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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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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17일 02시 53분 등록

몇 년전 일간신문에 모 대학교 산업공학과 교수가 ‘인공지능을 이용한 자동차사고 형량 추정(계산) 시스템’을 만들었다는 기사가 실렸다. 당시 나는 야간대학원에서 인공지능 수업을 들은 지 얼마 안 되었던 때라, 관심 있게 기사를 보면서 ‘인공지능 기술이 실생활에서 이렇게 이용 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 시스템의 제작 배경은 이랬다. 전직 대법관 출신인 그 교수의 아버지가 ‘비슷한 유형의 자동차 사고들인데, 최종 판결에서는 형량에 많은 차이가 난다’고 이야기하는 데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비슷한 사고임에도 불구하고, 유능한 변호사를 쓰는 사람은 형량이 적고, 돈 없고 힘없는 사람은 형량이 많아지는,“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모순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런 불합리를 바로잡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제작자의 순수한 마음이 동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법학, 컴퓨터공학 등을 전공한 동료교수 몇 명과 함께 인공지능시스템을 만들었다. 개발된 시스템을 소개하는 신문 기사 내용은 아주 겸손하고 조심스러웠다. ‘이 시스템이 절대로 사람(판사)의 판단을 대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판검사가 재판을 진행하면서 유사 판례를 참고하듯이, 구형이나 판결을 내리기 전에 참고 자료의 하나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또한 ‘이 시스템은 가벼운 차량 접촉사고(인명사고 같은 큰 사고는 말고) 에 활용될 수 있는 시스템으로, 판단을 하기 위한 여러 조건들이 수치(계량)화 될 수 있는, 정형화된 사건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활용이 가능하다’는 설명도 있었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법조계의 반발을 많이 걱정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몇 일 뒤 그 인공지능 시스템 활용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이 신문에 올라왔다. 그 교수는 대응 글을 올렸고, 그 이후 몇 일 동안 유사한 반론 글들이 많이 올라왔다. 법대교수, 현직 판검사, 변호사 등 법조계 인사들의 반대논리는 ‘기계가 어떻게 판사의 일을 대신 하는가?’ 와 ‘그 시스템의 신뢰성’문제였다고 기억 된다. 그런데 시스템의 정확성이나 신뢰성 등 기술적인 부분이 논란의 핵심은 아니었다. 인공지능은 지속적으로 발전 가능한 시스템이다. 인공지능의 기반인 지식데이터베이스가 지속적으로 확충되고, 학습기능을 통해 그 DB를 검색하는 효율적인 알고리즘을 보완해 간다면, 지금 당장은 신뢰성이 조금 떨어져도 시간이 지나면서 상당한 수준의 판단을 할 수 있는 인공지능시스템 소위 전문가(Expert)시스템이 탄생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판사를 도와주는 기계’가 문제였다.

논란이 일었던 이 사건의 결말은 어떻게 됐을까? ===> 그 교수는 한마디로 ‘박살’났다. 법조계 인사들에게서 뭇매를 맞고, 아마 그 시스템은 폐기되지 않았나 싶다.

나는 당시 신문지상에서 벌어지는 논란을 보면서, 법조계 사람들의 집단이기주의가 우리 사회 약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좋은 기술발전의 ‘탄생’을 가로막는 다고 생각했다.
만약 그때 기회가 주어졌다면, 사회적 공감대가 이루어져서 그것을 실제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판사들의 우려대로 우리나라의 재판 과정이 엉망이 되었을까? 아니면 컴퓨터가 판사를 가르치고 지배하는 그런 세상이 되었을까?


기계가 사람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일부 분야에서, 우리는 이미 기계에 의존해서 판단을 내리고 있다. 육상, 쇼트트랙, 수영 등 0.01초를 다투는 운동경기에서는 카메라 녹음과 전자감응장치를 이용해서 판정을 내린다. 운전면허 시험장에서도 전자감응장치가 이용 된지는 오래 됐다. 비교적 보수적이라는 테니스 경기에서도 심판의 오심 문제가 계속 제기 되자, 심판이 판정을 내리되 판정에 불만이 있으면 카메라 판독을 통해서 판정을 뒤집을 수 있는 규칙을 일부 대회에서 2007년부터 채용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기계는 사람이기 때문에 부정확하거나 실수 할 수 있는 부분에서 도움을 주고 있고, 그 영역을 점차 확대해 가고 있다. 일부 분야에서는 기계의 도움을 받아 판단을 내리는 것이 보다 정확하고 합리적이라는 보편적 타당성이 인정을 받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기계(또는 기술)를 판단의 보조자로 활용해야 할 것인가?’ 를 결정할 때 어떤 점을 고려해야 할까? 당연히 정확성, 효율성이나 효과성이 중요하지만 그것만을 기준으로 수용 여부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판단을 해 왔던 심판(judge)에 대한 권위와 그것이 기계로 대체됨으로써 우리가 갖게 되는 상실감 또한 중요한 기준이 된다. 다시 말하면 신기술의 수용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의식수준,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즉 문화가 그것을 받아들일 만한 준비가 되었는가? 가 중요한 관건이 된다.

켐벨은 ‘신화의 힘’에서 판사가 법정에 들어오면 사람들이 일어서서 경의를 표하는 이유는 저나름 대로의 생각과 편견을 지닌 판사들의 무리가 아니라 그 역할로써 판사가 지게 되는 완전무결함, 즉 그 역할의 원리로 대표되는 완전무결함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경의를 표하는 대상은 완전무결함을 나타내는 신화적 인격으로서의 판사라고 했다. 그런 의미로 보면 아무리 작은 부분이라도 기계의 도움을 받아 판결을 내린다는 것은 인간에 대한 도전, 또는 우리가 갖고 있는 ‘완전무결해야 할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 질 수 있다.

그런데 켐벨은 또 이런 말도 한다.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게 되는 시대가 옵니다. 예를 들면, 나는 얼마 전에 놀라운 기계를 한 대 샀어요. 컴퓨터 말입니다. 그런데 나는 이것을 신들을 섬기듯 섬기고 있어요. 신들과 동일시하는 것이지요.”

이쯤 되면 신화(또는 신들)간의 충돌이 일어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권위의 신’과 ‘컴퓨터 신’. 세월이 지난 후에 과연 두 신중에 어느 신이 우세승을 차지하게 될 런지 자못 결과가 궁금해진다.


나는 기계를 이용해서, 기계에서 나온 결과를 참고해서, 최종적인 판단을 ‘사람’이 내린다면, 그것은 전혀 문제 될게 없다고 본다. 몇 년전 폐기처리 되었던 그 같은 인공지능 시스템도 언젠가는 결국 만들어질 거라고 생각한다. 판검사의 고유 영역이라는 재판에서도 빠르지는 않지만 점진적으로 컴퓨터가 영역을 확대해 갈 것이고, 그러다 보면 우리가 그것을 바라던, 바라지 않던 인공지능 같은 기술을 활용하게 되는 것이 시대의 흐름이라고 생각한다.(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은데, 이 글을 읽는 분들의 생각도 궁금하다)


이 즈음에서 이 사례를 코리아니티와 연관지어 생각해 보자. 만약 인공지능시스템을 판검사의 보조자로 활용한다는 문제가 지금 다시 우리사회에 던져진다면, 우린 코리아니티의 어떤 특성에 근거해서 판단을 내려야 할까? 또 우리가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 어떤 특성을 더욱 계발하고 활용해야 할까?

먼저 떠오르는 것은 ‘우리 속의 나’이다. 저자가 책에서도 밝혔 듯이 ‘우리 속의 나’라는 코리아니티는 경우에 따라서 배타성과 폐쇄성이라는 치명적인 약점을 보일 수 있다. 위 사례에서 보듯이 우리나라 법조인들은 자기들의 이해관계에 맞지 않으면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집단주의적인 적대감과 폐쇄성을 갖고 있다고 보여 진다. 따라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법조인 집단으로서의 ‘우리’와 사회 공동체 전체로서의 ‘우리’에 대해 처절하게 고민하고, ‘사회공동체의 성장과 더불어 함께 나아가는 개인(법조인)’이라는 집단의식이 개인(법조인)의 자아와 함께 발전해 나간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도록 ‘우리 속의 나’라는 코리아니티를 계발하고 발전시켜 나아가야 겠다.

또 하나는 ‘명분과 실리를 함께 생각하는 선비정신’이다. 기계(컴퓨터)가 사람의 판단을 일정부분 도와주는 것이 과연 ‘명분’에 어긋나는 일인가?’에 대해 열심히 고민하고, 그런 기계가 활용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실리’에 대해서도 마음을 열고 그 실체를 들여다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난 이후에 선비가 갖는 중용의 도를 갖고 판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몇 년전 논란에서 보여주었듯이, 컴퓨터에게 도움을 받는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면서, 검토의 대상으로도 삼지 않으려는 자세는 문제가 있다. 컴퓨터에게 도움 받는 것이 인간 생존을 위한 기본원칙에 반(反)하는, 그래서 원천적으로 불가능 한 일이 아니라면 말이다.


나는 우리 사회가 개인, 직장, 사회 및 국가 등 다양한 차원에서 새로운 실험과 도전을 많이 시도해 보는, 창조성 넘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이를 바탕으로 21세기 한국이 새로운 발전의 계기를 맞을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이를 위해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코리아니티를 발전 시켜 나아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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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3.17 12:08:28 *.36.210.80
<다양한 차원에서 새로운 실험과 도전을 많이 시도해 보는, 창조성 넘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변해 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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