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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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쾌한 아침이다.
한참 번잡하고 바쁠 오전시간에 흐릿한 얼굴로 책상을 붙잡고 서있는 여직원을 만났다. 평소 같으면 붉은 볼에 깊은 보조개를 심으며 명랑한 톤으로 인사말을 전달할 사람인데 어째 반응이 시큰둥하다. 머쓱한 분위기를 만들지 않으려고 내가 오히려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그러면 의례히 그랬던 것처럼 그 친구 고유의 유쾌한 인사말이 나올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응은 여전히 희미하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아 살짝 다가가서 말을 건넸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그냥, 지하철 때문에 좀 지쳐서요.”
“아~ 파업이라 출근하는데 오래 걸렸겠구나.”
“오는 것도 그랬지만, 사람이 많으니까 지하철에 이상한 사람들이 있...”
“얘 오늘 지하철에서 변태 만났대요.”
타이밍을 놓칠 새라 옆의 여직원이 말을 거들었다.
대충 감이 잡혔다. 익명을 무기로 책임감 없이 행동하는 인간에게, 배차가 길어져 북적이는 지하철 객차 안은 무엇보다 좋은 기회였을 것이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런데 이럴 때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잠깐 동안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아니, 그래서 그걸 가만뒀어?”
“설마 가만뒀겠어요? 한바탕했죠.”
피식 웃으면서 아까보다는 씩씩한 대답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 웃음도 길지는 않았다. 나 역시 마땅히 더 할 말이 없어 그렇게 짧은 인사말을 끝내고 내 자리로 돌아왔다.
그러고 보니 파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집과 회사의 거리가 멀지않은 터라 상대적으로 파업의 여파가 적었던 나에 비해서 서울 외곽에서 출퇴근을 해야 하는 직원들은 무더기 지각을 했다. 그들의 질려버린 표정에서 파업으로 인한 피해를 고스란히 읽을 수 있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파업이란 말인가. 파업에 공감대 형성을 하지 못한 것은 나만이 아니었는지, 항의하는 고객들이 줄을 이었다는 뉴스기사가 인터넷 화면을 스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의와는 무관하게 그들만의 리그는 여전히 <진행중>이었다.
그들만의 리그.
사실, 공사의 파업이 진정한 그들만의 리그로 남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많다. 파업에 대한 크고 작은 피해를 그들과는 무관한 국민 역시 고스란히 감내해야 하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일이 어디 한 두 번이던가. 고래는 자신들의 싸움에만도 버거워 등이 터지는 새우를 보살필 ‘여력’이 없고, 등이 터지는 새우는 자기일로 바쁜 고래에게 감놔라 배놔라 할 ‘힘’이 없는 것이다.
대책 없이 길어질 것 같던 파업이 며칠 만에 해결되었다.
아니, 해결되기 보다는 유야무야 처리되었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이다. 아직 그 어떤 것도 해결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주도자에 대한 파면 및 강경노조에 대한 직위해제가 해결책인 듯 말하고 있지만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물론 입학시즌을 맞은 시점에서 사람들을 볼모로 잡은 노조의 파업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고질적인 정책상의 문제와 함께 예고된 파업임에도 불구하고 속수무책 방관하여 사건을 크게 만든 공사 및 애초부터 사건의 빌미를 제공한 정부 모두에게 공공의 책임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한 시대가 미완으로 남긴 과제들은,
적어도 그 과제들의 성취를 요구하는 현실조건이 사라지지 않는 한,
탕감되거나 면제되는 일 없이 다음 세기의 불가피한 숙제로 이월된다.
그 숙제들을 점검하는 일은 이미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작업의 일부이다.
<<새천년 한국인, 한국사회>> - 새로운 도전, 그리고 성찰과 비전 중에서
파업이 남긴 것은 무엇인가.
방법의 정당성은 차치하고, 이제는 표면화된 문제에 대하여 좀 더 속 깊은 점검이 필요한 때다. 무사안일식 덮어버리기는 불씨를 완전하게 제거하지 못한다. 불씨가 다시금 큰 불로 옮겨붙었을 때 누가 막을 수 있을 것인가. 그때는 어쩌면 고래싸움에 새우 등이 터지는 간단한 일(?)로 끝나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IP *.73.136.21
한참 번잡하고 바쁠 오전시간에 흐릿한 얼굴로 책상을 붙잡고 서있는 여직원을 만났다. 평소 같으면 붉은 볼에 깊은 보조개를 심으며 명랑한 톤으로 인사말을 전달할 사람인데 어째 반응이 시큰둥하다. 머쓱한 분위기를 만들지 않으려고 내가 오히려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그러면 의례히 그랬던 것처럼 그 친구 고유의 유쾌한 인사말이 나올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응은 여전히 희미하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아 살짝 다가가서 말을 건넸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그냥, 지하철 때문에 좀 지쳐서요.”
“아~ 파업이라 출근하는데 오래 걸렸겠구나.”
“오는 것도 그랬지만, 사람이 많으니까 지하철에 이상한 사람들이 있...”
“얘 오늘 지하철에서 변태 만났대요.”
타이밍을 놓칠 새라 옆의 여직원이 말을 거들었다.
대충 감이 잡혔다. 익명을 무기로 책임감 없이 행동하는 인간에게, 배차가 길어져 북적이는 지하철 객차 안은 무엇보다 좋은 기회였을 것이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런데 이럴 때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잠깐 동안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아니, 그래서 그걸 가만뒀어?”
“설마 가만뒀겠어요? 한바탕했죠.”
피식 웃으면서 아까보다는 씩씩한 대답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 웃음도 길지는 않았다. 나 역시 마땅히 더 할 말이 없어 그렇게 짧은 인사말을 끝내고 내 자리로 돌아왔다.
그러고 보니 파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집과 회사의 거리가 멀지않은 터라 상대적으로 파업의 여파가 적었던 나에 비해서 서울 외곽에서 출퇴근을 해야 하는 직원들은 무더기 지각을 했다. 그들의 질려버린 표정에서 파업으로 인한 피해를 고스란히 읽을 수 있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파업이란 말인가. 파업에 공감대 형성을 하지 못한 것은 나만이 아니었는지, 항의하는 고객들이 줄을 이었다는 뉴스기사가 인터넷 화면을 스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의와는 무관하게 그들만의 리그는 여전히 <진행중>이었다.
그들만의 리그.
사실, 공사의 파업이 진정한 그들만의 리그로 남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많다. 파업에 대한 크고 작은 피해를 그들과는 무관한 국민 역시 고스란히 감내해야 하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일이 어디 한 두 번이던가. 고래는 자신들의 싸움에만도 버거워 등이 터지는 새우를 보살필 ‘여력’이 없고, 등이 터지는 새우는 자기일로 바쁜 고래에게 감놔라 배놔라 할 ‘힘’이 없는 것이다.
대책 없이 길어질 것 같던 파업이 며칠 만에 해결되었다.
아니, 해결되기 보다는 유야무야 처리되었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이다. 아직 그 어떤 것도 해결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주도자에 대한 파면 및 강경노조에 대한 직위해제가 해결책인 듯 말하고 있지만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물론 입학시즌을 맞은 시점에서 사람들을 볼모로 잡은 노조의 파업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고질적인 정책상의 문제와 함께 예고된 파업임에도 불구하고 속수무책 방관하여 사건을 크게 만든 공사 및 애초부터 사건의 빌미를 제공한 정부 모두에게 공공의 책임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한 시대가 미완으로 남긴 과제들은,
적어도 그 과제들의 성취를 요구하는 현실조건이 사라지지 않는 한,
탕감되거나 면제되는 일 없이 다음 세기의 불가피한 숙제로 이월된다.
그 숙제들을 점검하는 일은 이미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작업의 일부이다.
<<새천년 한국인, 한국사회>> - 새로운 도전, 그리고 성찰과 비전 중에서
파업이 남긴 것은 무엇인가.
방법의 정당성은 차치하고, 이제는 표면화된 문제에 대하여 좀 더 속 깊은 점검이 필요한 때다. 무사안일식 덮어버리기는 불씨를 완전하게 제거하지 못한다. 불씨가 다시금 큰 불로 옮겨붙었을 때 누가 막을 수 있을 것인가. 그때는 어쩌면 고래싸움에 새우 등이 터지는 간단한 일(?)로 끝나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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