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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21일 12시 33분 등록
소프트웨어의 위기

소프트웨어 기술의 낙후성을 의미하는 ‘소프트웨어의 위기’(software crisis)란 말이 한때 유행어처럼 회자된 적이 있었다. 이 말이 등장한 지 어언 20년이 지났건만 나는 이 말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기술은 소위 ‘무어의 법칙’(주1)으로 대변되는 하드웨어 기술 발전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반면에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피부적으로 실감한다. (아직도 Cobol 언어와 구조적 방법론의 전지전능함을 설파하는 사람이 주위에 많다.) 더욱이 소프트웨어 기술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데 비해 소프트웨어의 크기와 복잡성은 비즈니스의 다양화와 글로벌리제이션에 힘입어 날이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소프트웨어 위기란 결국 프로그래밍의 효율,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소프트웨어 개발과 유지보수 작업이 매우 힘들게 진행되는 것이다. 프로그램 하나 짜는데 여러 사람이 달라 붙어서 몇 달을 질질 끌게 되기도 하고, 개발해 놓고 실제 배포(release)하면 잘 돌아 가지도 않는다. 막상 고객이 사용하려고 하면 원래 의도했던 기능이 누락되거나 잘못 정의되어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심지어는 만들어 놓은 소프트웨어를 폐기하고 다시 용역을 주어 재개발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왜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는 걸까? 물론 어느 정도 소프트웨어의 특성에 기인한다.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처럼 부품을 이용하여 제조되는 것이 아니고 사용자의 요구에 의해 새롭게 생산된다. 소프트웨어는 소모되지 않으나 기능상의 저하를 가져온다. 소프트웨어는 예비 부품이 존재하지 않으며 유지보수는 하드웨어의 그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그러나 나는 소프트웨어 위기의 근원을 ‘개발 관행’ 다시 말하면 ‘일하는 방식’의 문제로 인식하고 싶다. 한때 선망의 대상이었던 소프트웨어 개발 업무는 노가다, 3D 업종으로 전락하였다. 밤을 세우는 초과근무는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으며 적합한 인력을 구하지 못해 하청, 재하청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품질과 고객 서비스는 뒷전으로 밀려나 버렸다. 소프트웨어 개발은 기술의 문제로만 인식되어 사람은 부속적인 존재로, 모듈로 간주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일에 대한 만족도가 현저하게 떨어진다. 일정에 대한 압박, 초과근무에 따른 체력 저하, 노가다식 작업에 즐거움이 사라지고 있다. 아무리 직원들의 시간을 모두 일에 투자해야만 하는 절박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사생활을 희생하면서까지 그렇게 하라고 시킬 수는 없다. 이런 현실에서 어떤 개발자가 희망을 품고 살아갈 수 있겠는가?

직장인으로서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이 분야에서는 더욱 크게 느껴진다. 신자유주의의 확산으로 인해 이제 직장인들은 고용불안과 평생학습이라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으레 연말연시가 되면 거리에 울려 퍼지는 크리스마스 캐롤을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거나 송년회 모임이 줄을 지어 기다리고 있는 달력을 쳐다보며 흥분하곤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인가? 아마 직장생활에 꽤 익숙해진 순간부터일 것이다. 연말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조직개편, 인사이동, 인센티브 지급이 주된 관심사로 떠올랐다. 먹고 사는 문제가 제일 중요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이제 연봉제, 성과주의 등의 제도 도입에 따라 직장인들의 수명은 1년 단위로 검증을 받아야 하는 살벌한(?) 시대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일하는 방식의 변화

당연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소프트웨어 개발은 고객이 진정으로 원하는 제품을 개발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엔지니어들은 일반적으로 기술에 대하여 고객들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실제 고객들의 요구보다 자신들이 판단하기에 바람직한 기술을 활용하여 제품을 개발하려고 한다. 이 간극을 줄여야 한다. 소프트웨어의 위기는 고객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은 교만에서 비롯되었다. 비상장기업으로는 세계 최대인 미국의 소프트웨어 업체 SAS의 CEO인 굿나이트는 이렇게 단언한다. ‘고객들의 의견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고, 그들이 원하는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당연히 고객이 원하지 않는 소프트웨어는 개발할 이유가 없다.’ SAS는 미국 내 뿐만 아니라 10여 개의 국가별 유저그룹을 보유하면서 이들을 후원하고 의견을 직접 듣는 활동을 매우 중시한다.

앞으로 소프트웨어 개발은 Copy & Paste의 단순작업이 아니라 분석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왜냐면 소프트웨어 개발은 기본적으로 고객과 시장의 요구사항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당면한 비즈니스에 대한 문제 해결을 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문제 해결은 분할과 정복(Divide & Conquer)같은 분석 기법에 의존했으나 오늘날에는 고객과 시장을 선도하고 가치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비즈니스가 전개됨에 따라 창의성이 요구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문제 해결 방법이 분석에서 창의성으로 변화하고 있다. IT 업무가 주는 기쁨 중 하나는 일 자체가 근본적으로 창조적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개발 업무에서 창의성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창의성이 발휘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창의적 기법을 과감하게 도입해야 한다. 먼저 일상에서 과감한 실험이 시도되고 적용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성공하려면 모험과 도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들과 똑 같은 방식으로 일을 하면 똑 같은 결과 밖에 얻을 수 없다. 실패를 하더라도 오늘 배운 것을 일상에서 적용을 모색해야 한다. 특히 IT분야는 특성상 매우 빠르게 변화하기 때문에 새로운 시도와 도전이 필수 불가결하다. 두 번째로 소프트웨어 개발이 다양한 영역과의 결합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경영과 마케팅에 대한 학습을 통해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를 넓혀 나가야 하며 프로세스 개선, 품질경영, 커뮤니케이션, 리더십, 조직개발, 문제해결 등의 영역을 소프트웨어 개발과 프로젝트 관리 영역으로 끌어와야 한다. 전통적으로 소프트웨어 개발과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사람들은 대개 기술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로서 복잡한 프로젝트를 이끄는 데 필요한 위의 기법들에 익숙하지 못하다. IT와 경영, 인문학의 결합을 통해 소프트웨어 개발을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해야 한다.


사람중심으로의 변화

소프트웨어 개발의 패러다임 전환을 위해서는 사람을 일의 중심으로 보는 휴머니즘을 회복해야 한다. 소프트웨어 산업은 사업 자체가 지적 자산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개발인력을 아웃소싱의 대상으로만 보려는 관행에서 벗어나서 사람 중심의 철학을 먼저 확립해야 한다.

이 점에서 SAS의 철학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SAS는 크게 세 가지의 철학을 내세우고 있다. 첫째 모든 사람들이 공정하고 평등하게 대우 받아야 한다는 원칙이다. 두 번째 원칙은 직장이란 즐거운 곳이어야 하고, 모든 직원들은 한 사람의 인격체로서 존중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 SAS의 성공의 원동력이라 할 수 있는 경영 철학은 바로 직원들은 기본적으로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가 있다고 믿는 것이다. 직원들을 신뢰의 눈으로 바라보고 사기를 진작시키고 있는 것이다.

사람중심으로의 변화는 사람을 성장시키고 육성하는 활동에 중점을 두는 것을 의미한다. 프로젝트에 쓸 사람이 없다는 소리를 많이 듣고 있으나 실제는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잘 키우지 않는 것이다. 엔지니어의 경우에 어느 정도 나이가 차면 영업, 관리 등의 직무로 전환을 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엔지니어로 커 나갈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개발자에게 비전을 제시해주어야 한다. 기술인력을 체계적으로 육성할 수 있는 경력개발 프로그램이 마련되고 실제 제도화되어 실행되어야 한다.

또한 지식의 감가상각이 급속하게 이루어지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인력의 교육과 학습에 많은 관심을 두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사람들은 업무에 할당된 시간의 아주 일부만을 간신히 계획 수립과, 운동, 독서, 업무 평가, 커뮤니케이션, 일정 조정, 인사 배치 등에 사용한다. 나머지 시간은 무조건 일을 해내는 데 써야 한다는 획일적인 사고 방식에 사로잡혀 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사람이지만, 사람을 바꾸는 것은 교육이다. 아시아 최고의 일하기 좋은 기업으로 선정된 유한킴벌리는 4조 2교대 근무방식을 통해 4일을 연속 12시간 근무하고 4일은 교육과 휴가를 실시한다. 평생교육을 통해 모든 근로자들을 지식노동자로 만들어 회사와 나라가 발전하는 것이 문국현 사장이 생각하는 근로자상이다. 컴퓨터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2,3년간 업그레이드를 안 하면 쓸모가 없어지는 것처럼 사람도 지식을 늘 재충전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IT에서 멀어져라

역설적이지만 오늘날 소프트웨어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IT에서 멀어져야 한다. IT에 대한 개념 재정립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제 더 이상 IT의 기본 개념은 기술, 소프트웨어 개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IT는 품질, 고객 서비스, 고객 가치가 전제될 때 의미가 있다. 진정한 IT 달인은 사업을 통해서 기술이 형성되고 응용된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IT는 IT아닌 것에 의해 다시 규정되어야 한다. IT는 비즈니스, 인문학과의 만남과 연결을 통해 일하는 방식을 변화시키고 현장과 사람의 목소리를 담아내야 한다. 이것만이 소프트웨어 업계가 다시 발돋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는다.

(주1)무어의 법칙 : 동일한 가격에 칩에 집적되는 트랜지스터는 2년마다 두 배로 증가한다
IP *.51.7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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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이
2005.12.21 20:07:24 *.72.66.253
와아! 문외한인 저도 웬지모를 감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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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진
2005.12.21 21:01:34 *.118.67.206
며칠전 참 답답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충남벤처협회에서 중소기업진흥공단의 정보화혁신클러스터 구축사업에 응모하여 사업권을 따냈습니다. 정부지원자금이 2.5억이나 되는 대단히 큰(?) 사업이었죠. 여기에 소프트웨어 개발이 거의 40%를 차지하였습니다. 3달간의 프로그램 개발 후 마지막 시연이 있어 서울로 갔습니다. 저야 당근 컴을 모르니 잘 되었다는 PM(프로젝트 매니져를 뜻한다는 것도 그 때서야 알았으니)의 말만 믿고 룰루랄라 갔더랬습니다.
시연을 하는데 진흥공단의 의뢰를 받은 대학 교수님이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시연체크를 하는데 쪽팔려 죽는줄 알았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만 보면, 포탈사이트를 만들었는데 검색창에서 '반도체 제조'라는 검색어를 치면 그에 대한 자료가 자동으로 걸러서 보여주는 창이 나와야 하는데 그것은 아예 없다는 거예요. 나도 어안이 벙벙. 가만히 변명을 들어보니 그것은 애초 프로그램 디자인에 들어있지 않다는 거예요. 내가 누구편을 들어야 하나 몰라 가만히 있다보니 등에 식은 땀이 흐릅디다. 개발업체가 아는 선배가 하는 곳이라서 일단 위기상황은 넘어가자 싶어 개발 새발 떠들면서 사용업체인 협회가 차후 수정하도록 요구하겠다 그리고 시연을 다시 준비하겠다 등의 말로 얼버무리고 내려 왔다는거 아닙니까? 천안으로 내려오면서 프로그램 개발자(무려 3명이나 따라 왔음)한테 물었어요. 야, 니들은 그런 것은 기본아니냐. 아무리 대충해도 앞뒤는 맞춰놔야 이빨을 맞춰도 맞추는 거 아니냐. 고객사인 내가 봐도 참 답답하다. 아무리 몰라도 내가 봐도 문제가 너무 많다. 개네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머리만 극적이고 맙니다. 선배 왈, 내려가서 보자. 이런 정도예요.
병곤님 말처럼 소프트웨어개발은 경영과 인문학이 결합되는 것이 맞는 것 같군요. 최소한 경영디자인과 프로그램 디자인은 결합해야 되요.
'숨겨진 힘, 사람'을 읽어 보라고 할랬더만 이미 읽은 것 같군요.
참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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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동
2005.12.22 11:22:28 *.109.170.158
이 글과 관련이 되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경우 성과를 제시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이 개발자 입장에서는 오랜 시간 머리 싸매면서 구현해야 하는 것들이 종종 있지요. 단순히 기술경시 풍조 탓일런지 아니면 개발자 스스로 자신의 업적을 비전문가에게 시각적으로 표현해 주는 노력이 필요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두 가지 모두 생각해볼 문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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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완
2005.12.22 15:54:10 *.120.97.46
지금 이 글은 초안이라 손질하면 더욱 좋아질꺼야. 내 의견 한 가지만 더한다면, 마지막 부분이 약한 것 같아. 읽는 사람이 끝까지 시선을 고정할 수 있도록 해주면 좋겠어.

나는 병곤이 형이 갖고 있는 화두와 만들어낼 작품의 가치를 확신해. 그것이 어느 정도의 호응을 받고 평가를 받을지는 두번째이고, 무엇보다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는 점에서 누군가는 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것을 다른 사람이 아닌 오병곤이라는 사람이 한다는 점, 그점이 나는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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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곤
2005.12.22 16:16:16 *.248.117.3
이선이>감동까지야..
박노진>숨겨진 힘, 사람 거의 다 봤습니다. 참 좋은 책이더군요. 사부님의 코리어니티 경영의 사람 부분이 더 좋을 듯 싶네요.
신재동>비즈니스 요구사항과 기술 요구사항의 갭이라 생각합니다. 요구사항을 어떻게 잘 도출하느냐의 문제, 커뮤니케이션의 문제 둘 다라고 생각해요.
홍승완>역시 예리하군. 나도 뒷부분이 찜찜했어. 납기에 몰려서 올렸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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