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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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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18일 23시 09분 등록
코리아니티 책을 서점에서 구입할 때부터 느낀 소감과 구판과 신판의 표지에 대한 느낌 그리고 현재 탐험해 가고 있는 저자에 대한 부분과 최근 읽은 몇 권의 책이 주는 인상을 비교하다보니 나의 코리아니티까지 표현하게 되었다. 너무 솔직해서 혹시 뜻밖에 여러 사람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넓게 양해하시라. 표지를 평가하기에 미흡한 사람이다. 또한 글도 아주 많이 모자란다. 그러니 이런 사람도 있구나하고 참고해 주길 바란다.

표지에서의 차이/

구판 앞면은 파란 바탕의 하얀 경영, 밝고 푸른 코리아니티, 회색의 영문 꼬레아니티다.
뒷면은 집필하는 젊은(?) 저자의 모습이다. 불과 1년 전 집필(2005.12.5)
신판 앞면은 응시하는 저자의 모습이 크게 표지에 잡혔고 붉은 바탕의 검정 글씨의 코리아니티와 하얀색 글씨 그리고 회색의 반쪽 문양 태극, 검은 바탕의 붉은 글씨의 영문 코리아니티이다. 뒷면은 붉은 바탕의 회색 영문의 꼬레아니티 그리고 구판에서는 휴머니스트의 영문 이니셜 hm의 융합한 로고에서 신판은 사람을 나타내는 한자의 사람인자와 역동하는, 건강한 움직임의, 실천의, 발로 뛰는, 찾아나서는 듯한 생기와 상생의 사람의 형상 로고이다.

왜 바꾸었을까? 책이 덜 읽혀져서, 아쉬움, 사활, 숙원이기 때문이리라 짐작을 해본다.

무엇을 원하는 것인가? 저자의 염원, 진수, 우리의 방향, 구심점, 핵심, 기반, 꿈, 일상화, 행동하는 = 구본형과 사람들(책 제목으로도 좋겠다.), 통일, 살만한 지구촌.......

나는 선생의 책을 다 읽지 못했다. 몇 권 보았을 뿐이다. 나는 어설픈 요괴다.(구천을 떠돌며 헤매고 있다 - 어릴 적 요괴인간 만화영화에서의 베라 쯤 된다고 생각한다.)따라서 선생을 다 이해하지 못한 상태라는 것을 밝혀둔다.

첫 과제 “미완의 시대” 에릭 홉스봄의 자서전을 읽은 직후 새로운 느낌과 의문이 일었다.
선생이 사회주의 성향이 있으신가? 공산주의 물이 든 분이신가? 의문점이 다소 일면서 책을 읽었다. 왜냐면 나는 공산주의라면 무조건 도망부터 갔었고 싫어했으며 전혀 무관심하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르크스의 사회주의가 이런 거였나 하며 읽었다. 80이 넘은 노인이 이제 와서 무엇 때문에 이런 자서전을 썼겠는가를 생각하니 역사를 이해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3권의 지정 도서 가운데 첫 번째로 그래도 꼭 이 책이어야 했던 여러 이유 중에 이해가 덜 가는 부분이기도 했다. 하필이면 왜? 선생의 사상이 궁금했다. 혹시 내가 모르는 무엇이 전제되어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미완의 시대 독후감에서 역량 부족으로 다 밝히지 못했지만 내가 서점에서 미완의 시대를 찾아 읽지는 않았을 것이란 것이다. 전혀 알지 못하고 관심 밖이었으니까. 그래서 공부가 됐고 전체적으로 여러 면에서 도움이 되었으며 좋긴 했다. 좀 장황하지만 미완의 시대를 읽고 난 직후 두 번째 과제의 책 코리아니티 표지의 느낌을 말하고자 한다.

첫째. 왜 선생의 얼굴을 표지에 크게 담았을까? “사람에게서 구하라” 의 을유문화사 표지와 무엇이 다른가? 왜 이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간 느낌이 나는 걸까? 왜 이 컨셉을 그대로 가져갔을까? 코리아니티 개정판 1쇄 발행 2007년 2월 20일, 사람에게서 구하라 초판 제1쇄 발행 2007년 2월 10일이다.

이 자리에서 외람된 일인지 모르지만 나는 을유문화사의 표지 컨셉은 선생과 책 제목과 잘 맞아 떨어졌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휴머니스트는 좀 어색해서 여러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느낌 하나, 1년 사이 선생의 모습이 너무 다르다.(경영에서 갑자기 돌변한 -나타내고자 함이라기보다 - 역사학자 같은 느낌, 나이 든 느낌. 이 느낌이 도움이 되라는 의미였을까? 아니면 여세를 몰고 가자는 의미에서?)
표지 얼굴을 너무 큰 각도에서 잡았다고 생각한다. 주름까지, 땀구멍까지 나타내야할 이유가 있었는가? 그리고 무언가 응시하면서 기쁨과 환희와 희망을 담은 마치 온 국민이 월드컵 당시 붉은 악마들의 열렬한 열광의 도가니를 감격에 겨워 바라볼 때처럼 바야흐로 5천만의 꿈 물결이 봇물을 터트리며 세계로 뻗어나갈 것을 벅찬 감동으로 응시하는 듯한 연출이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그 붉은색과 조화로운가(전체 비중에서) 하는 의문점이 생긴다.

느낌 둘, 흑백의 저자 인물사진의 의미는 무엇인가? 무게감, 힘을 싣고 싶었을까?
우선은 먼저 마치 “사람에게서 구하라”에서 베껴온 느낌(표현이 좀 거칠지만.......)을 받았다. 물론 내가 그 책을 먼저 읽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 책은 2500년 전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고전의 예를 통해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맥을 통한 사람을 본 것이고, 여기서는 새로움을 창출해 나가야 하는 사람과 그 이미지가 어울리는가? 모두가 사람을 중심에 둔 것은 알겠으나 뭔가 좀 어색하지는 않은가? 이 동시성과 표지의 어울림이.......

그리고 이왕에 민음사의 미완의 시대 표지도 다시 보았다. 같은 인물 사진이고 거의 코리아니티와 비슷하게 표지를 했다. 그런데 훨씬 안정감이 든다. 둘을 비교해 봐도 붉은 테두리가 확실하게 불편하다. 전체적인 비율에서 사진의 크기, 각도, 나타냄, 표현, 기타 등등. 여하튼 자연스러울 때는 미쳐 생각지 않고 무심히 넘어갔던 부분이 코리아니티 표지에서는 나의 경우는 강렬하다기보다 거북스럽다.

그리고 하나 더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에서 겉표지는 표지 안쪽 컬러사진 보다 좋았다.(그러나 이 사진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한다. 구본형은 하루아침에 해성같이 나타난 전설 같은 존재가 아니고 우리 속에서 좀 더 먼저 우뚝 선, 치열한 삶의 선구자적 실천가라는 정직한 얼굴이 표지 안쪽 사진에 담겨있지 않은가. 이것이 실체다. 얼마나 멋있는가! 감동이다.)
겉표지 케리커쳐의 느낌 앞과 뒤가 다 좋다. 개인적으로 뒤표지가 더 안정된 톤의 느낌이고 어려서 읽은 큰 바위 얼굴을 상기시키며 완성해 가는 모습도 연상된다. (희미한 것에서 점점 확실한 형체를 실제로 저자는 완성해왔다. 우리는 그의 해냄의 미학, 자신을 일으켜 세움의 당당함에 빠지고 반한 사람들이 아닌가.)

둘째, 미완의 시대를 읽고 난 후의 느낌이 너무 강렬해서 그런지 붉은 색의 의도가 뭔지 궁금하고 꼬레아를 쓴 것도 마치 북한에서의 표기방법(고려연방공화국?)을 연상하게도 한다. 그래도 나쁠 것은 없다. 그런데 만약 내가 구본형선생을 모르고 연구원지망생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해하려는 관점에 섰을 것인가 생각해 보게 되고, 그럴 경우 나는 아니었을 것이란 판단이다. 물론 나보다 많은 사람이 이미 선생을 안다. 하지만 아직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그렇다면 나의 이 느낌을 전달해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선생의 반응이 궁금하다.

휴머니스트는 표지가 두 개가 다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구판은 진한 바탕색이 코리아니티라는 신조어를 죽였다. 안 보인다. 허연 흔하디흔한 경영이란 글자만 튀어나왔다. 의도적으로 코리아니티를 버렸다는 느낌마저 든다. 바탕색과 코리아니티라는 한글 활자 두께도 그렇고 전체적 분위기가 촌스러움인지 고상함인지 이해가 안 간다. 경영이란 활자에 비해 코리아니티는 너무 약하다. 신판에서도 붉은 색에 비해 코리아니티 활자 굵기가 약간 약하다. 빨간 바탕의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붉은 색이 코리아니티라는 활자보다 강하다. 코리아니티보다 붉은 색이 더 튀어야 하는가가 나의 의문이다. 붉은 마음이라기엔 너무 튀어서 내 보기엔 빨갱이같이 느껴진다. 내가 받은 느낌에 대해 누구든 명확히 어필해 줬으면 좋겠다. 전편의 표지에서는 생각지 못했을 의구심이 “미완의 시대”를 읽고 난 직후라 그런지 사적으로 몹시 거슬렸다. 그리고 그 부분을 감안 하더라도 여전히 표지의 비율이 불안정하단 느낌이다.

휴머니스트는 구판에서는 전혀 독자를 찾아 나서지 않은 모습이다. 코리아니티는 신조어인데 말이다. 뭐랄까 내용에 기댔다고 할까? 알아서 보란 느낌이다. 경영을 위해 억지로 코리아니티를 생성시키기라도 한 것처럼 표지 스스로가 먼저 외면했고 나타내지 못했다. 코리아니티는 한국인의 정체성이다. 우리 것을 가지고 확장하고 계발하는 것이다. 사람을 조립인간으로 로버트화시킬 수는 없다. 급조해서 나간다? 그러면 너무 어렵다. 할 일은 태산 같은데 해가 지고 날이 새버리거나 가치관에 혼란이 올 것이다. 코리아니티는 우리가 공감하는 인식의 뿌리에서 나와야 한다. 코리아니티가 사람이 중심이라면 인식의 전환이다. 의식의 변화이다. 그런 탄생이고 역사다. 어머니의 자궁이다. 어머니가 없는 자궁은 인큐베이터와도 같다. 부화는 시키겠지만 혼을 싣고 영혼의 부지깽이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자칫 떠도는 유령이 되고 말지 않을까?

책의 표지는 책의 얼굴이고 의미의 함축이며 모든 것을 응축해 담아야 한다. 출판사는 출판의 자리에 있으면서 그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믿는다.

구판 전체적 느낌은 교과서 형식이고 밋밋하고 딱딱하다. 요즘은 참고서도 무척 잘 나온다. 예쁘고 성의가 있고 기발하다. 표지가 독자를 끌어당긴다. ‘어? 이게 뭐야?’ 하고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것이다. 그런 즐거움을 선사해야 한다.

그런데 신판은 또 너무 넘친다. 이번엔 붉은색(7.3)의 비율이 사람 얼굴(12.4)을 가렸다. 균형이 안 맞는다. 독자가 언제 보고 또 보고 느낀단 말인가. 그냥 느껴져야 하는데 아주 억지로 강조한다. 빨갛게. 그래서 의심이 먼저 갔다, 나의 경우엔. 붉은 악마를 연상하면서도 긴가민가했다. 회색의 태극 반 문양을 넣지 않았다면 비율 면에서는 조금 더 자연스러웠으리라. 붉은 윗부분 2센티미터가 잘리니까. 그러면 다른 활자의 조화도 괜찮아진다.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생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그것을 넣어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왜 그랬을까?
여기서 활자체만을 말하면 코리아니티라는 한글 활자가 언뜻 약간 태극기가 휘날리는 듯한 영감은 준다. 활자체 자체에 움직임이 느껴진다. 붉은 비율을 줄인다면 그대로 좋게 어울려 보인다.

의구심 가운데 안심을 한 것은, 작지만 붉은 바탕의 회색 태극의 반 문양이다. 일단은 우리 편이란 느낌이드는 것이다. 이왕에 꼬투리를 잡는다면 왜 또 하필 회색인가? 뭘 뜻하는 것인가? 회색분자라는 뜻인가? 절충의 의미인가? 무엇인가? 그냥 꼬레아를 회색으로 썼으니까? 어쨌든 초판에서는 볼 수 없었던 문양의 첨가다. 그러면 반드시 뜻이 있었을 것이다. 상당한 의미의....... 심심해서 넣은 것은 일단 아니지 않겠는가 말이다. 더군다나 태극 문양을, 비율도 어색하게 하면서까지. 그리고 분명이 파랑색이었다면 더 튀었을 것이다. 굳이 그 색을 쓰지 않고 모호하게 마치 쉼표처럼 혹은 콤마로 강조하듯 가볍게(무거운 느낌은 전혀 아니다) 찍은 것 같은 느낌은 도대체 무슨 의도일까? 파랑색 하나 더 첨가하는 것이 비용이 많이 드나? 파란색 하나 더 첨가했다고 어지러운가? 그렇지도 않다. 오히려 태극문양만을 두고 보면 더 산다. 더 튀고 확실하게 태극 문양이란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뒤에는 이 태극 문양을 넣지도 않았다. 옆면에 끼워 넣은 것에서 큰 의미를 발견하지도 못하겠다. 언뜻 회오리바람, 횃불 같은 느낌도 유추해 보기는 하는 데 .......
그리고 왜 반쪽인가? 우리의 꿈은 5천만이 아니던가? 아직은 실험이라서? 누구든 내 속을 시원히 좀 풀어들 주시라.

일단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따뜻한 남쪽에서 열기가 북으로까지 뻗어나가야 하기 때문에, 그러나 그것은 화합과 절충 그리고 새로움의 탄생이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설득하기에 뭔가 석연치 않거나 미흡한 것 아닌가? 나만 그런가? 이 부분 연구원이 되어 진지하게 논하고 싶다. 피 튀기게 실험해 가면서.

저자도 그렇고 휴머니스트도 그렇고 마음 씀의 애정은 보인다. 나는 솔직히 저자는 이해한다. 염원이고 민족의 숙원이고 당신의 핵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되니까. 그런데 휴머니스트는 좀 지나치다고 생각된다. 너무 나선다. 가장 눈에 띄게 자신들의 로고를 걸었다. 나는 그것이 다른 출판사와 비교해 볼 때 보기 싫다. 책은 출판사 이전에 저자와 독자와의 만남이다. 이것이 전부요 모든 것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휴머니스트가 영원하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당신들이 먼저 나서는 한 저자와 독자는 죽고 만다. 왜? 노력을 넘어선 성과를 바라는 것이다. 본분에 충실하면 된다. 인식되어지는 것이지 띄워서 뜨는 것은 거품이다. 그리고 출판사가 먼저 뜨려고 한다는 느낌이다. 기획인가? 그렇다면 조금 더 헌신하라. 나는 휴머니티가 저자보다 더 노력했다는 혹은 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자신이 할 수 없다면 넘겨라. 그것이 우리의 코리아니티가 아닐까? 물론 완벽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에 고집은 불필요하다. 공멸한, 수없이 많은, 불필요한, 낭비한, 피지 못하고 사라져간 사상과 철학과 사람들을 너무 많이 보았다. 이제 그럴 때가 아니다.

우리의 코리아니티는 정직함이고 불타는 염원이며 인내하는 정성이다. 기다림의 미학이며 한국형 지고지순의 어머니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어머니의 기도엔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을 짊어지더라도 나의, 우리들의 너만은 반드시 대단하게 살아남으라는 간절함이 스며있다. 나는 그보다 더 절실하고 위대한 코리아니티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내가 아직 선생 앞에 고개를 들지 못함은 내 인생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미처 다 헤아리지 못하고 선생을 따라 모든 것에 우선하여 갈 수 있을까를 물으며 가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는 이런 자세도 필요하지만 나는 아직 전체의 윤곽을 확실하게 잡지는 못하였다. 나는 휴머니티가 나보다 저자와 훨씬 가깝다고 생각하기에 이런 말을 한다. 오해 없길 바란다.

상대적으로 속정 깊은 을유문화사의 표지처리가 내겐 돋보인다. 군더더기가 없다. 깔끔한 양심 혹은 양식이 느껴진다. 표지와 제목과 사진과 활자가 다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안정감....... 안정을 찾아야 꿈을 꿀 수가 있다. 그렇지 않은 꿈 또한 거품이 아닐까?

신판 표지에서는 선생의 얼굴과 코리아니티라는 활자를 담은 붉은 색 띠 부분이 불완전한 느낌을 준다. 나는 처음에 떼어내어도 상관없는 덧 포장 인줄 알았다. 그런데 그것도 아니다. 나름대로 파격은 파격이다. 무언가 어색함을 느끼게 된다. 비율도 이해가 안 간다. 빨간 테두리가 인상적이기에 앞서 너무 많은 부분을 차지해서 떼어내어 선생의 얼굴을 보고 싶은 갑갑함을 준다. 조금 줄였더라면 어땠을까? 2.5+7.3+12.4=22.2에서 7.3이 5.3이 되고 위로 2센티미터가 올라갔다면? 개인적으로 구본형선생은 이마에 빛이 난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이마가 그분의 꿈을 낳았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가슴으로 느낀 것이 머릿속에서 정리되어 이마로 튀어나온 느낌이다. 따라서 이마를 가리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한마디로 이마에 복이 있다고 해야 하나? 선생은 얼굴 전체가 뒤통수까지 잘 조화됐다. 두상이 아주 예쁘신 분이다.

반쪽의 태극 문양을 빼버렸다면 선생의 이마가 돋보임과 동시에 전체적으로 지금보다 안정감을 주는 당당한 빨강이었을 것이고 조화로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반드시 밝혀야 한다. 반쪽 회색 태극 문양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마지막으로 입은 또 왜 가렸는가? 벅차서, 감동스러워서, 뭘 보고 놀라서, 헤 버러진 입을 다물진 못하고 얼결에 손으로 가린다? 이게 잘 나타난 것인가 의문이 서린다.
만약에 벅찬 감동의 눈물 글썽임이었다면 눈에 눈물이 어린 것 같기는 한데 좀 미약하다.
약간 어른거리는 수준에 그쳤다는 느낌이다. 조금 더 확 다가왔어야 하지 않을지? 이 부분도 붉은 색이 선생의 얼굴 표정의 느낌을 반감시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이 부분과 비교해 민음사의 경우는 노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밝은 혜안을 쭈글한 얼굴에서 세상을 빤히 들여다본 지혜, 무게감, 가치가 느껴지고 검고 큰 뿔테안경은 그의 작고 예리한 눈을 크고 안정감 있게 잘 받쳐주었다. 날카로움과 핵을 정확히 집기위해서 불필요하거나 노망의 허튼소리가 아니라는 의미의 책으로 입을 가리고 역사를 강조한 점 또한 돋보인다. 참여관찰자로서의 이성적인 냉철함과 전망이 여기서도 이마에서 튀어나온 느낌이다. (이마부분이 밝지 않은가? 투박하고 짙은 뿔테에 비해서 얇고 차가운 느낌의 금테 안경을 연출하지 않은 이유가 느껴지지 않는가? 그래서 더욱 친근감이 들고 서민적이고 대중적이지 않은가? 분석한 논문이 아닌 체득되고 질박한 진솔함의 훈훈함이 느껴지지 않는지?)

전체적으로 흑백의 사진이 무거운 느낌이 든다. 갑자기 학자로 변한 느낌, 진지함(사람에게서 구하라)에 앞선 엄숙함, 지나친 표현일지 모르지만 구판의 뒤표지 인물이 약간 너무나 젊은 무명의 애송이 같았다면 신판에서는 너무 폭삭 늙어버렸다.(사진 비교 상 1년 남짓한 사이에) 그렇다면 구판이 없다면 어떨까? 그래도 신판의 앞표지 붉은 부분이 너무 튀어서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리고 얼굴 표정은 좀 더 당당하고 밝거나 단정하고 담담한 다부진 확신의 느낌이었으면 어떤가? 저자 자신이 실험단계에서 눈물 어림의 이미지라.......

정리하면 표지의 붉은색이 너무 강조된 느낌이다. 2센티 줄이면 훨씬 안정감 있었다. 이유는 태극 문양의 반쪽 때문인 것 같은데 그것을 기필코 살려야했던 의미는 무엇인가?

동시 출간/

“사람에게서 구하라”와 “코리아니티” 각기 다른 출판사.
그래도 을유문화사는 표지에서 저자를 다 나타낸 느낌, 다 담아낸 느낌이라면 휴머니스트는 아직도 아닌 느낌이 든다. 한쪽은 저자를 포용한 느낌이라면 한쪽은 먼저 뜨려는 느낌이 든다.

내가 느끼는 코리아니티는 을유문화사의 은근함이다. 저력이고 끈기다. 착실하고 안정되게.
우리 속에서 나보다 나은 너를 나에 앞서 지원하고 성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너와 내가 함께 간다는 것이다. 끝까지....... 계속........ 끊임없이 ....... 이 생명 다하도록.......영원히.
그래서 상생의 조화, 기꺼운 희생이 눈부시게 아름답고 너와 내가 어우러진 코리아니티엔 언제나 우리가 함께 승리하고 도우며 나누고 기뻐하는 벅찬 감동이 살아 움직임의 나날이다.

내용은 아직 비교 못하고 표지만 장황하게 비교해 보았다. 나의 코리아니티라는 관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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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
2007.03.19 08:07:31 *.152.82.31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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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3.19 10:38:32 *.180.48.239
사부님 잘~ 생겼잖아.
사부님은 얼굴이 브랜드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부드럽고. 편안하고.
나이들면 사람들은 얼굴로 인생을 말한다고 하니까, 표지에 얼굴 사진이 들어간 것이 있을 만도 해.

요근래 나온 몇권의 책 표지에 사부님 사진이 들어갔더라구. 부드럽고 좋았어. 연예인 사진 모으는 것처럼 모으고 싶기도 해. 좋아하니까.
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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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3.19 12:02:40 *.70.72.121
땀꾸멍까지? 너무 근엄하다고 생각되는데, 조금 서두는 느낌.. 실례했지?

사부님 심정은 이해 100배 공감 하지만 휴머니스트가 더 잘 도와줄 수 있을것 같은 바램에서 ^^

꿈 찾기 프로그램에 참가한 꿈 벗이 아직 100명도 안 된다는 것은 너무 애석한 일이지요. 하긴 나같은 얼치기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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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찬
2007.03.19 16:13:17 *.5.23.40
이번 컬럼은 확실히 차별화가 된 느낌입니다.. 표지에 대한 집요한
시선이 느껴지기도 하고 선생님에 대한 애정과 출판사에 대한 품평
까지 표지 하나를 가지고 이 정도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는게 한편으
로는 신기하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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