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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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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 13일 16시 43분 등록
◎ 파란 신호등

다시 계산해 보니 당시 나이 서른 셋이었다. 조금 과장된 얘기인지 몰라도 프로그래머는 나이 서른이 넘으면 슬슬 은퇴준비를 해야 한다는 얘기가 프로그래머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었으니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다. 현실의 벽이 분명히 존재하겠지만 젊은 사람들 못지 않게 실력을 쌓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었고, 나보다 젊은 사람들이 갖기 힘든 그 무언가가 있으리라고 믿었다.

집에서 멀지 않은 직업훈련학교에 신청서를 내고 입학이 결정 되었다. 수강생 총 30명. 최고령자가 아닐까 싶었는데 그래도 5명이나 연장자가 있다.
다른 사람들은 무슨 사연이 있기에 여기까지 왔을까.

큰 위험을 무릅쓰고 투자하는 6개월. 어떻게든 성과를 내야한다. 그럴려면 우선 이 안에서, 이 사람들 사이에서 돋보여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내심 승부욕을 키워본다. 이 사람들에게 적대감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시간이 흐르다보면 실력의 우열은 자연스레 가려질 것이다. 여기서 뒤처진다면 굳이 그 시간을 다 투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일찌감치 또 다른 길을 알아보는 것이 나을 것이다.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을 경쟁자로 간주한다면 이 경기는 마라톤이다. 초반에 힘을 집중하기 보다는 6개월 전체를 보고 적절하게 힘을 안배해야 한다. 너무 의욕이 앞서 무리하지 말고 꾸준한 페이스를 유지하며 학습을 해야 한다.
나름대로 그런 전략도 세워가며 오래간만에 배움을 즐기기 시작했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편도 아니고 대화를 잘 나누는 편도 아니고.. 그러다보니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았을 거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니 잘 웃지도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한달, 두달 시간이 흐르면서 나를 찾는 사람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수업중 이해 못했거나 궁금한 부분이 생길 때 나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그나마 분산되어 있었다. 즉, 나를 찾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말고 다른 사람을 찾아 물어보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경우가 나에게 집중되기 시작했다. 똑같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경우라도 대부분 나를 더 많이 찾아왔다.
외면하지 않았다. 내가 풀어줄 수 있는 문제라면 풀어주려 했다. 한 때 강사 생활 했다는 것을 과시라도 하는듯 대부분의 문제는 해결해 줬다. 사람들과의 관계는 자연스레 좋아졌다.

무엇보다 강의가 재미있었다. 언젠가 한번은 배우고 싶었던 것들을 배우는 기회였다. 교육 초기에 강의를 따라가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모두 사라지고 자신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제야 비로소 내 길을 찾은 것인가.. 적어도 지금은 그래 보인다. 내가 바다물고기라면 그 전에는 산에서 놀고 있었고 얼마 전에는 강에서 놀고 있었나보다. 이제 드디어 바다를 향해 가고 있나보다..

그렇게 6개월이 흘렀다. 승산이 있다고 판단되어 투자한 시간. 그리고 그 판단이 옳았음이 증명된 시간. 새로운 지식이 쌓이고 자신감을 덤으로 얻은 시간. 그 때 투자했던 그 시간은 그렇게나 값진 선물을 선사해줬다.

(계속)....


◎ 사이드 스토리 하나

한창 재밌게 공부하고 있을 무렵, 나에게 자주 신세를 지곤 했던 '왕언니'가 어느날 나를 부른다. 모니터에 있는 뭔가를 가리키며.. 나에게 딱 맞을 것 같다며 지원해 보란다.

가서 보니 컴퓨터 학습 사이트인데 온라인 튜터를 모집한단다. 찬찬히 보니 괜찮은 일 같다. 교육과 관계된 일을 그만둬야 할 때 내심 아쉬웠는데 그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풀어줄 수 있는 일 같았다. 그리고 많은 수고를 들이지 않아도 되는 일 같다.

지원 서류를 보니 그냥 소개서 제출이다. 그렇다면 컴퓨터 실력을 직접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없으니 순전히 '글빨'로 승부해야 한다. 평소에 글 쓸 때 화려하게 쓰는 거 별로 안좋아 하는데 이번만은 그렇게 해야 할 것 같다. 지원자가 꽤 될듯한데 평범하게 쓰면 담당자 눈에 전혀 뜨이지 않을테니..

의식적으로 힘을 주어 썼다. 힘찬 문장으로 이어나갔다. 그렇다고 '뻥'을 치진 않았고 당시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이 질문을 해올 경우 도움을 준 얘기를 나름대로 화려하게 꾸몄다. 더불어 온라인 교육사이트라면 글로서 의사전달을 해야 하는데 나름대로 글쓰기에 자신이 있다는 점, 그리고 예전 학원 강사로 일할 때 나에게 좋은 평을 해준 글을 그 학원 사이트에서 긁어모아 소개서에 삽입했다.

얼마 뒤, 합격전화가 왔다. 그러면서 전화주신 분이 하는 말. 소개서를 참 멋지게 쓰셨단다.. 나중에 알아보니 20명을 뽑는데 160명이 지원했었다고 한다.

2002년 8월부터 시작했으니 4년이 되어 간다. 물론 금전적 혜택도 짭잘히 보고 있다.
IP *.142.14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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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진
2006.01.13 08:11:19 *.118.67.206
재밌네...
그럼 직장유량기는 직업이 안정되면 연재가 끝나야 하는 건가?
그럼 이 재밌는 글은 어케 봐?

이 연재를 올 1년 내내 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만들어 계속합시다.
1주일에 한 편씩 [속편-직업유량기(?)] 어떨까?
또는 연구원 유량기도 있잖여?
어쨌던 계속 할 방법을 찾아봐 주세요.
원고료 대신 소주 한잔 대접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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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주
2006.01.13 09:42:18 *.76.92.8
신재동님도 재밌는데 박노진님 글도 정말 재밌어요..연재라는 특성상 뒷이야기가 마니 기다려지고..또 박노진님의 구수한 입담까지...글구 저도 소주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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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2006.01.13 10:50:13 *.193.35.232
처음엔 이해가 잘 안 되었는데 재동씨 글 솜씨 보니까 우리 '아침노을의 선이'씨가 좋아 할 수 밖에 없겠다.
궁금할 때쯤 되니까 꼭 다음편으로 넘어간다. 전화로 미리 물어 볼까?
장가 가는 날 봅시다. 난 선이씨 쪽이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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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진
2006.01.13 11:57:11 *.118.67.206
까짓거 그럽시다.
날 잡아서 함 모이지. 뭐.
은주님께서 유사 한번 해보실라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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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주
2006.01.13 13:59:10 *.76.92.8
유사 좋죠..조만간 함 뵙겠네요..ㅍㅍ..근데 김재동님과 아침노을님이 결혼하세요? 그럼 혹시 송년회할때 인사하셨던 그분들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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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동
2006.01.13 16:58:48 *.109.42.100
노진 성님. 소주 먼저 사주세요...
더불어님.. 감사합니다.. ^-^
은주님.. 맞습니다. 송년회때 뵈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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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길례
2006.01.13 22:56:48 *.139.64.174
넘 재밋게 잘 읽었습니다. 저도 한번 도전하고픈 욕심이 샘솟듯 하네요...ㅎㅎ.. 다음 글도 기대만발함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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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곤
2006.01.14 22:04:38 *.51.74.44
노진님과 재동님의 공통점이 짭잘한 금전적 혜택을 보고 있다는 것이므로 둘 중에 아무나 한잔 사~ 1월이 가기 전에 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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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진
2006.01.14 23:06:13 *.118.67.206
1월엔 시간이 담 주 화요일(1월 17일)밖에 없는데...
그 때 않 되면 2월에 봐야 하구요.
은주님, 유사는 모임날까지 연락, 장소, 기타까지 다 하는거요.
하게 되면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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