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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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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23일 12시 38분 등록
First Death of one's Life

나는 스물 하나 그리고 후배는 스무 살.
해가 잘 드는 학생회관 앞에서 나를 좋아하고 잘 따르는 여자 후배 하나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표정을 지으며 내게 물었다.
“선배, 누군가가 죽는 걸 옆에서 지켜 본 적이 있어요?”
“아니”
“지난 주에 우리 동아리 엠티 갔는데 한 선배가 바다에 빠져 죽었어요”
“.....”
“난 처음 봤어요.”
“.....”
나는 그날 그 자리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나자 그 후 나는 그 후배에게는 내가 경험하지 못한, 내가 알지 못하는 한 세계가 생겼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더 이상 그에게 선배인양 하지 못했다.

그리고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대학을 졸업한 무렵서부터 서너해 동안 가까운 친구들에게 같은 일들이 일어났다.
절친한 친구의 서른 셋, 갓난 아들과 연년생 사내아이를 둔 언니가 급작스런 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오랜 친구의 쉰 아홉, 젊고 건강한 아버지가 폐암 선고 한 달 만에 돌아가셨다.
.....
우리는 예기치 않은 지점에서 삶의 변곡점을 만난다.
언니를 보낸 친구는 과격한 유물론자에서 독실한 크리스찬으로 변신했고, 어느날 티벳으로 선교를 떠난다는 소식을 보내왔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이후 친구는 공무원이 되었고, 공무원 연수원에서 만난 남자와 곧 결혼을 했다. 연수원에서였나 언제였던가 그 친구는 내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연수원에서 앞으로의 자신의 삶을 선으로 표현해 보라는 주문에 자신은 곧은 일직선을 그렸노라고. 그저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고 그저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후 칠팔년이 흐른 3월 봄날, 나는 서른 셋이 되었다.
그 새벽의 전화를 나는 잊지 못한다.
일곱 살 난 조카는 뇌종양을 선고 받았고, 석달을 채우지 못하고 떠났다.

나는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그가 처음으로 목격하는 죽음이 어떤 모습으로 오느냐 하는것이 이후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준다고 믿게 되었다.
나는 삶이 두려워졌고 또 한편 두려움이 없어졌다.
그리고 늙어서 죽는 것은 큰 축복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조카가 떠난 이듬해, 외할머니께서 여든 살을 넘어 저녁까지 잘 드시고
주무시듯 돌아가셨다.
호상이라 하였던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처음으로 죽음이 우리 삶 가운데 있고,
내내 떠들썩하고 간간이 환한 웃음을 띠는 사람들이 어색해 보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비로소 어른이 된 듯 했다. 서른 셋이었다.
열 두 살 즈음 그때만 해도 집에서 장례를 지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 동네 이웃집에 내걸린 붉고 푸른 등을 보고 놀라, 밤에는 집밖에 한 걸음도 못나가던 어린 시절이 지나갔다.

언젠가 전우익 선생이 “죽음이 없다면 , 생각해 보세요. 죽음이 없다면 세상은 미칠겁니다”
하고 말했다. 죽음, 어두움이 없다면 생명도 없고 빛도 없는 것이 아니냐
살아있는 것만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내 안에 삶과 죽음은 대척점에 서 있고, 나는 건강하게 오래도록 살아
늙을 만큼 늙을 수 있기를 욕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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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3.23 13:54:43 *.36.210.80
그럼요, 그래야 하고 말고요.
노년은 죽음을 연상케 해요. 나도 마흔을 넘어서며 그런 시간이 찾아오더라고요. 신체가 먼저 신호를 보내며 우리의 삶이 변화해야 한 다는 것을 말해 주지요. 아니 그 전에는 알아도 안 것이 아니었지요. 몸과 마음이 일체가 되어 느끼는 깨달음만이 진짜로 우리를 변혁시킬 수 있는 것이지요.

열심히 하는 모습 아름다워요. 힘들더라도 한달에 한 번씩, 열두 번 서울에 온다는 가짐으로 올 한해가 님의 뜻대로 의욕과 꿈을 활짝 펼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애쓰셨어요. 오래 기억에 남을 거에요.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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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
2008.03.24 10:12:54 *.255.159.154
써니님, 우리와 함께 달리시느라 고생많으셨습니다.
큰 힘이 되었어요
고맙습니다.

글 잘 읽고 있습니다.
멋진 결실 있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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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08.03.27 12:27:58 *.254.16.19
도저히 잊어버리고 사는 수 밖에 속수무책인 '그것'에 대해 잔잔하게 잘 펼쳐보였네요.
난 아무래도 너무 예민한 듯.
어제는 낯선 수퍼에 들어갔는데, 주인이 '범죄형'으로 생겼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무서워가지고.. ㅜㅜ

위의 글에 드러난 경험은 좀 더 끌어안고 숙성시켜 더욱 발전시켜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나경씨, 조금은 허탈했지요?
그동안 애썼는데,
지금은 때가 아닌가보다... 그렇게 받아들이세요.

그 여러가지 일을 어떻게 하려나 나까지 걱정이었으니 말이에요.
당분간 지금 하는 일에 좀 더 집중하라는 뜻으로 수용하고,
앞으로도 계속 우리 커뮤니티와의 연결을
발전시키기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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