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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재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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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 25일 17시 23분 등록

크리스마스를 맞아 아내와 딸과 함께 호두까기인형이라는 뮤지컬을 보러갔다.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는 아내가 한달 전부터 딸아이와 함께 꼭 보여주어야 한다며 벼르고 벼르던 공연이었다.

이 공연은 최근 뮤지컬계에서 명성이 가장 높은 사람의 이름을 딴 공연답게 모든것이 잘 기획된 느낌을 받았다. 공연장의 위치도 내가 사는 동네와 멀지 않아 힘들지 않게 찾아갔고, 혹시나 공연중에 울지나 않을까 싶어 공연 3-4시간 전에 낮잠을 재우는 등 치밀하게 사전 계획을 짰다. 공연 일자가 하루하루씩 다가올수록 아내는 그 공연 중에 아이가 혹시나 울지 않을까, 공연이 재미가 없지는 않을까, 싶어 연신 걱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호두까기 인형하면 생각하는 두 개의 삽화가 있다. 첫번째 삽화는 내가 어렸을 적, 친척이 가져온 월트디즈니사에서 나온 잡지가 있었다. 그 잡지 한구석에 만화영화 호두까기인형에 대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당시는 우리나라에 아직 공연의 기회가 그리 흔치 않았고, 비디오가 많이 보급화된 시절도 아니었다. 다만 책을 통해서 모든 상상력을 동원하던 시기였던 것이다. 나는 시각화 되어있는 몇 장의 호두까기인형을 보면서 나 또한 그런 인형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실은 그보다 더 아름다운 공연 자체를 보고 싶었던 것이다. 이후에 차이콥스키의 발레음악 호두까기인형을 들으면서 멋진 음악과 어울린 발레를, 만화영화를 상상하고는 했다. 그만큼 나에겐 절실했던 것이다. 절실함과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았던 호두까기 인형의 얼굴이 비쳐진다.

그리고 또 하나의 삽화는 아내와 결혼하기 전 연애시절이다. 모든 것이 즐겁고 아름답게 그려지는 시절. 나는 아내와 영국에서 온 매튜 본 이라는 현대 무용가가 만든 호두까기인형의 공연을 보러갔다. 워낙에 무대도 화려했고, 신문에서, 방송에서, 그리고 선전을 통해서 유명세를 탔던 공연이라 나무랄데가 없었다. 단지, 그 공연이 아니라, 내가 당시 아내와 나누었던 그 아름답던 연애 시절을 떠올리게 한 것이다. 단지 서로만 바라보아도 좋았던 시절. 서로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있는 존재감 만으로도 위로가 되던 시절. 그 공연을 보면서 화려했던 불빛 사이로 잠시 암전된 사이를 틈타 슬쩍 키스를 했던 짜릿함도 기억 속에 생생하게 지나갔다. 아름다운 차이콥스키의 발레음악과 화려한 의상과 조명, 그리고 우리들의 뜨거운 열정이 다 함께 녹아있던 아름다운 공연으로 기억된다. 가정을 이룬다는 생각보다는 당신과 함께 있어주길 바랬던 그 시절. 사랑이라는 이름에 아무것도 들을수도, 보이지도 않던, 열정과 설레임으로 가득 채워졌던 호두까기 인형의 얼굴이 비쳐진다.

이제, 무릎위에 앉아서 공연을 보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혹시나 하는 걱정의 마음을지닌 채 호두까기 인형을 보고 있다. 아이는 배우들을 향해 손을 흔들기도 하고, 방긋 웃어주기도 한다. 이 정도면 한 달 동안 벼르고 벼렸던 007 작전의 대성공인 것이다. 작전의 성공에 기뻐하던 마음과 동시에, 내가 이런 공연을 아이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에 한없는 감사를 드렸다. 공연을 보지 못해 음악만으로 그 공허함을 달래던 시절, 그리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채 공연보다는 있는 사람이 좋아 선택했던 시절, 그리고 이제는 혹시나 공연을 즐기지 못할까봐 가슴 조마조마하며 아이와 함께 보는 시간- 나는 호두까기 인형을 보면서 앞으로 내가 보게 될 내년의, 내 후년의, 그리고 십 년 후의 공연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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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6.12.25 19:57:32 *.70.72.121
에이~아이가 본 것 같지 않은데요? 그래요, 요즘 볼만한 뮤지컬 넘 비싸요. 보고싶은 뮤지켤 보려면 만만치 않죠. 그래서 하고 싶고, 보고 싶고, 느끼고픈 일들을 위해 열심히 살아야 하나봐요. 즐거운 풍경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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