재를 파악할 때 아무 역할을 하지 못하고 따라서 진리를 파악할 때도 아무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p225

 

아리스토텔레스와 그를 추종한 스콜라 철학자들에게 중요한 용어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본질’이라는 용어이다. ‘본질’은 결코 ‘보편자’와 동의어가 아니다. 당신의 본질은 ‘당신이 바로 당신의 본성에 따라 존재하게 하는 무엇’이다. 본질은 당신의 속성들 가운데 당신 자신이 아니게 되지 않고서는 잃어버릴 수 없는 속성들이며, 개별 사물뿐만 아니라 종도 본질을 지닌다고 말할 수도 있다. p239

 

신은 영원한 순수 사유로서 행복, 즉 완전한 자기충족의 상태에 있어 실현되지 않은 목적이 하나도 없는 존재이다. 이와 반대로 감각 세계는 불완전하지만, 불완전한 생명, 불완전한 욕망, 불완전한 사유에서 비롯된 염원을 드러낸다. 모든 생물은 정도가 크든 작든 신을 의식하기에, 신에 대한 염원과 사랑으로 활동하며 신을 향해 움직인다. p246

 

행복은 유덕한 행동에 달려 있고, 완벽한 행복은 최선의 활동인 관조에 달려 있다. 관조가 전쟁이나 정치나 다른 어떤 실천 경력보다 더 나은 까닭은 삶에 여유를 주기 때문이며, 여유는 행복의 본질적 요소이다. 실천적인 덕은 이차적인 행복을 제공할 뿐이다. 이성을 발휘해샤 최고 행복에 이르게 되는 까닭은 이성이 다른 무엇보다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온통 관조만 하며 살 수는 없지만, 관조하는 한 신성한 삶에 참여한다.

은총 속에서 다른 모든 것들을 능가하는 신의 활동은 관조일 수 밖에 없다.” 모든 인간 존재 가운데 철학자의 활동은 신과 가장 흡사하므로 최고 행복이며 최선의 활동이다. p258

 

전체적으로 보자면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초기 철학자들에게 발견되지 않는 정서적 빈곤을 드러낸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살이를 관찰하고 사색한 면면은 지나치게 잘난 체하며 안일하게 대처한 느낌을 준다. 사람들이 서로 열정과 흥미를 느끼게 되는 것은 무엇이든 모조리 잊어버린 듯하다. 우정에 대한 설명조차 열의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는 제정신을 잃게 되는 경험이 전혀 없는 기색이다. 그래서 도덕적인 삶의 훨씬 깊은 측면은 하나도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한다. 그는 종교에 관해 인간이 체험하는 전체 영역을 저버리고 무시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의 주장은 열정이 없이 안락하게 사는 사람에게나 유익한 견해이다. p262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은 흥미로우면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데, 당시 교육받은 그리스인들의 공통된 편견을 보여주기 때문에 흥미롭고, 중세 말기까지 영향을 미친 여러 원리의 근원이 되기 때문에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p263

 

아리스토텔레스는 여러 가지 근거를 들어 플라톤의 이상향 이론을 비판했다. 첫째로 가장 흥미로운 논평은 플라톤의 이론이 국가에 대해 지나치게 통일성을 부여한 나머지 국가를 개체로 만들어버렸다는 것이다. p267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공산주의를 불쾌하게 여긴다. 그는 공산주의가 게으른 사람들을 향한 분노로 이어지고, 길동무들 사이에서 흔히 나타나는 다툼을 일으키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 재산은 개인의 소유여야 마땅하지만, 사람들이 재산을 널리 사회 일반에 걸쳐 사용하도록 자비의 덕을 갖추게끔 훈련해야 한다. 자비와 관대함은 덕이며, 사유재산이 없다면 실현할 수 없다. p268

 

코페르니쿠스와 케플러, 그리고 갈릴레오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하루에 한 번 자전학 한 해에 한 번 태양 주위를 공전하다는 견해를 확립하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뿐만 아니라 성서와도 맞서 싸워야만 했다. p291

 

아르키메데스를 살해한 로마 병사는 로마가 그리스 세계 전체에 초래한, 독창적인 사상의 죽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인물이 되었다. p302

 

그리하여 나는 알게 되었다네.

타고난 악당은 아니었지만,

불운이 겹쳐 악당이 될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사람들을.

이는 비범한 소수 사람들을 제외하면 기원전 3세기를 지배한 도덕관을 요약해 보여주는 말이다. ... “형이상학은 뒤로 물러나고, 윤리학이 당시에는 개인 윤리가 최고 중요한 분야로 등장한다. ” p316

 

알렉산드로스가 디오게네스를 찾아가 무엇을 원하는지 묻자, “햇빛만 가리지 말아주시오”라고 대답했다는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p320

 

회의주의는 서기 3세기 무렵까지는 교양을 갖춘 몇몇 사람들의 마음을 계속 끌었지만, 점점 더 독단적인 종교와 구원의 교리로 기울어지던 시대의 추세와 반대되는 경향이었다. 회의주의는 교육받은 사람들이 국가 종교에 불만을 느끼게 할 만한 힘을 지녔으나, 순수하게 지적인 영역에서도 국가 종교를 대신할 만한 적극적인 요소는 하나도 제공하지 못했다. 르네상스 시대 이후 회의주의를 지지한 대변자들은 과학을 열렬히 믿음으로써 신학적 회의주의를 보완했으나, 고대 세계에서는 이러한 보완이 없었다. p330

 

에피쿠로스의 철학은 일부 회의주의 철학을 예외로 두면 당시에 유행한 모든 철학과 마찬가지로, 일차적으로 마음의 평정을 보장하려는 목적으로 기획되었다. 그는 쾌락을 선이라 생각하고, 이 견해에서 나올 만한 모든 결론을 놀라우리만치 일관성 있게 고수했다. 그는 “쾌락은 축복받은 삶의 시초이자 목적이다” p335

 

에피쿠로스 학파가 실제로 자연에 대한 지식의 확장에 공헌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후대에 이교도들이 마법, 점성술, 점술에 점차 빠져드는 경향에 맞서 저항함으로써 유용한 목적에 기여했다. 그러나 에피쿠로스 학파의 학도들은 창시자와 마찬가지로 독단과 한계를 드러냈고, 개인의 행복과 관계없는 일에 진정으로 관심을 보이는 일이 없었다. p340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 “항상 우주 안의 만물이 연결디어 있다고 생각하는 습관을 들여라.”“그대 안에서 일어나는 무슨 일이든 영원무궁한 존재에서 시작되어 여러 원인이 복잡하게 얽히며 그대가 존재하기 위한 생명의 실을 자아내고 있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로마 국가에서 차지한 지위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한 공동체라는 슽아 학파의 믿음과 조화를 이룬다. p363

 

자연법은 일반적인 모든 지식의 기초를 이루는 제일 원리들에서 도출되었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자연에 따라 만인이 동등하다고 주장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만인을 위해 같은 법이 존재하는 정치 체제, 동등한 권리와 언론의 자유를 존중하면서 통치하는 정치 체제, 무엇보다 피지배자의 자유를 존중하는 왕정체제”에 호의를 보인다. 이것은 로마제국에서 시종일관 실현하기는 어려운 이상에 가까웠으나, 법률 제정에 영향을 주어 여자들과 노예들의 지위를 개선하는 데 기여했다. 그리스도교는 이 부분에 해당하는 스토아 학파의 가르침을 나머지 부분에 해당하는 많은 점들과 함께 물려 받았다. p368

 

로마제국은 다방면에 걸쳐 각각 다른 방식으로 문화사에 영향을 미쳤다.

첫째는 로마가 헬레니즘 사상에 미친 직접적인 영향 .. 별로 중요하지 않고, 깊숙이 파고들지도 못한다. 둘째는 그리스와 동방 세계가 로마 제국의 절반을 차지한 서방 지역에 미친 영향. 이 영향은 그리스도교를 포함했기 때문에 깊고도 지속적인 것이었다. 셋째는 단일 정치와 결합된 단일 문명이란 생각이 익숙해지도록 기여한 로마의 오랜 평화기가 갖는 중요한 가치 넷째는 헬레니즘 문명을 이슬람교도들에게 전하고, 마침내 서유럽에 전달한 역할. p369

 

그리스와 동방 세계가 로마에 미친 영향. 첫째는 그리스의 예술, 문학, 철학이 대부분의 교육받은 로마인들에게 미친 영향이고, 둘째는 그리스가 아닌 나라에서 믿는 종교와 미신이 서방 세계 전체에 퍼져나간 현상이다. p377

 

도시국가들을 정복한 마케도니아인드로가 로마인들은 그리스 문화를 애호했기 때문에, 크세르크세스나 카르타고라면 파괴했을 테지만, 정복한 도시들을 파괴하지 않았다. ... 스토아 학파는 이미 살펴보았듯이 인간의 형제애를 믿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공감하는 대상은 그리스인들에 한정되어 있지 않았다. p382

 

우리가 그들(아랍인)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동로마 제국에서만 명맥을 유지하던 그리스 전통의 일부분이나마 직접 계승한 자들은 그리스도교도가 아니라 바로 아랍인들이었기 때문이다. ... 이러한 접촉을 통해 11세기 지식의 부흥이 시작되어 스콜라 철학에 이르렀다. ... 만약 아랍인들이 그리스 전통을 보존하지 않았더라면, 르네상스인들은 고전 지식의 부활로 얻을 것이 얼마나 많은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일조차 없었을지도 모른다. p384

 

신성을 소유하고 신성의 감동을 받은 자들은 무엇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들 안에 더욱 위대한 어떤 것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들을 움직이는 권능을 지각한다. 이처럼 순수한 정신을 간직하는 때에 우리는 최고 신을 향해 서 있음이 틀림없다. 우리는 존재와 존재의 질서에 속한 그 밖의 모든 것을 나타내는 신의 마음을 내부에서 인식한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사실, 신의 마음이 이런 것들 가운데 어느 것도 아니고 존재로서 알고 있는 어느 것보다도 고귀한 원리라는 사실도 인식한다. 더욱 충만하고 더욱 위대하고, 이성과 마음과 감정보다 위에 존재하며, 이러한 능력들을 부여하지만 결코 혼동해서는 안 되는 고귀한 원리이다. p392

 

그러나 이런 일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모든 것을 끊어버려라. p393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은 교회 권력이다. 교회는 철학적인 믿음체계와 사회, 정치 상황이 400년경부터 1400년경까지 이르는 중세 시대의 이전과 이후보다 훨씬 더 밀접한 관련을 맺도록 주도했다. 교회는 일부는 철학과 관련이 있고 일부는 성스러운 역사와 관련이 있는 신경信經에 근거하여 형성된 사회제도이다. 교회는 바로 그 신경을 매개로 권력을 쟁취하고 부를 축적했다. p405

 

카톨릭 철학은 서유럽에서 지적 활동이 거의 자취를 감춘 암흑기를 분기점으로 두 시기로 나뉜다. 콘스탄티누스Flavius Valerius Constantinus, 280~337가 개종한 때부터 보이티우스가 죽은 시점까지 그리스도교 철학자들이 사상은 현실로든 최근의 기억으로든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는다. p406

 

교회가 '신국‘을 대표하고, 철학자는 정치 측면에서 교회의 이익을 대변한다. 철학의 관심사는 신앙을 옹호하는 것이었으므로, 그리스도교에서 인정하는 계시의 정당성을 수용하지 않는 이슬람교도 같은 부류의 사람들과 맞서 논쟁하기 위해 이성을 불러냈다. p407

 

13세기 가톨릭 철학의 종합은 완벽한 최후의 형태로 자리 잡은 듯 보였으나, 다방면의 원인이 영향을 미쳐 파괴되기 시작했다. 아마 가장 중요한 원인은 부유한 상인 계급의 성장일 텐데, ... 그러나 신흥 상인 계급은 성직자 계급만큼 지적능력이 뛰어났고, 세속적인 문제에 특히 박식할 뿐만 아니라 귀족 계급에 대처하는 능력도 훨씬 뛰어났기 때문에 도시 하층 계급이 시민 자유의 투사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더욱 높았다. p407

 

이리하여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 그때까지도 정연하고 완전한 체계로 이어지지 못한 중세의 종합은 붕괴되고 말았다. ... 중세시대 전체에 걸쳐, 사려 깊은 사람들은 현세에서 일어나는 고난을 겪으며 불행에 빠져드는 경향이 매우 강했고, 더 나은 내세에 대한 희망으로 견디어 나갈 따름이었다. p408

 

11세기에 일어난 교회의 도덕 개혁은 스콜라 철학을 직접 이끈 서곡이며, 교회가 봉건제도에 점차 흡수되어가는 현상에 맞선 반동이었다. 스콜라 철학자들을 이해하려면 힐데브란트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되고, 힐데브란트를 이해하려면 그가 어떤 악과 맞서 싸웠는지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신성 로마 제국ㅇ이 유럽 사상에 미친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p410

 

후기 로마가 야만인들에게 넘겨준 그리스도교는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되었다.

첫째요소는 철학에서 유래한 몇 가지 믿음으로 주로 플라톤과 신플라톤 학파 철학자들에게서 비롯되지만 일부는 스토아 학파에서도 유래했다. 둘째 요소는 유대인들에게서 유래한 도덕 개념과 역사 개념이다. 셋째 요소는 대체로 그리스 도교의 새로운 특징이라 할 만한 몇 가지 이론, 특히 구원 이론으로, 일부는 오르페우스교와 근동 지역의 유사한 이교 종파에서 유래한다. p412

 

구약성서 이외의 이스라엘 민족의 초기 역사를 말해주는 출처는 없으며, 더욱이 순수한 전설이 아닌 역사적 사실이 시작되는 지점이 어디인지 알아내는 일은 불가능하다. p414

 

우선 야훼는 이스라엘 백성을 각별히 보살피는 부족 신이었을 뿐이고, 다른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았으며 다른 신을 숭배하는 관습도 인정했다. p414

 

마카베오 4서의 번역판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유대교Judaism가 안티오코스 치하에서 소멸했더라면, 그리스도교가 자라난 모판도 만들어지지 않았으리라는 지적은 정확한 평가이다. 이렇게 마카베오 가문 출신 순교자들이 흘린 피는 유대교를 지켰으며, 궁극적으로 교회 성장의 씨앗이 되었다. 그리스도교뿐만 아니라 이슬람교 역시 일신교의 기원을 유대교에서 찾으므로, 마카베오 가문 덕분에 오늘날 전 세계에 걸쳐 동방과 서방 양쪽에 일신교가 존재하게 되었다 해도 무방하다. p422

 

가장 흥미로운 저술은 ‘에녹서’로서, 마카베오 가문 시대 직전, 기원전 64년 무렵에 여러 저자가 쓴 합작품이다. 에녹서는 대부분 족장 에녹의 묵시적 환영을 고백 형태로 기록한 이야기이다. 이 책은 유대교가 그리스도교로 변하는 측면을 보여주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하다. ... 초기 교부들은 에녹서를 정경正經으로 취급했으나, 히에로니무스와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를 거부했다. 그리하여 에녹서는 세상에서 잊히고 19세기 초 에티오피아어 필사본 세 편이 아비시니아에서 발견되기 전까지는 행방이 묘연했다. p423

 

창세기 6장 2절과 4절을 확장한 부분은 호기심을 자아내며 프로메테우스의 전설과 유사하다. 인간에게 야금술을 가르쳐준 천사들이 영원한 비밀을 누설했다는 죄목으로 벌을 받았다고 한다. 그들은 인육을 먹기도 했다... p424

 

그리스도교는 복음서를 통해 바리새파를 나쁘게 생각하도록 배웠지만, 12족장의 유언서의 저자는 바리새파로서, 이미 살펴보았듯이 바로 그 사람이 그리스도의 설교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으로 나타난 윤리 격률들을 가르쳤다. 이에 대해 설명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첫째, 이 책의 저자는 당시 사정에 비추어 보아도 틀림없이 예외적인 바리새파에 속했다. 둘째, 우리는 어떤 운동이든 보수화되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셋째, 우리는 특히 바리새파 신도들이 율법을 절대적인 최후의 진리로 믿고 헌신하게 되자마자 사고와 감정의 신선한 활기를 잃어버리고 말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p427

 

그노시파는 선민사상을 철저히 거부했다. 그노시스파, 아니 그들 가운데 적어도 몇몇은 감각계를 창조한 존재가 소피아(천상의 지혜의 여신)의 반항아이자 얄타바오트Ialdabaoth로 불리는 열등한 신이라 주장했다. 그노시스파는 얄다비오트가 바로 구약성서의 야훼이며, 뱀은 사악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브에게 야훼의 속임수에 맞서라고 경고했다고 말한다. 최고신은 오랫동안 얄다바오트가 자유롭게 본분을 다하도록 내버려두었다. 마침내 최고신이 아들을 보내 인간 예수의 몸에 잠시 머무르도록 하여 모세의 그릇된 가르침으로부터 세상을 해방시켰다. p431

 

청년기 아우구스티누스는 덕의 귀감과는 동떨어진 정열이 넘치는 남자였으나 진리와 의로움을 추구하려는 내적 충동도 간직한 인물이었다. 그는 톨스토이처럼 나이가 든 후에 죄의식에 사로잡힌 나머지, 너무 엄격한 인생을 살았으며 철학도 인간다움과 점점 멀어졌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단 사상에 맞서 격렬한 논쟁을 벌였지만, 그의 견해 가운데 17세기 얀센이 반복해서 주장한 몇몇 견해는 이단으로 단죄를 받았다. 그러나 개신교도가 아우구스티누스의 이단 사상을 채택하기 전까지, 가톨릭 교회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정통성에 대핸 단 한 번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p456

 

죄가 영혼과 신이 맺는 직접적인 관계에 본질적 요소가 되는 까닭은 자비로운 신이 어떻게 인간에게 고통을 주는 원인일 수 있는지, 죄를 지은 영혼이 어떻게 창조된 세계의 만물 가운데서 가장 중요할 수 있는지 죄가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이 의존한 신학은 당연히 죄의식을 비정상적으로 많이 느끼는 사람에게서 비롯된다는 사실이 전혀 놀랍지 않다. p458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유대 민족의 역사 모형을 그리스도교에 맞게 변경했고, 마르크스는 사회주의에 맞게 변경했다. 마르크스의 심리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용어사전을 이용해야 할 것이다.

야훼=변증법적 유물론, 구세주=마르크스, 선민=프롤레타리아, 교회=공산당,

그리스도재림=혁명, 지옥=자본가의 처벌, 천년왕국=공산사회 p480

 

6세기 이후 수세기에 걸친 끝없는 전쟁으로 문명이 전반적으로 쇠퇴하던 시기, 무엇보다도 교회는 살아남은 고대 로마 문화를 보존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p495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가 궁극적으로 분리될 수 밖에 없었던 주된 원인은 동방교회가 교황의 지배권에 저항한 사건이다. 비잔틴인들이 롬바르드족과 싸워 패배한 이후, 교황들은 억센 야만족에게 정복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교황들은 샤를마뉴의 영도 아래 이탈리아와 독일을 정복한 프랑크 왕국과 동맹을 맺음으로써 위기를 돌파했다. 이 동맹의 결과 신성 로마 제국이 출현하고, 신성 로마 제국은 교황과 황제가 조화롭게 공존을 추구할 정치제도를 갖추었다. p513

 

애초부터 교황과 황제 사이에 이상한 상호 의존관계가 형성되었다. ... 그들의 상호 의존관계로 인해 양측 모두 괴로워하면서도 수세기 동안 괴로운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황제와 교황은 끊임없이 갈등을 빚었으며, 때로는 황제 편에서 이익을 얻고 때로는 교황 편에서 이익을 취했다. 13세기에 이르자 양측의 갈등은 화해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치달았다. p517

 

그러나 황제와 교황은 권력을 둘러싸고 형성되었던 중세의 정교한 권력이론은 15세기에 효력을 잃고 말았다. 중세의 권력 이론에서 주장한 그리스도교계이 통일은 세속 영역에서 프랑스, 스페인, 잉글랜드의 각 군주가 권력을 쟁취하고, 종교 영역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남으로써 무너졌다. p518

 

‘암흑기’라는 말로 600년부터 1000년에 이른 시기를 가리키는 관행은 서유럽에 집중하는 부당한 처사에서 비롯된다. 중국의 경우 이 시기는 당 왕조 시대로, 중국 시문학이 꽃을 피운 시기였을 뿐만 아니라 여러 방면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시기이다. 인도에서 스페인에 이르기까지 찬란한 이슬람교 문명이 번성했다. 이 시기 그리스도교 세계는 문명을 잃어버리기는커녕 그와 정반대였다. 아무도 서유럽이 후대이 권력과 문화를 장악하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우리는 서유럽 문명이 곧 문명이라 생각하지만, 이것은 협소한 견해이다. p525

이제는 우리 서유럽이 제국주의의 기미를 드러내고 있다. 나는 현재 세계를 휩쓸고 있는 전쟁이 종식된 후 세계가 안정을 찾게 되면, 우리의 서유럽 사상이 정치 뿐만 아니라 문화의 측면에서도 아시아를 동등한 문화권으로 인정하게 되리라 기대한다. 이로써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그 변화는 의미 심장하고 대단히 중요한 가치를 지닐 것이라 확신한다. p526

 

죄의 근원은 자유에 있다. 죄란 인간이 신에게 향하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돌리기 때문에 발생했다. 악의 근거가 신 안에 있지 않은 까닭은 신 안에 악의 이상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악은 비존재이고 근거가 없는데, 그 까닭은 만약 악에 근거가 있다면 악도 필연적인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악은 선의 결핍일 뿐이다.

신의 말씀은 다자를 일자로 돌아가게 하고 인간을 신에게 돌아가게 하는 원리이다. 따라서 신의 말씀은 곧 세계의 구세주이다. 신과 합일함으로써 합일에 영향을 미친 인간의 일부가 신성해진다. p533

 

11세기에 이룩한 개선과 진보는 오래 지속되었으며 다채로웠다. 이러한 진보는 수도원 개혁과 더불어 시작되었으며, 그 다음 교황 체제와 교회 조직으로 확대되었다. 11세기가 막을 내릴 무렵 최초의 스콜라 철학자들이 배출되었다. p536

 

성직자 계급 전체의 권력 형성은 성직자 개개인의 적지 않은 희생을 치르고 나서야 비로소 가능했다. 모든 개혁 성직자드이 온 힘을 다해 반대했던 최고의 악습은 성직매매와 축첩 두 가지였다. p538

 

12세기까지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 알려진 것이라고는 보이티우스가 번역한 범주론과 명제론이 전부였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저 단순한 변론가로 생각되었던 반면, 플라톤은 종교철학자이자 이상 이론의 창시자로 여겨졌다. 중세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이런 편협한 생각,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 체계에 대한 편견은 차츰 바로잡혔다. 그러나 플라톤에 대한 생각은 르네상스 시대까지 변하지 않았다. p550

 

이슬람교의 기원, 헤지라는 622년에 일어났으며, 무하마드는 10년 후에 죽었다. 그가 죽은 직후 아랍인은 정복을 시작하여, 엄청난 속도로 정복 사업을 이어갔다. ... 신자들의 의무는 이슬람교의 확장을 위해 가능한 한 세계의 더 많은 지역을 정복하라는 명령을 이행하는 일이었으나, 그리스도교도를 비롯하여 유대교도나 조로아스터교, 즉 쿠란에서 경전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이라 부른 ‘성서의 백성’을 박해하지 않았다. p552

 

이슬람교 철학자들 가운데 주목할 만한 사람이 둘 있는데, 한 사람은 페르시아인이고 다른 한 사람은 스페인 사람이다. 아비세나의 철학은 선대 이슬람교 철학자들보다 아리스토텔레스와 더 가까워졌고 신플라톤 학파와는 더 멀어졌다. 그는 후에 그리스도교 스콜라 철학자들처럼 보편자 문제에 몰두했다. 플라톤은 보편자가 사물에 앞서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p557) 아베로에스는 신플라톤 학파의 영향을 지나치게 받았던 아랍인들의 아리스토텔레스 해석을 바로잡는 데 관심을 가졌다. 그는 마치 교주를 대하듯 아리스토텔레스를 존경했는데, 심지어 아비세나가 그랬던 것보다 훨씬 더 강한 존경심을 표현했다. 아베로에스는 신의 존재를 계시에 의존하지 않고 이성을 통해 증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p559

 

12세기의 네 가지 양상

1. 황제권과 교황 체제의 계속되는 갈등

2. 롬바르디아 도시들의 발흥

3. 십자군

4. 스콜라 철학의 성장

 

지금까지 교황과 황제 사이에 벌어진 투쟁의 최종 결과는 하인리히 3세에게 굴복했던 교황이 황제와 필적하는 권력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동시에 교황은 교회 내에서 완전한 주권자가 되어, 교황 특사들을 파견해 지배력을 과시했다. 이와 같이 교황 권력이 증대함에 따라 주교들의 지위는 점점 낮아졌다. 교황 선출은 이제 세속 군주의 지배에서 자유로워졌고, 성직자들은 대체로 교회 개혁 이전보다 도덕성을 갖추게 되었다. p565

 

하인리히 3세 시대까지 밀라노 시민들은 보통 밀라노의 대주교를 추종하는 데 만족했다. 그러나 앞 장에서 언급한 파타리노 운동이 상황을 바꿔놓았다. 대주교는 귀족 계급의 편을 들었지만, 대주교아 귀족 계급에 대항하는 강력한 민중운동이 일어났다. 그 결과 민주주의의 시초가 되는 몇 가지 요소가 생겨났고, 도시의 통치자를 시민들이 선출하는 정치 체제도 발생했다. p568

 

교황이 당연히 십자군 창설의 선두에 선 까닭은 그 목적이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종교와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십자군 전쟁의 선동으로 자극받아 종교적 열의가 커짐에 따라 교황들의 권력은 증대되었다. 전쟁 선동의 또 다른 효과는 수많은 유대인의 학살이었다. ... 또 다른 결과는 콘스탄티노플과 문학적 교류를 자극했다는 점이다. 12세기와 13세기 초반, 이와 같은 교류의 성과로서 그리스어 문학 작품을 라틴어로 옮긴 번역서들이 많이 나왔다. p569

 

신은 선할 뿐만 아니라 선 자체이다. 신은 모든 선한 것의 근원이 되는 선 자체이다. 신은 지적이며, 더욱이 신의 지성 활동은 신의 본질이다. 신은 자신의 본질로써 이해할 뿐만 아니라 자신을 완벽하게 이해한다. p596

 

신에게는 의지도 있다. 신의 의지는 곧 자신의 본질이므로, 신의 의지가 향하는 중요한 대상은 신의 본질이다. p598

 

점성술은 평범한 이류로 거부해야 한다. “‘숙명’과 같은 것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에서 아퀴나스는, 섭리로 부여된 질서에 ‘숙명’이란 명칭을 붙일지도 모르지만, ‘숙명’이란 이교도의 말이므로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 처사라고 응수한다. p600

 

아퀴나스의 철학 체계 안에 진정한 철학 정신을 드러내는 부분은 거의 없다. 그는 플라톤 대화편 속의 소크라테스와 달리 논증이 이끄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든 따라가려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그는 결과를 미리 알 수 없는 탐구에는 발을 들여놓지 않는다. 그는 철학을 시작하기 전에 벌써 진리를 알고 있다. 진리는 가톨릭 신앙 안에서 선언된다. p604

 

무지의 원인이 네 가지 있다고 말한다. 첫째, 부정하고 부적합한 권위의 사례 둘째, 관습의 영향이다. 셋째, 무식한 군중의 의견이다. 넷째, 외견상의 지혜를 과시하며 무지를 은폐하는 짓이다. 네 가지 역병 가운데 넷째 병이 가장 치명적이고, 인간이 저지르는 모든 악의 근원이다. p606

 

이 시기에 교황 반대 운동의 특징도 변하기 시작했다. 교황 반대 운동은 단지 황제를 지지하는 단계에서 그치지 않고 민주주의적 색채를 띠기 시작했는데, 특히 교회 정치의 문제에서 민주주의적 경향이 두드러졌다. 이러한 특징은 교황 반대운동에 새로운 힘을 실어주어, 결국 종교개혁에 이르게 되었다. p612

 

교황 권력에 관한 여덟 가지 문제

첫째, 개인은 교회와 국가 안에서 두 권위보다 우위에 있다고 정당하게 말할 수 있는가?

둘째, 세속 권력은 신으로부터 직접 나오는가, 아닌가?

셋째, 교황은 세속 지배권을 황제와 다른 군주들에게 부여할 권리를 가지는가?

넷째, 선거인단의 선출은 독일 왕에게 충분한 권력이 부여되는가?

다섯째와 여섯째, 교회는 왕들에게 기르믕ㄹ 부어 축복하는 구교의 권리행사를 통해 어떤 권리를 획득하는가? 일곱째, 부정한 대주교가 거행했다면, 대관식은 유효한가?

여덟째, 선거인단 선출이 독일완에게 항제의칭호를 부여하는가? 이 문제들은 모두 당시 현실 저치와 관련된 뜨거운 감자였다. p614

 

오성悟性, understanding의 대상은 사물이지 저인이 생산한 형상이 아니다. 형상은 이해되는 무엇은 아니지만, 그것에 의해 사물을 이해하게 된다. p617

 

13세기로 접어들면서 철학, 신학, 정치, 사회 모든 측면을 아우른 위대한 종합에 이르렀는데, 여러 요소들이 결합하는 과정을 거쳐 천천히 이루어졌다. 첫째 요소는 순수한 그리스 철학, 특히 피타고라스, 파르메니데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사상들이었다. 다음 요소는 알레산드로스 대왕의 정복 결과로 대량 유입된 동양의 종교들이었다. 오르페우스교와 신비 종교의 장점을 받아들인 이러한 동양의 종교들은 그리스어 문화권 세계의 사고방식을 변모시켰으며, 결국 라틴어 문화권 세계의 사고방식도 바꾸었다. 죽었으나 부활한 신, 그 신의 육체를 의마하는 것을 먹는 성찬 의식, 세례식과 유사한 어떤 의식을 통해 새 생명으로 거듭 태어나는 제2의 탄생은 이교 로마 세계의 대다수 종파들에게 신학의 일부로 수용되었다. 이와 같은 동양 종교적 요소들은 적어도 이론상으로 금욕적인 육체에서도 벗어난 해방의 윤리과 결합했다. p620

 

15세기에 여러 가지 다른 원인이 교황체제의 쇠퇴에 작용하면서 정치와 문화 두 측면에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화약은 봉건 귀족을 희생시키고 중앙 정부의 권력을 강화시켰다. 프랑스와 잉글랜드에서는 루이 11세와 에드워드 4세가 부유한 중간 계급과 연합함으로써 귀족들로 인해 야기된 무정부 상태를 평정했다. 이탈리아는 15세기 말까지 사실상 북방 군대의 침략을 받지 않아 자유로운 처지였기 때문에 막대한 부를 축적했을 뿐만 아니라 문화수준도 급속히 높아졌다. 새로운 문화는 본질상 이교도 문화로서 그리스와 로마를 숭상하고 중세 시대를 경시했다. ... 금욕주의가 지배한 기나긴 세월은 다채로운 예술과 시, 쾌락을 추구하는 분방한 활동 속에서 잊혔다. ... 정신은 새로 맛본 자유에 도취되었다. 도취는 지속될 수 없었지만, 짧은 순간이나마 공포심을 차단했다. 이렇게 기쁨에 찬 해방의 순간 속에서 근대가 탄생했다. p633

 

보통 ‘근대’라고 부르는 역사적 시기의 정신적 전망은 ... 교회의 권위가 약화되고 과학의 권위가 향상되었다는 점이다. 근대문화는 성직자보다 속인의 삶과 관계가 더 깊다. 국가의 힘이 점점 커지는 가운데 문화를 조정하는 정부 권력 기구가 교회를 대체하는 수준까지 성장했다. 국가 권력은 처음에 주로 왕의 수중에 있다가, ... 민족국가의 권력이나 국가가 수행하는 기능은 근대 전체에 걸쳐 꾸준히 증가한다. ... 봉건 귀족정치는 부유한 상인 계층과 동맹을 맺은 왕정으로 대체되고 귀족과 상인이 권력을 나누어 가졌는데, 권력 배분의 비율은 나라마다 달랐다. 이 과정에서 부유한 상인들이 귀족 계급으로 흡수되는 경향도 나타났다. p638

 

미국 독립전쟁과 프랑스 혁명 이후, 현대적인 의미와 민주주의가 중요한 정치적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사유재산제에 근거한 민주주의와 대립하는 사회주의는 1917년에 이르러 최초로 정권을 획득한다. ... 교회의 권위를 거부하는 경향은 근대를 구분하는 소극적 특징으로 과학의 권위를 수용하는 적극적 특징보다 앞서 나타난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운동에서 과학의 역할은 아주 미비했다. ... 근대 철학자들이 대부분 인정한 과학의 권위는 교회의 권위와 전혀 다른 지적인 권위이며 정치적 권위가 아니었다. 과학의 권위를 거부한 사람이 처벌을 받는 것도 아니며, 권위를 수용한 사람에게 신중하고 분별 있는 논증은 아무 영향도 주지 못한다. 과학의 권위는 고유한 이성에 호소함으로써 효력을 나타내며 단편적이고 부분적인 권위이다. p639

 

교회의 권위에서 해방되면서 개인주의가 출현하고, 심지어 무정부주의까지 생겨났다. 규율은 지적이든 도덕적이든 정치적이든 르네상스 인간의 정신 속에서 스콜라 철학과 교회 정부와 결부되었다. 스콜라 철학자들이 몰두한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은 협소했으나 일종의 정확성을 훈련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 그래도 근대 철학은 개인주의와 주관주의적 경향을 그대로 간직했다. 이러한 특징이 두드러진 데카르트 철학을 보면, 그는 자기 존재의 확실성에 근거해 모든 지식을 확립하고 명석성과 판명성을 진리의 규준으로 수용한다. ... 완전한 무정부주의에 이르러 종말을 맞았다. 이런 극단적 주관주의는 일종의 광기로 나타난다.

그러는 사이 기술로서 수용된 과학은 실용성을 추구하는 인간의 마음속에 이론 철학자와 전혀 다른 사고방식과 시야를 심어놓았다. 기술은 힘에 대한 감각을 일깨워 인간이 자기 환경의 처분대로 맡겨지는 일이 이전 시대에 비해 훨씬 줄어들었다. ... 과학 기술의 발전에서 영감을 받은 철학이 바로 힘을 강조하는 철학이다. .. 이제 목적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숙련 과정에만 가치를 부여할 따름이다. 이러한 경향도 일종의 광기요 바보짓이다. 이는 우리시대에 가장 위험한 철학이다. 건전한 철학은 이에 대항할 해독제를 내놓지 않으면 안된다. p641

 

지속 가능하고 만족스러운 사회 질서를 실현하려면 로마 제국의 실질적인 법체계와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신국’에서 제시한 이상주의를 결합해야만 가능할 텐데, 이를 성취하려면 새로운 철학이 등장해야 할 것이다. p642

 

르네상스기는 철학에서 위대한 성취를 이룬 시기는 아니지만, 17세기 위대한 철학의 도래에 꼭 필요한 예비 단계였다. 우선 르네상스 운동은 지성을 옥죄는 덮개가 도어버린 엄격한 스콜라 철학의 체계를 무너뜨렸다. 다음으로 르네상스 운동은 플라톤 연구를 부흥시킴으로써 적어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사이에서 선택할 경우에 필요한 수준만큼 독자적인 사유를 가능하게 했다. p649

 

르네상스는 대중의 지지를 얻은 운동이 아니었다. 소수 학자와 예술가들이 참여한 운동으로서 자유사상을 지지한 후원자들, 특히 메디치 가문과 인문주의에 경도된 교황이 장려한 지적 흐름에 속했다. 그러나 어쩌면 이 후원자들 때문에 르네상스 운동이 크게 성공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p650

 

도덕의 영역 바깥에서 보면 르네상스 운동은 여러 면에서 탁월한 장점이 있다. 건축, 회화, 시 분야에서 르네상스 운동은 명성을 유지했는데, 레오나르도와 미켈란젤로, 마키아벨리 같은 위대한 인물을 배출했다. 르네상스 운동은 교육받은 지식인을 중세 문화의 편협성에서 해방시켰으며, 여전히 고대 숭배의 노예 상황에 놓인 학자들로 하여금 거의 모든 주제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제시될 뿐만 아니라 권위가 논박되기도 한다는 점을 의식하게 했다. p653

 

마키아벨리, 그의 정치철학은 과학적이고 경험적인 학설로 사태를 직시하며 스스로 경험한 것에서 나온 결과물인데, 목적의 선악 여부와 상관없이 정해진 목적에 맞는 수단을 찾아내는 데 관심을 두었다. 그가 실현되기를 바란다고 수시로 언급한 목적들은 모두 절찬을 받을 만하다. 마키아벨리란 이름에 늘 따라다니는 비방이나 악평은, 대체로 악행을 솔직하게 인정한 태도를 못마땅하게 여긴 위선자들으 분개에서 비롯된다. 진정한 의미에서 비판이 필요한 곳이 여러 군데 있지만, 시대적 상황에서 비롯된 한계를 표현할 따름이다. 마키아벨리가 당대의 정치적 부정행위에 대한 보여준, 지적으로 정직한 태도는 그리스를 제외한 다른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p654

 

마키아벨리는 체사레의 악랄하고 극악무도한 행동을 가까이서 지켜보았는데도 이렇게 요약해 말한다. “지금까지 체사레 공이 정치적으로 행동한 면면을 회고하여 평가해보면, 탓할 점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행운이나 남의 무력에 의존해 갑자기 정권을 잡은 자들이 모두 본받아야 할 모범 사례로 내세워야 한다는 생각마저 든다.” P656

 

군주론은 통치자의 행동과 관련된 기존의 도덕을 명백히 거부한다. 통치자가 늘 선하게 행동한다면 비명횡사하고 말 것이다. 그래서 군주는 여우처럼 교활하고 사자처럼 맹위를 떨쳐야 한다. ‘군주는 어떤 식으로 신앙을 지켜야 하는가?’란 제목이 붙은 장을 보자. 군주는 자기에게 이득이 되면 신앙을 지키고 그렇지 않으면 신앙을 지켜서는 안 된다. 때때로 군주는 신앙을 버리기까지 해야 한다. p659

 

결국 핵심은 바로 권력이다.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면 어떤 종류든 권려이 필요하다. 이런 평범하고 분명한 사실은 “정의가 이긴다”, 다시 말하면 “악은 승리해도 오래가지 못한다”는 표어에 묻혀버린다. 당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쪽이 이긴다 해도, 그것은 그쪽의 힘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권력은 흔히 여론에 좌우되고, 여론은 선전선동에 좌우된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그런데 당신의 적수보다 당신의 정치적 기량과 덕이 더 뛰어난 듯이 보이게 하는 데 선전선동이 유리하며, 탁월한 기량과 덕을 갖춘 듯이 보이게 하는 방법은 바로 탁월한 기량과 덕을 갖추는 방법이라는 점도 분명한 사실이다. p662

 

유럽 북부 여러 나라에서는 르네상스 운동이 이탈리아보다 뒤늦게 시작되어, 곧 종교개혁과 뒤얽혔다. 그러나 16세기 초반의 아주 짧은 기간, 신학문이 신학 논쟁과 무관하게 프랑스, 영국, 독일로 활발하게 퍼져나갔다. 북부 르네상스는 여러 면에서 이탈리아의 르네상스와 아주 달랐는데, 무정부 상태를 야기하지도 비도덕성을 조장하지도 않았다. 반대로 경건한 신앙심이나 공공의 덕과 결합되었다. 북부 르네상스의 선구자들은 학문연구의 표준을 성서에 적용하거나 불가타 성서의 원본보다 더 정확한 원본을 입수하는데 더욱 흥미를 느꼈다. 또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선구자들보다 화려한 면은 부족했으나 기초가 튼튼하고 충실했으며, 개인의 학문적 성과를 내세우기보다는 학문을 가능한 한 널리 보급하는데 전력을 다했다. p664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 ... 바보 여신은 풍자가 독설로 변하는 구절에서 에라스무스의 진지하고 심각한 의견을 대신 말하는데, 성직의 남용이나 폐해애 관한 내용이다. 신부들이 각각의 영혼이 연옥에 머물 시간을 계산할 때 기준으로 삼은 대사(면죄부)와 은사행위, 성인 숭배와 ‘맹목적인 신ㅂㅇ자들이 성자 앞에다 성모를 두는 방법이라 생각한’ 성모 숭배, 삼위일체설과 육화에 대한 신학 논쟁, 실체변화설에 대한 논쟁, 스콜라 철학의 종파 대립, 교황과 주교와 추기경으로 이어진 성직 위계 등 모든 면을 신랄하게 비웃는다. p667

 

「우신예찬」은 참된 종교는 바보 여신 숭배 같은 형태를 띤다는 진지한 암시로 끝난다. 책에는 시종일관 두 바보 여신이 등장하는데, 하나는 역설적으로 찬미되는 신이고 다른 하나는 진지하게 찬미되는 신이다. 진지하게 찬미되는 신은 그리스도의 단순성 속에 드러난다. 이러한 찬미는 에라스무스가 스콜라 철학과 라틴어 교양을 갖추지 못한 학자들을 혐오한 맥락에서 이해가 된다. p669

 

사람들은 대부분 「유토피아」에 대한 설명에 의존해서 모어를 기억한다. 유토피아는 남반구에 있는 섬인데, 거기서는 모든 일이 가능한 최선의 방식으로 일어난다. 라파엘 히슬로데이라는 선원이 우연히 그 섬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는 거기서 살다가 섬의 슬기로운 제도를 알리려 유럽으로 돌아왔다. p672

 

모어의 유토피아는 여러 면에서 놀라우리만치 자유주의적인 특징을 나타낸다. 공산주의 설교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데, 대부분의 종교 운동이 따르는 전통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전쟁에 관한 이야기나 종교와 종교적 관용에 관해 말한 점, 방종한 동물 살해 행위에 반대한 점(사냥에 반대한 가장 웅변적인 구정이 있다.), 관대한 형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유토피아는 절도범죄에 사형을 언도하면 안 된다고 반대하는 논증으로 시작한다.) p676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은 둘 다 문명의 발전이 디딘 나라들이 지적인 문명의 발전이 앞선 이탈리아의 지배에 맞서 일으킨 반란이었다. 종교개혁은 정치적인 반항이자 신학적 반항이기도 했다. 말하자면 교황의 권위를 거부하면서, 교황이 천국 열쇠의 권능으로 요구하던 조공을 더는 바치지 않았다. 반종교개혁은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지적이고 도덕적인 자유에 맞선 반항일 따름이다. p677

 

결과는 처음에는 지성계 전반에 나쁜 영향을 미쳤으나 종국에는 유익한 편이었다. 30년 전쟁으로, 개신교도나 가톨릭교도 가운데 어느 한쪽이 완벽하게 승리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게 되었다. 그래서 교리의 통일을 바라는 중세적 소망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인간이 스스로 기본 교리를 생각하는 자유를 키우는 결과로 이어졌다. p680

 

과학의 발전이 초래한 다른 결과는 인간이 우주 안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사고방식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일이다. 중세의 세계관에 따르면 지구는 하늘의 중심이며, 만물은 인간과 관련된 특정한 목적을 가졌다. 뉴턴의 세계관에서 지구는 특별히 눈에 띄지 않는 작은 행성에 불과하며... 작아 보였다. 거대한 우주 체계가 전부 핀 끝 위의 작은 인간을 위해 계획되었다는 생각은 그럴듯해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는 여전히 하늘이 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존재한다고 믿을지도 모르지만, 천문학적인 계산을 할 때 종교적 믿음이 꺼어들 여지는 없었다. 세계에는 목적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과학적 설명을 할 때는 목적 개념이 더는 역할을 하지 못했다. p695

 

인간이 자기만족에 도취된 데는 물론 다른 여러 가지 이유도 작용했다. 핼리는 혜성 출현의 신비를 풀어 시시한 현상으로 만들었으며, 지진이 여전히 가공할 만한 현상이기는 해도 과학자들은 지진을 두려워하고 한탄만 하지 않고 흥미로운 연구 대상으로 받아 들였다. ... 이 모든 일에 과학의 승리가 더해지고 나면, 17세기 사람들이 자신들을 주일마다 악행을 고백해아 하는 비참한 죄인이 아니라 멋지고 훌륭한 사람으로 생각했다는 말은 놀랍지도 않다.

p696

 

베이컨 철학에서 가장 유명한 대목은 우상의 목록표인데, 우상은 사람들이 오류에 빠지도록 만드는 원인인 정신의 나쁜 습관을 의미한다. 그는 네 가지 우상을 제시한다. ‘종족의 우상’은 인간의 본성에 내재하며, 특히 자연현상 가운데 실제로 발견되는 질서 이상을 기대하는 습관을 지적한다. ‘동굴의 우상’은 개별 탐구자의 특징인 개인적 편견이다. ‘시장의 우상’은 말의 횡포와 관련된다. ‘극장의 우상’은 수용되는 사유 체계와 관련되는데,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스콜라 철학이 언급할 만한 가장 좋은 사례였다. p702

 

홉스는 경험론이나 합리론 어느 한쪽으로 분류하기 어려운 철학자이다. 그는 로크, 버클리, 흄과 마찬가지로 경험론자였지만, 그들과 달리 순수 수학뿐아니라 응용 수학과 관련된 수학적 방법의 가치를 인정한 철학자였다. 그의 일반적인 철학 사상은 베이컨보다 갈릴레오의 사상에서 영감을 얻었다. ... 따라서 대륙 철학은 플라톤주의와 마찬가지로 순수 사유의 역할을 최소화하는 경향으로 흘러갔다. 다른 한편 영국 경험론은 수학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으므로 과학의 방법을 잘못 파악하는 경향으로 흘러갔다. p705

 

리바이어던에 담긴 학설을 고찰해보자.. 그는 책의 첫머리에서 유물론을 선포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생명은 지체의 운동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자동인형도 인공 생명을 갖는다. 리바이어던이라 부른 국가는 기예에 의한 창조물로, 사실상 인공으로 만든 인간이다. 이는 유비 이상의 의도를 담은 주장으로서 상세한 고찰을 통해 다듬어진다. 통치권은 인공 영혼으로, ‘리바이어던’을 창조하기로 한 협정과 계약은 ‘인간을 만들자’고 선언했던 신의 명령을 대신한다. p708

 

홉스의 형이상학이나 윤리학에 대한 비판은 접어두더라도, 정치 이론에 반대할 수 밖에 없는 두 가지 논점... 첫째 논점은 언제나 국가 전체의 이익을 고려할 때 모든 시민의 중욯ㄴ 이해관계는 같다고 암묵적으로 가정한다는 것이다. 그는 계급과 계급간의 충돌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데, ... 나중에 마르크스는 계급간의 충돌이 사회 변화의 주된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 홉스는 이러한 교훈을 근대 영국의 역사에서 분명히 배워야 했다. 지나치게 제한적인 견해로 보이는 또 한 가지 논점은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와 연결된다. ... 정부의 존재를 지짛기 위해 그가 제시한 모든 논증은 조금이라도 타당하다면, 국제 정부를 지지할 경우에도 타당하다. 민족 국가들이 존재하고 서로 전쟁을 벌이는 한, 개별국가가 비효율적으로 운영되어야만 인류는 보존될 법하다. 전쟁을 막기 위한 수단을 강구하지 않은 채 개별 국가 간의 전쟁 수행 능력만 향상된다면, 모든 국가의 파멸은 불을 보듯 명백한 일이다. p717-718

 

데카르트는 고사가 아니라 찾아낸 진리를 전달하려는 열망을 품은 발견자이자 지적인 탐험가로서 저술에 임했다. .. 새로운 철학 체계의 구성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일어난 적이 없던 일로, 과학의 진보로 생겨난 새로운 자기 확신의 표시이다.

 

그런데도 내가 의심하지 못하는 대상은 남는다. 그러니까 악령이 아무리 교활하다 해도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를 기만하지 못할 터이다. 여기서 나는 신체일 리는 없는데, 신체는 환상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유는 신체와는 다른 존재이다. “내가 모든 것이 거짓이라 생각하고 싶어 하는 동안에도, 그렇게 생각한 무엇으로서 나는 반드시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p726

 

데카르트 철학은 그 밖에도 두 가지 점 때문에 탁월성을 인정받았다. 첫째, 플라톤에서 시작되어 대개 종교적 이유로 그리스도교 철학에서 발전한 정신과 물질의 이원론을 완성했거나 거의 완성했다. 데카르트의 후계자들도 포기한, 송고선에서 일어나는 기묘한 심신 상호작용을 논외로 친다면, 데카르트의 철학 체계는 병행하지만 독립된 두 세계, 즉 정신계와 물질계를 제시한다. 각 세계는 다른 세계를 언급하지 않고서 연구해도 된다. 정신이 육체를 움직이지 못한다는 새로운 생각은 ... 하지만 종교의관점에서 보면 심상치 않은 결함이 발견되어, 둘째 특징이 도출된다. 물질계에 대한 전반적인 이론 측면에서 엄격한 결정론의 입장을 취했다. p731

 

스피노자에 따르면 모든 일은 절대적이고 논리적인 필연에 따라 정해진다. 정신 영역의 자유의지나 물질계의 우연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헤아릴 수 없는 신의 본성을 표현하며, 사건들이 다르게 일어나는 일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p732

스피노자의 견해에 따르면, 당신에게 닥친 불행한 사건들이 실재하는 일이든, 태초부터 끝까지 이어진 원인들의 연쇄과정의 일부이든, 당신은 불행한 사건들이 당신에게만 불행할 뿐 우주의 차원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p746

 

정치 사회 상황은 저명하고 독창적인 사상가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반대로 저명하고 독창적인 사상가들은 후대 정치 사회의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 흔히 발생하는 상반된 두 가지 오류를 경계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일어난 사태보다 책과 더 친숙한 학자들이 철학자의 영향을 과대평가하기 쉽다. 그러나 이러한 낡은 접근에 맞선 반동으로 새로운 오류가 발생하는데, 이는 이론가들을 거의 수동적인 환경의 산물로 간주한 나머지 사건이 일어나는 과정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데서 비롯된다. p765

 

이성을 잃은 광신은 이성이 상실된 상태에서 계시를 멋대로 만들어내며, 결과적으로 이성도 계시도 떠난 어떤 사람의 두뇌에서 빚어진 근거 없는 공상을 계시인 양 떠벌린다. 우울증이나 자만심으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은 ‘신성과 직접 교제한다는 확신’을 가질 수도 있다. 따라서 기이하고 괴상한 행동거지나 의견이 신성하다는 승인을 얻어내지만, 이것은 인간의 나태와 무지와 허영심에 아첨하는 거짓일 뿐이다. 그는 ‘광신에 대하여’라는 장을 이미 인용한 바 있는 “계시는 이성의 심리와 판결을 받아야 한다”는 격률로 마무리 한다. p778

 

3. 내가 저자라면

 

먼저, 책의 제목이 ‘서양철학사’라는 점을 다시 한번 되짚어 보았다. 그냥 생각없이 서양 중심적인 사고에 빠져 ‘세계철학사’라거나 또는 ‘철학사’라고 쓰지 않은 것에는 버틀런드 러셀의 깊은 생각이 담겨 있다. 책 제목 하나에도 그의 철학의 깊이가 보인다.

 

둘째, 서문에도 밝혔듯이 단순한 철학적 내용의 흐름만을 기술하지 않고, 정치체제, 사회문화적인 변화와 당대의 철학이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기술하고자 하는 시도는 매우 좋다고 생각한다. 철학의 원래 역할을 사회적으로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추상적인 개념들이 많을 수밖에 없는 특성을 초보자도 쉽게 철학을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간혹 너무 산만해서 핵심적 내용을 잡기가 어려운 점도 있었다. 예를 들어 에피쿠루스학파나 스토어학파를 설명하는 부분이 특히 그랬던 것 같다. 또한 몇몇 주요 인물들을 죽 나열하면서 각자의 생각이나 논점이 된 부분 그리고 후대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까지를 세심하게 배려한 점은 좋은데, 각 인물들의 영향력 정도나 주요한 흐름을 이해하는 데는 오히려 너무 사례가 많지 않나 싶기도 했다.

 

셋째, 해당 학파나 철학자의 핵심적인 키워드를 따로 정리해주면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밀레토스학파라면, (내가 너무 참고서에 익숙해져 있나?)

〇 배경 : 이오니아 밀레토스 - 종교적 영향이 적은 부유한 상업도시

〇 주요인물 : 탈레스(만물의 근원을 물이라고 주장)

아낙시만드로스(만물이 제일실체에서 비롯-무한하고 다양한 형태로 변화)

아낙시메네스 : 제일실체가 공기라고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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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있는마음
2010.02.22 11:54:50 *.53.82.120
참고서 스타일 편집!
저도 넘넘 필요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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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철
2010.02.22 15:20:17 *.154.57.140
이신전심이군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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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
2010.02.23 00:43:16 *.53.229.15
저도 참고서 스타일 편집 강추입니다.. (아, 저렇게 썼으면 이해가 잘 됐겠구나..라고 생각한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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