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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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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6일 03시 51분 등록
나에게는 묘한 재주 하나가 있다.
만나는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고, 만나야 겠다,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리 만나기 어려운 사람일지라도 결국엔 만나고, 입사하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곳이라면 용케 들어가는 재주가 그것이다.
밥맛없게 왠 잘난척이냐,라고 생각할 사람도 있겠지만
정말이지 이건 사실이다.
물론 가만히 앉아서 생각만 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 투입해야하는 시간과 노력은 천자만별로 다르지만, 어찌됐든 원하는 것은 꽤많이 실현시키는 편에 속한다.

그 비결은?

바로 뻔뻔함 덕분이다.

난 참 뻔뻔하다.
친한 동료 왈,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 중 제일 뻔뻔한 사람이 바로 나라고 한다.
사실, 나는 창피한게 별로 없다.

한번은 길가는 외국인 아줌마가 무거운 짐 들고 끙끙거리길래 May I help you?(참고로, 나는 영어 실력 꽝이다)라고 접근한 뒤 길도 가르쳐주고 이런저런 얘기도 나눴다. 물론 50% 넘게 서로 못알아 먹었다. 그래도 아랑곳 않는다. 알고보니 그 미국 아줌마는 이화여대에서 초청한 스미소니언 재단 소속의 세계적인 과학자였다. 워싱턴에 놀러 올 일 있으면 꼭 연락하라며 연락처를 남겼다. 덜렁거리기 선수인 나는 물론 그 명함을 잃어버렸지만 97년 겨울 한국을 방문한 그 과학자를 이화여대를 통해서 다시 알아볼까 생각중이다.

나는 중국어가 좋다. 이유 없이 그냥 좋다. 고등학교 때 쪼금. 대학다닐때 조끔 해본 중국어 공부를 다시해볼까,라고 생각하던 중 지하철에서 중국말 하는 사람 둘을 봤다. 중국말 하는 여자는 상당히 촌스러운 옷을 입고 있었기에, 아마도 한국에 돈을 벌기 위해 밀입국한 조선족이 아닐까,라고 상상했다. 음 그렇다면 나의 가정교사가 됨으로써 그녀도 좋고, 나도 좋고라는 생각이 들자 곧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니스중꾸어런마?" 나는 중국어를 배워야하니 너가 나의 가정교사가 되면 어떻겠니? 콩글리쉬, 엉터리 중국어 섞어가며 겨우 얘기하는데 그 중국인이 갑자기 한국말로 이야기 하자고 한다. 그러면서 명함한장을 꺼내주며 연락을 하라고 한다. 헉. 포스코에서 일하네. 다음날 그 중국인과 나는 코엑스에 있는 마르쉐에서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윽. 그녀는 중국천재들만이 들어간다는 청화대 법학과를 졸업한 후 국비장학생으로 네델란드에 가서 공부하고 국제변호사자격증을 획득한 재원이었다. 차이나 포스코에 재직중에, 포스코에 스카웃된 인물이었다. 지하철에서 만난 생면부지의 중국사람과 저녁을 먹으며 수다를 떨 수 있는 인간이 바로 나다.

한 1년 전부터 동호회에 다니며 '오페라 감상'을 시작했다. 클래식, 오페라, 발레 감상등은 이전 내 인생과는 상당히 먼 이야기였지만, 한번 시도해보고 싶었던 분야라서 괜찮은 동호회를 물색한 뒤 다니고 있다. 다닌지 한 석달 쯤 됐을무렵 50대 여성분과 친한 친구가 되었다.(난 주로 나보다 나이가 한 20살쯤 위인 사람들하고 친하다) 회사일이 조금 빨리 끝나 그 분께 전화했더니, 타워팰리스 00동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으니 놀러오라고 했다. 난 아무런 거리낌 없에 들어섰다. 어리버리하다가, 무선기 들고 왔다갔다하는 왠 덩치좋은 남정네에게 2층에 있는 까페에 갈려면 어찌해야하는지 물었다. 그랬더니 거주민이 아니면, 초청한 사람의 이름과 호수를 안 뒤 전화승인이 난 이후에만 올라갈수 있다고 한다. "아니, 이런 경우가 어딨어요. 지금 방금 2층으로 올라 오라는 연락받고 여기에 왔는데 이렇게 기분나쁘게 하시면 안되죠!" (사실, 난 별로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신기했다. 왜냐하면 바로 전날밤 제러미 리프킨의 '소유의 종말'을 통해 CID 개념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책에서 본 내용이 내 눈앞에 펼쳐지자 재밌기까지 했다) 그랬더니 그 남정네 오히려 몹시 당황하더니 보안뱃지로 문을 열어주었다. 난 번쩍거리는 녹색 대리석이 쫙 깔린 곳을 통해 약속장소로 갔다. 사람들이 어떻게 여기에 들어올 수 있었냐며 깜짝 놀란다. 불을 내뿜는 용이 출입문을 가로 막았지만 용감하게 물리치고 온 이야기를 했다. 아직까지 자신들이 알고 있는 한, 아무도 그 용을 물리친 인간은 없었다며 나를 환영해주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더 미안해하길래 '소유의 종말'을 통해 이 모든 상황을 우연히 알고 있었기에 오히려 재밌었다,라는 이야기를 해주며 안심시켰다. 그 날밤 생전모르는 분이 맛있는 스테이크와 와인을 사줘서 먹고, 그 분 집에서 놀기까지 한 뒤 집에 돌아왔다. 그 분 남편은 날 위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러주시기까지 했다. 그 노래를 듣고 있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나란 인간은 참으로 신기하구나. 폐쇄적이라고 소문난 아찔한 부잣집 거실에 앉아서 서너시간전까지 서로 알지도 못했던 사람들과 함께 기타소리에 맞춰 노래부르며 놀고 있다니. 그 부부와는 지금도 두달에 한번 정도는 만나서 재밌는 시간을 보낸다.

더 황당한 에피소드도 많이 있지만, 너무 오랫만에 글을쓰니 엄청 진도가 안나가는 통에 더 이상은 못쓰겠다. 독자의 반응이 괜찮으면 '나의 목표회사 입사기'도 올리겠다.

IP *.235.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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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기원
2005.12.06 06:02:55 *.190.84.100
섬옥님 ㅎㅎㅎㅎ ㅋㄷㅋㅋㄷ...
배꼽좀 찾아서 제자리에 놓아야겠습니다.
쓸만한 재주이기보다 훌륭한 재주입니다.
남에게 행복을 줄 수있는 것은 큰 재주입니다.
지금까지는 예고편이지요?
다음편 나의 목표회사 입사기 기대하겠습니다.
늘 행복한 날 되시기를...()...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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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진
2005.12.06 08:46:53 *.118.67.206
안녕하세요?
저는 박노진이라고 하는 이 곳에 자주 들어와 사는 연구원입니다.
저도 한 뻔 하는데 저보다 훨 뻔하시군요.
시간 나면 함 뵈었으면 합니다.
제 멜은 글을 찾아보면 있거든요.
어쨌던 만나서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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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12.07 06:40:40 *.229.146.20
휴우- 발벗고 뛰어도 따라할 수 없는 진짜 특별한 재주입니다.
보통 사람은 이런 경우 당하면 아주 질립니다.
재주를 부릴때 그런 상황도 감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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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
2005.12.08 10:29:54 *.108.138.3
디게 부럽네요..^^
저는 갈까 말까 연락할까 말까 항상 고민을 하다 시기를 놓치는 스타일이라서...역시 성격은 타고나는 듯...목표회사 입사기..저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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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기
2005.12.13 23:18:57 *.145.63.194
저한테도 전수를 해 주심이... 반응 괜찮은 것 같으니 후속편도 꼭 올려주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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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
2005.12.15 14:17:34 *.60.20.53
혹시 AB형이 아니신지...
:) 저도 한 뻔뻔하는데 이제 더 뻔뻔해지면 어쩌나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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