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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재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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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 16일 13시 12분 등록
I.

무심코 라디오를 틀었을 때 흘러나오는 노래, 서점에 들어가 무심코 집은 책, 비디오 가게에 들어가 무심코 고른 비디오, 우리가 이렇게 무심코 접하게 된 것들 중 사랑을 말하지 않는 것들이 얼마나 될까? 인간이 예술로서 나타내는 수많은 표현 중 사랑을 말하는 것들이 가장 많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자신의 내면 깊숙이 다가온 그 무언가를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다양한 형태로 우리의 삶 속에 투영딘다. 명확한 실체가 없는 사랑이라는 말을 다같이 이해하고 공감하는 이유가 인간에게는 보편적으로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는 보이지 않는 기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2.

사랑에도 방식이 있는데 이 영화에서는 좀 특별한 사랑의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베니그노의 사랑방식을 두 가지 측면으로 생각해 보자면 하나는 일방적이고 집착으로 보이는 스토커적 사랑방식일 것이고, 하나는 숭고하고 희생적인 사랑방식일 것이다. 하지만 어느 방식이든 우리는 베니그노가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했음을 부안하지 못할 것이다.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하는 그녀에게 베니그노는 끊임없이 보여주고, 들려주고, 느끼게 하여 준다. 자신의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는 그녀가, 베니그노라고 어찌 답답하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베니그노는 자연스럽게 그러한 그녀를 받아들이고 그녀에게 최선을 다한다. 그가 그녀를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그녀에게 어떠한 반응을 기대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즉, 그녀에게 무언가를 받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녀에게 조건 없이 주었다. 그냥 자신의 온 존재를 그녀에게 내놓는 것이 그의 행복이고 만족인 것이다.

하지만 마르코는 사랑의 방식에 있어 베니그노와 다른 방식을 선택하였다. 마르코는 직접적인 소통을 원했다. 리디아가 식물인간이 되자 마르코는 얼마가지 못해 리디아를 떠나고 맙니다. 자산이 체험할 수 없는 반응을 견디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리디아를 사랑하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랑이 마르코와 같은 형태를 띄기 때문이다. 내가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어야 안심을 하고 인정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계속 사랑을 확인하려하고 타인에 대한 무의식의 기대감을 갖게 된다. 마르코 또한 무의식의 기대를 뛰어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 사랑하는 것도 에너지로 존재하기 때문에 그것을 발산하다면 그것은 반드시 다른 존재에 전하여지게 된다. 베니그노는 끊임없이 그녀에게 자신의 에너지를 전합니다. 나는 분명 베니그노가 발산한 그 에너지가 그녀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고 믿는다.

근본적으로 마르코와 베니그노의 행동의 차이는 사물을 인식하는 방법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베니그노는 알리샤 뿐 아니라. 리디아에게도 말을 걸고 평범한 사람을 대하듯 리디야를 대한다. 그리고 마르코에게도 자신이 알리샤를 대하듯, 리디아에게 이야기해주고, 들려주고, 만져주기를 권한다.

베니그노는 식물인간이라는 존재자체를 다르게 인식한 것다. 왜 우리는 식물인간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일까? 아마도 움직일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모습이 식물의 모습과 같아서 일 것입니다. 하지만 식물 역시 살아 숨 쉬고 있다. 살아있는 존재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느낌은 다른 사물(인감을 포함하여)을 통해 전해지고 전해온다. 나는 이렇게 의식적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존재 자체로서 느낄 수 있음을 무의식적 느낌이라고 말하고 싶다. 자신이 느끼고 있음을 의식하지는 못하지만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느낌을 계속적으로 전하는 베니그노의 노력이 알리샤를 깨어나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베니그노가 일방적으로 알리샤를 임신시킨 사건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감독은 이 부분을 액자식 구성을 취하여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간다. 베니그노는 알리샤에게 자신이 본 무성영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는 이 무성영화의 장치에 대해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베니그노가 영화를 보고 자신의 성적 욕구가 분출되어 알리샤를 임신시킨 것은 아닐 것이다. 무성영화는 성적행위와 관련된 영상을 보여주지만 결코 자극적이거나 성적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장면이 아니었다.

한 여자를 살아하는 한 남자는 작아 질대로 작아져 여자의 질속으로 들어간다. 결국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와 하나가 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베니그노 역시 자신이 그녀에게 들어가는 것이 그녀와 한 몸이 되고 싶은 노력이었을 것이다. 성교라는 것은 인간의 몸으로 표현할 수 있는 행위 중 가장 아름다운 행위라고 생각한다. 물론, 사랑이라는 것이 전제되어야 하겠지요. 성교를 하려면 알몸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부끄러움, 수치심을 모두 내려놓고 최초의 순수로 돌아가는 것이다. 베니그노는 그녀에게 자신의 존재 그대로를 보여줄 준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베니그노는 그녀의 의사를 알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의 행위가 죄가 되는 것일것이다. 베니그노는 알리샤의 생리주기까지 알고 있었다. 그 말은 그녀의 배란시기도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베니그노는 그녀가 임신될 가능성을 충분히 알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그러한 행위를 한 이유는 무엇일까? 나의 확대해석일지 모르지만 저는 이 부분이 베니그노의 나약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곧 인간의 나약함이겠지요. 그녀가 자신을 떠날 수 없게 하는 수단이자, 자신과 그녀가 하나됨을 어떠한 실체로서 확인하고 싶은 마음 일 것이다. 자신의 불안감과 자신없음을 내 비춤으로써 결국 자신의 한계를 드러낸 것입니다. 베니그노의 행위는 일방적이었지만 결코 음흉하고 저질스러운 동기가 아니었기에 그에게 용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법적인 처벌은 불가피하겠지만 그의 행위를 이해하는 용서가 필요한 것이다.

3.

이 영화를 통해 갖게된 또 다른 의문은 ‘여성’이라는 존재에 대해서이다. 여성에게는 다양한 속성이 내재되어있고 그것들이 어떻게 발현되는지 이 영화는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리디아의 두 여인을 통해 여성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두 여인은 상반된다면 상반된 직업을 통해 여성의 내적 힘을 보여주지만 이 두 여인이 보여주는 그 에너지의 아름다움은 우열을 따질 수 없을 것이다. 이 두 여인은 몸을 통해 여성을 표현한다. 한없이 섬세하고 부드러운 곡선의 미와 강인하고 역동적인 직선의 미를 이 영화는 여성을 통해 나타내고 있. 저는 이 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투우사로 예술가라는 것을 느꼈다. 또한 무성영화에서 남자가 여성의 질 속으로 돌아가는 일, 결국 자신의 시작인 여성의 자궁으로 돌아가는 것 일 것이다. 비록 식물인간일 지라도 알리샤가 임신을 할 수 있음을 통해 여성이라는 존재의 역할을 한번 더 상기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4.

1) 말

Talk to her... 라는 영화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녀에게 말하는 것, 이야기 하는 것이다. 상대는 대답도 없고 아무런 대꾸도 없지만, 베니그노는 다 듣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과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는 신념으로 4년동안이나 식물인간이 된 알리샤를 돌보며 자신의 생활을 계속 이야기 해준다. 그것은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대답을 들으려는 것이 아니라 그녀에게 혼자 이야기 해주면서 만족을 느끼고 기뻐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또한 베니그노는 마르코에게도 식물인간이 된 리디아에게 이야기 해보라고 권유하기도 한다. 이렇듯 두 커플의 남녀사이에 벌어지는 의사소통, 즉 커뮤니케이션의 문제가 영화에서 나타나고 있다.

2) 일방적인 사랑

위에서 언급한 말에 관한 내용과 약간 겹치는 부분이 있지만, 일방적인 사랑이 영화의 내용이다. Talk to her... 대답없는 그녀에게 이야기 하는 것도 일방적이고, 짝사랑으로 시작하여, 알리샤의 사고 후 4년동안이나 그녀의 머리도 잘라주고, 손톱손질도 해주고 했던 베니그노의 모든 행동들이 다 일방적인 사랑이다. 알리샤가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도 모르고, 그는 그의 생각대로 모든 행동을 한다. 마지막의 죽음까지도 베니그노는 구치소에서는 알리샤를 보지 못한다고 죽는다. 그녀가 깨어났는지도 모르고 죽게된다. 끝까지 상대는 모르는, 아무런 대답이 없는 일방적인 사랑을 한 것이다.

3) 베니그노 & 알리샤 VS 마르코 & 리디아

영화에서는 두 커플들의 비교(?)를 통해 이야기를 진행해 나간다. 마르코는 공연을 보면서, 또 음악을 들으면서도 어떤 생각을 하면서 울기도 하는 감상적인 부분도 있지만, 나타나는 성격은 이성적이고 현실적이며 평범하다. 식물인간인 알리샤와 결혼하겠다는 베니그노에게 현실적으로 생각하도록 충고한다. 또한, 리디아의 전 남자친구에게 들은 말 한마디로 리디아의 곁에서 떠나버린다. 반면에 베니그노는 어느 누가 뭐라고 해도 그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항상 그의 생각 중심에는 알리샤가 있고, 그녀를 위해 헌신적으로 산다. 4년동안이나 그녀의 손과 발이되어 씻겨주고, 그녀가 하고 싶은 것들을 대신하고 돌아와 대답없는 그녀에게 다 이야기 해준다. 베니그노와 마르코는 비교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베니그노는 죽고 마르코는 산다. 알리샤는 살고 리디아는 죽는다. 영화중간에 엘리사가 깨어나서 속으로 베니그노와 잘 되어 해피앤딩을 기대했던 사람들도 많을 것 같은데, 이런 비교가 죽음까지 이어지는 것이 영화의 작품성을 만들어 내기 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4) 무성영화

연인이 줄어들어 여자의 몸속으로 들어가는 우스꽝스러운 무성영화가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우선 베니그노가 영화를 보러간 것은 알리샤가 하고싶은 것들을 자신이 하면서 그것을 그녀에게 이야기 해주며 자신이 기쁨을 느끼는 것이고, 그 무성영화의 내용이 여자의 몸속으로 들어가 그녀와 하나가 되는 것인데, 그것을 이야기 해주며 베니그노는 성적 충동을 느꼈다. 강간의 여부는 확실히 누가 했는지는 밝혀지지 않는다. 하지만, 무성영화를 통해 관중들을 짐작케 하는 것 같다. 영화 밖의 이야기이지만 혹시 강간을 했다면 이 무성영화가 동기부여를 한 꼴이되고, 강간을 하지 않았다면 관중을 헷갈리게 한 수단이 되는 것이다 라는 상상을 해 보았다.

영화에서 마지막 강간의 여부가 답을 주지 않고 끝나는데, 강간을 했다 하더라도 베니그노의 사랑을 놓고, 물론 법적으로는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어느 누구도 잘했다, 잘못했다, 사랑이다, 아니다를 이야기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사랑’ 이라는 단어의 무기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5.

이 영화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는 무수할 것이다. 이제까지 제 멋대로 생각을 나열했지만 저의 해석과 생각의 옳고 그름을 떠나 나에게 생각의 기회를 던져주어 매우 고마운 영화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도 혼란스럽고 애매하기만 하다. 우리는 앞으로도 살아가면서 사랑이라는 문제와 여성이라는 문제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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