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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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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2월 24일 16시 29분 등록
우리는 지난 1년 간 한 달에 한 번이나 두 번씩 만났다. 1년 동안 20번 넘게 만남을 가졌다. 우리의 만남은 시간에 상관없이 깊은 만남이었다. 예전에는 20번의 만남이 작은 숫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틀렸음을 이제는 안다. 지난 1년 동안 내가 절친한 친구들과 만난 횟수가 이보다 많지 않을 듯싶다. 만남의 깊이도 친구들과의 그것보다 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즐거움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지난 1년 동안 친구였고 스승이었다. 함께 술을 마셨고 먹을 것을 즐겼다. 지식을 나눴고 마음을 나눴다. 자극하고 격려해주었다. 우리는 만남에 설레였고 서로를 생각하며 가슴 뛰었다. 우리의 인연은 이렇게 계속 익어갈 것이다.

다음의 글에서 호칭은 내 마음대로 썼다. 마음으로 적은 것이니, 마음으로 받아주길 바란다.


강미영
강막내, 연구원들 중에서 가장 어린 친구다. 쉽게 친해질 수 있었을텐데, 연구원들 중에서 가장 적게 만났다. 제1기 연구원들이 처음으로 모이던 날, 가장 적극적이고 활기찬 이는 미영이었다. 그녀는 신나게 돌아가는 아이디어 팩토리 같았다.

그녀는 한국의 독특한 문화에 대한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품고 있었다. 그 아이디어는 경쾌하고 좋아 보였다. 그러나 그녀는 1년이 지난 지금 그 아이디어를 정리하지 못했다. 내가 연구원 활동의 조교를 하면서 가장 아쉬운 것 중 하나가 그녀를 잘 돕지 못했다는 점이다. 나는 그녀에게 마음을 더 쓸 수 있었고 자극도 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연구원 활동의 가장 큰 강점이자 즐거움은 ‘서로 친구이자 스승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녀에게 그렇지 못했다. 아쉽다.

2005년은 그녀에게 어쩌면 뼈아픈 기억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뼈아픔이 언젠가 그녀를 빛나게 해줄 것이다. 그 언젠가가 2006년에 시작되길 나는 바란다. 그녀는 2006년 3월에 시작하는 8번째 ‘내 꿈 프로그램’에 참가할 것이다. 프로그램을 통해 그녀의 고민과 경험이 정리되고, 에너지가 충전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막내의 집은 제주도이다. 연구원 활동을 위해 제주도와 서울 간의 왕복을 결심할 정도로 막내는 활달하다. 그녀는 앞으로 힘차게 나갈 것이다.

막연한 추측이겠지만, 막내는 성격이 예민한 것 같다. 마음이 불편하면 몸에 바로 반응이 오는 것 같다. 마음의 불편함과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나름의 방법을 마련해두면 좋을 것 같다. 막내는 아이디어가 많으니까, 좋은 것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문요한
요한 형은 아주 좋은 인상을 갖고 있다. 피부가 하얗고 깨끗하다. 눈은 서글서글하고 코는 오똑하다. 눈과 코가 잘 어울린다. 웃을 때는 눈이 아래로 내려온다. 나는 이런 눈과 웃음을 가진 사람을 좋아한다. 직업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성격이 차분하고 말투와 말의 속도도 그렇다.

내가 보기에 그는 고집이 있다. 자신의 머리와 가슴이 하나로 모아지며 에너지도 함께 모인다. 그는 그것을 반드시 쫓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조언이나 아이디어는 그의 마음이 하나로 모여지기 전에 전달되어야 도움이 된다. 한 번 결정되면, 다른 사람의 눈이나 관점, 비판은 그를 흔들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가 다른 사람들의 의견 수렴에 좀 더 적극적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충분한 피드백의 과정과 그의 결단력이 조화를 이루면 좋겠다.

그는 만화와 만화의 주제가를 좋아한다. 몇 번 들은 적도 있다. 그래서인지 그는 우화나 이야기도 좋아한다. 그는 ‘우화’와 ‘변화’를 연결하는데, 큰 흥미를 갖고 있고 실제로 그것을 아주 잘 한다. ‘어른들을 위한 변화 우화’, 아마도 몇 년 안에 이런 형식의 책이 출간된다면 저자의 이름은 ‘문요한’일 것이다. 나는 형에게 만화책과 영화를 자주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왠지 형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아이들이 둘이라 여유 내기가 어려울지 모르겠지만, 만화책이나 영화는 빌려서도 볼 수 있으니까 가능할 것이다.

형은 통찰력이 있다. 특히, 휴먼 에너지(Human Energy)와 변화 심리학 부분에서 그렇다. 형은 긍정적이고 주도적인 변화에 있어 에너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누구나 변화의 중요성을 말하고 누구나 그것을 원하지만, 변화를 지속하는 것은 어렵다. 형은 에너지가 변화의 전제조건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나 역시 공감한다. 변화의 과정에서 에너지를 창출할 수도 있지만, 중요한 문제는 변화의 시작에서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연료 없이 다닐 수 없는 차가 없듯이, 에너지 없이는 변화도 시작될 수 없다. 흥미로운 점은 기존의 많은 자기계발 서적들이 이 부분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자기계발 서적과 방법론을 봤지만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춘 것은 보지 못했다. 형의 첫 책은 변화에 있어 에너지의 필요성과 에너지를 키우는 방법에 대한 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의미있고 필요한 책이다. 나는 기대가 크다.

나는 요한 형과 한번쯤은 나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종종 그러고 싶었으나 계속 미뤘다. 형은 2006년 9월쯤에 병원과 연구소를 오픈한다고 한다. 내가 형의 병원을 가장 먼저 찾은 열 명의 고객 안에 있었으면 한다. 그리고 형이 시작하게 될 프로그램의 첫 회에 참석할 수 있기를 바란다.


박노진
그는 스펀지다. 적어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주 강력한 스펀지다. 그는 쉽게 잘 빠진다. 보통 쉽게 잘 빠지는 사람은 쉽게 잘 나오기도 하는데, 그는 그렇지 않다. 한 번 빠지면 갈 때까지 가는 스타일이다. 한 때는 학생운동에 그렇게 빠졌다. 다른 때에는 요리에 그랬다. 그는 일을 만들 줄 알고 사람들을 조직할 줄 안다. 그러므로 어디가도 굶어죽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그는 꼼꼼하지 못하고 마무리가 약하다. 그러나 그는 걱정하지 않는다. 왜냐면 그런 부분은 그런 부분을 잘하는 사람에게 맡기면 되기 때문이다. 어찌 일이 내 생각대로, 예상대로, 혼자 힘만으로 되겠는가.

그는 어느 시기를 지나치면서 여러 것에 동시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마라톤, 붓글씨, 피아노 연주, 시간 분석, 노동과 경영. 아마 그는 여러 개의 스펀지를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순수하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그에게 그런 순수함이 남아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순수함이 그를 좋은 스펀지이도록 해주는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가슴을 터질 듯이 뛰게 하는 것은 바로 ‘구본형’이라는 인물일 것이다. 그는 구본형이라는 인물에 대해 비판을 모른다. 설사 그런 것이 있다고 해도 남에게 표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추종자 이상이다. 박노진이라는 사람이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 누군가는 자신의 생각보다 자신이 더 괜찮고 매력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모든 리더와 스승에게는 이런 동료와 제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역사를 보면 이런 동료와 제자를 가진 인물은 소수였다. 구본형은 든든하고 좋은 제자를 뒀다. 스승이 그를 구했고 그가 스승을 빛나게 할 것이다. 스승이 그를 나쁜 제자라 생각해도 그는 그렇게 할 것이다. 왜냐면, 그것이 그가 가장 잘하는 일이고 가장 하고 싶은 일이기 때문이다.

구본형 사부가 가장 빛나는 순간, 바로 곁에 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잘 못 볼지도 모른다. 스승이 더 빛날 수 있도록 그는 자신의 빛을 감추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구본형 사부가 가장 어려운 순간, 곁에 있는 인물 또한 그일 것이다. 아마 그 때 그는 빛을 발할 것이다.

나는 노진 형이 ‘자로’를 좋아하는 것이 좋다. 형이 ‘넘버 투’를 외치는 것이 좋다. 난 그가 좋다.


손수일
수일 형은 멋을 아는 사람이다. 풍류를 아는 사람이다. 흥에 겨우면 재밌고 어린아이처럼 신나하는 사람이다. 형은 미스테릭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눈동자는 깊다. 바라보면 빨려 들어가는 듯하다. 형은 키가 크고 잘 생겼다.

언젠가 내가 오래 사귀었던 여자 친구와 헤어진 이야기를 꺼내며 후회된다고 했을 때, 형은 마이클런스투락(Michael Learns To Rock)의 25분(25minutes)을 들려주었다. 나는 그 음악을 찾아서 들어 보았다.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난 마침내 마음을 굳혔어. 그녀가 바로 내가 찾던 사랑이었던 거야. 그녀를 진정 내 사랑으로 만들고 싶었어. 그녀를 찾기 위해. 이곳 저곳을 헤매고 있어. 사랑한다고 말하려고... 그리고 내가 저지른 일들을 사과하려고...

교회 앞에 서있는 그녀를 발견했어. 마을에서 찾아보지 않은 유일한 장소가 바로 교회였지. 그녀는 웨딩 드레스를 입고 아주 행복해 보였어. 하지만 그녀는 이렇게 말하면서 울고 있었지.

‘저런, 나도 항상 당신의 키스를 그리워했어요. 하지만 25분 늦게 왔군요. 당신은 멀리도 헤맸지만 미안해요. 25분 늦었어요.’

바람을 맞으며 다시 집으로 향했어. 그녀와 내가 단지 친구 이상이었던 때로 돌아가기를 바라면서...”
- 마이클런스투락(Michael Learns To Rock)의 25분(25minutes) 중에서

짧게 내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뿐인데, 나의 이야기와 연결되는 노래를 바로 찾아내서 연결하는 센스. 40대를 훌쩍 넘긴 사람에게서는 보기 어려운 재주 아닌가.

형은 곧 호주로 떠난다. 형이 행복하길 바란다. 그리고 가끔은 그 행복의 조각과 느낌들을 우리에게 보내주길 바란다. 우리는 형의 행복에 박수치며 좋아할 것이다.


신재동
그는 나와 많이 다르다. 내향적이다. 말이 별로 없고 마음을 잘 표현하지 않는다. 그러나 누군가가 마음을 표현하면 잘 잡아내고 받아준다. 확실하다. 그는 내 마음도 아주 잘 받아줬으니까. 우리는 만나면 잘 어울린다.

형은 보기보다 재치 있다. 그것도 많다. 말이 없지만 누군가의 말에 곧바로 잘 반응하다. 반응이 상당히 재밌고 위트있다. 재동 형은 독특한 캐릭터이다. 그러면서도 어떤 믿음을 준다. 형은 화를 잘 내지 않는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신재동이란 사람이 화를 냈다면 상대방이 뭔가 확실히 잘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재동 형은 내가 처음 만났을 때보다 많이 밝아졌다. 피부도 좋아진 것 같다. 왜? 답은 선이 누나이다. 형은 알아채지 못했겠지만, 언제부터인가 형에게서 어떤 여유와 밝음을 느끼게 되었다. 얼마 안 있어 나는 둘의 연애담과 결혼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사랑의 힘을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형은 잘 웃는다. 웃으면 눈이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선이 누나와 같다. 둘 다 웃으면 아주 귀엽다. 공통점을 하나 더 말하자면, 둘 다 비교적 동안이다(칭찬이냐고? 글쎄, 참고로 그들의 나이를 합치면 60을 가볍게 넘긴다).

형은 노래를 많이 안다. 그리고 잘 부른다. 전혀 좋은 목소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리듬을 잘 타고 매끄럽게 부른다. 가사도 잘 외운다. 이상한 일이다. 형이 우리에게 불러준 노래는 형과 잘 어울렸다. 이상한 일이다. 해라기의 ‘행복을 주는 사람’,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예민의 ‘어느 산골 소년의 사랑 이야기’ 같은 노래들. 2006년 2월 18일, 형과 선이 누나의 신혼집에서 형이 임재범의 ‘고해’를 틀었다. 그 때 집 안에는 나와 형뿐이었다. 노래가 흘러나왔다. 형이 멋있었다. 부러웠다.

2006년 2월 25일, 재동 형과 선이 누나가 결혼한다. 결혼식장에서 사회자의 자리는 내가 점령할 것이다. 형과 누나의 결혼식 사회, 이것은 2006년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이다.


오세나
그녀는 스마트하다. 내가 만나 본 사람들 중에 가장 스마트한 사람 중 한 명일 것이다. 긴 기간은 아니었지만 그녀와 함께 프로젝트 하나를 함께 한 적이 있었다. 그녀의 재능은 곳곳에서 빛을 발했다. 한 마디로 그녀는 유능하다. 머리 회전이 빠르고 논리가 강하다.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는데 능하다.

얼마 전에 이직 문제로 나와 상의를 한 적이 있었다. 그녀의 출중한 능력과 경력으로 인해 그녀를 원하는 회사들이 여러 곳 있었다. 경영 컨설팅 회사 몇 곳과 국내 대기업도 있었다. 그녀와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그녀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내가 어떤 방향으로 그녀의 판단을 유도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나는 내심 경영컨설팅 회사가 그녀와 잘 맞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 속마음을 반 정도만 보여주었지만, 컨설팅 회사를 적극 추천하고 싶었다. 그녀는 자신의 의사를 존중하여 이직을 결정했다. 그녀는 현재 마케팅 분야의 컨설팅 업체에 몸담고 있다.

나는 그녀가 직접적인 컨설팅 경험이 없지만, 정상적인 어떤 컨설팅 회사를 가든 실무에 빨리 적응하리라 확신했다. 왜냐하면 내가 봐온 그녀는 컨설턴트의 기본 요건을 충실히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아실현에 대한 욕망이 강하고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능력과 흩어진 자료를 찾아내고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발표력도 뛰어난 편이다.

컨설팅 회사가 아니더라도 어떤 조직에서든 그녀는 상사가 아끼는 부하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좋은 상사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안 선다. 일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고, 대개 일은 논리적으로 처리되지 않는다. 자신의 뜻대로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강한 논리가 높은 설득력은 아니다. 일터에서는 업무의 성과와 인간관계의 질 둘 다 중요하다. 둘 중 하나만 잘 해서는 행복한 직장생활을 말할 수 없다. 나는 그녀가 업무와 사람의 관계를 좀 더 깊이 바라보기를 바란다.

컨설팅 회사의 제안이나 해결책은 대부분 현실에서 제대로 실천되지 않는다. 컨설팅 회사의 보고서를 보면 논리적이고 명쾌하다. 이것이 강점이다. 그러나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논리를 따르면 일이 잘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누가 옳은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현장의 사람들이 일을 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머리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얻는 것이 최고의 컨설팅이다. 이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지만, 이것이 최고라는 점 역시 부인할 수 없다. 컨설팅의 세계는 ‘지름길’이 난무하는 세계이다. 문제는, 많은 지름길이 쉬운 길이지만 좋은 길은 아니라는 점이다. 컨설턴트는 자신이 가진 것 이상을 배출하도록 요구받고 유혹 받는다. 그래서 어떤 이는 ‘나쁜 컨설턴트는 사기꾼과 유사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지속적인 학습과 성찰, 장기적인 관점이 없다면, 컨설팅에서 보람과 자부심을 얻기 어렵다. 컨설턴트가 만나는 지름길은 단기적으로는 쉬운 길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위험한 길이다. 컨설턴트는 아니지만 컨설팅 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내가 그녀에게 진심으로 해주고 싶은 조언이다.


오병곤
그는 훌륭한 선배이다. 멘토의 자질을 갖고 있다. 그는 상사의 사랑을 받기 보다는 후배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다.

그는 아주 좋은 상사일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아주 곤란한 상사일 수도 있다. 이 둘을 가르는 것은 ‘코드’ 혹은 ‘가치관’이다. 그는 자신과 코드가 맞는 사람을 만나면 불처럼 타오른다. 내가 알기로, 그가 인물팀(연구원을 시작할 때는 이런 팀이 있었지만 가장 먼저 사라졌다)에 관심이 있는 연구원들을 처음 만난 날 밤새 떠들고 술 마시고 노래 불렀다(밤 세우고 집에 들어가 형수님에게 무릎 끊었다는 전설이 있는데, 믿거나 말거나). 거기에는 그야말로 생전 처음 본 사람들도 몇 명이나 있었음에도 그는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고 내게 실토한 바 있다.

나와 병곤 형은 언젠가부터 술 마시다 취하면 서로 안고 뽀뽀한다. 처음에는 나만 그랬으나, 이제는 형이 더 원하는 것 같다. 이런 것이 좋은 것이라 말할 수는 없겠지만(사실, 나는 좋다고 생각한다. 고백이다), 이럴 수 있는 관계(이상한 뉘앙스 아님. 크크크)가 흔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자신과 코드가 맞는 사람과 어디서든 유쾌하게 즐길 수 있다. 그 증거가 바로 나다(그렇다고 나를 ‘병곤의 남자’라 부르지는 마시라).

자신은 말을 잘한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말보다는 재치와 유머가 뛰어나다. 자신은 목소리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거의 확실함), 내가 보기에는 노래 부를 때만 목소리가 좋다.

형은 음식점이나 술집 선택을 잘한다. 형은 처음 가본 동네에서도 좋은 음식점이나 술집을 잘 찾는다. 내 경험에 의하면 그 확률이 아주 높다. 우린 둘 다 잘 먹는다. 이것은 공통점인데 안을 들여다보면 차이점이 되기도 한다. 형은 좋은 눈으로 음식점을 잘 골라서 잘 먹는 것이고, 나는 좋은 입을 갖고 있어 아무 음식이나 잘 먹는다. 이러니 우리 둘의 궁합이 어찌 나쁠 수 있을까. 형은 장소 정하고 나는 맛있게 먹고. 좋은 팀워크는 이런 것이 아닐까.

그는 IT 전문가답게 비주얼이 강하다. 또한 사고가 분명하면서도 인문학적 감수성을 갖고 있다. IT 분야에서 이런 재능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다. 그의 수련과 재능(특히, 인문학적 감수성), 기질이 잘 결합되면 우리는 새로운 길을 창조해가는 훌륭한 IT 전문가 한 명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병곤 형의 첫 책은 바로 올해(2006년), 그의 나이 39세에 나올 것이다. 서른의 끝에서 좋은 책을 한 권 낸다는 것은 아주 부러운 일이다. 아마도, 형의 책은 앞으로 하나둘씩 나올 연구원들의 첫 책들 중에서 가장 단단한 책이 될 것이다. 또한 그 책은 절실한 도전이었기에 그만큼 생생한 책이 될 것이다. 형의 책은 자신이 10년 이상 몸담은 업(業)에 대한 경험과 학습, 지식과 기술, 고민과 철학을 담고 있다.

병곤 형은 노진 형과 함께 2기 연구원들에게 술을 자주 사주게 될 것이다. 확실하다. 2기 연구원들이 쫓아오기 보다는 자신이 쫓아다니며 사줄 것이다. 특히, 자신이 좋아하는 연구원에게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안 봐도 비디오다.

형에게 감히 조언을 한다면, 이렇게 하고 싶다. 과하면 넘치는 법. 지금보다 잘 듣고 적게 말하면서 상대방에게 울림을 전해줄 수 있어야 한다. 열린 사람에게도 편견이나 선입견이 존재한다. 문제는 편견 그 자체가 아니라, 자신이 그것을 갖고 있다는 점을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특히, 그것이 사람에 대한 것이라면 더욱 신중해야 한다. 내가 이런 조언할 처지가 아니지만, 병곤 형이기 때문에 말해야겠다.


이선이
그녀는 소녀다.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고 직접 만든 카드를 보내고 그림을 그려 보내기도 한다. 때로는 e-mail에 그런 그럼을 첨부하기도 한다. 때로는 다른 나라의 이상한 언어로 첫인사를 대신하기도 한다.

그녀는 가련해 보이지만, 속에는 불덩이를 안고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잘 보지 못한다. 그것은 보기보다는 느껴야 한다. 그것은 서로 마음이 통해야만 느낄 수 있다. 그녀는 보기보다 고집이 있다. 재동 형은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아니, 지금쯤 그는 이미 각오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사색하듯 말한다. 말을 잘하는 듯 못하는 듯하다. 때로는 시처럼 말하기도 한다. 놀랍다.

그녀는 시를 좋아한다. 우리는 그녀가 좋은 시를 쓸 수 있고, 그래서 좋은 시인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녀가 시를 써야 한다고 주장했고 지금도 그렇게 주장한다. 그러나 그녀는 좀처럼 시를 써내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그녀는 매일 시를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않았을 뿐이다. 내가보기에 그녀는 늘 글은 쓰지만, 자신의 글에 ‘시’라는 명판을 붙이는 것에 소극적이다. 그녀는 지금 자신의 앞에 벽을 두고 있다. 나는 그 벽을 본 적은 없고 느낀 적만 있다. 나는 그 벽이 그녀가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라 생각한다. 아니,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확신한다. 나는 그 벽이 다른 사람의 손에 쉽게 허물어질 수 있는 것이라는 것도 안다. 그러나 그 벽은 나를 포함해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대신 허물어줄 수 없다. 그것은 그녀의 몫이다. 자신이 만든 벽은 자신이 가장 잘 깰 수 있다. 그 벽이 깨질 때, 그녀는 이제껏 맛보지 못한 통렬함을 맛보게 될 것이다. 곧 그렇게 되길 바란다.

언제부터인가 선이 누나가 예뻐졌다. 특별히 변한 것은 없었는데, 왠지 그렇게 보였다. 왜? 재동 형이 답이었다. 누군가 사랑을 받으면 예뻐진다고 했는데, 사실이었다. 요즘 결혼식 준비 때문에 피곤해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그녀는 점점 아름다워지고 있다. 재동 형은 좋겠다.

2006년 2월 18일, 결혼식을 일주일 앞둔 시점에서 사부와 연구원들은 선이 누나와 재동 형이 직접 낭독한 ‘결혼 후의 아름다운 풍광’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것은 결혼식장에서 읽게 될 원고의 초안이었다. 나는 그것을 들으면서 이런 느낌을 가졌다. 그리고 이런 말을 둘에게 해주고 싶었다.

“재동 형과 선이 누나는 시와 그림과 노래를 떠올리게 해. 아름다운 시와 그림과 노래. 누나와 형의 만남은 아름다운 시와 그림의 만남이야. 순수한 시와 그만큼 독특한 선율의 결합이야. 둘이 만들어낼 아름다운 음악에 우리는 언제든 목소리를 더할 준비가 되어 있어. 좋은 시와 선율과 목소리의 결합, 우리는 이것을 위대한 음악이라 부르지. 잊지마. ‘우리’ 모두 서로의 마음 속에 ‘우리’가 늘 있음을.”


김미영
독특한 색깔을 갖고 있다. 강한듯하면서도 약하고, 얇은 듯 하면서 깊다. 똑똑하다가도 갑자기 이상한 말을 하곤 한다. 그녀는 나를 ‘독특한 색깔’, ‘여러 색깔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하곤 하는데, 그녀 역시 독특한 색을 갖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느낌이나 일상을 별 어려움 없이 글로 정리할 수 있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는 그 글의 독자가 자신일 때만 이렇게 할 수 있었다. 이제까지 일기 형식의 글을 쓸 때 그녀는 마음을 놓아두고 부담이 없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쉽게 쓸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일기에서 소설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가 곧 올 것 같다. 그 고개는 ‘김미영’이 넘어야 할 대목이다. 다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몫이다. 나는 그녀가 그 고개를 넘을 때 박수치며 응원해줄 것이다. 포기하려하면 혼도 내줄 것이다. 그러고 싶다.

누나는 성깔이 있다. 술을 잘 마신다. 웬만해서는 나가떨어지지 않는다. 누나 두 잔, 난 한 잔, 이렇게 해야 나는 버틸 수 있다. 누나는 작은 것에 기뻐하고 감동 받고 한편으로는 힘들어하는 것 같다. 긴 삶을 이루는 수많은 하루가 결국 삶이다. 하루를 잘 살아 갈 때 삶 또한 좋아진다. 하루를 잘사는 법은 크고 거대한 것에 있지 않고 작고 사소한 것들에 있다. 그런 일들에 우리는 치이기도 하고 기쁨을 느끼기도 한다. 이것이 작고 사소한 것들의 힘이고 어려움이다. 작고 사소한 경험, 생각, 느낌, 감정, 관계를 누나의 언어로 정리해보길 권한다. 누나의 글은 가독성이 높다. 쉽게 읽히고 마음에도 잘 스며든다. 이것이 누나의 강점이다. 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우리는 누나의 삶이, 이야기들이 해피엔딩의 연속이기를 바란다.

울면서 책을 읽어본 사람은 웃으면서도 읽을 수 있다. 울면서 글을 써본 사람은 웃으면서도 쓸 수 있다. 울고 웃으며 읽고 써본 사람은 읽는 이를 울고 웃길 수 있다. 누나는 좋은 작가가 될 수 있다.


오옥균

옥균 형의 인상은 열혈남아다. 술을 잘 마실 것 같고 깐깐할 것 같다. 날카로운 느낌도 준다. 그러나 몇 번 만나면 이런 인상은 즐겁게 깨진다. 옥균 형은 웃을 때 눈이 조금 내려간다. 귀엽다. 술 마시면 잔다. 귀엽다. 술은 우리 같은 사람에게는 흥분제가 아니라 진정제에 가깝다. 먹으면 잠드니까. 나도 술 먹으면 잠들지만 귀엽지는 않다. 오히려 끔찍하다.

옥균 형은 멋있다. 패션 감각이 뛰어나다. 그는 단정한 멋을 추구하는 것 같다. 계절과 장소에 잘 맞는 옷을 입는다. 부럽다. 아마도 형의 옷장은 늘 잘 정돈되어 있을 것이다.

옥균 형은 가끔 포커페이스 같을 때가 있다. 내가 처음으로 옥균 형을 만난 것은 ‘내 꿈 프로그램’에서였다. 우리는 1기였다. 나는 다른 참가들을 보면서 어떤 구체적인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옥균 형은 달랐다. 적어도 하루 동안은 옥균 형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지금 어떤 기분인지를 전혀 파악할 수 없었다. 요즘에도 가끔 옥균 형의 생각과 기분이 궁금할 때가 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옥균 형이 갖고 있는 생각과 기분에 대한 내 예상은 거의 맞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더 궁금할 수밖에.


정경빈
나와 동갑이다. 그는 진지하고 신중하다. 쉽게 움직이지 않을 타입이다. 그는 친구, 후배, 선배, 동료 그리고 가족에게 신뢰를 준다. 그는 또래들보다 안정적인 인상을 준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다. 말이 그렇고 행동이 그렇다.

언젠가, 내가 술 먹고 떡이 된 적이 있었다. 내 생에 처음으로 기억이 드문드문 끊긴 날이었다. 바로 그날 나를 집까지 데려다 준 사람이 경빈이였다. 쉽지 않았을 것이다. 술 먹고 처진 사람은 평소보다 훨씬 무겁다. 나는 무거운 배낭까지 매고 있었다. 게다가 경빈이도 적지 않은 술을 마신 상태였다. 어쨌든 경빈이는 우리집 대문 앞까지 나를 무사히 데려다 주었다. 얼마 전에 덕유산 정상에서 취한 노진 형을 산 아래까지 데리고 내려온 적이 있었다. 나는 그 때 알았다. 경빈이가 그날 얼마나 고생했을지를. 경빈아, 고맙다.

경빈이가 내게 소개팅을 해주기로 약속한 적이 있었다(사실은 내가 졸랐다). 그는 몇 달 동안이나 꾸물거렸다. 그는 ‘기왕 해주는 거 승완이에게 딱 맞는 사람을 찾아보리라’하고 다짐했을 것이다. 진지하게 생각하고 신중히 탐색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못 찾은 것이다. 경빈아, 너의 신중함과 진지함이 난 좋다. 그런데 그것을 좀 덜어내야 할 때도 있는 것 같다. 지금 내가 한 말 역시 덜 진지하고 신중하게 받아들이면 좋겠다.

경빈이는 처음부터 1기 연구원은 아니었다. 그는 객원 연구원 형식으로 참여하다가 점점 깊어졌다. 조금은 애매한 위치였다. 그는 이번 경험을 곱씹고 2기 연구원에 도전할 것이다. 나는 그가 2기 연구원으로 선정되리라 믿는다. 그리고 그의 활약을 누구보다 기대한다.

나는 경빈이에게 ‘계획된 파격’을 추구하기를 권하고 싶다. 개인적인 부분에서 시작하는 것이 위험부담이 없을 것이다. 시행착오를 넘고 성공을 발판 삼아, 그 범위를 점점 넓혀나가다 보면 새로운 수준에 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친구이기에 과감한 조언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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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곤
2006.02.25 10:51:26 *.51.72.193
재밌다. 역시 너답다.
승완이의 세밀한 감성과 날카로운 직관이 반짝반짝 빛이 난다.
연구원 생활을 마무리하면서 한 건 터트려 줄 것이라 생각했는데 역시...
가끔 내게 망발을 늘어 놓았지만 애교로 봐준줄 알어.ㅋㅋ
절대 감성 잘 살리고 전체적인 안목에서 볼 수 있는 시야만 좀 넓힌다면 넌 크게 될 놈이야.
애썼다.(사부님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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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옥균
2006.02.26 21:26:21 *.62.201.251
난 준게 별로 없는데 받은게 많은 사람이다.
이번 연구원 모임에선 더욱 그렇다. 난 별로 빚지고 살지 않는 성격인데 이번 모임에선 빚을 지고 있는 느낌이다. 승완아 앞으로 남은 세월에 자주 만나 너의 날카로운 감성으로 나를 좀 더 관찰해 주렴. 정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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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
2006.02.26 23:04:25 *.140.43.32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요즘 좀처럼 글들을 자세히 읽지 않는데.. 꽤 시간을 들여서 찬찬히 읽었습니다. 1기 연구원 분들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네요. 자신에 대한 분석도 한번 추가하면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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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기원
2006.02.27 13:55:21 *.7.28.25
이렇게 좋은 아니 훌륭한 눈을 가지고 얼굴이 무거워서 어떻게 하루를 잘 보낼 수있을까? 부럽고 정확함에 놀랐습니다. 모두를 눈으로 짧게 보았지만 정확한 혜안입니다. 이러한 혜안으로 세상을 보는 이야기를 해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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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요한
2006.03.07 15:28:21 *.231.169.35
육안으로 보는 것이 관찰이라면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은 관심이라 할 수 있겠지. 글 속에 관심과 관찰이 잘 어울려 있음이 느껴진다. 우리를 바라보는 애정어린 시선이 그대에게도 함께하기를.... 1년 내내 우리를 위해 애써준 정성과 보이지 않았던 시간들에 대해 늘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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