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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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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9월 25일 21시 29분 등록

새로 이사온 곳은 전망이 아주 좋다. 옥상에 올라가면 소읍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산으로 빙 둘러싸여 있는 완벽한 반구의 세상이다. 인구 3만의 소읍치고는 번화한 편이라, 빽빽한 건물 틈새로 나무가 심어져 있는 풍경이 정갈하고 고급스러워 보인다.
막상 시내를 다닐 때에는 좁고 평범한 시가지가 옥상에서 내려다보면 아주 보기 좋아진다. 짙은 숲을 배경으로 성처럼 지어놓은 동원뷔페는 멀리서 보니 그야말로 하얀 성이다.
마무리공사가 한창인 아파트의 색상이 중후하다. 아파트의 높이가 동마다 모두 다르고, 전망과 채광을 방해받지 않도록 제각기 비스듬히 서 있는 모습이 독특하다.

옥상에 올라오면, 시력이 좋지않은 편인데도 멀리까지 잘 보이는 느낌이다. 멀리 용봉산의 바위들은 더벅머리의 동전 부스럼처럼 보이고, 가까운 곳의 텃밭에서는 깨라도 터는지 방망이질이 한창이다. 아, 무슨무슨 학원 차가 지나간다. 이제 떠날 일만 남은 동네의 모습을 내려다 보는 일은 각별하다. 이제 이 곳에서 있었던 일은 모두 과거형으로 말하게 될 것이다.

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 이렇게 전망이 달라지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다. 딱 가까운 이웃만 보이던 이전 집에 비해, 이 지역에서의 생업을 접고 별반 교류도 없는 상태에서 새로 갖게 된 전망이 아주 마음에 든다. 완벽한 객관이다. 나는 이미 이 동네사람이 아니다.

가을풍경 중 압권은 구름이다. 광할한 반구의 하늘을 누가 갖고 노는지, 거대한 붓으로 쓸고 가다가 머물러 톡, 톡, 톡 쉼표를 찍어주고, 일필휘지 길게 끌어주다가 짧게 쳐올리는데, 하나는 쓸쓸할까봐 나란히 줄이 3형제다. 누가 솜사탕을 얇게 펴나, 누가 명주실을 가늘게 뽑나 시합이라도 하듯, 얇게 얇게 펴져있는 구름의 솜털 하나까지 보일듯하다.

여기에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보여주는 빛과 색깔의 변화는 현란하기 그지없다. 저 멀리 보이는 산은 그저 짙은 초록이다가 독특한 카키색이다가 수묵화처럼 가라앉는다. 마치 누가 뽀샵질을 해 대는 것 같다. 떨어지기 아쉬운 해와 구름이 주고받는 색깔의 향연은 시시각각
화려함과 장엄함의 극치를 더 하여, 나는 기적이라도 보는 사람처럼 입을 다물지 못하고 두리번거리기 일쑤다. 아, 내일은 옥상을 떠나 바닷가에 가 봐야 할 것 같다.

IP *.81.2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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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빈
2006.09.26 20:04:44 *.99.185.254
저도 비슷한 구름을 본 것 같아요. 같은 구름인가..?

아, 삶의 냄새..^^.. 좋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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