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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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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15일 18시 16분 등록
동물원의 물개 쇼 장. 그 곳에서 활동하는 여러 마리의 물개 중 특이한 물개 한 마리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M군. 학창시절 영어를 매우 가볍게 공부하고 넘어갔던 그의 조련사는 그가 물개라는 이유로 물개의 이니셜을 따서 M군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M군이 다른 물개들과 달이 특이했던 점은 그는 쇼를 하는 중에 조련사가 칭찬과 함께 던져주는 생선을 받아먹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다른 물개들은 오로지 그 생선 한 마리를 얻어먹기 위해 이를 악물고 그 어려운 재주들을 익혔고 쇼를 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자기가 먹고 싶을 때만 생선을 먹었으며, 그의 쇼는 생선을 받아먹기 위한 것이 아닌 자신의 쇼를 보기 위해 찾아든 수많은 관객을 위한 것이었다. 다른 물개들은 모두 그를 이상한 물개로 취급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으며 그 사실을 오히려 뿌듯하게 생각했다. 조련사 역시 처음에는 그런 M군이 굉장히 낯설었지만, 영어공부를 깊게 하지 않은 그로서도 M군의 그러한 태도는 왠지 믿음직스럽게 여겨졌다. 쇼 장에서의 M군의 모습은 언제나 당당했으며, 항상 최고의 쇼를 보여주기 위해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 관객들 역시, 겉으로 보기엔 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물개들 사이에서도 왠지 M군의 쇼를 보고 있을 때면 무엇인가 다르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M군이 힘차게 물속에서 뛰어올라 공중제비를 돌던 그 당당하고 멋진 모습이 나의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동기 유발을 위해 투입되는 돈, 승진, 칭찬은 영양주사 같은 것이다. 지나치면 자율성과 일에 대한 정열, 선택과 책임이라는 건강함을 상실하며, 퍼포먼스가 끝날 때마다 생선을 바라는 '쇼 장의 물개 증후군' 환자를 양산 할 수도 있다. ” ('코리아니티' 377p)

쇼 장의 물개 증후군. "코리아니티"를 읽다가 접한 이 용어는 나에겐 너무나 생소했다. 사부님께서 만든 용어인지, 외국어를 번역해 놓은 건지 인터넷을 찾아도 나오지 않았다. 칭찬도 지나치면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인격 장애를 가진 사람을 만들 수 있으며, 이런 사람들은 곧 퍼포먼스가 끝날 때마다 생선을 바라는 쇼 장의 물개와 같다는 설명을 하는 부분에서 사용되었다. 이 용어를 보는 순간 너무나 강하게 내 머리 속을 찌르는 생각이 있었다. 다름 아닌 바로 나였다. 나야말로 쇼 장의 물개였다.

어릴 적 찢어지게 가난한 집은 아니었지만, 결코 부유층도 중산층도 아닌 우리 집이었다. 그래서 용돈 같은 건 결코 넉넉하게 받아 쓸 수 없었다. 학교 앞의 수많은 먹거리와 장난감들, 그리고 동네 문구점 앞에 놓여있는 오락기계가 항상 날 유혹했지만, 신나게 게임에 몰두한 아이들 뒤에 서서 구경이나 실컷 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매일의 일과였다.

그러던 언젠가 정확히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상장이란 걸 받게 되었다. 아버지는 처음 받아온 상장에 기분이 좋으셨는지 지금으로서는 정확한 액수를 기억할 수 없는 지폐를 선뜻 용돈으로 내 손에 쥐어 주셨다. 아! 그 때부터 난 돈 맛을 알았다. 어린 나의 머리 속에 상장은 곧 거액의 용돈이라는 공식이 성립되었다. 그 때부터 난 뭐든 열심히 했다. 글짓기이던 그림이던 체육이던 시험공부이던 뭐든지 열심히 했다. 가끔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TV에 나와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젊은 시절 돈이 되는 거면 뭐든지 했다는 말을 하곤 하는데, 당시 어린 내가 꼭 그 꼴이었다. 물론 상장을 받고 칭찬을 받는 것이 재미도 있었지만, 항상 그 뒤에 따라오는 그 지폐의 유혹은 도무지 뿌리 칠 수가 없었다. 오락도 실컷 하고, 떡볶이도 사먹고, 번데기도 사먹고, 만화책도 볼 수 있는 그 용돈의 유혹은 치명적이었다.

그런 나의 사고방식은 중학교에 가서 절정에 이르렀다. 뭐 어쨌거나, 그 덕에 성적은 항상 상위권을 유지했다. 그러나 더 잘해도 용돈의 액수가 더 올라갈 것 같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더 잘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난 항상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며 만족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고등학교를 가면서는 성적이 잘도 떨어졌다. 상장은 고사하고, 부모님께 보여드리는 성적표도 나날이 줄어만 갔다. 대학에 가서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었다. 대학에서는 미술대회도, 글짓기대회도, 수학경시대회도 하지 않았다. 난 그야말로 조련사를 잃은 물개였다. 그 뒤에 나의 삶은 점점 더 하강곡선을 타게 된다. 난 정확히 쇼 장의 물개였던 것이다. 생선이 더 이상 공급되지 않자 의욕이 상실되어 버렸다.

글을 읽으며, 다시금 나를 비롯해 주위에 수많은 직장인들이 떠올랐다. 매달 받는 우리의 월급은 쇼 장의 물개를 위한 생선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월급이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한 달 동안 재주넘고, 지느러미로 박수치고, 코로 농구골대에 덩크슛을 꽂아 넣는 대가로 받는 생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월급쟁이는 매달 정확한 날짜에 월급이라는 생선이 꼬박꼬박 통장으로 들어올 걸 알고 열심히 재주는 넘는데, 그것이 끊기면 어떻게 될까. 두렵겠지. 나는 월급을 받기 위해 일했던 것인가, 당당히 내가 제공한 서비스에 대한 대가를 받았던 것인가.

조련사가 생선 주지 않아도 쇼를 하는 물개를 상상해 보았다. 생선 한 마리를 얻어먹기 위해 열심히 재주를 보이는 물개가 아닌, 진정한 자신의 재주를 뽐내기 위해 활약하는 물개의 모습. 그야말로 프로페셔널한 물개의 모습이었다. 상상만 해도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고작 생선 따위에 연연하지 않고 쇼 장에서 맘껏 자신의 기량을 뽐내는 물개의 모습은 얼마나 멋있을런지. 쇼가 끝난 후 생선 주는 조련사에게 멋지게 한 손을 흔들어 보이며 "No, Thanks"라고 말하는 물개의 모습 말이다.

나는 직장이라는 쇼 장에서 어떤 존재인가? 평범한 물개인 것 같았다. 당신은 생선을 기대하는 쇼 장의 물개입니까? 쇼를 하는 쇼 장의 주인공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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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3.15 19:13:21 *.36.210.80
"Show 를 하라"는 문구가 떠오르네요. 생각해 볼만 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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