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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재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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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 10일 15시 00분 등록


얼마 전 ‘타이타닉’ 전시회를 갔었다.
그 전시회에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초호화 여객선 ‘타이타닉’ 의 유품과 뒷 이야기들이 흥미롭게 전시되어있었다. 이미 영화로도 친숙한 내용이었지만, 실제로 복원된 1등석의 내부뿐만 아니라, 타이타닉 호를 둘러싼 전문가 집단들과 정치적인 움직임 등 비하인드 스토리 또한 흥미롭게 알 수 있는 기회였다. 전시실 벽에는 타이타닉 호의 생존자들이 남긴 증언들이 써있었는데, 참 인상적이었다.

‘타이타닉은 단순히 사람들이 떠나고 싶은 곳에서 가고 싶은 곳으로 데려다 주는 방법이 아니었다. 타이타닉은 물 위를 떠다니는 신분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누구에겐가 ‘신분의 상징’ 이었던 그 시대의 아이콘은 엄청난 재난으로 이어진 탓에 ‘비극’ 또는 ‘재앙’과 동의어로 통한다. 혹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한 시대의 꿈과 희망이 재앙이 되어버린 저주 받은 걸작’, 이라고 이야기했다.

타이타닉에 대한 여러가지 해석이 이루어진다. 누구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에 대해 개탄하는 말부터, 죽음에 이르는 인간의 행동에 대해서, 누구는 유물과 유품을 둘러싼 암투에 관해서, 그리고 신분상승을 꿈꾸는 이민자와 자신의 지위를 지키려는 보수세력의 갈등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고 간다.

여러가지 생각들이 교차하는 가운데 전시실을 나왔다.
조용히 사색을 하려는 나의 생각은 그러나, 금새 무너지고 말았다. 갑자기 떠들썩한 행렬이 내 앞을 지나가면서 시위대가 정렬을 하고 있었다. 순간, 그 주위는 시끄러운 장터처럼 변했다. 처음엔 무슨 단순한 집회인줄 알았다. 몇 대의 시끄러운 자동차 행렬이 이어져있었고, 그 무리 중 몇몇이 들고 있는 빨간색 깃발에는 ‘우리의 희망, 황교수를 살리자’ 라고 써 있었다. 말로만 듣던 ‘황교수를 지지하는 모임’ 의 단체들인 모양이었다. 그들은 확성기를 통해 이 시대에 황교수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 들을 들면서 모임을 이끌어가고 있었다.

흥미로운 조화가 아닐 수 없었다. ‘타이타닉 전시회’ 부근의 ‘황교수 지지자 모임’이라-. 묘한 대조를 이루며 나의 주목을 끌었다.

작년 말부터 붉어지기 시작한 이 사건의 내막은 보도를 통해 본 바에 의하면, 이제 그 화려한 막을 내릴 때가 다가온 것 같다. 황교수의 논문조작 사건이 이제 거의 실체를 드러내고 있지만 일반인들은 아직도 혼란스러울 따름이다. 왜냐하면 이 사건은 학계, 정부, 언론과 같은 거대 권위집단이 모여서 태평양을 가르는 타이타닉 호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문가 집단들은 자신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쉽게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고, 진실을 은폐한 채 책임을 상대방에게 전가하고 있다. 학계, 청와대, 정부, 언론이 서로 진실 공방은 이제 떠나 알력싸움을 벌이고 책임 전가를 하는 모습들도 보이고 있다. 물론 황 교수의 난자 채취 과정의 비윤리성과 논문의 과장과 조작 행위는 학자의 윤리에 어긋나는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여러 차례 기자회견을 통해 행해진 그의 책임 공방은 난치병을 앓은 환자들의 마음에 치유 될 수 없는 쓰라린 상처를 안겨주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국내 학계는 과연 무엇을 했는가 하는 점이다. 황 교수팀이 그렇게 학문적 범죄를 저지르며 무리하게 앞서갈 때에, 문제점을 인식하고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는 그런 용기 있고, 양심 있는 학자는 왜 없었던 것인가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언론이 전문가 집단보다 먼저 이 사건에 문제 제기를 한 것에 대해 대한민국 학술원은 전문성이 결여된 미약함과 미성숙을 반성해야 할 것이다. 교수 한 명에게 그렇게 쉽게 호락호락 속아 넘어갈 사람들이라면 무엇이 전문 영역이고 누가 전문가란 말인지 물어보고 싶을 따름이다. 과학집단 모두는 일반 대중처럼 황우석 신화에 빠져 있었던 탓은 아니었는지, 과연 신화를 극복하지 못하는 과학을 우리는 앞으로 100년, 200년을 끌고 나갈 성장의 원동력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인지 우리 모두는 반성해야 할 것이다.

언론과 정부 또한 황 교수와 함께 탑승한 타이타닉호의 주역들이다. 사실 확인과 진실 보도의 의무를 지키지 못한 언론과 황우석 신화만을 키워 온 정부 또한 그 책임을 지키도록 해야 할 것이다. 언론이 뒤늦게나마 탐사 보도의 힘을 보여준 것은 그나마 소신 있는 행동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그 탐사 과정에서도 회유와 협박의 배경이 있었다는 것은 취재와 보도 윤리에 치명적인 선례를 남겼다. 또한 철저한 검증을 거치지 않은 채, 경쟁 언론사들의 잘못만을 비난하는 언론집단의 보도 자세는 한편의 블랙 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일반 대중 사이에서는 전문가 집단 간의 다툼과는 관계없이 황 교수에 대한 기대심리와 그에 대한 ‘종교적인’ 지지율은 여전히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왜 그러는 것일까. 필자는 그 대답을 타이타닉 전시회에 있었던 생존자의 인터뷰에서 희미하게나마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남들은 타이타닉을 운명의 장난이거나 불행으로 간주하지만, 전 ‘부활’의 의미로 받아들입니다. 왜냐하면 전 그 사건으로 인해 삶을 다시 살게 되었거든요. 부활의 힘, 그것이 바로 타이타닉이 주는 교훈입니다.’

황 교수 사건은 대한민국 전문가 집단의 능력과 양심의 부재, 그리고 전문가 관리시스템의 허술함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최고를 자랑하는 호화판 여객선을 타고 ‘신분상승’을 꿈꾸려다 침몰한 ‘타이타닉’처럼, 이제는 철저한 발굴작업을 통한 ‘재창조’의 작업을 필요로 할 때다. 무엇이 문제였는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어디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할 때 이다. 전문가 집단은 반성해야 하고 우리의 전문성과 윤리성을 총체적으로 점검하여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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