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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4월 1일 07시 01분 등록

살다 보면 (다시 일상으로)

삶이 아주 즐거운 놀이일 수 있다는 경험을 할 수 있었던 3월 한 달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어쩌면 이것이 저에게 주어진 운명 같은 굴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 하는 억지만큼 자발적 의지를 꺽어 버리는 것도 없지요. 그러나 이것이 누구에게나 지워진 것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직 알지 못합니다. 다만 이것을 하지 않았을 때 갖게 되는 마음의 아픔이 타율적 실천이 뒤따르는 몸뚱아리의 고달픔보다도 더 커다는 사실 때문에 자발적 의지를 포장하게 되는 것이라 믿고 있을 뿐입니다.

17년 전 겨울에 그를 처음 만났습니다. 그 이후 지금까지 그와 저는 단짝이 되어 살았고 누구보다도 서로를 마음에 두고 살았습니다. 여느 사이들처럼 다툼도 있었고 한동안 딴 살림도 했었지요. 헤어졌다 다시 재회하는 연인들같이 우리도 그런 과정을 되풀이 하였습니다. 각각의 길이 다른 것이라 생각했었고 기차 길 마냥 영원한 평행선처럼 살고 싶었던 마음이었습니다. 13년 전 그의 시골집에서 소주 한 잔을 나누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나 저나 풋내기 젊은이였었지요. 세상에 대한 이유 없는 분노와 반항으로 가득 찬 그 시간들을 마흔이 넘은 지금에서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10년 전 우리는 소위 동업을 시작했던 것처럼 지금 우리는 다시 일하고 있습니다. 경험과 나이가 주는 것보다 훨씬 초라한 일을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이 일 외에는 제가 잘하는 것이 별로 없어서입니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절박함과 세치라고 생각했던 흰색머리가 조금씩 늘어나는 안타까움 속에서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즐겁게 시작하자고 마음먹었지요.

이렇게 3월 한 달을 보냈습니다. 아주 먼 어느 때 오늘을 되돌아 보았을 때 왜 그렇게 결정했을까 하고 웃을지도 모르겠지만 3월은 아주 잔인하게 또는 아주 희망차게 다가왔고 우리는 그놈들을 맞이하러 나갔습니다. 아침 일찍 새벽시장을 보러 갔었고, 아주 밤늦게 가게 문을 닫고 피곤에 절은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어제 손님이 많았으면 뿌듯해 했고, 오늘 손님이 적으면 우울해 하였습니다. 아침에 일어날 땐 힘이 넘치기도 하였고 잠자리에 들 때엔 내일에 대한 두려움에 몸을 떨기도 하였습니다. 고객의 반응에 일희일비하는 군상들의 습관에서 하나도 틀리지 않은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그러던 중 동아마라톤을 뛰었습니다. 아주 추운 날이었지요. 근 다섯 시간을 달리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마라톤 여행에 대한 아이디어와 앞으로 저의 생활이 지금처럼 아주 추울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지금 포기하면 앞으로의 제 인생이 추워질 것만 같아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마라톤처럼 정직한 분야도 드물지요. 노력한 만큼 그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 세상살이였으면 참 좋겠습니다.

새로운 상품을 만들었습니다. 고객이 목소리를 담아 제 방식대로 표현한 새 메뉴였습니다. 아주 반응이 좋았습니다. 아니 그렇게 느꼈습니다. 하지만 뭔가가 빠졌다는 것을 느끼기에는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았습니다. 힘들어도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4월은 빠진 뭔가를 찾아 채우는 한 달이 될 것 같습니다. 고객을 돕는 일이 이렇게 힘든가 봅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시간이 다가옵니다. 벌인 일을 나 몰라라 하고 있을 수는 없겠지만 달리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꿈 벗들을 만나는 저의 일상으로의 복귀를 준비합니다. 이젠 또 하나의 일이 추가되겠지요. 단순한 일로서만 추가되지 않도록 만들어 보려 합니다. 음식을 쓰는 일로 바꿔보려고 합니다. 글을 쓰는 즐거움에 음식이라는 소재가 추가되는 것이죠. 그러면 이것도 즐거움 중의 하나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일주일에 3일은 이 일과 관련된 업을 하고 이틀은 책을 읽고 꿈 벗을 만나는 즐거운 놀이를 하고 나머지 이틀은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휴식을 가지는 것으로 일과를 정해 보았습니다. 원래 세상일이라는 것이 생각했던 것처럼 되지는 않겠지만 큰 변화가 생기지 않는 한 당분간 이 흐름대로 살려고 합니다. 할 수 있는 한 아주 즐겁게 일을 받아들이고 생활하려고 노력합니다. 살다 보면 갑자기 바빠지거나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터져 일상이 흐트러지는 적이 있지 않습니까? 제겐 3월이 그런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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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깽이
2006.04.01 08:08:46 *.116.34.204
그대는 정성스러운 사람이니 잘 해낼 것이야. 늘 벌리는 일이 많지만 그것들이 하나로 모일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주면 결국 하나의 일이 되고 말 것이네.

강진의 다산 초당 앞 천일각에서 바라보면 구강포 앞바다가 보인다네. 아홉 개의 강이 흘러 모인다 하여 구강포라 부른다네, 강 줄기가 서로 달라 다른 곳으로 흘러가 버리면 그대의 강은 없을 것이네. 그러나 한 곳으로 모이게 할 수 있다면 훌륭한 포구가 될 것이네.

봄 되어 백련사 동백숲 환할 때, 다산 초당으로 넘어가는 산길을 따라 걷다 천일각에 올라 구강포 바다 한 번 보고 오게. 다산도 있고 아암 혜장선사도 있고. 그들이 걷던 길도 있으니 그 옛길을 걷다 오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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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곤
2006.04.01 10:35:43 *.51.65.40
나도 바쁘게 사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라고 늘 생각하지만 자로와는 약간 차이가 있다고 느껴져. 형은 무언가 굵직한 것들이 어느날 갑자기 추가되고 어떤 하나는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는 반면, 나는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이 계속 수정되고 변형되는 일이 너무 많아. 그러니까 append와 modify의 차이라 할까?
사부님 말씀대로 일관성이 중요한 거 같아. 하나로 잘 꿰는 능력이 난 충분히 있다고 믿어. 나는 오래 흘러야 되고..

지금 하는 일이 잘 돼서 앞으로 9년 안에 구강포처럼 9개의 지점이 만들어지고, 9권의 책이 나올꺼고, 9명의 평생 동지를 만들 수 있다고 믿어. 오늘이 만우절이니 약간의 뻥을 감안하더라도 살다보면 그런 시간이 오리라 믿어.

4월에는 얼굴 한번 볼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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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빈
2006.04.01 19:53:34 *.148.19.87
좋네요...글도 좋고 댓글도 좋고 쓴 사람 마음도 좋고...그냥 다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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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
2006.04.03 11:02:41 *.97.149.71
나중에 보게되면 마라톤에 대해서 좀 알려주세요.
복된 하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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