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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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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26일 06시 35분 등록
집안이 발칵 뒤집어졌다.

멀쩡한 대학을, 그것도 흔히 말하는 일류 대학을 2학년까지 마치고 군대에 입대했고, 몇 달 후면 전역을 눈앞에 둔 막내 동생이 군대에 말뚝을 박겠다고 폭탄 선언을 한 것이다. 그것도 본인이 원하기만 하면 장교로 임관하는 방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대신 부사관으로 직업군인의 길을 가겠다고 하니 부모님은 물론이거니와 형인 나와 둘째 동생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이유가 뭐냐고 아무리 다그쳐도 별다른 이유는 없다고 말하는 동생 앞에서 우리 가족은 모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어머니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맺히고, 그 옆에서 아버지는 한숨만 지으실 뿐 별 말씀이 없으셨다. 분위기가 이 쯤 되면 녀석의 기세가 좀 수그러들 법도 한데 표정을 보니 어림도 없다. 삼형제 중에 막내로 태어났고 장남인 나와는 10년이나 나이 차가 있는 탓에 별다른 말대꾸도 못하고 자란 녀석이, 이번만은 달랐다.

놀란 가족들을 앞에 두고 막내 동생은 군대가 많이 좋아졌다는 이야기와 부사관이 되면 좋은 장점들을 줄줄 외워대기 시작했다. 직업군인이 받게 되는 경제적인 혜택과 부사관에게 주어지는 교육 기회들까지 조목조목 들이댄다. 부사관을 지원하면 장려금으로 800만원이 일시불로 지급된다는 부분을 이야기할 때는 꽤나 신이 나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일반 회사에 취직하는 것보다 군대에 일찍 자리를 잡는 것이 현명한 결정이라고 말하는 동생의 이야기를 반박하기에 우리 가족들은 달라진 군대에 대해 그다지 아는 것이 없었다. 결국 좀 더 생각해보자는 부모님의 반승낙을 받아내는 걸로 그날의 이야기는 끝이 났다.

동생을 돌려보내고 나니 장려금 800만원에 온 가족의 생각이 모아졌다. '혹시 800만원이 필요한 일이 있는 건 아닐까?" 이렇게 시작된 가족들의 추측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카드 빚'이 있는 건 아닐까?'에서 시작된 의혹이 '여자 친구가 임신한 것은 아닐까?'라는 추측에까지 다다르자 우리 가족들은 마치 확실한 증거라도 포착한 듯 흥분했다. '말뚝 박겠다'는 막내를 추궁해서 포기시킬 방법이 나타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며칠 후 동생이 나를 찾아왔다. 한참을 망설이던 동생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내게 털어놓은 이야기는 모든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형, 나 군대가 좋아."

동생의 눈물에는 절실함이 있었고, 자신의 길에 대한 강한 의지가 있었다. 더 이상 동생을 말릴 수가 없었다. 동생은 그렇게 직업 군인이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군대는 '애국심'와 '전우애'만으로 기억되는 곳이 아니다. 우리 어머니에게 군대는 아들의 휴가 날짜를 손꼽아 기다리며 눈물 짓게 만든 그리움의 원인이었고, 나에게 군대는 겨울마다 반복되는 발가락 동상과 지긋지긋한 여름 모기로 기억되는 인권유린의 현장이었다. 그러나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혹은 가족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라도, 동생의 진실한 선택은 함부로 저울질 되거나 폄하되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우리가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삶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를 대신해서 결정하고 의미를 이야기해 달라고 하는, 특정한 게으름 혹은 주의의 결핍 때문이다. (p. 321)

내가 삶의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동안 동생은 자기 삶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고민해서 나름의 의미를 찾아낸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동생의 어려운 선택에 박수와 축하를 선물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가슴 저 깊은 곳에서 소리 없는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동생이 자신의 길을 선택한지 어느 새 2년이 지났다. 주말에 집에 온 동생에게 요즘 어떠냐고 물으니 대답이 시원하다.

"학교 다닐 때도 나빴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이 그때보다 훨씬 더 행복해."

"그 이상의 것을 바라는" 사람들이 "그 이상의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그것을 추구하기로 결정하면, 일과 삶이 갖고 있는 가능성은 놀라울 정도로 무궁무진해진다. (p. 332)

우리는 삶의 가치가 타인에 의해서 결정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되고, 우리의 선택이 남에 의해서 함부로 평가되도록 방치해서도 안된다. 남의 꿈에 몸을 기대 생계를 구걸하는 것으로는 '그 이상의 것'이 무엇인지 결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그 이상의 것'을 찾고 그 길을 행복하게 걷고 있는 동생의 놀라운 가능성에 주목하며 감사와 격려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상윤아, 멋지다. 그리고 고맙다."
IP *.254.149.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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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석
2007.03.26 09:03:45 *.216.120.70
이 글을 읽으며 두 가지 면에서 반가웠네요.

하나는, 군대간지 5주된 아들을 둔 엄마의 마음에 위안이 되었고,
둘은, 종윤님의 세 번째 리뷰에서 주눅들린 심정을 풀어줄 정도로
따뜻하고 일상적인 풍경이었다는 것.

동영상과 자전거와 북리뷰...
재주가 아주 많고 활동적인 분인 것같군요.
수고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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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박
2007.03.26 10:27:39 *.218.205.128
역시나 가족애가 느껴지는 글이네요.
참 정이 많은 분 같아요. 곧 뵙게 되겠죠? 따뜻한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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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3.26 16:37:32 *.72.153.12
동생이 나중에 딴말할까봐 걱정했는데, 역시 읽고나니 행복한 느낌이 확 들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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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선
2007.03.26 22:17:19 *.142.241.211
그러고 보니 제 주위에도 조금 비슷한 예가 있었네요.
부러워했었습니다.

무거워질 수도 있는 주제인데, 따뜻한 기운이 전해져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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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찬
2007.03.27 00:38:47 *.140.145.63
신종윤님은 재주꾼입니다. 제가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스타일임에
틀림없어 보이는데 이번 글은 정말 좋군요. 앞으로 제가 하는 일에도
자주 인용하고 싶은 힘을 가진 이야기입니다..

첫번째 글에서는 제일 고생하신 것처럼 말씀하셨지만 사실은 가장
부러움을 받는 분 중에 하나였음을 인정하셔야 하지 않을까요..ㅋㅋ

오프에서 뵈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지는 분입니다. 고생하셨고
좋은 결과 있으시길.. 곧 만나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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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간디 오성민
2007.03.27 13:43:46 *.200.97.235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제 막내동생이 경찰이 된다고 결정할 때였습니다. 저에게는 경찰은 고된 직업이었거든요. 그런 직업을 가진다고 했을 때 저도 띁어 말리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다만, 선택한 길을 열심히 살아보라고 했을 뿐입니다.
나의 기준과 동생의 기준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옛날 일을 떠올려 주셨네요^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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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윤
2007.03.27 14:32:20 *.227.22.4
아~

이 짧막한 이야기에 많은 분들이 따뜻한 마음을 달아주시니 참! 좋네요. 감사합니다. 복잡하고 어려운 글을 쓰고 싶었던 제 스스로에 대해서 한번 더 생각하게 됩니다.

며칠 동안 붙잡고 있던 '일의 발견'과 공시성(Synchronicity)에 대한 컬럼을 도저히 끝낼 재주가 없어서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는 4시가 되어서야 쫓기는 마음으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필요한 것은 '교훈'이 아니라 '공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해봅니다.

한명석님~ 많이 보고 싶으시죠? 날씨가 좀 따뜻해져서 다행입니다. 더 넓은 마음으로 돌아올겁니다.

옹박님~ 이제 자주 뵐 수 있겠네요? 따뜻한 걸로 말하자면 옹박님의 귀자님에 대한 그것이 으뜸 아닐런지...

한정화님~ 글에서도, 댓글에서도 정화님만의 분위기가 묻어나서 참! 좋습니다. 휴~ 계속 읽고, 계속 쓰게 되어서 다행입니다. (혼날까봐 걱정했습니다.)

민선님~ 지나고 돌아보니 가벼워졌습니다. 그곳을 지나는 동안은 그러지 못했거든요.

이기찬님~ '약은 고양이 밤눈 어둡다'는 말이 자꾸만 떠오르네요.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정말 감사했습니다.

오성민님~ 대신 살아줄 것처럼 충고를 늘어놓는 제 자신을 보면서 가끔 깜짝 놀라게 됩니다. 동생이 잘 살아주어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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