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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9월 21일 15시 35분 등록
너나 낳으세요

▣ 김신명숙/ 작가


여보세요. 응, 너구나.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뭐하냐고? 원고 쓸 거리 찾느라고 기사 모아둔 거 뒤적이고 있는데. 주제? 요즘 난리인 저출산 문제를 다뤄볼까 해. 그러엄, 한국 여자들 많이 똑똑해졌지. 10년 전만 해도 결혼하면 약속이라도 한 듯이 두명씩은 낳았잖아? 애 키우랴 일하랴 미친년 널뛰듯하다 인생 한순간에 폭삭 찌그러들면서도. 아니, 국가랑 계약이라도 맺은 거냐 뭐냐, 국가가 애 키우는 일에 퍽이나 나서겠다, 서양 여자들의 출산 파업 본 좀 봐라, 여러 가지로 한심해했잖아. 글쎄 말야, 우리의 십년은 세계의 백년이라더니, 나도 잘 안 믿어져. 1.16명, 세계 최저라는 거 아냐.

1.16명과 4만8천명 사이

맞아, 한국 여자들 대단해. ‘애, 너나 키우세요’ 한방 제대로 먹이고 있는 거지. 그건 그렇고 네 남편 새로 시작한 일은 잘돼? 요즘 어디 네 남편만 그러니? 잠깐만, 기사가 하나 있었는데, 여기 있네. 올 상반기 중 명예퇴직, 정리해고로 직장 잃은 사람이 월평균 4만8천명, 5년 만에 사상 최고를 기록했대. 요즘 직장이 다 불안한가 보더라. 그러니 애를 더 안 낳지. 맞아, 나도 아까 이 기사를 보면서 한 생각인데 이런 급격한 출산율 하락은 남자들의 적극적인 공모 없이는 불가능했을 거야. 확실히 요즘은 남자들도 애 낳기를 기피하잖아. 얼마 전에 ‘1.2.3운동’인가 뭔가 하는, 그렇지, 30살 전에 애를 두명 낳자니까, 그러면 40대엔 파산한다며 눈 흘기고 난리였잖아. 우리 부모 세대도 돌변한 것 같아. 누가 늙어서까지 애한테 얽매이고 싶겠어?

그래, 그러고 보니 출산 파업이 여자들만의 엿먹이기가 아니네. 가부장제에 대한 파업만이 아니라 사람들을 콩 볶듯이 볶아대는 기업들과 정글 자본주의에 대해 더 이상 노동력을 대주지 않겠다는 파업이고, 또 안심할 수 있게 보육과 교육 문제를 책임지지 못하면 국민생산 못해주겠다는 파업이고, 노인은 집에서 애나 보라는 노인 차별에 대한 파업도 되고…. 정말 엄청난 멀티 파업이다, 얘. 야, 너 정말 표현 한번 잘한다. 그래, 여자와 남자, 노인들, 결국 전 국민이 합쳐서 우리 사회에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사망 경고를 내리고 있는 셈이야. 더 존속할 필요가 없다고.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선 출산 파업이라고? 너 운동가 다 됐구나. 하긴 전세계 사람들이 뭉쳐 출산 파업으로 맞선다면 세계사회포럼인가 뭔가 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가 크겠다. 그 선봉에 한국이 서겠네. 정말 대단한 나라야, 우리나라.

그럼, 저출산이 나쁜 것만은 아니야. 네 말대로 노동력이 부족하면 잘릴 걱정 없을 거고 여자, 노인, 장애인에게도 어서 옵쇼 할 거 아냐? 인구가 줄면 자연도 덜 파괴되고 사람 귀한 줄도 알게 되고. 그리고 기업이나 국가가 언제 우리들 답답할 때 제대로 도와주디? 왜 우리가 그들을 걱정해야 해? 그래, 성장률보다 중요한 건 인간이지. 난 그만 성장해도 좋으니 그냥 인간답게 살 수 있으면 좋겠어. 저출산은 우리 시대의 질병을 읽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징후’라고 봐. 언론에선 재앙이라고 떠드는데 재앙이 아니라 그 징후야. 그럼, 그럼. 그런 성찰을 위해서도 ‘아이가 없는’ 상태가 좋다고 봐. 앞날은 불안하고 한번 추락하면 끝장인 세상에서 아이들까지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판적 성찰과 행위가 가능하겠어? 애를 가지면 그 순간부터 체제의 노예가 되는 거지.

출산파업의 선봉에 나서라고?

요즘 같은 세상에 필요한 사람은 애 잘 낳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애 없는 사람이 아닐까? 그래, 그런 사람들이 많아져서 저항세력, 해방세력으로 뭉쳤으면 좋겠어. 그러니까 여성의 몸과 영혼을 옭아매는 가부장제와 인간의 얼굴을 버린 자본주의의 근본이 흔들릴 때까지, 아이들에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의 비전에 모두가 합의할 때까지 출산 파업은 계속돼도 좋을 것 같아. 아예 선봉에 나서라고? 그럴 용기는 없지만 원고 주제는 그걸로 할게. 원고 써야 하니까 그만 끊자. 또 연락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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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진
2005.09.23 11:54:05 *.118.67.80
어떡하죠?
셋째 낳으려고 하는데 와이프가 이 글 보면 ......
미영님께서 책임지실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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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영
2005.09.24 15:30:40 *.239.124.195
늦둥이를 계획하고 계신가보군요..
두 분의 선택에 대해 제가 무슨..^^
그저 미리 축하드릴 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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