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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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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 11일 09시 14분 등록
하루의 개편, 변화의 시작이다.

병술년 새해가 시작 된지도 열흘이 지나고 있다. 다들 많은 다짐과 한 해의 계획들을 꼼꼼하게 세웠으리라 여겨진다. 작심삼일한 것이 벌써 나타날 수도 있겠고 아직 시작도 못한 각오도 있을 것이다. 여전히 진행 중인 계획도 있겠다. 이러한 모습이 삶이고 인생이 아닌가 싶다. 또한 언제나 우리의 꿈인 것이다.

구본형 선생님의 책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매일 자신을 들여다보라. 당신이 왜 변화를 시작했는지, 그리고 그것을 막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들여다보라. 슬픔이 있다면 적어라. 또 기쁨이 있다면 그것도 놓치지 마라. 바라지 않는 것을 해야만 한다면 왜 그런지 생각해 보아라. 후회가 있고 통한이 있는 것이 인생이다. 원망이 있고 억울한 것이 또한 인생이다. 그러나 도움이 있고 정이 있고 애정이 있는 것이 또한 우리의 삶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늘 자신이 유일무이한 삶을 살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당신의 마음이 깨어 있는 한, 그리고 처음과 같이 마음을 가지고 있는 한 당신은 저항에 굴복할 수 없다. 욕망이 흐르는 대로 마음의 길을 따라 껍데기를 벗고 그렇게 가라.”

왜 변화라는 단어에 우리는 이렇게 열광하는가? 아니 간절함과 절실함을 동의하고 있는가? 나는 나의 욕망에 솔직하다. 잘 살고 싶고, 열심히 살고 싶고, 떵떵거리며 살고 싶고, 부와 명예도 갖고 싶다.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고 싶은 것을 이렇게 포장하는 것이다. 멋있게 살고 싶다는 욕망이 나의 하루를 그냥 두지 못하게 한다. 나의 하루는 이래서 변하기 시작했다.

먼저 하루 2시간을 투자하는 실험에 도전했다. 책을 읽고 정리하는 작업에 시간을 쏟았다. 두세 달 잘 되다가 어느 날 부터인가 게을러지기 시작했다. 달랑 하루 2시간을 빼내기가 그렇게 힘들었다. 놀고 술 먹고 잠잘 시간은 있어도 나를 위해 공부할 시간은 눈을 씻고 찾아 봐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핑계를 만들어도 시간을 확보할 수 없었다. 아마 한 달에 보름은 그렇게 지냈던 것 같았다. 그러기를 두 달 정도 보내니 문득 한심한 자신이 거울 속에 보였다. 아무런 목표도 꿈도 없이 그냥 되는대로 살아가고 있는 한 사람을 발견한 것이다. 몇 달 전의 간절함과 절실함은 아무데도 없이 술과 담배에 절어 마흔 고개를 넘어가는 어떤 불쌍한 인간.

꿈은 허구였다. 내가 바라는 변화는 허구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 시작해야만 했다. 그러나 허구인 꿈이 있어야만 꿈을 실제로 만들어 내는 조감도가 만들어 지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다시 처음부터 내 모습을 다듬어 보았다. 모든 것이 갖추어졌다는 의미는 이미 변화가 이루어졌다는 의미가 아닌가? 배부른 자들이 변화를 바라지 않는 이치처럼 조건과 내용이 다 맞춰진 변화는 아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개인의 변화 역시 객관적 조건을 다 만들고 변화를 만들 수 없을 것이다. 변화는 무엇보다 간절함과 절박함이 부르는 희망인데, 그 때는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때이기도 하다. 일단 시작하자.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잘할 수 있는 일을 먼저 시작하자. 그리고 무수한 실패를 통해 배우고 고쳐나가자. 차라리 다시 시작하는 마음이 홀가분할 정도였다. 편안하였다. 그래 이렇게 다시 시작해보는 거야. 그 때가 작년 8월이었다.

“하루를 개편하지 않고는 일상적 삶을 바꿀 수 없다. 물리적 현실을 개편하지 못하는 정신은 허망한 꿈일 뿐이다. 그러므로 자기혁명은 하루 속에서 자신이 지배하는 시간을 넓혀 가는 것이다. 하루의 10%를 지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자. 하루 속에서 잃어버린 2시간을 찾아내어 자신에게 돌려주자.”

그래, 이 글이 말하는 것처럼 하루를 개편하자. 먼저 2시간의 자기를 위한 투자가 이루어지지 못하면 자기혁명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꿈은 꿈을 꾸는 사람에게만 존재한다. 그리고 꿈은 하루를 꿈에 투자한 시간만큼만 이루어진다. 10년 후 이미 만들어진 나의 미래는 지금 나의 노력을 통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이 꿈과 시간과 미래의 법칙임을 나중에 알았다. 새벽에 2시간을 만들어 내지 못하면 하루 중 어떤 시간이라도 만들어야 했다. 차라리 밥을 먹지 못하더라도 2시간은 꼭 확보하려고 노력하였다. 이 과정에 하루의 기록은 큰 도움이 되었다. 하루를 기록하는 습관은 이 때 부터 본격화 되었다. 하루 24시간을 어떻게 살았는지를 기록하는 작업은 귀찮고 짜증나는 일이긴 했다. 그래도 그냥 기록하기로 했다. 아마 이 기록이 없었다면 나의 변화는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나의 변화는 조금씩 변화를 가져오고 있었다.

지난 1년의 과정을 통하여 아주 커다란 발견을 하였다. 세상은 공부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영어, 수학만이 공부라고 생각했던 학창시절 이래의 공부에 대한 관념을 깨트리고 삶이 공부요, 만남이 공부요, 책속에서만이 아니라 사색과 명상도 공부라는 것을 알았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지식이 싸그리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비어있는 창고에 새로운 곡식을 채워가는 즐거움을 배우게 되었다. 무엇을 하던, 어디에 있던 이것이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며 내 존재의 표현방법일 것이다. 그럼으로써 어제보다 나아지려는 내가 되어가고 있음이고, 변화를 갈망하는 수많은 이들에게 조그마한 선물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배웠다.

“인생이 무엇을 이루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저 사는 것이다. 하나의 길을 선택하면, 다른 길은 가보지 못하는 여정으로 남는다. 한 길을 가며, 다른 길의 모습을 그리워하지 않길 바란다. 그래서 선택은 다른 것을 버리는 것이다.”

이 구절을 읽었을 때 눈물이 났다. 구구절절이 심장을 찌르는 이 단어들 앞에 선 나는 어떤 길을 선택했던가. 다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속에서 전부를 위한 전부를 선택했던 지난날이 아쉬워서인가 후회스러워 그랬던 것인가. 다 잘하면서 살 수는 없다. 작은 일에 슬퍼하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는 그저 보통사람일 뿐이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나를 밀어 넣는 것이다. 뒤돌아보지 말고 사정없이 던져버려야 한다. 그나마도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나는 이제 변화를 강요하지 않는다. 원하는 이들에게 그들의 간절함과 절실함을 현실로 만들어 주는 변화를 말해 주려고 한다. 변화는 스스로를 바꾸게 한다. 아주 자연스럽게 자신을 위한 투자에 매진하게 된다. 많은 창조적 부적응자들을 통하여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변화가 즐거워야 한다는 것은 이론이 아니라 현실이다. 고통조차도 즐거워진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이 경우에 적합한지 몰라도 한 번 변화에 도전해 본 사람만이 변화의 즐거움을 알게 된다.

하루의 개편, 변화의 시작이자 출발점이다. 어떤 식으로 개편할지는 나나 그대의 의지에 달려 있을 것이다. 어제보다 나아지는 내가 되고 싶다면 오늘 나의 하루를 다시 만들어라. 10년 후 나의 찬란한 미래가 지금 나의 게으름으로 인하여 잘못된다면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얼마나 원망하겠는가.
IP *.118.67.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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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진
2006.01.11 05:09:48 *.244.221.1
이제 갓 20대 후반에 접어든 젊은이 입니다.
변화 해야 살아 남을 수 있다는 강박에 갖혀 변화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었던 지난 일년을 돌이켜 보다 발견한 글에 눈물이 납니다.
삶은 그 자체가 변화임을 알고, 그 변화를 통해 항상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도록 열린 가슴과 머리를 가지고 살아가겠습니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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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자식
2006.01.11 22:32:53 *.229.28.221
굉장ㅎㅣ 마음에 와닿는 글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오늘의 저를 돌아보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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