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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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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10일 06시 11분 등록

요즘은 취미로 운동 한 두가지 안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운동은 생활에 활력을 주고 자신감을 갖게 만든다. 나이가 들면서 더욱 운동이 필요해지는 이유이다. 나는 테니스와 수영을 오랫동안 해 왔고 지금도 즐겨한다. 두 가지 운동을 하다 보면 수영보다는 테니스가 훨씬 어려운 운동이란 생각이 든다. 서로 다른 운동의 쉽고 어려움을 비교하는 게 말이 안 될지 몰라도, 수영은 혼자 하는 것이니 잘하든 못하든 즐겁게 운동하면 그뿐이다. 구지 어렵다고 생각 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테니스는 좀 다르다. 경쟁상대가 있는 운동이고 게임이다. 게임에서는 우선 이기고 봐야한다. 내가 열심히 했고 나름대로 잘 했더라도 승부에서 지고 나면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 과정보다는 결과를 더 중요시 여기는 생각이다. 시합에 나가서 아까운 승리를 놓치기라도 하면 ‘당장 레슨을 받아서 실력을 더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승부욕이 발전의 계기를 마련해 주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생각만큼 실력이 잘 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잘 늘지 않기 때문에 어렵다고 느끼고, 나보다 고수를 만나면 자극을 받아서 더 잘하고 싶은데 잘 안되니까 또 어렵다고 느끼고... 어렵기 때문에 더 매력적인 운동인지도 모르겠다.


오래전에 회사 일로 미국에 있던 동안 테니스 레슨을 받은 적이 있다. 프로테니스 코치가 되는 게 꿈이라던 나와 동갑내기의 코치는 대학원에서 운동심리학을 전공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가르치는 방식은 내가 한국에서 받아본 레슨 방식과 많이 달랐다. 한국 코치들은 레슨하면서 설명을 많이 하지 않는다. 같은 동작을 반복 연습시키면서 볼을 받아 넘겨주는 파트너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편이다. 그런데 이 코치는 레슨 시작하는 첫 날 볼을 쳐보자면서 간단한 테스트 하더니, ‘나쁘지는 않다. 곧잘 한다.’고 말하고는 테니스의 기본 요령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첫날이니까 그런가 보다...했다.

다음날부터 본격적인 레슨이 시작되었는데, 30분 레슨하면서 15분에서 20분은 설명을 하는데 시간을 보냈다. 한 가지 동작에 대한 설명을 여러 가지로 다르게 했다. 예를 들면 발리 동작은 ‘파일 캐비넷을 열었다가 닫는 기분으로’ 한다. ‘반쯤 열려진 회전문을 닫는 기분으로’ 한다. ‘벽을 등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한다는 등 일상생활과 관련된 여러 가지 동작을 예로 들어가며 설명을 했다.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기나긴 설명은 계속되었다. 이건 도대체 뭐하는 거야? 레슨을 하고 나면 땀도 흠뻑 흘리고, 운동한 뒤의 개운한 맛도 느끼고 해야 재미가 있는데, 학교 강의 듣는 것도 아니고... 몇 일을 버티다가는 결국 ‘설명을 좀 줄이고 실제 연습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 레슨이 너무 재미없다’고 얘기를 하게 됐다.

그에 대한 코치의 대답은 이랬다. ‘당신은 초보자가 아니다. 초보 수준이라면 기본적인 동작을 반복 연습하는 게 중요한데, 당신에게 그런 것은 별 도움이 안 된다.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생각하는 능력, 즉 생각하면서 운동하는 능력이다. 자기가 볼치는 동작에 대해서 생각하고, 그것을 이미지화해서 자신에게 체화시켜 나가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것을 배워야 지속적으로 발전이 가능하다. 내가 가르치려는 것이 이것이다.’

코치는 이 말을 하면서 "mustle memory"란 표현을 사용했다. 생각을 통해 이미지화된 몸 동작이 근육에 기억 된다는 것이다.(몸에 익숙하게 내 것으로 만든다는 뜻에서 이걸 나는 ‘체화(體化)’라고 해석했다) 그리고 이렇게 체화된 경험이 실제로 테니스 경기를 할 때 빠르게, 무의식적으로 볼에 반응하게 만드는 요체라고 했다. "mustle memory" 란 말을 그때 처음 들었는데 재미난 표현이고, 마음에 와 닿는 말이었다.

또 코치는 ‘당신은 내가 설명을 하면 깊이 생각하지 않고 ‘알았다’ , ‘이해된다’ 고 쉽게 대답하는데, 내 설명을 꼼꼼히 끝까지 다 들어라.(나는 설명은 그만 듣고 볼을 더 치고 싶은 마음에, 이젠 됐다. 충분히 이해했다는 표현을 코치가 말하는 도중에 자주 하곤 했다) 내가 한 동작을 여러 가지 모양으로 설명하는 이유가 있다. 어떤 사람은 A라는 설명이 마음에 와 닿고, 다른 사람은 B라는 설명이 좋다고 한다. 그것은 사람마다 다르다. 내가 하는 여러 가지 설명 중에 당신 마음에 제일 잘 와 닿는 내용이 있을 것이다. ‘그 설명’을 당신의 이미지로 기억해라. 또한 가능한 한 많은 설명내용을 요약해서 정리해 놓고 그것을 가끔 되새겨 봐라. 지금은 A라는 설명이 마음에 와 닿았을지 모르지만, 시간이 얼마간 지나고 나면 D가 더 와 닿을 수도 있다’고 했다.


테니스 경기를 할 때 볼을 받아 치는 동작은 감각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 매번 볼을 칠 때마다 요놈을 어떻게 쳐야 할까? 생각하면서 치는 게 아니다. 포핸드를 친다고 하면 잔발을 뛰어 위치를 잡고, 자세를 낮추고, 힘을 뺀 상태에서, 백스윙은 빨리, 포워드 스윙 시에는 몸의 회전을 이용해 파워를 높이고, 임팩트 시점까지 볼을 보면서, 자기 몸 앞에서 볼과 라켓이 임팩트 되게 하고, 임팩트 후에는 밀어 주듯 앞으로 뻗으면서, 훨로우 드로우를 끝까지 한다. 이 많은 내용을 어떻게 머릿속으로 생각해 가면서 볼을 칠 수 있는가? 이 기본적인 내용들이 이론 공부와 연습을 통해서 몸에 체화(몸으로 기억)되어 자연스럽게 연결동작으로 나올 때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제대로 된 스윙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운동을 배울 때 이런 기본은 아주 중요하다. 기본을 익히고 이를 자기 몸으로 기억(체화)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물론 기본을 익히지 않는다고 해서 운동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본이 되어 있어야 계속해서 실력이 향상되고, 하루 하루 좋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재미를 느끼는 법이다. 기본을 무시하면 얼마 안가서 자신의 한계를 느끼게 되고, 그러면 점점 재미가 없어지게 마련이다. 결국은 제풀에 지쳐 포기하고 말게 된다.

그런데 운동을 하다 보면 그 기본(몸에 체화된 감각)을 간혹 잊어버린다. 그런 때를 흔히 슬럼프가 왔다고 한다. 잘 될 때의 감각과 자신감은 다 사라져 버리고 내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무엇을 잘 못하는지 도대체 감이 안 잡힐 때가 있다. 그 때 우리가 그것을 극복해 가는 방법이 바로 코치가 가르쳐 주려던 생각하는 능력이고 기본에 충실해지는 것이다.


삼국유사를 읽으면서 처음에는 ‘이것 참 재미나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런데 후반부에 들어가니 불교에 관한 내용이 많아지고 어려운 불교 용어도 자주 나오면서 점점 흥미가 떨어져 갔다. 때로는 무협지를 읽거나 중국 무협영화를 보는 느낌, 전설 따라 삼천리를 듣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역사책은 왜 읽어야 하나, 이 책에서 내가 찾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역사는 나의 근본을 찾는 것. 나의 뿌리를 찾는 것이다. 그 근본과 뿌리가 나의 사상 속에 체화되어서 내가 일부러 생각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나의 사고와 행동에 영항을 미치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역사고 문화라는 생각이 든다. 기본을 몰라도 테니스를 칠 수 있듯이, 역사를 몰라도 살아가는데 지장은 없다. 하지만 우리가 보다 성숙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역사라는 뿌리를, 기본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이런 역사의식은 지속적인 독서와 사색을 통해서 나의 사고에 체화되어야 자연스레 발현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우리는 지나간 역사를 곧잘 잊어버리고 사는 데, 자신이 방향 감각을 잃었을 때, 슬럼프에 빠졌을 때, 뭔가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는 지나간 역사를 한 번씩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또 일연과 김부식의 비교에서 보듯이 역사는 보는 사람에 따라, 그 사람들의 역사의식, 시대상황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인식될 수 있으므로 편향되지 않은 시각을 갖추기 위해서는 다양한 역사책을 접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의식은 우리의 사상 속에 ‘체화’ 되는 것이다’ 는 생각을 하다가 ‘체화’라는 단어에서 ‘mustle memory’ 가 떠오르고, 그게 단초가 되어 테니스 배우기와 역사 공부를 함께 생각해 보았다. 신화의 힘, 삼국유사를 통해서 신화, 설화, 민담 등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이야기들 중에는 유사한 내용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나의 일상에서 이런 유사점을 생각하고 찾아내 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이 세상을 사는 원리는 크게 다르지 않다.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 인생을 살아가는 게 세상 사람들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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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3.10 10:11:13 *.70.72.121
글을 계속 쓰게 되면 잘 엮어 가실 수 있겠네요. 4기 연구원 지망생들 가운데 그들(?) 끼리 비슷한 원이 그려지기도 하네요. 나중에 만나면 퍽이나 재미있어 하실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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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08.03.10 11:38:07 *.46.177.78
절차지식에 대하여 설명을 한다는 것은 참 어렵죠?...


운동수행의 복잡하고 병렬적인 메카니즘을 언어로 바꾸기도 어렵고
또 설명을 해도 수행 자체를 수정하는 데는 언어와 다른 감각이
필요하기때문에... 그런거 같아요...

그러다보니, 저도 같은 것을 놓고 나열식으로 늘어놓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후일에 최빈값을 찾는 것으로 대안을 찾기는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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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선조 들의 아름다움은 그 은유적 표현과 상징성에 있는 듯 합니다.
사실의 잔인성과 냉혹함을 아름답게 디자인해서 품격을 높여 놓았으니까요...

현자들은 깨달음의 힘에 대한 안전장치를 그렇게 했던 거 같습니다.

공감이 가는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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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희
2008.03.10 12:35:58 *.38.102.209
운동 싫어 하는 저에게 자극을 주시는 글입니다. 더 나이들기 전에 시작해야 하는데 미루면서..... 게은른 저를 또 확인.

라켓을 치는 것처럼 가볍게 변경연에서도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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