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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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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18일 17시 09분 등록
산행

어제 오후부터 마라톤클럽 회장님의 핸폰이 정신없이 울렸다. 생각보다 날이 너무 추워 오늘 서울 한강마라톤에 참가하느냐 마느냐를 가지고 참가 신청한 회원들의 의견을 물어보느라 그런 것이다. 몇 시간이 지난 저녁 9시경 괜히 추운 날씨 마라톤 갔다가 무릎 다치고 거시기가 얼(?) 위험이 있으니 다음날 아침 일찍 인근 광덕산이나 다녀오자고 결정 났다. 순간 갑자기 바빠지기 시작했다. 등산화도 없는 나는 준비한 마라톤복장을 원위치 시키고 등산복장 준비 모드로 바뀌었다. 대충 준비하고 나고 몇 가지 추가 준비물을 사러 밖으로 나갔다. 와~ 대단한 추위다. 영하 14도를 표시하고 있다. 등산화와 아이젠을 사고 종종걸음으로 돌아오다가 슈퍼 들러서 쵸콜렛, 영양갱, 생수를 사서 가방에 넣었다. 준비 끝.

커피대신 녹차를 끓여 준비하고 옷을 입으려는데 마눌 왈 내복 입고 가, 얼어 죽지 말고, 기죽어 다시 내복을 입고 겉옷을 차려입고 출발지로 나섰다. 모두 7명이 모였다. 2대의 차에 나눠 타고 광덕산으로 출발. 시내는 도로사정이 좋은데 광덕산으로 갈수록 빙판길이다. 천안에서도 유독 눈이 많은 곳이라 대충 생각은 했었지만 은근이 산행이 걱정이 된다. 등산로 입구 가게에서 커피 한잔씩 몸을 녹이고 출발. 지금 시간 대충 오전 8시.

가끔씩 광덕산에 오르는 코스가 아닌 다른 코스로 출발한다. 이 길이 더 좋다나 어쨌다나. 발에 밟히는 눈이 느낌이 좋다. 그러고 보니 나만 초보고 다들 산에는 준 베테랑 들이다. 지난 주 덕유산 8시간 산행을 가볍게 다녀온 멤버들이라 초반부터 속도가 난다. 나도 질수야 없지, 다행이 바람도 잦아 어렵지 않게 따라갈 수 있었다. 한 30분가량 가다 보니 자꾸 발이 미끄러진다. 다른 분들은 쉽게 올라가는데, 나만 자꾸 미끄러지는 것을 본 총무님 왈 새 등산화라서 기름칠해놨나 보다, 글쎄 그래서 그런가? 도저히 이대로는 어렵겠다 싶어 제일 먼저 아이젠을 꺼냈다. 그러니까 같이 가던 여회원님도 아이젠을 꺼낸다. 그럼 그렇지.

조금 뒤따라가니 쉼터에서 다들 아이젠을 꺼내 차고 있다. 총무님 부부가 아이젠을 가져오지 않았다. 회장님께서 한 쪽만 차고 나머지 한 쪽은 총무님 와이프한테 준다. 나도 주고 싶지만 눈 덮인 산행은 처음이라 먼 산만 멀쭉이 쳐다만 봤다. 이젠 선두 다음에 순서를 잡고 경사 가파른 정상을 향해 다시 출발. 역시 아이젠이 좋긴 좋다. 1월 덕유산행에 다들 준비하라고 해야지 하면서 여유만만 눈 덮인 광덕산 아래 위를 감상하면서 올라간다. 그러기를 한동안, 드디어 숨이 차오기 시작한다. 자꾸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고 가뿐 입김으로 안경은 김이 서리다 못해 얼기 시작했다. 정상이 저 앞에 보이는데. 일단 좀 쉬었다. 뒤따르던 여자 회원분이 숨을 고르게 해야 한단다. 좀 쉬니 숨이 편해지고 꼴찌로 올라갔다.

쉬엄쉬엄 올라가니 힘도 덜 들고 경치도 구경하고 좋긴 하지만 속도가 늦어 다른 분들 폐나 끼치지 않을까 걱정도 든다.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9:30. 먼저 오신 분들이 사진촬영 한다고 빨리 오란다. 몇 카트 찍고 내려가는데 어떤 등산객 한 분이 따뜻한 커피를 한 잔 가득 따라 주신다. 유독 나만 주시는 것 보니 제일 불쌍해 보였나 보다. 괜한 찡한 마음. 조금 내려가서 가져온 차와 음식을 조금 먹고 쉬었다. 영양갱 2개와 사과 반쪽 그리고 따듯한 녹차 한 잔에 온 몸이 녹는 듯하다.

내려가는 길이 장난이 아니다. 장군바위 쪽으로 방향을 잡고 하산하는데 눈이 심한 곳은 허벅지까지 쌓였다. 와! 이런 산행은 처음이다. 어린애마냥 기분이 좋아 깡충깡충 토끼 같다. 여기 저기 사진도 몇 번 찍고 아이젠도 차니 미끄러지는 것도 없고 내려오는 길은 말 그대로 왔다다. 정상으로 가는 코스도 처음 타는 길이고 하산하는 코스도 부용묘 쪽으로 잡았는데 이 역시 처음 가는 코스다. 괜찮은 길이다. 다음에 오면 이 코스로 방향을 잡고 천천히 와 봐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산등성이서 부는 칼바람이 차긴 하지만 하산하는 속도가 빨라 참을 만하다. 마라톤처럼 몸의 변화나 이런 저런 생각의 명상 같은 것이 들어설 여지가 없는 것이 아쉬웠으나 겨울 산행은 그런대로 자기 멋을 부릴 줄 아는 것 같다. 드디어 부용묘까지 내려와 아이젠을 벗었다. 부용은 조선 3대 여류시인의 한 명이라 불린다. 충청도는 유독 예인들이 많다.

올라갈 때도 꼴찌, 내려올 때도 꼴찌로 내려왔다. 난 주로 꼴찌인생인 것 같다. 뭘 해도 대체로 뒤에서 움직이는 것이 많은걸 보니. 온 몸이 땀에 젖었다. 내복을 입었는데 느낌만으로도 내복이 축축하다. 10:50. 약 2시간 50분 정도 걸렸다. 기분 좋게 차로 와 식당으로 향했다. 시원한 콩나물 해장국 한 그릇에 막걸리 한 잔으로 피로를 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눈발이 심해지고 있었다.
IP *.118.67.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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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혜
2005.12.19 09:47:06 *.91.24.139
나도 주고 싶지만 먼산만 멀쭉이 바라보는 모습이 선합니다. 제 속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발견하거든요. 오랜 만에 홈피 들어가 이런 저런 따듯함 많이 접하면서 저도 산행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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