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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병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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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0월 25일 00시 48분 등록
지난 주 오랜만에 직장후배와 점심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첫 수저를 채 들기도 전에 “형은 도대체 언제 책을 읽어요?” 라고 질문을 건네왔다. 불가사의하다는 표정이었다.

“왜 궁금해? 그럼 술 한잔 사”
“헉~ 그러니까 내 말은 허구한날 일하고 술 마시느라 간 해독할 틈이 없는데 어찌 뇌를 돌릴 수 있느냐고?”

절대적인 시간의 양을 보면 자기에게는 없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시간이 나에게 있는 것처럼 보인 모양이다. 그러나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24시간이 주어져 있다. 문제는 인생에 대한 절실함의 차이다. 이 말은 내가 월등하다는 뜻이 절대 아니다. 다만 주어진 시간이 사무칠 정도로 소중하게 느껴진다면 시간의 질적 측면에서 개인차는 존재한다고 나는 믿는다.

나는 출퇴근 전철 2시간이 유일하게 고정적인 독서 시간이다. 이전에는 당연히 취침시간이었다. 일주일에 절반은 퇴근을 장담하지 못하니 평일에는 대략 평균 1시간 30분 정도가 투자된다. 여기서 모자란 부분은 주말(특히 토요일 밤에서 일요일 새벽으로 이어지는 황금시간)에 벼락치기로 보충한다. 일주일에 책 한 권을 읽어야 하나 요즘은 잘 지켜지지 않는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마음이 풀어진 것이 그 첫째요, 둘째는 공사다망이다. 셋째는 책을 읽으면서 생각이 많아지다 보니 책이 쉽게 넘어가지 않는 점이다. 과연 이 구절이 나한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나라면 어떻게 할까?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물다 보니 진척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책 읽는 목적이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가는 일’이라는 맹자의 말을 이제야 알 것 같다.

구본형님의 ‘오늘 눈부신 하루를 위하여’ 에서 알려준 독서 방법에 기대어 나의 경험을 소개한다. 아직 일천한 책 읽기이지만 지난 7개월 동안의 깨달음이 혹 도움이 될까 하여 몇 자 적어본다.

많이 읽어라. 많이 읽는 것의 기준은 최소 2주에 한 권은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동안 필독서로 읽은 책이 약 20권이다. 그 밖에 업무 관련 책 몇 권과 소설 등 소프트한 책 몇 권을 더하면 3월부터 약 30권 정도된다. 처음에 책을 읽을 때는 필독서 한 권만을 뚫어지게 보았지만 지금은 지겨우면 중간중간에 부담 없는 책을 끼워 넣는다. 소프트한 책 읽기는 밑줄을 긋거나 독수리의 눈매로 보지 않고 순간의 느낌으로, 전체적인 메시지로 읽는다. 최근에 읽은 위기철의 ‘고슴도치’ 같은 책이 그러하다.

좋은 책을 골라야 한다. 이 대목은 장족의 발전을 한 것으로 자평한다.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전에는 성공확률이 절반도 안 되었는데 지금은 그래도 70~80% 수준에 이른다. 우리를 사정없이 물어뜯고 찌르는 그런 책들만을 읽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낭비다. 일단 좋은 책을 읽으면 그 책과 연관된 책은 대부분 좋다는 것의 나의 경험이다. 예를 들어 그 책의 저자가 쓴 또 다른 책, 책 내용에서 암시한 다른 책, 독자 서평에서 그 책과 비교우위에 있다고 소개한 책, 믿을 만한 사람이 권유한 책은 값비싼 대가를 치르지 않아도 된다.

천천히 읽고 마음을 비워라. 책 읽기는 마라톤과 비슷하다. 처음에는 힘차게 출발하지만 책 절반이 넘어가면 힘이 떨어지고, 지겨워진다. 빨리 읽겠다고 오버페이스하면 책 읽기를 포기하거나 읽어도 남는 게 없다. 책 한 권을 천천히 읽는 사람은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다.

천천히 읽는다는 말은 음미하고 생각하고 의심하라는 뜻이다. 집에서 책을 읽다가 가슴에 와 닿는 구절이 있으면 즉시 일어나 왔다 갔다 거실을 왕복 2회를 하면서 곱씹어 본다. 전철에서 읽은 경우에는 목적지로 이동하면서 복기를 한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내 자신의 편견을 버리고 저자의 입장에서 역지사지해 보는 것이다. 솔직히 그 동안 책을 읽을 때 저자는 소외되어 있었다. 저자란 인물은 책을 맨 처음 손에 쥐자마자 한 번 힐끗 쳐다보는 아이쇼핑의 대상이었다. 비단 책 읽기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서도 상대방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만큼 상대방을 더 잘 이해하는 방법은 없다. 요즘은 책을 읽기 전에 저자에 대해 미리 검색해 보는 습관이 생겼다. 분량으로 승부를 건 책 ‘오리엔탈리즘’을 읽을 때 저자 에드워드 사이드에 대한 선이해가 무척 도움이 되었다. 예전에는 문장 하나, 단어 하나에 집착하였으나 근래에는 목차를 유심히 본다. 전체적으로 저자가 글을 어떻게 논리적으로 전개하려고 했는지에 초점을 두고 바라본다. 천천히 읽기와 마음을 비우기는 자신의 의심을 극대화하고 자신을 해체하는 이중성을 요구한다.

체득하여 실천하라. 글로 보는 것은 머리로 이해할 뿐이지 가슴으로 체득되기는 어렵다. 아직 내공이 역부족이어서 실천이 어렵다. 머리 속 채우기에만 만족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좋은 책을 선물하거나, 가슴을 절절하게 만드는 구절을 이메일에 인용하는 방식이 자주 사용되는 실천 방식이다. 실제 생활에, 업무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용기와 부지런함이 필요하다. 블루오션 전략을 읽고 ‘전략 캔버스’ 툴킷을 업무에 적용해 보리라는 마음은 흐지부지 되었다. 실천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상황에 맞는 재해석과 변용이 필요할 수도 있기 때문에 또 다른 노력과 고민이 수반된다. 회사의 변화를 추진하면서 존 코터의 변화 8단계를 어떻게 매칭시켜야 할 것인가는 쉽지 않은 문제이다. 완당평전을 읽고 추사고택을 방문한 것이 확실한 체득이다.

책을 읽는 것 못지 않게 정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사실 내 경우에는 책 읽는 것보다 정리하는 게 몇 배나 힘들고 귀찮은 작업이다. 그렇지만 기록되지 않으면 역사는 없다. 기억은 기록보다 못한 법이다. 책을 어느 정도 읽으면 점심시간 등을 이용해 밑줄 그은 내용을 중심으로 타이핑을 한다. 예전에는 책에다 밑줄만 그었으나 이제는 ‘책에 대한 감상’과 ‘내가 저자라면’에 관련된 내용을 책에 낙서(?)를 하고 밑줄 그은 내용을 타이핑 할 때 같이 추가한다. 이렇게 하면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별도로 정리할 필요가 별로 없다. 책을 다 읽고 나면 타이핑한 내용을 한 부 출력해서 다시 훑어본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직접 인용한 부분을 다시 이해하면서, 감상문 작성 항목으로 편입하기도 한다. 직접 인용 구절을 자주 곱씹어서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내공 향상의 지름길이다.

독후감을 쓰기와는 좀 다르지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 칼럼쓰기는 갈수록 어렵다는 것을 절감한다. 처음 글을 쓸 때는 주로 지식의 수집과 가공에 중점을 두었으나 나의 경험과 생각이 녹아 들어가 있지 않는 글은 무미건조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들에게 공명을 주지 못하는 글은 죽은 글이다. 좋은 글의 핵심은 감동이다. 그러나 밑바탕에는 거역할 수 없는 편안한 논리가 숨어있다. 지식과 정보, 경험, 예화, 명언의 원재료를 변화라는 주제로 공감 스타일로 술술 풀어 나간다.

글은 달과 같고,
자석과 같다.
잠재의식 속에 숨어 있는 것들을
의식으로 끄집어내는
자석이다. – 캐슬린 애덤스

글을 쓰면서 가장 어려운 점이 화두를 꺼내는 것이다. 무엇을 쓸 것인가? 어찌 보면 쓸 재료가 너무 많기도 하고 하나도 없기도 하다. 가끔 마인드 맵을 활용하여 소재를 찾기도 한다. 가장 좋은 점은 내가 당면하고 있는 과제와 고민, 관심거리를 대상으로 쓰는 것이다. 예술을 하는 것도 아니니 가벼운 마음으로 자주 써보려고 한다. 다만 목적의식적으로 뼛속까지 내려가서 쓰려고 노력하려 한다.

책을 읽고 쓴다는 것은 훈련이다. 훈련이란 타고 나는 것이 아니다. 보고 듣는 능력은 타고 나는 것이지만 읽고 쓰는 능력은 배우고 부단히 연습해야 하는 것이다. 이 점이 내가 그 동안 책을 읽고 쓰면서 얻은 소중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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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형
2005.10.25 06:27:17 *.229.146.10
글은 우물과 같다. 퍼올려야 다시 괸다. 한때 샘처럼 마냥 넘쳐 흐르기를 바랐다. 그런 축복도 있기를 바랐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그렇게 자연히 넘쳐 흐르는 글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글을 써 보니 그것은 깊은 우물같은 것이다. 퍼내지 않으면 다시 새물이 고이지 못한다. 이것이 글을 쓰는 사람의 자세다. 평범한 재능 밖에 없는 자들은 모름지기 그래야 한다. 언젠가 한 권의 책을 쓰리라. 이 말은 그 책을 얻기 위해 수 많은 책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쓰지 않고 어떻게 정말 쓸 수 있으랴. 그대의 7개월은 괜찮았던 것 같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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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진
2005.10.25 07:14:33 *.118.67.206
'보고 듣는 능력은 타고 나는 것이지만 읽고 쓰는 능력은 배우고 부단히 연습해야 한다.' 참 좋은 말입니다.

'퍼내지 않으면 다시 새물이 고이지 못한다. 이것이 글을 쓰는 사람의 자세다.' 정말 좋은 말입니다.

이렇게라도 쓰지 않고 어떻게 지금의 감정을 쓸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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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빈
2005.10.25 09:24:16 *.217.147.199
제가 물었던 것을 누군가가 또 물었었군요 ㅎ 아님 내가 나중인가? ㅋ
좋은 점을 얻어 저에게 붙이고 있습니다.
이런 것이 즐거움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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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영
2005.10.25 10:09:43 *.224.55.86
저는..자꾸만 어려워져요..요즘..
생각만 많아져서 단어들도 생각만 하고 앉았나봐요..
얘를 풀어놔야 할텐데..갇혀서 나오질 않네요..
좋은 글..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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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용
2005.10.25 11:22:47 *.99.120.184
평소 제게 느끼던 글쓰기에 대한 생각과 고민이어서 많은 공감을 합니다. 정말 글은 우물과 같다라는 선생님의 말씀처럼 마냥 넘치기를 기다리기에는 제자신의 샘물이 깊지 못한 탓에 꾸준히 퍼올리고 꾸준히 보충해주여야 함을 지금에야 깨닫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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