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커뮤니티

살다

여러분이

  • 신재동
  • 조회 수 1620
  • 댓글 수 3
  • 추천 수 0
2006년 9월 18일 08시 37분 등록
흑산도에서 아내에게 편지를 부친 것이 9월 7일인데...
무슨 영문인지 아직 편지가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주소를 잘못 적은 것인지 아니면 배달 사고가 난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기는 하고 아내는 못내 아쉬워 합니다.
살아가면서 자주 편지를 써주는 것으로 만회할 생각입니다.


교포 아저씨

한참을 다시 걸어 흑산도의 여객터미널이 있는 예리항으로 돌아와 우체국에 들러 편지를 보내고 나니 오후 4시 정도 되었습니다. 구경을 좀 더 해야 했기에 유람선을 운행한다는 곳에 들렀습니다. 운행표를 보니 오후 5시 정도에 뜨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5시에 뜨는 유람선을 타고 싶다 말하니 승객이 적어 운행 여부를 아직 알 수 없다고 합니다.

할 수 없이 5시가 될 때까지 주변을 계속 어슬렁 어슬렁 다녀야 했습니다. 배낭의 무게도 느껴졌고 무엇보다 햇살이 너무 강한 탓에 팔의 살색이 계속 검게 변하는 것 같습니다. 모자를 쓰기는 했지만 얼굴도 그에 못지 않을 것 같아 조금 걱정스러웠습니다. 썬크림을 챙겨 오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5시가 거의 되어 다시 유람선 운행한다는 곳으로 가보았습니다. 아무래도 그날 오후의 유람선은 뜨지 않는 것 같습니다. 유람선을 포기하고 그곳 일주도로를 운행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기사에게 얘기했더니 그 버스도 사람이 많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합니다. 조금 난감해집니다.
그때 저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듯한 낯선 아저씨 한분께서 버스 기사분에게 다가와 제가 했던 얘기와 비슷한 얘기를 하십니다.

버스 기사분께서 저를 가리키시며 제가 혼자 여행 온 것을 언급하십니다. 그 낯선 아저씨 저에게 말을 거십니다.
혼자 왔느냐, 숙소는 정했느냐 하십니다.
네, 아니오로 차례대로 대답했습니다.

무슨 명패를 달고 계신데 관공서에 계신 분인가 싶습니다. 말씀을 많이 하시는데 반 정도만 알아 듣습니다. 유람선이 뜨지 않아 저처럼 난감해지신 모양인데 말 내용은 불만의 표현이었지만 말투는 감정이 섞이지 않은 채 친근합니다.
그러고는 자신이 그날 묵을 곳에 같이 묵자 하십니다. 그렇게 해서 여행비용이나 절약하라고 하십니다.

낯선 곳에서 낯선 분께 호의를 받으니 반갑기도 하면서 순간 두려운 마음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호의를 받아 들이고 싶었고 함께 그분께서 잡아두신 숙소로 향했습니다.
식당을 겸해 여관을 운영하는 곳인데 그분께서 제 사정을 대신 얘기해 주셨고 하루 묵고 식사 두끼 제공 받는 것을 2만원에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오전에 홍도에서 흑산도로 오셨다가 일주를 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유람선을 타려 했는데 계획이 어긋났다며 못내 아쉬우신 듯 계속 그 일을 언급하십니다. 그리고는 이내 체념하시고 삼라봉에 올라 일몰 사진이나 찍어야겠다고 하십니다.

삼라봉이라면 낮에 이미 가본 곳이지만 일몰 시간대의 풍경은 또 다를 것 같아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해가 지려면 7시는 되어야 하니 6시 반쯤 택시로 가자 하셨는데 나중에 택시 잡아 가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날 밤 묵기로 한 숙소의 사장님께 도움을 구하여 어렵사리 택시를 탈 수 있었습니다.

삼라봉으로 다시 떠나기 전에 그분께서 뜬금없이 자신은 미국에서 나왔다 하십니다. 순간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몰라 되물으니 그때서야 교포라 하십니다. 원래 전주가 고향이며 나이 서른 무렵에 미국으로 갔다 하십니다. 다른 인적사항이 궁금했지만 구태어 묻지는 않았습니다.

사진을 20년 동안 찍어 왔다 하십니다. 그것이 직업은 아니지만 가끔씩 작품전에 출품도 하신다 합니다. 그리고는 가지고 계신 카메라 두대를 꺼내 보여 주십니다. 그리고는 그 카메라의 성능, 특징에 대해 '짧은 강의'를 해주십니다. 때로는 제가 알고 있는 내용도 나왔고 모르는 내용도 나왔습니다만 저는 시종일관 '네~ 네~' 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다소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드디어 택시에 올라 삼라봉으로 향했습니다. 아까 걸어 갔던 길을 차로 오르니 기분이 가뿐합니다. 낮에는 혼자 올랐는데 일몰 시간이 가까워져서인지 다른 관광객들도 꽤 많이 보였습니다.

드디어 해가 지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교포 아저씨께서는 계속 카메라 셔터를 누르십니다. 저는 일몰 사진을 잘 찍어 본 적이 없기에 카메라를 꺼내 들고는 셔터 누르기를 주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옆에서 계속 찍어 대시니 저도 덩달아 찍게 됩니다.
뜬금없이 또 몇 마디 하십니다. 당시의 풍경을 찍기 위해 적합한 카메라 조작법을 다소 길게 설명해 주십니다. 사진 찍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조리개 활용법과 노출 시간 조절법 등에 관한 얘기였습니다.

그 분 말씀이 완전히 이해 되지는 않았고 제 카메라에 그러한 기능이 모두 갖추어져 있지는 않았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 한번 해보기로 했습니다. 저녁놀이 계속 붉어지니 저도 조금 흥분이 되었습니다.
계속 사진을 찍어대니 배터리가 다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자동으로 전원이 꺼지는데 몇 분후에 혹시나 하고 다시 전원을 올리면 잠시 전원이 들어 왔습니다. 그 순간을 이용해 다시 사진을 찍고 또 배터리 수명이 다했다는 메시지와 함께 카메라 전원이 꺼지고, 다시 몇 분후에 전원을 올리고....
배터리가 부족한 상황에서 일몰의 광경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계속 그 과정을 반복해야 했습니다.



















교포 아저씨께서도 한참 일몰 광경을 찍으시더니 이제 반대편으로 가십니다. 저도 아저씨를 따라 그쪽으로 향했습니다.

어느 샌가 반대편에는 달이 떠 있었습니다. 다시 그 광경을 계속 찍어 대십니다. 저도 배터리 부족이라는 악조건 속에서 몇 장의 사진을 더 찍었습니다.













더 이상 카메라에 전원이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교포 아저씨는 아직도 열심히 찍고 계십니다. 카메라 LCD를 통해 찍은 사진들을 한번 주욱 보여 주십니다. 그와 비교해 보니 제가 찍은 사진들도 괜찮은 것 같은데 잘은 모르겠습니다. 날은 어둑해졌고 내려갈 시간이 되어 택시 기사님께 전화를 했습니다.

교포 아저씨와 몇 마디 하던 중 택시가 도착했고 숙소로 향했습니다. 저는 뒷좌석에 앉아 있고 기사 아저씨와 교포 아저씨 두분은 앞에서 대화를 나누시는데 교포 아저씨 말씀을 참 잘하십니다. 여전히 유람선 미운항에 대한 불만은 채 가시지 않았나 봅니다.

숙소에 도착하여 저녁 식사를 하려하니 8시쯤 되었습니다. 허기가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점심도 거른 터였으니 짐작할만 합니다.
홍어 내장탕이라는 것이 나왔는데 홍어 특유의 삭힌 냄새가 코를 살짝 찔렀습니다. 워낙 음식을 안가리는 편이라 그럭저럭 먹긴 하는데 비위 약한 사람이라면 먹기 힘든 음식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가서 하루를 마감할 준비를 합니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교포 아저씨는 노트북으로 찍어둔 사진들을 옮겨 놓고 포토?事막
IP *.142.141.28

프로필 이미지
미 탄
2006.09.18 10:17:08 *.81.21.148
첫번 째 사진의 구름, 네번 째 사진의 빛, 끝 사진의 등불이 아주 좋네요 ^^
프로필 이미지
자로
2006.09.18 12:41:10 *.145.231.237
한동안 여행기가 장악하겠구만.
살아 움직이는 느낌을 주는 여행기가 그래서 좋아.
언제 술 안 먹냐?
프로필 이미지
승완
2006.09.18 19:50:10 *.120.97.46
어디서 먹을까? 언제 몇시에?

재동 형, 사진 멋지다. 나는 사진 찍으면 나도 안 봐. 너무 못 찍어서 말이지. ㅡ.ㅡ;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