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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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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1일 10시 43분 등록
소록도를 다녀와서.....

모처럼 전남의 섬 소록도를 찾았다. 전라남도 고흥군 도양읍에 딸린 섬. 면적 4.42㎢, 인구 900여명이 거주하며, 해안선길이가 14㎞정도의 조그만 섬이다. 고흥반도 남쪽 끝의 녹동으로부터 약 500m 거리에 있으며, 섬의 모양이 어린 사슴과 비슷하다고 하여 소록도라 명명하였다 한다. 섬 뒤에는 거금도가 위치해 있었고, 예전에는 한센(나병) 환자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한센병 환자와 병원 직원들만의 섬이었으나 현재는 아름다운 경관이 알려지면서 일반인들도 많이 찾는다.

광주에서 100㎞이상 남쪽에 위치해 있어 자동차로 약 2시간 정도 달려야 했다. 지금은 길이 제법 잘 뚫려 있어 고흥반도의 끝인 도양읍에 다다르는 데 무리가 없다. 도양에 도착하여 맛난 회로 배를 채우고 소록도로 향했다. 배편으로 갈아타고 한 10분쯤 들어가니 소록도에 접한다.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첫 번째 들린 곳이 국립소록도병원이다. 일전에 한센(나병)병 환자들이 거주하는 섬 정도로 알고 있었으나 이 병원의 전시관과 일부 일제강점기에 지었다는 감금실(監禁室)과 검시실(檢屍室)을 둘러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곳은 일명 문둥병(나명)이라 일컬어지는 환자의 거주지가 아니라 삶에 대한 절규와 민족의 애환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한 맺힌 땅이었다. 일제의 강권이 몰아치는 1916년에 문둥병 환자들을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이곳에 ‘소록도 자혜병원’이라는 허울 좋은 병원을 개원하여 수 천 명의 한센병 환자를 격리 수용시키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그들의 삶은 질곡이며 암흑이었다. 병마와의 싸움은 차치하고라도 강제노동, 부역 등으로 삶이 곧 죽음과도 같았다. 아니 오히려 죽음이 편한 삶이었을 지도 모르는 절체절명의 연속선상에 늘 그들이 있었다.

가혹한 학대와 혹독한 멸시 속에서 때로는 몸으로 어느 때는 영혼으로 저항하기도 하면서 하루하루를 지내야 했던 그들을 떠올릴 치라면 가슴한 곳에 복받치는 설움과 짓눌린 울분을 참을 길 없다. 그들은 원장을 살해하는 엄청난 모험을 감행하기도 했다하는 데 얼마나 가혹행위가 심했으면 환자의 몸으로 그리했겠는가. 나라 잃은 슬픔과 정상인의 몸을 박탈당한 그들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행동이었을 것이다.

더더욱 통절(痛切)의 한(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들 생활상의 편린(片鱗)을 보여주는 감금실과 검시실 현장이다. 감금실은 말 그대로 환자들을 감금하는 장소이었고, 총책임자인 일본인 원장의 자의적 판단으로 자행되었다하니 그 실태를 감히 짐작할 수 있다. 조금이라도 자기 뜻에 반하면 감금실로 끌려갔고, 모든 자유와 권리가 박탈당했으며 최소한의 행위도 용납되지 않았다. 그들은 인간이전의 인간이었다. 짐승만도 못한 굴욕의 나날을 어두운 감금실에서 보내야 했고, 설혹 그곳에서 풀려나왔다 하더라도 남성에게는 천형(天刑)이라할 수 있는 정관절제 수술을 받아야 했다고 한다. 이는 한센병이 유전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으나 일본인의 비인간적 행동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이다.

일본인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감금실 바로 옆에는 검시실을 지어놓고 한센병환자들의 몸에 칼날을 서슴없이 들이대곤 했다. 이 광경은 그들이 중국에 소재한 731부대를 통해 수많은 사람(대부분 우리나라 사람이었음)들을 상대로 인체실험을 했던 악몽을 떠올리게 한다. 죽은 사람에게 한정된 듯하지만 아마 살아있는 환자에게도 무자비한 칼날을 들이댔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당시의 일본은 인간이하의 탈을 쓴 자들이었기에 보고 듣지 않더라도 만행을 짐작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환자들이 겪어야할 고통은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

오죽하면 당시의 ‘소록도 환자들은 세 번 죽는다’는 일화를 남겼겠는가. 한 번은 문둥병을 앓는 순간 죽고, 둘째는 죽어도 시체를 온전히 보전 못하고 해부되어 다시죽고, 셋째는 해부된 시체조차 고이 묻히지 못하고 화장되었다하니 살아 있는 삶은 무엇이며, 죽어 떠난 몸이 무엇인가 말인가. 추측건대 일본 강점하의 죽음은 망국의 허공에 떠있는 죽음이니 세 번 아니라 네 번, 다섯 번 죽은 목숨과 같다 할 수 있어 그 복받침이 객혈(喀血)을 불러오지 않을 수 없다.

그 곳을 벗어나니 정원 한 가운데 넓게 누워있는 큰 바위가 있었다. 그 위에 한 줄기 눈빛을 멈추게 하는 시가 각인되어 있었는데 바로 한센병 시인 한 하운의 보리피리였다. 그 내용이 오곡간장을 구구절절 녹인다.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ㄹ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靑山)
어린 때 그리워
피―ㄹ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인환(人寰)의 거리
인간사(人間事) 그리워
피―ㄹ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ㄹ닐리리.』

시에 대한 문외한으로 이 시의 깊이를 어찌 다 읽을 수 있겠는가마는 대충은 짐작할 수 있었다. 고향에 대한 향수와 어린 시절 마음껏 뛰놀고 싶었던 산천 그리고 정상적인 인간들이 모여 사는 거리를 처절한 그리움으로 담아냈다고 볼 수 있다. 환자의 몸으로 살 수 밖에 없었던 숙명적 삶에 대한 비운을 느끼면서도 이를 모두 벗어 던지고 고귀한 삶으로 승화시키는 시인의 절제된 인간상은 읽는 이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그는 모든 아픔을 한 곳에 모아 보리피리에서 나오는 그윽한 음향에 담아 날려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저 눈물의 언덕을 넘어서 말이다.

애환을 뒤로 하고 녹색으로 색칠된 넓은 정원을 지나자 그나마 안식을 갖게 해준다. 그곳에는 각양각색의 나무들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 중에 나의 안중을 점한 나무는 솔송나무였다. 부채꼴처럼 둥근 외양을 보여주며 수많은 가지로 날렵한 잎사귀를 바치고 있는 매우 희귀한 소나무였다. 이 나무가 무려 3억원을 호가한다고 하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무들 또한 한센병 환자들의 비운이 아로 새겨져 있다. 지금으로부터 80여 년 전 상처로 얼룩진 손과 발을 이끌면서 이 나무들을 심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라져 육신은 없어지더라도 나무를 통해 혼이라도 세상에 우뚝 서기를 원했을 듯하다. 그 마음이 응축됐던지 잘도 자라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정원을 통해 마음을 조금 달랜 후 소록도 해수욕장으로 몸을 옮겼다. 시원한 바닷바람과 해변가가 답답함을 씻어준다. 한 잔 들이키는 맥주와 안주로 삼킨 새우깡이 억눌린 감정을 달랜다. 이제 여기서 뜰 시간이다. 섬에 대한 선입관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겠기 때문이다.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소록도, 그 곳은 신천지가 아니었다. 인간적 고뇌와 민족적 상흔만이 가득한 곳이다. 정상적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고마운 지를 되새기게 하지만 반면에 비정상적인 삶을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에 대한 책임과 의무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삶은 태어난 사람 모두에게 공평해야 함에도 정상인과 다른 숙명적 삶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환자들이 있음은 나를 아프게 한다. 또한 그러한 삶을 감싸주기보다는 비인간의 극치를 보여주는 무리들이 우리 곁에 있었다는 역사적 증거가 비분강개하게 한다. 이제 이 모두를 일소하고 인간적인 삶이 세상에서 추구해야 할 가장 소중한 가치가 되게 해야 한다. 그 가치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비인간적인 행위가 더 이상 이 세상에 발붙이지 못하기를 빌었다. 아울러 지금도 역사적 현장에서 또 다른 행복을 찾고자 하는 환자들의 쾌유를 기원했다. 또한 지난날의 암흑은 사라지고 아늑한 듯한 보금자리에서 정상적인 삶을 향한 힘찬 발걸음을 볼 수 있어 다행이었다.

얼마 후 소록도를 떠났지만 마음 한 곳에 남겨진 어두운 잔상이 지워지질 않았다. 과거의 아픔을 지켜봄으로써 오늘을 사는 우리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아름다운 삼천리금수강산의 미래를 가꿀 후손들에게 이 같은 불행을 또다시 물려줄 수는 없겠기 때문이다. 인간의 행복이 무엇인가를 되새기게 하고 한 국가의 생존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해주었던 조그만 섬 소록도를 뒤로하고 나의 발걸음은 벌교 꼬막동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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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11.01 13:49:45 *.70.72.121
으흠...
우리 3기 수료식 때 쯤 선배님의 책이 떡하니 나와 잔치 함께 했으면 좋겠는 걸요. 기행문 좋아요. 한 해 너무 옹골지게 보내고 계셔서 부럽네요. 이번 주에 적벽강 꿈 벗 모임에는 참여하시는 거죠?

비밀 하나 공개 할께요. 후배 중에 이쁜이 하나가 선배 디게 잘 생겼다고 하던 걸요. ㅎㅎㅎ 좋겠당. 어디 다시 보자. ㅋㄷㅋㄷ 정말인가? 삼색주에 반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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