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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재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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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 26일 09시 26분 등록
아직도 기억한다. 변화경영연구원들의 모임에 처음 갔던 그날을. 연구원들의 첫번째 모임이남해에서 있었는데, 그때 난 개인적인 사정에 의해서 참석치 못했고, 그 다음달 두번째 모임에 첫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런 모임에 참석해 본 사람들은 아마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집단에서 첫번째 모임에 참석치 않고 다음부터 참석한 사람들의 그 스트레스를. 이는 마치 대학 신입생때 신입생 환영회를 참석하지 않고 수업시간에 처음 들어가서 어색하게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는 그런 느낌일 것이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서로를 잘 아는데, 아는 집단 속에 나 자신을 끼워넣어야 하는 낯 설은 상황의 연출.

내가 그랬다. 남해 모임을 통해 이미 서로 알게된 연구원들은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서 ‘정재엽님 다음번에는 꼭 뵙고 싶어요’를 연신 외쳐댔지만, 참석하지 않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더 괴리감을 느끼게 했던 것이다.

그러한 심적 부담을 안고 찾아갔던 연구원 미팅. 만난 사람들은 나에게 공동된 이야기를 했다. 그 이야기가 뭐냐고.. 아직도 생각만 하면 얼굴에 엷은 미소가 지어진다. 바로 내가 쓴 글과 실제 모습의 이미지가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이다. 내가 쓴 글은 마치 샤프할것같고, 은테 안경을 쓴 ‘배용준’의 이미지를 떠올린 다나? 그러나 실제는 코메디언 이혁제를 떠올린다며 다들 한마디씩 했다. 나는 정말 그 말에 공감하기 어려웠다. 내 글의 이미지와 실제의 내 이미지를 투영시키려고 생각도 해 본적도 없었거니와 각자 나를 한가지의 이미지로 떠올리고 있었구나, 하는 그들의 반응에 다소 의아해했다.

연구원들과 함께 12월 모임에서도 그런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그 이야기들은 세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내가 쓴 글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것, 둘째, 아무래도 글쓴이가 정재엽 같이 않게 말투와 문체가 너무도 다르다는 것, 셋째, 말하는 것을 녹음해서 글에 옮기면 재미있는 글들이 될 것이라는 것.

글을 쓴다는 것이 꼭 독자를 의식해서 쓰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의견은 일단은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겠다는 생각이 들게했고, 한편으로는 나 자신에 대해서도 생각할 만한 여유를 준 것이 사실이었다. 왜 나의 글을 내가 이야기 하는 모습과 그렇게도 다르지? 정재엽, 너 자신도 그렇게 다른것을 느끼고 있니?

일단은 그런 것 같다. 나의 글쓰기의 행위가 우울한 나의 청소년기와 관계가 있었음을 말이다.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굉장히 외향적인 편이다. 남들과 처음 만나서 이야기 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그리고 어떠한 주제가 주어지더라도 그런 주제에 한마디라도 접근할 수 있는 여지를 잘 찾아내는 편이다. 그러나 지금의 이런 나의 모습과는 다르게 나는 중, 고등학교 때 철저하게 혼자 고립되어 지내던 ‘왕따’였던 시절이 있었다. 학급의 무리들과 격리되어 지낸 사람들은 학급 내에서 친구들을 찾기 어려워 책 읽기에 빠져든다는 것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다름 사람과 대화를 나누지 못하는 데서 오는 공백을 저자나 소설 속의 주인공과 함께 메울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에는 소설을 통해서 다양한 인물들과 만날 수 있었다. 그런 다양한 인간들과 만나는 동안, 나는 어느새 읽기에 자신이 붙게 되었다. 당시 유행하던 ‘속독법’ 이라는 것은 나에게는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내용에 한번 빠져들면, 인위적인 속독법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속도가 붙게 마련인 것을.

자연스럽게 항상 글쓰는 사람들을 존경했다. 그 사람들이 뭘 잘못 썼을리라고는 절대 생각할 수 없었다. 비판적인 글쓰기가 아닌 무조건 수용적인 자세로 글을 쓴 것이다. 표지부터 시작해서 목차를 읽고는 내용을 상상하고, 한쪽 넘길 때 마다 페이지 번호까지 다 읽어내야 할 것만 같은 절대적인 추앙의 경지에 있었던 것이다. 잡지를 특히나 즐겨서 본 이유는 항상 그림과 더불어 자잘한 설명들이 되어있는 것이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면들의 이야기들을 담아내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글쓰기는 그곳에서 시작 된 것 같다. 무언가 내가 숭배하는 대상이 되어야 하고, 언젠가 추앙받는 대상이 되어야 하는 데서 오는 거리감일까. 아직 책 한 권 출판해 본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정복되지 않은 미개척의 영역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이 미개척의 영역이기에, 개척을 위한 방법은 많이 찾아볼수록 좋다는 것이 지금의 생각이다. 그래, 연구원들이 지적했던 것처럼 내가 말하는 그 ‘수다체’를 그대로 글로 옮겨보려는 노력! 이것이 나의 글쓰기 스타일이 될지, 아니면 ‘정재엽식 글쓰기’ 방식이 될지 아직은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의 의견을 겸허히 수용해 본다. 녹음을 해서 그대로 녹취를 해 볼까, 도 생각해 보았으나, 누군가 대화할 대상을 찾는다는 것도 말처럼 쉽지가 않다. 글쓰기를 마치 편안한 친구처럼, 모든 것을 이해해 주는 아내처럼 생각하고 대해보아야 겠다. 마치 글쓰는 사람들의 의견들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했던 청소년 시기의 우울했던 나의 과거를 지금에서는 웃음으로 기억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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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찬
2006.12.25 22:29:26 *.140.145.118
정재엽님.. 반갑습니다.. 그때 서산에서 뵙고 시간이 좀 흘렀네요..
조금은 뉘앙스가 다르긴 하겠지만.. 저 역시 가끔 제가 쓴 글을 읽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는 일을 겪곤 하는데..

분명한건 글빨과 말빨은 확실히 다르다는겁니다. 저 같은 경우는
글빨보다는 말빨이 조금더 강하다고 스스로 생각하는데 누군가와
이야기하다가 제가 한 이야기를 글로 옮기려고 하면 그때의 영감이
나 느낌이 자취를 감춰버리는 경우가 많더군요.

아마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의 차이에서 오는 간격이 아닐까도
싶은데.. 이런 부분이 때로는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하고 때로는
아주 부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하더군요..

어쨌든 자기 스타일의 글빨과 말빨을 우선 튼튼히 구축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차별화는 테마나 이야기 방식으로도
이루어낼 수도 있지만 그 사람만의 글색깔이야말로 타고나 다름이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있겠죠.

그 중요한 토대안에서 읽는이와의 의사소통과 공명을 좀 더 원할하게
만들 수 있는 요소를 보완하는 차원으로 접근한다면 더욱 더 매력적인
글쓰기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승완이가 마음을 나누는 편지칼럼을
통해 예전에 소개했던 커뮤니케이션 관련글이 전 도움이 되더군요..)

전화 한번 주세요.. 따로 한번 만나서 수다나 떨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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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명수
2006.12.26 08:57:29 *.57.36.34
잘 들어갔지요?

연구원만의 조그만 모임인줄 알았는데
그렇게 사람이 많았으니 다소 비좁았을 거예요
그리고 그곳에서 즐겁게 노는 재엽씨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보다 젊었을때 자신의 생각을 기록하는
모임에 당당히 서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삶의 성공반열에 오른 것입니다.

스스로를 담은 '수다체'의 먼진 기록이
재엽씨의 곁에 남기를 바라고

다가오는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그럼 싱그러운 새해에 다시 만나길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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