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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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있었던 글을 적다보니 그 시점의 생활상을 자주 되새기게 된다.
그 때 그런 행동을 했던 주된 동기가 무엇이었던가 그리고 그 당시 나의 일상은 어떤 모습이었던가..
글을 쓰다보면 자연스럽게 그려지려나....
첫 직장에 사표를 냈던 주된 이유. 비전이 없어서였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가증 큰 이유는 '부적응'이었다. 학생에서 사회인으로 갑작스레 신분이 변했던 데에 따른 혼란, 지지자 없는 주변 일상.
인정하기 싫지만 다른 대안이 있어서 회사를 나왔다기 보다는 그곳에 있기 싫어 나왔다. 도피성이었다. 그러니 퇴직 후 하루하루 일상이 만족스러울 확륦은 적었다. 나름대로 대안을 마련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퇴직에 대한 명분일 뿐 삶에 대한 젊실함은 아니었다.
취직시험공부라는 것을 했지만 결론적으로 잘 되지 않았다. 그것은 나에게 '꼭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었다(그 둘의 차이가 크다는 것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깨달았다).
'의욕이 빠진 공부'를 하느라 흘러버리는 시간들. 마냥 그렇게 지낼 수만은 없어 다시 취업을 가장 우선 순위에 놓아야 했다. 그래도 운이 좋다고 해야 할까? 대단한 연줄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것을 통해 취업을 할 수 있었다.
1995년 10월 경..
강원도 원주에서 월세 12만원짜리 집을 잡아 짐을 옮기고 자취를 시작한다.
남들은 다 꺼리는 객지생활이었지만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참을성, 인내심에는 일가견이 있다는 판단 아래 선뜻 그곳으로 향했다. 돼지똥도 치웠는데 우유 만드는 거 못하겠냐는 학교 선배의 조언도 되새겨가며...
입사하자마자 당시 그 회사에서 새로 출시한 제품의 생산라인에 배치 되었다. 이름하여 요구르트 처리실. 병에 담기기 전까지의 제품을 만드는 일을 맡은 것이다.
24시간 2교대 근무. 일요일을 제외한 연중 무휴.
하루 12시간씩 일했다. 주간 근무는 보통 사람들과 똑같은 일정이었고 야간 근무는 일요일 저녁에 출근하여 토요일 오전에 한주의 업무를 마치는 시스템이었다. 요구르트를 만든다고 하니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일을 해보면 한달 정도면 일에 숙달될 정도다. 특별한 전문지식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제품 재고가 떨어지면 원유(原乳)에 원료를 배합하여 살균 처리를 한 후 유산균을 접종, 배양하고 배양이 되면 과즙을 혼합시키면서 냉각처리를 거친다.
그게 전부다. 그 일련의 과정은 대부분 기계의 버튼을 한번 누르면 끝난다. 그런 과정 하루에 너다섯번 수행 한다고 보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이클은 바뀔 여지가 없었다. 매일매일 재고 체크하고, 생산하고.. 그런 일상이 계속 되었다. 때로 기계에 이상이 있는 경우 어지간한 것은 직접 수리해야 했는데 그 일에 숙달된 동료가 없는 상황에서 그런 일이 생기는 것은 내게 곤욕이었다. 지금은 조금 나아졌는지 모르지만 당시만해도 공구나 연장을 가지고 하는 일에 무척 미숙했던 터다. 그러니 그런 사고가 발생하면 땀만 뻘뻘 흘리고 일은 진척되지 않는 경우가 발생했다. 숫기가 없는 탓에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도 잘 청하지 못했으니 혼자 끙끙 앓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래도 한달에 한번 급여라는 것을 받았다. 내가 그곳에서 어떤 식으로 시간을 보내든 상관없이..
적고 싶은 얘기 몇 가지..
요즘에도 아침을 거르는 경우가 많지만 그곳에서는 별로 걱정이 없었다. 회사에 가면 우유, 요구르트 등 영양 식품이 잔뜩 쌓여있었기에.. 여름철에 야근할 때는 냉동고에 들어가 아이스크림 먹는 재미로 일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주말에 쉴 때면 가급적 서울로 가서 사람들을 만나곤 했는데 보는 사람들마다 피부가 좋아졌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우유와 요구르트를 많이 먹어서 그랬던게 아닌가 하고 당시에도 지금도 그렇게 추측하고 있다.
어쨌거나 그 이후로 종종 실제 나이보다 어려보인다는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그곳에서는 부피가 큰 자재를 옮겨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지게차 운전은 필수. 익숙해져 재미를 느낄 때까지 조금 시간이 걸렸던 기억. 길에서 가끔 지게차를 보면 한번 운전해 보고 싶은 충동이 든다. 하지만 그것이 업무의 일부가 되는 것은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다(직업에 대한 편견은 아니니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계속)....
IP *.111.250.168
그 때 그런 행동을 했던 주된 동기가 무엇이었던가 그리고 그 당시 나의 일상은 어떤 모습이었던가..
글을 쓰다보면 자연스럽게 그려지려나....
첫 직장에 사표를 냈던 주된 이유. 비전이 없어서였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가증 큰 이유는 '부적응'이었다. 학생에서 사회인으로 갑작스레 신분이 변했던 데에 따른 혼란, 지지자 없는 주변 일상.
인정하기 싫지만 다른 대안이 있어서 회사를 나왔다기 보다는 그곳에 있기 싫어 나왔다. 도피성이었다. 그러니 퇴직 후 하루하루 일상이 만족스러울 확륦은 적었다. 나름대로 대안을 마련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퇴직에 대한 명분일 뿐 삶에 대한 젊실함은 아니었다.
취직시험공부라는 것을 했지만 결론적으로 잘 되지 않았다. 그것은 나에게 '꼭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었다(그 둘의 차이가 크다는 것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깨달았다).
'의욕이 빠진 공부'를 하느라 흘러버리는 시간들. 마냥 그렇게 지낼 수만은 없어 다시 취업을 가장 우선 순위에 놓아야 했다. 그래도 운이 좋다고 해야 할까? 대단한 연줄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것을 통해 취업을 할 수 있었다.
1995년 10월 경..
강원도 원주에서 월세 12만원짜리 집을 잡아 짐을 옮기고 자취를 시작한다.
남들은 다 꺼리는 객지생활이었지만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참을성, 인내심에는 일가견이 있다는 판단 아래 선뜻 그곳으로 향했다. 돼지똥도 치웠는데 우유 만드는 거 못하겠냐는 학교 선배의 조언도 되새겨가며...
입사하자마자 당시 그 회사에서 새로 출시한 제품의 생산라인에 배치 되었다. 이름하여 요구르트 처리실. 병에 담기기 전까지의 제품을 만드는 일을 맡은 것이다.
24시간 2교대 근무. 일요일을 제외한 연중 무휴.
하루 12시간씩 일했다. 주간 근무는 보통 사람들과 똑같은 일정이었고 야간 근무는 일요일 저녁에 출근하여 토요일 오전에 한주의 업무를 마치는 시스템이었다. 요구르트를 만든다고 하니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일을 해보면 한달 정도면 일에 숙달될 정도다. 특별한 전문지식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제품 재고가 떨어지면 원유(原乳)에 원료를 배합하여 살균 처리를 한 후 유산균을 접종, 배양하고 배양이 되면 과즙을 혼합시키면서 냉각처리를 거친다.
그게 전부다. 그 일련의 과정은 대부분 기계의 버튼을 한번 누르면 끝난다. 그런 과정 하루에 너다섯번 수행 한다고 보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이클은 바뀔 여지가 없었다. 매일매일 재고 체크하고, 생산하고.. 그런 일상이 계속 되었다. 때로 기계에 이상이 있는 경우 어지간한 것은 직접 수리해야 했는데 그 일에 숙달된 동료가 없는 상황에서 그런 일이 생기는 것은 내게 곤욕이었다. 지금은 조금 나아졌는지 모르지만 당시만해도 공구나 연장을 가지고 하는 일에 무척 미숙했던 터다. 그러니 그런 사고가 발생하면 땀만 뻘뻘 흘리고 일은 진척되지 않는 경우가 발생했다. 숫기가 없는 탓에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도 잘 청하지 못했으니 혼자 끙끙 앓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래도 한달에 한번 급여라는 것을 받았다. 내가 그곳에서 어떤 식으로 시간을 보내든 상관없이..
적고 싶은 얘기 몇 가지..
요즘에도 아침을 거르는 경우가 많지만 그곳에서는 별로 걱정이 없었다. 회사에 가면 우유, 요구르트 등 영양 식품이 잔뜩 쌓여있었기에.. 여름철에 야근할 때는 냉동고에 들어가 아이스크림 먹는 재미로 일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주말에 쉴 때면 가급적 서울로 가서 사람들을 만나곤 했는데 보는 사람들마다 피부가 좋아졌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우유와 요구르트를 많이 먹어서 그랬던게 아닌가 하고 당시에도 지금도 그렇게 추측하고 있다.
어쨌거나 그 이후로 종종 실제 나이보다 어려보인다는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그곳에서는 부피가 큰 자재를 옮겨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지게차 운전은 필수. 익숙해져 재미를 느낄 때까지 조금 시간이 걸렸던 기억. 길에서 가끔 지게차를 보면 한번 운전해 보고 싶은 충동이 든다. 하지만 그것이 업무의 일부가 되는 것은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다(직업에 대한 편견은 아니니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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