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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7일 08시 48분 등록
<변화학 칼럼 11>

세 친구


문 요한 (변화경영 연구소 연구원, 정신과 전문의)




길 잃어버리기
심심해서였을까? 어릴 때 나만의 놀이가 있었다. 일명 ‘길 잃어버리기’ 놀이!
방법은 무지 간단하다. 무작정 집을 나가 낯선 길을 따라 헤매고 다닌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거리라는 것이 고작 버스로 서너 정거장 정도의 거리나 되었을까? 하지만 어린 나에게는 새로운 문명을 찾는 탐험가의 심정처럼 매번 설레고 흥분되었다. 그 탐사에는 길동무가 함께 했다. 처음에는 두 명이었다. ‘더 가면 무엇이 나올까? 아! 가보고 싶다!’고 하는 호기심 친구와 ‘집으로부터 너무 벗어난 것이 아닐까?’ 라는 불안감 친구가 내 두 손을 양쪽에서 꼭 잡아 주었다. 호기심 친구는 늘 더 멀리까지 가보자며 나를 재촉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또 다른 친구인 불안감이 자꾸 강하게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나와 불안감은 호기심이라는 친구를 설득시켜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에 불안감과 나는 음모를 꾸미고 호기심 친구를 몰래 먼 곳에 남겨두고 돌아왔다. 불안감과 손을 잡고 집에 오면서 후회는 없었지만 남겨진 친구가 걱정되어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며칠 후에 두고 온 친구를 찾으러 길을 나섰다.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안전빵 인생!'
그 뒤로 난 호기심이라는 친구를 까맣게 잊고 살았다. 그런 친구가 있었다는 사실도 기억해내지 못할 정도였다. 그때부터 불안감이라는 친구와 나는 둘도 없는 단짝 친구가 되었다. 그의 손만을 잡고 우리는 남들이 많이 가는 잘 닦여진 길만을 다녔다. 말 그대로 ‘안전빵 인생’이었다. 주위에서도 잘하고 있다는 칭찬 일색이었다. ‘이게 아닌 것 같은데...’하는 의문도 들었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무언가 다른 길도 있는 것 같아 주위를 곁눈질 했지만 내 단짝 친구의 손을 뿌리치지 못했다. 그런데 언제부터 그 길 위에는 사람이 넘쳐흘렀다. 앞은 잘 보이지 않았고 조금만 천천히 갈려고 해도 인파에 떠밀려 나의 속도를 지킬 수 없었다. 급하다며 밀치고 가는 사람들, 길옆에 가꾸어진 꽃밭으로 지나가는 사람들, 넘어진 사람을 밟고 가는 사람까지 있었으며 어느 날은 그 속에 내가 있었다. 짜증과 권태와 푸념의 나날들이었지만 조금만 더 가면 넓은 신작로가 펼쳐 있을 것이라 믿었다.

yesterday once more
그러던 어느 날! 내가 걷는 이 길의 끝이 궁금했다. 몹시도 궁금했다. 친구와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 보았다. ‘아직도 그런 질문을 하며 사니?’ ‘다른 길도 다 똑같아. 그나마 이 길이 편해.’ ‘인생 뭐 있어!’라는 대답뿐이었다. 그러나 난 끝을 알고 싶었고 다른 길은 어떤 모습인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습관적으로 흔들거리는 팔다리를 붙잡았다. 그리고 길옆에 높은 나무위에 올라갔다. 불안감이라는 내 친구는 펄펄 뛰며 내려오라고 했지만 난 듣지 않았다. 높은 곳에 올라가니 길은 하나가 아니었다. 험난한 길도 보였지만 작고 아름다운 길도 놓여 있었다. 미로에 갇히거나 돌밭을 걷는 사람도 있었지만 아름다운 오솔길에서 길 맛을 음미하며 걸어오는 이들도 있었다. 그 중에 아는 얼굴이 있었다. 그는 ‘yesterday once more'라는 노래를 부르며 나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에브리 샤랄라라~♪ 에브리 오우오우~♬’ ‘누구더라? 그래! 맞아!’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호기심이라는 옛 친구였다. 그 친구를 보는 순간 고구마 넝쿨을 캐듯이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따라 올라왔다.

'변화'라는 길
지금 나는 깨복장이 옛 친구를 만나 새 길을 간다. 처음에는 익숙함에서 멀어져 낯설음으로 향해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말라빠진 익숙함에서 벗어나 끈적거리는 그리움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불안감이라는 오랜 친구를 버린 것은 아니다. 애를 먹었지만 그 역시 우리의 길에 함께 하고 있다. 호기심과 다시 만난 나는 예전처럼 불안감이라는 친구의 이야기를 맹신하는 것이 아니라 균형있게 들어주고 차분히 설득시킬 여유와 자신이 붙었다. 지금 변화의 길 위에 우리 세 친구는 함께 서 있다.

갈 길이 보이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세상이 미로처럼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면 어찌 해야 하나? 일단 가던 길을 잠시 멈춰 보자. 그리고 지금 눈 위치보다 더 높은 곳이 있다면 올라가 살펴 보자. 그 곳에서 그리운 옛 친구를 찾아보자.

‘확실성이란 의심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여행은 나로부터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의 무수한 삶을 찾아 헤매는 절실함으로 내 안으로 들어가면서 사색하는 행위일 터이다. 여행의 목적지가 다르다고 해도 되돌아오는 곳은 같다. 바로 자기 자신이다. 여행은 자기 자신을 기억하는 행위이다.’
-안 치운, 그리움으로 걷는 옛 길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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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진
2005.06.07 10:54:47 *.247.38.124
요한님 잃어버린 옛 친구를 만나 새 길을 가게 되었음이 얼마나 좋으신가요?
저는 하도 남들이 가지 않은 길만 가다가 지쳐 남들이 가는 길로 가려고 마음 먹은 적이 있었답니다.
그러고 보니 요한님과 거꾸로 가는 길이었네요.
그러다 요즘은 변화와 안정 사이의 균형을 적잘히 맞추어 살려고 합니다. 이건 또 요한님이랑 같은 길이죠?
세상에 많은 길이 펼쳐 있어도 우리가 가는 길은 많아야 한 두가지 밖에 선택할 수 없는것 같습니다.
내가 관심있는 길, 가고싶은 길은 이 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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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일
2005.06.07 13:53:18 *.235.2.57
옛 친구와 다시 조우하게 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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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기원
2005.06.09 06:12:25 *.190.172.58
길에대한 동화같은 이야기가 많은 부분에서 동감을 하게됩니다. 무수히 많은 이땅에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을 수있게 되기를...()...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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