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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병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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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 21일 13시 42분 등록
‘월화수목금금금’은 주말도 평일처럼 열심히 일한다는 말인데 원래는 제조업체에서 자주 사용되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하다보면 기계를 점검할 시간이 토요일이나 일요일밖에 없기 때문에 결국 일주일 내내 일한다는 서글픈 현실을 빗대어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비단 제조업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 개발 현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예전에 N 프로젝트를 하던 때였다. 당시 시스템 오픈이 얼마 남지 않아 프로젝트 팀원들은 계속되는 초과근무로 인해 심신이 지쳐있었다. 당시 아내는 첫 애 출산을 앞두고 있었는데 그런 아내를 나는 프로젝트로 인해 관심을 두지 못해 미안했다. 새해 첫 날 밤에 아내가 큰 애를 무사히 출산해서 다음 날 아내를 간호하느라 회사에 출근을 하지 못했다.(그 날은 휴일이었다.) 그 다음 날 아침에 출근을 했는데 프로젝트 관리자가 팀원들 전체를 불러 지금이 어느 시국인데 어제 출근을 안했느냐고 훈계를 했다. 나는 아이의 아빠가 된다는 일보다 프로젝트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현실에 비애와 함께 분노를 느꼈다. 얼마 전 모 프로젝트에 투입된 직원이 퇴사를 했다. 퇴사한 이유는 너무나 간단했다. 프로젝트 때문에 결혼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노총각인 그는 어렵사리 만난 애인과 결혼하려 했으나 데이트하기도 힘든 현실에서 적잖은 고민을 했고 급기야 회사를 그만두었다.

물론 우리 주위에는 불철주야 자발적으로 열심히 일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동기야 어찌 되었던 간에 기계가 아닌 이상 휴식은 필요하다. 또한 우리는 일 이외에 중요한 가족, 친구, 애인, 자기계발, 취미 등에도 충분한 관심을 주어야 한다. 일과 일 이외의 것에서 양자택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이다. 우리는 이것 아니면 저것, 즉 or의 문화권보다는 이것이면서 저것인 and의 문화권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현실은 초과근무 한가지에만 집착하는가? 아마 가장 많은 대답은 일이 급박하기 때문일 것이다. 일을 처리하기 위한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렇지만 어느 특정 시점에 급박하게 돌아 가는 게 아니라 대부분의 일이 초과근무로 인해 진행이 된다면 그 일을 계속할 것인지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일 자체가 문제인 까닭이다.

초과근무에 집착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일에 대한 잘못된 관념에서 기인한다. 일은 오로지 오랫동안 열심히 해야만 잘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일면 맞는 말이다. 세상에는 궁둥이 살에 물집이 잡혀야 잘하게 되는 일이 많다. 그렇지만 이 사실은 내가 하고 싶어하고 잘 하는 일에 지속적으로 매진한다는 뜻이다. 단지 초과근무 등 시간을 많이 투입하는 것과 일을 잘하는 것은 특별한 인과관계는 없어 보인다. 과연 일은 쉼 없이 계속해야 잘하게 되는 걸까? 위의 말이 사실이라면 체력이 제일 좋은 사람이 일을 잘한다는 결론이 유추된다.

초과근무에 몰두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일이 잘못되었을 경우를 대비한 보호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일종의 면피인 셈이다. 관리자는 직원들이 사생활을 희생해서라도 더 오래 더 열심히 일하도록 해야 일을 잘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는 성과 위주로 직원을 평가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직원은 자신에게 부여된 감당할 수 없는 과업을 초과근무를 통해 해결하려 하지만 결과는 좋지 못하다. 그렇지만 관리자는 그가 초과근무를 지속적으로 했다는 이유로 기꺼이 면죄부를 부여한다. 반면에 자신의 과업을 훌륭히 달성하고 초과근무를 거부하는 직원은 이기적인 직원으로 낙인을 찍는다. 이런 모습은 프로젝트의 리스크가 초기에 도출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초과근무는 다음과 같은 몇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초과근무는 먹고 살기 문제가 절박했을 시절에 있어서는 생존을 위해 꼭 필요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7,80년대의 산업화 시대에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오로지 생존을 위해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감내해야 했다. 지금은 세월이 많이 변해 먹고 살기 위해 참는 곳이 직장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직장이라면 스트레스와 피로가 누적되어 제대로 된 제품과 서비스가 나올 수 없다. 결과적으로 회사는 고객 만족을 이끌어 내지 못해 비즈니스는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둘째, 초과근무가 생산성을 꼭 높이지는 않는다. 전통적인 개념의 생산성은 얼마나 많은 노동력을 투입시키느냐의 문제였지만 이제는 투입 노동력에 비해 얼마나 많은 이윤과 성과를 창출할 수 있느냐는 개념으로 진화하였다. 또 단순히 근무시간을 따지기 보다는 일에 집중한 시간(flow time)을 중시해야 한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대부분의 직원들이 초과근무를 불가피한 것으로 여긴다면 일을 더 많이 하기보다는 일을 늘이는 경향이 강하다. 프로젝트를 하면서 이런 생각은 누구나 한번쯤 해 보았을 것이다. ‘어차피 야근 할건데 천천히 저녁 먹고 와서 하지’

셋째, 초과근무는 단거리에는 적합할 수 있지만 장거리에는 부적절하다. 프로젝트는 마라톤과 비슷하다. 프로젝트 초기부터 전력질주한다면 막상 중요한 시점에 이르면 지쳐버린다. 모 프로젝트는 기간이 1년인 장기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시작부터 프로젝트 팀원들은 10시 이전에 퇴근하기 어려웠다. 시간이 지나면서 높아지는 업무 강도로 인한 육체적 피로와 심리적 스트레스를 팀원들은 이기지 못하고 탈진(burn-out)하게 되었고, 결국 줄줄이 퇴사 하였다. 프로젝트는 제대로 진행되지 못해 큰 손실을 입고 재개발을 하게 되는 비운을 맞았다.

그렇다면 초과근무를 가능한 줄이면서 높은 생산성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일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수반한다. 이제 일은 열심히 일하기(work hard)에서 현명하게 일하기(work smart)로 변화하고 있다. 피터 드러커는 지식 근로자의 경우에 현명하게 일하기는 일의 생산성을 높이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과 같은 지적 노동의 경우에는 일의 질과 시간이 비례하지 않는다. 일 잘하는 사람은 먼저 일에 대해 생각하고, 스마트하게 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고, 비효율적이고 불필요한 관행을 타파하는데 주력한다. 절대 주어진 일의 테두리 안에서만 머무르지 않는다.

둘째, 직원들이 일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고 일 자체를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들이 모색되어야 한다. 일에 대한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동기부여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만큼 동기부여가 큰 수단은 없다. 공자는 논어에서,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라고 말했다. 일도 마찬가지다. 이럴 때 초과근무는 큰 의미가 없다. 직원들의 강점과 연결된 직무를 배치하고, 다양한 경로를 통해 성장할 수 있는 경력개발이 보장되고, 성과위주로 평가 보상하는 등의 제도가 실행되어야 한다.

셋째, 일에 대한 재충전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일은 휴식을 필요로 한다.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자신을 천천히 되돌아 볼 시간을 갖고 주기적인 휴식을 취해야만, 신선한 아이디어와 창의성을 재충전하고 일의 가속도를 높일 수 있다. 도요타의 공장에서는 3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3무는 무다, 무리, 무라 세 가지의 머리 글자가 '무'로 시작하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무다(無馱)'는 '낭비'라는 뜻이고, '무리(無理)'는 말 그대로 '무리', '무라(斑)'는 '고르지 못함'이라는 뜻이다. '3무'는 이 세 가지를 없애야 한다는 지침이다. 여기서 무리하지 말라는 ‘무리’를 유념해야 한다. 파스칼은 ‘인간의 불행은 단 한가지, 고요한 방에 들어가 휴식할 줄 모른 데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바쁘다는 것은 일의 목적이 아니다. 오히려 바쁨 속에서 우리는 일의 진정한 가치를 잃어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월화수목금금금’의 방식보다는 직원들의 창의성과 협력을 최대한 북돋우면서 성장하는 그런 회사를 나는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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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
2006.03.21 16:42:23 *.116.34.238

그러면 '월화수 토토일일' ?

맞아요. 빨리 그렇게 포트폴리오 인생으로 전환해야해요. 일,가정,자원봉사, 공부, 건강, 취미, 가사가 적당히 섞여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빨리 일상을 재구축해야해요. 적어도 40이 넘으면 이 숙제를 틀어쥐고 반드시 풀어 내야 마흔 이후 인생 40년이 살만해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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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기원
2006.03.21 23:44:43 *.190.243.147
병곤님 저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글이군요. 아마도 저를 위해 이글을 올려주셨나봐요. 고맙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왜 바빠야하는지에 대한 궁극적인 목적을 너무나 근시한적인 곳에 두고 있는 것같아요.
돈, 직장, 가족,.... 등등의 이유가 내자신을 자신답게 살 수있게 가만두지 않아요.
그러나 본연의 삶을 돌아볼 수있는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있는 어머님의 품같은 시간을 만들어야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지요.
삶에 의미를 찾을만한 시간을 가질 수있는 순간을 찾아야합니다. 24시간 모두를 일에 투자하는 것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월화수목숲숲숲(林)을 만들 수있는 현명한 방법을 찾아 보고 싶어요.
현실에 문제을 넘어서 보다 더 큰 문제를 잡고 고민하고 매달리면 가까이 있는 문제는 쉽게 풀리는 경우가 있을 것도 같아요.
돈 직장 가족의안녕... 이것보다 내가 사람답게 사느냐? 인간답게 죽느냐?의 문제는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병곤님 말씀데로
저는 바쁨속에서 일의 진정한 가치를 잃어버리고 있어요. 지금 부터라도 의미를 찾고 가치를 찾아보렵니다. 그래서 나의 기질에맞고 본연의 나다운 나의 삶의 길(道)을 만들어 월화수목숲숲숲의 일주일을 만들어 보렵니다.

병곤님께서 꿈꾸고계시는 회사에 자원봉사가서 화장실 청소를 하고 싶습니다. 소중한 꿈 꼭 이루시기를 간절이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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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영
2006.03.23 02:46:39 *.84.254.206
절대공감! ^^;;;

바쁘다고, 낫을 갈 시간이 없어서... 끝이 뭉툭해진 낫으로 계속 벼를 베게 되면... 종국에는 오히려 효율성이 더 떨어지는게죠~

아무리 바빠도 낫을 갈고 닦으면서... 그렇케 살아야 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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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 이 부분은 조금 반대!

초과근무에 몰두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일이 잘못되었을 경우를 대비한 보호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금은 졸려서 이유가 잘 정리되지는 않지만,
여튼~ 저게 사실이라면... 정말 우울한 회사생활이 될 것 같아요...
이 부분은 나중에 따로 한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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