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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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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9월 16일 02시 37분 등록
먼저 쓴 글에 달린 댓글을 보고 제가 오해의 소지를 남겨 두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글을 쓸 때 습관이랄까.. 과거 시점에 일어난 일을 현재형으로 쓰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발생한 오해인데.. 여행은 이미 다녀 왔고 며칠 전 얘기를 회상하며 쓰다보니 그리 되었습니다. 큰 문제는 아니겠지만 오해하신 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 전해 드립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여행은 이미 다녀 왔고 이 글은 다녀온 뒤의 기억을 정리하는 글입니다.


흑산도에 첫발

전날(9월 6일) 목포에 도착하여 하룻밤 묵고 다음날 아침 일찍 여객 터미널로 향했습니다. 목포의 여객 터미널은 세 군데로 나뉘어져 있었고 흑산도로 가는 터미널은 제가 묵었던 곳에서 가장 먼 곳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목포로 가는 첫배가 아침 7시 10분 정도에 있었고 오후에 한편 정도가 더 있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여유가 되어 근처 식당에서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하고 승선. 흑산도에 도착하는 데에는 3시간 가까이 걸렸습니다.

배에서 내리니 무엇을 할지 몰라 조금 막막해집니다. 일단 주변을 잠깐 둘러 봅니다. 바닷가임을 알려주는 비릿한 내가 코를 찌릅니다.
현지 어민들의 움직임이 분주하지만 그래도 대체로 분위기가 평화롭고 한적합니다.






무작정 걷기 시작했습니다. 섬의 크기가 어느 정도 되는지도 모르면서 그냥 한 바퀴 돌아보자 했습니다. 조금 걷다보니 포크레인 등의 공사 장비가 보이고 곧이어 길이 막혀 버립니다. 공사 현장 직원인 듯한 사람이 그쪽 방향으로는 더 갈 수 없다 합니다. 섬 한 곳을 가리키며 그쪽으로 가는 방법을 물으니 그 앞까지는 갈 수 있지만 그 섬은 배를 타고 가야 한다고 합니다. 일단 방향을 바꿔 반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반대로 방향으로 한참 걷는데 이쪽도 길이 별로입니다. 때로는 길도 아닌 곳을 걸어야 했습니다. 그래도 계속 걷다보니 성당이 보였습니다.
한참을 걸었기에 좀 쉬고 싶기도 했고 한때 천주교 신자로 생활했던 터라 그곳에 잠깐 들렀습니다.



밖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바다쪽을 바라보니 전경이 참 좋았습니다.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렇게 꽤 오랫동안 그곳에서 쉬었습니다. 그리고는 또 한참을 걸어 다니며 바닷가의 한가로움을 만끽했습니다.

여유롭게 바다를 옆에 끼며 걷다 보니 오르막길이 나왔습니다. 그냥 오르막길이 아니라 아스팔트가 깔린길이 꼬불꼬불 S자를 그리며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등산하는 셈 치고 걸어가 보기로 했습니다. 조금 올라가니 아주머니 두분이 저를 쳐다 보십니다.

"애구, 차를 타고 올라가야지.. 어째"
"젊으니까 저런 거지 뭐"

내가 지금 미련한 짓을 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가끔씩 차들이 지나가는데 손을 들어 세울까 말까 하다가 결국 그냥 보내 버립니다. 얼마나 걸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걸어 올라간 보람이 있었습니다.

제가 걸어간 곳은 삼라봉이라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에 올라가면 흑산도 일대가 한눈에 보입니다. 나중에야 들은 얘기에 의하면 그곳에 올라가면 흑산도의 80% 이상은 본 것이나 다름 없다고 합니다.






저 구불구불한 길을 걸어 올라 가다니.. 여행이라는 특별한 시간이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어쨌거나 그 순간 그곳에는 저 혼자 있었고 저는 탄성을 질렀습니다.
아~~ 나는 행복한 사람이야~
바다바람, 뱃소리, 새소리, 그리고 따사로운 햇살 등. 주변의 모든 것들이 그러한 분위기를 고조시켜 주었습니다.

오랜 시간 그 순간을 즐기다가 다시 걸어 내려 왔습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일단 여객 터미널 근처로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다시 그리로 향해 걸었습니다. 걷다 보니 다리에 피곤함이 느껴집니다. 무식하다 싶을 정도로 많이 걸었으니까요.

걸어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는 것이라 낯선 느낌은 훨씬 덜했습니다. 그렇게 가다 보니 아까 보았던 해수욕장이라는 푯말이 다시 보였습니다. 그 옆에 나무 그들이 있고 벤치가 있어 그곳에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아예 누워 버립니다.

파도 소리 들으며 잠을 청하고 싶은데 잠자기에 여유있는 공간은 아니었습니다. 잠깐 누웠다가 잠이 오지 않아 배낭에서 펜과 노트를 꺼냈습니다. 그 순간의 느낌을 그냥 주욱 적어 내려갔습니다.
그리고는 편지지를 꺼냈습니다. 아내에게 편지를 쓰기 위해 미리 챙겨 두었던 것을 그때 꺼낸 것입니다.

잠깐 다른 얘기를 하려 합니다.
그 편지지는 작년에 1기 연구원이신 문요한님께서 저에게 선물해 주신 편지지입니다. 편지를 쓸 연인이 생기면 제게 편지지와 봉투를 선물 하겠다고 말씀 주셨고 나중에 연인이 생긴 것을 보시고는 저에게 그렇게 선물을 주셨습니다.
(모르는 분들을 위해 부연 설명을 하자면 지금의 아내가 그 연인입니다)
그리고 저는 가끔씩이나마 그 편지지에 글을 써서 아내에게 전해 주곤 합니다.

바다와 갈매기, 파도, 그리고 가끔씩 바다 위로 점프 하는 날치를 보며 아내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편지를 쓰는 동안 아무도 그곳에 얼씬하지 않았기에 그 공간 전체가 내것인마냥 편한 마음으로 써내려 갔습니다.
아내에게 감사의 편지를 쓰고는 다시 걷기 시작했고 우체국에 들러 우표를 붙여 편지함에 넣었습니다. 아내가 이 편지를 보고 얼마나 기뻐할까 상상하며 저 스스로도 제가 대견하다고 느꼈습니다.
IP *.142.14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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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일
2006.09.17 15:29:19 *.103.179.26
오름과 내림, 삼라봉 두 길 중 어느 길이 더 좋았나요?
흑산도에는 어떤 꽃이 많이 편나요? 흑산고기 맛은 보셨나요?
나이 듦에 따라 꽃과 고기에 관심이 많아집니다.

거인은 슬슬 바다가 그리워 집니다.
이번 주엔 그물 챙겨 자기고기를 잡으러 떠납니다.

거인 바다엔 보이지 않는 상념의 회오리가 항상 겁나게 몰아칩니다.
두려움과 경배심 없이는 수확도 없습니다.
아직 배울 것 많은 세상 등지고 바다에 미칠까 두렵습니다.

여행을 통해 맘을 한 껏 업글하셨으니 미래를 차분하게 준비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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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완
2006.09.17 21:45:37 *.147.17.57
저길을 혼자 올라간거야? 여행이 아니면 저런 고생 못하겠지. 나도 떠나야겠다. 기다려라~ 흑산도야~ 승완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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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동
2006.09.18 07:19:09 *.142.141.28
아무래도 힘든 기억이 더 뇌리에 강하게 남지요. 홍어 내장탕이라는 것을 처음 먹어 봤는데 먹을만하기는 했지만 다시 먹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는 아니고.. 주황색 꽃이 만발인데 제가 꽃이름을 잘 몰라서리..

승완!! 가긴 가는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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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이
2006.09.18 09:27:54 *.56.151.106
바다가 보이는 길을 걸을수 있는 여유가 전해져서.. 너무도 부럽답니다. 높다란 하늘의 푸르름까지.. 제 마음을 흔들어 놓는군요~ 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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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곤
2006.09.18 13:02:19 *.38.130.253
홍어 내장탕을 먹어본 사람만이 홍어의 참맛을 아는기다.
지금 열라 짱나는데 승완이 꼬셔서 흑산도로 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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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요한
2006.09.19 02:37:50 *.147.120.101
오! 그 편지지가 흑산도까지 가게 될줄이야....


여행기를 읽다보니 옛날 생각이 나네요. 94년도에 혼자 백령도에 간적이 있었죠. 무언가 털어버리려고 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게 비장한 마음으로 간 것은 아닌데 첫날 민박집 아주머니가 자꾸 방앞을 어슬렁거리며 자꾸 물어보더군요.

"총각! 뭐 필요한 것 없쑤?"

처음에는 그 뜻을 야릇한 쪽으로 생각했었지요. 그런데 다음날 이야기를 들어보니 죽을려고 그 먼 곳까지 오는 사람들이 있다더군요. 그래서 혼자 와서 무얼 하는지 모르겠는 사람은 신경이 많이 쓰인다더군요.

재동씨! 더 깜해진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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