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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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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18일 01시 29분 등록
단기 4340년, ‘훈민정음(訓民正音)’의 깊은 뜻을 다시 생각해봅니다.

하나. 다름, 쉬움, 어엿비 여김

훈민정음은 첫머리에서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하신 목적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옛말을 이젯말로 바꾸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는 서로 잘 통하지 아니한다.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것을 가엽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쉬이 익혀서 날마다 쓰는데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그리고 한글의 창제 원리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하늘과 땅의 이치는 하나의 음양 오행뿐이다. 곤괘와 복괘의 사이가 태극이 되고, 움직이고 멎고 한 뒤가 음양이 된다. 무릇 어느 생물이든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것은 음양을 두고 어디로 가랴? 그러므로 사람의 말소리도 모두 음양의 이치가 있건마는 생각건대 사람들이 살피지 않을 뿐이다. 이제 정음을 정음을 만든 것도 처음부터 지혜로써 경영하고 힘써 찾아낸 것이 아니라, 다만 그 소리에 따라서 그 이치를 다하였을 뿐이다. 이치가 이미 둘이 아닌즉 어찌 하늘과 땅과 귀신으로 더불어 그 운용을 같이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한글의 첫소리와 끝소리(자음)는 발음할 때의 목과 혀, 이와 입 모양을 본떠 만들었습니다. 가운뎃소리(모음)는 하늘(ㅣ), 땅(ㅡ), 사람( • )의 모양에서 취하여 만들었습니다.

음과 양은 하늘의 이치요. 단단함과 부드러움은 땅의 이치다. 가운뎃소리는 하나는 깊고, 하나는 얕으며, 하나는 오므라지고 하나는 펴진다. 이것은 음양이 나뉘어서 오행의 기운을 갖추고 있는 것이니 하늘의 작용이다. 첫소리는 어떤 것은 허하고 어떤 것은 실하며, 어떤 것은 날름거리고 어떤 것은 걸리며, 어떤 것은 무겁기도 하고 더러는 가벼운데, 이것은 곧 단단함과 부드러움이 나타나서 오행의 바탕이 이루어진 것이니 땅의 공이다. 가운뎃소리가 깊고 얕고 오므라지고 펴짐으로써 앞에서 소리 나고, 첫소리가 오음의 맑고 흐름으로써 뒤에서 화답하여 첫소리가 되고 다시 끝소리가 되니, 또한 만물이 땅에서 처음 나서 다시 땅으로 돌아감을 볼 수 있다.

안상수 교수는 훈민정음이 자신에게는 금강 같은 디자인 텍스트이며 디자인 교과서라고 말씀하면서 이렇게 감탄합니다. 훈민정음은 “다름, 쉬움, 어엿비 여김. 이 세 가지를 생각과 말 뜻에 따라 몸소 이룬 큰 디자인이었습니다. 여섯 온 해 앞의 우리 말에서, 우리 얼에서, 태극 음양 오행에서 길어 올린 큰 뜻은 놀라웠습니다.”


둘. 같음과 다름

저는 훈민정음을 살펴보면서 ‘같음’과 ‘다름’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습니다. 내가 남과 같고 다른 것, 우리가 남과 같고 다른 것, 한국적이며 동시에 세계적인 것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신영복 교수는 ‘21세기 동아시아의 새로운 관계지향을 위하여’란 강연에서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첫째, 화(和)는 화목(和睦)의 의미로, 그리고 동(同)은 아첨(阿諂)의 뜻으로 해석합니다. 화는 어긋나지 않는 마음(無乖戾之心), 동은 아부하는 뜻(有阿比之意)을 의미하며 군자는 의(義)를 숭상하기 때문에 동하지 않으며 소인은 이(利)를 숭상하기 때문에 화하지 못한다고 하여 화동(和同)을 교우(交友)의 개념으로 해석합니다. (朱子註)

둘째, 화(和)는 서로 다른 것들이 모여서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며 이로부터 풍요로움이 자라고 만물이 생겨난다. 그러나 서로 같은 것들만 모아 놓는 동(同)은 모두 다 못쓰게 되어버린다고 하고 있습니다. (『國語』<鄭語>)

셋째, 화(和)는 물, 불, 식초, 간장, 소금, 매실을 넣고 국을 끓이는 것과 같이 오미(五味)와 오음(五音)이 조화를 이룬 것을 의미하며 동(同)은 임금이 “가(可)하다”고 하면 따라서 “가하다”하고 임금이 “불가(不可)하다”고 하면 따라서 “불가하다”고 하는 것으로서 이것은 마치 물에 물을 타는 것(若以水濟水)과 같고, 금슬(琴瑟) 한가지 소리만 내는 것이라 하고 있습니다. (『左傳』<昭公二十一年>)

이처럼 '화(和)는 다양성과 차이를 인정하는 공존의 원리이며, 동(同)은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흡수와 합병의 논리입니다.' 세종 대왕께서 큰 뜻으로 훈민정음을 창제하실 때, 최만리를 비롯한 집현전 학자들이 이를 반대하여 6개항의 긴 상소문을 올렸는데, 그 첫머리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우리 조선은 조종(임금의 시조)서부터 내려오면서 지성으로 대국(중국)을 섬기어, 한결같이 중화의 제도를 따랐는데. 이제 동문동궤(글을 같이하고 법도를 같이함)의 때를 당하여, 언문을 만듦은 보고 듣기에 놀라움이 있습니다. 혹 말하기를 언문은 모두 옛 글자를 본받은 것이고, 새 글자가 아니라 하지만, 글자의 모양이 비록 옛 전자를 본받았다 할지라도, 소리를 쓰고 글자를 합하는 것이 모두 옛 것에 반대되니, 사실에 근거하는 바 없습니다. 만약, 중국에 흘러 들어가서 혹시라도 비난을 말하는 자가 있사오면 어찌 중국을 섬기고, 중국 문물이나 사상을 우러러 사모하는(사대모화) 데에 부끄러움이 없사오리까?

지금 읽어보면 참으로 낯뜨거운 글이지만, 또 한편으로 현재의 우리는 이런 모자란 생각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지 생각해봅니다. 무조건 남의 것이 좋다고 따라가진 않았는지, 우리의 것은 부족한 것이라고 외면하진 않았는지 뒤돌아봅니다. ‘임금이 가(可)하라고 하면 가하고, 불가(不可)하라고 하면 불가’한 동(同)의 역사는 아니었는지 반성해봅니다.


셋. 훈민정음의 큰 뜻

새로운 시대를 열어나갈 지혜를 훈민정음 속에서 길어 올려 봅니다.

첫째, 제 맛을 살린 큰 멋

'모든 것에는 제 맛이 있고, 제 느낌, 또 나름의 재미가 있으며, 그 맛 뒤에 숨어있는 멋이 있습니다.' 참된 멋은 우리의 생명과 문화 속의 얼과 넋을 이해할 때, 그리고 그 안에 깃든 기운을 자연스러운 결에 따라 맛깔스럽게 살릴 때 나오는 것입니다. 한글은 우리 말의 맛을 제대로 살려주는 멋진 디자인입니다.

‘ㄹ’을 생각하면 돌돌 구르고 졸졸 흐르는 것들이 떠오르고, ‘ㄹ’과 ‘ㄱ’을 같이 생각하면 솔방울이 떽떼굴 떽떼굴 굴러가듯이 “무엇에 걸렸다 굴러가고 굴러가다 걸리는” 단절과 연속의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만일 한글이 없었다면 우린 어떻게 이런 말 맛을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둘째, 모순 속의 조화와 어울림

상대성 이론과 함께 현대 물리학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양자론에 따르면 양자는 입자이면서 파동이며, 우리가 사는 세계는 고양이가 죽어있으면서 살아있을 수 있고, 이 곳과 저 곳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모순된 공간입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이는 우리에게는 익숙한 ‘and’의 세계관입니다.

한글 속에는 이렇게 모순되지만 동시에 조화를 이루는 큰 우주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하늘(ㅣ), 땅(ㅡ), 사람( • )은 한글이란 문자 속에서 만나고 헤어지고, 새로운 의미로 다시 태어납니다. 첫소리와 끝소리, 가운뎃소리에는 음양오행의 이치가 담겨 있습니다. ‘ㅏ’는 드러나고 구체적이며 작고, ‘ㅓ’는 추상적이고 숨어있으며 큽니다. 이렇듯 서로 다른 음과 양이 각자의 자리(格)로 들어가 조화되고 어울립니다.

셋째, 감수성과 창조 정신

사대부들의 강한 반대에도 굽히지 않고, 꿋꿋이 훈민정음을 창제했던 세종대왕의 큰 뜻을 헤아려 봅니다. 바로 제 뜻을 펴지 못하는 백성들을 어엿비(가엾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답답하고 억울한 마음을 이해했기에 누구나 쉽게 익힐 수 있는 바른 소리(正音)를 만든 것입니다.

자기의 것만이 옳고 좋은 것이라 여기지 않고, ‘낮은 곳으로 임하여’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바로 겨레의 넋을 온전히 담을 수 있는 우리 글을 창제할 수 있었던 크고 맑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에 꼭 필요한 것이 이런 ‘어엿비 여김’의 감수성입니다. 여기에 상상력이 더해지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게 되고, 서로 관계없는 것들이 연결되고 소통하여 기운생동(氣韻生動)합니다.

맺음. 상선약수(上善若水)

21세기는 창조의 시대이자 관계의 시대이며, 모순의 시대이자 정체성의 시대입니다. 남을 따라가서는 새 시대를 이끌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과 차별되는 새로운 길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새 길의 문을 여는 열쇠는 바로 자신을 믿는 제다운 생각과 남을 ‘어엿비 여기’는 화(和)의 마음입니다.

훈민정음을 통해 우리의 것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새로운 시대를 여는 지혜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그 크고 맑은 뜻을 조금이나마 헤아려 보려 했습니다. 그러나 ‘정체성’이란 점처럼 고정된 것이 아니라 물처럼 흘러가는 것입니다. 변하지 않고 고여있는 것은 썩게 마련이고, 높은 곳에 있는 것은 낮은 곳으로 흐르게 마련입니다. 자신을 알았으면 자신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훈민정음을 훌쩍 뛰어넘는 것, 그것이 바로 세종대왕의 큰 마음에 보답할 수 있는 우리의 길입니다.



* 위 글에 인용된 훈민정음의 내용은 한글재단의 홈페이지를 참고했으며, 이 글의 많은 부분은 안상수 교수님과 신영복 교수님의 강연에 영향 받은 것임을 밝힙니다. 감사합니다.

* 봄입니다. 회사 일과 과제 사이를 바쁘게 오가다 문득 아내에게 미안해졌습니다. 손을 잡고 잠시 공원으로 산책이라도 나가야겠습니다. 고은 시인의 짧은 시로 글을 마칩니다. 한글이 아니었다면 어찌 이 느낌을 글로 표현할까요.

3월 햇살에 / 쭈우 / 쭈우 / 입벌려 // 꽃망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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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명수
2007.03.18 06:44:11 *.18.196.32
김 도윤님 1차 합격자 명단에서 이름을 보았습니다. 반갑습니다.
드디어 저와 한글의 우수성에서 코드가 맞는 분이 나타나셨네요.

정말 멋진 글입니다. 이 글도 한글이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다만 한글의 우수성을 논하는 자리에서 신영복 교수님의 중문을
해석한 것이나 영어를 원용(디자인, 이미지)한 것이 흠이라
생각합니다. 디자인은 우리말로 구상 또는 틀이며, 이미지는 상 또는 그림으로 표기해도 전혀 손색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글솜씨가 대단하다는 느낌을 받았으며 앞으로 합격에 영광이
있을 것을 의심치 않습니다. 김도윤님의 건승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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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윤
2007.03.18 12:29:08 *.60.237.51
안상수 교수님은 디자인을 제 맛에 맞는 멋을 지어준다는 의미에서 '멋짓'이라 부르자고 제안하셨죠.

좋은 지적과 뜨거운 격려 감사합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끝까지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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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찬
2007.03.19 16:05:18 *.5.23.40
한글에서 코리아니티를 찾으셨군요. 흥미롭기도 하고 공감이 가는
컬럼입니다. 계속 좋은 글 써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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