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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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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9월 19일 23시 58분 등록

회사에서 인사평가가 있는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는 지난 한해 동안을 평가하여 앞으로 1년간의 연봉을 정하게 됩니다. 그런 오늘 조금 언짢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지난 한 해의 저의 평가가 낮은 수준에서 결정된 모양입니다. 성과주의 경영을 하는 회사이다 보니 팀별, 그리고 개인별 성과평가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그에 따라 성과가 좋은 직원과 그렇지 않은 직원이 갈리는 것도 마찬가지이지요.
하지만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성과평가 시스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겪고 나니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듭니다.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해서거나 회사에서 인정받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그런 것이었다면 결과 자체를 승복하지 않았겠지요. 이해는 할 수 있으나 불합리하다고 느껴지는 결과를 받아 들일 수 밖에 없는 것이 마음을 잡아 내립니다.

우리 팀의 올해 성과평가에는 저와 선배 네 명을 포함하여 모두 다섯 명이 평가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 중 한 명은 올해 진급 대상자이고, 나머지 두 명은 내년에 진급 대상자입니다. 그리고 또 한 명은 작년에 가장 낮은 평가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다 보니 진급 대상자들에게 낮은 평가를 줄 수는 없는 노릇이고, 게다가 작년에 이미 올해의 저와 같은 경우를 당한 사람에게 또 낮은 평가를 줄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 몫은 자연스레 제가 받아 넘겨야 했습니다. 그리고 한마디를 들었습니다.
‘미안하다, 한국사회에서는 어쩔 수가 없구나. 미안하다’

평가자가 원망스럽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위로해 주고 싶었습니다. 선배들이 야속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미 저보다 먼저 겪었던 일일 것입니다.
화가 나는 것은, 왜 성과평가 시스템이 이렇게 왜곡되어 있는지에 대해서였습니다. 우리 회사에서 성과주의 경영을 시작하고 그에 따라 MBO시스템을 도입하여 실적평가를 시작한지 3년 정도가 되었습니다. 긴 시간은 아니었습니다만, 진지한 고민이 뒤따르지 못했던 3년 이었습니다. ‘해보고 고치자’라는 방식으로 시작되어 3년 동안 시행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입었습니다. 주로 말 못하는 하급직원들이 많았습니다.

성과주의 경영에서는, 먼저 성과의 목표치를 정한 후, 일정 기간 동안 이뤄낸 자신 또는 팀의 실적에 따라 평가를 받고 급여를 받게 됩니다. 따라서 어느 정도의 성과를 이루어 낼 것인가에 대한 합의와, 실적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얼마나 잘할 수 있느냐가 그것의 성패를 좌우 합니다. 잭 웰치도 이 두 가지의 투명성과 정직성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먼저, 성과 목표에 대한 합의가 느슨하게 이루어집니다. 목표를 세우는 팀원은 욕심을 부리지 않는 선에서 결정하여 올리고, 그것을 승인해 주는 팀장도 굳이 옥죄지 않습니다. 당연히 1년 후가 되면 모두가 목표를 이루어 냅니다. 하지만 누가 잘했고 누가 못했는지를 판단할 잣대가 없습니다. 모두가 이뤄냈으니까요. 그래도 이 중에서 1등을 뽑고 꼴등을 뽑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이제 더 이상 성과 평가가 아니라 수재민 돕기처럼 됩니다. 급한 사람에게 많이 줄 수 밖에 없으니까요.

이것은 성과평가가 잘못 적용된 대표적인 예입니다. 성과향상을 장려하겠다는 본래의 의도는 없어지고 A, B, C의 평가 제도만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한 명이 A를 받으면 다른 한 명이 C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대상은 매년 순환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회사는 성과평가 시스템이 정착되었다’고 말합니다.

성과평가를 제대로 시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목표성과의 기준을 합리적으로 잡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목표를 절대량으로 잡기 보다는 경쟁회사와 시장상황을 고려하여 상대적으로 평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절대량으로 나올 수 있다면 이미 나에게 안전한 목표를 계산할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스텝 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쟁회사의 스텝부서와 비교평가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일선 관리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팀원들의 목표설정에 적극적이고도 자극적이 되어야 합니다. 하루 종일 본인의 컴퓨터만 쳐다보게 할 것이 아니라, 넓게 보고 깊게 생각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팀원들이 라이벌과의 경쟁을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그들을 도와주는 것이지, 적당한 일거리를 만들어서 한해 더 때울 수 있게 해주는 것은 그들을 점점 더 녹슬게 만들 뿐입니다. 사십 대의 중견 관리자들이 이런 일들을 하지 않고, 마치 세상 다 산 늙은이처럼 구는 것은 경계해야 될 일입니다.

그 다음에는 이제 객관적인 성과평가가 뒤따라야 합니다. 논공행상은 공정해야 합니다. 성과가 좋으면 보수도 좋아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보수도 적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원칙을 분명하게 세우지 못하면 성과주의 경영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모두가 서로에게 묻혀서 다같이 느리게 갈 수는 있겠지요. 거꾸로 갈지도 모르고.
한 가지 보완하자면, 비율에 의해 평가점을 배분해주는 성과주의 평가제도에 너무 얽매여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모두가 탁월한 성과를 낸 상황에서, 단지 비율에 얽매여 누구에겐 최고점을 주고 누구에겐 낮은 점수를 줄 수 밖에 없다면 그것은 본래의 취지에 어긋나는 일일 것입니다. 납득한 만한 결과라면 평가자가 재량권을 발휘할 수 있도록 유연한 제도를 갖추는 게 좋겠습니다. 평가자의 판단을 믿지 못하겠다면 할 수 없죠, 영원히 틀 안에 갇혀 있을 수 밖에…


얘기가 길어졌습니다. 마음을 삭혀 보려 쓴 글이 이리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성과주의 경영보다 조금 더 인간적인 방법(문화적으로나 야생적으로나)이 있었으면 하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어쩌다 보니 성과주의 경영을 잘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나 생각해 보게 되었군요.

아마도 저에게 성과 평가 시스템의 허와 실을 알려 주고 싶어 오늘 같은 일이 있었나 봅니다. 사실 겪어 보지 않았다면 깊게 느끼지 못햇을 것입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늘었습니다. 인사에 대한 일은 들여다 보면 볼수록 할 일이 많습니다. 누구는 수렁이라 하고 누구는 티도 안 나는 일이라고 하지만, 직원의 삶과 행복이 모두 이 위에서 이루어 질 것을 생각하면 결코 그렇게 설렁설렁 보아 넘길 수가 없습니다.

나에게 걸릴 날만 기다리고 있으라.
IP *.148.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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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명수
2006.09.20 09:21:29 *.57.36.18
경빈님

성과주의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셨군요.

그래도 사기업은 성과에 따라 구분이
가능하다는 생각이지만 공기업에 도입된
성과제도는 정말 더 가관이에요.

삶의 길이에서 보면 사람이 만들어낸
제도로 인해 내가 불이익을 보고있다고
생각할 때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자신의 감정계좌(emotional account)에
축적된다는 사실이죠.

이런 축적이 언젠가 자신에게
축복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은 정말 중요한 인식입니다.

경빈님 그들에게 아픔을 공유해주십시오.
그들도 그것으로 인해 고통을 받는사람들
이니까요...

마음의 전달만이 세상을 지배할 수 있다는
성현들의 말씀이 귀를 흔드는군요...

좋은 세상을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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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호
2006.09.20 10:53:50 *.190.84.1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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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
2006.09.20 11:47:26 *.118.67.80
네가 고민이 많았겠구나.
그 고민만큼 더 나은 평가시스템을 연구해 보면 좋겠다.
평가란 왜만해선 객관적일 수 없는 것도 한국적인 특성이 작용된 연유일 터라고 생각한다.
합리성이 핏줄에 타고 나지 못해서지.
삼성은 합리성을 정서에 연결시키지 않고 시스템에 접목시켰다고 하더라. 그 시스템이 아래로부터의 연결인지 위로부터의 연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때부터 성과주의가 나타났다고 하더만.

빨리 승진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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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렬
2006.09.21 03:05:05 *.75.166.117
엉터리 '적당주의 =중용' 이죠, 잘못된 더불어사는 방식이죠...
그런것이 한국의 스포츠계에서는 '승부조작'이라는 것을 낳죠...
그것은 더불어사는 것이 아니라 게으르고 태만한 자신을 위장한
안일한 방편의 산물이죠...
그래서 고참은 태만해도 안전빵이고 신참은 의욕을 잃고
누군가는 밀어 주었으니 한 잔 사야되고
더불어 산다는 이유로 억지로 밀어 준 사람은 속으로 열받고 ....
자비나 관용은 강요에 의해서 하는게 아니라
스스로 하는 것인데,,,
진짜 더불어 사는 것은 공정성과 투명성을 지키는 것인데...
진짜 자비나 관용이란 힘있을 때 겁주지 않고 함께 나누는 것인데...

겉은 같지만 속은 너무나도 다른 우리의 잘못된
더불어 사는 것에 대한 태도...

그 주워 들은 어설픈 '중용'

술 한 잔 하셨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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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정
2006.09.21 09:28:43 *.244.218.8
우리 회사도 그래...
진급대상자 우선..뻔히 진급해야하는 선배 사정 아니까 참 어쩔 수 없고... 막내가 주로 불이익 고과를 받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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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이
2006.09.21 14:50:59 *.56.151.106
연초쯤 되면.. 언론매체에선 기업들에 등급을 매기곤 합니다. 경영평가우수기관, 효율적인 성과경영시스템 운영기업, 서비스경영대상, 모니터링평가우수기관, 청렴도우수기관, 사회봉사우수기업 등등.. 우수기관에 선정되었을지라도 진실성을 왜곡한 기업들이 눈에 띄곤합니다. 우수기업의 평가기준이 잘못된걸까요, 아니면 평가자들의 탁상공론일까요.. 그래도 경빈님.. 기운내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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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아이드잭
2006.09.21 23:56:24 *.140.145.80
대부분의 조직에서 불문율처럼 떠도는 말이 하나 있더군..

"조직원 모두를 만족시키는 평가제도는 없다"

사실이기도 하고 거짓이기도 하지..

그럴 의도가 없다는 점에서 사실이고(평가는 피평가자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하는 것이 결코 아니거든..ㅜㅜ),

결과에 대한 만족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평가제도의 투명성과
정직성을 담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보완하려고 했는가 하는 조직의
관점에 대한 만족감이라면 완벽은 없지만 정말 괜찮은 시스템은 있다.

주절주절 늘어놓긴 했지만 지금부터라도 완벽은 제쳐놓고 자주 발생
하는 평가제도상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원잭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두 가지를 때려잡아야 한다고 봄.

첫째는 무조건 나래비를 세워야만 직성이 풀리는(제대로 평가했다고
착각하는) 평가자 편의주의적인 생각을 근본적으로 손질해야 하고,

둘째는 평가결과만을 중시하지 말고 평가과정을 의미있게 활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짜야 한다. 팀장과 팀원간의 목표에 대한 불일치
관점의 차이를 논하는 자리가 되고, 팀원이 팀에 공헌하는 가장 좋은
방법과 장애물을 헤쳐나가는 지혜를 논하는 시간이 되면 어떨까?

경빈이 말하는 것처럼 성과주의를 배격하진 않지만 그 과정에서조차
그 속에 다양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음을 잊지 않는 지혜
를 접목할 수 있다면 분명 지금보다 의미있는 평가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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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빈
2006.09.22 10:18:03 *.217.147.199
맞아요. 원잭형 얘기에 공감합니다.
힘을 주신 분들 고맙습니다.
글을 쓰며 이미 서운함은 잊었고, 어제의 술 한잔에 또 한번 떨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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