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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17일 23시 25분 등록
우리를 기억하라

모처럼 가족과 함께 남자다운 영화를 보았다. 바로 〈300〉이 그것이다. 이 영화는 프랭크 밀러의 인기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잭 스나이더가 감독을 맡아 기원전 480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 전 그리스의 도시국가였던 스파르타와 동방의 대제국 페르시아와의 실제 전투를 배경으로 한 영화다.

이 영화의 화두는 테르모필레 전투로부터 시작된다. 이 전투는 제3차 페르시아전쟁 때 테살리아 지방의 테르모필레 협곡에서 일어난 전투로서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패의 분수령이 되었고 이후 동서양 역사를 뒤바꿔 놓았으며 동서양의 구분에 대한 개념 또한 지금의 형태로 자리잡게 된 시초가 되었다. 테르모필레 협곡은 산과 바다 사이에 있는 좁은 길로 이곳에서 스파르타 왕 레오니다스는 300명의 스파르타 정예군과 테스피스인 700명을 이끌고 페르시아군의 남하를 저지하였다.

그들의 용맹성으로 인해 수십만의 페르시아 군은 고전을 거듭했고 페르시아 황제인 크세르크세스의 정예군인 ‘임모탈’마저 패퇴하는 장면을 연출한다. 그러나 이 고장 출신의 내통자가 페르시아군에게 산을 넘는 샛길을 가르쳐 주어 스파르타 300명의 정예부대는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된다. 이 때부터 그들의 장렬한 죽음이 시작된다. 마지막 주검이 그들에게 드리울 때 절체절명의 그리스는 전열을 재정비할 수 있었고 마침내 그리스 함대는 살라미스 해전에서 페르시아 함대를 괴멸시킴으로써 그리스 전체를 지킬 수 있었다.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 왕을 비롯한 300명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며 이로 인해 그들은 그리스의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 받는다.

이 영화는 두 가지 측면에서 탁월하다. 하나는 스파르타의 긍정적 이미지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전투 중 하나인 테르모필레 전투를 통해 스파르타 전사들의 열정과 용기, 자유와 희생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신비로움, 맹렬함, 천하무적 등으로 대변되는 스파르타는 역사상 가장 불가사의한 문화 중 하나이다. 호랑이가 제대로 된 자식을 기르듯 그들은 7세 때 부모를 떠나 생존의 삼엄함을 경험한다. 살아오는 자만이 세상을 볼 수 있었다.

절대로 퇴각하지도 항복하지도 않도록 교육받은 스파르타인은 완벽한 전사였고 모든 일상이 전쟁에 초점을 맞춘 전투문화를 양산했으며 오직 그들에게만 적용되는 명예 체계를 만들었다. 전투를 위해 살고 죽은 스파르타인들은 창병을 통한 진형(陣形)으로 방어진을 구축하고 뒤에 있는 동료를 방패로 지키면서 마치 한 몸처럼 싸웠고 승산이 없는 전투에 나갈지라도 언제나 자유를 위해 기꺼이 전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를 ‘아름다운 죽음’이라 명했다.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의 명대사는 이를 입증하기에 손색이 없다. ‘핍박받고, 무시받고, 얻드려 굴복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마라. 싸우고 쟁취하라. 자유는 피의 댓가로 온다.’ 죽음이 임박할 쯤 페르시아 황제 크세르크세스는 이렇게 말한다. ‘승리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내 편도 죽일 내게 어떻게 대항할 수 있겠느냐?’ 이에 레오니다스 왕은 이렇게 답한다. ‘난 내 편을 위해 죽을 수도 있다!’ 그는 죽음을 통해 승리를 얻을 수 있음을 알고 있던 진정한 승리자였다. 그리고 자유를 위해 싸웠다. 진정한 자유는 남에 의한 굴레와 구속이 아니라 자유의지에 의한 죽음이었다. 고귀한 죽음만이 자유에 다다르는 지름길임을 알았던 것이다.

둘은 영상이 주는 창의성이다. 이 영화는 식상하기 쉬운 영화 제작의 전형을 피하는 대신 새로운 스크린을 장식하는 방법을 모색한 듯하다. 마치 과거가 현재인 듯 ‘살아 숨쉬는 스크린’ 을 찾아 나섰다. 특히 감독인 잭 스나이더는 원작에 묘사되어 있는 질감을 표현하기 위해 “크러쉬 기법”이라는 컬러 밸런스 조작법(이것은 영화평을 찾아 원용한 것임)을 고안했다고 한다. 크러쉬 기법이란 특정 이미지가 가진 어두운 부분을 뭉개서 영화의 컨트레스트를 바꿔 색의 순도를 향상시키는 방법으로 영화 속의 모든 이미지는 이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전혀 색다른 장면으로 완성됐다. 화면 전체가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영상이었고 마치 사진과 그림이 겹치면서 새로운 감흥을 자아냈다.

뿐만 아니라 제작진은 프랭크 밀러의 회화적 상상력만큼 시적 감성을 내포한 대사까지 보존해 영화에서는 시도하기 힘든 나레이터라는 역할을 등장시켰다. 이 나레이터로 등장한 인물이 <반지의 제왕>으로 익숙한 데이빗 웬햄이었다. 그는 이 영화에서 스파르타의 전사로서 마지막까지 생존한 인물인 딜리오스역을 맡았다. 그가 생존자인 덕분에 영화의 나레이터 역할을 이행할 수 있었고 동시에 원작 속 대사를 차용하는 독특한 방식을 선보일 수 있었다.

이들의 이런 창의적 노력은 정지된 그리고 사진 같은 화면의 세계로 관객들을 고스란히 데려다 놓는 영상의 새 장을 열었고, 영화<300>은 경치, 전투, 액션, 건물 등에 상관없이 모든 장면이 마치 특수효과 같이 완성되었다. 식상하기 쉬운 영화장면을 새로운 시도로 탈바꿈한 보기 드문 영화였다.

영화가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 전투신의 잔혹성에도 불구하고 시공을 초월해 자유를 위해 싸우는 인간의 처절함에 감동한다. 무엇인가 몰입함으로써 열정과 용기를 얻는 과정이 아름답다. 그것은 죽음도 초월한다. 끝없는 창조행위가 경외감을 자아낸다. 영상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킴은 일탈의 즐거움을 넘어 변화를 갈구하는 인간의지의 또 다른 표현이다. 그래서 늘 인간은 위대하다. 나는 영화에서 과거의 위대한 영웅과 오늘의 창조적 인간을 보았다. 이들이 함께 숨쉬며 현재를 수놓을 때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지를 더욱 음미할 수 있다.

변화는 나를 미래로 창조하는 행위이다. 오늘의 나를 증오하는 것도 바로 내일의 보다나은 나를 보기 위해 환골탈태의 다름 아닌 모습이다. 그래야 우리는 남들의 기억 속에 남을 수 있다. 나는 이 영화에서 그것을 처절하게 보았다. 스파르타와 레오니다스가 기억나고 감독 잭 스나이더가 기억난다. 그래서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가 자유를 찾는 죽음 앞에서 외친 이 말은 나의 폐부에 와 닿는다. ‘우리를 기억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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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찬
2007.03.19 01:28:24 *.140.145.63
전적으로 공감이 가는 평입니다.. 그런데 저는 한편으로 그런 살벌한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걸 감사하게 되더군요.. 시대적 상황에서는 미덕
이 될 수 있었던 그런 생존의 삼엄함이 더이상 유효하지 않았으면 좋겠
다는 생각도 들었구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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