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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병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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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17일 09시 49분 등록
깊어가는 가을이 아쉽습니다.

이제 아침으로 부는 찬바람에 코끝이 찡한 걸 보니 아슬아슬 겨울이라는 두툼한 놈이 찾아와 가을이라는 얇고 여린 놈을 밀어내고 있는 듯 합니다.

저는 가을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남들은 풍요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저는 가을에 태어나서 그런지 가을이 주는 쓸쓸하면서도 고즈넉한 분위기가 제겐 꽤 어울렸나 봅니다.
가을을 안타면 이상할 정도로 가을은 저에게 겨울로 가는 통과의례요, 자양분이었습니다.

궂은 가을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 선술집에 앉아
소주 한잔에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짙은 울림의 노래 소리를 들었습니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아~ 그냥 있을 수만 없어 두툼한 냅킨 몇 장 꺼내 만년필 흘러 내리며 일필휘지로 써 내려갔습니다.
지금은 희미하지만 분명한 것은 '인생'이라는 단어가 무척 많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생각해보면 '퇴폐적 낭만주의'의 모습 그 자체이라는 느낌이 들어 다소 창피합니다.

그렇게 예민한 감수성을 고스란히 까먹었었는데 올해 가을은 유난히 단풍이 좋아 눈으로 느끼고 귀로 보게 되네요.

지난 주말 경기도 양평의 만추 풍경이 감탄을 자아내더군요.
가을걷이를 끝낸 논두렁의 여유로움,
두물머리에 반사되는 눈부신 일렁임,
점점 탈색되어 가는 단풍의 마지막 울긋불긋 뿜어냄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습니다.
가을은 말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알고 쓰지 않아도 시가 된다고 합니다.
그 기분 알 듯 했습니다.

고요한 적막이 흐르는 이 야심한 밤에
어디선가 귀뚜라미의 청아한 흐느낌이 왠지 모르게 정겹게 느껴집니다.
여인의 옷 벗는 소리와 사랑방에서 책 읽는 소리와 귀뚜라미 소리가 가장 듣기 좋다고 누가 말했나요?
하찮은 미물인 귀뚜라미 소리에도 삶의 생동감을 느끼는 계절이 가을인가 봅니다.

가을은 이제 살뜰한 다정함과 인생에 대한 차분한 관조의 의미로 다가옵니다.
깊어가는 만추(晩秋)가 나의 마음을 가득 채워주는 만추(滿秋)로 느껴지는 걸 보면 가을은 참 이상한 계절인가 봅니다.


가을은 참 이상한 계절이다

법정스님


조금 차분해진 마음으로 오던 길을 되돌아볼 때,
푸른 하늘 아래서
시름시름 앓고 있는 나무들을 바라볼 때,
산다는 게 뭘까 하고 문득 혼자서 중얼거릴 때,
나는 새삼스레 착해지려고 한다.
나뭇잎처럼 우리들의 마음도 엷은 우수에 물들어간다.

가을은 그런 계절인 모양이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의 대중가요에도,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그런 가사 하나에도 곧잘 귀를 모은다.

지금은 어느 하늘 아래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멀리 떠나 있는 사람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깊은 밤 등하에서 주소록을 펼쳐 들
친구들의 눈매를, 그 음성을 기억해낸다.

가을은 그런 계절인 모양이다.
한낮에는 아무리 의젓하고 뻣뻣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해가 기운 다음에는 가랑잎 구르는 소리 하나에,
귀뚜라미 우는 소리 하나에도 마음을 여는
연약한 존재임을 새삼스레 알아차린다.

만나는 사람마다 따뜻한 눈길을 보내주고 싶다.
한 사람 한 사람 그 얼굴을 익혀두고 싶다.

이 다음 세상 어느 길목에선가 우연히 서로 마주칠 때,
오~ 아무개 아닌가 하고
정답게 손을 마주 잡을 수 있도록
지금 이 자리에서 익혀두고 싶다.

이 가을에 나는 모든 이웃들을 사랑해주고 싶다.
단 한 사람이라도 서운하게 해서는 안될 것 같다.
가을은 정말 이상한 계절이다.
IP *.51.68.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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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진
2005.11.17 22:17:01 *.118.67.206
그런 晩秋가 저 너머 져갑니다.
다음에도 다시 오겠지요.
우리에게 오늘 이 滿秋는 다시 올른지요?
나는 다시 놓치기 싫은 이 가을을 아쉬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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