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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22일 20시 59분 등록

마담 시몬 드 보부아르.

당신의 책 ‘노년’을 읽는 며칠동안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지금은 찬바람 불던 겨울을 지나 봄바람 살랑이고 따뜻한 봄 햇살이 얼굴을 덮어오는 계절이지요. 그런 계절에 냉정하게 노년을 파헤친 글을 읽는 것은 참 불편하더군요.
세계의 지성으로 이름을 떨친 당신이 그러한 지적 유희를 즐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당신과 다르게 나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살아온 길도, 삶의 형태도, 살아갈 길도 아주 평범한 보통사람의 하나일 뿐이지요. 그러니 내가 당신의 지혜를 따라 가지는 못할 겁니다. 그럴지라도 나는 이런 삶의 방식이 더 좋군요. 당신처럼 세상 사람의 주목을 받지 못해도, 깊고 넓은 지적 능력을 갖추지 못해도 이런 삶이 더 편하고 좋네요.

당신이 말한 대로 노년은 참 추한 모습일 것이고 힘들겠지요. 누구나 피하고 싶은 것이 노년이라는 시기일겁니다. 몸은 무너져가고 정신마저 성치 않을 테니 누가 그 시기를 좋아하겠습니까. 당연히 피하고 싶지요. 그렇지만 또한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게 그 시기이겠지요.
피할 수 없고 원치 않는 노년이 앞에서 기다리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하나의 위안이 있습니다. 뭐 대단한 건 아니랍니다. 아니 대단한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당신은 계약결혼을 하였지요. 나는 평범한 사람이므로 평범하게 법적 제도적 윤리적으로 제도가 정해놓은 틀 안에서 평범한 결혼을 했습니다. 그래서 나에게는 평범한 아내가 있습니다. 결혼한 남자는 누구나 아내가 있을터인데 그것이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이냐고 하겠지만 나에게는 대단한 일이랍니다.

이제부터 나는 그 대단한 나의 아내이야기를 조금만 하려합니다. 아내라는 이름의 여자는 세상을 둘러보면 어디에서나 볼 수 있지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 아내가 있어 당신이 두려울 정도로 솔직하게 묘사한 노년의 두려움이 적지 않게 줄어들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답니다. 왜 그런지 궁금하다고요. 그럼 찬찬히 내 이야기를 들어보시지요. 결국 아내 자랑이지만 그래도 잠시 참아주는 예의 정도는 갖추고 계시겠지요.

아내는 현명하답니다.
아내는 좋은 학교를 다니지는 못했습니다. 저도 좋은 학교는 아니지만 아내보다는 더 배웠습니다. 그런데 살아보니 아는 게 많고 배운 게 많으면 박식하고 똑똑할 수는 있지만 현명해지는 것은 아니더군요. 똑똑한 것 보다는 현명한 게 더 낫다는 것은 아시지요. 아내는 여태껏 내가 본 그 누구보다 현명하고 지혜롭습니다. 마치 마르지 않는 샘 같아서 자주 그 샘에서 지혜를 떠 마신답니다. 가끔은 내가 더 배웠다는 게 부끄러울 정도로 배우는 게 많답니다.

아내는 예쁘답니다.
아내는 내가 본 여자 중 가장 예쁜 여자입니다. 안 믿는군요. 상관없습니다. 어찌되었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니까요. 아내는 내적으로도 예쁜 여자입니다. 마음씀씀이가 특히 그렇지요. 살림에서도, 아이를 키우는데도 따라올 사람이 없을 겁니다. 어떤 면을 보아도 아내는 예쁜 여자입니다. 나처럼 나이를 먹어서 젊음이 지니고 있는 아름다움은 지나갔지만 삶의 원숙한 아름다움이 가득한 사람입니다.

아내는 튼튼합니다.
함께 살아오면서 아내는 내가 항상 기댈 수 있는 튼튼한 나무 같은 역할을 해 주었습니다. 언제나 변함없이 자신의 자리에서 나를 지켜보아주었고, 언제나 지긋이 웃어주었지요. 실제 몸도 튼튼하답니다. 다리도 굵고 운동도 무척이나 잘 하지요. 든든한 나무 같은 튼튼한 아내랍니다.

아내는 포근합니다.
세상에서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왔을 때 아내는 한번도 싫은 기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세상의 피곤까지 함께 끌어안아 주었지요. 남들보다 못한 살림을 살았지만 싫은 소리도 안했답니다. 그래서 나는 집에 가는 길이 항상 즐거웠고 집에 가면 항상 포근했지요.

아내는 넉넉합니다.
성마른 성격인 내가 짜증을 부려도 아내는 넉넉히 받아들이고 녹여내었지요. 아내라고 그것이 쉽지는 않았겠지요. 그렇지만 아내는 남편을 먼저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답니다. 그렇다고 자신을 한없이 낮춘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아내의 넉넉함은 품격이 있는 넉넉함입니다. 그것은 나의 큰 실수도 감싸 안아 덮어주는 넉넉함 이기도 하지요.

마담 시몬 드 보부아르.

이정도로 충분한 설명이 되었을지는 모르겠군요. 이정도의 이유로 아내가 있어서 노년에의 두려움이 덜어진다는 나의 말이 이해가 될지 모르겠군요. 당신이 쓴 책을 읽어가며 많이 두려웠습니다. 눈을 돌려버리고 싶은 그런 노년의 모습이 마치 눈앞에 있는 듯해서 그랬지요. 그러나 눈을 돌려 아내를 보았을 때 두려움은 작은 안도감으로 바뀌었습니다. 지혜롭고 든든하고 친구 같은 아내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나는 그런 아내가 옆에 있어서 행복합니다. 그 아내 덕분에 여기까지 왔고 그래서 항상 아내가 고맙습니다.

마담 시몬 드 보부아르.

혹시 한국의 봄을 보았는지 모르겠네요. 한국의 봄은 화사하면서도 수수하지요. 올해의 봄도 예년처럼 화사할 것입니다. 이 글쓰기가 끝나면 나는 아내와 아이와 함께 작은 뒷산에 올라 봄의 햇살을 만날 겁니다. 꽃 소식보다 먼저 달려온 봄 햇살이 아주 정겹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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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 때문에 일찍 올리느라 좀 서둘렀습니다. 누구나 마찬가지였겠지만 참 힘든 한달 이었습니다. 서로 격려하는 모습이 보기 좋더군요. 한달동안 함께 고생한 여러분들 원하는 결과 있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과 한달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IP *.212.227.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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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3.23 01:01:40 *.36.210.80
처음에 리뷰를 읽을 때는 사십대인가 하면서 읽었었는데 그 다음에는 간결하고 깔끔한 리뷰가 젊은 필진을 연상케 해서 삼십대 앞부분인가 했어요. 오늘은 리뷰에서는 30대 칼럼에서는 40대 기분이 드네요. (본문에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요.) 설흔에서 마흔 진입 사이?

냉철함과 함께 풋풋한 동심이 느껴지네요. 늘 완숙함과 청년 같은 예리한 날카로움이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남 다른 젊은 의식을 지닌 진취적인 분으로 생각이 되네요. 가장 궁금한 분이셨습니다. 실제는 어떤 모습일까 하고.

고생하셨습니다. 일찍 마치셨으니 사랑하는 아내분과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실 수 있겠네요. 저의 궁금증이 해소되길 바라겠습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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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은
2008.03.23 12:34:10 *.51.218.186
캠벨 책에서 우리가 함께 읽었던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님은 '바로 그 사람'과 결혼을 하셨군요. 그리고 두분은 나와 너가 아닌 '우리'라는 관계에 헌신하는 아름다운 분들입니다. 제가 캠벨 책을 통해 가장 좋아하게 된 한 단어는 'compassion'이었습니다. 사랑의 고통까지 나누는 사이는 컴패션의 가장 전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명석 님이 어느날 보내준 마음을 나누는 편지에서 읽었던 글dl 생각이 나네요.

"인생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선택 중에서 한 사람과 사랑을 약속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노력을 요구하는 선택이다. 이는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변수이자 가장 큰 기쁨의 원천이 된다. 사랑은 거듭거듭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실천하고 매일 마음의 문을 열어두는 것이다. 사랑을 하려면 자신을 변화시키고 또 사랑에 의해 변화할 수 있도록 매일 열려있어야 한다. 사랑을 키우기 위한 노력 없이 상대와 계속 사랑에 빠져있을수는 없다.”
-내 사랑을 방해하는 7가지 악마- 중에서

제가 이 세상에서 가장 갈구하는 사랑도,
단 한 사람과 평생을 사랑하고 영혼의 친구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 참 어렵지만 가치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허락된 것도 아닙니다.

아내를 그렇게 바라볼 수 있다면, 그대는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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