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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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서쪽 해안 끝에 있는 도시 퍼스, 그 근교에 로트네스트라는 작은 섬이 하나 있다. 3
년 전 동생과 함께 그 곳에 갔을 때의 이야기다. 배를 타고 들어가는 길목에서 보니 참 아
이러니한 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다는 너무 깨끗하고 파란 것이 마치 드넓은 수영장처
럼 보였는데 섬 안은 사막이었다. 그 파란 바다와 사막의 조화라니 너무 아이러니 하다고
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원래부터 돈 안 들이고 걸어 다니는 여행을 전문으로 하는 내 동생과 나는 그 섬 안에서도
걸어 다니기로 작정을 했다. 배를 타고 그 깨끗하고 파란 바다를 지나서 섬에 당도해서는
무료로 운행이 되는 순환 버스를 타고 섬 안 쪽으로 들어갔는데, 버스가 내려주는 지점부터
는 렌터카 이외에는 다른 교통 수단을 이용할 수가 없었다.
일단 버스에서 내려서 섬과 바다를 구경을 하려던 우리는 렌터카 대신에 두 다리를 직접 움
직여서 걸어 다녀 보기로 결정을 했다. 자동차가 다닐 수 있도록 포장이 된 길을 따라 걸어
가긴 했지만 그것은 사막 체험의 시작이었다. 가끔 렌터카들이 한 대씩 지나가긴 했지만 우
리 둘 외에 걸어 다니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도로를 둘러싼 곳들은 모래 뿐이었고 가
끔 그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남은 식물들이 군데 군데 살아있음을 증명할 뿐이었다. 말 없이
목표 지점을 향해 걷고 있었던 우리 자매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사막의 적막함 뿐이었다. 이
적막함을 뚫고 가끔 ‘사사삭’ 작은 도마뱀이 모래 위를 달려가곤 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한 20분쯤 걸었을까? 그렇게 적막하고 무료한 지역을 걸어 다니다 보니
시간에 대한 감각도 묻혀져 버리는 듯 했다. 물 한 잔 마시려고 바닥에 앉았던 우리 자매가
느낀 것은 적막한 사막 그 자체였다. 햇볕은 내리쬐고 그늘은 하나 없고 모래가 쌓여 있었
는 데 별로 걸리지 않을 것 같았던 목표지점은 아직도 멀어 보였다. 사방을 둘러보니 풍경
의 차이도 별로 나지 않는다. 만약에 포장 도로가 나 있지 않았더라면 방향을 분간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한 10분쯤을 다시 걸어서 목표 지점에 도착을 했는데, 거기 이렇게 써 있었다. “탐험가
(explorer) 아무개 여기서 잠들다” 그 이후에도 그 섬 안에서 우리는 같은 내용의 비석들을
몇 개 더 보았다. 대체 이들은 이 먼 곳까지 무엇 때문에 탐험을 했던 것일까?
그때 나는 탐험가(explorer)라는 영어 단어에 마음이 쓰였다. 한참 직업에 대해서 천
직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있던 중이라서 인지. ‘아, 참, 탐험가라는 직업이 있었지!’라는 생
각이 번쩍 들었다. 그렇다. 세상에 탐험가라는 직업이 있었다. 갑자기 꼬리를 물고 어릴 적
위인전에서 읽었던 탐험가라는 사람들이 생각이 났다. 아문센, 피어리, 스콧, 쿡, 콜럼버스,
마젤란 등등. 그런데 내가 떠올린 탐험가들은 모두가 서양인이었다.
그러고 보니 한국 사람 탐험가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왜 한국인 탐험가는
없었을까? 우리 유전자 안에 새겨져 있는 어떤 특성들이 우리를 탐험가가 되지 못하게 했
을까?
그것은 아마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일거다. 이걸 해서 밥을 먹을 수 있을까 이걸 해서 집
을 얻을 수 있을까 이걸 해서 반드시 성공을 할 수 있을까 이런 두려움이다. 생각해 보니
나 자신도 항상 그래 왔다.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 갈까 하는 것에 대한 문제에 부딪히면서
내가 항상 내 자신에게 느낀 것은 내 안에 공존하는 모순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재미 있어 하는 일을 하고 살 거라고 입으로는 외치면서 정작 그 일을 시작하지 못하곤 했
다. 그것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끌어 안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항상 나의 결론
은 남들이 다 가는 안정적이고 쉬운 길이었고 미적지근한 선택이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먼 나라 서양 사람들은 본인이 목숨을 앗아갈지도 모를 불확실성(새로운 땅을 찾으리라는)에 자신을 걸어 본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 끝이 자신의 죽음이나 탐험의 실패로 귀결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리고 한편으로 ‘탐험’, ‘인생의 불확실성을 끌어 안는 법!’ 이런 것들이 동양인으로서 서양인에게서 배워야 할 점이 아닌가 하고 생각을 했었다. 이런 불확실성에 대한 도전과 도전들이 이어져서 새로운 역사들 -개인의 역사건, 사회의 역사건-이 탄생했을 테니까.
그런데 오늘 나는 우연히 ‘삼국유사’ 안에서 우리 유전자 안에도 있는 탐험가의 피를 발견하고 있다. 서양인들처럼 직접 살거나 혹은 다스릴 만한 땅을 찾는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목숨을 앗아갈지 모를 불확실성에 자신을 걸어 본 사람들이 분명히 우리 역사 안에서도 존재하고 있었다. 그들은 아리나발마, 예업, 현태, 구본, 현각, 혜륜, 현유(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고운기 저, p575) 라고 불리우는 신라의 스님들이었다. 이 스님들은 자신을 버리고 불법을 얻기 위해서 파밀 고원을 지나 인도로 가는 생사를 오가는 여행길을 시도 했었다고 한다. 엄청난 용기와 열정을 등에 지고서!
3년 전의 호주 여행과 그 때 읽었던 탐험가의 비석, 그리고 비석조차 남기지 못했고 후세에 생사도 분명히 알리지 못했던 신라 시대의 스님들이 내 머리 속에 영상으로 겹치고 있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 과연, 우리 자신의 역사를 위해서 혹은 사회의 역사를 위해서 탐험가들처럼, ‘불확실한 미래’를 끌어 안는 모험을 얼마나 하고 있을까?
IP *.72.227.114
년 전 동생과 함께 그 곳에 갔을 때의 이야기다. 배를 타고 들어가는 길목에서 보니 참 아
이러니한 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다는 너무 깨끗하고 파란 것이 마치 드넓은 수영장처
럼 보였는데 섬 안은 사막이었다. 그 파란 바다와 사막의 조화라니 너무 아이러니 하다고
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원래부터 돈 안 들이고 걸어 다니는 여행을 전문으로 하는 내 동생과 나는 그 섬 안에서도
걸어 다니기로 작정을 했다. 배를 타고 그 깨끗하고 파란 바다를 지나서 섬에 당도해서는
무료로 운행이 되는 순환 버스를 타고 섬 안 쪽으로 들어갔는데, 버스가 내려주는 지점부터
는 렌터카 이외에는 다른 교통 수단을 이용할 수가 없었다.
일단 버스에서 내려서 섬과 바다를 구경을 하려던 우리는 렌터카 대신에 두 다리를 직접 움
직여서 걸어 다녀 보기로 결정을 했다. 자동차가 다닐 수 있도록 포장이 된 길을 따라 걸어
가긴 했지만 그것은 사막 체험의 시작이었다. 가끔 렌터카들이 한 대씩 지나가긴 했지만 우
리 둘 외에 걸어 다니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도로를 둘러싼 곳들은 모래 뿐이었고 가
끔 그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남은 식물들이 군데 군데 살아있음을 증명할 뿐이었다. 말 없이
목표 지점을 향해 걷고 있었던 우리 자매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사막의 적막함 뿐이었다. 이
적막함을 뚫고 가끔 ‘사사삭’ 작은 도마뱀이 모래 위를 달려가곤 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한 20분쯤 걸었을까? 그렇게 적막하고 무료한 지역을 걸어 다니다 보니
시간에 대한 감각도 묻혀져 버리는 듯 했다. 물 한 잔 마시려고 바닥에 앉았던 우리 자매가
느낀 것은 적막한 사막 그 자체였다. 햇볕은 내리쬐고 그늘은 하나 없고 모래가 쌓여 있었
는 데 별로 걸리지 않을 것 같았던 목표지점은 아직도 멀어 보였다. 사방을 둘러보니 풍경
의 차이도 별로 나지 않는다. 만약에 포장 도로가 나 있지 않았더라면 방향을 분간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한 10분쯤을 다시 걸어서 목표 지점에 도착을 했는데, 거기 이렇게 써 있었다. “탐험가
(explorer) 아무개 여기서 잠들다” 그 이후에도 그 섬 안에서 우리는 같은 내용의 비석들을
몇 개 더 보았다. 대체 이들은 이 먼 곳까지 무엇 때문에 탐험을 했던 것일까?
그때 나는 탐험가(explorer)라는 영어 단어에 마음이 쓰였다. 한참 직업에 대해서 천
직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있던 중이라서 인지. ‘아, 참, 탐험가라는 직업이 있었지!’라는 생
각이 번쩍 들었다. 그렇다. 세상에 탐험가라는 직업이 있었다. 갑자기 꼬리를 물고 어릴 적
위인전에서 읽었던 탐험가라는 사람들이 생각이 났다. 아문센, 피어리, 스콧, 쿡, 콜럼버스,
마젤란 등등. 그런데 내가 떠올린 탐험가들은 모두가 서양인이었다.
그러고 보니 한국 사람 탐험가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왜 한국인 탐험가는
없었을까? 우리 유전자 안에 새겨져 있는 어떤 특성들이 우리를 탐험가가 되지 못하게 했
을까?
그것은 아마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일거다. 이걸 해서 밥을 먹을 수 있을까 이걸 해서 집
을 얻을 수 있을까 이걸 해서 반드시 성공을 할 수 있을까 이런 두려움이다. 생각해 보니
나 자신도 항상 그래 왔다.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 갈까 하는 것에 대한 문제에 부딪히면서
내가 항상 내 자신에게 느낀 것은 내 안에 공존하는 모순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재미 있어 하는 일을 하고 살 거라고 입으로는 외치면서 정작 그 일을 시작하지 못하곤 했
다. 그것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끌어 안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항상 나의 결론
은 남들이 다 가는 안정적이고 쉬운 길이었고 미적지근한 선택이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먼 나라 서양 사람들은 본인이 목숨을 앗아갈지도 모를 불확실성(새로운 땅을 찾으리라는)에 자신을 걸어 본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 끝이 자신의 죽음이나 탐험의 실패로 귀결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리고 한편으로 ‘탐험’, ‘인생의 불확실성을 끌어 안는 법!’ 이런 것들이 동양인으로서 서양인에게서 배워야 할 점이 아닌가 하고 생각을 했었다. 이런 불확실성에 대한 도전과 도전들이 이어져서 새로운 역사들 -개인의 역사건, 사회의 역사건-이 탄생했을 테니까.
그런데 오늘 나는 우연히 ‘삼국유사’ 안에서 우리 유전자 안에도 있는 탐험가의 피를 발견하고 있다. 서양인들처럼 직접 살거나 혹은 다스릴 만한 땅을 찾는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목숨을 앗아갈지 모를 불확실성에 자신을 걸어 본 사람들이 분명히 우리 역사 안에서도 존재하고 있었다. 그들은 아리나발마, 예업, 현태, 구본, 현각, 혜륜, 현유(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고운기 저, p575) 라고 불리우는 신라의 스님들이었다. 이 스님들은 자신을 버리고 불법을 얻기 위해서 파밀 고원을 지나 인도로 가는 생사를 오가는 여행길을 시도 했었다고 한다. 엄청난 용기와 열정을 등에 지고서!
3년 전의 호주 여행과 그 때 읽었던 탐험가의 비석, 그리고 비석조차 남기지 못했고 후세에 생사도 분명히 알리지 못했던 신라 시대의 스님들이 내 머리 속에 영상으로 겹치고 있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 과연, 우리 자신의 역사를 위해서 혹은 사회의 역사를 위해서 탐험가들처럼, ‘불확실한 미래’를 끌어 안는 모험을 얼마나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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