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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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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12일 15시 23분 등록
手話를 하지 않는 수화 시간 - 고운기

이를테면 나는 늘 그런 식이다
밥을 먹으면서도 밥은 먹지 않고 밥 먹었다고 하고
사랑을 하면서도 사랑은 하지 않고 사랑했다 하고
시를 쓰면서도 시는 쓰지 않고 시 썼다 한다

나는 늘 밥이나 사랑이나 시를
밥이나 사랑이나 시로 내 몸에 들이지 못한다

말도 모르는 남의 나라에 와서 벙어리요 귀머거리로 지낼 때였다
교육방송에서 하는 수화 시간이 내게 말 배우기 선생이었다
천천히 바르게 발음해주고 자막까지 곁들여
읽기 듣기를 한꺼번에 가르치는 훌륭한 선생이었다
천만명이 산다는 도시에서도 나는 만날 사람은 손꼽지 못하고
아침부터 밤까지 말 한마디 듣지도 하지도 못하고 돌아오는 날들이 많았다

적막한 숙소에서 텔레비젼을 켜니 수화 시간을 하고 있었다
나는 벙어리요 귀머거리로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아주 더듬더듬 말을 알아듣기 시작했다
아마도 말 배우기가 아니라 세상을 만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것은 수화를 가르치는 시간이었다. 나는 수화는 배우지 않고
수화를 가르치는 말만 배웠다

더러 화면 한쪽 달걀처럼 생긴 타원형의 공간을 조금 차지하고
수화로 세상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나는 달걀 속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이를테면 그런 식이다

헤어지고도 헤어지지 않고 헤어졌다고 한다
잊고도 잊지 않고 잊었다 한다.



변경연 말고도 읽어야 할 책이 산더미.
문득 시가 그리워져 올립니다.
제가 좋아하는 고운기의 시입니다.

나이가 있는지라 제일 먼저 피곤이 오는 눈.
정신 없이 가동되는 탓에 자꾸 부화가 걸리는 머리.
머리 터지면 어쩌죠? ㅎㅎㅎ

다 밀어 두고 우리 잠깐만 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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