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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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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0월 6일 14시 38분 등록
<욕망과 꿈>

큰아이 낳고 1년이 지난 1996년.
일을 찾아야겠다는 강렬함이 하루하루 나를 괴롭혔다.
전문적인 직업을 갖고 싶었다. 준비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남편에게 회계사 공부를 하고 싶단 얘기를 꺼냈고, 둘째를 낳자는 대답을 들었다. 콧방귀를 뀌며 무시했지만, 망설이는 사이에 정말 둘째가 인사를 했다. 후퇴를 할 수밖에 없었다.

둘째를 낳고 백일쯤 지나서 방통대 경영학과에 원서를 냈다. 아이 둘 키우면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3학년이 되면 회계사 공부와 병행하고자 계획했고 틈틈이 회계사 시험에 관한 정보를 모으고 합격자 후기를 읽으며 미래를 상상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고 안 해도 뭐랄 사람 없는 공부를 하는 동안, 많이 행복했다. 그렇게 30대를 투자할 마음이 있었다.

그 당시 내 안에는 부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과 글을 쓰고 싶다는 꿈이 싸움을 하고 있었다. 욕망의 표현이 회계사라는 직업과 맞아 떨어졌고 방통대 공부하는 동안은 욕망이란 녀석의 도움을 받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졸업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덤으로 받은 선물 중에는 ‘백만장자’ 따위에 휘둘려 꿈을 미뤄놓는 일은 하지 말자는 것도 있었다. 당연히 꿈을 선택하게 된 일 또한 고마운 일이다.

가슴이 따뜻해지고 얼굴엔 미소가 번지는 글을 쓰고 싶은 나의 꿈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단 말과 다르지 않다. 구체적이지 않아 늘 주저하게 되고 간이 안 된 콩나물국처럼 닝닝하기 짝이 없다. 소설을 쓰고 싶은 건지, 시를 쓰고 싶은 건지, 수필인지, 동화인지, 노래가사인지, 광고카피인지, 방송대본인지, 드라마극본인지, 시나리오인지, 판타지인지, 뭔지 도무지 모르겠다. 아니, 진짜 문제는 알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은 이렇게 살고 있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미래의 어딘가에는 이보다 더 나은 것이 있을 것이다.’
그런 근거 없는 기대, 대책 없는 전망이 있다.
만족할만한 성과는 없지만 지금의 글쓰기도 나쁘지는 않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의 나도 꽤 괜찮은 편이다. 아무도 인정해 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만 빼고는.


<낯선 곳에서의 아침>

정신력만 있으면 못할 게 없다고들 한다. 호랑이 굴에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하지만 수영을 못하는 사람이 물에 빠졌다면, 그것도 깊고 깊은 바다 한가운데.
이런 상황이라면 정신력이 답이 될까?
내 결혼의 시작은 그랬던 것 같다. ‘결혼’이 뭔지도 모르고 그 속으로, 그것도 뛰어서 들어갔다. 남들 다하는 일인데 나만 왜 이 모양일까 싶은 자괴감은 차라리 순수했다.
정신을 차릴수록 죽고 싶었다. 차라리 정신을 놓고 있는 게 나았다.

한참을 허우적대다가 ‘여성학’을 만났고, 간신히 물 위에 뜨게 되었다. 결혼이란 두 사람의 사랑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두 사람 이상의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였다. 나에겐 맞지 않는 옷이었다.
출산과 육아라는 엄청난 희생을 ‘엄마’라는 이름으로 감당해야하는 동안 내 속의 아주 많은 나를 만날 수 있었다. 눈물과 분노와 좌절 속에서.

전생에 가장 사랑했던 사람의 얼굴이라는 내 얼굴조차 사랑할 수 없었던 고통의 시간이 계속되던 1999년. 장학생 명단에 이름이 오르기 시작한 2학년 2학기에 만난「낯선 곳에서의 아침」(구본형, 생각의 나무)은 첫 장부터 나를 울게 만들었다.

'자신과 만나고 싶은 분들에게 드립니다.
현실과 정신세계의 중간쯤에서 풍요로운 삶을 원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세계를 탐색하는 자유를 얻고 싶은 분들에게 드립니다.
그리하여 불협화음 속에서도 저마다 한 가닥의 진리를 끌어안고 산다는 것을 인정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핏줄을 타고 몸속으로 흐르는 주어진 재능에 흥분하는 사람들에게 드립니다.
그리하여 평생 그것만을 위해 울고 싶은 분들에게 드립니다.
햇빛을 뼛속으로 받아들이고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 놓아두는 사람들.
그리하여 노동과 놀이를 같은 것으로 만들어 가는 사람들.
바로 살아지는 대로 살아가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자신을 만나지 못한 것은 찾지 못했기 때문임을 알고 있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그리고 낯선 곳에서 아침을 맞듯 인생은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믿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의 글.

'우리는 인생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배워야 한다. 미쳐야 한다. 적어도 미치지 못하는 자신 때문에 미쳐야 한다. ‘자신이 종사하는 분야에 모든 것을 내놓아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없다면 그 분야를 떠나야 한다. 타협이란 있을 수 없다.’ 정신 나게 하는 말이다.'

(이 글들은 알록달록 편지지에 정성스레 적혀 냉장고에 붙여졌고 두 번의 이사를 하는 동안 함께했다)

남편이 육아를 함께 하지 못하는 날이 계속되면서 하루하루 지쳐갔고, 뉴스에 나오는 ‘아이들을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엄마’ 보도에 크게 고개를 끄덕이던 그즈음의 내게 있어 ‘익숙한 것과 결별’하고 ‘낯선 곳에서 아침’을 맞는 길은 결혼생활을 정리하는 일이라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뭔가로 짓눌린 어깨가 무거워 고개를 푹 숙인 채 발등만 쳐다보며 힘겹게 계단을 오르는 내 모습을 확인하는 일상은 아픔이었다. 맞지 않는 옷을 벗어버리고 싶었다.

뭔가 변화가 필요했고, 내게 선택의 기회를 주기로 했다. ‘낯선 곳에서의 아침’이 알려준 단식의 방법을 선택했고, 여러 가지 단식의 종류 중 생수단식을 택했다. 단식기간 동안의 식구들을 위해 장을 봐다 반찬을 준비하고, 청소며 빨래에 집안일을 정리해놓고 2000년 봄, 3일 생수단식에 성공했다.
감식 3일, 본단식 3일, 회복식 4일, 열흘에 걸친 단식은 임신, 출산, 육아와 비유할 수 있을 정도로 정말 힘들었지만, 만족도는 그 이상이었고 스스로를 칭찬해 줄 수도 있었다.


<익숙한 것을 찾아서>

다시 자리를 잡아 일상을 꾸릴 무렵, 남편의 실직이 찾아왔다. 맞벌이 준비를 시작했고 2001년, 결혼 7년차 전업주부로서 재취업할 수 있었다.
계약직 인바운드 상담원으로 삼성카드사 근무를 한 1년은 그야말로 치열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점심시간도 없이 전화상담을 했고, 퇴근 후엔 종일반에 맡겨진 아이들을 데려와 저녁을 해먹고 살림을 꾸려가는 일상에다, 방통대 졸업반 논문준비며 시험공부까지, 팽팽 돌아가는 하루하루를 힘겹게 지탱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해 11월, 의료사고로 아빠를 보내드렸다.

그 후, 정신없이 맞이한 2002년 1월에는 방통대 졸업을 했고, 3월에는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5월에는 계약만료로 퇴사를 했다. 그리고는 한동안 정신적인 공황상태를 경험했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정말 중요한 건 뭐지? 나는 누구일까?
인생의 어느 한 때쯤은 자신의 질문에 온몸을 다 열어 스스로 대답해야 한다는데 아마도 그런 끈적끈적함이었을 것이다.

나를 돌아보는 일은, 힘들기만 했던 결혼생활의 원인이 결국은 내 안에 있었음을 확인하는 시간들이었다. 부모와의 사이에서 해결되지 않은 감정의 찌꺼기들과 기억나지 않는 어린시절을 더듬는 일은 고통스러웠지만 멈춰지지 않았다.
묘하게 울퉁불퉁한 나를 기억이 이끄는 대로 들여다보며 가까이에서 안아주곤 했다. 어린시절 부당하게 겪었던 일들에 화가 나서 울기도 했고, 끝내 알지 못하는 두려움에 가슴 졸이며 떨기도 했고, 때 지난 자신감을 갖기도 했다. 그렇게 내 감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기억하건대 사춘기를 지날 즈음의 난 할머니가 되고 싶었었다. 툇마루에 앉아 먼 하늘을 아득히 바라보는 그런 할머니가 되고 싶었다. 이 세상 다 살고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그런 할머니가 되고 싶었다. 그 사이의 삶은 생략한 채.
나에게 삶은 두려움과 불안이었던 모양이다. 툭하면 도망가고 싶고, 피하고 싶고, 어딘가로 숨고 싶은, 그저 그런 힘듦이었나보다. 결혼이 내가 원하던 도피처와 거리가 멀었던 것은 당연했다. 정리되지 않은 상처투성이로 ‘엄마노릇’까지 감당하느라 아직도 헤매는 나도 나지만, 여전히 힘겨울 아이들을 생각하면 한없이 미안하기만 하다.

5녀 1남의 장녀, 두 딸의 엄마, 아내, 큰며느리.
결혼과 함께 감당해야할 역할에 짓눌려 어느 것 하나 만족스럽지 않게 생활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 자신’에게 집중하기 시작했고, 오히려 편안해짐을 느꼈다. 어찌보면 참 나쁜 딸이고, 못된 며느리고, 부족한 엄마이자, 말도 안 되는 아내이다. 그들에게 나를 이해해 달라고 하지도 않고, 나에 대한 자질구레한 설명도 하지 않는다.

세상을 바라보는 나만의 시각이 독특하다는 것을 안다. 나와 똑같이 보는 사람이 없을뿐더러 다른 사람의 설득력 있는 주장에도 쉽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다만, 내 인생에 대한 최종적인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조용하게, 담담하게 행동해나갈 뿐이다. 그것이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든, 새로운 도전에 대처하는 것이든, 하고 싶은 주장을 하는 것이든, 어떤 결과를 이루어내는 것이든, 가끔은 옳을 때가 있고 그러면 된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은, 내 생각이 옳을 때가 아주 많다. 물론 나만의 생각이다.


<삶이란>

무지와 깨달음의 싸움. 내가 생각하는 삶이다.
작고 평범한 일들은 말로 할 수 있지만, 가슴 벅찬 일들은 말로 표현될 수 없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 ‘아하!’하는 탄성과 함께 가슴에서부터 물이 차올라 눈에서 넘쳐 그 눈을 감고 기도를 올리는 것이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삶에 무릎을 꿇는 것이 사랑이 아닐까한다.

뱃속에서 뻥뻥 발길질을 해대는 생명의 느낌을 나는 표현하지 못한다.
마취주사를 맞던 수술실의 서늘한 떨림을 나는 표현하지 못한다.
밤새워 읽은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며 흘리는 눈물을 나는 표현하지 못한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나는 표현하지 못한다.
로마의 하늘과 카프리의 바다를 나는 표현하지 못한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눈망울을, 꽃피는 봄을, 무더운 여름을, 낙엽 지는 가을을, 눈 내리는 겨울을, 동해에 떠오르는 해를, 석양에 지는 노을을, 밤하늘의 달과 별을, 죽음을, 나는 표현하지 못한다.
그리고 또 표현하지 못한다. 내가 모르는 그 무엇을.

하나의 종교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우주의 신비 속에서 지구별에 여행 온 자그마한 존재인 나는, 다른 존재로 창조되지 않고 오직 나여야만 하는 그 모습을 찾고 있다. 지금은 그림으로 치면 자화상을 그리고 있지만, 언젠가는 다른 그림도 그리고 싶다. 그리고 퍼즐조각 같은 일상들을 모아 제대로 된 모습을 만들어보고도 싶다. 뭔가 있을 것 같은 그 느낌을 확인해보고 싶다.

어쩌면 그것은 ‘둥근 삼각형’이거나 ‘망가지지 않은 것을 고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은 생애를 전부 투자할 가장 나다운 직업 하나가 있다면 찾고 싶다. 글을 통해서 말이다.


<짝사랑>

'당신은 자신이 신으로부터 받은 특별한 재능이 있다고 믿고 있는가? 그것은 무엇인가? 무엇을 하면 당신은 잘할 수 있는가? 얼마만큼이나 잘할 수 있는가? 당신은 지금 잘하는 일을 하며 인생을 살고 있는가?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왜 다른 일을 하며 살고 있는가? 하고 싶고 잘하는 일을 하며 인생을 산다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만일 그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면 당신은 왜 그렇게 살지 못하는가? 만일 그것이 어렵기 때문에 당신은 이대로 상황과 거짓운명이 만들어 놓은 대로 살 수밖에 없다면 당신의 인생은 무엇인가?'

'나는 내가 변화 관리 전문가로서 한 길을 걷고 있는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동안 이 일에 더 열심이지 못했던 것을 후회한다. 하루에 2시간씩 자신만의 시간을 내어, 읽고 정리하고 쓸 수 있다는 것은 내 사고의 지평을 넓혀 주었다.
나에게는 비전이 있다. 내가 앞으로 한 5년쯤 더 이렇게 할 수 있다면 나는 지금보다 훨씬 나아질 것이다.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보다 기분 좋은 일은 없다. 10년쯤 더 이렇게 할 수 있다면 혹시 이 분야에서 아주 가치 있는 기여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처럼 기쁜 일이 없다. 20년쯤 더 이렇게 할 수 있다면, 이 분야에 들어선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길을 가다가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잠시 경이로움을 줄 수 있고, 그리하여 그들로 하여금 자신이 이 길을 선택한 것이 옳은 일이었다는 자신감을 줄 수 있다면 그 분야에서는 하나의 일가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4년의 몰입이라......그거 괜찮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그렇게 살고 싶다.'

눈이 찢어지게 째려보고 싶은 얄미운 질문들과 34년의 비전 앞에서 나는 사랑에 빠졌다.

저자가 규정한 ‘변화를 주제로 쓰여 진 에세이적 자기 개혁 입문서’라는 「낯선 곳에서의 아침」은 책장을 넘기는 손가락에서부터 묻어나는 저자 자신에 대한 지독한 사랑의 절절함으로 내 안의 누군가를 불러댔다.
bhgoo.com 홈페이지를 들락거리기 시작했고 신간소식에 들떠하며 내 안의 누군가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메일을 통해 징징거리며 보채기도 하고 토라지기도 하는 짝사랑이 시작된 것이었다.

직장인도 아니고, 취업준비생도 아니고, 경영인도 아니고, 사자같이 젊은 놈도 물론 아닌 아줌마가 ‘인생을 통해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하는 것이 바로 진정한 실업이다’ 글귀에 꽂혀, 구석구석 박혀있는 따뜻함에 끌려, 치열함을 가장한 여유가 부러워, 답장에 설레어하며 짝사랑을 이어가고 있다.

'살아지는 대로 산다는 것은 주어진 작은 재능에 흥분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다. 그리고 오직 그것만을 위해 우는 것이다. 자신을 존중하며, 진실해지는 것이다. 자신에게 진실한 사람만이 다른 사람에게 진실하다. 그들은 태어난 대로 생긴 대로 마음이 흐르는 대로 따라간다. 햇빛을 뼛속 깊이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다. 자신을 믿고 풀어주는 것이다.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신의 음성을 따라 가는 것이다. 세상에 아직 남겨진 마음의 평화를 즐기는 것이다.'

‘익숙한 것과 결별’하고 ‘낯선 곳에서 아침’을 맞자던 나는 지금, ‘익숙한 것을 찾아서’ 가고 있다. 버리고만 싶던 어깨를 짓누르던 짐들이 보물일 수도 있음을 알아버렸다.
아주 소중한 보물...


<또 다른 길>

2003년 4월 .. 홈페이지에 구본형 선생님의 이력서가 올라왔었고 이력서 말미에 연구원 모집요강이 짤막하게 있었다. 그때 이미 응시했던 것 같다. 마음속으로는.
실제로도 ‘나만의 이력서’를 메일로 보내기도 했는데 확인해보니 받아보지 못하셨다고 했다.
이 글들은 그때의 이력서에 살을 붙인 셈이다. 신기하지만 우연은 아닌 듯싶다.

나는 구본형 선생님의 글을 좋아한다. 겨드랑이를 간지럽혀 날개를 파닥이게 하는 글을 읽으며 훨훨 날아다니는 자신을 상상하곤 한다. 날고 싶은 나를 보여주고 싶다. 왜 번번이 우울통에 빠져 허우적대는지 그 얘길 나누고 싶다.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이 되어 혼자가 아닌 나를 확인하고 싶고 성장하고 싶다. 이제는 나의 꿈이 뭔지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싶고 가장 나다운 직업 하나를 만나고 싶다.

애벌레는 나비가 되려고 하고, 올챙이는 개구리가 되려고 하듯이 나도 내 속에 감추어져 있는 나를 찾아내고 싶다. 근거 있는 기대, 대책 있는 전망을 하고 싶다. 그리고 어딘가 있을 나와 비슷한 이들과도 만나고 싶다. 따로 또 같이 길을 가며 느낌을 나누고 싶다. 자신을 찾고 있는 이들과의 만남은 설레임이다. 팔딱이는 가슴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음은 행복이다. 자신을 찾아가는 길에서 만나는 행복과 악수하며 미소를 머금은 인사를 나누는 일상을 함께 나누고 싶다.


***


이 글은 지난 2월 응시했던 연구원 모집에 제출한 '개인사' 중의 일부입니다.
‘함께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라는 답장을 받고 아주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 리뷰를 올렸고, 5월에 객원 연구원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고, 행복한 일입니다.

넘치는 자기계발서가 알려주는 방법으로 찾아 본 나의 어릴 적 꿈은 ‘현모양처’였습니다.
어디에도 ‘나’는 없는 그 꿈을 나는 바꾸고 싶습니다.
그런데 잘 찾아지질 않습니다.
도대체 어디에 처박혀 있는지 보이질 않습니다.

아니, 어쩌면 새로운 현모양처를 만들고 싶은지 모릅니다.
내 두 딸에게 ‘좋은 선배’로서의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지도 모릅니다.
내 남편에게 ‘좋은 친구’로서의 아내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다 함께 행복한 모습을 마음속에 그려봅니다.

아마도 나는..그 꿈을 찾고 있나봅니다.


IP *.239.124.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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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기원
2005.10.06 15:33:59 *.7.28.25
김미영선생님!
많은 부분에 동감이 많이 갑니다.
"삶이란 무지와 깨달음의 싸움"
요즘에 저는 현실은 잠(夢)이고, 꿈(VISION)은 실존이라 믿고싶습니다.
오늘 꿈꾸는 것이
내일 이루워지는 변화무쌍한 시대
더 많은 꿈을 가꾸고 행해야한다고 다짐해봅니다.

부디 원하시는 꿈 꼭 찾고 이루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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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맨
2005.10.06 21:41:02 *.155.129.241
무심코 읽고 지나치기에는 글쓴이에게 미안할 것 같다. 드러내고 싶은 부분도 있었겠지만, 드러내고 싶지 않은 부분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인생사가 비슷비슷 하다고 하지만, 그건 거짓말인 것 같다. 적어도 님의 인생 앞에서는 말이다.
님은 어쩌면 꿈의 성취를 떠나서 그 꿈을 즐기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또다른 꿈을 향해서 가는지도 모르겠다. 짧은 소견 이지만 이미 님은 꿈을 꾸는 동시에 그 꿈을 취미로 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왠지 그 취미를 책으로 만나고 싶다. "꿈은 꾸는 것이 아니라, 취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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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미
2005.10.07 12:45:04 *.110.63.179
애벌레는 나비가 되려하고 올챙이는 개구리가 되려 하고 김미영님은 꿈의날개를 단 김미영님이 되려하는군요
지난주일겁니다
아들녀석 운동회를 갖다가 청군 백군 나눠 열심히 목청껏 응원하는 응원소리가 꿈의노래처럼 들렸습니다
꿈을 이루어 가는 좋은선배가 되겠다는 말씀에 제 자신이 독려 됩니다
저도 아들의 꿈의노래가 날개를 달 수 있도록 하는 좋은 선배가 되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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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진
2005.10.08 11:38:47 *.118.67.80
당시 스승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어요.
연구원 모두의 평균 이상의 능력을 갖고 있어 이미 내가 보살펴줄 수 있는 분이 아녔던 분이 있는데 그 분은 연구원에서 아쉽지만 참여할 수 없었노라고...
미영님이 아마 그 분인 것 같군요.
다시 읽어 보는 마음이 같이 울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전 행복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이렇게 재능있는, 꿈을 찾는 분이 곁에 계시단는 것에요.
글이 가슴을 때립니다. 아리도록 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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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영
2005.10.08 12:57:34 *.239.124.195
......
뭔 말이든 하고 싶은데..생각이 나질 않네요..
......
그리고 노진님..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분은 제가 아닐껍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anyway..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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