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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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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 21일 09시 19분 등록
권태

내가 이 단어를 처음 느낀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소년 같고 들풀 같았던 내 친구들과 가슴으로 바람을 맞고 바다를 보러 다니고 하늘을 자주 보던 중학교 시절이 끝나고 본격적인 입시의 인문계 고등학교로 들어갔을 때.
학교가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좋아할 만한 것이 없었다. 마음을 빼앗길 것이 없었다.
그래. 마음을 빼앗길 만한 무엇이 없는 것, 마음이 허전한 상태. 그 상태가 내게 권태였다.

아침 일찍 등교해서 어슴푸레한 창밖의 교정을 보며 내가 사는 이유가 뭘까 내가 태어난 데는 뭔가 이유가 있지 않을까를 중얼거리던 시절이었다.
눈썹을 얇게 그리고, 유행하던 블루블랙으로 염색을 하고, 주말에는 살짝 화장도 하고
남자아이들을 만나러 다녔다. 고등학교 1학년 때에는.
총각 선생님이 나를 보며 너 좀 놀지? 하던 시절이었다.
몇 개월 되지도 않아 재미가 없어져 버렸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주기로 했다. 아이돌 스타에게.
그때부터 고등학교 시절 내 생활의 전부는 스타였다. 나는 자율학습 시간 내내 그들이 나오는 라디오를 들었고 그들의 사진을 책 밑에 끼워놓았으며 자율학습을 땡땡이 치고 개구멍을 빠져나가 그들의 새로운 사진을 사러 나갔다. 콘서트에 가기 위해 도망가다가 교감에게 걸려 근신을 먹기도 했다. 자율학습 4시간 동안 내리 엎어져 자기도 했다. 집에 가서 밤새 통신을 하기위해, 그들의 팬클럽 사이트에서 ‘활동‘하기 위해.
나는 지금 스타가 나오면 비명을 질러대는 여학생들을 못마땅하게 쳐다보는 어른이 되어있지만, 그들의 비명소리가 시끄러워서일 뿐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꿈이 부족하고, 마음이 허전하고, 그래서 좋아할 것이 필요한 것이다. 집중할만한 무언가.
그들을 좋아한다고 느끼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 그들을 통해자기를 즐겁게 하기 위함이다. 지루한 시간을 달래기 위함이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대학교 시절도 비슷했다. 동아리 활동을 했지만 별로 좋아하지 못했고, 연애를 독하게 하지도 못했다. 그 시절, 그 권태로운 시간을 죽이기 위해 택한 것이 도서관이었다. 학과 공부가 아니라. 단지 책.
이제 생각해보면 나의 독서는 책을 읽고 싶어서가 아니라 책을 읽는 동안은 지루하지 않기 때문에 시작된 것이었다. 나를 지루하지 않게 하는 읽을거리. 권태롭지 않을 수 있는 흥밋거리. 편중된 독서였다. 덕분에 최다열람자 순위 몇 위에도 올라봤다. 아아, 나에게 독서는. killing time 이었구나. 이제 보니.

내가 왜 갑자기 이런 얘기를 꺼내느냐 하면, 어제 하루 종일 집에 박혀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몇 주 전에 발목을 삔 이후로, 출근을 해야 하는 주중은 제하고라도 주말에는 응당 집에 박혀 있어야 했지만, 주말에는 집에서는 도대체 무엇을 쓰고 생각하는 건설적인 사고를 전혀 할 수 없는 나인지라 이리저리 커피집을 찾아다니며 연구원 과제를 쓰고 책을 읽어야 했기에, 무리해서 돌아다녀서인지 영 발목이 좋지 않아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집에 박혀 있어야 했다.
하루 종일 얼마나, ‘지루해, 지루해’ 를 반복했던가.
영화를 봐도 재미가 없다. 티비는 더더욱 재미가 없다. 집에 있으니 책도 손에 잡히지 않고 독후감은 쓸 의욕도 생기지 않는다.
나는 왜 아무것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가. 왜 나는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이 없는가.
왜 나는, 권태로워 할 뿐 그 이유를 찾지 못하는가.
다른 이들은 모두 집중할 만한 무엇이 있는가. 그들은 어떤 일들로 일상을 채워나가는가.
나만 이렇게 느끼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 때의 그 자괴감.
내 관심은 내 안으로만 향하고 있다. 다른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나는 신문을 거의 보지 않고, 정치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사회적으로 무엇이 이슈가 되는지에 관심이 없다.
기본적으로, 나는 남에게 관심이 없는 것일까. 이게 혹시 내 권태의 이유일까.
스스로에게만 파고드는 사람은 발전하지 못한다. 자기애만 강한 사람은 성장하지 못한다.
내가 칼럼을 쓰기 힘든 것도 그런 이유일까. 다른 것에는 별 관심이 없으니, 무언가에 대해 별다른 의견을 갖지 않는다. 별다르게 할 말이 없다.
내가, 연습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향해 가야하는가.
IP *.141.32.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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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기원
2006.03.21 00:10:07 *.190.172.111
소정님 동감가는 글입니다.
저는 역마살이 있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한곳에 정착하기 어렵고 하나에 집중기어렵답니다.
이것은 좋은 기질일 수있다고 생각을 바꿔보면 어떨까요?
여행도 많이하고 많은 사람도 만나고 일도 만들고.... 그러다가 지치는 순간 명상을 합니다. 은거를 하면서 또 하고 싶은 일들을 정리하고 또 합니다. 반복하다보면 자신으 자리가 잡혀집니다.
자리가 잡혀진다는 것은 우리는 많은 것들을 밖에서 찾으려고 힘을 낭비하게된다는 것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진정 소중한 것은 자신안에 있습니다.
목적을 이루는 것보다 목적으로 가는 과정 하나하나에 만족이라는 감정의 의미를 부여하면 좋겠습니다.

연습해야할것은 반복입니다. 지금처럼 많은 과정들이 잘못되면 잘못될수록 알게되면 더욱더 바른 곳으로 간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한번에 딱하고 가는 길은... 명상에서 찾을 수있을 터인데 그보다는 실수를 통해서 얻는 것이 보다 진실성이 강할 수있습니다.

무엇을 향해 가야하는가?-> 보다 원대한 목표를 만드세요.
잘 사는 것이 목적이라면 잘 죽는 것이 되어야하고,
돈이 많은 것이 목적이라면 돈이 많은 이후의 어떤 것이 목적이어야하며
행복이 목적이면 행복넘어에 있는 만족이 목적이어 쉽게 접근 가능한 것같아요.

무엇을 찾았다 싶으면 저에게도 알려주셔요.
저도 찾고 있는데... 감은 잡은듯합니다.

하시고자하는 일이 더욱 가까이하는 나날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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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경
2006.03.21 20:19:19 *.62.107.130
집에 불이 났습니다.
집주인은 집뿐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타들어가는데,
저만치 떨어져 있는 구경꾼은 불 참 이쁘다며 감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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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영
2006.03.23 02:23:06 *.84.254.206
'권태'라는 것은 어떠한 사물(혹은 사람) 두개가 너무 오랫동안 가까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을때 생겨나는 감정이 아닌가 생각해요...
연인들이 하루죙일 6개월 같이 다니면 슬슬 지겨워지고?? 떨어져 있고 싶음을 느끼는 것 처럼요~

소정이가 지금 세상의 모든 것들에 재미가 없고 지루함을 느끼고 있다면.
그건 세상에 대해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게 아니라. 그것과 너무 밀접하게 오래 있어서, 이제 조금 떨어져 있고 싶구나! 라고 느끼는게 아닐까요?
관심이 너무 안으로만 향해 있는게 아니라, 너무 밖으로만 향해있는 안테나를 내 자신 안으로 조금은 돌리고 싶은 상태인듯 싶은데... ^^;;;

그럴때 가끔은 혼자 있어 봐요~
지루해 지루해 하면서 영화를 보려 하지 말고, TV, 책이 없이도...
진짜 진짜 정말 혼자이고 보면... 어쩌면 지루함이, 권태가 조금 덜 하지 않을까요? ^^

물론, 그 어느것도 정답이 될수는 없겠지만. ^^;;;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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