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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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돌이는 아주 평범한 아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달리기를 시작하자 사람들이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는 최고의 달리기꾼은 아니었지만 어떠한 특별 훈련도 받지 않은 것에 비하면 제법 소질을 보이고 있었다.
쥐돌이는 달리는 것에 신이 났다. 자신이 달리는데 소질이 있다는 것 보다는 사람들의 관심과 인정이 쥐돌이를 달리게 했다. 쥐돌이는 정해진 길을 따라 달렸다. 그 길을 따라 달리는 동안은 쥐돌이는 다른 것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되었다. 쥐돌이는 달리고 또 달렸으며 최고가 되기 위해 밤낮없이 달리는 것에 몰두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주변에서 같이 달리던 사람들의 속도가 조금씩 늦어지기 시작했다. 쥐돌이가 빨리 달린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속도가 조금씩 늦어진 것이었다. 달리는 것이 시시해 지려고 하자, 쥐돌이는 더 빨리 달리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으로 가서 더 열심히 달렸다.
늘 정해진 길을 달리던 그날도 쥐돌이에게는 평범한 일상과 같았다. 적어도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새벽 바람을 가르며 달리던 쥐돌이의 모자가 바람에 날라간 것이다. 무심결에 그것을 잡으려 쫓아가던 쥐돌이는 자신이 늘 다니던 그 길이 아닌 전혀 처음 보는 길에 있음을 한참이 지나서야 알 수 있었다.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돌아갈까? 근데 어디로 가야 하지? 그런데 그런 불안감도 잠시 늘 자신이 다니는 길에서는 보이지 않던 꽃향기가 났다. 한번도 천천히 걸어보지 않았던 그는 꽃향기가 전해주는 아련함에 그가 달리기 시작하기 전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 장면 속의 어머니는 천천히 걷고 계셨다. 언제나처럼 그렇게 한점의 햇살, 한점의 나무와도 교감을 하며 언제나 천천히 걸으시던 분이었다.
“ 쥐돌아, 서두르지 않으면 주변이 보인단다. 그때 보이는 것은 바쁘게 스쳐 지나갈 때와는 아주 다르게 보이는 법이란다.”
달리기의 효율을 알고부턴 한참을 잊고 지내던 장면이었다.
하루 종일 생각에 잠겨있던 쥐돌이는 자신이 처음으로 달리기가 아닌 다른 것을 생각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간혹 이런 생각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것은 달리기에 방해만 될 뿐이라고 꾹꾹 눌러왔던 것이다.
다음날 아침 쥐돌이는 언제나처럼 일찍 일어났다. 다만 조깅화와 운동복 대신 간단한 먹을 거리와 가벼운 차림으로 나섰다. 뛰지 않고 천천히 걸어서 전에는 가지 않던 길로 나섰다. 더 빨리 달리지 않아도 되고 억지로 무엇인가를 해야 하지 않는 다는 자유가 따뜻한 봄 햇살만큼 따뜻했다. 그러나 그러한 자유가 편안하지 많은 않았다. 달리기에 익숙해진 근육과 몸은 그 느리고 여유 있는 산책이 오히려 불편했던 것이다. 오직 달리기만을 통해서 자신을 찾고 그것이 기쁨이었던 그에게 그것이 아닌 다른 것에서 기쁨을 찾는 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산책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에게 물었다. ‘당신의 꿈은 무엇이죠? 어떤 것을 하고 싶어요?’ 하고 싶은 것이라…… 쥐돌이는 말문이 막혔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막막함이었다. 이전에는 ‘당신은 얼마나 달릴 수 있죠? 기록이 어떻게 되나요?’ 이러한 것에 대답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는 달리기를 잘 할 수 있어서 달리기가 좋았던 것이다. 무엇이 좋아서 시작했다기 보다는 잘 하다 보니 좋아진 것이다.
전에는 왜 달리지 않을까 좀 더 속력을 내면 좋을 텐데 하는 시각으로 바라보던 주변 사람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 바로 ‘자신’이 되기 위해 속도를 늦추고 또는 다른 길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미 그것을 찾았으며 그것을 즐기고 있었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신기한 것은 그들의 얼굴에는 결승선을 향해 달리던 사람들의 승자를 제외한 사람들의 불안감이나 패배감 같은 것을 볼 수 없었다. 하고 싶은 것을 찾아가는 과정까지도 그들에게는 행복하게 보였다.
오늘 아침도 쥐돌이는 일찍 일어났다. 이번에는 조깅화와 운동복 차림으로 나섰다. 쥐돌이는 다시 달리기로 돌아온 것일까? 그렇다. 그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다만 이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다른 사람보다 더 빨리 달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보다 더 빨리 달리기 위해서 달리는 것이다. 그가 달리는 것도 그의 일상도 달라진 것은 없지만 그에게 있어 달리기는 이제 경쟁이 아니다. 그는 ‘행복 달리기 1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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