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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4월 11일 10시 55분 등록
제가 자동차를 갖게된 것은 2003년 3월의 어느날이었습니다.

운전기사를 두기전까지는 차를 갖지 않겠다는 당치도 않은 다짐을

깨게 된 것 또한 지금 생각해 보면 엉뚱한 일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작은 형수님이 점차 노총각의 향내가 진동하기

시작한 저에게 진지한 표정으로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도련님, 차가 있어야 여자가 생긴데요.."



그 당시에는 우스개 소리로 치부하며 아무렇지 않게 넘어갔는데

괜시리 그 말이 머리속에 남아 있었나 봅니다. 차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으니까요.



바로 사고싶은 차를 생각해 봤습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의견을

들어본 결과 현대 아반떼 XD가 그 당시 제일 잘나가는 기종이었고

저 역시 평소에 차에 대한 무관심만큼이나 쉽게 결정을 내렸습니다.

(결과적으로 영업사원의 현란한 입놀림에 아버지께서 스펙트라 윙을

구입하시게 되었지만..)



반 정도를 현금으로 주고 36개월 할부로 차를 구입하기로 했는데

막내아들의 결혼가능성을 높여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알뜰의

극치를 달리고 있던 저의 어머니가 거금을 선뜻 내주신 중요한 이유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난달로 제 더러운 애마는 온전히

저의 것이 되었군요..^^)



우연이었는지 필연이었는지 차를 산지 얼마 안되서 저는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되었고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운전면허를 딴지

무려 7년만에 초보운전을 시작한 저에게 운전의 두려움은 사랑하는

사람을 무사히 픽업하러 가야 하고 그녀가 원하는 곳으로 어디든지

가야한다는 사랑의 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몇가지

초보자가 통상적으로 저지르는 접촉사고와 딱지라는 부작용이 있었을

뿐이죠..^^)



뚜벅이로 30년 이상을 보냈고 생각없는 총각답게 경제력에 걸맞지

않게 택시를 자가용처럼 이용하던 몇년의 시간을 거쳐 마이카족이 된

저는 3년이 시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되돌아 볼 때 얻은것 보다는

잃은게 많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장 가슴이 아픈 것은 한때 작은 신장에도 불구하고 농구시합이나

씨름시합에서 웬만한 사람들에게 몸싸움에서 밀리지 않게 해주었던

튼튼한 하체가 자동차를 이용하면서 제 몸무게조차 감당하기 어려워

하는 허약한 놈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제 몸무게가 보통이라고

보기는 어렵지요..ㅜㅜ)



또 하나는 원래도 귀차니즘의 화신이고 게으름의 진수를 보여주었던

저였지만 더더욱 이런 증상이 심화되었다는 것입니다. 남들처럼 제때

세차를 해주기를 하나, 건강진단을 해주기를 하나, 참 제가 생각해도

대책없고 무심한 주인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원래 차를 갖게되면 얻게될 즐거움을 실제로는 제대로

만끽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입니다. 좋아하는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드라이브를 즐기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그들의

집까지 안전하게 데려다 주며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왜그리

가지지 못했는지 아쉽습니다. 그만큼 게으르면서도 여유는 없었던

것이겠지요.



기름값이 마니 올라가고 나서 아내의 이유있는 잔소리(주변사람들도

제가 차로 출퇴근하고 있는 사실을 알면 놀라는 경우가 많은 걸 보면)

때문이기도 하고 위에서 열거한 몇가지 이유들과 뚜벅이의 관점에서

얻을 수 있는 잃어버린 풍경들과 기억들을 되찾기 위해서 특별한 일이

없는한에는 뚜벅이로 되돌아 가기로 했습니다.



운전하며 출근하던 풍경과 기사가 모는 버스에 몸을 싣고 바라보는

3번 국도의 주변은 왜그렇게 다르게 느껴지던지 마치 새로 이사온 낯선

출근길로 착각을 할 정도였습니다. 책을 읽다가 주위 사람들의 사적인

대화에 잠시 시선을 뺏기다 사랑하는 아들의 뺨에 얼굴을 부비는 엄마의

모습에 미소짓는 식의 소담스런 자유를 얼마만에 느껴보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직은 버스를 기다리는 지루함과 부쩍 늘어버린 상체를 지탱하는

허약한 하체의 울부짖음에 익숙해 지지 않았지만 그런 것들을 상쇄할

만한 다시찾은 즐거움에 몰입해 보렵니다. 어쩌면 가끔씩 애마를 타게

됨으로써 애마에 대한 애정이 새롭게 샘솟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걸 일거양득이라고 하나요, 도랑치고 가재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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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12 07:53:48 *.238.88.130
저와 똑같은 경험을 하고 계시네요.
뚜벅이를 통해서 전 일주일에 3번정도 행복한 경험을 하지요.
혹시 뒤로 걷는 뚜벅이 해 보신적 있으신가요?
처음에는 힘든데 조금 지나면 참 신선해요.
그럼 행복하고 즐거운 뚜벅이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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