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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병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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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0월 15일 21시 28분 등록
<사랑하는 여보에게>

여보. 오늘 드디어 우리집 계약을 했죠. “당신이 원하는 건 뭐든지 다 해줄 수 있다, 다 들어 주겠노라”고 큰소리치면서 결혼한 지 6년 2개월 만에 당신이 그리 원하던 우리집이 생겼네요. 아까 집을 함께 둘러보면서, 당신은 무엇을 생각했나요? 나는요, 예전에, 우리 결혼하던 시절을 생각했어요. 아주 오래 전도 아닌, 불과 몇 년 전인데, 참 아득하게 느껴지네요.

금반지 한 개 달랑 주고, 나는 공짜로 당신과 결혼을 했어요. 이등병 때한 결혼이지만, 자신있었어요. 제대만 하면, 정말 당신을 행복하게, 원하는 건 무엇이든지 들어주면서 여유롭게 살 자신이… 그런데, 그게 아니네요. 나만 여유롭게 살았네요. 당신은 억척스럽게 살았네요.

며칠 전, 1년 만에 용제씨 부부와 노래방에 갔을 때, 당신은 “요즘 노래를 아는 게 없다”면서 당황해 했었죠? 나는 속으로 더 당황했어요. 당신이 모르는 최신곡들, 나는 알고 있었으니까요. 당신, 결국 작년 이맘때 노래방에서 불렀던 노래를 다시 불렀죠? 연애할때, 두시간을 불러도 다 못 부를 정도로 많은 노래를 알던 당신이었는데, 왜 노래를 못 부르게 되었나요? 그 동안 무얼 했나요?

결혼 6년, 나는 어느 새, 못난 남편이 되어 있네요. 러닝 머신에서 5분도 뛰지 못하고 헐떡거리는 당신에게 “마라톤대회 나가야 하니 아침 일찍 인절미 구워 달라”고 부탁하는 철없는 남편이 되어있네요. 우리 생생한 젊음들끼리 만나서 결혼을 했는데, 그새 왜 나만 이리 잘 뛰고, 잘 놀게 되었나요? 내가 운동하고, 노래 부르는 동안, 당신은 무얼 했나요?

당신은 정민이 낳고, 놀아주고, 밥 먹이고, 또 놀아주고, 기저귀 갈아주고, 목욕시키고, 동화책 읽어주고, 또 기저귀 갈아주고, 그러면서 내 얼굴피부 나빠졌다고 억지로 피부과 데려가 마사지 받게 하고, 젊게 보여야 한다고 백화점 데려가 청바지 사주고.

당신은 아줌마면서, 나는 총각처럼 만들려고 애쓰면서 살죠. 당신은 농담처럼, 우리집에는 아기가 둘이 있다고, 근데 큰 애가 훨씬 키우기 힘들다고 말하죠. 신혼시절 당신의 수호천사가 되겠다고 큰소리쳤던 나는, 결혼 6년 만에 당신의 큰 아기가 되어 있네요. 미안해요.

난 당신의 큰 아기인 게 너무나 행복했지만, 당신은 참 힘들었죠. 앞으로는 당신이 나의 큰아기가 되세요. 서툴지만, 노력하는 당신의 아빠가 될 게요. 결혼할 때 내가 했던 말, 기억하나요? 당신이 “나를 얼만큼 사랑해?” 하고 물으면, “무한히 사랑해” 라고 답했었죠.

이제 그 말 취소할래요. 나는 당신을 작년보다 올해 더 사랑합니다. 어제보다 오늘 더 사랑하구요, 오늘보다 내일 더 많이 사랑할 겁니다. 당신은 어느새 존경하는 내 어머니의 모습을 닮아 있네요. 당신 옆에 오래있을 게요. 당신은 오래만 살아주세요. 더 많이, 더 깊게 사랑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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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인표를 처음 보게 된 건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안에' 에서 가죽잠바에 오토바이를 타고, 색소폰을 불고 개 폼 잡던 모습이었다.
당시 그는 열광적인 여성 팬들을 몰고 다닐 정도로 인기가 폭발적이었고 팬 중에는 그 당시 나랑 사귀던 우리 와이프도 끼어 있었다.
연예인이라는 게 뭐 대충 대충 그러다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게 일반적인 시나리오인지라 나는 그를 시니컬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국 영주권을 가지고 있던 그가 자진해서 군 입대를 했다는 기사를 보고 독특한 결단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이제 차인표의 인기는 막을 내리는구나 생각했었다.
그러나 나의 이런 판단은 크나 큰 오판이었다.
그는 한반도의 현실을 희화화한 007 영화에 출연을 거부할 줄 아는 의식 있는 모습으로, 기업과의 계약에서는 성실함으로, 팬을 대하는 태도에서는 진실함을 늘 보여 주었다.

그러나 나를 더 감동하게 만든 것은 공적인 영역이 아닌 그의 개인적인 일상사의 단면이었다.
몇 년 전 모 일간지에 원고 형식으로 게재된 이 글을 최근에 보게 되면서 잔잔한 감동이 몰아치면서 적잖은 반성을 하게 되었다.

나는 딸 셋 키우기가 힘들다고 하고, 와이프는 외동아들 키우기가 제일 어렵다고 한다.
대단한 시각차이 속에서 살고 있다.
이런 인식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현재 알콩달콩 수준은 아니지만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다.

나 역시 연예할 때는 온갖 감언이설을 쏟아내면서 그 당시 처녀 한명의 귀를 무지하게 어지럽혔다.
하늘의 별은 만약 내가 그 당시에 딸 수 있었다면 현재 남아 있는 별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남발한 결혼 공약의 이행을 감사해보면 정치인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땐 그랬다. 아니, 그랬어야만 했다.
사랑이란 유치하면서도 매혹적인 것이고, 때론 늦가을에 간이역을 찾아가는 오붓함이었다.

결혼하고, 애 둘 키우면서 사랑은 꺼내기 참 힘든 말로 변했다.
사랑한다는 말은 와이프와 내가 가끔 분위기가 업이 되거나 생일 같은 특별한 날의 멘트가 되고 말았다.
지금 내뱉는 '사랑한다'는 짧은 말에는 젊은 날의 '언제나'(forever)라기 보다는 차인표가 말한 것처럼 '어제보다 더'(more than)라는 의미가 숨어 있다.

'자기야, (어제보다 더 아름답게) 사랑할께'

그래서 나는 '우리는 어제보다 아름다워지려는 사람을 돕습니다.'라는 비전을 가진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원으로 활동하면서 이 곳으로부터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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