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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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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17일 09시 17분 등록
누군가에게 구원이 되어 주는 칭찬 한 마디가 있다. 한 사람이 자신의 도전에 대해 끊임없는 실패를 겪어서 절망이나 포기 쪽에 더 많은 에너지를 싣고 있을 때, 그래서 앞이 보이지 않을 때, 그 때 그 칭찬은 칭찬을 받는 사람에게 더욱 큰 의미를 발하게 된다. 그 순간, 칭찬을 받는 사람은 자신의 절망이나 포기가 단지 희망의 이면이었다는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된다. 때로는 이런 칭찬이 칭찬을 받는 자의 삶을 다른 방향으로 전환을 시켜 주기도 한다.

나에게도 이런 ‘칭찬’의 경험이 있었다. 시기 적절한 순간에 나타나서 그 마술 같은 말 ‘칭찬’ 한 마디를 해 주었던 사람이 있었다.

지금 누군가 내게 취미로 무엇을 하느냐고 물으면 나는 당연히, “갤러리 구경 다니는 것을 좋아해요. 새로운 미술 작품들을 보는 것, 그것이 제 취미 생활이죠. 특히 현대 미술을 좋아해요.”라고 밝힌다.

사실, 이 취미생활을 이렇게 명확하게 밝힐 수 있게 된 것은 근 5~6년 이내 인 것 같다. 그 전에 나는 갤러리를 돌아 다니면서도 그것이 내 취미라고 선뜻 밝히지 못했다. 거기에는 나의 오래 된 상처가 있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생 시절 나는 방학마다 화실을 다녔다. 다른 아이들은 영어니 수학이니 선수학습을 하느라고 야단이었던 시절, 전인 교육에 관심이 있으시던 우리 어머니의 약간은 색다른 교육 정책이었다. 영어나 수학은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라며 동생들과 함께 화실을 권하셨다. 그림을 그리는 일이 싫지 않았었던 데다가, 부모님 말씀을 거역하는 법이 없던 말 잘 듣는 아이였던 나로서는 별로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그 시작은 나의 의지가 아니었지만, 나는 그 그림을 그리는 작업에 점점 빠져들기 시작했었다. 색과 색을 섞어서 새로운 색이 나오고 거기에 물의 농도를 조절하면 어느 순간 내가 원하던 딱 그 색이 팔레트에서 만들어지는 그 쾌감, 빛이 들어와서 물체에 부딪히는 것을 관찰하면서 그 빛이 만들어내는 색의 파노라마를 알게 되면서 느꼈던 환희. 여름 날 에어컨도 없던 시절에 선풍기 돌아가는 작은 화실 방에서 내가 느꼈던 것은 몰입이었다. 더위도 시간의 경계도 어린 나의 고민도 그리고 ‘나 자신’까지고 잊어버렸던 순간이었다. 날마다 화실 가는 시간을 손꼽아 기다렸고 어제보다 더 멋진 그림을 그리게 될 오늘을 상상하곤 했었다.

어느 날이던가 무심한 어른들의 말에 나는 상처를 입게 된다. 어느 날, 우리 삼 남매-나는
삼남매의 맏이였다- 의 발전 정도에 대해서 상의를 하던 우리 어머니와 화실 원장님의 말
을 듣게 된다. “둘째는 정말 창의성이 뛰어난 아이입니다. 저런 아이는 그림을 그리면 정말
일취월장할 아이인데, 아들인데다가 머리도 좋으니 그림을 그리게 하실 생각이 없으실 거고,
막내도 정말 독특하거든요. 뭔가 고집스럽고 개성적인 데가 항상 있는 아이에요. 게다가 스
스로가 화가가 되겠다고 하니까 정말 잘 하신 선택이에요, 그런데 큰 아이는 그 둘에 비하
면 창의성이 조금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에요. 그래도 역시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머리도 좋
고 능력도 좋은 아이이지만.”

내 여린 마음에 와서 박힌 말은 다른 두 아이들에 비해 창의성이 떨어진다는 말이었다.
돌이켜 보면, 그것이 ‘몰입’의 경지까지에 이르렀었던 나의 열정에 얼마나 큰 상처였던지. 그 때부터 나는 스스로에게 ‘창의성이 없는 나. 그래서 미술은 나의 길이 아니다’라는 규정을 하고 만다. 그리고 한참 동안이나 그 스스로 만든 규정의 늪에서 묶여 살았었다. 한 사람의 칭찬을 얻기 전까지.

어릴 적 입은 그 상처 때문에, 나에게 미술의 세계는 동경해 마지 않았지만 내가 드러내 놓
고 즐길 수가 없고 숨겨서 몰래 꺼내봐야 하는 세계였다. 미술 동아리에서 활동은 하되 소
극적으로 숨어서 지냈고, 미술사를 공부하기 위해 멀리 미대까지 가서 청강을 하긴 했지만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겐 언제나 비밀이었다.

그러다가 대학원 시절 기숙사에서 그림을 전공하는 한 선배를 알게 되었다. 공통의 관심사로 인해 서로 친한 관계로 발전이 되었고 우리는 인생에 대해, 미술 작품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어느 날 선배를 만나는 자리에서 선배가 나한테 말했다.

“야, 그 옷 색 배합 죽이는 데, 그런 색 배합을 즐기는 사람은 아마 너 밖에 없을 거야. 내가 가만 보면 넌 색을 배합하는 데 무슨 특별한 감각이 있어.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니거든. “
“진짜? 새로운 해석이네, 우리 엄만 항상 나한테 무당처럼 이상한 색 옷 입고 다닌다고 야단만 치시는데. 솔직히 난 이런 샛 초록색, 샛 노랑색, 이런 게, 좋은데 말야. “
“너 모르나 본데, 넌 굉장히 감각 있는 아이야. 미술품에 대해서 나랑 말이 통한다는 거 부터가 네가 예술적인 감각이 있는 아이라는 말이지. 넌 내가 전문적인 이야기를 해도 알아듣는 사람이쟎아. 게다가 넌 예술품에 대해서 너 나름의 해석을 가지고 있고. 너희 엄마랑 너는 단지 취향이 다른 사람인 거야, 그 뿐이야.”

그 때, 선배의 작은 칭찬이 내게는 마술처럼 작용을 했다. ‘창의성이 없어서 감히 미술 작품을 즐길 수 없는 사람’이라는 오래된 규정이 눈 녹듯이 녹아 내렸다. 나는 미술품들에 대한 내 자신만의 관점을 믿게 되었고 숨기지 않고 내 취미생활이라고 사람들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 후 여태까지 미술품 관람은 내가 사랑하는 취미 생활이 되었다. 그리고, 그 취미를 통해서 인생에 새로운 영감들을 얻곤 했다.

돌이켜 보면, 그 때 그 선배가 해 주었던 애정 어린 칭찬이 내 인생을 얼마나 풍요롭게 해 주었는지. 그것은 내 삶에 구원 같은 한 마디였다.

주말을 맞이하여 따뜻한 봄볕을 맞으며 갤러리 산책을 하던 나에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때 그 선배처럼, 나는 누군가에게 구원이 되어 줄 한 마디의 칭찬을 해 준 적이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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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3.17 12:36:30 *.36.210.80
내 상처도 기억이 나네요.
좋아하는 것을 함부로 말할 수 없던 기억이 나요. 좋아한다는데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라고 그랬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좋아하는 것이 허영과 사치라는 비난과 함께.

먼저 좋아하고 알아가고 싶었는데 알지 못하기 때문에 좋아할 수 없다는 사실에 상처를 받고 입을 꾹 다물게 되었죠.

그런데 얼마 전 읽은 10cm예술을 쓴 김점선님은 이렇게 말했죠.
<“아동화와 피카소, 마티스의 그림이 비슷한 것 같아도 차이가 뭐냐 하면 아이들은 감성만 갖고 그리기 때문에 어떤 어른이 뭐라고 하면 방어를 못 해. 반면 대가들은 욕을 먹어도 확신이 있기 때문에 방어를 해. 어릴 적의 감성을 나이 60, 70까지 가지고 가되 그에 대한 확신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지.” 김씨는 “많은 사람들이 어렸을 때의 좋은 감성을 나이 40, 50이 될 때까지 유지하지 못하고 침해받고 억눌리고 상처받은 채 꺾여버리는 것”이라 말했다. 또한 자신이 “그 감성, 단순함을 이어온 것은 끈기”라 말했다.>

우리가 확신이 있을 때까지 공부를 해야 하는 까닭인 것 같기도 해요.
그래서 아무나 구원을 받지 못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누구도 남에 대해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나이를 들면서 더 들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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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
2008.03.17 20:19:12 *.255.159.154
좋은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공감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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